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서는 [나찾수다 : 나를 찾는 수다]라는 비정기적 수다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2월에는 임신중절(낙태)의 아픔을 나누는 이야기모임입니다. 나음터를 통해 연결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그저 그러려니, 꽁꽁 얼린 감정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중 하나가 임신중절입니다.


법과 윤리의 잣대를 넘어선 진짜 이야기, 우리가 경험한 임신중절이 몸과 마음을 통해 남긴 삶의 무늬들을 이야기합니다. 삶을 내 목소리로 말하고 나누며 연결되는 것의 힘이 있습니다. 연결은 치유입니다. 오셔서 그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셔도 괜찮습니다.

슬퍼도 슬퍼할 수 없는 마음,
비밀스런 상처에 연결되고 싶습니다.

임신중절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임신중절을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계신 분들,
기혼, 비혼, 싱글 여성 나이도 상관 없이 누구라도 환영합니다.

자신의 일이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임신중절 경험을 심리와 여성영성, 페미니즘 공부로 아프게 통과하며 스스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내적 여정의 벗님, 윤주애 선생님이 모임을 이끕니다.

✔일시 : 2020년 02월 12일(수) 10시 30분 ~ 12시 30분
✔장소 : 마음성장연구소 미사 나음터
            (하남시 아리수로 570 효성해링턴타워 더퍼스트 101동 824호)
✔ 인원 : 6명
✔ 비용 : 5,000원 ~ 30,000원 (참자가 선택)
             301-0240-4119-71 NH농협,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 신청 : https://bit.ly/30K0Fe3
✔ 모임지기 : 윤주애

 

분가하며 다 가져온다고 했는데 시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우리 물건이 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 앨범은 꼭 가져와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버님 돌아가시곤 '어머님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날'을 추억하며 들춰보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채윤 현승이 어떤 시기의 사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설에 가서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찍어왔다.

 

현승이 낳고 짧은 조리원 경유하여 엄마 집에 얼마간 가 있었다. 낯선 곳이 너무 힘들고 두려운 현승이는 세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지금까지 한결 같다. 처음 집, 내 뱃속에서 나오던 순간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생애 초기에 그렇게 울어댔다. 그땐 몰랐는데, 저 성격에 터무니 없이 넓고 밝고 시끄러운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겠나 싶다.

 

그나마 사람 몸에 닿아야 울음을 그치는 통에 조리원에서도 친정에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어른들은 총 비상이었다. 돌아가며 안고 흔들고 몸에 붙이고 있어야 했으니. 엄마 집에서 머물던 시간 불편한 마음이 떠오른다. 내 몸이 힘들지만 늙은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것,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하면서 종일 서 있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쓰였다. 채윤이를 보다 주저앉은 허리로 이미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엄마가 울었다. "엄마가 늙어서 조리도 제대로 못혀주고. 니가 찬물이다 손 담그게 허고 그려서 미안허다. 엄마가 늙어서..." 나도 뒤돌아 울었다. 늙은 엄마를 고생시키고 늙은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하고, 이런 내 처지가 가여워서.

 

이 사진은 그 시기 어느 때이다. 가슴에 남아 있는 사진이다. 다시 들여다보니 엄마가 젊었다. 이미 80이 가까운 연세였지만 젊었다. 신생아의 목을 받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팔에 힘이 있고, 아이와 눈 맞추고 어를 수도 있었고... 그러고 보면 늙을 때까지 늙은 것이 아니다. 산후조리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날, 엄마의 늙음이 그렇게 슬펐는데 젊은 늙음이었다. 우리 엄마는 평생 내게 '늙음의 걱정'을 운명처럼 안겼다. 평생 늙었던 엄마, 지금은 더 늙은 엄마가 아직 내 곁에 있다.   

