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 좋아하지만 맛집을 찾아 줄을 서는 열정은 없고, 뭘 맛있게 먹더라도 또 먹고 싶어 애써 찾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 전에 먹었던 것들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입맛을 쩍쩍 다시게 되니 내게는 드문 경험이다. 지난 주에 광주로 1박 2일의 에니어그램 강의를 다녀왔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련회 풍경, 청년부 수련회에 식사팀 권사님들이 함께 하신 것이다. 기대 이상의 맛, 기대 이상의 정성에 더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1박 2일의 먹강(먹으러 강의 간 것)이었다.  첫 식사, 첫술을 뜨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끼니 때마다 기본 일식 오찬, 내지는 육찬. 가짓수의 많음보다 감동은 반찬의 다양함이요, 그보다 더한 감동은 모든 반찬이 다 맛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풍성한 밥상인데, 식사 중에 탱탱한 생굴에 갖은 양념으로 만든 초고추장까지 곁들여 내오신다. 강사 특별대접. 옆에 앉은 청년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셨는지, 권사님께서 "내일 아침 메뉴여. 내일 다 줄 건디 강사님 먼저 드리는 거여." 하신다. (그 굴은 다음 날 아침 굴 떡국으로 변신. 세상에나, 수련회 아침 식사가 반찬 다섯 가지에 굴 떡국이라니!) 마지막 식사에는 "이따 저녁 반찬인디 못 드시고 가싱께" 하시며 피꼬막 한 접시가 추가. (키보드 두드리며 침 고인긴 처음이다)


권사님들께 일부러 찾아가 배꼽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강사 인생 십몇 년 만의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두 번째 식사시간이던가, 식사팀 대장 권사님 옆에 앉게 되었다. 역시나 '권사님, 정말 맛있습니다. 맛있습니다'를 연발했더니 특유의 사투리로 '내 반찬이 맛있는 줄 아시면 강사님 입맛이 보통 수준이 아닌디'하신다. 그리고 짧은 간증을 하셨다.


"내가 중등부 교사를 한 지 30년이 되얐어요. 어떻게 처음 교회에서 밥을 하게 되었냐면.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그때는 수련회 강사 전도사님, 목사님들에게 강사비가 없었어요. 여름에 땀 흘려 가며 고생하시는데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내가 밥을 해야겄다, 식비를 남겨서 강사비를 드려야겄다 했어요. 사 먹는 밥 대신에 직접 장을 봐서 했는디, 좋은 재료 싸게 사서 맛있게 먹고도 돈이 남은 겨. 그렇게 강사비를 드리고, 교회에 뭔일 있으면 또 장 봐서 밥하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30년이 된 거여. 나는 음식하는 게 즐겁고, 잘하는디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한때 내가 은혜받아서 마음이 뜨거울 때는 집안 살림, 밥하는 거, 이런 거는 다 하찮은 줄 알었어. 그저 교회마~안, 열심히 댕기고 이러는 게 잘하는 것인 줄 알었더니. 나중에 믿음이 조금 자라고 봉게,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솜씨가 있고 음식하는 거 좋아하는디 그거 열심히 혀서 먹이는 것이 중요하더라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수백 페이지 주절거린 일상영성을 3분 토크로 요약해주시는 것 아닌가. 음식만 맛있던 것은 아니다. 청년부 목사님의 극진한 환대, 강의에 집중하는 청년들 태도의 배려와 어우러져 더욱 잊지 못할 1박 2일이었다. 청년부, 특히 대학부나 어린 청년부에서 오는 에니어그램 강의요청은 거절하곤 했었다. MBTI로도 충분하다 설득하여 주제를 바꾸기도 했었고. 헌데 이번엔 어쩐지 거절하질 못했다. 할 수 없지, 어려워해도 할 수 없다. 하며 갔는데 예상 밖이었다. 게다가 광주였고, 게다가 수련회 장소는 무등산 자락이었다. 광주, 내 마음 속 광주 말이다.


같은 주제로 여러 곳에 강의 다니면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것들로 큰 배움을 얻게 된다. 이방인으로 공동체 체험하기. 맞이하는 교회들이야 늘 하던 방식이겠지만 내게는 새로움이니 말이다. 맞으시는 무심코, 평소대로 손님을 맞는 태도를 경험하는 나로서는 '비교체험 극과 극' 수준일 때도 있다. 때로 내가 이러려고 강의하러 이 먼 곳까지 왔나, 자괴감으로 하며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는가 그 정반대의 날도 있다. 낯선 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체험하기의 유익은 얼마나 큰지! 아무튼 이 예기치 않았던 광주 먹강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강사랍시고 특별대접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권의식으로 못된 태도와 마음의 습관이 들까 경계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진심 어린 환대란 누구라도 특별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창의적인 배려로 드러나는 환대로서의 특별대우는 강사도, 직장 마치고 파트타음 참석자로 수련회장에 들어온 청년이라도, 누구라도 춤추게 하는 일이다. 추가로 나온 생굴 한 접시의 특별대우는 따뜻한 환대로 다가왔다. 


마음이 추운 날이 오래 간다. 자꾸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움츠리고, 껴입고 그럭저럭 잘 지내다 한 번씩 한기에 휘말릴 때가 있다. 봄의 훈풍은 언제쯤 불어오려나. 1박 2일 광주 일정 마치고 올라와서는 바로 다른 일정이 있었다. 밤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해서 여러 겹 옷으로 무장하고 내려갔다. 광주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겹쳐 입은 카디건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웠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날이었다.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따뜻한 날이 언제 불쑥 끼어들지 모르는 일이다. 무등산의 아침을 맞으며 후루룩후루룩 먹었던 굴떡국. 아직 마음에 남은 떡국 국물의 온기를 꺼내보며 하늘의 메시지 하나를 읽어낸다. 


봄이 오고 있다.

아직 겨울이라도 어느 날 훅 들어오는 따뜻한 날도 있을 테다.

오늘 추위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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