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붉은 꽃이 없으니, 그 꽃 붉은 열흘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날 다음 날, 햇볕이 유순해지는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잠시 고민하다 왼쪽. 그러면 탄천 버리고 옆 동네 아파트 둘레길을 거쳐 마북공원으로 가는 것이다. 같은 산책길이라도 늘 새로운 이유가 열 개는 되지만, 으뜸은 새와 아기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이름 모르는 새들과, 이름 모르는 아기들. 한 아기를 만났다. 눈이 맞았다. 웃는 나를 따라 웃는다. 엄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우리 둘이 눈 맞은 걸 그때야 알아챈다. 아기에게 손을 흔든다. 아기도 따라서 빠이빠이 한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 뒤돌아보니, 아기는 계속 손을 흔들고, 엄마가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인사를 한다. 감사하다니! 제가 감사하죠. ^^ 아기들은 낯선 사람의 웃음을 외면하는 일이 없다. 웃어주거나, 뚱한 얼굴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뚫어져라 바라보거나. 웃어줘도 좋고, 뚱하게 바라봐줘도 좋다. 외면하는 일이 없다. 어린이날 다음 날의 산책이었다. 전날 학교 "음악과 영성" 수업에서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저 아가와 눈 맞추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어린이 정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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