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친구 천 명이 넘었다. 친구 되자고 먼저 요청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신앙 사춘기] 연재 때문에 급격하게 늘었고, 그 이후에는 페친이 많은 사람을 페친 삼아 페친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청 때문에 친구가 늘었다. 페북에 재입성 했을 때는 나름대로 친구 요청도 봐 가면서 허락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거의 무조건 허락했다. 사실 그 시점부터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나는 틀렸어! 요즘도 계속 친구요청이 들어오는데, 목사님들이 대부분이다. 요청을 받아들이고 한 두 개의 포스팅이 올라오면 팔로잉을 끊는다. 내 인생 가장 훌륭한 목회자라 여기는 내 남편이 설교질 하는 것도 못 봐주는데 모르는 목사님의 설교(질)을 참아주랴. 

 

천성적으로 삐딱해서 그렇다. 말하는 것, 대화 참 좋아하는데 가르치는 태도는 못 들어주겠다. 겁이 많아서 싸우지는 못하니까, 피하고 본다. 일단 피하고 영영 보지 않기로 하는 편이다. 정보와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SNS이고, 거의 유일한 것이 페북이니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배워도 누구에게 배울지, 어떤 매체를 배울지는 '내그 결쯩은드!!!!' 천성적으로 삐뚜룸하니까. 페이스북은 뉴스를 보고, 뉴스에 대한 논평을 보고, 정치인들의 실시간 행보를 보고, 지원하는 단체들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아, 무엇보다 새책 정보를 얻는 곳이다.

 

구독자로서는 그런 자세를 갖고 있고, 발행자로서는 일에 대한 '홍보 게시판'이 우선적인 쓰임새이다. 순간적인 현시욕이 솟구칠 때가 있는데 그 찰나의 욕구를 풀어 놓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글은 '전체 공개'이다. 십수 년 블로그에 별별 일상을 다 공개해왔는데 새삼스레 '친구 공개'로 낯 가릴 게 무엇인가. 처음 블로글 할 때와 여러 형편이 달라져 가릴 것 가리기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천성과 관성은 어쩔 수 없다. 조금 숨기고 싶지만 숨기지 못한다. 여러 모로 불리한 것을 알지만 하던 짓을 멈추지 못한다. 옛 애인이 들어와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헉,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의 지질한 일상을 나불나불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남편이 '당신 블로그에 쓴 글들 페북에도 올려'라는 이례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은 반응이다. 별다른 설명 하지 않아도 담긴 뜻을 안다. 답신으로 '페친이 1000명, 불특정다수, 일기 공개 불가'라고 보냈다. 남편 역시 알아 들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깨달았다. 나는 틀렸어! 페북에서 난 틀렸으니 당신들 행복해! 내가 모르는 천 명이 내 찰나적 일기를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불편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뭘 쓰고 싶다가도 페친 천 명을 생각하면 이내 접게 된다. 정말 난 틀렸어! 당신들이라도 행복하라구! 나 역시 모르거나 관심 없는 페친 사람의 찰나적 일기를 보지 않기 위해 언팔을 한다. (진짜로 존중하기에 언팔하는 거임) 

 

블로그만이 안전한 곳이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러니 블로그에 오시는 블친들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페북에서는 '좋아요' 받는 맛이 삼삼한데. 블로그에서는 무슨 칭찬 받는 재미가 없다. 블로그에 공감 하트 누르는 기능 있는 거 아시나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다. 댓글은 못 쓰더라도 그거라도 하나 씩 눌러주시기 바란다. 천성적으로 악질이라 인성이 삐뚜룸하면서 동시에 칭찬에는 무척 연연하는 편이다. 공감 하트 하나에도 기분이 업되고 날아가고 그렇다. 부탁 드린다. 애정 어린 블친의 하트 하나, 모르는 페친의 좋아요 천 개 부럽지 않다.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 산책  (0) 2019.05.04
백만 송이 장미  (0) 2019.02.14
검색 본능  (2) 2018.11.11
출렁다리와 일상  (0) 2018.10.25
아침의 기도  (2) 2018.10.21



정가 13,500원 짜리 책을 20,000원에 싸게 샀다.

정말이다. 싸게 산 거다.

절판된 책인데 알라딘 온라인 중고에는 없고,

회원 중고에 올라온 몇 권의 책이 29,000원에서 57,000원까지 나와있다.

누군가 꼭 갖고 싶어하는 책을 귀신 같이 알고 

이렇듯 어마어마한 웃돈 얹어 파는 사람들이 있더라. 

오프라인 중고매장에는 인천에 한 권, 대구에 한 권이 있다.

인천 정도는 마음 먹고 가볼 만 한데 시간이란 게 없다.


긴 방학을 맞아 빈둥빈둥 하는 현승이에게 기대 없이 던져봤다.

