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 밥솥 뚜껑을 열면 뜨거운 안개 같은 하얀 김, 뜨거움이 물러가고 안개가 걷힌 밥솥 위엔 힘 빠져 축 늘어진 가지가 몇 개가 누워있다. 가지 냉국은 그 뜨거움에서 비롯한다. 밥솥 옆엔 다진 파와 마늘이 깔린 양푼이 대기 타고 있다. 가지는 젓가락에 옆구리 찔려 파 마늘 위로 던져진다. 젓가락 대신 주걱을 들고 바쁘게 밥솥의 밥을 휘저은 엄마가 다시 다시 젓가락을 잡는다. 흐물흐물한 가지를 젓가락으로 쭉쭉 찢는다. 그리고 거기에 조선간장, 고춧가루... 그리고 시원한 물, 그리고 얼음. 양푼 째로 마당에 놓인 평상으로 가져가 밥상 옆에 놓인다. 땀 뻘뻘 엄마가 한 그릇 씩 퍼주던 여름 용 국물. 가지 냉국이다. 엄마가 해주던 가지 냉국 말고 먹어본 일이 없다. 가지 냉국 얘기를 하면 가지로 국을 만드냐며 놀라는 사람이 더 많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이게 뭐야? 무슨 음식이야?" 했다. 몇 번 만든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음식이란 거다. 실은 나도 한참 잊고 있었다.

 

가지 냉국 생각이 간절했다. 음식이 아니라 엄마 생각인 것을 알지. <슬픔을 쓰는 일> 북토크 여파인지, 아니면 7말8초 휴가철의 기억 때문인지, 둘 다 인지. 북토크에선 '상실' 에 대한 강연을 하고 바로 글을 써보았다. 두 분의 글을 낭독하여 나눴는데, 같지만 다른 어머니 이야기이다. 두 분 다 남성이라 연구소 글쓰기 여정에서의 느낌과 또 달랐다. 글이 아니라 쓴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가진 힘과 여운이 있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새로운 경험은 아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엄마'였고, 엄마를 그리는 '아들'의 마음이었다. 그 여운으로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새로운 얼굴로 왔다.

 

해마다 이 즈음, 동생네 휴가 기간이 되면 엄마랑 함께 지내곤 했다. 돌아보면 고마운 시간이다. 죽도록 미워하던 엄마, 그러나 죽도록 그리운 엄마를 곁에 두고 맛있는 것 만들어 드리던 날들. 폭염의 날들. 폭염이라 땀을 줄줄 흘리며 음식을 해야 했고, 어쩌면 그게 좋았다. 벌을 받는 느낌, 엄마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엄마를 부끄러워 하고 미워했던 나날을 보상하는 느낌으로 뜨거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좋았다. 몸이 기억하는 그 시간이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가지 냉국을 만들고 있었다.

 

희한한 건, 이제껏 만든 가지 냉국 중 엄마가 내던 맛에 가장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비법이 하나 생각났다. 통깨가 아니라 깨가루를 써야 했다. 문득,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통깨를 부숴 깨소금을 만들어 넣었더니 달랐다. 아, 어떻게 해도 엄마 맛과 달랐던 건 통깨와 깨소금 차이에 있었어! 한 그릇 두 그릇 들이키다 보니 그 외 비법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밥솥 위에 가지를 쪘다. 가지를 처음부터 넣었을까? 언제 투입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젓가락으로 꺼내던, 그래서 밥알을 몇 개 달고 나온 가지. 평상 위에 저녁 식사. 가지 냉국과 함께 빠지지 않던 감자볶음... 엄마가 가지 냉국을 만들고 가지를 연탄불 위에 감자볶음을 하는 사이 방에 모기기약을 뿌리고, 방문에 모기장을 꼼꼼하게 치던 아버지.      

 

상실의 텅 빈 공간에서 바람이 분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그리움의 바람이 분다. 강연에서 말했다. 상실의 공간은 창조성의 공간이며 구원의 공간이라고. 내 말이 아니다. 헨리 나우웬, 제랄드 메이 같은 선생님들의 말이다. 부모 상실을 안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폴트루니에의 고백이다.

 

통깨 아닌 깨소금! 가지 냉국 비법은 그리움의 공간에 머무르다 얻은 오래된 참신한 아이디어!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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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8.03 09:05 신고

    상실의 공간에 불어오는 그리움의 바람을 맞으면서도 써내려 가시는 언니의 존재가 감사해요 💛

 

석양에 단풍이 들었다.

