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다. 채윤이 확진, 나 확진, 현승이 확진. 잠재적 확진자 JP 항시 대기. 한 보름을 네 식구가 집에 머물며 지냈다. 채윤이는 슬슬 알바 출근을 하고, 아무리 기다리도 안 걸리는 JP는 슈퍼 항체 인정하고 출근하고, 하나 씩 나가다 드디어 오늘 격리 해제 현승이가 등교를 했다. 이런 오전 얼마만인가. 혼자만의 점심식사라니. 

 

기도하다 분심이 김치전으로 흘러갔다. 점심은 김치전이닷. 통김치전으로 배추 두 잎만 부쳐서 먹어야지 했는데 밀가루가 없네. 하루 이틀 장을 보지 말아야지 결심한데다, 밀가루 한 봉지 사러 바로 앞 편의점에 나갈 최소한의 열정도 없다. 그러나 김치전은 먹고 싶고... 뒤적뒤적 뒤적뒤적, 어떡하지?........................... 월남쌈을 발견했다! 밀가루를 대신할 탄수화물이 되겠다. 김치를 쫑쫑 썰어 설탕, 깨소금,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월남쌈으로 싸서 기름에 구웠다. 또 성공! 웬만한 도토리 전병보다 더 맛있네! 비주얼로는 김치전을 압도하고. 혼자 정말 맛있게 먹었다.  

 

김치 참 좋아한다. 나이 들수록 김치가 더 좋다. 김치가 먹고 싶어서 밥을 먹는다. 김치에는 탄수화물이지! 그래서 가끔 김치전이 땡기는 것도 같고. 맛있는 김치가 있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다. 막 한 밥이나 누룽지가 있으면 최고의 밥상! 나 정말 김치 좋아하는구나. 여기까지 갔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혼자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칫국물, 깍두기 국물, 아니면 김칫국물 넣고 끓인 동태찌개를 먹었다. 다른 아무 반찬 없이. 그게 그렇게 궁상맞아 보이고 싫었었다. 돈 아끼려고 저러지. 엄마를 위한 모든 것에 인색한 것이,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 참으로 보기 싫었다.

 

엄마도 밥이랑 김치 콜라보의 그 맛을 좋아했구나! 깨달음이 꽈광, 하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가난해서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처럼 먹을 것에 대단한 관심이 없고, 있는 걸로 최소한으로 먹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그 중에 밥과 김치가 좋았구나! 그렇지. 김치에는 밥이고 밥엔 김치지. 엄마와 달리 늘 새로운 게 좋고,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게 기쁨인 나는 밥을 대체할 다른 탄수화물을 찾아냈을 뿐이네.

 

코로나 빠져나온 낯선 어느 날 김치 월남쌈을 만들어 구웠고. 엄마 생각을 했다. 맛있게 먹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생각하고 생각해도 만날 수 없는 엄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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