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울증 환자 맞나?

 

연구소 카페에 올라온 글의 마지막 문장, "나, 우울증 환자 맞나?" 마음인지 귓가인지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나, 우울증이 아닌 게 맞나?" 하는 이상한 말로 바뀌었다. 잠깐 일어났다 주저앉고, 잠시 힘이 들어갔다 금세 푹 가라앉는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긍정'의 말들이 그렇게 거슬렸다. 잘해요, 좋아요, 훌륭해요, 멋져요. 긍정의 캐치볼이 오가는 걸 유난히 견딜 수 없었다. 잠시 혼자인 저녁 시간, 클래식 FM은 전기현의 세음이다. 무기력하게 앉았는데 들리는 기타 연주의 익숙한, 익숙하게 아픈 멜로디.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라니! 떨며 우는 소리 같은 하모니카 소리다. 하모니카 소리에서 가사가 들린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대학 1학년 1학기에 과대표를 했는데, 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선배들이 노래를 시켰다. 그때 부른 노래가 저 <봉숭아>. 앙코르곡으로 역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해서 총학 대의원 엠티에 가서 부르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짝사랑으로 힘든 친구가 불러달라면 불러주고, 정태춘 박은옥 노래 플레이어가 되었었다. 그 많은 노래 중 가슴에서 나오던 노래가 <봉숭아>였는데, 왜 그리 저 가사가 절절했을까. 친구들도 선배들도 사연 있는 여자의 노래로 들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실연의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고 전기현 아저씨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꼼짝 않고 들었다. 그 끝에 "나, 우울증 아닌 게 맞아?"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 좀 우울하구나." 내 마음이 알아졌다. 요 며칠 마음이 한없이 협소해지고, 견딜 수 없는 말들이 많았던 건 우울이었구나. 이왕 플레이 버튼 누른 김에 더 서글픈 <봉숭아>도 들어보자. 송소희 노래보다 박은옥 님의 긴장되어 무표정한 표정, 정태춘 님의 깊은 주름이 더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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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황도는 말이지......

 

복숭아 먹다 세 번 중에 한 번은,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가 등장한다.

황도 통조림 있거든.

그거는 아플 때만 먹을 수 있었어.

아빠는 황도 백도 통조림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게 먹고 싶어서 아팠으면 좋겠다, 했어.

 

그래서 만들어봤다.

지인 집사님 찬스로 갑자기 복숭아 과수원 방문하게 되었다.  

싸게 한 보따리 사고도, 얻은 낙과가 더 큰 보따리.

한 시라도 빠르게 처치해주야 하는 시한부 복숭아들 골라 '옛날 황도 통조림' 만들었다.

맛도 모양도 성공적!

 

내겐 아직 청년 같은 남편이 애들에게 "아빠 때는 말이야, 라떼는 말야"

할 때는 정말 옛날 사람 같더라.

복숭아 다듬는 엄마 아빠 사진을 찍던 현승이가

"배경만 바뀌면 노년의 부부 같애. 시골집 마당이나 이런 곳이면 딱인데!"

 

황도 통조림 만드는 옛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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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강물에 항시 떠다니는 말들이 있다. 오래되어 강물과 하나가 된 것이라 굳이 건져 올려 확인할 일은 없다. 마음의 강물과 하나이듯 내 존재와 딱 붙어버린 말이기도 하다. 합장合葬. 합장이 될 줄 알았다. 두 죽음이 한 무덤에 묻혀야 끝날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막연하게 그리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합장이 되고 나서야 내 이 두려움과 고통은 끝이 나리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얻은 일종의 지병 같은 '죽음 상상'은 또 다른 죽음이 와야 끝이 날 것이었다. 갑자기 맞은 아버지 죽음 끝에 늘 엄마의 죽음을 상상했다. 엄마의 귀가 시간이 늦을 때면, 엄마가 시골 외갓집에 가기 위해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쉬지 않고 엄마 죽음을 상상했다. 죽음 상상은 살아갈 걱정과 짝을 이루며 왔다. 엄마의 죽음, 내 삶의 대책. 엄마마저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지?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리고 동생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어떻게든 살겠는데 두 살 터울 동생이 걱정이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동생의 덩치는 생전 아버지보다 더 커졌다. 예나 지금이나 내 몸은 초경량급인데, 그 동생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작은 어깨에 하나인 듯 두 개의 짐이 얹어져 있었다. 엄마의 죽음과 동생의 삶이다.

