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작은 것과 나를 동일시했다. 큰 것 앞에서는 위축되고, 위축되는 것은 모양 빠지니 숙이고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그냥 숙이고 들어가는 것 또한 모양 빠지니 나름대로 필살기가 있다. 큰 것, 큰 사람, 권위자의 마음에 쏙 드는 말과 행동을 한다. 타고난 것 같다. 그냥 된다. 친구나 동료와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디 가서 권위자에게 사랑받지 않은 기억이 없다. 나는 나를 아주 작은 존재로 생각한다.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내 인생 첫 노래다. 말도 빠르고 노래는 더 빨리 했다니까 제대로 말이 터지기 전부터 저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자라면서 교회 어른들이 나를 놀리며 부르는 노래가 저 노래였다. 생애 첫 노래이니 내 인생을 끌고 가는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늘 울리는 노래이다.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예수님 따라가고 싶은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예수님 그분을 따르고 싶다. 그분의 길을 살고 싶다.

 

국민학교 저학년 국어책에 '해바라기와 나팔꽃' 얘기가 나왔다. 비바람이 치는 어느 밤, 바람에 날려 죽을 것 같은 나팔꽃에게 해바라기가 "내 몸을 감고 붙들고 있어." 이렇게 말했나? 비바람의 무서운 밤이 지나고 둘 다 무사하게 해님을 마주했다는 얘기다.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생애 첫 노래만큼이나 마음 깊은 곳에 심긴 이야기이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해바라기 아닌 나팔꽃에 나를 포갰다.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예수님 따라가고 싶은데, 해바라기는 내게 너무 큰 존재가 된 것이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을 좋아했다. 영어 과목을 무지 좋아했는데 영어 선생님이었고, 기타 잘 치고 노래 잘하는 로맨티시스트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기타 들고 들어와 조광조의 "사랑의 바람"을 불러주셨다. "바람이 불어 눈을 뜨면 텅 빈 내 가슴에 사랑이 솟네.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사랑해 줄 텐데. 사랑이여" 이런 가사. (외워서 쓴 거임) 수험생 가슴에 불을 질러 공부에 집중을 못하게 하셨다. 일기장에 매일 선생님 얘기를 썼다. 어느 날 선생님이 자신의 이상형을 말했는데, "코스모스 같은 여인"이라고 했다. 중학교 단짝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는 포기해. 너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앉은뱅이꽃이야." 제비꽃 말이다. 네이밍에 대한 인권 감각이 없을 때라 그렇게 불렀다. 제비꽃을 앉은뱅이꽃이라 불렀다. 완전 동의! 나팔꽃보다 더 작은 제비꽃이 나였다.

 

평생 작은 꽃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작은 화분을 키우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작고 귀여우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면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수년 전 처음 꿈작업을 할 때 '큰 신발' 꿈을 많이 꾸었다. 작은 정수기의 물통이 가득 차서 넘치는 꿈도. 꿈 선생님께서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270, 280은 돼 보이는 운동화가 등장, 네 신발이니 신어 보라는 꿈을 자꾸 꾸었다. 나는 225 쪼리를 신고 집 근처나 어슬렁거리고 싶었다. 그 쪼리 한 짝을 하수구에 빠트리는 꿈도 있었다. 알아 들었다. 더는 작고 어린 자아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키우던 작은 화초가 죄 죽고, 엄마도 돌아가시고, 내 이름의 연구소를 차려 책임을 맡고 지내는 시간이다. 그때 그 꿈이 따스하게 해 주던 말을 살 수밖에 없다. 큰 신발을 신어야 한다. 꿈에 나온 신발은 정체성이다. 더는 누구에게 의존할 수 없다. 다시는 화초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큰 나무를 키우는 것에 끌렸다. 어제 '마담 정의 안 비밀 정원'이란 제목이 포스팅을 하고 잤는데, 또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큰 대전역'에 내리는 꿈. 대전.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이 응축된 곳이다. 멀고도 가까운 곳. 그냥 대전역이 아니라 '큰 대전역'에 대책 없이 내리는 꿈을 꾸었다. 

 

더는 작은 화초로 살 수 없다. 식탁 옆에 <큰 나무 아래 장미나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장미나무'이고 싶지만 '큰 나무'여야 함을 알고 있다. 큰 나무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구입한 그림이지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큰 나무로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호함과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모호함, 알 수 없음을 단지 견디는 수동적인 어른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한다. 능동적인 어른이 되려고 한다. 능동적 어른은 '기꺼이 져주는 힘'을 가진다. 지는 것이 아니라 져주는 것이다. 져주면서 겪어야 하는 외로움도 기꺼이 견뎌야 한다. 까닭 모를 고통의 실존을 한 가운데서 내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알 수 없음의 안갯속에서 책임 전가와 냉소주의로 도망치지 않음이기도 하다.   

  

큰 나무 아래 장미 나무이고 싶지만 이제 그 반대로 살아야 할 때임을 받아들이려고. 대책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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