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아서 손에 넣었다! 남편 득템!

 

연말 연시 준비할 일이 많아 가까운 곳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섰다. 이천 쌀밥을 운운하며 갔는데 쌀밥도 보리밥도 아닌 인도 커리를 먹고 근처 도자기 파는 곳에 들렀다가 몇 년 찾아 헤맨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인사동 같은 델 가면 우물, 마중물, 펌프... 하면서 돌아다니곤 했었는데 늘 실패. 도자기 가게 아이쇼핑 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내가 발견했다. "여보, 이거 봐. 당신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아이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찾던 거라고!!! 두 번도 망설이지 않고 펌프 모형, 옹기, 물을 올리는 진짜 펌프를 샀다. 

 

이천 아울렛에 가서 엄청 싸게 나온 신발을 보고, 마침 신발이 필요하다며 들었다 놨다 결국 놓는 것으로 끝났다. 사라고, 내가 사주겠다 해도 아직 신을만 하다며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신발에 열리지 않는 지갑이 신지도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펌프 모형에는 열린 것이다. 나같으먼 신발을 사겠네! 바보! 놀려보지만. 실리보다 명분을, 실용보다 의미를 사는 남편이 고맙고 좋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찾아다니는 열정과 기꺼이 사고마는 낭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거룩한 낭비'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중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생존하고, 결국 생존하여 치유자가 된 사람이기에 그렇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문학가, 예술가들이 생생한 작품을 남기고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일이 많다. 그 생생한 기록을 읽다보면 일상으로 돌아와 계속 살아남는 것이 차라리 기적처럼 느껴진다. 빅터 플랭클을 오래, 결국 살아남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자신이 던진 질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왜 어떤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가?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 그 의미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극한의 사선 앞에서 버티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의미치료'를 창안하였다.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치유 가능하다! 단지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치료책만은 아닌 것 같다.

 

일상의 다른 말은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미세 부조리의 축척'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은혜로 덮고, 다 주님의 뜻이 있겠지 싶어 수용하고 살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상이 몇 개나 되는가. 부조리한 일상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말로 ‘의미'의 발견이다. 부조리 속에서 조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성과 논리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용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돈이면 옷과 신발을 사서 멋지게 보이는 게 낫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펌프 장식물을 사서 끼고 있는 것이 무슨 유익이람. 돈도 안 되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집어 치우라는 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위한 희생으로 자기를 소진하지 말라는 조언을 거스르는 바보같음 말이다. 의미를 발견한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내가 발견한 십자가의 그분, 그 의미에 대한 깊은 헌신이다.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확신할 때 인간은 엄청난 힘을 얻는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상징들이 맡고 있는 일몫이다... 자기 존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그런 의미를 느끼지 못할 대 인간은 자신을 비참한 존재로 인식한다. 만일 자신을 떠돌아 다니는 양탄자 직공(천막 만드는 사람)에서 더도 덜도 아닌 존로 인식했다면 사도 바울은 실제로 아무것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그의 삶의 진실은, 자신이 '주의 사자'라고 하는 내적인 확신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의견은 역사의 증언이나 후세의 판단 이전에 이미 퇴색하고 없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신을 확실하게 잡아 쥐게 한 신화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위대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신화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인간과 상징> 카를 융

 

의미와 상징은 얼마나 소중한 낭비인가. 인간을 거룩한 존재, 초월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적으로 깊이 품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의례와 상징물들. 손에 쥔 연기처럼 빠져가는 낭비, 그러나 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인다. 이 부조리한 일상을 믿음으로 견디게 하는 힘은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의미' 그것이다.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낭비는 과연 무엇인가. 

