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SS는 우리 부부를 이르는 조금은 공적인 호칭이다. 오래 전 [복음과 상황] 편집장이시, 당시 우리 부부의 목자(? 그런게 있다)이기도 하셨던 (채윤이 발음으로) 쉐석 목짠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싸이클럽에서 댓글 농담 따먹기 놀이하다 지어진 이름인데 필명이 되었다. 그 필명으로 쓰던 글이 신혼일기였고 알콩달콩을 빙자한 좌충우돌이었으나 결국 이름에 남은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JP와 SS라고 불러주었을 때, 우린 그에게로 가서 사이좋은 부부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단지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일, 한몸 이루라는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지켜내자' 약속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약속 지키려 애쓰던 시간은 고맙게도 좋은 부부관계 이전에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보편 사랑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성장했고 충분히 큰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친구와 부부관계에 대해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다. '우씨, 가만히 두면 그대로 유지나 하고 있지. 가만히 두면 꼭 퇴보하고 문제가 생겨' 부부가 아니라도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손을 놓으면 어느 새 누런 잎이 생기고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 는 없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둘 다 배둘레햄이 두꺼워지고 마음의 내장지방도 꽤 쌓여서 덤덤하며 동시에 느긋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밧뜨, 결혼 20년을 바라보는 중견부부가 되었다고 햇빛과 물과 공기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생애 전환기를 맞아 다시금 보듬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줘야 하는 시절인지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기로 한 지리산 산행을 준비하는 것 때문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 자전거 타다 넘어져 다쳐 손가락이 아픈데 따뜻한 걱정을 안 해줘셔였던가. 흠, 분명 뭔가 더 심각한 일이 많았다! 늘 그렇듯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 그는 나무, 나는 바람.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흔들었다. 뭐) 둘이 합하면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생각보다 불편한 시간이 길었다. 또 늘 그렇듯 '흥, 결코 대화하지 않겠어! 일단 기도를 하지 말아야지. 기도하면 남편을 용서하게 되니까 최대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해' 마음의 길은 '삐뚤 길'로 달려간다. 각본상 그리 되면 애써 시도하는 대화는 늘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결렬되고 만다. '당신 꼭 ㅇㅇㅇ 같아' 치명적인 무기도 썼다. 피를 철철 흘리던 남편의 반격도 이어졌다. '꼭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하기가 ㅇㅇㅇ 같아' 헉! 중상. 위생병, 위생벼어~엉!!!! 여름 휴가며, 간만의 부부 피정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 번호의 애칭을 바꿨다. 애칭에서 이름으로 바꿨다.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그냥 김종필이다. 흥, 칫, 피!' 그런데 이게 답이었다. 사랑의 빛을 잃은 깜깜한 동굴 속에 비친 한 줄 가이드 라인이었다. 김종필을 그냥 김종필로 보고 나는 정신실이 되는 것. 기도하지 않겠다 결심해도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가 이기기도 한다. 기도 속에서, 성경말씀 속에서, 슬픔에 지쳐 잠든 꿈 속에서 '김종필을 김종필 되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린다. 더불어 그를 두고 세속적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버린 내 마음도 조금씩 보인다. 한몸 이룬 우리는 늘 또 분리되어 독립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이며 둘인 그 긴장을 살아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둘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묘미이다.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을 배우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차거운 분노로 냉랭했던 서너 주가 지나갔다. 둘이 대화했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았고, 기다렸고, 아파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 그 사이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 알아온 부부, 처음으로 만나는 부부,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 부부, 생각과 마음이 딱딱 맞는 부부. 각각의 만남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고 함께함으로 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마음으로 흘러 들었다. 휴대폰의 남편 이름을 새로 저장했다. 오글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다.  휴가 마지막 날 남편은 혼자 천안의 신대원에 다녀왔다. 3년 동안 행복하게 공부했던 도서관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그리고 구입한 책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책 제목으로 추정해본, 부부가 세트로 앓은 홍역에 대한 남편의 처방은 이것이다. '내 가장 중요한 소명이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아버지로 사는 일상 속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다.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플하게 지금 여기를 살겠다. 자, 이제 그런 의미로 2학기 구역성경 공부 본문인 요한계시록 연구에 매진!'

 

 

 

 

결혼학교 강의 준비로 다시 꺼내 읽는 래리크랩의 <결혼 건축가> 일부분이다. 주례사를 듣는 느낌으로 옮겨 적으며 고해성사를 마친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한사람의 다른 인격을 톡특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 즉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고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나님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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