나.자.연(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5

 

 

 

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몸담고 있던 청년부에서는 수석권사님으로 불렸고, 딸의 결혼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던 엄마는 해마다 45일은 우리 딸 결혼식 날이 될 것이다라며 약속도 잡지 않으셨는데 그러기를 수 년. 동병상련의 친구와 하릴없이 패스트 푸드점에 앉아 닭다리를 뜯고 있었습니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아가씨 급 아줌마가 아이에게 햄버거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친구가 혼잣말처럼 내뱉습니다. “대단하다. 어떻게 결혼이란 걸 했을까?” 결혼한 여자가 부럽다는 말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산을 도대체 어떻게 넘을까 묻는 것입니다. 그즈음 나보다 서너 살이나 더 많은, 역시나 결혼의 암벽 앞, 망연자실 수 년차였던 언니가 그랬습니다. “신실아,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줄줄 나와소개팅 후 될 듯 말 듯 하다 결국 끝난 상태였고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 서러움과 외로움이 얼마나 퇴적되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까? 내 고난은 아직 고난도 아니다

 

진학, 취업 앞에선 내가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노력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공부하고, 토익 점수 내면 되니까요. 헌데 결혼을 앞당기기 위해서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소개팅도 누군가 주선을 해줘야 하는 것이지, 주말마다 정장 쫙 빼입고 나가서 저랑 소개팅 하실 분요?’ 헌팅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 언니나 나나 여차여차 결혼이라는 암벽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잉여롭던 싱글의 나날, 기억조차 희미합니다. 그 시절 나를 노처녀 선생님이라 놀리던 제자들이 어느 새 노처녀아닌 골드미스되어 바로 그 결혼의 벽 앞에서 서 있습니다. 소개팅 후 카톡을 주고받다 듣는 정말 혼자 살아야 하나 봐요. 사모님이런 메시지는 어떻게 결혼이란 걸 했을까?’ 묻는 그 질문과 데쟈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외로운 남녀가 지천에 깔렸고 결혼하고 싶은 남녀가 이렇게 많은데 왜들 이렇게 여전히 안 생기는채로 30을 넘기고 35를 지나고 속수무책 40을 향하는 걸까요?

리처드 로 신부님은 원인을 탐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목적을 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왜 결혼이 안 될까?’ 자신을 성찰하며 원인을 탐구하는 것은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인생 문제에서 쉽게 원인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인 탐구보다는 목적을 묻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씀이겠지요. ‘어떤 조건을 내려놔라, 매력을 계발해라, 대화법을 익히라하는 자기계발식 연애 코칭에서 원인을 찾아 나를 바꾸겠다고 하는 시도는 자칫 본질적인 성찰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거나 궁극적으로는 자기비하의 더 깊은 늪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화성 남자의 동굴도 알아야지요, 금성 여자의 수다에 담긴 의미도 파악해야 하구요. (모국어도 안 되는데 화성 말, 금성 말까지....) 게다가 대화법도 익혀야 하고,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성격도 바꿔야 하고. , 아파트 청약통장도 준비해야죠. 그 도달하지 못할 목표 앞에서 좌절이 거듭되는 어느 날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흐르는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찾아와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제 답은 늘 궁색할 뿐입니다. ‘네가 매력이 없는 탓도 아니고 네 가정형편 탓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예수님 코스프레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이 여러분의 개인사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이고, 구조적문제이며 여러분들은 그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에서 예쁜 게 착한 것이고 연봉의 액수가 능력입니다. 아니, 예뻐지는 것도 돈이면 가능한 세상이니까 문제는 돈입니다. 그러다 경제앞에서 사람다움의 모든 가치가 우습게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모두 연예인 될 기세입니다. 성형수술, 피부 관리, 체지방 측정하며 운동해서 몸만들기가 미용실 가서 머리를 자르는 일처럼 일상화 되었습니다. 문제는 대중매체에서 보는 일상이 나의 일상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 예쁜 것, 멋지게 사는 것에 대한 안목은 높아졌는데 현실, 특히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청춘 남녀의 현실적인 상황은 훨씬 더 어려워졌는데 어쩌다가 이성을 보는 안목만 다같이 상향평준화 되었습니다. 그러니 현실의 개팅남()를 선택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보는 코끼리 다리의 여자 동기, 비정규직의 교회 오빠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아니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물질만능주의의 피해자이고 또 가해자입니다. 외모도 따지지 말고, 경제적 능력도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연애와 결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 안에 사회, 문화, 정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인식은 분명 여러분이 과하게 지고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줄 것입니다. 이 잉여로운 싱글의 나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이 열릴 것입니다. 금쪽같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QTzine>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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