남는 게 시간인데, 시간 뒀다 뭐 할래?

엄마 책이나 한 권 사다주라.

콜!

책값에 맥도날드 햄버거 값, 차비 포한 2만 원에 퉁쳤다.

그래도 만 원은 앉아서 번 게 된다.


2008년에 나온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라는 책이다.

감정을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정혜신 박사의 최근 작 <당신이 옳다>는 당신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도 감정은 자신의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내적 여정, 치유 글쓰기, 꿈과 영성생활.

특별한 집단여정을 안내하면서 감정이 어떻게 '문'이 되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고 의식화 하는 사람이다.


감정에 대해 강의에 도움 받은 책과 저자가 많다.

훌륭한 분들이고, 놀라운 가르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벽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모든 분들이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의 몸으로 살며 느끼는 감정이란 남자의 그것일 수 없다,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것들이 남자와 같을 수 없다, 고 

나의 경험, 그녀들의 경험이 자꾸 말한다. 


20대 후반에 만난 '여성주의' 심리상담가 미리암 그린스팬의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을 다시 읽다 보니, 

20년 전 내가 도대체 뭘 읽었었나, 싶다. 

알아듣긴 하면서 밑줄을 쳤을까?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의 감정을 쓴 책이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 공부>이다.

그러니 여느 감정 공부와 같을 리 없다.


요즘 서점가에 흔한 것이 감정에 관한 책이지만,

여성의 몸에 담긴 여성의 감정을 말하는 책을 만나기는 어렵다.

여성의 몸이란 오랫동안 남성들의 욕구 대상으로서의 몸이었다.

롤로 메이가 말한 것처럼 '여성은 자기 몸에 갇힌 생물학적 죄수'이다. 

갇힌 몸에 담긴 감정이란, 겹겹이 포승줄로 묶인 감정이란.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 감정을 배우려면 웃돈을 많이 얹어줘야 하는 것이 옳겠다.

그러니 13,500원 짜리 책이 6,800원 달고 중고매장에 꽂혀 있도록 두는 것은 옳지 않고,

20,000원 아니라 30,000원 쯤 들여서라도 구해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자 딸이 아니라 남자 아들의 시간과 노동, 즉 '효도 페이'를 활용한 것,

그 아들이 기꺼이 활용 당해준 것도 어쩐지 아름다운 일이다.






"여보, 우리 저녁에 뭐 먹어?"

이런 불온한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여보, 저녁은 치킨 시켜 먹을까?" 라고 한다. 

이 어정쩡한 주체적 태도를 어여삐 여겨 내가 말한다.

"아냐, 저번에 맛있다던 통삼겹살 구이 할 건데."

"힘들잖아. 그냥 뭐 시켜먹자." 

훈훈도 하여라.


이사 와서 한 달 내내 오가며 기웃거렸던 

집 들어오는 길목의 '누룽지 백숙'을 먹기로 한다.

끌차를 끌고 내려가 장을 보고 주문한 백숙을 찾아온다.

귀때기가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다.

엑스레이 같은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예뻐서 사진 찍으려 했더니

달은 안 잡히고 그의 형광색 잠바에 촛점이 꽂힌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게맛살, 채윤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을 섞어 전을 부쳤다.

그리하여 이 전의 이름은 '채윤전'이니!

전을 부치는데 채윤이 동생 현승이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주방으로 온다.

새로 알게 된 김광석 노래라며, 들어보라며.

김광석 노래에 맞춰 전을 굽자니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달달한 희열 같은 것이 코 끝을 간지른다.

일주일의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주일 저녁,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일상의 무게로 어깨는 쳐지고 고개는 떨궈지지만

알 수 없는 좋은 느낌이 텅 빈 마음을 채운다.


포장해 온 백숙과 채윤전을 배부르게 먹고 치우느라 분주한데

이번엔 흥얼흥얼 부르는 현승이의 노래가 귀를 간지른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이다.

이런 저런 일상의 짐이 무겁지만 

살아야 할 이유 역시 이 일상이다.


양손에 무거운 짐 다 들고 저만치 걸어가는 형광색 잠바가 있는 세상.

덕분에 내 손은 비어 있어 달을 찍고, 하늘을 찍고,

달을 빙자하여 형광 잠바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찍었다.  

e편한세상! 이 편한 세상에 산다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bbath diary 25: 산 밑으로  (0) 2019.04.01
복수 유발자  (0) 2019.02.03
흔들리는 세대의 연인들  (2) 2018.12.26
또 안녕, 젊은 날  (4) 2018.12.16
깨가 쏟아짐  (0) 2018.08.23



# 혼차


"엄마 요즘도 커피 열심히 하시니?"

"어, 차로 갈아타신 것 같은데요. 차를 많이 드세요."

라고 채윤이가 어느 바리스타 님을 만나 얘기 나누었다는데.

