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탁하고.... 부탁하고

 

우리 엄마가 처음 고관절 골절을 수술받으셨을 때, 엄마는 물론 엄마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당황했었다. 폭풍 같은 나날은 엄마를 김천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으로 일단 끝이 났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한 켠에 밀어뒀던 슬픔이 밀려와 다시 조용한 폭풍의 나날이었다. 그때 현승이가 만들어낸 수수께끼이고 정답은 '인간'이다. '엄마, 내가 수수께끼 낼게. 맞혀봐. 부탁하고, 하고, 해주고, 부탁하는 게 뭐게?' 아기 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엄마에게 부.탁.해야 하고, 자라서 청소년이 되면 혼자 지하철도 탈 수 있고(당시 누나처럼)으니 하.고, 그러다 엄마가 되면 아이도 돌봐야 하고 늙은 할머니도 돌봐야 하니까 해.주.고, 할머니가 되면 아기처럼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져 부.탁.해야 한다.

新 스핑크스의 퀴즈라며 찬사를 보냈었는데 과연 인간의 삶을 꿰뚫는 진리의 수수께끼이다. 매년 동생네 휴가 주간이 되면 엄마가 집에 와 계시는 '몰아서 딸 노릇 주간'이 온다. 올해에도 가장 더운 7월 말을 끼고 효도주간이 왔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노쇠해가는 엄마는 이번에 보니 영락없는 신생아이다. 삼시세끼 식사하시는 것이 일상의 전부이고, 그 사이에는 틈틈이 신생아처럼 주무신다. 아침 드리고, 설거지하고, 점심 꺼리 대충 준비해 놓고 앉아 있으면 잠시 휴식. 신생아 같은 엄마가 쌕쌕 주무신다. 책 몇 줄 읽고 있으면 탁, 차박, 탁, 차박 잠에서 깬 신생아가 걸어 나오는 소리이다. 스핑크스 퀴즈식으로 말하면 세 발로 걷는 존재이다.

아기가 깨어났다.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이 끝났다. 옆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옛날 얘기 지금 얘기 하시면 몇 분 안 되어 책을 덮어야 한다. 영락없이 아기 키우는 느낌이다.

 

* 느낌으로 살고

 

음악치료 강의 할 때 노인 음악치료 부분에서 '노인들은 느낌으로 산다'고 설명하곤 했다. 사고보다는 느낌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 엄마는 노인이기 전에도 느낌으로 사는 사람이라 힘들었는데 노인이 되니 정말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시는구나!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느낌은? 슬픈데 덤덤하고 거참 이상했다.

골다공증은 엄마의 지병인데 홍화씨 끓인 물이 특효약인 줄 알고 사신다. 물은 늘 홍화씨 물만 드신다. 볶은 홍화씨는 흐릿하다 하셔서 집에서 쎄게 볶아서 찐하게 끓여야 한다. 올케가 고생이 많다. 혹 홍화씨 물이 떨어져 드시지 못하면 밤새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신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느끼신다. 우리 집에 오시는 어간에 홍화씨 물이 떨어진 것이다. 엄마 오시던 날 시장에 가서 홍화씨를 사다가 프라이팬에 볶는데 우와, 홍화씨 볶다가 내가 불에 타는 줄 알았다. 게다가 커피 볶을 때 팝핑이 일어나듯 홍화씨도 똑같은 짓을 하는데.... 탁탁 튀어나온 놈들이 팔에 떨어져 바로 화상이었다. 그리고는 주전자에 넣어 끓이니 펄펄 끓는 날씨와 함께 아주 그냥 가관이었다. 열폭하지 않을 수 없는 시츄에이션 아닌가. 엄마를 설득(이라고 쓰고 윽박지름이라고 읽는다)했다. '엄마, 홍화씨 물은 약이 아니야. 그거 하루 안 먹는다고 아파서 잠은 못 자는 건 엄마 느낌이라규!!!!' '니가 몰라서 그려. 그짓말 같이 아픈디 워쪄. 니가 몰라서 그려'

느낌으로 사는 노인들은 설득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느낌을 그대로 믿어줘야 한다고. 그렇게 내 입으로 가르쳤었지. 다음에 음악치료 강의할 일이 있으면 꼭 첨언하겠다. 맞는데, 느낌을 그대로 믿어줘야 하는 건 맞는데 열폭주의다!!!!! 

