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5

 

다 좋은데 저러셔서 힘들어

 

풍성한 식사였다. 주꾸미 볶음이 주메뉴인 줄 알았는데 세트로 묶여서 나온 메밀묵 국수에 메밀전병까지. 풍성하고 조화로웠다. 함께 마음공부로 만나 학구열을 불태웠던 선생님들과의 식사라 더 좋았다. , 물론 모든 영광은 우리의 물주이자 미리 답사까지 하며 식당을 선정하신 신 최 선생께 돌려야 한다.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인연이 된 몇 사람과 정례 모임을 하고 있다. “오는 게 어렵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모여요.” 최 선생님 한 마디에 장소는 붙박이가 되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공부 모임이라 배울 것이 많다. 장소 제공뿐 아니라 근처 맛집을 알아보시고, 미리 답사까지 하며 식사 자리를 준비하시는 최 선생님 덕에 먹는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자리를 옮겨 선생님 댁 거실에 모여 앉았다.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식후에 마실 커피를 준비해갔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드립세트까지 챙겼다. 내내 하늘이 묵직하더니 후두둑 장대비가 쏟아졌다. 흐린 날, 비 오는 날엔 밑으로 깔리는 커피향이 유난히 감미롭다. , 이거 날씨까지 받쳐주는군!

 

원두를 미리 분쇄하지 않고 굳이 핸드밀까지 챙겨갔다. 야심차게 커피를 갈았다. 핸드드립 커피가 가장 매혹적일 때는 분쇄될 때 퍼지는 향이다. 막상 드립하는 순간이나, 특히 마실 때는 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나저러나 거실은 커피 향으로 가득 찼고, 여느 카페 못지않다며 좋아들 했다. 좋은 것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기쁨이 있다. 무엇보다 최 선생님께 꼭 한 번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댁에서 흔히 말하는 봉지 커피, 인스턴트 커피를 드신다. 나의 민감함, 지나친 걱정이긴 한데. 고혈압에 당뇨도 있으신데 그걸 계속 드시는 게 늘 마음이 쓰였다. 신선한 원두커피를 드시면 좋을 텐데, 싶어 언젠가 한 번 제대로 소개해드려야지 하고 있었다. “어머나, 입이 개운해지네. 그냥 쓴 아메리카노 커피하고 다르구먼. 입안에 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신기하다, 깔끔하네. 그거.” 일단은 성공!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차 막히기 전에 출발하자던 소리를 몇 번이나 하다 일어서려는데 저녁 먹고 가라고 붙드신다. “이왕 늦은 거 저녁까지 먹고 가지. 맛있는 코다리 냉면집 있어.” 여러 번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어려운 선생님 말씀이니 조금씩 난감해하면서도 재빠르게 찻잔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나라도 좀 더 있다 나올까 싶었지만,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 밖에 홀로 서 계신 선생님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꽉 차도록 서 있는 우리, 넓은 공용 현관에 홀로 서 계신 선생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던가. “선생님, 다 좋은데 저러셔서 힘들어. 갈수록 더하시는 것 같애.” 닫히는 시간보다 18층을 내려가는 시간이 더 짧은 것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한두 사람이 이심전심 맞장구치는 눈치였다. 무슨 말이지? 싶었는데 지하철까지 가는 차 안에서 오가는 말로 알아들었다. 선생님 오랜 알고 지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편한 제자들을 만나시면 시간이 무한정이라는 것이다. 점심 약속이어도 저녁까지 먹을 생각을 하고 하루를 다 비워두어야 한다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말했다. 짧은 수다의 여운을 남기고 그들은 지하철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최 선생님의 오랜 제자도 한 사람이 있고, 나보다 오래 선생님과 알고 지낸 사람도 있다. 표현은 조심스러웠지만, 뒷담화였다. 오래 만나온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선생님의 모습을 알 수도 있겠고, 내 생각과 다를 수 있겠지. 혼자 남은 차 안의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최 선생님에 대한 내 선망이 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선생님 자신도 늘 말씀하시고 있고. 그분이라고 흠이 없을 수 없는데, 마음이 상한다. 넓은 집에 홀로 남아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서글퍼진다. 길은 또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실시간 빠른 길을 검색하려고 스마트폰을 더듬어 찾았다. 가방 안에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주머니에도 없고. 신호에 멈춰서 바닥 여기저기를 봐도 찾아지지 않는다. 선생님 댁에 두고 왔나? 전화를 드려봐야... 아니, 전화기가 없지. 차를 돌려야 하나, 싶은데 이미 순환고속도로에 올랐고 이제야 길이 뚫리기 시작이네. 할 수 없다. 일단 집으로! 뭔가 하루를 제대로 망친 느낌이다.