 

인생 석양에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 한 남자

뱃살 관리를 위해 달리러 간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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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만들어 내는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내 글을 다시 본다.
책 전문가들의 눈과 손길을 거친 내 글이 낯선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랬구나, 내가 이래서 썼지. 이런 시간을 보내며 썼어...”
책 홍보 글인데, 꼭 저자 한 사람을 위한 ‘치유 글쓰기 가이드’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아 숨쉬는 한 계속 쓰게 될 나를 위해
고이 모셔와 간직한다.

* 자세한 책 소개
알라딘: http://aladin.kr/p/JPzrf
YES24: https://bit.ly/3gRaeS5
교보문고: https://bit.ly/3h1W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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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캘리 2021.07.30 13:18

    인터넷 메뉴바에서 새로운 북마크들에 밀려서 화살표 방향을 눌러야 비로소 보이는 이 공간에 참 오랜만에 들어와 봅니다.
    그럴때 있잖아요. 나좀 봐줘~하면서 뭔가가 나를 불러주는 느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시려고 마치 저에게 텔레파시 보내신것 같은 느낌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름다운 보석같은 책을 출간하셨음을. 바로 알라딘 고고해서 주문버튼 누르고 글 남겨봅니다. 미리 티슈박스 준비해두고 읽어야 할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나'로서가 아니라 정말 한자한자 아끼는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그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향긋한 두부와 커피향 추억하며 마음으로 늘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7.31 10:04 신고

      축하 고맙고, 캘리의 응원이 이미 제 마음 깊이 심어져 있어서 자주 꺼내보고 있어요. '아무나'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특별한 독자로 읽어주실 것도 이미 알죠. 남한산성 근처에 갈 때마다 두분을 떠올리고요. 언니도 잘 계시죠? 언젠가 다시 얼굴 마주할 날을 고대하며...

  2. BlogIcon healed 2021.07.30 14:54 신고

    글을 써내려 가는 모든 마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며 힘을 내 써내려 가시는 언니~ 오늘 북토크도 응원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7.31 10:07 신고

      응원의 기운이 빡 전달되어 왔어! ^^ 덕분에 잘 마쳤고, 사람 사람의 고유한 상실들이 새롭게 아프네. 상실의 공간이 희망과 구원의 공간이라고 강연을 했는데, 정작 그 공간들을 확인하니 먹먹하고 아프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
'갈치속젓 파스타'를 만들었다는 아는 동생 SNS를 보고.
이름과 모양새만 보고 따라 만들어보았다.
딱 들어도 느끼하지 않은 우리 취향 파스타다.

"엄마, 나는 가끔 그런 생각한다. 백종원 아저씨가 엄마 음식을 먹어보면 뭐라고 할까? 엄마가 그냥 생각으로 만들어낸 음식들 있잖아. 엄마표 요리들. 백종원 아저씨한테 먹여보고 싶어."

백종원 아저씨는 채윤이가 가장 존경하는 인사다. 그러니 이건 맛있다는 뜻이고, 엄마 요리 완전 인정한다는 말이다. 백종원 아저씨를 좋아하는 김채윤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k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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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회상'이라니!
'지금'의 김성호라니!
지금 김성호가 부르는 '회상'이라니!


내 첫 차 티코의 사물함엔 보물처럼, 유물처럼 카세트 테이프가 한가득이었다. 김성호의 앨범은 베스트 탑 5 안에 들었다. 그 차, 사물함의 카세트 테이프에 젊은 날의 꿈과 사랑과 고민과 외로움이 다 담겨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거기 담겼던 곡들을 이제 다시 들어도 살아오는 것들이 있다.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그 시절의 장소, 시간, 사람,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 티코가 가고, 여러 차들이 가고, 테이프와 CD가 지나갔다. 육아와 시가 살이 시간 동안 서서히 잊히기도 하였다. 벅스를 알고부터 잃어버린 음악이 살아 돌아왔다. 벅스에 없으면 유튜브를 뒤졌고, 웬만한 곡을 다 찾아졌다. 그런 방법으로 아무리 뒤져도 전곡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운 김성호였다. 아쉬움에 사람 검색으로 뒤져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좋은, 아껴서 듣는 곡이다. 그냥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라니. 김성호의 회상을 회상하는 정신실의 회상이다.

