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의 어느 월요일.
이틀 전 토요일에 심방 다녀온 횡성에 가자고 했다.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 있다고.
무엇을 선택하기가 제일 귀찮은 요즘, 누가 나를 어디든 데리고 갔으면 좋겠는 요즘,
기대도 저항도 없이 따라나섰다.

막국수나 두부냐. 점심을 놓고 고민하다 막국수로 정했다.
JP이 토요일 심방 갔다 먹은 점심은 두부였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아무리 맛있어도 토요일에 먹은 걸 월요일에 또 먹게 하기는 그래서 막국수로 정했다가.
또 먹을 수 있어, 또 먹을 수 있어, 라는 말에 힘입어

과감히 두부로 전향하여 정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먹고 싶어' 아니고 '먹을 수 있어'가 영 찜찜하긴 했지만)

걷고 싶은 길, 횡성호수길에 도착했는데...
걷고 싶은데,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걸을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았고, 바람은 무지 불었고, 추웠고...
일단 들어가 보자는 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50m 정도만 걷고
"추워서 못 걷겠어"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당당하게 걸을 것 같은 표정으로 사진은 찍어주었다.

A코스 1시간 30분, B코스 1시간 30분 걸린단다.
바람은 장난 아닌 찬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걷자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얼얼했다.
적당히 뒷걸음질 치려고 했는데,
얼른 도망가서 호수 바라뵈는 카페에 앉아 책 보고 놀 생각에 설렜는데..
뚜벅뚜벅 전진하며 JP가 말했다.
한 시간 삼십 분 알 걸려! A코스 금방 끝날 거야.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JP의 말이 아니라 눈앞의 풍경들 말이다.
잠바에 달린 모자를 꽉 졸라매 쓰고 나도 전진했다.

돌아갔으면 어쩔 뻔!
이런 식상한 표현은 하고 싶지 않은데...
정말 놓치면 안 되었을 멋진 풍경들이 구비구비 펼쳐졌다.
좌江우山.
이렇듯 신비로운 풍경이라니!

도망갈 마음이 싹 달아난 내 마음을 알아채고 비로소 앉아서 쉴 수도 있게 된 JP.
A코스를 다 걸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세찬 바람에 적응도 되었다.
가즈아~ B코스.

B코스에서는 더 멋진 장면을 눈에 담았고.
마지막에 빛을 만나고야 말았다.
JP은 빛을 이렇게 담고 저렇게 담으면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A, B 코스 다 도는데 두 시간쯤 걸렸을까?
우리가 생각보다 잘 걷는 중년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생각보다 즐겁게, 더 멀리 걸었다.
후유증은 있었다.
찬바람을 직통으로 맞은 탓인지 JP은 이석증이 재발했고, 감기도 걸렸다.
그래도, 그러나 즐겁게 멀리 걸었으니까.

그 주간에는 연구소 지도자과정 마침 피정이 있었다.
남편이 와서 마침 예배 성찬식을 이끌어 주었다.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기 안에 고인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맙다.
목사인 김종필이 아니라 김종필인 목사라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목회의 찬바람을 맞으며 후유증도 있지만,
후유증에 지지 않고 선善으로 후유증을 이겨나가는 JP라 고맙다.
성찬식 사진처럼 딱 저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 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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