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수업에서 반장을 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수업마다 일종의 조교가 필요하고, 반장이 그 역할이다. 뭘 시킨다고 하는 성격이 아닌데 좋아하는 교수님이라 덥석 하겠다고 했다. 좋은 수업의 반장으로 즐겁게 한 학기 보내고 있다. 학비 비싸다 비싸다 노래를 하지만, 이번 학기 세 과목 수업이 모두 좋아서 아깝지가 않다. 자본주의적 사고를 거두고 마음 가는대로 계산한다면, 한 학기 수업료 분을 한 과목 당 낼 만큼의 가치가 있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반장 일이라는 게 이런 것이다.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온 줌 수업 주소 단톡에 퍼 나르기. 교수님께 사소한 민원 접수하기. 반장으로서 가장 뿌듯한 일은 그거였다. 교수님의 사이버 캠퍼스 계정에 문제가 생겨서 강의 줌 주소를 이미지 파일로 카톡방에 올려주시는 거다. 반장으로서 학우들을 위하여 이 한 몸 불태우리!!! 돋보기 끼고 이미지 확대해 놓고는 한 땀 한 땀 쳐서 텍스트로 만들어 올려 바로 링크 접속이 되도록 하였다. 내가 연구소에선 소장이라. 연구소 샘들이 최고의 조교로 알아서 줌 열어, 줌 주소 올려, 중간에 문제 생기면 일일이 개인 톡 하고 통화해서 문제 해결해. 이런 대접받는 소장인데. 돋보기 끼고 "흠... 대문자 N, 그다음 소문자 q... 이건 뭐야? 대문자 I야? 소문자 l이야?...." 이런 봉사를 하였다. 너무나 즐거웠다. 사소한 민원처리 또한 즐거웠다.

바쁘고 분주한 스승의 날을 보냈다. 각 수업에서 반장 주도로 스승의 날을 챙겨달라는 원우회의 부탁. 이런 거 또 아무렇게나 하고 싶지 않은 태생적 이벤트주의자로서 아드레날린 방출이다. 줌 수업 상황에 맞춘 여러 아이디어들이 오가곤 했다. 손편지 써서 ppt로 띄우기... 등. 손편지는 다른 과목에서 이미 썼고. <음악과 영성> 수업이라 음악을 활용해보려 했으나, 일천한 콘텐츠로 교수님 앞에서 뭘 하기도 그렇고. 채윤에게 하나 연주해 줄래? 했다가 오버하지 말라고 까이고.

학우들 부담되지 않고, 교수님 너무 민망하지 않게 조촐한 서프라이즈를 도모했다. 교수님 강의 시작하는데 마이크 켜고 난입하여 "저, 신부님 드릴 말씀 있는데요..."를 신호로 학우들은 A4 용지에 감사 메시지를 써서 카메라에 비추기! 몇 초 안 되는 이벤트였는데 화면 캡쳐 하랴, 상황 살피랴, 심쫄이었다. 부끄러워하시는 교수님 얼굴을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이 와중에 나는 팬심 가득 담아 교수님 성함으로 삼행지를 지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없는 시간 쪼개서 발품 팔아 선물을 준비하고, 연이은 강의와 원고 부담을 뒤로 하고 직접 전달하러 나섰다. 또 하나의 반장 임무였다. 가톨릭 신학교 교정을 걸어보고 좋은 시간이었다. 그냥 좋은 시간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땅에 서는 행운을 얻었다.(그 땅에 대해선 언젠가 공개하리!) "학생이 준비되면 선생이 온다." 중국 속담이란다. 나이 들어, 경계를 넘어가서 배우는 용기 내길 잘했다 싶은 것은 좋은 선생님들과의 만남이다. 감사한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몸으로 뛸 수 있어서 더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었다. 꽃집이 없어서 버스 한 정거장을 다시 거슬러 걸어가 꽃을 사고, 골목을 헤집어 문방구를 찾아 카드를 사고... 중고생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해마다 스승의 날 마음 한 구석 슬픔이 일렁였다. 오늘의 내가 혼자 된 게 아닌데. 감사할 선생님이 한둘 아닌데. 정작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선생님이 없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그렇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된 예전 어느 날의 배움이 더는 싫지 않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선생님들이 더는 밉지 않다. 그렇다고 기쁘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고마운 선생님들이 너무 멀리 계시다. 마음의 감사를 그저 혼자 여러 번 드린다.

오랜만에 반장 완장을 차고 지난날 모든 스승님들께 하듯 선물과 이벤트와 꽃과 카드를 준비하니 그냥 좋았다.

스승의 날인 5월15일은 주일이었다. 어느 교회 청년부 예배에 강의를 갔는데, 광고하던 청년이 담당 목사님을 호명하더니 스승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여기도 또 서프라이즈 당하신 스승님! 꽃다발 안은 목사님이 놀라고 민망하여 스승의 노래를 듣고 계시는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얼마 만의 스승의 노래인가. 아, 목사도 스승이었지. 목사도 언젠가는 스승이었다. 남편이 도사님으로 불리던 강도사 시절, 친구네와 휴양림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스승의 날 지난 스승의 주일이었는데, 주일예배 마치고 늦게 합류한 남편이 커다란 꽃다발에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와 바비큐장이 환해졌던 기억이 아련하다.

우리에겐 모두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 필요한데, 스승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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