 

카를 융의 말처럼 인생에 '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 종교의 상징일 텐데. 인생을 더 천박하고 일천한 것으로 추락시키는 종교가, 교회가 견딜 수 없는 오늘. '실용'을 팔아 '명분'을 사는, 의미와 상징을 사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자기를 소비하는 바보 하나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  

 

 

12월 첫 주일. 거실 한 켠에 성탄 트리와 대림초를 준비해놓고 피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대림초를 세 식구에게 부탁했다. "하루 지나고 당신 오면 같이 켜." 하더니 셋이서 불을 밝히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2019년 대림초가 밝혀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엄마 오늘 뭐해?'를 심심하면 던져보는 채윤이랑 성탄절 이브에 데이트 했다. 대학생활 1년을 열심히 달려온 채윤이는 기말고사 끝날 날만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놀아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뭘 먹어도 뭘 사도 좋은 것이다. 언제 크냐, 언제 크냐 했었는데. 엄마보다 더 커져서.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도 기다린 보람은 딱히 없다. 산타할아버지 오셨다 가지도 않고, 마라나타! 주님이 성탄절 아침에 짜잔 나타나 레미제라블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내 마음에도 그분의 풍성함이나 평화 같은 것은, 사실 먼먼 일이다. 그런데 베란다 앞의 풍경에서 산타의 흔적, 아니 주님 마음이 힐끗 보이는 것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이 생각나는 풍경.

 

 

'크쓰맛쓰에는 추뽀글 크쓰맛쓰에는 사당을 당신가 만나는 그나룰 기오칼께요'  교회 성탄행사에서 행복한 뒤통수를 맞았다. 기쁨도 기대도 없는 덤덤한 성탄절을 은준이, 은하 아기 천사 둘의 노래로 기쁨의 폭탄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작된 아기 엄마 아빠들의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힘들어 지칠 때나 가슴 아플 때도 나에겐 주님 밖에 없어요' 일을 하고, 일을 찾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기다리며 지난한 1년 보냈을 젊은 부부의 노래가, 그들 품에 안은 아기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빠져서 듣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주일학교(초, 중, 고) 아이들의 성극은 자기극복의 신화였다. 비포 사춘기, 한창 사춘기, 에프터 사춘기로 구성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극을 한다니. 가능할까 싶었는데... 와, 연기력이 또 터졌다. 압권은 목자 셋이었는데 우리집 에프터 사춘기er 현승이도 끼어있다. 얼마 전 목자 배역 맡은 세 명의 이름을 듣고 미리 빵 터졌다. 한창 사춘기 한 명과 주일학교 통틀틀어 가장 내향적인 아이 둘. 아, 진짜 목자 멤버 죽이는 걸! 분장하고 나와 서있는 것 자체로 감동이고 웃음이었다. 난 현승가 수염 붙이고 나와 섰는 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승이 안식년 1년 동안 꾸준히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기타 잡은 지는 몇 년인데 제 방 침대 위에서만 띵띵거리는 기타인데. 드디어 침대 밖 연주를 들어보았다. 침대에서 나오고, 집안에서 나오고, 제 안에서 나와 드러내고 발휘해주길 오래오래 기다렸다. 사춘기에서 나오면서 현승이 안에서 어른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기쁨이다. 아, 현승이 태명이 '기쁨이'였는데. 

 

 

왼팔 오십견 지나가 살만 하더니 오른팔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다시 약간 무능의 삶이다. 요리칼 제대로 잡아본 지가 언제던가. 세팅 해놓으면 근사하지만 막상 크게 팔 쓸 일 없는 라끌렛으로 성탄절 저녁식사다. 넷이 달려들어 다듬고 씻고 차리면 뚝딱이다. 저녁 언제 먹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느니 달려들어 함께 준비한다. '언제 클래, 언제 클래' 하며 기다렸던 그 '언제'가 왔다. 다 커서 제 몫의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살아갈) 아이들과 마주 앉은 성탄절 식탁은 성인 넷이다.

오지 않는 것 같아도 오는 것이, 반드시 오는 것이 그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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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아버지 돌아가신지 38년 되는 날이다. 38년. 38년이라니! 3년도, 8년도 아니고 38년이라니. 하루 전날, 12월15일에 동생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밴지, 생신예밴지, 명절인지. 아이들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사촌들과 재밌게 노는 날. 축제 같은 날이다. 남편이 예배 인도를 하고, 내가 기도했다. 툭 나온 첫문장에 이끌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이끌려 고향 한산에 다녀왔다.

