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를 낳은 곳은 사당동이다. 총신대 맞은편에 집이 있었다.

내 젊은 날 강남의 내로라하는 유치원에서 근무하면서 사립유치원의 내막을 알고 있는터라...

웬만하면 대학부속 유치원이나 제대로 교육한다고 하는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별 것도 아니다. 학부모 눈치보지 않고 대학 유아교육과에서 배운 그대로 소신껏 교육하는 곳을 원하는 정도였으니까.

암튼, 그래서 '나중에 채윤이 크면 총신대 부속유치원에 보내야지'하고 생각했었다.


헌데, 채윤이 7개월 때 갑자기 친정엄마가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양육 때문에 하남시로 이사를 해서는 난감해졌다. 하남시에서 보낼 유치원이 없는 것이다. (돌도 안 된 아이 유치원을 벌써 걱정하는 극성엄마?)

일단 공교육이 되는 초등학교 때부터는 학교에 관한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이 든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주어진 악조건 하에서 최대한 열심히 키워야겠지만 유치원은 선택가능성이 있으니까.


암튼, 하남시에서 가장 가까운 제대로 된 유치원은 잠실에 있는 새세대 육영회 안에 있는 유치원이었다. 그 때 그렇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 채윤이가 여섯 살 즈음에는 잠실 근처로 이사해서 육영회 유치원 보낼 수 있게해 주세요.'하고...


그렇게 기도했지만 채윤이가 다섯 살일 때 우리는 덕소에 있었고 덕소에 있는 사립유치원 2년을 다녔다. 교육비 장난 아니었고, 선생님들이 친절하기는 했지만 학부모 눈치보며 구미에 맞는 말 하는 것에만 선수였다.


그리고 곡절 끝에 일곱 살 채윤이는 지금 마석 가는 길, 산 속에 있는 시골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종일반 어머니 회의가 있다고 해서  유치원에 갔던 지난 금요일. 채윤이 교실에 앉아서 바라보는 창 밖은 온통 산이다. '점심 먹고 나서는 밖에서 한 시간 정도 놀아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엄마들이 기겁을 한다. '한 시간 씩이나 놀아요? 그럼 공부는 언제해요?'하고...

아~ 그 말에 나는 쾌지를 불렀다. 이 좋은 공기에 한 시간 동안 온갖 에너지를 발산하며 넓디 넓은 운동장을 누빌 채윤이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래 유치원은 그런 곳이다. 엄마빠 불러다 행사하고, 글자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맘껏 놀도록, 정말 잘 놀도록 하는 곳이 유치원이다!!

그 때 6년 전에 했던 기도가 생각났다. 지금도 기도수첩 어딘가를 뒤져보면 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 채윤이 제대로 된 유치원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했더 그 기도. 나는 잊었는데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요즘 채윤이가 집에 와서 자주 하는 말이다. '엄마! 병설 유치원은 안 되는 게 없어. 컴퓨터 해도 되고, 피아노도 만져도 돼. 놀잇감도 많고 어떤 놀잇감이라도 만지면 안 되는 거 없어.' 한다. 사립유치원을 다니면서 어땠는지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기도도 했었다. '하나님! 최소한 채윤이 아침밥을 먹이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여유있게 배웅하며 보낼 수 있는 일을 하게해주세요. 아니면 집에서 전업주부로 쉬게해 주세요'  매일 아침 아침을 해서 먹이고, 오후 간식을 직접 만들어 싸서 내 차에 태워서 유치원에 들여보낼 수 있다. 이 역시 나는 잊었던 기도를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 것이다.


나 혼자 양육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한 일. 기도 들으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당신의 손으로 키우시니 이 어찌 찬양 안할까?

200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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