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편한 신발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걸음이 조심스러운 엄마 생각이 나서이다. 저렇게 예쁜 신발을 사서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갖다 드렸다. 퇴원하시면 하나 사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엄마가 채근을 했다. '신발 사올라믄 얼릉 사와라. 그럴 일이 있응게' 그럴 일이 있어서 얼른 사다드렸다.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나날이 엄마에게도 일상, 내게도 일상이 되어간다. 편안한 일상이 되어간다. 2년 전, 처음으로 요양병원으로 모시며 무너지던 가슴을 생각하면 기적같은 마음의 변화이다. 이번 수술과 재활과정은 버겁지만 참으로 견딜만 한 일이 되었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원망만 쌓이던 순간이 있었으나 이젠 참 지낼만 하다. 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여보세유'하는 목소리가 나를 쥐락펴락 했었다. 기운이 없거나 아파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걱정과 분노가 혼재되어 터져나오곤 했었다. 요즘은 '여보세유'에 힘도 있고 생기도 있다.





수술할 적마다 여느 할머니보다 빠른 회복을 보여주는 건, 순전히 동생 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가 47세에 낳은 동생. 그 동생이 낳은 세 아이가 엄마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아닐까. 병원이 아니라 집에 계실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연세에 비해 젊고, 건강하고, 살아 번득이는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같이 사는 식구들의 젊음이라고. 단지 늙은 엄마에 젊은 아들과 며느리, 완전 늙은 할머니에 어린 손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가 하는 막내 아들에 대한 한 줄 평가. '이 사람이 참 정직헌 사람인디 그짓말을 잘 혀' 진실하게 엄마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뿐 아니라 엄마를 웃게 하는 아들이다. 엄마를 속이고 놀리고 하면서.


동생도 고맙고, 올케도 고맙고, 조카들도 고맙고, 이 연세에 고집스럽지 않고 말랑한 엄마에게도 고맙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엄마를 보고 오면서는 '엄마는 참 복이 많다.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엄마 침대 바로 옆에 계신 할머니는 싸움꾼이다. 싸우고 괴롭혀서 결국 한 할머니는 다른 병실로 퇴출시켰고, 간병하시는 분께도 여간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언능 신발 사 와라' 하게 만든신 장본인이다. 엄마가 병원에 두고 신는 단화가 낡았는데, 그 신발을 두고 '거지냐? 신발이 그게 뭐냐? 갖다 버려라' 잔소리를 하시는 통에 집에 있는 다른 신발로 바꿔다 놓았다. 이번에는 신발이 중(스님) 신발 같다며 '절에 다니냐?'고 타박을 하셨던 것. 웬만한 건 허허롭게 참고 넘어갈 수 있는데 종교성 강한 권사님 엄마에게 '절에 다니냐'는 견딜 수 없는 발언이었던 것이다. 


이 할머니가 왜 이러시는지 나는 알고 있다. 아니, 엄마도 알기에 나름대로 참으시는 것 같다. 매일 매일 찾아와 운동시켜드리고 웃겨드리는 아들,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하고 간식을 사갖고 가서 속닥속닥 수다를 떨어드리는 딸. 할머니에게 달라붙어 안마해드리는 손주 녀석들.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교회 식구들. 옆 침대 할머니께는 없는 걸 엄마가 갖고 계시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흔치 않은 환자이다. 2년 넘에 입원중이시고, 이 할머니께 집이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게 일생을 마친다는 것은..... 너무 쓸쓸한 고통이라 상상이 안 되는, 상상하기 싫은 결말이다.  


병실에서 공인된 괴팍한 할머니이고, 이 할머니로 인해서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신발을 사갖고 갔을 때, 돌아누워 눈을 감고 계셨지만 정황을 모르시지 않을 터였다. 내 엄마랍시고 돌보고 챙기는 행동으로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 상황. 두 침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민망스러웠다. 이나마 잘 지내고 계신 엄마의 오늘에 대해서 그저 쿨하게 감사할 수가 없다. 아니, 4월 16일 이후 지난 한 달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자주 스쳐지나간다. 아침에 학교 갔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일상, 이것이 가슴 떨리도록 감사하다는 생각. 그러나 이 감사는 곧바로 부끄러움과 아픔에 가 닿는다. 이런 시간을 살고 있다. 이런 생각이 오락가락 하는 중,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박노해 시를 만났다. 감사한 죄! 바로 이 죄책감이다. 매일 감사한 죄를 범하고 있는 나는 그저 흐느끼는 것 말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 박노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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