 

"하나님, 38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그 겨울에는 세 식구가 남아 너무도 추웠습니다." 연이어  마 3:16-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본문으로 남편이 설교를 했다. 주제는 단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 엄밀하게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신으로 인간이 된 아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견뎌야 할 고통을 견뎌냈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38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내게 아버지 사랑에 관한 기억을 나눠 달라고 하였다. 사춘기 아들이 둘, 우리 현승이 귀염둥이 막내까지 아들 넷이 조르르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가 수도꼭지라 기도할 때부터 '고장'이 났지만. 장군인 동생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아까 누나가 기도할 때 첫 문장이... 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 참 추웠다. 아니,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는 늘 추웠다. 그 전을 생각하면 네 식구가 함께 있고, 한 마디로 따뜻함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예배 마치고 밥을 먹으며 동생은 네 식구가 함께 '십계' 영화를 보고 가족탕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는 없는 기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이전의 기억까지도 다 검은 칠을 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자꾸 '전과 후'라는 말을 했다. 같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지만, 같은 죽음이지만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내게는 'before' 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추도예배 마친 다음 날, 12월 16일. 남편과 속초 하루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꾼 꿈의 연장으로 고향의 그 길에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돌아시고, 엄마랑 동생 바로 서울로 이사하고, 혼자 집사님 댁에 남겨져 있던 몇 개월.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그리워도 맘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지냈던 시간. 학교 가던 그 논길이 생각 났다. 12월 16일, 그곳은 얼마나 추운 걸까? 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남편이 동행해주었고, 오가는 근 여섯 시간 운전해주었고, 추웠던 날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어주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혼자인 듯, 그러나 뒤를 따르는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38년 전의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어보았다. 문제는 오직 '추위'로 기억되는 그 겨울을 느껴고자 세 시간을 달려갔는데... 날이 너무 푹해서, 심지어 올라오는 길에 살짝 차 에어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추웠던 기억'은 떠나보내라고 더운 입김 불어 넣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의 윗입술이 불룩불룩 하더니 툭 터져버렸다.  뭐 힘든 일이 있다고 입술이 터졌어? 월요일 운전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말없이 김기사 노릇 했지만 몸이 됐구나! 상처의 치유는 누군가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 먹어주는 심정으로 견뎌줘야만 치유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다면 다뤄지지 않은 상처들 때문일 텐데. 내 인생 치명적 상처로 가장 많이 찔리고 아팠을 사람이 남편이다. 한산에 다녀온 하루처럼, 함께 하는 세월 내내 내 상처로부터 흐르는 쓴 물을 묵묵히 마셔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13년의 행복이 그대로 상실감과 결핍이 되어 38년 째 실락원의 방황이다. 내적 여정을 통해 그 기억을 새롭게 써가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나 제가 누웠던 들것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듯 이제 제대로 털고 일어나려 한다. 더는 그 추위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자기연민의 늪에서 나오겠다는 뜻이다. 

 

올라오는 길, 겨울도 봄도 아닌 푸근한 날에 갈대밭을 거닐었다. 남편은 신성리 갈대밭이 참 좋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다행이다. 남편에게도 좋았던 곳이 있어서. 아내의 짐을 함께 지고 슬픔에 동참하는 착한 남편에게 그분이 주신 선물인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13년 딱 함께 살아주고 떠나 그리움만 남긴 아버지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가만한 사람, 가만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저 사람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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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진 2019.12.28 04:58

    이 글을 읽기 2시간 전 쯤..
    제 가슴의 답답함을 들어주고 안아주는 남편의 존재가 감사했었는데.. 저도 이 터널을 묵묵히 걷다보면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아갈 수 있겠죠?

 

 

 

 

'나음터'라 불리는 연구소의 시간 1년, 한 해가 끝나는 12월 송년의 시간이다.

 

기도 중에도 큰 분심이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이다. 소장의 '번쩍 아이디어'에 연구원들이 고생이 많다. 번쩍하는 아이디어는 늘 한 사람의 얼굴과 관련된다. 열심히 연결되며 달려왔고, 마지막 남은 영성과정 세미나를 마무리 하면 되는데... 갑자기 송년 리추얼이 '번쩍!' 하고 튀어나왔다.  

