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7

 

 

어서 와, 잠깐만! 이거 한 10분 보면 끝나요.” 현관문 열어주시고 바로 다시 소파에 가 앉으시더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뭔가 낯선 장면이다. 선생님과 드라마라... 드라마에 빠진 나의 () 현자(賢者)’ 최 선생님이라니! 한 손에 리모컨을 들고 넋을 놓고 계신 모습이 낯설고도 친근하여 웃음이 나왔다. “쯧쯧쯧,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어리석은 거지. 끝났네. 아아, 예고편 나오는구나. 잠깐만, 정 선생.” 그렇게 독백에 예고편까지 보시고 나의 최 선생님으로 돌아오셨다. 물론 표정은 아직 저 세상. 푹 빠지신 드라마는 몇 년 전에 방영한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나는 드라마는 못 봤지만, 작가인 노희경을 좋아한다. 포스터 이미지가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신구... 내로라 하는 노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참! 당해야 알지, 암만, 암만(아직 드라마 속에 계심). 아이고, 정 선생. 내가 사람 앉혀놓고... 코로나로 어디 잘 나가질 못해서 심심하다니까 아들이 넷플릭슨지 뭔지를 연결해 줬어요. 그걸로 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말야. 노인네들 얘기라 보기 싫은데 또 궁금해서 보다 보니 끊을 수가 없네. 우습지?”

     보기 싫은데 다음 편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게 드라마의 묘미예요. 하하, 선생님 <디어 마이 프렌즈> 보시는 거죠? 재미있으세요?

     재미 없수다! 노인네 치매 걸리고 암 걸리는 얘기가 뭐 재밌어? , 이 드라마를 아네. 정 선생도 봤어요? 유명했었나 봐? 나야 노인네들 얘기니까 심심풀이로 보는 건데, 젊은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보겠나?

     재미없어도 보는 젊은이가 있을 걸요. 헤헤. 선생님도 재미없는데 보시잖아요. 완전 재미없게 보시던데요. 화면으로 들어가셔서 대화도 하시던데, 재미없어서 그러셨죠? 저는 안 봤어요. 재미없어서. 헤헤.

     화면으로 들어가긴! 고현정인가, 하는 배우가 제 엄마랑 그렇게 싸우더니 암 걸린 엄마 보면서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가슴 아파서 그랬지. 마침 그 장면에서 정 선생이 들어와서, 조금 더 본 거야.

     맞아요, 선생님. 재미없으신데 그냥 약간 가슴 아프고, 막막 공감되고 그래서 화면으로 들어갔다 나오신 거예요. 히히.

      어허, 지금 나 놀리는 거구나. 으이그, 그래. 노인네가 드라마에 빠져서 침 좀 흘렸다. 됐냐? 됐어?

     (함께 와하하하 웃는다.)

     그런데 선생님, 낯설긴 한데 참 좋아요. 드라마에 빠져 있으신 모습요. 인간적이시랄까요? 어쩐지 드라마와 선생님은 잘 어울리질 않잖아요. 헤헤.

     왜 아니야. 내가 평생 드라마는 담쌓고 살았지. 볼 시간이 있었어야지! 이제 좀 봐보려 해도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안돼요. 집중도 안 되고. 그런데 코로나로 이 일 저 일 다 취소되고, 집으로 오던 상담도 줄고 하니 심심한 거야. 아들이 와서 넷플릭스에서 이거 봐바라, 저거 봐바라 하기에 보기 시작했더니 시간은 잘 가더라고. 심심해. 너무 시간이 안 가. 일없이 하루 보내려니 얼마나 지루한지 모르겠어요.

     아아... 선생님...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복 받았지. 그동안은 뭐 심심하다, 어쩌다, 혼자 밥 먹는 게 쓸쓸하다 했지만, 늘 일이 있었잖우. 노인네들이 이러고 살아. 아하, 그래서 저 드라마가 재밌나보다. 노인네들이 친구가 있잖아. 심심할 겨를이 없는 노인네들이네.

