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고3은 고등학교 3학년이란 뜻인데,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에 딱 달라붙은 시간이다. 현승이가 이제 고3이 된다. 일반학교에서는 진학상담, 현승이 학교에서는 '연합 멘토링'이란 이름으로 상담을 했다. 연합 멘토링이 있던 날, 일찍 학교 앞으로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상에서 가장 맛없는 돈가스를 먹고 울렁거려서,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찾아 카페에 들어갔다. 돈가스가 맛이 없었던 것인지, 마음에 음식 받아낼 공간이 없었던 것인지... 돈가스는 맛이 없고, 마음엔 여백이 없었나 보다.

 

현승이 진로가 갑자기 걱정 덩어리로 다가온다. 대학은 안 가도 좋다. 가고 싶다면 어디든 가도 좋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차차 정해도 된다. 장래희망을 정하고 거기 맞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고 '꿈이 없는 아이'로 볼 일도 아니다. 제 속도대로 자기 길을 찾아가면 된다...

 

라고 진심 생각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걷는 일이 드물어서 말이다. 고3을 코 앞에 두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현승이를 보자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친다. 카페에 앉아 체한 돈가스를, 아니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은 무척 걱정이 되고 마음이 자꾸만 어두워진다고 말했다. 바로 '걱정근심주식회사'가 차려졌다. 걱정 하나가 걱정 둘을 끌어내고, 둘은 넷이 되고, 넷은 여덟이 되면서 현승이, 나, 남편, 내년... 이 회사의 경영방식이 문어발 식이라. 여기저기 숨어 있던 걱정이 다 커밍아웃이다. 

 

그때! 바로 그때!

 

감정 추스르고 맛있는 커피 한 모금 하려고 잔을 드는데... 이게 무엇인가! 천장 조명이 커피잔에 비쳤고, 요리조리 각도를 바꾸다 보니 노란 리본이 딱 뜬다. 메시지구나! 이건 메시지야! 기억하라고 한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때 그 시간을 지내며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며 했던 결심들을 떠올리라고 한다. 어떻게 살기로 했는지, 진도 앞바다에서 잃어버린 생명들이 살지 못한 삶과 세상을 어떻게 감당하기로 했는지 기억하라고 한다.

 

바로 멈추었다. 걱정과 불안의 말들을 마음에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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