 

종종 전화기 두고 가구려

 

다음 날 아침 다시 선생님 댁으로 갔다. 다른 날보다 더 반갑게, 심지어 살짝 들떠서 맞아주시는 선생님 뵙는 게 어쩐지 민망하다. “종종 전화기 두고 가구려. 바쁜 사람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좋네. 하하.” 밝은 표정을 뵈니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선생님 혹시 전화기 숨겨두셨던 거 아녜요? 한 번 더 오게 하시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모닝커피를 했다. 긴 여름이 드디어 끝난 건지, 아침 바람이 선선하다. 선생님은 예의 그 달달한 삼박자 커피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봉지씩 뜯어서 탔다.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무슨 향기 안 나? 좋은 냄새 안 나요?

, 글쎄요.

모르네. 자기가 남겨둔 향을 모르는구먼. 아니, 어제 커피 내리고 갔잖아요. 아까워서 커피 가루를 버리질 못하고 식탁에 두고 잤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 나왔더니 향이 나더라고. 정 선생이 왜 이 커피 노래를 불렀는지 알겠다니까. 그것참 깔끔해지는 게 커피 향이 입 계속 남아 있더니만. 커피가 커피지, 그럴 줄 몰랐네.

제가 노래를 불렀나요? 하하. 작전 성공이에요. 선생님, 커피를 조금 바꿔보세요. 제가 핸드드립 하는 거 가르쳐 드릴게요.

하이고, 살림도 안 하는데 커피 살림을 차리라고? 됐어요. 한 번 맛본 것으로 족해요.

아니에요. 선생님. 살림까지 안 차리셔도 되고요. 장비도 몇 개 안 되고, 재미도 있으실걸요. 무엇보다 건강에도 좋으시고요. 커피는 제가 로스팅해서 드릴게요. 지금 이 커피는 몸에는 안 좋은 거 아시죠? 선생님 설탕 좀 조심하셔야 하는 거…….

여기 시어머니 하나 또 있네. 잔소리꾼은 우리 아들 하나로 족한데. 프림 커피 마시지 마라, 밀가루 먹지 마라, 운동을 어떻게 해라, 아주 성화예요. 내가 이 나이에 아들 몰래 뭘 숨겨두고 먹게 된다니까. 고맙지 뭐. 내 걱정해서 하는 거니까. 정 선생도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께선 음식에 관한 한 가리는 게 없으신 것 같다. 그 연세에 떡볶이나 피자 같은 것도 좋아하시고. , 단지 커피만이 아니라 건강 때문에 분명 금하셔야 할 음식이 있는데도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걱정을 더 하게 되는 건가? 물론 나로선 좋다. 함께 식사할 때마다 댁 근처 식당 중 새로운 집을 찾아 데려가 주시곤 한다. 가리는 게 없으시니 다양한 걸 맛보고 좋지만, 식사 전후에 한 줌씩 드시는 약을 보면 또 이래도 되나 싶은 것이다. 수퍼푸드다, 건강보조 식품이다, 먹을거리에 생명줄이 달린 것처럼 사는 노인도 많이 본다. 아침에 토마토 한 개를 반드시 먹어야 하고, 비트 주스를 마셔야 하고, 탄수화물은 끊어야 하며, 오메가3니 글루코사민이니 꼭 챙겨야 할 건강보조식품도 있단다. 주워들은 정보만 가지고도 한참 더 떠들 수 있다. 선생님도 조금 더 신경 쓰셔야 하는 것 아닐까, 아드님의 잔소리에 힘을 보태고 뵐 때마다 식생활 지킴이 역할을 좀 해드릴까.

 

선생님은 먹을 것을 좋아하세요? 그래 보이시진 않는데.

왜애? 혹시 식탐을 묻는 거유? 돌려 말하는 건가? 허허허, 먹을 것 조심하라고?

(화들짝) 아니요. 히히. 건강 때문에 음식조절들 많이 하잖아요. 선생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건강에 관한 관심? 염려? 이런 것 없으세요? 설탕 많이 든 커피 막막 계속 드시고요?

그 말 하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내가 언젠가 말했잖아요. 노인들한텐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묻지 말고 안 아픈 데를 물어보라고. 내 몸 여기저기서 아이고, 아이고, 신음을 해요. 걱정 많이 되지요. 이러다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나,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먹을 거 조심해봐야 무병장수와 크게 상관도 없다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상관없기는요!