     오호! 인정하셨어요. 재밌으시다고! 하하하.

     으이그, 증말. 그래, 재밌다, 재밌어. 좋아하는 얼굴 좀 보소. 장난꾸러기야. 드라마 잘 만들었어. 치매, , 황혼 이혼... 다 있을 법하게 얘기를 꾸며놨더만. 그나저나 정 선생도 봤어?

     아뇨, 저는 그 드라마 작가에 관심이 많아서요. 알고는 있었어요. 어쩐지 포스터가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떠세요? 선생님. 궁금해요. 현실적으로 그려진 노년의 이야기를 보시는 게요.

 

내가 최 선생님이 많이 편해졌나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질문이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치매, 요양병원, 독거노인의 쓸쓸함 같은 것은 민망하여 입에 올릴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어쩐지 이제 편하게 말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노인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는데 말이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래요

 

     에잇, 현실적이긴 뭐가 현실적이야. 판타지야!

     그래요? 리얼하게 그렸다는 평을 본 것 같은데요. 치매 와서 요양병원 가는 김혜자 씨 보고 펑펑 울었다는 글 읽은 것 같아서요. 아하, 장르가 판타지였어요? 몰랐네요.

     어라, 잘 속네. 이번엔 내가 이겼다! 허허. 장르가 판타지가 아니라 드라마니까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다 있을 법한 얘기고, 연기들도 잘하니까 리얼해요. 나한테 닥칠 일이기도 하겠고. 그런데 좀 심사가 뒤틀리더라고. 다 좋은데, 저런 친구들이 어딨어! 싶어요. , 저런 친구들이 있으면 아무 걱정 없겠네 싶고. , 말하다 보니 진짜 그러네. 심술이 자꾸 나는 게 부러워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선생님, 드라마 제목이 <디어 마이 프렌즈>인가 보죠?

     맞아, 맞아. 어려서부터 함께 희노애락 나눈 좋은 친구들 얘기예요. 치매, , 앞뒤 꽉 막힌 꼰대 얘기가 아니라 노년의 우정이 주제예요. 드라마가 그렇지.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걸 유발해. 저런 좋은 친구들 나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나 봐.

     선생님, 그러니까 드라마죠오~ 드라마를 너무 안 보셔서 그래요. 이제 입문하셨으니 드라마 많이 보세요. 논문지도 하시듯 분석하며 보지 마시구요. 히히.

     그런가? 여튼, 시간은 잘 가서 좋아요.

     선생님 친구분들 있으시잖아요. 같이 여행도 가시고 하셨잖아요. 하긴 요즘은 여행은커녕 만나시기도 어려우시죠?

     그렇지. 코로나 아니어도, 다들 이제 몸이 안 따라줘서 해외여행 못 간 지는 꽤 됐고. 봄가을 날씨 좋을 때는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은 좀 했는데, 그것도 못하네요. 이러다 코로나 끝나도 여행은커녕 전처럼 만날 수나 있을까 싶어요. 몸들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니까. 집에 있으니 맨, 유튜브나 붙들고 있고, 카카오톡에 황당한 영상이나 올리고, 아주들 힘들어요. 어떨 땐 영상 올리는 걸로 싸움도 한다니까.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아하, 선생님 진짜! 저 말이죠... 그런 게 힘들어서 친구들 단톡방에서 나온 적 있어요. 참다 참다 한마디 하고 나와버렸다니까요. 한창 바쁜데 카톡, 카톡 울려서 보면 영양가 없는 얘기, 근거도 없는 뉴스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거예요. 안 볼 수도 없고요. 다들 좋다 어떻다 하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하고요. 생각이 달라서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단톡방 규칙도 정해보고 그랬거든요. , 그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욱해서 나와버렸어요.