 

잊히지 않는 얼굴이 마음에 많이 담겨 있다. 세미나 참석 후 연락이 끊어진 수강자들.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에 울리고 있고, 기도할 때 떠오르곤 한다.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 마음에 담겨 있다는 것을. 세미나에 와서도 함께 나눌 때 외에는 조용히 앉았다 간 분들이 많으니까. 늘 궁금하고, 연구소 강의나 모임 등에 와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연구소에서 했던 치유 글쓰기니, 성격유형과 영성 강의니, 나를 찾는 수다 같은 것들은 다 마음에 담긴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그 사람이 참석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 행사의 '유발자'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방식이 내게는 참 좋다. 유발자는 모르고, 전혀 새로운 얼굴이 '특별한 수혜자'가 되는 경험을 하고, 만남의 신비에 놀라곤 했으니까.

 

이번 송년회는 하반기 과정에 참여하는 한 분이 '유발자'이다. 한 과정 한 과정 요란하지 않게 오롯이 마음의 길을 따르는 분이다. 직장 일정 때문에 마지막 영성과정에 참여하실 수 없다는 것이 내게 너무 큰 아쉬움이었다. 오롯이 걸어온 반 년의 내적여정에 함께 마침표 잘 찍어드리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을 담고 다니다 '송년회다! 송년회라도 해서 오시게 하자!'

 

송년회 일정 정하고 공지 내보낸 후에 확인 되었다. 직장 행사 일정이 바뀌어서 영성과정 참여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이렇게 이 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시간을 유발하신 것이다 :)

 

'억지로 지는 십자가' 또는 '끌려나와 앉아 은혜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 많지만. 내 인생에도 그런 간증거리는 많지만 남은 인생 '억지로' 하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억지로' 사람을 모으거나, '강권하여' 무엇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은밀한 영성모임을 이끌며 경험적으로 얻은 확신은 좋은 공동체, 성장하는 개인의 필수요건은 '자발성'과 '투명성'이다. 억지로 하면서 '내가 한 게 얼만데' 자기 의를 쌓고, 그렇게 쌓인 '자기 의'는 생명의 에너지 되기 어렵다. 자발성 없는 곳에 자기개방이 있을 수 없으니 개인도 공동체도 생명의 숨을 쉬기 어렵게 된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쁘게 했던 연구소의 작은 일들이 내게, 연구원들의 마음에 생명의 씨앗으로 심겨진 한 해였다. 이 송년회에는 어떤 분들이 올지, 예측불가의 멤버들이 둘러앉아 어떤 생명의 에너지를 나누고 흘려보낼지 상상은 잘 되지 않는다. 내 한 사람의 마음의 자발성과 투명성을 지켜나간다면 무엇이 됐든! 어떠하랴!

 

블로그 벗님들, 함께 해요! 환영합니다!

 

일시 : 2019년 12월 22일(일) 오후 5시 ~ 7시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인원 : 20명

비용 : 만 원 ~ 삼만 원 (참가자가 선택)

         301-0240-4119-71 NH농협,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신청 :  https://bit.ly/348qtk8   문의 : 010-6209-0635

 

  1. BlogIcon larinari 2019.12.16 11:42 신고

    신청 마감되었습니다.

2박3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가고, 바로 다시 1박2일 피정을 다녀오...지 못하고 바로 강의 들으러 갔다 겨우 집에 돌아'왔다'. 두어 주 전 일이다. 몸과 마음이, 영혼이 물러나라고 소리치는 때가 있다. 아이들 어릴 적에 남편이 내게 기도 시간을 주면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얘들아, 엄마는 지금 기도해야 해. 엄마가 기도 안 하면 죽어!" (극약처방 @.@ ) 맞다. 이러다 죽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이 극적인 계획을 세워 몰아 넣으셨다.

