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전전야, 23일 밤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으로 오던 남편은 결국 집으로 오지 못했습니다. 세브란스 응급실로 가서 여러 검사로 밤을 지새고 성탄 전날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금식하며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금요일 내내 복통이 있었는데 하루 일정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가톨릭 신자인 지인께서는 '(성탄절에) 성모 님과 비슷한 고통으 겪으셨다니 내면으로 주님의 탄생같은 큰 축복을 출산하시기 바랍니다' 하셨습니다. 여하튼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복통을 끌어 안고 이 검사 저 검사 받으며 응급실 의자에서 지샌 밤, 잊지 못할 성탄 전전야가 될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제가 당사자는 아닙니다. 복통이나 복통 끌어 안고 검사받은 당사자는 아니지만 고통이 두려워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인 저로서는 잊지 못한 성탄절이지요. 엄살이라곤 없는 사람이 하루 종일 얼마나 참았나 싶어 마음이 짠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성탄절을 앞둔 목사에게 이것이 무슨 일이랍니까. 24일에는 미리 설교 준비 다 해놓고 가족이 함께 올프랜즈센터(이우교회가 섬기는 베트남 캄보디아 다문화 가족센터)에 함께 가기로 했었습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올프에 가서 찬양을 하는데 현승이가 함께 할 것이고, 채윤이는 반주를 한다니 의미 있는 성탄전야가 될 거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계획은 이렇게 쉽게 틀어지고 말지요. 24일, 남편을 입원 시키고 잠시 집에 왔다 아이들과 함게 다시 나갑니다. 함께 지하철 타고 가다 저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신촌역에 내리고, 두 녀석은 교회로 갑니다. 아빠 상황이 저러니 아무 말 못하고 나란히 지하철 안에 섰는 걸 보며 손을 흔드는데 마음이 저릿하네요. 부끄러움 대마왕,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달리기 1등 하다 결승점에서 속도를 줄이는 아이, 잘해서 칭찬받고 주목받느니 차라리 잘하고 싶지 않은 현승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전야 올프렌즈 공연과 새벽송, 일박 캠프 등의 프로그램에 압도된 현승이는 아빠의 복통 이상의 고통 속을 헤매는 느낍입니다. 성탄예배 중에 초등학생 동생들과 나란히 서서 노래하고 율동하는데 아주 그냥 표정이 응급실 갈 표정이더군요. 그러나 아빠가 복통을 이긴 것처럼 현승이도 성탄절 미션 잘 완수했습니다. '엄마, 나 그냥 집에 가서 자면 안 돼? 나 너무 뻘쭘하고 힘들어. 집에 가서 잘게. 제발.....' 하는데 '안돼' 단호박으로 잘라버렸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교회 가서 만났는데 '엄마, 형들하고 많이 친해졌어. 빨리 이사 가고 싶어. 여름에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도 간대' 합니다. (휴우~ 캄사합니다. 하난님!)





한편, 현승이 아빠는 복통보다 더 어려운 마음. 부임한지 한 달이 안 되어, 그것도 성탄절에 강단을 비워야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목회자 되고 아파서 주일을 비워본 적이 없는데.....' 라고 했지만 그 쩜쩜쩜에 생략된 많은 말들이 느껴집니다. '하필 지금, 왜 지금 이런 일이......' 이런 말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성탄 설교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오래 기다린 교우들을 한 달도 안 되어 또 기다리게 하는 목사라니. 좌불안석이지요. 항생제를 밥 삼아 금식 치료 받고 있는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성탄 예배에 갔습니다. 1,2부 예배가 통합되고 주일학교 친구들까지 있어 더욱 꽉 찬 예배당입니다. 예배 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1년에 딱 한 번 성탄절에는 이렇게 풍성하게 차린다고 하십니다. (사실 보통 주일 점심도 맛있기가 장난 없음입니다) 성탄절, 이 풍성한 기쁨과 음식에 함께 하지 못하고 병원 신세라니. 원치 않는 금식에 매인 목사라니.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퍼즐입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심방을 다녀도 시원치 않을 때에 병원 침대에 누워 교우들의 심방을 받고 있는 처지라니요. 하나님, 제 남편에게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메시지 성경읽기를 <욥기>로 시작하는 날입니다. 남편 머리감기러 병원에 가기 전에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욥기> 서문을 읽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했다. 그의 이름은 고난과 동의어로 쓰인다. 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째서 접니까?" 그 질문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그의 질문은 끈질기고 열정적이며 호소력 있었다. 그는 침묵을 답변으로 여기지 않았고, 상투적인 말들을 답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순순히 놓아 드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거나 경건하게 감수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을 구하러 의사나 철학자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님 앞에 버티고 서서 자신의 고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또 항의했다' 남편의 처지가 욥과 같은 레벨이어서가 아니라 고난을 대하는 욥의 태도에 공명하여 마음을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는 그분의 눈길과 손길이 담긴다고 믿습니다.(그리하여 '일상愛 천상에'이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인 것입니다) 하물며 평생 몇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응급실 행에 그분의 뜻이 담기지 않을까요. (그것도 성탄절에, 그것도 목사가, 그것도 새로 부임한 목사가) 그렇다고 상투적이고 경건한 답을 서둘러 찾아 훈훈하고 은혜로운 교훈을 얻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버티고 서서 답을 들을 때까지 묻고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로 부임하여 스트레스가 많았나보다'는 걱정을 많이 듣는데 남편이 말했습니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 건 집 밖에 없는데' 내놓은지 몇 달이 된 집이 나가질 않아 교회 근처로 이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전학 가기 싫어하는 중딩 현승이가 은밀한 기도를 바치고 있나 싶고요. 중2가 무서워 북한이 남침을 못한다는데 하나님도 까칠한 중딩 기도가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 심증이 가는데 그건 아니겠네요. 그분의 창의력에 관한 한 제 심증, 제 슬픈 예감에 들어 맞는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생각이 제 생각보다 높으신 것(사55:9)은 정말 정말 인정이니까요. 여하튼 '질풍' 김현승 선생께서도 마음의 준비가 되신 듯 하니 이제는 정말 웬만하면 집이 좀 나가게 하시면 좋겠습니다.(하난님!)


이렇게 잊지 못할 병원 크리스마스를 보냈고요. 맨 위 병원 화보같은 사진은 채윤이 촬영, 엄마 편집입니다. 또 이우교회 성탄절 점심식사의 감동 메뉴 사진입니다. 병원에서 외롭게 금식 투혼의 성탄절을 보내는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쏴주고자 찍은 사진들입니다. 악마의 촬영이라고나 할까요. 흐흐흐. 제가 이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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