사실이다.

낮 하루 지내며 몸과 마음에 쌓인 미세먼지를 저녁마다 차로 씻어내고 있다.

남편은 설교 준비로, 아이들은 주일학교 캠프로(아, 하나는 학생, 하나는 선생님으로 갔다!)

가족을 모두 교회에 바친 토요일엔 심지어 혼차다.


# 혼공


"그만큼 배웠으면 많이 배웠지, 여자가 뭘 더 배운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의 귀에 늘 쟁쟁함에도, 쟁쟁하기 때문에 참으로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더는 배우러 다닐 일이 없겠지 싶었는데,

가장 시간이 없는 때, 100시간 짜리로 뭔가 또 배우러 다닌다.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인데, 가 앉아 있지면 조금 한심하다.

연구소 열어놓고 아직 개소식 계속식도 해야 하고,

써야 할, 쓰고 싶은 글도 쌓여 있고,

만나자 하시는 분도 많은데 일주일 이틀을 오롯이 바쳐야 한다니.

대학 1학년 때 고민했던 페미니즘 담론을 듣고 있을 때는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싶다.

하도 한심해서 가방 싸들고 나오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제일 한심하고,

혼공의 나날이 외롭기만 하다.


# 혼감(동)


세 번에 한 번은 좋은 강사가 온다.

열 번에 한 번은 어마어마한게 좋은 강사가 온다.

어제 강의는 근래 몇 년 사이 들었던 설교와 강의 통틀어 최고의 배움이었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한다고, 이러고 앉아 시간을 버리고!

했던 속말들이 쏙 들어갔다.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것으로 100시간 낭비가 아깝지 않군!

책으로 만났던 '비온뒤무지개재단'의 한채윤 선생의 강의였다.

집에 와 그의 글을 다시 읽었는데, 전에 봤던 그 글이 아니다. 

삶을 듣고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글을 읽으니 한 글자 한 글자 살아 움직이는 글이었다.


# 혼독


강의 들으며 언급되는 사람에 꽂히면 바로 알라딘에 검색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덕분에 매일매일 택배지만.

덕분에 매일 저녁이 설렌다.

오늘처럼 오롯이 혼자인 밤이라면 더욱.

소설로 만났던 캐릴 길리건을 성폭 강의 교재에서 만나고,

바로 검색했더니 표지부터 끌리는 신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초록이 얼마나 예쁘고 마음에 드는지.


이 밤아 끝나지 마라.

혼독의 밤아, 끝나지 마라.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든까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2) 2019.02.19
첫 마지막 성경  (2) 2019.02.10
노안, 멀리 보라는 원시  (0) 2018.12.31
나는 누구인가  (0) 2018.10.07
생의 마지막 인사 '다들 고마웠어'  (0) 2018.09.26


그렇다, 아직 2018년이 끝나지 않았다.

2018 이름으로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것이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다.

송구영신 예배 전후로 날아든 똑같은 문자와 카카카오 톡들에 답신을 하지 못했다.

그중 연배가 높으신 분이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있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 하시면 인정! 

그러나 단체로 쏜 메시지에는 답하지 안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또 시간의 인위적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기도 하다.


2018년을 마무리 하는 글 세 개를 쓰고 싶었으니 이걸 써야 끝이다.

실은 사진만 걸어둔 채 '비공개'로 오래 묵혀서 조금 질려 버린 건 사실이지만.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시간과 비용을 거룩하게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개소식이란 이름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비용 낭비를 연거푸 9회를 하고,

마지막 개소식인 10회는 남편들을 초대했다.

와서 밥만 먹는 줄 알았던 벌쭘한 남자들(세상에 벌쭘하지 않은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넷이 모였다.

앉혀 놓고 개소식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개소식 프로그램이라 하면, 소장의 세바시(세상을 못 바꾸는 시간 40분) 강의가 주메뉴이다.

밥만 먹겠다는 남편들에게 굳이 이 강의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는......

흠, 우리는 순수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마음성장연구소인지,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려야 할 의미도 권리도 있으니까.


정말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강의를 마치고 남편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었다. 

"여보, 미안! 돈 버는 연구소 아니야"

공부 시키느라 돈 많이 든 여자가 이제나 저제나 좀 벌어 오려나 했는데,

드디어 연구소를 내고 상담을 하고 제대로 강의를 한다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다만 크게 기뻐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우리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뭉쳤겠어.

당신이 사는 방식이고, 당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다.


연구원 은경 쌤의 짝꿍인 백 이사님(남편들을 강제로 연구소 이사로 추대함)도 이러고 살고 계시니.

직원 '예배'말고 '복지' 챙기는 사장님

시의 적절게 기사가 나왔을 뿐, 

남편 네 사람 모두 '의미 있게' 사는 것에의 고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고민 놓아버리면 마음 편할 것을,

그걸 하지 못해 때로 죄책감과 자기 비판으로 괴로워 하기도 한다.


