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어린이 성가대 지휘 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주일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곤 했다. 심지어 전날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청년부 주보를 만들고 저녁에 청년부 예배 드리고 귀가 시간은 밤 11시 이후. 현승이 서너 살 즈음엔 1부 성가대 지휘를 했는데 기저귀 가방 챙겨 두 아이 데리고 아침 7시에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에 대한 보상인지, 반대급부인지 한 동안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는 주일 오전을 보냈다. 강의가 있는 주일이 아니라면 바쁠 것 없는, 할 일 없는 안식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올해는 주일 아침이 다시 분주해졌다. 7시 전에 일어나 성경공부 교안을 점검을 하고 기타 메고 핸드드립 세트 들고 8시 넘으면 출근 한다. 구역모임이다. 나 구역장이다. 다들 한 믿음, 한 신념, 한 영빨 하시는 목회자 부인들의 구역모임이다.

 

내가 구역장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사모님들 중에 나는 바쁜 축에 드는 사람이었고, 주일에는 다른 교회 청년부 강의 가는 날이 많았으니까. 어쩌다 자원해서 구역장을 하게 되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마음의 움직임을 황폐함(desolation)/위안(consolation)으로 구별하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깨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황폐함의 상태는 그 자체로 합당할 수 있지만(불의를 보고 분노하거나, 개인적인 실패로 낙담하거나....) 그런 상태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삼가도록 권한다. 구역장을 하겠다고 거의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발설했을 때 내 마음은 황폐함이었다. 이냐시오 님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한 결정으로 엄청난 심적 후폭풍을 맞았다. 다행히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폭풍이 지나고 고요해지자 꿈이 말을 걸어왔다. 내 안에 계신 '사랑'이라 이름하는 그분이 꿈으로 톡을 보내오셨다고 하자. 교회 밖에서 강의하고 상담할 때 사모님들을 만나면 일단 손부터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는 이런 저런 그럴 듯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 대면서 '사모'로 만나는 만남을 피해왔다. 그렇다고 개인적 만남조차 피하지는 않았다. 사모 페르소나가 유연한 사모님들과는 나이 불문하고 마음 통하는 참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주중에 있는 구역모임에는 시간이 안 되어 나갈 수도 없었지만 일단 마음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100개는 있었고, 그 이유는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꿈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문제의 핵심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하고 싶었는 나의 높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내 말을 왜곡하고 내 진정성을 몰라주는 '그들'이 아니라 '나'의 진정성 그 자체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올해 한 번 두 번 구역모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조금씩 믿음이 있고, 조금씩 상처를 받았고, 조금씩 두려워 자기도 모르게 방어벽을 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끄러웠다. '나는 타교회 목사님 사모님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여자'라는 자의식으로 내 곁의 동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 여겼던 것이 많이 부끄럽다. 함께 구역모임을 하고, 주방봉사를 하고, 양파 까며 눈물을 흘리고, 지쳐 소진한 몸으로 마지막 국솥을 닦으며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 나도 사람, 당신도 사람! 우리는 다르지 않은 그러나 고유한 어떤 소중한 각각의 존재라는 것을. 

 

미안하다! 줄 수 있는 것은 커피와 음악 밖에 읎다! ^^ 매주일 구역모임에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고 찬양 한 곡을 위해 기타를 싸들고 간다. 초딩 몸매에 주렁주렁 달린 짐이 자연스럽지는 않아서 괜시리 민망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모임이 거듭되며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생긴다. '아, 커피향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네' 이런 반응 참 좋아한다. 좋은 내색은 못하고 콧구멍만 벌렁벌렁. 지난 주일 모임에서는 첫 찬양을 부른 후 '아, 나 이 찬양 좋아하는데' 이런 말로 시작해서 떠오르는 찬양이 한 곡 씩 나오고, 악보 검색해서 바로 단톡에 올리고. 한 곡이 두 곡 되고, 복음성가가 어린이 찬양되고, 어린이 찬양이 찬송가 되어 한 시간 내내 찬양을 했다. 구역 성경공부 패스. 즉석 찬양 집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내 또래 음악 좋아하는 교회 오빠 언니들 모아서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끝없이 찬양하는 그런 꿈 말이다. 그 꿈이 비슷하게 실현되었다. 한 가지 아쉽운 것이 있다면 기타를 김종필이 잡았어야 하는데 기타 반주가 느무 촌스러웠다는 것.

 

그렇게 급조된 찬양집회를 마치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 말씀 중 '신앙인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라 하신다. 르완다 내전의 대학살을 추모하는 어느 성당에 써 있다는 글귀를 읽어주셨다. '네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면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안다면,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허튼 우월감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존재임을 안다면. 우리가 서로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존재임을 안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 없다. 그걸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살을 부대껴야 하고, 아프고 두려운 속내를 드러내야 하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 너와 내가 동일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마음을 열고 몸을 부대끼며 소통할 때이다. 이번 주에도 주방봉사가 있다. 처음엔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던 일로 다가왔는데 어느 새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장화를 신고, 같은 앞치마를 하고 척척 일을 해내는 우.리.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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