남편이 유투브 영상을 하나 보내왔는데, 지금의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찾아보니 출연한 방송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목소리도 얼굴도 '그대로'라 할 수는 없지만... 참 좋았다. 아니 좋았단 말 대신 고맙다 하고 싶다. 무엇보다 얼굴이 참 좋았다. 오스카 와일드가 했다는 "나이 마흔이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단지 얼굴이 아니라 내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같은 친절한 표정이라도, 같은 무뚝뚝한 표정이라도 내면의 얼굴과 괴리가 크지 않아야 편안하다. 드러나는 표정이 어떻든 머물러 바라보고 싶은 얼굴은 그런 얼굴이다. 김성호의 얼굴이 그랬다. 목소리도 물론 아직(?) 팽팽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과는 조금 달랐다. 가만 서서 노래하는 걸 여러 번 돌려보니, 느슨해진 성대의 긴장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팔로우잉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페친 한 분이 김성호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짧은 글이 생각과 감성을 함께 자극했다. 공감하며 읽다보니 김성호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그래서 가스펠도 꽤 작곡했다. 신앙이 뜨거워져 가스펠을 만들었어도 가사가 적나라한 게토 언어가 아니었음이 좋았었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시인과 촌장 노래의 이런 가사가 있다.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밑둥아리애 붙어서 밤새워 새벽

시인이 믿음 뜨거워져 집사님으로 많이 불리면서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 "GNP가 오르고 당신의 아이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이 거리를 달려도...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허무할 거예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아쉽고 아까웠다. 저 '새벽' 노래를 함께 좋아하던 친구에게 뭔가 부끄러웠다.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워졌었다. 전도지에 인쇄된 글귀처럼 보이는 가사를 보면서 좋아하던 가수를 잃을 상실감에 슬펐던 기억. 김성호가 좋았던 건, (몇 곡 알지도 못하지만) 가스펠도 시처럼 다가와서였다.

이 모든 것, 내 취향에 불과한 것을 알지만 소중히 여기고 싶다. 나를 존중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사소한 취향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김성호의 회상을 좋아하는 나를 새롭게 회상해보는 중이다. 방송을 다 보고나니, 내 사소한 취향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게 해준 김성호 님에게 고맙다. 한때 좋아하고, 존경했던 내 취향들이 부끄럽게 되는 일이, 심지어 혐오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 편히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다만. 누군가의 취향의 대상이 되어 실망시킬 일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 앉아 있으니) 여하튼 마흔이 훨씬 넘은 김성호 님의 얼굴, 목소리가 좋아서 고마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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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으로 밤으로 Zoom 강의와 모임이 있는 날.

그래서 바쁜 저녁시간이면

유난히 요리를 하게 된다는...

바쁘고 더워 죽을 저녁시간에

해zoom.

닭가슴살, 닭다리살 듬뿍 넣은 카레와

막막 새콤하고 시원한 미역냉국을 해z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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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편집도,
표지 디자인도,
인터뷰 영상 편집도
참 잘해서.....

'잘 함'이 위로가 된다.

영상 첫 페이지에 얼굴이 먼저 나왔다면 많이 부끄러웠을 텐데
이 역시 만든 이들의 감각, 사람에 대한 감각이지 싶다.
시작하는 장면이 좋고,
나는 거기까지만 제대로 봤다.

내 목소리 듣는 일, 내 얼굴 보는 것 나는 잘 못하겠으니.
부디 여러분께서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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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24 23:20 신고

    언니...언니가 읽어주시는 글을 들으며 언젠가 언니가 함께 애도하는 글쓰기 모임도 인도하게 되실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표 없는 애도...

    • BlogIcon larinari 2021.07.26 19:20 신고

      그려보겠슴미다!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려보는데... 그대가 이끄는 치유 글쓰기 모임! ^^ 그려보지만 말고 기도해야겠다. "치유의 시내에서" 이런 제목도 좋고.... ㅎㅎㅎ

나 밥 먹고 바로 눕는다.
축하해. 소 돼!
엄마도 곧 엎드려서 잘 거잖아. 매일 엎드려서 낮잠 자잖아.
나는 낮잠 안 자.
맞아, 엄마는 낮잠 안 자. 그런데 우리 집에 이런 풍경이 있어.
(사진 제시) 관광 명소야. 관광객이 기념사진 찍으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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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밤, 옥수수를 삶았다. 옆 단지 사는 이웃사촌이 옥수수를 보내왔다. 깨끗하게 다듬어서 '오늘 바로 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더운 여름밤, 받자마자 삶았다. 열기와 함께 퍼지는 냄새. 이거 뭐지? 뭐지? 아하, 수련회 저녁집회 마친 냄새다. 눈물 콧물 저녁집회 마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 충만한 시간에 광주리에 담겨 나오던 방금 찐 옥수수, 그 옥수수 냄새. 정겨운 권사님들, 집사님들... 그때 마이크에서 울리는 소리 "조장들 와서 간식받아 가세요!" 그땐 그랬지. 바로 그 냄새.

