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 시점은 어떤 변곡점이다.

무성한 잎을 보아하니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 쉴 공간이 부족하겠네,

생각하며 화분을 갈아줘야지 싶어도 쉽게 되질 않는다.

분갈이 할 시간이 없거나, 갈아줄 더 큰 화분이 없거나.


2000원 짜리 두 개(어쩌면 세 개)를 사서 주먹만 한 화분에 심어 키운 스파트필름이다.

몇 차례 분갈이 하며 몇 년을 지났다.

뭔가 꽉 찬 느낌이라 갑갑해 보여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마땅한 화분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개국 이래 최장 휴일이라는 2017년 추석이라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 모시고 율동공원 나들이 다녀 오는데 집앞 나무 사이에 멀쩡한 키다리 화분이 서 있다.

'제 아이를 부탁합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누군가 놓고간 아기 같이 말이다.

냉큼 주워 와 분갈이 작업을 했다.

언니가 더는 못 입는 옷을 동생이 물려받고, 도미노처럼 그 다음 동생도 득템하는 형국이다.

빈 화분을 그 다음 큰 아이가 차지하고, 그래서 생긴 자리에는 또 다른 녀석이 심겨진다. 

아침에 걸레질까지 해놓은 거실은 흙대밭(?)이 되고....... 

그리하여 작은 옷을 입고 숨도 못 쉬던 스파트필름은 화분 서열 2위로 등극하였다.

1위인 벤자민이 사춘기 지나 키 다 큰 성인으로 입양된 놈이니,

실질적으로 1위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비좁은 거실에 어디 둘 데도 없지만 없는 공간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난 엄마 덕에 좋은 자리까지 잡았다.

해질녘이면 붉은 저녁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길, 

노트북 앞에 앉은 엄마의 눈길이 가장 많이 닿는 명당자리이다.

한 잎 한 잎 물로 닦아주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에고 이뻐라, 에고 이뻐라. 주먹만 한 화분에서 어찌 이렇게 자랐는가, 기특하기도 하여라.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감동에 이 녀석 자랄 동안 물 한 번 주지 않았던 김종필 아빠에게 강요한다.

"여보, 얘 좀 봐줘. 큰 박수가 필요합니다! 박수 쳐! 세게 쳐!" 


성.장.

가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질문, 나도 내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나에 대해 이 단어를 찾았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 욕구가 지나쳐 집착이 되고 이것은 결국 중독이 아닐까 싶은 열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쓰는 열정, 나답게 강의하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는 열정.

내 마음 그대로 투사가 되어 꾸준히 자라는 식물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사람에게도 투사가 되어 성장하는 사람은 다 예쁘다.

이미 훌륭하여 더 자랄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없다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감.사.

말 없는 식물에게서 감사의 태도를 느낀다.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비춘 감정이지만 말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많이 불러줬던 노래, 정말 귀여운 노래인데 부르다 자주 울컥했던 노래가 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땡글땡글 땡글땡글땡글땡글 잘도 열렸네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정말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주일학교 찬양 선생님 할 때도 많이 불렀다.

'가사 바꿔 부르기'로 사과, 배추, 호박, 고추, 딸기.......에 의태어까지 바꿔서 참 재밌게도 불렀다.

어떻게 가사를 바꾸든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아니죠'에선 늘 은혜를 받았다.

누워서 빽빽 울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사람 되기까지,

오늘의 내가 이나마 사람 구실 하면서 살기까지,

나 혼자 크질 않았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는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연결해주신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며

지금 여기의 내가 있다.


공들여 키우는 창가 책꽂이 위의 화분 중에는 그런 놈이 없다.

자라지 않는 놈, 제 혼자 큰 줄 아는 녀석은 없다.

사람은 너나 없이 제 혼자 이룬 줄 알기에 감사치 않는다.

쑥 자라 어른이 된 화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침 저녁으로 보듬은 나의 공을 생각하고,

나 몰래 내게 사랑과 인내를 베푼 수많은 손길과 공로를 상상해본다.

감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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