연구소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상담도 하고 만남도 하는 게 분명한데 

지속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 낫고 나아지는 '나음터'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함께 하는 네 사람이 안전한 사람들이고,

넷의 삶과 인격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불편한 지지로 인해

더욱 확증을 얻는 안전함 아닌가.



'꽃보다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 크는 약  (0) 2019.03.25
이우 청년 북클럽  (2) 2019.02.17
나이 맛있게 먹기  (2) 2019.01.04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2018-2  (2) 2019.01.01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2018-1  (0) 2018.12.25


무엇보다 체력이 달려서 아이들 치료교육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 하나로 일주일은 버틸 힘을 얻기에 멈출 수가 없다.

새해 첫 수업 헬로송을 부를 땐 늘 계획된 도발을 한다. 

“안녕, 다섯 살 해뜰반” 하자마자 아이들이 피를 토하며 달려든다. 

“아니에요오오오, 여서 딸이에요오오오, 여서 딸 돼써요오오오오오오(핏대)”

가장 태연하게 “무슨 소리야. 너희 다섯 살 반이잖아” 하면 

이제 핏대 세우고 앞으로 나와서 절규를 한다. “여!서!딸! 여섯 살이에요” 

“지난 번에 다섯 살이었잖아. 어쩌다 여섯 살이 됐어?” 여섯 살 된 비법이 난무한다. 

엄마가 여섯 살이래요, 떡국 먹었어요, 키가 커졌어요, 우유 먹었어요. 

그러다 한 녀석이 "나이를 먹었어요오~"

뭐라고? 나이를 먹었다고? 나이는 어떤 맛인데?

하자마자 이제 뻥이 난무를 한다. 

동그랗게 생겼는데 초콜릿 맛이에요. 

하트 모양이에요. 

야야,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 같애? 

열다섯 살이요, 열세 살이요! ㅎㅎㅎㅎ (계속해, 계속) 이십 삼살이요, 

(자꾸 듣다보니 씁쓸)

 “얘들아, 실은 선생님은 나이 먹는 게 싫어”라고 고백해 버렸다. 

그러자 한 녀석이. 

“아이 참, 션샘미. 골고루 먹어야 해요!”


파, 당근, 나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기!




십여 년 영성공부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철학상담 4학기였다.

수많은 철학자를, 영성가를 소개받고 읽고 만났지만 돌아보면 가슴에 남은 것은 한 마디다.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인간 본성이 그러하다.

칭찬과 존경의 말에 목마르면서도 그 반대의 소리에 귀가 커진다.

곱씹고 묵상하는 것은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의 표정과 말이며

부러 찾아가 맴도는 곳은 나를 홀대하는 곳이다. 


모양새를 위한 송년회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한 일 년이 정말 소중했다, 는 송년회였다.

갚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셔도 되는 걸까, 싶게 대접 받는다.

일일이 손으로 한 예쁘고 맛있는 음식이며, 데코레이션이다.


그분의 손은 내게 사도행전 '루디아'의 손이었다.

나도 요리하는 것 참 좋아하는데,

음식 만드는 것에 정이 떨어질 정도로 슬프고 비루한 식사 준비의 나날을 보냈다.

그분이 건넨 밑반찬과 레시피가 도착한 날은 '삶은 요리'였던 내 인생이

'죽음의 요리'가 되던 시절이었다.


마음 성장을 위한 모임이라고 해서 내적인 것만 판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몸이, 마음의 길과 일상의 여정이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만 중요한 것처럼 치우쳐버린다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다.

마음 공부를 위한 모임일수록 일상의 이야기가 살아 있고,

먹을 것이 풍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에서 늘 좋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이유이다.

마음 공부를 위해서 급조(맞다, 급조가 맞다. 순간 떠오른 분들께 급 메시지를 보내어 구성되었으니)

모임인 꿈모임이 밤에 꾸는 꿈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무엇보다 존경과 신뢰를 나눴다.


어쩌다 이렇게 좋은 모임이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었고 이끄미로 있었으니 내가 잘한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늘 '나'라는 무거운 존재 하나를 끌고 다닌다.

어디선들 내가 다르게 했을까.

함께 모인 '나'들의 역동이라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어 놓는 아이처럼 자기 내면을, 가진 것을 그냥 내놓았기 때문일 터.

송년 모임의 키워드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내 '천사'였다.

누가 천사인지는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선물교환으로 받은 앞치마를 한 내가 마지막으로 

천사를 찾아 싸바, 싸바, 싸바, 춤을 추었으니 마지막 천사는 '나'인 걸로.

모든 '나'인 걸로.


"사랑이 메마른 곳을 일부러 찾아 상처받지 말고, 사랑 받는 곳으로 가야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