 

"옥수수 먹을 사람?"

"나아~!"

야식 금지가 시급한 김종필 아빠가 온다. 김종필만 온다.

 

"여름 밤 옥수수 냄새, 무슨 냄샌지 아는 사람?"

"저요, 저요! 수련회 냄새!"

역시 비상한 후각을 가진 김채윤.

"여기다가 수박도 같이 나와야지!"

궈어래? 수박까지 꺼냈더니 바로 이 향기다.

수련회 저녁 간식 냄새.  

 

옥수수 증말증말 좋아하는데, 젊은 날 추억까지 떠오르니 배 불러도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수련회 간식 중에 제일 인기 없는 게 뭔지 알아? 옥수수야."

분위기 깨는 데도 비상한 감각을 가진 김채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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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첫 음반이다. 내게는 그저 좋은데, 어떻게 좋다고 말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다. 이 한 곡에 담긴 시간과 고민 뿐 아니다. 첫 음반을 내기까지 걸어온 채윤이 음악의 길 구비구비의 이야기들까지. 채윤이 자신조차 모르는 것을 알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난 비와 바람과 들꽃 한 송이... 아니 어쩌면 채윤이의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이겠다. 채윤이를 바라보면서 걸어온 나의 길. 아, 자기 몰입 쩐다. 딸의 첫 음반 소개를 하다 내 얘기로 깔때기를 대네. 다시 주인공 얘기로! 채윤이는 나도 닮고 제 아빠도 닮아 신기한 생명체다.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는 것은 나를 닮았고, 웬만해서는 내놓지 않고 끝까지 고치고 연습하고 또 고치고 연습하는 건 아빠를 닮았다. 세상 어렵게 살 스타일이고, 마음 고생 많을 타입니다. 곡 하나 만들고 내놓는 과정을 지켜보니 더욱 그렇다. 곡은 참 좋다. 음악과 제목이, 제목과 곡 소개가, 곡 소개와 음악이, 음악과 앨범 자켓이 하나처럼 어우러진다. 남편이 페이스북에 소개 글을 올렸는데,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다. 초보 음악가의 음악이 뭐 그리 대단하랴. 한 존재가 자기로 꽃 피워가는 것을 알아봐 주고 기뻐해 주는 마음들일 것이다. humane!! 제목 참 잘 지었다. 우리 채윤이.


벅스에서 듣기 https://m.bugs.co.kr/album/20406941

Humane / 김채윤 (Chaeyoon Kim)

벅스에서 지금 감상해 보세요.

music.bug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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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18 18:00 신고

    백 명의 사람에게서 백 개의 아름다움을 보겠다...곡에서 떨리지만 용기를 가지고 걸어가는 느낌을 받았어요...너무 좋네요...

    • BlogIcon larinari 2021.07.19 19:39 신고

      맞아, 채윤이 딴에는 용기를 많이 낸 작업이야. 음악에 담긴 서사를 알아서 그런가, 그냥 딸바보라서 그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네. ^^

기고글 마감 기일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아 불안이 높아졌다. 이유를 알기에 더 불안했고, 이유도 알면서 바보같이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 힘을 냈다. 내 어깨를 눌렀다. 앉아, 앉아서 써! 책의 추천사 써주신 세 분께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추천사를 받은 그 순간부터 마음으로 쓰고 있던 감사 인사였다. 어쩌자고 메일창을 열고 앉으면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너무나 감사한데, 감사하다고 말하면 그 감사가 사소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몇 번을 쓰고 지웠다. 너무 감정적인 것 같아 지우고 다시 쓰자니 지나치게 사무적인 것 같아 고민하다 에라, 창을 닫고 말았다. 각각 다른 빛깔로 세 편의 추천사에 위로와 힘을 얻었다. 진심의 감사를 전하려니 글이 통 써지질 않았다. 세 통의 메일, 발송을 완료했다. 추천평을 한 글자 한 글자 쳐본다. 이렇게 한 번 더 탈고를 한다. 성공한 애도란 끝이 없는 것처럼, 이 책에 관한 한 탈고가 탈고일 수 없겠다는 느낌이다. 세 분 추천인 선정 이야기와 편집 과정 이야기가 남아 있고, 어쩌면 이것이 탈고의 정점일 테다.

