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지막 날을 아무 걱정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몸을 파묻고 보냈다. 어제 오후 백신 부스터 샷 접종을 하고, 밤에 연구소 송년 글쓰기를 했다. 강의할 때만 해도 주사 맞은 부위가 조금 뻐근하다 싶었는데, 2차 때 왔던 불면증 후유증이 와서 말똥말똥한 밤을 보냈다. 잠깐 잤지만 새벽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손해 본 잠이 억울해서, 어쩌면 몸이 무거워서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몇 줄 읽다가 졸고, 다시 일어나 조금 읽다가 자고.... 그렇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다 읽고 나니 거짓말처럼 일어날 힘이 생겼다.

그렇다, 카이사르는 분명히 필멸의 인간이니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한다. 그렇지만 나, 바냐,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에게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죽음'과 '비극'이다. 죽음에 대해 말할 자리, 강의할 자리가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내 마음 속 죽음은 업데이트를 거듭했다. 여전히 견딜 수 없이 그리운 엄마이지만, 내 마음속 죽음은 작년 3월 엄마의 죽음이 아니다. 40년 전 아버지의 죽음도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다. 인생의 끝에서 만날, 궁극의 비극인 죽음이다. 죽음이 끝이 아닌 것에의 믿음으로 오늘의 시간에 죽음을 받아들이면 열리는 새로운 오늘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함이 인간의 비극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죽음과 비극과 더불어 '성장'이다. 송년 글쓰기를 거듭하면서 돌아보니 그렇다. 나와 다른 사람의 성장이 가장 기쁜 일이었고, 그 반대가 가장 아픈 일이었다. 몸은 노화하여 필멸할 것이나, 정신적 성장은 끝이 없다. 늘 자라야 하고, 성장의 궁극은 죽음 앞에서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 식힐 겸 소설을 하나 읽자, 는 마음으로 아침에 침대에 파고들며 붙들었는데 2021년 마지막 날 읽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라며 죽음에 저항하는 이반 일리치는 잘못 살아왔다. 다른 잘못은 모르겠고, '죽지 않을 존재'처럼 살아온 것이다. 이미 그의 생은 메마르고 비극적이었는데, 비극성을 마주하지 않았던 것. 이미 아픈 몸인데,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다 병을 키운 것과 같다. 리처드 로어 신부는 '죽음'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는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했다. 과연 이반 일리치는 죽기 한 시간 전에 그 강한 에고의 힘을 빼고 기꺼이 죽는다. 죽기 한 시간 전이지만, 한 시간 전에라도 죽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다들 불쌍해. 하지만 내가 죽으면 좀 편해질 테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니야, 뭣 하러 말을 해. 그냥 보여 주면 돼.> 그는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눈짓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데리고 가…… 안쓰러워...... 그리고 당신도......」 그는 <용서해 줘>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가게 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쳐 말할 힘조차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듣겠지.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통증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이봐, 너, 어디로 간 거야?>
그는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뭐, 거기 있으라고 해.>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로 갔지?> 그는 그동한 익숙해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중략)
이 말을 들은 이반 일리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도중에 멈추더니 온몸을 쭉 뻗었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죽음,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 그러니까 실패, 실망, 구겨짐, 쓰라림...... 이런 것들과 친해지고 받아들이는 연습이야 말로 죽기 전에 죽어 지금 여기서 자유를 사는 것이 된다. 죽기 전에 죽으면, 이반 일리치의 말처럼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란 것이 없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진다. 오늘, 계획 세운 바 없이 2021년 마지막 날로서 적절한 하루를 보냈다. 마치 올해의 배움을 총정리하듯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시간과 함께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줌으로 드리는 교회 송구영신 예배에서 짧은 묵상을 인도할 준비를 한다. 죽기 전에 죽어서 얻는 선물을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이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이다. 2021년 내면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나를 이렇게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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