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국어 선생님께 나는 마음의 빚이 있다. 처음으로 내 글을 알아봐주신 분이다. '연합고사'라는 시험으로 고입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웬만하면 다 통과하는 진학시험이었지만 괜히 압박감은 느껴야 했던. 아무튼 입시생이었다. 입시생인 중3에게 국어 선생님은 자꾸만 작문 숙제를 내주시고 그걸 점수에 반영하셨다. 첫 번째 주제는 '어머니'였다. 으아, 사춘기였던 내게 어머니는 언어로 형상화할 수 없는 원자폭탄이었다. 엄마에 대한 애증을 어떻게 글로 담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쓴 글로 뽑혔다. 국어 선생님께서 잘 쓴 글들은 읽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던 순간의 현기증을 잊지 못한다. 읽어주다니!!!!!!! 친구들에게 내가 엄마에 대해 쓴 글을 읽어주다니!!!!!!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제 글은 읽지 말아 주세요.' 흥분해서 말해놓고는 그 말이 더 쪽팔려서 견딜 수 없었다.


2015년 12월 7일 <일기 읽어주기>


선생님은 거의 매일 애들 일기를 읽어주신다. 나는 아직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기준이 뭔가 모르겠다. 대충은 약간 잘 쓰고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내 일기도 몇 번 읽어주신 적이 있는데 정말 쪽팔린다. 내가 확실히 진심있게 쓰는 일기와 대충 쓰는 일기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일기를 쓰고 나도 약간 잘 쓴 것 같고 왠지 읽어주실 것 같은 일기르 읽어주실 때도 있다. 그런데 가끔 일기 아래다가 선생님께 이 일기를 읽어주시지 안니셨으면 좋겠다고 쓸 때도 있다.


현승이 짧은 일기에 무한 공감한다. (이건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좋을텐데. 6학년 일기장을 모두 선생님께서 보관하고 계셔서 첨부할 수가 없다.) 현승이의 몇몇 일기 끝에는 '선생님, 이 일기는 친구들에게 읽어주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란 말이 붙어있다. ㅎㅎㅎ 그 말에는 더더욱 공감한다. 중3 때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들고 '선생님, 제 글은 읽지 말아 주세요' 해던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승이 일기의 표현처럼 '진심있게 쓰는 것'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읽어주는 게 싫었던 이유는 바로 현승 철학자님 표현대로 '진심있게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손 들고 그렇게 말했을 때 선생님은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는 선생님의 표정이 이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러면 이 녀석아 쓰질 말던가!'


현승이처럼 나는 내 '진심있는 일기'가 늘 버겁고 쪽팔린다. 책을 세 권이나 냈고, 강의도 하고 여전히 공적인 글도 쓰고 하는 주제에 진심있는 글을 쓰다니! 나는 늘 진심있지 않을 수 없는 내 글이 쪽팔린다. 현승인 '읽어주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전장치라도 할 수 있지. 나는 고장난 자가 안전장치로 진심있는 글을 써서 바로 블로그에 내거는 이상한 노출증에 시달리니 말이다. 중3 때 국어선생님을 엄청 좋아했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부임하신 남자 선생님이셨고, 수업시간엔 미국이 왜 우리 우방이 아닌지를 해방전후사를 훑어가며, 입술 양끝에 허연 거품이 끼도록 설명을 해주셨다. 고등학교 가서도 가끔 찾아갔고, 갈 때마다 밥도 사주시고 김지하, 김남주 시인의 시집을 사주셨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대학에 와서도 집으로 전화도 주시고 늘 챙겨주셨다. 선생님의 결혼 소식에 뭔지 모를 충격을 받아 그 다음부턴 연락을 못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 신문 해직교사 명단에서 선생님의 성함을 보았다.


선생님께 내 글에 주목하신 이유는 친구들과 다른 얘기를 썼다는 것이었다.  '만남' 이라는 주제를 주셨는데 나는 '나 자신과의 만남'에 대해 썼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평하셨다. 모두들 친구나 가족이나 선생님과 등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해 썼는데 신실이의 주제는 '자신과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점수를 많이 줬다. 그리고 마지막 주제는 중학교 3학년을 정리하며 쓰라고 하셨다. 중학생활의 기억은 내게 아버지의 죽음이었고, 그것이 학교생활로 가면 '전학'이었다. 나는 '부속품'이라는 제목으로 그 얘길 썼다. 아버지의 죽음, 전학은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때문에 나는 세상의 다른 면을 보았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중요한 부속품이 되었다는 식이었다. 그 글에 대한 선생님의 평 역시 '모두들 중학교 생활에 대한 얘기를 연합고사로 마무리 했는데 신실이의 주제는 조금 달랐다, 였다. 친구들 앞에 한 번도 내 글을 읽어주시진 않았다. 나중엔 아쉽기도 했었다. 안 그러려 해도 자꾸 진심있어지는 것도, 뭔가 다르고 싶어하는 것도 쪽팔린다. 쪽팔린다 쪽팔린다 하면서도 여전히 이러는 것도 쪽팔리다.  


현승이 일기가 선생님을 불러냈다.

선생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뭔가 빚을 졌다.

그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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