한 사람의 애도 일기를 읽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가이며, 또한 슬픔으로 인해 깊은 곳으로 내던져진 한 영혼의 신음이요 통곡입니다. 저자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옛 기억들, 묻어 두었던 상처와 아픔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습니다. 때로는 욥기를 읽는 듯하고, 때로는 시편을 읽는 듯하고, 또 때로는 전도서를 읽는 듯합니다. '날것'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았기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읽는 동안에는 나의 아픔과 상실의 기억이 소환되어 공감을 느끼고, 다 읽고 나니 심하게 깨어져 울고 난 후처럼, 아픈 마음이 말갛게 씻겨 있음을 느낍니다.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가 눈물 고인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다른 사람들의 애도 일기를 읽으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것처럼, 저자의 애도 일기인 『슬픔을 쓰는 일』도 많은 이들에게 상실의 어두운 숲을 지나도록 도와줄 책입니다.

김영봉 외상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저자

저자가 밝힌 대로 이 책은 '미친년 넋두리'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이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50여 년의 긴 세월을 엄마로서 존재했던 이가 죽음의 문을 열고 떠나갈 때 자식이, 그리고 같은 여성인 딸이 어떤 심리적 과정을 겪게 되는지 저자는 진심을 다해 보여줍니다. 부모의 죽음이 어떻게 원초적 상처를 건드리는지,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아픔을 어떻게 직면시키는지, 그리고 상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인간을 성장시키는지 지켜보면서 저도 못하 한 부모 상실의 애도를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마 이 책이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부모의 죽음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것, 상실로 아파할 세상의 모든 고독한 자식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참 깊고 따뜻한 책입니다.

박미라 치유하는글쓰기 연구소 대표,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슬픔에는 찬연한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에는 우리 삶을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야기했지요. '슬픔에게 목소리를 주라'고요. 저자는 홀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 한 줄 한 줄에는 기억들이, 그리고 그때는 못다 알아챈 어머니의 사랑과 깊은 신앙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슬픔은 갑자기 내 집에 뛰어든 나그네처럼 낯설고 또 어색합니다. 그리고 내 삶의 저 깊은 밑동을 사정없이 흔들어 댑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생이 커다란 부분이 상실과 슬픔임을 인정하면서도, 내게 다가온 슬픔 앞에서는 늘 어설프고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슬픔은 익숙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생의 진실과 핵심을 바라보게 하는 진정성 있는 초대일 겁니다. 상실과 슬픔이라는 카드를 조심스레 펼쳐 보면, 거기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당연히 알고 누렸던 행복과 사랑이 우리에게 인사합니다. 저자는 슬픔과 상실을 만나고 친해지는 과정을 글쓰기를 통해 풀어냈습니다. 영혼의 춤을 추듯 애도의 글쓰기를 해 나갔습니다. 이 글은 너무나 절절하여, 쓴 글이 아니라 써진 글, 숨 쉬기 위해 적어 나간 글이라고 저자는 고백합니다.
그동안 마음 아픈 사람들과 함께 치유 작업들을 해 왔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이 사람을 깊이 만나게 해 주는 슬픔의 연대성에 대해 관심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의 마음, 엄마 잃은 딸의 마음을 내보여 같으 사실을 경험한 이들과 연결되고 싶어 졌다. 이제라도 내 글을 읽으며 뒤늦은 슬픔을 느끼고, 애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누군가를 상정하니 힘이 났다." 그렇게 저자는 끝나지 않는, 혹은 갑작스레 다가오는 생의 상실들을 경험하고 보내 주는 일에 대해, 서로 물길이 되는 동행을 이야기합니다. 이 애도 일기는 적절한 애도를 거치지 못해 늘 마음 아픈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상실을 깊이 살아 낼 위로가 될 것입니다. 너무나 정직해서 서럽게 아름다운 이 고백들은 읽는 이의 마음에 길을 내어 자신의 상실을 마주할 용기를 북돋우어 줄 것입니다.

박정은 홀리네임즈대학교 영성학 교수, 『슬픔을 위한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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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18 17:46 신고

    써 놓고 보면 너무 감정적이어서 다시 쓰면 사무적이 되어 창을 닫는 저에게도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깊이 공감해요...그래도 언니는 끝내 길을 찾아 내시고 걸어가시네요...

