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 있는 날 비가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빨래를 한다. 하루는 이불, 하루는 긴팔 옷들을 빨아서 옥상에 넌다. 저녁에 빨래를 걷으러 올라가 햇볕 냄새를 머금은
 빠닥빠닥해진 수건을 접을 때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CF를 찍고싶을 지경이다. 빌라에 사는 기쁨이다. 물론 이 기쁨도 한 철이다. 겨울에는 베란다도 없는 집안에서 빨래를 말려야 하고, 장마철에 빨래 말리기는 더더욱 듁음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은 좋을 때다. 저기 멀리 보이는 우뚝 솟은 건물은 합정역 메세나 폴리스인데,  연예인들이 많이 산단다. 영화관도 있고 식당도, 쇼핑할 곳도 있어서 살살 걸어가서 누리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아스라하다. 사실 마음으로도 뭔가 가닿을 수 없는 아스라한 곳이다.


 


남편이 먼저 와서 계약을 하고 집을 보러 왔을 때, 참 심난했었다. 겨울 초입이라 거리는 물론 동네도 건물도 다 을씨년스러웠다. 나무 한 그루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았다. (가로수도 있었건만 겨울이라 나무로 보이질 않았었다) 이 동네 온지 벌써 3년 차.  이 동네는 유난히 폐지 모으러 다니시는 할머니들이 많다. 동네 구석구석 고물상도 여럿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면 웬만한 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우는 사자와 같이 박스를 찾아다니시는 할머니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사진의 전봇대 아래 쪽은 쓰레기 모으는 곳이기도 하고 할머님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현승이는 할머니들이 모여 계신 걸 보면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여러 생각이 든다며. 어느 날 그랬다. "엄마, 내가 여기 처음 이사오던 날은 좀 놀랬어. 몰랐지? 내가 이런 동네에 살아야 하다니. 아파트 아닌 곳에 산다는 것도 그렇고. 동네를 보고는 조금 놀랬어. 그런데 여기 이사와서 난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애. 특히 할머니들을 보면서 왜 저 할머니들은 늙어서 몸이 불편한데도 저렇게 폐지를 모으러 다니셔야 하나. 집에서 편안히 쉬셔야 할 때인데.... 이런 생각도 했고. 그런데 저 할머니들은 막상 모여서 디게 재밌게 지내시는 거야. 별로 속상해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쓰레기 옆에 모여서 밝게 지내셔. 그래서 내가 많은 걸 배웠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많은 현승이가 이 할머니들께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루는 학교갔다 오는 길에 바람에 날리는 스티로폼을 막 달려가서 주워다 드렸단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고 했다. 마침 쓰레기를 모으고 계신 할머니가 편마비로 몸이 불편하신 분이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와 안면을 트고 지날 때마다 인사드린다고 한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손에 고구마, 뻥튀기, 과자 등을 쥐고 들어오는데 할머니가 주셨다고 한다. 어슬렁거리는 동네 고양이들도 사랑한다. 주차장 아래 있는 고양이들에 티고, 에스엠, 갤로퍼 등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가끔 먹이도 갖다준다. 

현승이만 동네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도 좋아하고 심지어! 차도녀 채윤이도 며칠 전에는 이런다. "엄마, YG 앞에 길 있잖아. 내가 그 길 좋아하는 거 알아? 이상하게 요즘은 그 길을 걷는 게 좋아. YG 때문이 아니라 쫌 조용하잖아. 뭔가 좋아. 그래서 합정역에서 일부러 마을버스 안 타고 걸어오고 교회갈 때도 걸어 가. 걷다보면 이상하게 생각이 정리가 돼. 아, 그냥 이런 저런 생각말야. 그래서 심지어 CU가 보이며 아쉬워. 걷는 게 끝나는 거니까. 이 동네가 처음엔 싫었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애"

 

 

옥상에서 빨래를 걷고나면 한참을 이쪽 저쪽 바라보며, 길을 내려다보며 서 있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이다. 한강이 살짝 보인다. 일련의 일들로 개신교 목회자들의 충격적인 민낯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요즘. 무기력의 나락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미없는 자조섞인 넋두리로 자주 내뱉는다. 하나님 나라가 너무 아스라하다. 긍휼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내 주의 은혜의 강물은 어느 곳에 흐리기는 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어제는 그 무기력이 더 심했는데 그나마 빨래해서 널고 걷으며 나와 아이들이 이 동네를 좋아하고 있구나 싶어 실낱같은 의미 같은 게 느껴졌다. 장을 봐서 4층 까지 들고 올라올 때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데, 한 층만 올라가면 햇볕과 바람 가득한 옥상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4층 사는 위안이기도 하다. 손에 닿는 것들에서 그나마의 살아가는 희망과 의미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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