     오호, 정 선생이 성질부릴 줄도 알아?

     그럼요, 선생님 저 성질 더러... 아니, 저 까칠해요. 자꾸 선생님 앞에서 막말을... 히히. 저 이러다가 친구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나이 들수록 친구가 보험이라는데요.

     보험?

     네, 보험요. 친구들 모임에 목숨 거는 친구가 있어요. 결국 남는 건 친구다, 애들 키워봐야 결국 다 떠나고, 남편은 짐밖에 되지 않는다, 노년에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재밌게 지내야 한다. 그러면서 늘 보험이라고 하죠. 모임이 깨질까 전전긍긍이에요. 제가 단톡방 나왔을 때, 기겁하고 절 찾아왔다니까요. 나중에 후회한다면서요. 그때 친구가 그랬어요. 보험이라고.

     재밌네, 보험! 보험 사기당할라 조심하라고 해요. 공들여 부은 우정 보험에 사기당할 수 있다. 본전도 못 찾을 수 있다고. 허허.

     보험 사기? 그럴 듯 하네요. 아하, 보험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네 싶다가도 뭔가 좀 찜찜했거든요. 쟤가 저렇게 애쓰는데 바라는 것처럼 될까, 싶은 거예요. 친구 모임 지키느라 제일 애쓰고 걱정이 많은데요. 그래서 정작 친구들 때문에 행복해 보이진 않거든요.

     하긴 노인만 심심하고 노인만 두렵겠어요? 다들 심심하고 각자 다 외롭고 그래. 지금 외로우니 나중 외로움은 더 큰 걱정이 되고... 내가 그 드라마가 그래서 좋다니까. 우리 모두 그리는 따뜻한 우정 같은 게 있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또 놀리려고 저 눈동자 굴리는 거 봐라!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 푹 빠져서!

     히히, 인정하셨으니까 봐 드릴게요. (선생님께 다 들리는 혼잣말) 히히 선생님 놀리는 게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그래, 늙은이 놀려먹어 좋겠다. (멀리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시며) 드라마에서 김혜자 씨와 나문희 씨 보면서 죽은 친구 생각이 났어요. 벌써 5년이 됐어. 나랑 참 다른데 잘 맞는 친구였거든. 그 친구가 꼭 정 선생처럼 우스개소리 잘하고 그랬어요.

     전에 말씀하셨던 친구분이요? 양평 나들이 함께 다니셨다는.

     그래, 맞아! 여기저기 나를 많이 데리고 다녔지. 나는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고, 학교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그 친구는 일찍 결혼하여 아이들 키우고 성당 열심히 다니며 봉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바쁘기도 했고, 먼저 연락하고 그러는 성격이 못 되거든. 늘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하고, 어딜 가자, 뭘 같이 하자면서 끌고 다니곤 했어요. 남편과 부모님 보내드리고 힘들 때 곁을 지켰던 친구고요.

     아, 각별하셨군요!

     각별... 그렇지. 각별한 친구지. 맞아요. (한참 말을 잇지 못하신다) 선물 같은 친구예요. 정 선생 친구 말마따나 나이 들수록 친구가 꼭 필요한 것 맞아요. 그런데 좋은 친구는 보험료 내듯 해서 얻는 게 아니야. 그 좋은 친구를 얻자고 내가 지불한 게 없거든.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에요.

 

서로 선물 같은 친구

 

이걸 겸손이라고 해야 할까? 선물로 얻은 친구라니. 늘 쉽고 편하게 말씀하셔도 가볍게 하시는 말씀은 없다.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지만, 신앙의 용어로 표현하시는 일도 별로 없다. 지나치리만큼 이성적인 선생님이 맥락 없이 선물이라고 하시니 낯설다. 뭐라도 여쭤보고 싶은데 어쩐지 침범하기 어려운 침묵에 나도 입을 닫았다. 좋은 친구는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내 좋은 친구들과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지? 친구 얼굴 몇이 떠오른다.