    • BlogIcon larinari 2021.07.19 19:40 신고

      그대도 그대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오. 끝내 자기 길을 찾아 걷는 언니가 인증한다오!

줌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다. 새 만남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구닥다리라... 어쩌지. 시간이 없어도 산책 한 바퀴 하고 올까,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안 되겠다. 하늘이 어둑어둑, 비가 쏟아질 기세다. 비가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나갈 텐데... 일기 예보를 보니 비가 곧 온단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바로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더, 더, 더... 더 와라, 더 와라 했는데. 오란다고 더 온다. 쏟아붓는다. 우산 버리고 맨몸으로 맞고 싶다. 흠뻑 젖고 수습할 시간이 없으니 조금 옷이 젖는 것으로 만족해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막지 말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데. 정작 틀어막고 있는 나를 본다. 나중에, 일 다 처리하고, 책임을 다하고 울어야지.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고 집어넣은 눈물이 뭐가 아쉬워 내 말을 듣겠냐고. 이제 옆에 아무도 없고, 망가져도 괜찮은 때가 됐으니 지금이라고. 이제 울자고. 내가 눈물이라도 다시 안 나오겠다. 복수의 칼을 갈겠지. "아~따, 있을 때 잘했어야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돌아오겠지. 내가 준비되지 않은 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를 맞고 싶었던 건 틀어막은 눈물을 달래서 꺼내보려는 마음이었는지... 우산 살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 둘이 꼭 주르르 흐르는 눈물 같다.

우산과 풍경이, 아니 우산에 새겨진 '진실을 인양하라'와 풍경이 묘하게 조화롭다. 걸으며 마구 찍어 보았다. 진실을 인양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진실은커녕, 힘도 없는 주제에 뭘 끌어올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진실이라고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뭐 해? 미친 사람 같애." 한 마디 들으면 "그러게, 나 뭐 하지? 나 지금 뭐해?" 헛갈리면서 총체적으로 스텝이 꼬이게 되고. 사력을 다해 끌어올리던 것이 진실인지, 버려진 신발 짝인지, 플라스틱 쓰레기인지 분간도 못하게 된다. 꼬여라, 꼬여라, 꼬여서 넘어져라 하던 내 안의 구닥다리 목소리가 승전가를 부르며 웃는다. 인양 따위! 진실 따위! 대충 살아아아아.... 어차피 진실 따윈 없어어어...

 

그래도 한바탕 울고, 아니 한바퀴 돌고 나니 구닥다리 마음이 조금 밀려 나갔다. 목욕재계하고 카메라 각도 맞추고 강의안 한 번 읽으려 앉았는데 창 밖이 환하다. 어느새 구름 걷히고 하늘이 하늘색이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진실을 인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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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7.16 18:11 신고

    선생님의 진실인양 덕분이었군요. 어제의 모임에서 터져나온 저의말들은.
    깜짝놀랐어요.아직 준비되지않은 첫만남의 이들앞에서 터져나온 제말들과 감정에.
    그러면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에이몰라.터뜨리자.맘껏.

    • BlogIcon larinari 2021.07.17 14:35 신고

      밤의 만남에서 진실을 인양하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지요. ^^ 6주 길지만 짧은 시간이에요. 늘 쓰시지만 더 자유롭게 많이 쓰시어 제게도 치유의 강물이 닿게 해주세요. 함께 하게 되어 정말 좋아요!


함께 일하는 연구소 선생님들에게 어마어마한 출간 축하를 당.했.다. 모임 마치고 백화점으로 끌고 가더니 옷을 고르라고 했다. 출간 행사에 입을 옷을 사줘야겠단다. 평생 입어보지 못한 비싼 블라우스를 구매당했다.

그리고 그다음 모임. 예쁜 케이크 세리머니와 함께 축하 파티였다. 한지로 포장된 뭔가를 또 안겨 주었다. 내가 최근 어느 숲을 걷다 찍은 사진에 엄마 사진을 합성하여 액자로 만든 것이다. 놀랐다는 표현도 감동했단 말도 적절하지 않다.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내 뒤에, 내가 사드린 가방 메고 엄마가 서 있다. 이런 축하와 위로를 당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슬픔에 머물러 슬픔을 쓸 수 있는 힘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_정신실 페이스북에서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참 어렵다. 感謝 아니고 感思라면. 느낄 감, 생각 사, 감사. 고마운 느낌과 생각을 '감사합니다' 말로 내놓으면 느낌과 생각이 박제되는 느낌이 들고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연구소의 선생님들을 많이 '느끼고 생각’한다. 연구소가 잘 돌아가는데, 그냥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잘 돌아가는데 내가 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잘 돌아가는 것은 나 모르게 일을 하는 사람들 덕이다. 큰 일 작은 일, 중요한 일 하찮은 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한다. 하나하나 공을 들여서 한다. 어려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적 외적 갈등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좋은 더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 역시 다섯 사람이 각자 알아서 자기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식구들이 주는 감동은 서로를 향해 늘 품고 있는 감사, 느낌과 생각의 작은 표현인 것을 안다. 저 사진,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느낌과 생각의 결정체다.

