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서 안 받는다" 비위가 약한 엄마가 앞에 놓인 음식을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하는 말이 그립다. 잃었던 입맛을 찾은 후에는 "입맛이 잽혔다"라고 했다. "입맛이 잽혔다" 끝에 따라붙을 "고맙다, 복 받어라"하는 목소리를 한 번만 더 들어보면 좋겠다.

 

입맛을 잡아오는 음식이 있다. 도다리 쑥국이 입맛을 찾아주진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찾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은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도왔다. 통영으로 불러들였다. 한 번 먹어보지도 않은 도다리 쑥국이다. 도다리라는 생선에 여린 쑥을 넣어 맑게 끓인 국이려니. 유명하다는 집을 찾았다. 상상했던 그 맛을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맛집에서 나오면 왈가왈부 맛 평가가 있어야 하는데 할 말은 딱히 없었다. 가만 걷다 "국물이 따끈했으면 더 맛있었겠다. 국물 온도가 좀 아쉽네." 했더니 남편도 동의했다. "아, 그러네!" 

 

말로 내놓고 나니 몹시, 절실하게 아쉬워졌다. 국물은 온도지! 왜 그랬을까? 사장님의 말과 태도에선 도다리 쑥국에 대한 전문가적 자부심이 넘쳤는데. 따끈한 국물이 정말 필요했는데. 며칠 전 밥을 차려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툭 나온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 끓여준 따뜻한 국물 먹고 싶다." 국도 끓이고 단품 요리도 하면서 잘 먹고 먹이고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왔다. 그 욕구와 휴대폰 창에서 본 도다리 쑥국이 마주쳐 손뼉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따끈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 엄마 영안실 안치하고 며칠 동안 먹은 것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따끈한 맑은 국물이었다. 

 

발인예배에 왔던 친척 언니 오빠들, 메시지를 보내주는 친구와 지인들이 한결 같이 "잘 챙겨 먹으라"였다. 살 의욕도, 먹을 의욕도 없지만 그 말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 뭐든 먹으려고 했다. "여보, 뭐 먹을래? 뭘 사 올까?" 잔치국수, 콩나물 해장국 같은 걸 사서 국물만 먹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따뜻하고 맑은 국물이었다. 식도나 위 어느 부분에 체망이 걸려 있나? 며칠을 그렇게 국물만 들어갔다. 국물이 아니라 따뜻함을 원했던 거다. 내장을 타고 몸 구석구석에 따뜻함이 스며들었으면. 

 

장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조카 부부가 아이와 함께 집에 와 식사를 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묻다 답을 못하기에 나름대로 식사 준비를 했다. 식사 후 이런저런 얘기, 결국 엄마 얘기를 하는데. "고모, 나 실은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김칫국이 너무 먹고 싶어요. 끓여 보려고 해도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고. 그 맛을 알고 끓일 수 있는 사람은 고모일 것 같은데... 말을 못 했어요." 해서 같이 울었다. 차를 마시는 동안 급히 김칫국을 끓여서 담아 보냈다. 다음 날 '바로 이 맛이었다'며 눈물 흥건한 메시지가 왔다. 나도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국이 먹고 싶었던 거다. 몸과 마음을 데우던 엄마의 국물을 먹고 싶었던 거다.

 

오묘한 연상작용이다. 도다리 쑥국 - 미지근한 국물 - 따끈함을 원했었지 - 따끈한 맑은 국물 - 엄마가 끓인 국 - 엄마만이 줄 수 있은 온기. 온기가 사라진 낯선 엄마 몸이 다시 떠오른다. 식어버린 엄마 몸을 매만지다 마음의 온기를 잃어버렸다. 뱃속이 가슴이 세포 구석구석이 비어 바람이 든다. 국물로 버티던 며칠 동안 집에서도 목도리를 매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 추위 때문이라 여겼다. 하루 종일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웬 목도리나고 놀렸다. 통영에서 자던 밤에는 집에 있던 채윤이가 내가 했던 목도리를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오며 다시 놀렸다. 엄마 몸이 없어졌다는 것은 엄마만의 온기가 사라진 것이구나. 

 

결핍, 비어 있는 느낌, 텅 빈 결핍의 공간에서는 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분다. 아버지가 남긴 결핍의 공간에서 불던 찬바람을 맞으며 살아왔다. 찬바람에 마음이 추울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 텅 빈 공간을 글로 채웠다. 그렇게 쓰다 쓰다 작가가 되었다. 아버지 없는 아이, 그 결핍이 치명적인 부끄러움이었는데, 그것을 극복하고자 살아온 세월인데. 돌아보면 그 세월이 나를 만들었고, 존재하게 했고, 그 세월이 그냥 나다. 엄마가 남긴 또 다른 결핍과 냉기는 다시 내 인생 후반을 이끌어 갈 것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이 끓여준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그 다른 사람, 그 타자, 그 국물을 끓여낼 유일한 타자, 절대 타자인 엄마가 없으니 허튼 바램으로 슬픈 나를 더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뜻한 국을 끓여 주는 그 사람이 되어어 할 시간이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두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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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진 2020.04.05 23:29

    몸이 기억하는
    잊혀지질 못할 엄마의 온기...🧡

  2. BlogIcon pratigya 2020.04.06 11:48 신고

    그래도...언니가 잘 드셔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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