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괜찮아요, 아 정말 괜찮아요, 하는데 벌개진 얼굴, 떨리는 목소리가 다른 말을 한다.

괜찮지 않아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는데

그 사람을 피해 돌아서 가고 있다면, 그 사람 곁에 앉고자 하지 않는다면

몸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자꾸 가까이 가고 싶은 법이다.


'어디 암자에 들어가서 몇 달 동안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소파와 책과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겨울을 지냈다.

느느니 번뇌요, 느느니 자의식이다.


오늘 교회 주방봉사가 있었다,

무엇이든 순간에 몰입하는 편이라 열심히, 신나게 주방일을 했다.

그렇다, 신나게 했다.

종이 박스 또는 거대한 파란비닐에 들어 있던 어마무시한 식재료들이

두 시간 반만에 근대국과 고추장 불고기와 숙주나물과 달래 간장을 입은 두부가 되다니!

요리는 정말 엄청난 창작활동이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주방용 장화를 신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주방용 장화가 중요하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주방용 장화 하나가 내 속에서 끌어낸 식당 아줌마 본능이라니!

100인분 밥솥, 국솥을 닦는 일은 허리가 끊어질 듯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힘이 났다. 마법의 장화를 신었으니까.


집에 와선 잠시 쉴 새도 없이 장을 보러 코스트코에 다녀왔다.

주일 저녁에 식사 손님이 있는데 내일은 강의 하나와 어머니 칠순잔치,

주일에는 구역모임(나 구역장 하는 여자!)으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

장을 보고 와서는 바로 새우를 손질하고, 양념장을 끓여서 '간장 새우'를 만들었다.


저녁엔 수영을 다녀왔다. 쉬지 않고 자유형 40개를 돌았다.

아,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세월호 이후로 밥맛이 아니라 수영맛을 잃었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지난 2월 말 팽목에 다녀온 이후 세월호 2주기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야지 싶었다.

일단 잃었던 수영맛을 되찾고 힘을 내기로 했다.

3월부터 시작했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


어푸어푸, 수영을 하며 생각하니 오늘은 책을 한 줄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날이다.

오직 몸을 열심히 가동시켜 하루를 살았다.

그러고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자괴감이 크지 않다는 것에 방점.

앞으로 더욱 많은 날을 몸으로 때우려한다.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도구는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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