 

     어쩌다 한 동네 태어났고, 한 학교에 다녔거나 어떤 환경에서 마주친 존재 아니겠소? 같은 공간에 있다고 다 친구가 되진 않았을 텐데, 성격이든 뭐든 통하는 것이 있으니 친구가 되었겠지. 친구가 되었어도 이사를 하거나 환경이 달라지면 멀어지기도 하잖아요. 내 보기에 친구는 환경과 성격의 산물이에요.

     오호, 산물에 점 하나만 바꾸면 선물이네요.

     그러네. 산물이 선물이 되는 게 친구네. 내가 이 드라마에 왜 이렇게 빠져드나 싶었더니 그 친구 그리는 마음이었 봐.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그립고 보고 싶고 그러네요.

    선생님, 그런데 그저 선물이라고 하시는 건 좀 그래요. 지나치게 겸손하신 건 아닌가요? 그 친구분께도 분명 선생님이좋은 친구셨을 텐데요.

     당연하지. 나도 그 친구에게 선물이 되었을 거라 믿어요. , 일방적인 사랑이었다고 들려? C. S. 루이스 알죠? <네 가지 사랑>이라는 책이 있어요. 오래전 읽었지만 인상 깊게 남은 것들이 있어요. 루이스는 개인의식이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 맺는 관계가 우정이라고 해요. 에로스나 부모의 자녀 사랑 같은 애정보다 더 숭고한 사랑으로 보는 것 같아요. 나도 거기 동의해요. 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자기들의 사랑에 매몰되죠. 하지만 친구들은 나란히 앉아 공통된 관심사에 함께 빠진다는 거예요. 친구가 둘일 필요도 없어. 셋도 넷도, 더 많은 사람과의 우정이 동시에 가능한 거죠. 젊은 한때 에로스 사랑이 강한 때가 있고, 아이를 키우거나 뭐든 돌보는 일을 할 때 부성애나 모성애가 필요한 시절도 있겠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멀어지는 때가 와요. 그때 필요한 것이 우정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늙을수록 친구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가 되고요. 그런데 우정이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야. 보험료 내듯 관리해서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 선생님은 정말 찐 친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럼. 찐 친구를 말하지 가짜 친구 얘기를 하는 거겠어?

     가짜 친구가 많죠. SNS에 친구라 불리는 가짜 친구가 많아요. 선생님. 페친이라고, 페이스북의 친구가 있잖아요. ‘친구라는 이름의 인맥 구축 장인 것 같아요. 프로필 밑에 친구의 숫자가 뜨는데 저는 그걸 볼 때마다 야릇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친구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SNS에서 친구 숫자가 많은 것은 그저 얼마나 유명한지 보여주는 지표예요. 유명한 누구누구와 친구를 맺고, 같이 밥을 먹었다, 만났다 하는 걸 족족 사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저는 그런 글들이 오히려 외롭다, 친구가 필요하다로 읽혀요.

     그렇기도 하네. 나야 그쪽 세계는 모르니까. 어쨌든 좋은 친구는 하루아침에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지요. 대가를 많이 치러야지.

     엇, 선생님. 선물이라고 하셨으면서요! 대가는 또 무신 말씀요?

