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 예배는 이렇게 갑자기 조용히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긴 과정이었든 회복 역시 과정일 것이다. 각 교회의 대표기도 내용 중 빠지지 않았던 기도가 이루어졌다. "어서 회복되어 교회당에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인원 제한 없이 대면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린 정말 대면 예배를 기다렸나?

 

주일학교 찬양팀 준비하는 현승이를 태워가느라 예배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했다. 교회 주변의 모든 길은 단풍과 낙엽으로 그냥 그림이다. 길가에 추차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어도, 나와서 걸어도 풍경화 속에 있는 것 같다. 조금 춥지만 골목 공원에 가 앉았다. 책을 펼쳐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우수수... 바람과 나무의 합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니 말이다. 

 

눈앞의 작품 멋짐에 밀리지 않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말레이시아 원주민들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빠져들었다 싶으면, 우수수수. 자꾸 우수수수... 하니까 신기하지도 않아서 외면했더니 나풀나풀 읽고 있는 페이지에 나뭇잎 한 장을 떨어뜨린다. 누가? 바람이. 바람 같은 그분이? 

 

시간이 되어 교회로 향했다. 바삭바삭 쌓인 낙엽을 밟으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교회가 가까워지지 며칠 전 강의에서 내가 했던 말이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마지막 영성 수업>에 나오는 얘기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곳이나 사회적인 곳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곳이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란다. 교회는 기껏해야 병원과 같다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작동하는 곳은 차라리 자연이다. 방금 전 앉았던 공원의 벤치.

 

큰 기대 없었지만 역시 함께 드리는 예배는 달랐다. 내 목소리 적당히 묻혀 편안한 함께 드리는 찬양, 거리를 두고 앉았으나 거리 넘어 전해오는 사람들의 몸, 몸과 숨.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에너지. 현장에서 듣는 설교도 달랐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는 설교였다.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교회를 향한 여러 행위, 수고, 외형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랑' 즉 '진심'은 사라진 세월이다.

 

설교 마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데 사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릴 적부터 내가 사랑하던 하나님. 교회 말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지요" 얼마나 좋아하던 찬양이었던가. 어릴 적부터, 중고등 학교 시절, 청년 시절....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나님 사랑이 교회 사랑이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인 줄 알았던 때에도, 하나님 나라여야만 한다고 주먹 불끈 쥐고 목에 핏대를 세우던 때에도 나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예배 마치고 다시 차로 걸어가는 길에 다시 그 말이 울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맞아, 그렇다고 교회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천진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겠구나! 알게 되었다. 도적 같이 임한 대면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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