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에 바람풍선 가득 채우고
, 두 번째 손가락을 입술 아래쪽에 댑니다. 고개를 살짝 틀어주고, 콧김 반, 소리 반 섞어서 ~, ~해요. 대화할 때는 주어자리에 1인칭 대명사 또는 보다는 선영이는요~처럼 자기 이름을 넣어 유아적으로 말하기. 남친의 표정이 안 좋거나 갈등조짐이 보이면 역시 콧김과 소리를 반반씩 잘 섞어 하이톤으로 ~뽜앙하고 어깨부분을 살짝 흔들며 들이밀기. 이러면 될까요? 애교 있는 여자 되는 것 말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애교부리는 법을 검색했더니 비법은 정말 많습니다. 콧소리나 귀요미 말투가 선천적으로 안 되는 사람이라면 감질 나는 스킨십으로 찔러보기 등의 버전도 있답니다. 지나친 콧소리나 눈웃음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조언들도 있고요. 그러면, 남편에게 무슨 여자가 이렇게 애교가 없어라는 소리를 주기적으로 듣는, 15년 차 아줌마인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 안 해봐도 남친 아닌 남편의 표정이 상상이 되네요. 이걸 애교로 받아줄 리 만무 합니다. 좋게 봐줘야 이 여자 또 몸 개그한다정도겠죠.


여자의 매력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애교입니다. 내 주변에 애교 있는 여자가 누구더라?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요. 내 또래 중년 아줌마 중에서는 물론이고, 젊은 제자들 중에도 내로라 할 애교여성이 없어요. 유유상종이라고, 제가 뻣뻣한 여자라서 그런 걸까요? 남친들이 기대하는 애교가 단지 콧소리와 귀여운 몸짓은 아닐 겁니다. 남성인 자신에게는 없는 어떤 것, 동성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멋대가리 없는 분위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것이 여친에게는 있다고 기대하는 거죠. (Carl Jung)은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러브의 환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남성의 내면에는 여성성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남성성이 내재되어 있답니다. 각자의 내면에 있는 이상화된 여성성/남성성이 실제 이성에게 강하게 투사될 때 콩깍지가 끼는 것이죠.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대상이 아닌 자기 영혼 속에 있는 남신과 여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문에 첫눈에 반한 어떤 여성(남성)도 그 빛나고 아름답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쥴리엣 같은 낭만적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수많은 왕자 공주 이야기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급 마무리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 내면에 그려놓은 이상적 여인상 또는 남성상이 투사되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없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짝이라 믿는 사람을 만나곤 하지요. 중요한 것은 투사는 투사일 뿐 내가 그려놓았던 구원의 여인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피천득 님의 오래 된 수필을 하나 들어보시겠습니까? 
 
여기 나의 한 女像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중략)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혹하게 하지 않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옷은 늘 단정히 입고 외투를 어깨에 걸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나 가난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이 수필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살아옵니다. 맑은 눈 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안개가 어리는 건? 싱싱하거나 명랑할 수는 있겠는데 여기에 애련과 애수를 어떻게 담지?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몇 분이나 단정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지...... 구원의 여인상 선발전에 참가도 못하고 탈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문제는 나만 그런 줄 알았던 거지요. 남자들이 선망하는 구원의 여인상이 (나 말고)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구요. 구원의 여인상까지는 아니어도 남자들이 녹는다는 애교기능은 여자라면 다들 기본 장착으로 갖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여자 없습디다. 위의 수필 마지막 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 영혼의 존엄성, 진리와 미, 사랑과 기도, 이런 것들을 얻으려고 안타깝게 애쓰는 여성입니다.” 그렇죠. 그 여인은 신의 존재였던 거예요. 융이 말하는 남자 가슴 속 여신입니다. 문제는 남성들의 기대에 찬 눈에 익숙해진 여성들 또한 그 여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우하곤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는데. 나는 애교도 없는데다 그렇다고 우아한 여성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자기주장이 강한 쎈 여자야. 이러니 내가 남친이 없는 거지. 이런 여잘 어떤 남자가 좋아해 주겠어.’ 있지도 않은 구원의 여신을 믿으며 이렇게 자기비하라는 은장도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단언컨대 그런 여자 없습니다. 또 단언컨대 애교녀 되게 위해서 한 옥타브 올린 오빠앙~’을 아무리 연습해도 실전에서 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없는 그런 여자 되려하지 말고 바로 나, 은주, 선영, 수진, 영애, 정혜로 살아요. 물론, 그렇게 살려는 노력은 안 나오는 오빠소리 내는 것보다, 수천 배 어려운 일이고 평생이 걸리는 일일 겁니다. 그러나 나와, 남을 온전히 사랑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QTzine 7월호>_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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