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김현승)
이사한 곳을 지나가면 뭔가 마음에 걸린다.
마치 무엇을 두고 온 것 같다.
수영장에 수영복을 두고 오듯
학교에 공책을 두고 오듯
이사한 곳에 마음을 두고 왔다.
명일동을 떠나 이곳 합정동으로 이사와 1년이 지난 3학년 말에 쓴 현승의 시이다. 암사동 올림픽도로 근처를 지나며 전에 살던 아파트 쪽을 바라보면서 '엄마, 난 여기를 지나가려면 마음에 뭐가 걸리고 찌릿해' 하더니 이 시를 써냈다. 두고 온 곳을 그리는 마음, 그 마음이 지나쳐 병이 되는 것을 나도 안다. 현승이는 시를 썼지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울며불면 엄마에게 쏟아부었다. '잘 자라고 있는 화초를 왜 옮겨 심었어! 옮겨 심은 곳이 영 맞질 않아서 잘 자라던 화초는 이제 시들어 죽어가고 있어. 옛날 친구들, 선생님들, 학교.... 다시 돌아가고 싶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서울로 전학와서 앓았던 향수병의 기억이다. 마음을 두고 와 내내 무엇이 걸려 있는 그 느낌을 현승이도 알고 현승이 엄마도 안다. 이곳에 이사온 지 벌써 5년 자. 합정 망원 죽돌이로 신나게 살면서도 현승인 여전히 그리워한다. 이젠 명일동이 아니라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몸에 붙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현승이를 느낄 때마다 내 마음이 심하게 울렁거리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옮겨 심은 화초' 신드롬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한 것 아닌가.
영화 <브루클린> 홍보문구에서 '향수병'에 낚인 것도 이런 경험 때문일 것이다. 이 나이에 '운명적 사랑, 새로운 사랑'에 끌리랴. <브루클린>은 사랑 얘기가 아니다. 에일리스가 예쁘고 영화가 잔잔해서 그렇지 에일리스에게 아일랜드는 '헬'아일랜드이다. 사랑도 일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노력하면 잘 될 수 있을 거란 희망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이 없는 '흙수저'라는 의미에서 '헬'아일랜드이다. 사무직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에일리스를 진심으로 아끼는 언니가 유일한 자원이다. 언니의 주선으로 새로운 땅 뉴욕 브루클린으로 떠난다. 꿈의 아메리카로. 난생 처음 타보는 미국행 배에서 멀미하며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은 흙수저로서, 하층민으로서, 노답 인생으로서 원초적 끝판이다. 누추한 긴장 속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새로운 땅의 향해. 너무 환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간다. 열리기 전까지는 벽일 뿐인 문, 어쩔 수 없이 그 문을 열어야 하는 운명들이 있다. 떠나온 곳에 수영복이든, 노트든, 마음이든 무엇을 두고 왔든지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다.
다음 이야기는 당연히 어리버리 뿌빠빠, 흙수저 아일랜드 여자의 부적응과 그리움의 나날이다. 언니의 편지를 붙들고 우는 장면, 신부님에게 '제가 왜 아일랜드를 떠나 왔을까요?' 묻는 장면, 크리스마스에 모인 아일랜드 출신 노숙자들이 고향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는 장면. 어쩌면 이렇게도 내 마음을 후벼파는지. 그런데 잠깐이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고, 댄스파티에서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이 그리움을 치유한다. 머리가 좋고 착한 에일리스는 실력과 성품까지 갖춘 뉴요커로 빠르게 변해간다. 그렇지. 그런 거지. 떠나오길 잘했지. 그때 고향에서 날아든 소식. 언니가 죽었고 엄마가 홀로 남았다.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두려워하는 남자친구 토니와 둘만의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한다. 그렇게 사랑의 서약을 남겨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언니가 없어서가 아니다. 에일리스의 위상이 달라졌다. 언니가 일하던 빈자리에 스카웃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을 갖췄고, 선글라스 낀 뉴요커로서 매력 철철 넘치는 여자가 되었다. 일도 사랑도 소망이 없었던 흙수저 에일리스가 진주 달린 수저가 되어 고향에 서게 된 것이다. 훈남에다 부자, 게다가 부모님은 시골로 이사할 예정이라 넓은 저택에 혼자 살아야 해서 결혼이 급한 짐과 사랑에 빠진다. 뉴욕에 있는 남친(아니고 남편, 에고 어쩌자고 혼인신고를 했나고)과는 다른 매력이다. 브루클린에서 온 편지가 쌓여가고 답장 한 줄을 못 쓰고 갈등하는 사이 이러다 짐과의 결혼이 진행될 것만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곳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떠오른다.
갈등해결, 또는 성장을 위해서는 악역이 필요한 법. 떠나기 전 일했던 베이커리의 못된 여주인이 크게 기여해준다. '너 짐과 결혼할 거야? 너가 미국에서 혼인신고 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기, 기억이 안 나는데요. 무슨 얘긴지' 악랄하고 비열한 베이커리 주인과 잠시 마주앉아 있더니 에일리스가 말한다 '아, 잊고 있었어요!' (그렇지? 너는 유부녀야. 흙수저 주제에 여기서 잘 될 수 없지. 넌 이제 끝장이야!) 잠시 여주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 미소 짓긴 일러요. 나쁜 아줌마야. 에일리스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라구. '여기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의 에일리스, 망설임 없이 다음 날 배를 예약하고 거침없이 떠난다. 손 흔들어주는 언니는 없고 처음 이 배를 탔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나 갑판 위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에일리스 멋지다. 뭔지 모르게 든든하고 멋지다. 이 배에는 또 다른 에일리스들이 있다. '브루클린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다면서요? 고향 같다면서요?'라고 묻는 흙수저 에일리스에게 진주를 단 에일리스가 대답한다. '그래요' 그리고는 멀미 대처 방법, 화장실 사용 노하우, 입국심사 시의 팁 등을 담담히 가르쳐준다.
죽음과 이별에 대한 유난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것, 새로운 환경에 대한 미리 좌절하고 긴장하는 현승이와 자주 이야기 한다. 명일동에서 이곳으로 와서 현승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좋은 친구들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 한강에서 노는 일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내 얘기도 들려준다. '왜 잘 자라고 있는 화초를 옮겨 심었냐며 울고불고했는데 그 화초 말라죽지 않았어, 그 때문에 큰 나무로 자라게 되어 여기 현승이 엄마가 되어 있단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나는 싫어.'이다. 그렇지. 그 누가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 그리움과 긴장을 살고 싶겠나. 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참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늘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생의 의미를 찾으며 산다는 것은 장소적 떠남 이전에 마음의 떠남, 사변적 떠남을 통한 순례자의 삶이라는 것을. 소망 없고 불행할 뿐인 곳에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머물러서는 참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성경의 아브라함도, 고기 잡던 베드로도 떠남으로 의미있는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그 전날 밤에 고기가 잘 잡혔다면, 떠날 수 있었을까? 오늘 일상의 빈 그물질이 우리를 떠남으로 이끈다. 빵집에서 일하는 에일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떠남은 끝나지 않는다.
늘 떠나야 한다.
회귀할 수 없다.
찬란한 빛을 마주하며 문을 열고 나왔으나
어느새 발걸음은 벽에 다다르고,
그 벽을 더듬어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진정한 집, 그 집에 도착할 때까지 늘 떠나야 한다.
떠난 자가 다시 탄 배는 지난 번 그 배라도 같은 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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