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세 권의 책을 끝냈다. 연말부터 치면 다섯 권이다. 전에 없던 속도이다. 워낙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짧은 데다 엄마라는 직업이 그렇다. 책 한 단락 읽으면 '엄마, 이리 와봐.' 그리로 가서 민원 해결을 하다보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다시 몇 줄 읽으면 '엄마, 배고파.' 심지어 '엄마, 나 똥 싸도 돼?' 야!!!!!!! 이번 겨울방학을 하고 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밥도 심지어 저희끼리 챙겨 먹기도 하고. 엄마직이 한직이 됐다. 환경 탓도 있고 전에 없이 집중력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하면 불안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잘 읽을 수 있는 때는 불안이 더 심하다. 결혼 전에 우리 엄마는 책을 미워했다. 나이 먹고도 결혼을 못(안)하는 이유가 책에 있다고 생각해서 '여자가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서 뭐하냐. 너 배울만큼 배웠다. 똑똑해지면 시집 가기 더 어렵다.' 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 탓인지 책 읽는 즐거움은 늘 어느 정도의 죄책감과 함께 온다. 바빠서 책 한 줄 못 읽는 ('인간의 얼굴을 한 지식'이라 불리는)남편에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나의 삶, 이렇게 잉여로와도 되는 걸까? 불편하다.

 

요 며칠 꿈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꿈 자체보다 저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질투 비슷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속에서부터 활활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것이 익숙하고도 낯선 감정이었다. 얄팍해서 그렇지 지적인 욕구는 늘 넘실댔고 나름대로 늘 무엇이든 배우고 때로 익히며 불역낙호아!의 삶을 살아왔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공부할 걸!  놀다 먹다 하는 공부 말고 먹지도 놀지도 말고 잠도 자지말고 '죽도록' 공부해봤어야 하는데. 이 생각을 줄줄줄 따라 내려가보면 어디에 가 닿는지도 안다. 최근에 꾸는 꿈들이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다. 

 

아무튼 독서 진도를 막 빼면서 '너무 읽는 거 아냐? 이렇게 읽어서 뭐 할라꼬?' 와 '미치도록 읽고 싶다'의 두 목소리가 충돌하면서 조금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런가? 방학이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아이들이 놀린다. '엄마, 폐인 같아. 소파에서 좀 일어나. 책 읽다가 어느 새 보면 졸고 있고, 편하게 자라고 하면 아냐 아냐 하면서 일어나서 또 책 읽고. 책 읽나? 하면 어느 새 2048 게임 하고 있고. 그 츄리닝 좀 입지 마. 낡고 웃기고 폐인 같아.' 피아노 연습을 하던 채윤이가 '엄마의 요즘' 이라며 짧은 곡을 지어냈다. 인정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책을 붙들고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 실은 더욱 나 자신이 되어 살고 싶다는 그 바램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 자신이 되어 살기' 폐인. 이만하면 충분히 나 자신이 되어 살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리 될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니고

<산 악녀, 엄마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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