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주 많은 일을 했다. 밤 10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고 종로 5가를 걷다 문득 깨달았다. 불금이구나! 인도를 걷는 사람 중에 제정상(채윤이적 표현. 제정신과 정상을 콜라보하여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반지성적 언어표현 말이다. )인 분이 거의 없었고, 동문회를 마쳤는지 인도에 동그랗게 서서 비틀비틀 교가를 불러대는 아저씨들을 보고 확신했다. 불금이야. 불금! 종로와 광화문, 신촌과 홍대를 지나는 동안 막히는 도로, 비틀거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확신은 광신이 되었다. 불금, 불금입니다. 제게도 화끈한 불금을 내려 주~우쒸옵소서! 같은 시간 10시 쯤, 용인에서 차로 출발한 남편이 서강대교를 지날 즈음 나는 합정동에서 하차했다. 도착 시간이 딱 맞아 골목에서 남편 차에 픽업당했다. 오빠, 달려! 이대로 달리자구! 나도 이 남자와 함께 불금을 보내고 싶...... 지만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들어온 남편은 빨리 자고 내일 새벽기도 나가야 하는 것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더 이상 이런 걸로 삐치진 않기로 했다. 남편도, 꼬치너 채윤이도, 정신줄을 놨다 잡았다 하는 사춘기 현승이도 잠든 밤. 사실 내가 바라던 불금이다. 나는 오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방식의 불금을 보낼 것이다.


그러자 나는 오늘 갑자기 풀타임 근무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금요일 밤에는 '앗싸, 내일 늦잠!' 하는 마음으로 자정을 넘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싸이 클럽에 밀린 글도 쓰고, 댓글 놀이도 하고, 좋은 글도 읽고..... 아, 컴퓨터 책상과 옷걸이 하나로 꽉 찼던, 하남 그 좁은 빌라의 벙커 같았던 방! 그것이 나의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아, 물론 잠탱이 남편은 토요일의 늦잠을 기대하며..... 이미 잠들어 있었다) 채윤이는 아기였고 우리 셋은 행복했고, 행복했던 어느 날 기쁨이라는 현승이가 생겼고, 우리 넷은 행복했다. 풀타임의 직장맘 생활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초기에는 우리 엄마가, 엄마의 허리가 무너져내린 후에는 (시)아버님께서 채윤이를 돌봐주셨기 때문이었고, 나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도 생소했던 시절, 풀타임 음악치료사로 일하던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니! 이게 가능하다니! 그 감동의 회사 식당을 떠올리다..... 나는 오늘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돈에 관한 개인신화적인 고찰을 하기에 이르른다.


이번 한 주는 조금 유난한 일주일이었다. 나는 오늘 이 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며칠을 돌아본다. 일단 어제 목요일에 구몬 선생님들에게 미취학 아동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은 있지만 이렇듯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받은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하고, 돌발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으니, 또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강의에 참고하라며 보내온 수업 동영상을 보다가는, 돕고 싶은 오지랖 에너지가 충천했다. 그리하여 몹시 힘들었지만 행복한 힘듦을 통해 강의를 준비했고, 아..... 쫌 (자랑인데) 강의를 잘한 것 같다. 마치고 오후에 담당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강하신 선생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전하시며 오히려 본인이 많이 배우고 감동 받았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나 뭐라나. (먼산) 중간에서 나를 소개한 친구에게도 또 전화가 왔다. "신실아, 너 오늘 히트였다며? 바로 전화 왔더라.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 시간을 너무 알차게 준비했는데 강사료가 적다고 너무 미안하대.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했어. 내 친구가 나한테 빚진 것이 있으니 괜찮다고. 너는 이런 일이 맞나봐. 그치? 호호호"


