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나면 알게 되는 내 마음이 있다. 써서 내놓고 나면 더 알아지는 마음도 있고. '책'이라는 물성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며 또 새로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내놓고 보니 '감정'이 보인다. 단지 '슬픔'을 쓴 것이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분노,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느낌이다. 출간 이후 실상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올린 몇 편의 글에 부끄럽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마음으로는 달고 살았나 보다.

이번 주 치유 글쓰기 주제는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성장과 치유에 목말라 연구소로 모여든 이들이 결국 다다르는 지점이다. 인식하든 못 하든, 인정하든 안 하든 많은 것들이 수치심에 걸려있다. 같은 강의를 하더라도 매번 강의안을 수정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책들을 다시 꺼내놓고 읽고 매만지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결국 할 얘기는 뻔하지만, 수치심을 말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웬만큼 힘이 있지 않고는, 웬만큼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면 수치심은 인식되자마자 자동으로 숨거나 위장하는 독자적 생명체 같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글로 수치심을 쓰는 일은 내놓는 일이 되는데, 발견 즉시 숨는 녀석을 쓰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치유력 또한 강력하다. 내놓기만 한다면.

책에 대한 반응이 많지 않은데,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올려주신 분이 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다. 두어 문장 짧은 글에 '재치'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애도와 재치라니! 내가 잘못 읽었겠지, 설마. 재치 있게 애도할 수 있거나, 애도하며 재치를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 애도일까. 한 이틀 정도 마음이 쓰렸는데 흘려보냈다. 아마도 책은 읽지 않으시고 평소 가지고 계신 내 글에 대한 인상으로 쓰셨지 싶다. 책을 보낸 출판사의 뜻을 읽고 빠르게 소개글을 올려주시는 의무를 하셨을지도. 심지어 출판사에 내가 요청했는데, 그분께 보내달라고. 그만큼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이라 기대가 컸던 탓이다.

이 책은 '수치심을 쓰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치명적 수치, 그 뿌리가 닿은 엄마의 수치를 쓴 것이다. 수치심이 올라올 때마다 꺼내 쓰는 가면 여럿 있는데 그 하나가 재치였다. 재치와 유머 뒤에 숨었다. 그래서 재치는 내게 수치의 다른 말이다. 물론 재치 있는 나를 좋아한다. 젊을 적에 그랬다. 예쁘다는 말보다, 똑똑하단 말보다 웃기다는 말이 제일 좋다고. 재미없는 사람 될까 두려웠다. 대학에서 '음악치료 개론'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을 웃기지 못한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재치 있는 내가 되려고 했던 건 누추한 나를 지우고 싶어서였다.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지운 게 아니라 감췄을 뿐이란 것도 잘 안다.

재치와 수치 두 말은 한 구멍에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치명적인 단어를 고르셨을까? 위에는 흘려보냈다고 썼는데 다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위안도 있으니 다행이다. 위안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니 다행이다. 제이언니 김용주 님이 책 후기를 보았다. 정확하게 어디를 겨냥하고 있었다. 재치와 수치가 나오는 그 구멍이다. 평생 써오던 가면 '재치'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재치, 수치, 두려움, 심지어 이번 '재치 책 소개' 글로 상한 마음까지 저격당한 느낌이다. 물론 위로와 격려의 저격이다. 위로,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을 받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글쓴이가 부담스럽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분을 통해 위로하신다고 느껴졌다.

힘을 낸다. 수치심 치유의 시작은 '드러냄'이다. 그놈의 필살기가 숨고, 고립되는 것이다. 고립되어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에서 저만의 세계를 꾸미고, 그럴듯한 가면을 만들어내는 일이 수치심이 하는 일이다. 그 일이 능숙해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때, 약함이 악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내놓고 다시 내 수치심을 확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히며 하찮게 여겨지거나, 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수치심을 들러리 세워 우월감 느끼는 사람은 없겠지? 이렇듯 다시 수치심의 향연이지만 괜찮다. 힘을 낸다. 취약함을 드러냄으로 고립의 동굴로 가는 길에 불 하나는 밝혀졌다. 다행히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진심의 감사로, 감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힘을 낸다.

 

과거에 정신실 언니와 교류하는 동안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면서는, 책보다는 그녀의 '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공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은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소리와 표정, 말투가 더 정감이 가서인지 같은 내용을 글로 읽을 때는 그런 게 축소되는 느낌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아마도 밝게 보이려는 모습이 매번 글에 투영되어서였던 것 같다. 뉴조 연재를 묶어낸 <신앙 사춘기> 책에서는 약간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더이상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조금 어둡더라도 숨김 없이 내적 음성을 섬세하고 명료하게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또한 반갑고도 감사하게 읽었다. _제이언니 김용주 님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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