 

요 몇 달 주제는 '영적 식별'이다. 피정도, 배움도, 삶도. 일주일 앞두고 피정을 결정했고, 등 뒤에 두고 가는 일상과 일의 복잡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일상과 일의 복잡함이 다 내 마음에 담겼으니 결국 다 끌고 간 셈인가? 완전 기도응답 받고, 은혜 충만, 마음 평안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창의성에는 혀를 내두르며 감동하게 되었다.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하는 적이 없으시고, 내가 그리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여러 인물을 동원하셨으니. 창의성에 더불어 성실함까지!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오백 개 드린다.

 

소그룹에다 대부분 수녀님인 피정 그룹에 가서 첫 인사 나눌 때는 늘 조금 위축된다. 개신교인이라 하면 교회에서 새 신자 대하 듯 신기해서 하거나 어리게 보면서 까꿍, 하는 느낌도 있고. 낯선 자리에 앉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과도한 자기연민도 좀 털어버리기로 했다. 경계를 넘어 가톨릭 영성을 배우러 다닌 지가 10년이 넘었고, 많은 신부님 수녀님께 많은 것을 배웠는데. 에니어그램 / 향심기도 / 영적 식별, 이 세 가지가 지금 여기 나의 영성 생활을 구축하는 세 축이 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 가지를 결정적으로 가르쳐주신 세 분의 수녀님을 동시에 만났다는 것이다. 영적 스승으로 모시는 세 분 스승님을 누가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인가! 그 다음 벌어진 일들, 더 놀랍지만 여기까지만 하련다. 돌아보니 긴 시간, 여러 학기 강의 들으며 많은 무릎을 쳤던 신부님들의 강의도 있는데. 꼭 필요한, 아니 내 몸에 꼭 맞는 가르침은 모두 수녀님들 강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이제는 안다. 여성의 영성을 남성에게 배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영성은 여성들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찬,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인 확신이기에 살짝 자신이 없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니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11월부터 6주간 ‘영적 식별력을 기르는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번 주 마지막 시간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조금씩 가져와 나누기로 하여 풍성한 나눔이었다. 여기서도 검은 수도복 입으신 수녀님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쩌면 정말 여성들의 영성모임은 그 자체로 영성적이다. 잘난 척이 없고, 뭘 많이 안다는 자랑이 없고, 배제가 없고, 쪼개고 분석하는 지적 허세가 없고, 처음 보는 자매와도 마음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정말이다.. 내적 여정을 비롯 여성들의 집단 여정을 오래 이끌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바이다. 환대가 있고, 나눔이 있다. 

 


어느 수녀님께서 어느 수녀님의 영명축일과 또 다른 수녀님의 생일 축하를 위해 2단 케이크를 만들어 오셨는데 장식이 모두 생화이다. 다 먹고 나니 어느 새 꽃들은 투명 볼에 띄워져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피어 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남자네!^^)이 말씀하셨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기쁘고 슬픈, 화가 나고 섭섭하고, 즐겁고, 외롭고...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줄 아는 인류는 ‘여성’이라서 영성은 여성의 것인지 모른다.

 

2박3일 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지 못하고 바로 연구소 1박2일 피정이었다. 2년 동안 꿈집단을 함께한 소중한 벗님들과 마침표 찍는 피정이다. 이 집단 안에서 일어난 말로 다 할 수 없는 치유와 성장의 경험이 연구소 세울 힘이 되어주었다. 2년간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아 ‘여성적인 것의 구원’이란 주제로 나눔과 의례, 먹고 마시는 꿈같은 시간을 가졌다. 강같은 눈물, 폭포 같은 웃음은 기본이다. 여성들의 영성은 이렇다. 작위적 형성(formation)으로 구축하고 쌓지 않아도 그저 삶으로 흐르는 것이 여성들 영성의 형성이다.

 



대림 2주간이 시작된 날,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정말 이름이 그렇다. 해마다 이 즈음, 핀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리 집에선 '대림 선인장'이라 부른다. 대림절 끝이 성탄절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일 년 내내 시들시들 맥아리 없이 보여 꽃 볼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딱 한 송이가 슬쩍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 주님.... 진짜.