 

* 느끼지 못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밀착 마크하면서 보니 그야말로 한 해 한 해 다르다. 가만두어도 아이가 스스로 옹알이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기고 걷는 것처럼 노인은 가만 두어도 기능을 조금씩 잃어간다. 웬만한 감각 없는 젊은이보다 고급 유머를 구사하며 웃긴 남매의 하이 개그를 이해하고 받아칠 수 있는 엄마이다. 그런데 둔해졌다. 모든 감각이 둔해졌다. 삼복더위에 끼니마다 다른 반찬(이라기보단 요리)를 만들어 내는 딸을 보면서 덤덤하다.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애가 몸이 약혀서' 엄마가 나를 설명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작년만 해도 '아침이 먹었든 거 먹으믄 되는디 왜 또 뭘 혀? 허지마. 더운디....' 하셨었다. 그렇게 아까운 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하고 간식을 챙겨도 덤 to the 덤, 무덤덤이다.

'엄마, 나 홍화씨 볶다가 여기 디었어. 엄마 나 여기 땀난 거 봐. 나 계속 두 시간 서 있었어...' 아무리 강한 자극을 드려도 '그려~어' 덤 to the덤.... ㅠㅠㅠㅠ

태어나 보니 엄마가 마흔다섯 중늙은이었고 철들고 보니 엄마가 노인이었다. 그래서 평생 엄마의 '늙음' 이 두려웠고 늙음 다음에 올 죽음을 미리 상상하고 울었다. 최근 몇 년은 늙어 스러지는 엄마의 몸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그래서인지 둔해진 엄마의 감각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도 같이 둔해지는 것인지 머리가 뿌예지고 가슴이 휑할 뿐.   

 

* 부르다가 죽을 노래

 

성경 보고 기도하는 일이 일상이 엄마가 도통 성경을 펼쳐 들지 않는다.

- 엄마, 왜 성경 안 읽어?

- 얼라, 나 눈이 안 벼. 눈이 안 벼서 성경 못 본 지 한참 되얐어. 인자 갈 때가 됐잖여

(이 말에 휑하게 비어버린 줄 알았던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다.)

- 그러면 안과에 가봐야지.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성경을 안 보고 어떻게 살아?

- 얼라, 인자 갈 날이 가차운(가까운) 사람이여. 몸이 여기저기 다 그르케 되는 거여

- 그럼, 매일 예배는 어떻게 드렸어?

- 외고 있는 성경 또 외고 또 외고 그러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찬송도 내가 외는 게 많잖여. 예수 소유하여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거지) 되네....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엄마의 눈이 안타까웠고 돌이킬 수 없는, 속수무책의 엄마 몸이 슬펐지만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시력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받아들이는 엄마가 참 예뻐 보였다. 현승이의 수수께끼로 돌아가자면 엄마는 다시 아기로 돌아갔다. 늘 돌봄이 필요한 아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의존, 전적인 의존'이다. 버팅기지 않는 아이는 안아주기도 편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쉽다. 늙음이 엄마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도 대기표를 받은 노인이다. 말랑하고 착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젊은 날 삶이 오늘 나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처럼 지금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총체적인 결과물로 노년의 삶을 그려낼 것이다. 스러지는 몸과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착한 노인의 미덕은 하루아침에 일궈낼 수 없는 것.

 

영화 <은교>에서 () 소설가 이 적요가 하는 말이다.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 적요는 이미 젊음을 질투하며 늙음을 벌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러우면 지는 거!) 밥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처절한 나날을 살며 노년을 상으로 여길 수 있겠냐마는. 그런 자신의 일그러진 몸조차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떠난 천상병 시인은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여러 감각이 기능을 상실하고 굳어져 가지만 마음만은 말랑한 우리 엄마는 노래한다. 천상병 시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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