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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도 카톡도 끊은지 몇 달이 지났다.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것이 싫어서, 귀찮아서, 원치 않는 단톡에 불려들어가는 것이 귀찮아서 등 이유를 대자면 얼마든지 많다. '정말로 탈퇴하시겠습니까' 바짓가랭이 잡는 보이지 않는 손에 거침없이 '예!' 버튼을 누르던 순간 이후로 마음에서 한 문장이 슬라이드쇼를 하고 있다. '그것이 알기 싫다' SNS의 순기능을 참 좋아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크고 작은, 가끔은 내밀다할 수도 있는 정보를 슬쩍슬쩍 챙기게 되는 것이 내겐 참 불편했다. 당사자가 페친, 카친 보라고 내놓은 것임에도, 나는 자주 훔쳐본 느낌으로 뒤통수가 뜨끔거렸고 껄적지근했다. 손까지 잡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몸과 몸을 1m 이내로 가까이 하고, 눈을 맞추고 들어야 할 정보가 많았다. 그런 정보를 소위 눈팅으로 마구 수집하게 되는 시스템이 (촌스러운) 내겐 매우 매우 불편했다는 것을 탈퇴 이후 더 또렷하게 느끼고 있다. 탈퇴 이후로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 만나고, 한 번을 만나더라도 마음은 물론 반드시 몸을 움직여서 만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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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들어와 블로그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오프에서 만날 때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읽는 사람은 그냥 읽으면 되는데 쓰시는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내밀한 얘기를 하실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저라면 그런 얘길 절대 꺼내놓을 것 같아요. 정말 용기가 있으시구나 싶어요' 사실 쓰는 나도 괜찮지 않은 것이 아니다. 블로그의 모든 글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가 있다면 바로 '오픈'에 대한 염려 한 조각, 두려움 한 스푼이다. 처음 블로그를 할 때는 천진난만 했다. 블친이라 해야 지인 뿐인데다 생겨 먹은 게 뭘 숨기고 그럴 수 없는 종족이라 있는 그대로 쓰고 댓글을 받고 다시 댓글을 받아치곤 하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대략 지지해주는 블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아픔, 약점을 써내는 자체가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기도 심지어 결과적으로 치유의 여정이 되기도 하였다. 페북을 나오면서 맴돌던 '그것이 알기 싫다'의 '그것'의 칼끝을 내게로 돌려놓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 물론 블로그는 읽고 싶은 사람이 찾아들어와 읽어야 하는 거니까 '알기 싫으면 오지마'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고 글을 쓰지 않을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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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에 대한 두려움은 평생 온전히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의 구더기' 때문에 '글쓰는 장담그기'를 포기할 나도 아니다.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일상과 내면의 연약함에 대해서 (어쩌면) 평생 쓰고 또 쓸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신앙의 컬러도 비슷하고(처음 만났을 때는 사귀다 헤어짐을 결심할 만큼 달랐었다) 정치적인 입장은 완전 똑같고, 좋아하는 저자도 대략 비슷하다. 각자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하도 서로에게 많이 주절거려서 피차에 무척 지겨워하기는 하지만 삶의 지향점은 거의 같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지향점이 만나는 곳, 그곳엔 늘 그 흔해 빠지고 닳고 닳아버린 말, '공동체'가 있다. 닳고 닳아버린 그 공동체 말고 '진짜 공동체'라고 쓰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싸구려가 되는 것 같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암튼 우리 부부는 '진짜 울트라 캡숑 진실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공동체'를 여전히 꿈꾸며 애타게 목말라 한다. 무엇보다 우린 그 맛.을.봤.다. 그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열받고 빡치고 좋고 배신감에 불타다 열정이 휩싸이는 공동체의 맛을 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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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남편이 맡은 교구의 권찰모임을 했다. 20대 청년교구에서 구역장(어른들, 말하자면 장년)을 돕는 청년 리더들이다. 오랜만의 모임이라 하루 전부터 정성들여 멸치국물을 내며 식사준비를 했다. 식사래야 떡볶이 같은 것들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마약커피도 많이 타서 얼려 놓았다. 아, 마약커피. 몇 년 전 여름에는 주일마다 마약커피 70잔을 타곤 했었다. 먹을 것에 관한 기억은 함께 먹은 사람과의 추억과 맞물린다. 마약커피며 떡볶이,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며 만났던 그때 그 목자들 생각이 났다. 