오실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신 주님, 

딱 한 송이면 족하다 하시는 거지요?




2년 전 이때,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 화분에서 붉은 꽃이 만발 했는데, 너무 놀라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추운 거실,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발견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게 뭐야!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만발하니, 영락없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자칭 신비주의자, 타칭 이성주의자 남편이 검색하고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래!'


오십견으로 팔을 잘 들지 못하던 즈음이다. 다 접었던 음악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고, 시집살이 하듯 삼시세끼 밥을 했다. 4,5년 일에서 놓여 쓰고 싶은 글이나 쓰고, 젊은 사모님들 집에 불러 책모임 하고, 영성모임 하고, 간간이 강의나 하며 좋은 세월을 지내고 난 뒤였다. 편한 맛을 본 후라 몇 배 더 힘들었다. 하나님, 이 양반이 나를 편하게 두실 리 없지! 내가 편히 지내는 꼴은 못 보신다고! 


난생 처음 '페이 좀 올려주세요'란 말도 하고, 다시 내 몸보다 큰 키보드 끌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삼식이가 된 남편의 삼식을 챙겨야 하는 일이 키보드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신앙 사춘기는 끝난 걸로 스스로 정리한 뒤라 마음대로 침 뱉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안 나는 힘을 내어 무거운 짐 번쩍번쩍 들고 다녔더니 기어코 오십견이 왔다. 등도 못 긁고, 옷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는 중 대림시기가 되었다.


아니, 자기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키보드를? 하면, 괜찮아요! 이래 보여도 힘은 쎄요! 번쩍번쩍 들고 다니며 1년, 어깨는 짖눌렸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도미노로 무너질 것들이 많아서(많다 여겨서) 늘 그랬듯 체중에 넘치는 짐을 지고 다녔다. 짐보다 더 무거웠던 건 바닥에 깔린 자존감이었다. 꼭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축이어서 굽은 어깨 더 굽히고 다닌 1년. 오십견 증상으로 더 짐을 들 수도 없던 대림 시기였다. 그 어간 어느 날, 죽은 것 같은 선인장에서 꽃이 만발했던 것. 누가 뭐라든 나는 아기 예수님 그 분이 피운 위로의 꽃이라고 믿는다. 사실.


상황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더 무거운 날들이었다. 그 사이 오십견은 갔고, 최근엔 '테니스 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있다. 이 역시 키보드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시작했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생명의 연대를 맛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작년 12월 7일에 이사를 했고, 12월 8일에 연구소 첫 개소식을 했다. 딱 일 년이다. 어느 덧 다시 대림시기이다. 단 한 송이의 대림 꽃이 피었다.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더 불평할 힘도 없어 위로의 붉은 꽃 같은 것은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오십견에 오십 송이라면, 테니스 엘보는 한 송이면 된다는 처방입니꽈?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딱 한 송이로도 당신 마음 알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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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 


_칼뱅 『기독교 강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라 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반드시 자기 지식을 변화시킵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 신앙이 처한 위기는 위에 칼뱅이 말한 ‘앎’의 불균형, 즉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과 앎은 차고 넘치는데 자신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앎의 빈약함인지 모르겠습니다.

라캉은 말했습니다. “진리에나 신경 써라. 치유는 저절로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내가 누군지 아는 진리.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치유와 성장의 여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에니어그램 1단계를 시작하여 내 안의 왜곡된 ‘하나님 상’을 만나는 영성과정까지. 한 달에 하루 씩, 여섯 번 피정 같은 만남입니다. 전에 해보지 않은 질문, 전에 해보지 않은 기도의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금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1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0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7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5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19일(금)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하남 나음터 (하남시 아리수로 570 효성해링턴타워 더퍼스트 101-824)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에니어그램 내적여정 토요반]

+ 일시

기본1단계 : 1월 1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기본2단계 : 2월 22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1단계 : 3월 21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심화2단계 : 4월 1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1단계 : 5월 16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영성2단계 : 6월 20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클릭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10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계좌 : 농협 301 - 0240 - 4119 - 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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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19.12.14 09: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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