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려고.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괜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그런 결심을 했어."


꽃다운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툭 내뱉은 말입니다. 엄마로서는 깜짝 놀랄말이라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더니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밀린 잠을 자러 들어가더군요.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참 소중한 깨달음인데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냐고요.


여행 중에 중등부 **샘에게 톡이 왔답니다. **샘은 찬양팀에 함께 하던 청년 쌤인데 채윤이를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는 좋은 쌤이지요. 고등부가 된 지금도 주일마다 찾아가 만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용건없이 톡이 왔는데 그때 깨달음이 왔나봐요. **쌤은 가족 외에 처음으로 이유없이 나를 받아준 사람이라고 합니다. 꽃친 여행에서 친구들과 마음이 편안한 순간에 받은 톡이라 더 의미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감사하며 지내면 되는구나.....


사실 채윤이는 5학년 때 친구들과의 어려웠던 경험으로 관계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친구는 없는지, 자신을 두고 수근거리지는 않을지. 단지 그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조차 대물림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인 제가 내적여정, 심리 영성 공부로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관계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두려움. 꽃친을 시작하고도 내내 마음에 폭풍이 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자 꽃친들은 다들 단짝이 생겼는데 자신만 홀로라는 두려움, 꽃치너들이 모두 좋아서 두루두루 친하고 싶은데 막상 다가가지 못하는 수줍음, 어떤 말과 행동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초기에는 이 걱정을 들어주고, 괜찮다 괜찮다 해주는 일이 큰일이었습니다. '꽃친 일 년을 지내며 적어도 이 두려움에 맞설 힘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요.


저녁마다 솔직한 일기를 쓰고, 엄마에게 끊임없이 묻고 고백하며 자신의 감정과 정면돌파 하며 생각보다 빠르게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채윤이를 지켜보는 엄마 마음이란. 채윤이의 두려움에 곱하기 10, 채윤이의 외로움에 곱하기 100, 채윤이의 걱정에 곱하기 1000이었습니다만. 스스로 겪어내며 배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았습니다. 기도하면서요. 2박3일 여행을 마치고 마음의 긴장이 훨씬 더 많이 풀린 채윤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허튼 에너지 쓰지 않겠다'고 하니 할렐루야! 입니다. 마음의 힘이 생긴 것입니다. 혹여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견뎌낼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카렌 호나이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엔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내는데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같은 당위입니다. 어디 신경증 환자 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모두 정상적 성격발달과 성격장애 그 어디쯤에 있다고 역시 카렌 호나이가 말하고 있으니까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내게 대한 오해를 다 해명할 수는 없지, 이것을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라 아프게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입니다. 치유란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힘이기도 하지요. 채윤이게 그런 힘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있고, 무엇에 쫓기지 않는다는 전제, 가만히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다 꽃친이라는 안전한 공동체(이번 꽃친 모임에서 '공동체'라는 말이 마음에 떠올랐다는 고백도 하더군요.)가 이렇게 저렇게 마음의 쿠션을 대주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직은 미미한 힘이겠으나, 발견되었다는 것이 큰 의미입니다. 엄마도 다시 한 번 새겨야겠습니다. 좋아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고민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붙들고 마음의 에너지를 쓰지 않을 일입니다. 알고보면 이것이 자유입니다. 이 둘 사이를 분별해내는 것이 지혜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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