 

패밀리데이는 맨 처음 가정예배의 대체 용어였다. 용어만 대체한 것이 아니고 내용도 코이노니아 가깝게 변형하게 되었다. 분가한 해부터니까 채윤이 일곱 살 쯤일까. 일주일에 한 번 저녁시간을 함께 놀고, 노래하고, 게임하고, 기도하고, 한 방에 모여서 자는 그야말로 가족의 날이었다. 한 해의 첫날, 송구영신 예배 여파로 반드시 늦잠 자게 되는 1월1일에는 '빅패밀리데이'이다. 작년의 10대 뉴스 뽑기(아, 그러고보면 이건 아이들 생기기 전부터 둘이서 했던 놀이)등으로 작년을 돌아보고 새해 소망을 나누는 시간이다. 둘 다 글을 잘 쓰고 읽을 수 있게 된 어느 때부턴가 10대 뉴스 뽑기는 마인드맵 그리기로 바꾸었다.

 

올해엔 신년 특별 새벽기도로 좀처럼 여유가 생기질 않았다. 음력 1월1일이 가까운 날에 2020년 빅패밀리데이를 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며 각자, 또는 가족에게 의미로 기억되는 일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떠올려보기. 네 사람의 한 해가 냇물처럼 각각 흘러가다 하나의 강물로 만난다. 아,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아, 정말 그랬네! 아아, 나도 거기에 쓸 말이 있다! 2019년 마인드맵이 완성되면 작년에 썼던 기도제목을 꺼내 읽어본다. 타임캡슐에서 꺼내는 느낌이다. 여러 소망이, 기도제목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루지지 않는 방식으로 응답되고 있는 것을 힘 들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매년 이 순간 확인하는 것은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2020년을 희망한다. 각자 쓰고 돌아가며 나눈다. 긴 설명 없이도 알 것 같은 기도제목이다.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십수 년을 이어온 가족의 리추얼. 아이들이 자라면서 의미와 깊이가 함께 자란다. 현승이는 '로봇이 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제목을 나눴던 어느 날도 있었는데. 어느 해 썼던 내 기도제목,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청년부 예배 전에 예배당 뒤편에서 커피 내리던 시절, 주일 밤 12시가 되도록 눈물로 마음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을 꿈꾸던 시절, 내 신앙은 광야였다고만 생각했었다. '청년부의 진정한 부흥'이란 익숙한 내 글씨를 보니, 광야였지만 동시에 진정한 부흥의 시간들이었지 싶다. 로봇이 되고 싶은 현승이, 키가 많이 커서 엄마를 넘고 싶었던 채윤이는 소원을 다 이루었다. 로봇 이상의 능력 있는 인간이 되어 있고, 엄마의 키만 넘은 게 아니라 생각의 깊이 까지 추월하고 있으니. 

 

기록, 기록을 하염없이 쌓는 일은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록 위에 기록을 쌓지 않았으면 발견할 수 없는 생의 의미가 있다. 그때 쓰며 알지 못했던 것을 십 년이 지나서 알게 되고, 그때 그렇게 써두었기에 오늘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거듭되는 Family Day를 지나며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우리는 이렇게 늙거나, 조금 후하게 표현하자면 여유로워졌다. 엄마 아빠와 아이 둘이 아니라 자기 색이 분명한 네 사람이  Family로 함께 하는 느낌이다. 머지않아 두 아이는 내 품을 떠나게 될 텐데. '넷'이 아니라 '둘'이 Family로 남을 날이 올 텐데. Family란 이름으로 쌓아온 기억, 그리고 기록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의 Family Day, 2020년의 가족 하루는 또 얼마나 소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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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든 집단여정을 마치고나면 이미지로 남는 것이 눈빛인 경우가 많다. 눈빛보다 더 동적인 표현이 있으면 좋겠는데. 대화 도중 수시로 변하는 눈의 언어 같은 것이다.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도 이미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미 젖은 눈도 있다. 집단여정에서 내 눈의 초점을 비켜가는 눈도 본다. 부러 초점을 다른 곳에 두어 마주침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실은 나는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눈가에 고인 말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믿는다.