 

<슬픔을 쓰는 일>.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써서 내 책, 나만의 책인 듯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쓰기만 해서는 책이 될 수 없다.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데, 感思는 많고 나올 길은 협소하니 약간 체한 느낌이다. 어찌 됐든 '감사'를 충만히 머금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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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16 12:52 신고

    카톡 사진 보고 정말 멋지다..했는데..이렇게 뜻 깊은 선물이었다니..
    언니의 선물에 머물며 저도 감동중이예요...

    • BlogIcon larinari 2021.07.17 14:36 신고

      함께 감동해주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 화내주는 그대가 있어 든든하다오! 뭘 해도 충분하지 않은 내가 충분해는 시간, 그 시간! ^^

  2. 삼진 2021.07.19 00:25

    SNS 끊고 살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많으셨네요!!
    책 출간도 축하드리고, 든든한 공동체에 머물러 계시니
    좋아요~^^

토요일, 강의 준비하다 혼자 먹는 점심. 먹고 싶은 것이 한 둘이 아니나 가능한 것이 몇 개 없다. 라면, 그래 괜찮겠네. 나이를 먹고 라면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전에 나이를 조금만 먹었을 때는 라면을 먹어도 속이 편안했는데. 라면 반쪽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라면 콩나물국을 끓였다. 묵은지 몇 조각과 대파까지 듬뿍 넣었다. 시원하고 칼칼한 것이 새로운 장르의 국물이다. 매운맛 진라면 신분 세탁.

두어 시간 줌 강의 하고 다시 강의 준비(실은 무려 '설교' 준비였다.)로 앉았다 보니 어느새 식구, 그렇다, 食口! 밥 달라는 입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역시나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따로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고. 비빔면에다 낮에 쓰고 남은 콩나물을 다시 때려 넣어 같이 끓였다. 냉장고 뒤져 나온 상추 몇 장, 오이 반 개를 썰었다. 땡땡 언 차돌박이를 부드럽게 구워 얹고 삶은 계란까지. 이건 뭐, 흙수저 비빔면이 금수저로 신분 세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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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면 알게 되는 내 마음이 있다. 써서 내놓고 나면 더 알아지는 마음도 있고. '책'이라는 물성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며 또 새로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내놓고 보니 '감정'이 보인다. 단지 '슬픔'을 쓴 것이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분노,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느낌이다. 출간 이후 실상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올린 몇 편의 글에 부끄럽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마음으로는 달고 살았나 보다.

이번 주 치유 글쓰기 주제는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성장과 치유에 목말라 연구소로 모여든 이들이 결국 다다르는 지점이다. 인식하든 못 하든, 인정하든 안 하든 많은 것들이 수치심에 걸려있다. 같은 강의를 하더라도 매번 강의안을 수정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책들을 다시 꺼내놓고 읽고 매만지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결국 할 얘기는 뻔하지만, 수치심을 말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웬만큼 힘이 있지 않고는, 웬만큼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면 수치심은 인식되자마자 자동으로 숨거나 위장하는 독자적 생명체 같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글로 수치심을 쓰는 일은 내놓는 일이 되는데, 발견 즉시 숨는 녀석을 쓰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치유력 또한 강력하다. 내놓기만 한다면.

책에 대한 반응이 많지 않은데,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올려주신 분이 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다. 두어 문장 짧은 글에 '재치'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애도와 재치라니! 내가 잘못 읽었겠지, 설마. 재치 있게 애도할 수 있거나, 애도하며 재치를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 애도일까. 한 이틀 정도 마음이 쓰렸는데 흘려보냈다. 아마도 책은 읽지 않으시고 평소 가지고 계신 내 글에 대한 인상으로 쓰셨지 싶다. 책을 보낸 출판사의 뜻을 읽고 빠르게 소개글을 올려주시는 의무를 하셨을지도. 심지어 출판사에 내가 요청했는데, 그분께 보내달라고. 그만큼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이라 기대가 컸던 탓이다.