그래? 그러면 상관있다는 증거를 대 봐. 내가 다방 커피 끊고 정 선생 알려주는 커피 마시면 몇 년 더 살아? 당황하기는! 하하.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로제토 마을이라는 장수마을이 있었어요. , 지어낸 얘기 아니고 리얼리티. 196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로제토라는 마을이에요. 이 지역에서 오래도록 일했던 의사 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강의 때 여러 번 했던 얘긴데도. 아무튼, 65세 미만의 지역 주민 중에 심장병 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해요. 이유를 찾다가 연구를 시작했는데, 환경이 비슷한 주변 지역 사회와 비교해보니 이 지역 주민의 사망률이 35퍼센트나 낮았던 거예요. 그 원인이 유전자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식단은 더더욱 아니었대요. 왜냐하면, 로제토 주민들은 설탕이 든 간식거리, 고기 기름에 요리한 소시지 같은 것을 유난히 즐기는 데다 직접 포도주를 담가 독한 술도 마시고, 흡연도 하고, 비만도 흔했대요. 여러 해 연구한 결과 건강과 장수의 비밀이 풀렸는데, 허망하게도 남다른 사회성이라는 거예요.

에이, 선생님. 사회성요? 상관있는 증거 대고 계신 거 맞죠? 그걸 어떻게 측정하고 증명해요?

역사적인 맥락이 있었어요. 이곳은 19세기 말에 이탈리아 로제토 발포르토레 출신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이었어요. 이 사람들이 낯선 곳에 정착해서 건강에 좋다는 지중해식 식단은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특유의 쾌활함과 사회성을 발휘하면 산 거죠. 힘겨운 이민 생활을 하며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주민들끼리도 끈끈했던 거예요. 틈날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가족 경조사를 기념한다든가, 크고 작은 자율적 시민 단체를 만들어 소속되어 활동하고, 이웃 간에 사이좋게 지내며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요. 이게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었던 거지.

아아,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유쾌함, 대가족 중심으로 모여 먹고 하는 분위기 뭔지 알 것 같아요. 영화에서 많이 봤어요. 그렇군요. 아까 1960년이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그 마을이 여전한가요?

로제토 효과라고 하는데, 이걸 연구하던 다른 의사가 예측했어요. 로제토 주민들이 특유의 공동체적 생활 양식이나 사회성을 잃게 되면 건강상태가 곤두박질쳐 사망률이 다른 미국 마을들과 비슷해질 거라고요. 아닌 게 아니라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지역 사람이 유입되고, 그 정신은 흐려진 거죠. 젊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즉 큰 집 멋진 자동차 등 호화로운 생활을 꿈꾸며 마을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오밀조밀한 작은 집에서 살며, 부를 과시하는 법이 없었대요. 그런데 이제 보통의 미국 마을이 된 거예요. 1971년 이 마을에서 55세 미만인 사람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일이 처음 발생하고, 70년대 말에는 사망률도 다른 지역과 비슷해졌다고 해요.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 한 가지만 하라고 한다면 나는 건강식 대신에 정 선생과 기분 좋은 밥 먹는 걸 선택하겠다 이 말이요! 하하. 그러니까 우리 집에 자주 오라고. 수퍼푸드를 먹고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면 좋겠지. 하지만 뉴스란에서 보는 수퍼푸드 효능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건강에 좋은 것은 사회적 관계예요. 많은 연구 결과들이 그렇게 말해요.

아하, 그러니까 앞으로 쭉 설탕 듬뿍 프리마 듬뿍 든 커피를 계속 드시겠다, 상관하지 마라. 이런 말씀이신 거죠?

하하하, 그렇게 되나? 그러네. 놔두구려. 달달하고 구수한 맛에 커피 마시는 거야. 정 선생 손으로 내리는 스페셜 커피는 인정해 드리리다.

, 감사드리고. 저도 선생님 건강 비결이 제자들의 존경, 좋은 사회적 관계에 있으시다는 걸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내가 졌다. 내 무덤을 팠구먼.

진심인데요. 선생님.

이건 데이터일 뿐이고. 건강과 장수를 보장하는 기적의 음식이 따로 없는 것처럼, 사회성 또한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요. 그리고 먹는 습관, 관계 맺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 나이의 몸 상태는 어쩌면 살아온 방식의 결과죠. 그래서 결과로 만족하고 건강을 위한 노력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했던 말 기억나요? 좋은 노년은 없어요. 좋은 중년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에요. 나이 들수록 한계가 있죠. 한계가 있어요.

한계. 한계요?

그래요. 나는 사실 복 받은 노인이에요. 아직 찾아주는 제자가 있고, 마음이 딱 맞는 건 아니지만 한 번씩 만나 밥 먹고 수다 떠는 친구들도 있고, 저도 힘든데 반찬 만들어 가져오는 여동생도 있어요. 영양제에 건강보조식품 사다 쌓아 놓는 아들도 있고. 그래도 보통은 늘 혼자 먹는 밥이에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인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데. 현실은 그저 혼자 먹어야 하는 밥. 이게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요.

아아.

어제만 해도 그래요. 사람들 저녁 먹고 가라는 말을 매정하게 거절하고들 갔잖우. 나는 정 선생은 더 남아서 같이 저녁 먹어줄 줄 알았지. (윙크, 찡긋)

, ... , .... 집에 애들 먹을 걸 안 챙기고 나와서요.