 

복음서를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눈길, 눈빛이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어제 마가복음 3장을 읽다 심장 쿵, 그분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인간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팔레스타인의 흔한 남자 얼굴이었겠지만 눈빛만큼은 남달랐으리라. 비슷비슷한 팔레스타인 남자들 중 예수님을 찾기는 쉬울 것 같다. 눈을 보면, 눈을 들여다보면 금방 그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

 

 

이런 눈을 본 적이 있다. 덫을 놓고 걸리기만 걸려라 번득이며 흠을 찾아내는 눈. 관음하는 눈. 어디 니가 잘 되나 보자, 며 예의주시 하는 눈. 너희끼리 무슨 짓을 하는지 보자며 하루가 멀다 하고 클릭하여 확인하는 눈. 비겁한 눈, 거짓된 눈. 비겁하게 관음하고 안 본 척 하며 악을 도모하기 때문에 사악한 눈.

 

그 다음 예수님의 태도에 감동하고 말았다. 비겁하고 거짓되고 사악한 눈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라.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숨어서 보는 자들에게 감추지 않고, 덫을 놓고 책잡으려는 자들의 덫에 공개적으로 걸림으로 맞선다. 거짓에 대면하여 투명함으로 맞선다. 숨어서 보는 자들 앞에 모두 잘 볼 수 있도록 환히 드러내신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종교와 사랑, 선과 악 사이 무엇을 선택하시는지 분명하게 언어화 한 후에 눈으로 말씀하신다. 강력한 진실을 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예수님의 진실하여 강한, 분노로 발사하는 사랑의 눈빛을 받은 비열한 눈들이 어땠을까? 하나씩 하나씩 눈을 맞출 때 그들의 영혼이 어떠했을까. 심장 멈출 듯 한 눈빛 교환을 통해 어떤 이들은 회개를, 어떤 이들은 더 큰 악을 도모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그들은 다른 무리까지 합세 시켜 그분을 파멸시킬 계획에 흥분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분은 몹쓸 눈빛 발사로 당신의 죽음을 자초하셨으나, 그 몹쓸 아름다운 눈빛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막3:1-6 메시지성경)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거기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예수께서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행동이 안식일에 가장 합당하냐? 선을 행하는 것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냐? 사람을 돕는 것이냐, 무력한 상태로 버려두는 것이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새 손과 같이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 어떻게 하면 헤롯의 당원들과 합세하여 그분을 파멸시킬 것인지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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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rkle 2020.02.03 00:07

    마지막 시간에, 텅빈눈 애써 피한채 앉아있던 한 사람 기억하시나요? 아마, 그분은 사과를 받고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더 다가가고 싶었고, 그 방법이 서툴렀고, 아마 서로 그랬을테지요.

    눈빛의 의도 너머의 한사람의 여러감정에는 또 다양한 색이 있었을거에요. 관음하고 덫을 놓은 눈에는 아무런, 힘도 없을거에요. 그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거에요.

    힘을 많이 얻었고, 통과했고, 다시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싱크대는 설거지로 머무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내 자리가 아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1/4만의 내 자리이다. <82년 생 김지영>, 청소년 백수 '꽃친'의 시간, 등의 나비효과이다. 현실적으론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으로 팔을 잘 쓸 수 없게 되면서 지분 분할이 더욱 명확해졌다.

 

고구마에 싹이 나고 잎이 나면 가위바위로, 가 아니고 무조건 쑹덩 잘라서 싱크대 앞에 놓는다. 새생명으로 받들어 키우는데 참 사랑스럽다. 보랏빛 싹이 나고 자고 일어나면 쑥 커져 있다. 아침마다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치는 고마운 선생님, 귀여운 아기이다.

 

싱크대 앞에 서는 시간은 3/4으로 줄었지만 정서적으로 여긴 내 구역이다. 내 구역 안에 생명의 기운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개운죽 한 뿌리, 꽂아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고. 자그만 다육이 염좌도 알아서 잘 생존하고 있다. 작은 생명들은 내 영혼을 흔든다. 작고 무력한 녀석들은 생존만으로 기쁨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금, 토 연달아 진행했다. 연구소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연달아 다른 그룹과 나눌 때 역동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하는 배움이 크기에 그리 배치했다. 예상했지만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실은 보기보다 강한, 강의에 최적화된 성대와 체력으로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스물한 살 채윤이가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무거운 표정이기에 막판 취소로 자리가 난 내적여정 세미나에 초대했다. 마치고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줄 몰랐어. 전에 봤던 강의처럼 중간중간 웃기면서 막막 그냥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줄 알았어. 나는 엄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상상도 못하겠어." 

