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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날 남한산성에서.
한결 성숙해진 표정의 채윤이


며칠 전 일입니다. 채윤이가 학교 준비물에 바둑돌이 있어서 아침부터 문방구에 가서 챙겨 보냈지요. 저녁에 집에 왔는데 '엄마! 나 오늘 준비물 안 갖고 왔다고 선생님한테 손바닥 맞았다' 이러는 거예요. 분명히 바둑돌을 가져갔는데 왜 맞어?

얘긴즉슨, 아침에 가자마자 가방에서 한 번 꺼내서 봤는데 옆 짝꿍이 그걸 가져가서 자기 거라고 우겼답니다. 그래서 채윤이는 나가서 맞고 수업 시간 내내 땡땡이 치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바둑돌을 꺼내 놓습니다. 아니 가방에서 나오는 건 뭐야? 또.
또 채윤인 얘긴즉슨, 일단 자기가 나가서 맞고 들어왔는데 수업 마칠 즈음이 짝이 떠들다가 앞으로 벌 받으러 나갔답니다. 그랬더니 앞에 앉았던 친국가 '채윤아! 바둑돌 니가 그냥 가져가' 했답니다. 그래서 자기 가방에 넣어 왔답니다.

이런 앞 뒤가 안 맞는 얘기를 듣고는 도대체 어떻게 된 시츄에이션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맞지 말고 선생님한테 얘기를 해야지. 준비물 챙겨 왔는데 짝이 가져갔어요' 말을 하지 그랬어. 했던...
'그랬다가 짝이 또 안 가져갔다고 하고 그러면 싸움이 나고 싸움이 나면 서로 불편해지잖아. 그래서 말 안했어' 합니다. 불편해질까봐 그냥 억울하게 맞았다? 이건 김채윤식 방법이 아닌데...

채윤이랑 마주앉아 상황을 정리해보니 그랬습니다. 짝이 가져갔을 확률이 있지만 그건 심증만 있지 확증이 없는 일입니다. 앞에 친구가 그렇게 말한 걸 보니 앞친구가 증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암튼 확실한 건 없습니다. 여기까지 얘기를 하고나서는 채윤이가 이러네요.
"엄마! 그럼 이 바둑돌 내일 다시 종서(짝)한테 갖다줘야겠다. 이게 진짜 종서 꺼일 수도 있잖아. 갖다주고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장난꾸러기 종서가 뭐라고 할까? 이히히히..."하네요. 엄마는 딸이 억울하게 맞고 온 것도 속상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한데 당사자는 그렇지도 않나봐요.

다음 날 학교에 같이 가서 짝꿍과 앞에 친구 만나서 삼자대면을 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상황의 전말을 편지로 써서 선생님께 보냈습니다. 결국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짝이 채윤이 껄 가져다가 자기 꺼라고 우긴게 맞았습니다.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를 비롯해서 가까이서 채윤이 나고 자라는 걸 본 많은 사람들이 가진 채윤이에 대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똑 부러지고, 상황을 주도하기 좋아하고, 쿨하고, 억울한 거 못 참고 말로 자기 생각을 다 표현하고...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얘는 이대로 자라면 자기가 리더가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 될 수 있겠다. 사람들 밑에도 들어갈 줄 알고, 손해보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사실 채윤이에게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년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주도권 다툼으로 늘 성격이 강한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갈등을 겪고 힘들어 하기도 했었는데요..
요즘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애 기를 너무 죽였나?' 하는 생각도 살짝 해보고요. 애들이 자라면서 엄마 얼굴도 나오다 아빠 얼굴도 나오다 하면서 얼굴이 수 십 번 바뀐다고 하는 것처럼 성격도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면서 '진짜 자기'가 만들어져 가겠지 싶습니다.

암튼 한결 성숙해진 채윤이.
엄마 버젼이 빨리 빨리 업글이 돼서 자라가는 채윤이 속도에 맞춰야 할텐데요...



이 복숭아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후로도 몇 달 동안 아니 그 다음 해 복숭아가 새로 나올 때까지 계속 됐었답니다.
'할머니! 나는 그 때요 복숭아를 만질려고 했던 게 아니라 덮어 놀려고 했던 거예요' 이러면서요.
올 해도 처음 나온 복숭아를 드시면서 할머니는 채윤이의 그 맹랑한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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