 

혼밥도 소명이구나

 

선생님이 진심 섭섭해하시는구나, 당황이 되었다. 함께 하는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고 편하게 해주시는 감각이 탁월하신 분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연세 노인들에게 흔히 볼 수 없는 태도이며 감각이고,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제 차 안에서 들은 뒷담화가 다시 떠올랐다. 한쪽에선 부담을 느끼고, 한쪽은 섭섭해하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과, 밥 한 끼 더 먹고 가라는데 그걸 안 들어준다고 섭섭해하시는 선생님. 평소 같으면 상대 입장을 먼저 헤아리실 분인데, 이해는커녕 섭섭해하시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리고 알 것도 같다. 혼밥, 정말 싫으시구나. 혼밥이 싫어 한 번이라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상대 배려하는 감각을 이긴 것이다. 시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씀이 있다. “뭘 먹어도 맛이 없다. 음식 해서는 다 버리게 된다. 뭐가 좀 맛있어 보여 사와도 반도 못 먹고 버린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있어야지.” 그 말씀을 나는 더 자주 와라, 심지어 너희와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해석해서 듣고 마음의 짐을 스스로 지곤 한다. , 정말 혼밥이 싫고 힘드시구나! 어머님도, 최 선생님도.

 

아이고, 뭘 그렇게 당황하고 말을 잃어요? 농담인데. 그렇단 얘기요.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을 좌우한다면, 어제 점심 같은 식사로 내 건강 유지하는 거예요. 그러네. 말해놓고 보니, 그럴싸하네. 하하. 맛있는 음식을 맛있지? 맛있네하면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건 건강도 건강이지만 영혼까지 밝게 하는 것 같아요. 밥 잘 사주는 예쁜 할머니 해주고 얻는 복이에요. 그게 제대로 먹는 거지. 하지만 내 나이, 형편에서 어찌 늘 그걸 식탁을 바랄 수 있겠소.

아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이러면서도 또 잘 살아. 잘 먹고. 다 사는 방법이 있어. 어쩌면. 혼자 먹는 밥, 혼자 있는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노인의 소명인지도 몰라요.

 

둘째 아이가 어렸을 적에 고관절 골절로 입원해 계신 제 외할머니를 보며 수수께끼를 만든 적이 있다. “부탁하고, 하고, 해주고, 부탁하는 게 뭐게?” 스핑크스 퀴즈의 아류였다. 정답은 사람. 아기 적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모든 걸 부탁해야 했고, 누나처럼 청소년이 되면 혼자 지하철도 탈고, 모든 걸 하고. 엄마가 되면 아이를 돌보고, 늙은 할머니도 돌보는 해주는존재가 되고, 외할머니처럼 노인이 되면 다시 아기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버전으로 그 퀴즈를 바꾸기도 했었다. ‘받아먹고, 떠먹고, 떠주고, 다시 받아먹기는 과정도 인생이다. 언젠가 나도 혼밥하는 생활을 할 수도, 그러다 받아먹는 시간을 살아야 할 수도 있겠구나. 인간의 길이구나! 혼밥의 외로운 시간, 그러다 침대에 누워 받아먹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을 과연 소명이라 이름하다니! 그렇구나, 노년의 시간에도 소명이 있구나.

 

휴대폰만 찾아서 바로 나올 계획이었는데, 이른 점심을 함께하고 돌아왔다. 새로 찾아낸 맛집이라며 코다리 냉면집으로 안내하시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 느리고 무겁게 느껴졌다. 2층에 있는 식당이라 나 혼자 같으면 단숨에 걸어서 오를 텐데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선생님은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하시지만, 느껴지는 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늘 배우기만 하고,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죄송했는데 오늘만큼은 더 당당하고 기쁘게 먹었다. 선생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해서 기쁘고 맛있게 먹어야 할 단 한 번의 밥상이다.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먹느냐가 건강의 관건이라니, 나 역시 주어지는 한 끼 한 끼를 그렇게 먹어야 하지 않겠나. 혼밥을 소명으로 먹어야 하는 날이 오기 전, 오늘 중년의 밥상이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 매콤하고 새콤한 코다리 냉면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선생님께 메시지가 하나 와 있다. “집에 왔는데 어제 커피 향이 아직도 힐끗 나네. 정 선생이 남긴 향기 같아요. 고마워요.” , 혼자 계신 넓은 거실에 남은 타인의 흔적, 친밀한 타인의 흔적을 느끼시는구나. 원두 찌꺼기의 향이 얼마나 오래 가랴. 그 거실과 식탁이 너무 외롭지 않길. 생의 노을이 물드는 시간, 쓸쓸하지만 찬란한 한 노인의 소명의 시간에 원두 향보다 깊고 따뜻한 그분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시니어 매일성경] 9,10월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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