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사랑하는

여행의 추억은 책 한 권의 추억이다. 여행 며칠 입을 옷을 구색 맞춰 챙기는 것은 조금 귀찮지만 설레는 일이다. 귀찮지도 않으면서 그보다 더 설레는 것은 여행 중 읽을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짜릿한 것은 여행지 어느 서점에 불쑥 들어가 충동적으로 고른 책과의 만남. 1월 경주 여행 중 황리단길의 작은 책방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샀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속 책 리스트는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데. 그중 하나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책 한 권을 만나는 일도 여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마음에 찰랑거리는 그 주제가 어떤 책을 불러들이는 것 아닌가 싶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넷의 심경을 자주 떠올리기 때문이겠고. 오즈를 향하는 네 개의 절실함을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도로시, 두뇌를 가지고 싶은 허수아비, 심장을 원하는 양철나무꾼과 용기가 필요한 사자는 오즈로 가는 노란 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절실한 갈망의 소유자들이다.

 

갈망은 결핍감에서 비롯한다. 이 여행은 내적 결핍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행, 일종의 성배 신화일 지 모르겠다. 무언가 치명적으로 결핍되었다 느끼는 '결핍감'의 존재들의 찾고자 하는 갈망의 여정이다. 지혜와 좋은 생각의 소유자로 여행에서 만나는 문제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허수아비가 없는 것이 '뇌'라니. 심장을 잃어버렸다는 양철나무꾼은 사랑과 연민의 존재이다.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인물이다. 사자 역시 '없다는 느낌'에 매여 있을 뿐 필요할 때 빛을 발하는 용기 이미 가진 것이다. 여행단의 리더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란 길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여정이다. 내가 그러하듯, 영적 여정을 걷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집을 향한 그리움이 이끄는 여행이다. 집을 잃었다는 느낌, 그 결핍감.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는 도로시 안의 결핍감의 총체 인지 모르겠다. 힘(용기), 사랑, 지성은 에니어그램 3 중심(장, 가슴, 머리)의 결핍과 그대로 포개진다. 결핍감으로 고착되어 그것만 발달시키게 되어 장형, 가슴형, 머리형으로만 사는 인간이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경주 여행은 결핍감의 소산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서 생긴 구멍을 메우려 가고 또 가고 또 가게 되는 것 같다.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 일정이라 '주일 성수' 하겠다고 않았다. <신앙 사춘기>에서 썼고, 그 이후 강의에서 (지난주 금요일 중쇄 기념 강연에서도) 여러 번 떠들었으니 구구절절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고. 여하튼 이번이 세 번째다. 불국사 앞에서 찍은 반 친구들 사진에 내가 없다는 느낌 그 결핍감으로 갈 때마다 찍어서 얻게 된 '세월 담은 가족사진'이다. 결핍, 결핍감에 대해 생각한다. 자기 결핍감을 인식하고 마주하는 태도가 한 존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많이 생각한다. 어떤 결핍은 파괴적인 중독에 닿고, 어떤 결핍은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하는 힘과 사랑과 지혜를 발견하여 자기 자신이 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노란 길로 이끌게 되는지. 결핍, 결핍감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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