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더, 더 무서운 놀이기구를 찾아 타다 '언젠가 꼭 번지점프를 해보겠다' 한다. 말만 들어도 심장이 얼어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다. 내 딸이다. (주여, 진정 이 아이를 제가 낳았단 말입니까?) 논다면 놀 줄 아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애를 써봐도 공감이 안 되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 중 제일은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것이다. 자기 돈 내고 왜 그런 체험으로 자신을 학대하는지,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 두 번째는 잔인 액션 영화, 또는 스릴러 영화 보기이다. 어제 딸내미가 보고 온 영화가 <매드맥스>이고, 그걸 보고 와서는 '영화 대박 대박!'을 외쳤지만 아빠하고 얘기해라, 나랑은 상관없는 영화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른데 하룻밤을 자고 나서 바로 오늘.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미 한 번 본 영화 <윈터슬립>을 남편과 함께 보기로 했다. '엄마 아빠 데이트 해. 우린 각자 알아서 연습하고 놀고 그럴게' 휴일에 아이들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영화 데이트를 하기로 하였다. 혼자 보고 너무 너무 좋았는데 마침 영화의 배경인 갑바도기아를 다녀온 남편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무려 3시간 20분의 영화가 어찌 잔잔하기만 한지 긴 수면, 동면을 부르는 영화이다. 상영관도 몇 개 되지 않아서 알아보다 어찌어찌 안암동 고대까지 넘어갔다. 그른데, 그른데! 흐엉,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영화 시간표 잘못 본 거다. 오늘 상영일정이 없댄다. 미안한 마음에 몇 가지 대안 중 남편이 제일 좋아할 영화를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선택했다. 물론 겉으론 꽤 땡기는 척 연기도 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워메. <매드맥스> 보다가 매드 신실 될 뻔. 칠렐레팔렐레 영화 시간 하나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헐랭죄값은 충분히 받았다. 내 돈 내고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 꽉 잡은 남편 손의 손바닥에 내 손톱 심을 뻔. 영화 내내 숨 돌릴 틈도 안 주고 싸우는 걸 본다는 건, 두 시간 넘게 바이킹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난 그렇다.  <윈터슬립>을 기대했던 하루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영화가 안 좋단 얘긴 아니다. 아빠와 딸이 열광하는 이유를 대충 알 것은 같다. 공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대역죄를 짓지 않는 한 다시는 이런 영화 보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의 자막을 보면서는 벌렁이는 심장보다 더 깊은 곳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희망이 없는 시절을 사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러고 보면 참 고질병이다. 싸움과 갈등,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병 말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게나 부담스러운 것이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희망 없는 바로 그곳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에 아프도록 공감하기 때문에 쫄깃했던 심장 아래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던 것이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의 땅, '녹색의 땅'을 찾아가는 여인들에게 미친(미치지 않은) 맥스가 말한다. '희망을 품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허튼 희망'과 '진정한 희망'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롭고 용감한 여인들이 방향을 돌려 분노의 도로를 되짚어 간다. 아, 멋진 언니들! 

 

멋지지 않은 언니가 없다. 퓨리오사 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만삭의 스플랜드, 오토바이 할머니까지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주체적이고 멋지다. 흰드레스와 드러낸 몸매가 그렇게 상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흔한 성적 대상으로의 여성이 아니라 여자사람만의 주체적 여성성을 (영화에서) 본 적이 없어서 차라이 낯설었다. 싸움과 싸움의 장면 사이 여성들의 활약을 복기해보면 아, 이 영화 너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 장면은 휘발되고 여자들의 활약만 또렷해지네. 아흣) 흰드레스를 입고 총알을 세는 여인, 장총을 쏘는 할머니, 임모탄에 빠진 미친 워보이를 구원해내는 여인, 심지어 마지막에 저 하나 살겠다고 항복하는 여인조차도 낯설도록 멋졌다. 아, 그리고 퓨리오사. 이 언니의 멋지심에 관해선 '할 말 엄습'이다. 영활 두 눈 뜨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나 따위가 뭐 드릴 말씀이 있겠는가. 포스터에 보니까 '희망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 남는다' 한다. 남자들은 확실히 미친 세상과 함께 (아니 미친 세상보다 더) 빨리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영화 속 세상의 종말에도 그렇고 지금도 안 그렇다 할 수 없다. 역시 양육강식의 세상을 구원은 우리 여성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좀 강해져야 할 텐데 말이다. 놀이기구는 무섭고, 액션영화는 못 보겠으니. 그것 참. (언니들, 쵝오였구요. 제가 언제 또 이런 영화 볼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살아 남은 인류와 신인류를 대지의 어머니로 잘 품어 다스려 주시구요. 그곳에 희망없는 그곳에 다시금 녹색 세상을 일궈 주세요.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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