이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한 2년 쯤 전의 일이다. 대학 동창인 이 친구는 전공을 가장 잘 살린 친구 중 하나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딸 수 있는 어린이집 원장 자격이 난무하는 보육 생태계에서 전공자의 자부심으로 제대로 어린이집을 운영하여 성공했고, 정치력이 아니라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이집 연합회 회장을 했고, 나중엔 어린이집 평가인증(이라는 국가 차원의 인증 시스템)을 맡아 평가하는 엄청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이다. 가끔 대학 보육과에서 겸임교수 뽑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내게 연결시켜주고 싶어 했었다. 한 2년 전 쯤에는 정말 괜찮은 시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가 났는데 대학 위탁 운영이라서 더 메리트가 있었다. 이 친구가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고, 친구의 덕망 덕에 내가 오케이 하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는 그 바닥에선 치열한 자리, 쉽게 얻을 수 없는 왕좌였다. 그런 사정은 몰랐지만 일단 오케이를 했었다. 드디어 경제적 안정이란 걸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 나 혼자서 찾은 이 시대 교회의 답이라 여겼던 목회자의 자비량 목회, 남편에게 그 기회를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한 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밥이 다 된 그 자리에 셀프로 재를 뿌리고 도망쳐 나왔다. '저, 이거 못하겠어요' 하고 나와버린 것이다. 진짜, 아주 많이 부끄러웠다. 바보같은 나를 확인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다른 선택은 없었으나.... 진실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그 자리로 가야할 명확한 이유가 백 개인데 내키지 않는 이유 서너 개. 그 서너 개조차도 다 허접했다. 그 중 더욱 설득력 없는 이유는 이런 것. 오래 준비했던 에니어그램 2단계 강의를 론칭하는 날과 어린이집 원장이 되는 중요한 절차가 딱 맞물려 있었다. 수강 인원이 몇 명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폐강이 될 수도 있었던 그 2단계 첫 강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직원이 30여 명인 공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를 거절한 이유치고는 허접한 줄 안다. 당시 여기저기서 '미쳤다'는 논평은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이 얘긴 패쓰.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결정이 다된 상태에서 갑자기 뒤집어진 탓에 난처해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중간에 끼인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친구는 그 때문에 내가 (강사료도 적은 이) 강의를 수락한 줄 알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다. 내가 강의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고, 말하기 좋아하는 주제인가' 이에 부합하는가. 부합한다면 새로이 강의안을 만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도 감수할 수 있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강의로 얻어질 유익이 커도 (속으로 피를 흘릴지언정) 단칼에 거절하려고 한다. 헌데 소통, 그것도 유아들과의 소통이라니 내 전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감히)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관심 주제이다. 때문에 강의 준비에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강사료가 적은 줄도 알고 있었지만, 화상으로 영어수업하는 선생님들이라는 특수한 대상이라 다시 써먹을 곳도 없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과도 크게는 상관없다, 고 생각했는데 좋았다는 피드백에 급 기분이 업되었다. 내가 좋았고, 들은 사람이 좋았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나다움' 관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이 강의를 마친 날, 나는 이번 가을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 2단계, 심화과정을 모두 폐강하기로 했다. 수강인원 모집이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더욱 애를 쓸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에니어그램 강의는 애써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강의이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폐강을 결정했다. 신청 링크를 막자마자 문의 전화 두 통이 와서 '이건 뭐지?' 싶었지만 그래도 폐강이다. 전 같으면 '페강'은 곧 강사가 '폐인'이라는 뜻이야! 하면서 실패감에 빠졌을텐데. 겉으로는 쿨하게 폐강하되 내 탓은 아니라는 핑계를 백만 개 짜냈을 텐데. 기쁘게 폐강한다. (셀프 토닥토닥) 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적인 무엇을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이 관건이기까.

라고 간지나게 글을 맺고 싶었지만. 나는 사실 이번 주에 늘 짓는 죄를 반복해서 지었다. 죄목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강의 준비가 힘들지만 깊은 차원에서 즐겁고. 즐겁지만 또 인생 쉽게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지점에서 줄타기 하는 중에 채윤이의 어텍이 들어왔다. 청소년 백수 채윤이가 제 방에서 처벅처벅 걸어 나와서는 '엄마, 오늘 뭐해?' 이러면 바로 뚜껑이 열렸다. '엄마 강의 준비 하는 거 안 보여? @%$$&^#@#$!@#%#^$' 그런 몇 번의 질문과 열폭이 반복되다 급기야 '뷀에에엑!!!!!! 엄마가 집에 있다고 노는 걸로 보여? 출근했다고 생각해. 엄마는 집에 있다고 노는 게 아니야. 강의 준비도 해야하고, 써야할 글도 있어. (확인사살의 의미로 다시 한 번) 뷀~~~~~~에에엑!' 청소년 백수생활 9개월에 정말 정말 심심해진 채윤이와 여유있게 수다를 떨거나 놀아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교회 주방봉사를 마치고 저녁 강의 들으러 가기 전에 채윤이와 데이트를 했다. 다음 주 꽃친 제주 여행을 위한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도 잔뜩, 만천 원어치나 사가지고 집에 와서 수다 떨며 먹었다. 며칠 우울했던 채윤이가 급 '조증' 증상을 보인다. 내 죄다. 내 죄다. 내 죄값이다! 나답게 살기는 개뿔, 엄마 노릇이나 제대로 하시지. 라며 나는 오늘 불금의 기나긴 일기를 쌩뚱맞은 결론으로 맺으려고 했는데.

아,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내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이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달 <나자연> 칼럼을 꽃친의 예지 쌤 결혼식을 모티브로 썼는데. 그른데.... 어제 올렸던 그 글을 예지 쌤이 페북으로 공유하자 오늘(그러니까 사실 어제 23일)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을 넘었다. 블로그 오픈 이후 최다 방문자 수가 아닐까싶다. 숫자의 크기가 대수는 아니지만(아, 1000은 大數구나. 그렇구나) 암튼, 놀라운 일이다. 나는 오늘 이렇듯 참말로 뜨거운 불타는 금요일을 혼자 보내고 있다. 나는 오늘 참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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