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음악을 하든 뭘하든 꼭 잘했으면 하는 게 있다.
부부가 함께 공감하고 바라는 부분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글쓰기' 즉 '인문학적 사고'를 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학교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이것을 위해서 논술학원이나 독서교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책하고 친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엄마빠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지가 좋아서 책을 읽어야지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니.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그거는 자신 있는 대목. 집 안에 쌓인 게 책이고  밟히는 게 책이고 엄마빠, 특히 아빠는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니까.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빠 때문에 책이 싫어요. 엄마가 책좀 읽게 가만좀 놔두라고 신경질 부리고 그랬어요' 이럴지도 모를 일.

채윤이에게 맞는 글쓰기 교육이 시작되었다. 채윤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용감한 엄마'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글자교육을 시키지 않은 건 채윤이가 스스로 배우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리리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배우고 싶어하는 날은 오지 않았고 까막눈을 면하지 못한 채 초딩이 되고 말았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글자에 주눅이 들어서 글자로 하는 모든 일에 주눅이 들어버리는.....사실 그래서 글자교육을 안시킨건데 '나는 글씨를 잘 몰라서 쪽팔리다'라는 것을 제대로 체득하게 한 것이다. 오 마이 갓! 무엇보다 채윤이가 이렇게 글자에 대한 감각이 늦게 발달할 줄을 몰랐다. 확실히 채윤이는 시각적인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약하다.

처음 학교에서 그림일기 숙제를 내주어서 하다보니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하니까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고 예쁘게 그리는 것 까지는 좋고, 무엇을 쓸까? 엄마랑 같이 얘기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이제 써 봐. 하면 두 문장 정도의 상투적인 글이 나오는 것이다.
말로 할 때는 그 좋은 표현들이 글로는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왜 그럴까? 글자에 대한 위축 때문이었다. 글자로 자신을 표현하려면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으니 자유로운 표현이 되질 않는 것이엇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일단 무엇에 대해서 쓸 지 얘기를 하게 해놓고 내가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쓰게 하였다. 받아 적는 게 힘들어서 요즘은 엄마 자신이 녹음기가 되어 기억을 했다가 한 문장 한 문장씩 녹취를 풀어낸다. 희한하다. 연필만 잡으면 지가 한 얘기도 생각이 안 떠오르고 머리가 하얘지나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도와줘야 할까? 이렇게 돕는 것이 옳은 방법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학 2학년 쯤 되어서 글자가 완전히 숙달이 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일기 쓰면서 늘 강조하는 것이 '글은 말과 같애. 말하는 것처럼, 엄마한테 재밌게 얘기해주는 것처럼 쓰면 최고의 글이야'이렇게 반복해서 가르친다.

채윤이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예전에 아버지가 내 글짓기 숙제를 도와주셨었다는 생각이 났다. '반공 선언문 쓰기' 숙제였는데 '유비무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셨고 그걸 받아 적었었다. '아~ 아버지가 내 글짓기를 봐 주신 적이 있구나. 이렇게 채윤이 같은 나를 앉혀 놓고 시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눈시울이 잠깐 뜨거웠었다. 그 이후로 나는 반공 선언문 쓰기에서 늘 상을 받았고 글짓기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언제까지 채윤이를 옆에 앉혀 놓고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기도한다.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채윤이 현승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람이 되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책을 통해 공부하고, 자신의 말과 삶에 겉도는 글이 아니라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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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좋은데 다른 엄마들이랑 다른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채윤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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