이 책은 '수치심을 쓰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치명적 수치, 그 뿌리가 닿은 엄마의 수치를 쓴 것이다. 수치심이 올라올 때마다 꺼내 쓰는 가면 여럿 있는데 그 하나가 재치였다. 재치와 유머 뒤에 숨었다. 그래서 재치는 내게 수치의 다른 말이다. 물론 재치 있는 나를 좋아한다. 젊을 적에 그랬다. 예쁘다는 말보다, 똑똑하단 말보다 웃기다는 말이 제일 좋다고. 재미없는 사람 될까 두려웠다. 대학에서 '음악치료 개론'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을 웃기지 못한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재치 있는 내가 되려고 했던 건 누추한 나를 지우고 싶어서였다.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지운 게 아니라 감췄을 뿐이란 것도 잘 안다.

재치와 수치 두 말은 한 구멍에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치명적인 단어를 고르셨을까? 위에는 흘려보냈다고 썼는데 다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위안도 있으니 다행이다. 위안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니 다행이다. 제이언니 김용주 님이 책 후기를 보았다. 정확하게 어디를 겨냥하고 있었다. 재치와 수치가 나오는 그 구멍이다. 평생 써오던 가면 '재치'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재치, 수치, 두려움, 심지어 이번 '재치 책 소개' 글로 상한 마음까지 저격당한 느낌이다. 물론 위로와 격려의 저격이다. 위로,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을 받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글쓴이가 부담스럽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분을 통해 위로하신다고 느껴졌다.

힘을 낸다. 수치심 치유의 시작은 '드러냄'이다. 그놈의 필살기가 숨고, 고립되는 것이다. 고립되어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에서 저만의 세계를 꾸미고, 그럴듯한 가면을 만들어내는 일이 수치심이 하는 일이다. 그 일이 능숙해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때, 약함이 악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내놓고 다시 내 수치심을 확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히며 하찮게 여겨지거나, 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수치심을 들러리 세워 우월감 느끼는 사람은 없겠지? 이렇듯 다시 수치심의 향연이지만 괜찮다. 힘을 낸다. 취약함을 드러냄으로 고립의 동굴로 가는 길에 불 하나는 밝혀졌다. 다행히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진심의 감사로, 감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힘을 낸다.

 

과거에 정신실 언니와 교류하는 동안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면서는, 책보다는 그녀의 '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공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은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소리와 표정, 말투가 더 정감이 가서인지 같은 내용을 글로 읽을 때는 그런 게 축소되는 느낌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아마도 밝게 보이려는 모습이 매번 글에 투영되어서였던 것 같다. 뉴조 연재를 묶어낸 <신앙 사춘기> 책에서는 약간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더이상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조금 어둡더라도 숨김 없이 내적 음성을 섬세하고 명료하게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또한 반갑고도 감사하게 읽었다. _제이언니 김용주 님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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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09 14:51 신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방금 언니 글을 읽고 맞물려 떠오르는 생각이...저에게도 촛불이 밝혀지네요..

    알려지는 일에 용기를 내어주신 언니께 감사하는 또 한 사람 여기요!!

    • BlogIcon larinari 2021.07.11 20:51 신고

      오늘 '수치심'에 대한 설교를 하고 다시 수치심에 휩싸여 돌아오는 길. "언니는 언니와 언니의 이웃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수치의 십자가에 언니를 제물로 내어주고 있다." 가당치 않고 과분한 소리가 차 안에 울려서 깜짝 놀랐어. 가당치 않고 과분한 말이지만 일단 받는다. 그 뒤에 나온 땀과 눈물의 자국은 인정할 수 있으니까.
      그대와 함께 수치심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려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2. BlogIcon myjay 2021.07.27 21:53 신고

    오랜만에 들렀는데. 네.. 부담스럽네요.^^ (저도, 감사하고요..)

    • BlogIcon larinari 2021.07.30 07:24 신고

      입장을 바꿔도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요. ㅎㅎ
      당산역 출근 도장 찍으시던 트위터 시절 트친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 굴곡진 SNS 역사를 거쳐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친구세요. 물론 많은 시간 눈팅 친구지만. 마음의 댓글은 수없이 달고 있습니다. '제이언니의 회색지대, 회색의 그러데이션_제이언니의 글쓰기 여정을 분석하고 응원함'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서 올리면.... 진짜 킹왕짱 부담 되시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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