     대가가 있지. 인생 최고의 것을 얻는 건데. 그러면 선물로 온 친구와 더 좋은 친구 되기 위한 대가라고 합시다. 아니면 그냥 보험이라고 하든지, 적금이라고 하든지. (또 한참 말씀이 없으시다) 내 친구 말이에요. 일생에 그런 친구 하나 있어서 참 좋았구나 싶네.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학 때 단짝 친구로 만나 인생 굽이굽이 여러 산을 넘었어요. 내가 공부하러 나갔을 때는 거의 연락 끊고 산 적도 있고, 대놓고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오해도 있었고, 뭔가 서운해서 멀어진 적도 있어요. 진짜 친구가 된 건 오십 줄에 들어서였던 것 같아요. 오래도록 서로 풀리지 않던 마음이 있었는데, 속 다 내놓고 얘기하다 보니 유치하게도 서로에게 질투 같은 것이 있었더라고. 내가 없는 거 친구만 누리는 것 같아 부러웠던 거지.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늙어가던 시절이 참 좋았어요. 내 인생의 선물 같아요. 남편이나 아들과 다른 것 같아요. 함께한 오랜 시간, 그 시간 동안 보일 꼴 못 보일 꼴 다 보인 것이 대가라면 대가예요. 관리하지 않았어.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봐요.

     어, 선생님. 그건 저도 동의해요. 제가 청년들 상담하면서 그런 얘기 자주 하거든요.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한, 그저 연애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한 건강한 연애는 불가능하다고요. 그렇군요! 좋은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군요.

     그러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정 선생은 친구들 단톡방에서 탈출해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요! 다시 불려 들어갔죠. 창피했죠.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 들어주는 상담가 역할 하면서 성숙한 인격자 연기 제대로 했었는데 다 망가졌어요. , 그런데 희한한 건요. 그때부터 애들이 서로 조심하고 다른 친구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이전보다 나아졌어요.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대가를 잘 치렀네! 진실해지려면 갈등을 피할 수 없어. 하지만 그걸 감수하기만 하면 다른 관계가 된다고. 그럴 수 있는 친구는 인생에 몇 없으니, 그렇게 조금씩 망가지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 봐요.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가 친구에 대한 그런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적당히 가면 쓰고 포장하지 않고, 감정 다 드러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우정 말이에요. 하긴 뭐, 실제로 그게 쉽겠냐만 그래도 보기 좋아요. 실제로 눈앞에 없다고 꼭 없는 건 아니니까.

     네? 없으면 없는 거죠. 드라마 속 친구가 내 친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난 있어. 눈에 안 보여도. 내 친구 천국 가고 여기선 볼 수 없지만, 내겐 있어요. 그 친구와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있어요. 믿어지지 않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 사무치는데 슬프지만은 않아요. 나한테 그렇게 좋은 친구가 있었단 사실이 변하지 않거든. 그 친구 생각하면,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해 주던 생각하면 어쩐지 내 인생 잘 산 것 같고, 내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그래요. 살아 있는 거지. 안 그래? 친구가 내 앞에 있다니까.

     어, .... 선생님 저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경지 같아요.

     하하하, 친구가 내 앞에 있어. 요기, 요기! 젊은 친구! 정 선생이 내 친구야. 늘그막에 만난 좋은 친구. 너무 늦게 든 보험인가? 나는 우정을 알아요. 그 친구가 알려주고 떠났거든. 누구와도, 어디서도 친구가 될 수 있어. 물론 아무나와 그리 될 수는 없지만.

     네에... , 친구요? 스승님이신데... 하아...

     스승님을 그렇게 종일 놀려먹냐? 하하.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여성 철학자를 좋아하는데요. 키케로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우정, 노년에 관해 쓴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논평하면서 우정의 즐거움을 농담과 뒷담화라고 했어요. 맞는 말 같애. 마음 편히 누군가 뒷담화 할 수 있고, 농담할 수 있는 사이. 철학자에 따르면 나는 정 선생과 찐 친구야.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여기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황이 되었고, 그리고 마음 깊이 감동이 되었다. 이후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내 좋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이 상해 누군가 뒷담화를 하고 나서 나를 어떻게 볼까걱정되지 않는 친구. 언제든 놀려먹고 장난 걸 수 있는 친구이다. 웬일로 전화냐고 묻는데 보고 싶어서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내 진심 또한 알아차렸을 것이다. 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정, 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더 잘 알아가려 한다. 우정이라는 선물을 누리는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이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시니어 매일성경> 2022 1,2월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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