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떠나간지 11일이다. 생각보다 괜찮고, 괜찮은가 싶으면 상당히 괜찮지 않다. 쓰면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쓰고나면 조금 살 것 같아 먹고 농담하고 공원을 걷는다.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가슴이 서늘하다. 아니 가슴이 서늘해서 잠을 깬다. 서늘함은 금세 막막함이 되거나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조금 울다 벌떡 일어나 썼다. 쓰고나니 타나토스의 무게가 줄었고, 에로스 에너지가 어딘가에서 나와 마음을 일으켰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 담긴, 아들을 잃은 박완서 선생에 비할 수 없겠으나 맘껏 울 수 없는 처지에 통곡 대신 쓴다는 말을 조금 알 듯 하다. 엄마 입관식에서조차 마음껏 울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를 배려 또는 의식하느라.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시누이가 했던 것처럼 뒹굴며 울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하는 내 의식이고 나의 처지이다. 그 처지는 고스란히 엄마 인생의 처지였다.

 

일기를 쓴다. 애도일기를 쓴다. 아무 말을 쓰고 있다. 연구소 카페에 책 리뷰도 써올렸다. 어쩌다 쓰게 되었을까? 장례식 다음 날 멀리서 온 카톡 메시지 생각이 나 들춰보았다. 멀리 있는 Y에게 온 메시지이다. 브런치에 쓴 글을 캡쳐해서 보내왔다. '나는 오늘 기도한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오직 나를 위해 쓴 글이고, 한 자 한 자에 마음을 담아 내 마음으로 보낸 글인 게 분명하다. 

 

힘내라는 말도 아니고 위로를 보낸다는 말도 아니고, 우리의 만남을 복기하고 있다. Y에게 나는 누구인지, 언니가 자신에게 누구인지 썼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Y에게 글을 쓰라고 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 나누는 Y의 삶과 성찰들을 그냥 듣고 흘려보내기가 아까워서 기록을 하라고 했었다. 나보다 열 살은 적지만 내가 Y보다 나은 점이라곤 쓴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아 그랬다. 그녀의 삶과 생각을 담아두고 싶어서.

 

그러니까 Y는 내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쓰는 것으로 절절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내가 Y에게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글이다. Y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짚어냈다. 슬픔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다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흔들어 깨운다. 브런치에 쓴 글로 건네는 위로는 "언니, 그러니까 언니도 써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메시지를 주고받은 다음 날 나는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고 있는 손일기장은 언젠가 Y가 선물로 준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을 디자인이며 재질이다. 오래 되어 빛이 바랬고 몇 장을 남겨두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Y는 기도나 말씀 묵상 같은 것으로 나와 연결될 것 같은 존재인데, 내 본질을 꿰뚫고 '글쓰기'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직관이 뛰어난 친구다. 내 인생 어느 시절, 교회에 대한 희망이 푸르르던 날이었다. 남편과 함께 그 희망을 살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때 만난 Y 부부가 멀리 떠날 때 안타까움은 말 할 수 없었다.

 

많은 희망이 거듭된 좌절을 거쳐 절망으로 바뀌고, 절망을 넘어 체념의 나날을 사는 여정 속에 몇 년에 한 번씩 만났던 우리. 연결되어 있었구나. Y 부부와 함께 했던 짧은 가정교회 경험은 교회에 대한 꿈이 손에 잡히던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거기서 한참 멀어졌다. 더는 희망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그리움으로 대체하며 사는 나이가 되었다. 치명적인 그리움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을 후벼파는 날이다. 좋았던 모든 것은 다 사라져버렸고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더불어 나였던 나도 소멸하는 건가.

 

언니, 언니는 이런 사람이길 바라잖아요. 언니, 언니는 쓰는 사람이잖아요. 나보다 한 발 앞선 시간을 살아가는 언니잖아요. 일어나서 써요! 라고 내 등을 떠민다. 좋았던 날, 좋은 사람이었던 Y가 오늘 나를 좋아해 주면서 좋은 사람 되라고, 쓰라고 한다.  

 

 
언니는 나에게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나는 은혜는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니와의 만남은 잠깐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언니는 글로 말로 시간으로 말하자면 언니 자신을 내어 주셨다. 너는 이제 나를 언니라고 불러.. 그래서 사모님인 언니는 나에게 지금껏 언니이다.

언니는 우리를 보내며 장미꽃을 들고 동지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주셨고 20대 후반밖에 안되어 갓 결혼한 우리를 성숙하다고 해주셨고 그 반짝이는 눈으로 아름답게 봐 주셨고 두 손을 잡아주셨다. 따스하고 진심어린 온기를 가득 불어넣어 주셨다.

2년후에 만난 언니는 남편의 떨림가득하지만 깨는 그 한마디의 말을 열정적으로 칭찬해주셨고, 그 칭찬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우리의 방향을 비춰준다. 먹고 싶은게 뭐냐고 물어보시고 바로 그 음식을 손수 차리셔서 집으로 불러주셨다. 그 때 언니의 어머니를 뵈었다.

4년후에 만난 언니는 맛있는 밥을 사 주시고 멋진 사진을 남겨주셨고 사랑에 사랑을 더해주셨다. 그리고나는 고백을 하나 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눈물을 참지 않기 위해 마스카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케 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자의 어줍짢은 자기 합리화였음을 이제는 알았다는 것을... 언니는 너그러이 웃어주실 것이다.

그 후에 나의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불혹의 나이에 얻은 우리 막내를 안고서 언니가 지었던 그 행복한 웃음은 내가 얼마나 멋진 보석들을 안고 살아가는 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값진 것이었다. 다이아몬드가 될 돌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있는 그 사람을 내가 가지고 있다.

그렇게 십년동안 두세번밖에 마주 할 수 없었지만 언니는 빛이 되어준다. 외롭다고 느껴질때, 잘 가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생길 때, 누군가에게 막 쏟아놓고 싶을 때 언니가 떠오른다. 그때마다 언니에게 카톡을 보내지 않아도 언니가 떠오르면 그저 다시 잠잠해지고 언니에게 주어진 삶을 내가 존경하는 그 이름처럼 살아내시고 있음에 나도 나에게 주어진 순간들에 신실하고 싶어진다.

어제 사랑하는 언니의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몸으로 함께 해드릴 수 없는 나는 어떤 위로를 드릴 수 있을지, 아버지같고 어머니같은 어머니를 잃은 언니의 마음은 어떤 순간을 맞이했을지.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선물을 드리고 싶다. 따뜻한 커피한잔과 언니가 오래전 보내주신 책을 몇번을 읽고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던...그러니까 당신도 써라!에 응답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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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ratigya 2020.03.23 23:59 신고

    언니에게 받은 따스한 사랑과 위로와 격려로 생애 첫 발걸음을 떼었어요...
    그 어두움 가운데서도 저에게 빛을 나눠주시다니요...저도 따르겠습니다...그 길을..

    • BlogIcon larinari 2020.03.25 07:59 신고

      꼭이야! 꼭 따라와야 해! ^^
      리처드 로어 신부님에 의하면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 삶과 영성이 전혀 다르대. 생애 전반기에는 무언가 담기 위한 컨테이너를 만드는 시간, 후반기에는 영원한 곳에 가져갈 영원한 것들을 거기에 담는 것이 영성이래. 컨테이너 튼튼하게 만든 그대, 이제부터 천천히 글로 담기야! 언니가 계속 지켜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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