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돌아가시고 더욱 요리에 진심을 다하게 되었다. 요리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귀찮다. 그냥 진심을 다한다. 그냥 진심이다. 날이 추워졌고, 이불 밖 냉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을 때는 뜨근한 사골국이다. 사골 반, 잡뼈 반, 그리고 냉동 홍두깨살 한 덩이를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통 양파와 엄청난 양의 통마늘을 넣고 밤새 끓였다. 이틀 밤을 갈아 넣었으니 진심이 아닌가. 한 번 끓여 덜어내고 고기 한 덩이까지 넣어 끓인 두 번째 궁물은, 그렇다 궁물이다. 이건 국물이 아니다. 그야말로 끝내준다. 이제 굵은 사골들 물기 빼서 냉동실에 얼린다. 어느 추운 아침에 사골 우거짓국이 될 것이다. 요리에 진심이다. 

 

국그릇에 뜨거운 국물 부었다 쏟아 먼저 그릇을 데운다. 건져서 따로 찢어 놓은 고기를 끓는 국물에 한 번 집어 넣었다 꺼내 그릇에 담고, 국물은 다시 펄펄 끓인 후에 뜬다. (이 모든 것은 온도를 위한 진심이다.) 그 위에 파를 한 주먹 넣는다. 그 상태로 간도 하지 않고 한 국물 떠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구나! 엄마를 느끼고 싶어서 사골을 끓였구나. 춥고 피곤해서 일어나기도 싫은 날, 겨울이 시작되는 그런 때였다. 학교,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싫어도 너무 싫은 날. 겨울을 싫어하니 나만의 체감온도는 항상 더 낮다. 낮고 낮다. 춥고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 아침 기름 동동 뜬 사골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낮고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아, 나는 파를 안 먹어서 일단 파를 듬뿍 넣고 향을 낸 다음 죄 건져내고 먹었다. 진심 담은 사골국은 엄마 맛이다. 학교 갈 힘이 났다.

 

엄마 돌아가시고 흑백 세상이었던 시절, 그런 터무니 없는 결심을 했었다.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일을 만들지 말자. 나만이 할 수 있는 요리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말자."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을 그대로 고통으로 견디는 상실의 시간 속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이 하나하나의 고통이어서 그랬다. 내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 아이들은 내가 한 음식과 나만의 유머와 나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합리적 판단과 결심은 슬픔의 강을 건너며 당연히 사라졌다. 대신 '진심'이 남았다. 요리에 진심이 되었다. 순간순간의 진심을 사는 일 밖에는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진심을 담아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빨리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 배달 음식도 많이 먹는다. 많은 날 냉장고가 비어 있고, 라면과 짜파게티도 많이 멕인다. 그것들도 진심이다. 그만큼의 진심이다. 그리고 진심의 전염성.

 

이런 진심1 

사골 우리는 냄새가 집안에 진동. 엄마, 내일 아침에 사골국 먹을 수 있어? 오, 나 일찍 일어나야지! 했던 현승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나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사골국이라니. 너 정말 먹는 것이 진심이구나. "캬아아아아...." 첫술에 내뱉는 아저씨 리액션, 이것이 이 아이의 진심이다.

 

이런 진심2

트레이더스 양념불고기를 그냥 먹기가 뭐해서 불고기 전골을 하려 했다. 조금 색다르게 해 볼까? 스끼야끼를 검색하니 그까이거 때충 야채 넣고 끓여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면 되는 것이네. 되는대로 담다가 남비를 툭 건드렸는데 빙그르르 돌아간다. 옆에 있던 채윤이의 "오!" 하는 탄성에 바로 카메라 꺼내 들었다. 이건 촬영각이지. 촬영을 도우며 알짱거리는 채윤이가 자꾸 "엄마, 고기가 너무 적은 거 아냐? 양이 좀 적은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촬영에는 더 많이 진심이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가스렌지에 올리고 불을 켜는데 냉장고에 넣으려던 양념 불고기 든 락앤락통을 들고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건 그냥 식탁에 내 옆에 두고 스끼야끼 먹으면 안 돼?"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것이다. 모자라지 않다, 얼마든지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다! 이런 안심. 아, 또 양으로 승부하는 이 아이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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