마침 한솔이 4주기여서 함께 했던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났다. 돌이켜보면 공동체에 목숨 건 남편과 남편에게 목숨 건 내가 꽤나 열정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열정을 쏟으면 소진할 것 같지만 진짜 열정은 새로운 힘을 생성해내기도 한다. 소진하며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삶이 살아 있는 인간다운 삶일 것이다. 쌓아놓은 설거지감을 하나하나 소리 안나게 닦으면서 공동체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였다. 싱크대의 물소리에 따라서 거실의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였다. 권찰들에게 '공동체'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때로 물을  끄고 집중하여 들었다. 말에 담긴 경험을 일일이 공유하는 나로서는 울컥해지기도 했다. 청년이 2000명이 되는 교회라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인데.... 모두 괜찮은 척하지만 실은 모두 갈망하는 것이 바로 그 공동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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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여정 1단계 4주 과정을 마쳤고 내일부터 2단계 4주를 시작한다. 1단계 마지막 날에 마치고 서로 인사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 헤어지기에는 아깝고 소중한 인연들이다. 첫 주에 만났을 때는 가까이 앉아 있으나 사람 사이에 장막이 쳐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마지막 날 헤어질 때는 오래된 마음 맞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4주 내내 속얘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한 목사님 부부가 참석하셨는데 전혀 모르는 분이기도, 어쩌면 아는 분들이기도 했다. 포털에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검색하면 내 블로그 앞뒤에 뜨는 교회 홈페이지가 하나 있다. '도토리교회: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뜬다. 블로그 유입경로를 따라 포털로 다시 나가서 자주 봤던 교회이다. 바로 그 교회 목사님 부부셨다. 요즘 개척교회 100개가 문을 열면 3년 내에 그 중 95개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개척해서 살아남는 교회는 대한민국 5%인데 바로 그 5%의 목사님이었다. 목사님 부부와의 만남이 여러 모로 좋았다. 그냥 좋은 분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가르칠 태세가 된 분들이 보통의 목사님들 아닌가. 낯선 곳에 기꺼이 배우러 오셨으니 좋은 목사님이고, 딱 봐도 부부간에 막혀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강의 중 자주 목격된 두 분의 달달한 눈빛 교환은 이번 세미나의 명물이었다. ^^ 내가 그 교회에 갔다면 이 목사님 부부를 뵌 후에 '다음 주에 또 가야지' 마음 먹을 것 같다. 5%의 개척교회로 남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공동체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시작하는 것이고 가장 멀리 있는 사람까지 '더 큰 나'로 포용하는 끝없는 확장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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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포기할 수 없다.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내 영혼의 지향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만나 매번 눈물 흘리며 나눔하는 곳이 아님을 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열린 마음의 청년들을 데리고 상담하는 곳도 아니다. 앞 다투어 자기 주머니 털어서 밥값을 내는 곳도 아니고, 무슨 얘길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곳은 더더욱 아니다. 늘 무슨 일이든 가르치려드는 꼰대같은 어른이 있고, 오직 나만 봐달라며 스포트라이트 받지 못할 때는 삐져 있는 자매가 있고, 어떻게든 자기 것 내놓지 않으려고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이 있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며 웬만하며 싸우러 달려드는 사람이 있고, 깨알같은 일에 마음이 상해서 잠수를 타는 사람도 있는 곳. 사랑보다는 사랑을 흉내낸 과장된 인정과 칭찬을 달라고 목을 매는 사람이 대부분인 곳이 바로 그 공동체이다. 내가 가는 공동체에 이런 부류의 인간이 없는 경우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인간인 내가 가 앉아 있는 곳이니까. 그래도 그곳은, 여기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다행히 내게 그 모든 어두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 어두움과 연약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결함, 거룩함, 한 없는 사랑 또한 내게 있다. 그것들이 숨길 수 없이 흘러나오는 곳이 공동체이다. 내게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또한 공동체이다. 조금 서먹한 권찰모임, 또 다시 낯선이와 낯선이로 만남을 시작할 에니어그램 여정. 오늘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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