 

딸이 그리 말해주니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 위로도 되고.

 

주일 예배 마치고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원고도 뭣도! 모든 '일'에 대한 강박을 뒤로 하고 카페에 가 시간을 보냈다. 이래도 돼. 아무 것 하지 않고, 의무감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힘이 생겼다.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자유와 힘. 일정 마치고 집에 들어간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어디야?" "스벅" "누구랑 있어?" "나랑" 

 

나랑 함께 있어 주었다.

 

 

 

연구소 내적여정이 잘 되고 있다. 사람이 잘 모이고 있다. 이틀 간 20여 명의 새로운, 익숙한 얼굴을 대한다. 강의가 아닌 영적 안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존재의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연구원 네 사람과 함께 마음을 담아 준비하고 진행한다. 채윤이 말처럼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매 세미나마다 그때 그때 다른, 매너리즘 따윈 상상할 수 없는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창의적 시간이다. 

 

신기한 것은 '자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바로 에너지 충전이 된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없다. 인상이 어떻든, 미성숙한 모습에 없어 보여도 오가는 대화 속에 성장의 기운이 보이면 사랑, 소망, 믿음이 한꺼번에 용솟음 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공들여 키우는데 자라지는 커녕 시들어버리는 않는 식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더는 배울 것 없다는 태도를 견디는 것이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강사, 작가, 특히 내적여정 안내자.

참 좋아하는 일인데, 오늘의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인데, 거침없이 열정을 쏟아 붓는 일인데도 내 영혼의 갈망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다. 실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그 만큼의 공허감도 피할 수 없다. 세미나를 마치면 몸이 아니라 영혼의 피로가 공허감의 얼굴로 몰려온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소중한 일인 만큼 더 잘하고 싶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정장 벗고 화장 지운다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싱크대 앞 일상의 나처럼 거품 없는 나도 없다. 여유 없는 며칠 지내고 선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쑥 자라 있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주인 엄마 봐주지 않아도 제 몫의 성장을 일궈가는 녀석. 나의 일상이 너를 닮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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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여정 기본1단계 세미나를 한 번 더 개설합니다.

집단상담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서 한 번에 함께 할 수 있는 분이 적네요. 대기하시는 분들 외에도 문의가 계속 있어서 기본1단계 한 번 더 마련하였습니다. 꼭 필요한 분들과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 일시 2월 8일(토) 오전 10시 ~ 오후 5시

+ 신청 : https://bit.ly/2uiqLbL

+ 장소 : 신촌 나음터 (마포구 서강로 142, 서일빌딩 5층)

+ 인원 : 7명 + 비용 : 12만원/ 1일

+ 입금 : 농협 301-0240-4119-71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 문의 : 010-4235-8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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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0.01.10 23:27 신고

    2월8일 1단계 여정 마감되었습니다. 대기 원하시는 분은 위에 있는 번호로 문자 메시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을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씁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며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새해 선물로 받은 시이다. 지나온 1년, 3년, 10년, 30년 더듬어 걸어온 내 등 뒤의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길, 걸어서는 안 될 길을 걸어왔다고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밥 먹고 하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그 높은 시선과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일뿐이었다. 이 시를 보내준 이는 내적 여정 세미나 역사 상 강사인 나를 가장 크게 뒤흔든 수강자였다. 울다, 함께 울다 길을 잃어 강의안 포기하고 속에서 나오는 얘기를 그저 쏟아놓게 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내적 여정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가족 여행을 떠난 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더니 '피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는 답이 왔었다. '피'가 상징하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도울 수 없는 무력감에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치유자'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싶게 성품에 치유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피의 크리스마스'를 메시지에서 확인했을 때, 1년 후 이런 동역의 벗이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또 2020년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더듬어 가야 할 것이다. 부조리와 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악을 이기게 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고립과 상처를 유발하는 이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준 것이 없는데 많은 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많이 애를 써서 가꾸었는데 도리어 헤집고 망치는 이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길에 꽃 한 송이가 되기도, 누군가 가꾼 정원을 망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임을 안다. 기꺼이 걷는 길이다. 2020년, 기꺼이 걷는 길을 다시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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