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전에서 강의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인사할 틈도 없이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 밤 11시.

새벽기도 설교 맡은 전날이라 부담이 있는 남편은 '택시 타고 들어와'라고 했다.

바부팅이.

내가 태우러 나갈게. 이러면,

아닙니다. 서방님. 설교준비 하셔야죠. 소녀 택시를 이용하겠사옵나이다. 이러고,

미리 준비하고 나가면 돼.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 이러면,

아니라니까. 걱정말고 설교 준비하고 있어.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러고,

아.... 진짜. 이 사람 내가 나간다니까. 할 수 없군. 허허허.

이럴 수도 있지않나?

 

암튼, 택시로 들어오려 했다.

올라오는 기차 안, 남편이 그제야 역으로 나오겠다고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와서 왜?)

뒤늦은 훈훈한 대화가 오간다.

여보, 11시 도착이지? 내가 나갈게. 도착하면 연락해. 이따 봐.

아니야, 당신 설교 준비해. 나오지 마. 택시 타고 들어갈게.

 

이유는.

'아드님이 택시가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이 심하셔'

(라며 아래의 스티커 추가. 울면 겨자 먹으며 운전하는 아빠의 심정을 잘 담아낸 스티커)

흥4

아빠랑 정말 비슷한데 감정을 느끼고 읽어내는 이 지점에서 살짝 다른 아들.

이런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 식사 준비한 것이 없어서 들어오는 길 씨리얼 한 통 사가지고 왔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고 꿈만 꾸며 뒹굴고 있었는데,

꿈결에 남편은 새벽기도 갔다 오고, 

채윤이 일어나 씻고,

엄마,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채윤이 내가 태워줄게. 그냥 자.

현승이 일어나서, 엄마 언제 일어나?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나 먹고 준비하고 갈게. 일어나지 마.

남편도 어쩌구 저쩌구하고 사라졌다.

 

평소 그닥 충실한 엄마나 아내도 못 되면서

아침에 식구들 나가는데 얼굴 보지 않으면 짠하고 미안하다.

아침 식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늦게 일어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빈 우유팩과 씨리얼 부스러기를 한참 쳐다봤다.

미안하기보단 고맙다.

꼼수 모르는 바부팅이 남편이 울며 겨자 먹으며 결국 태우러 나와준 것이 고맙고,

아침에 혼자 챙겨 나간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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