 

그 두 개의 짐보따리를 아울러 부를 이름은 '책임감'이다. 누가 지워준 짐이 아니다. “엄마한테 잘해라, 네가 잘해야 한다. 엄마와 동생 잘 돌봐라" 아버지 장례식 마치고 이런 얘길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끙차! 그 보따리 들어 어깨에 떠맨 사람은 나 자신이다. 심리치료와 영성 상담을 공부하고 일을 하며 많이 가벼워진 짐이다. 가녀린 어깨에는 과적 용량이었지만, 덕분에 잘 살아온 면도 있다. 나 자신 돌보는 것, 내 한 몸 책임지는 것은 절로 되었다. 허튼 도움을 기대하거나, 내가 감당할 부분을 떠넘기려 하지 않았다. 먼저 나를 추슬러야 엄마든 동생이든 돌볼 수 있으니, 내 한 몸 돌보는 것은 기본이어야 했다. 내 심리적 영적 성장의 여정은 동생과 엄마에 대한 '가장(家長) 의식'을 내려놓는 것과 맞물렸고, 그럭저럭 잘 놓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휴대폰 벨이 울리고 동생 이름이 뜨면 늘 조금씩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말을 들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매번 새로웠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된 새벽, 결국 듣고야 말았던 그 말.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 아픈 말은 상상 속 죽음의 공포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말이(어야한)다. 38년 전, 아버지를 앗아간 죽음이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그날로부터 죽음을 짊어진 삶을 살았다. 합장의 때가 왔다. 더는 엄마까지 빼앗길지 몰라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시간을 살지 않아도 된다. 지난 6개월, 어쩌다 시작한 애도의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써왔다. 6개월 간의 장례식이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 없이 살아온 '고아의 나날'을 복기하며 새롭게 서러웠다. 과연 부모님을 함께 떠나보내는, 합장의 시간이었다.

 

기나긴 장례식을 끝내고 상복을 벗을 때가 되었다. 마음의 장롱에 늘 준비되어 있던 상복이었다. 언제든 꺼내입을 수 있도록, 자라는 내 몸에 맡게 수선하였다. (아, 나는 자라지도 못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때의 키가 지금과 같다.) 1박 2일 가족장으로 치른 탓(덕분)에 40여 년 품고 있던 상복을 꺼내 입지 못하고 허망하게 엄마를 보냈다. 갑자기 닥친 아버지 죽음으로 내 인생은 온전히 엄마 장례식을 준비하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잘할 수 있었는데...... 준비된 상주로서 의연하게 장례식 치러낼 수 있었는데. 두꺼운 초록 스웨터 위, 후줄근한 상복을 걸치고 "불쌍해서 어쩌냐"하는 시선을 받는 무력한 단발머리 아이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쓸모 없어진 상복을 치워버리기로 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의 방, 엄마의 물건처럼 내 마음의 방에서 상복은 싹 치워버리겠다.

 

평생 가장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 없음'이었다. "아버지만 계셨다면 내 인생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자주 상상했던가. 상복을 치우고 죽음에의 과도한 공포를 거둬내고 돌아보는 내 인생, 극복하고 싶었던 그것이 결국 나를 형성하고 지켜냈다. 오지 않은 엄마의 죽음과 함께 늘 최악의 비극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삶, 과도한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에 짖눌려 키도 자라지 않았군!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언제 어디서든 부조리한 것이 먼저 감지되는 까칠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데, 삶의 비극성에 머물러 어설픈 해석이라도 하고픈 몸부림이었다. 정말 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까칠한 존재였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 위쪽으로 떨어지다』에서 깜짝 놀랄 글을 읽었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은 결코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어 있는 깊은 시간 안에서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필요한 고통을 준비케 하고, 자신의 실패와 상실에 절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은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보다 먼저 걸었고 우리보다 나중 걸어갈 거대한 인류 대장정에 합류하는 것이다.  

 

일찍이 만난 죽음이 내 인생을 이끌었다. 그렇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리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에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능력을 키우며 강해지기도 했다. 고통에 머무르고 실패와 상실에서 아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갈등을 마주하며 견디는 힘도 일찍 죽음의 뒷모습을 마주한 덕이다. 조금씩 자유로워진 엄마와 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은  치료와 상담으로 만나는 이들에게로 옮겨갔다.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며 더 많은 이들과의 치유적 연결이 생겨났다. 역시나 과도한 책임감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지만, 비극을 통과하며 얻은 책임감은 내게만 있는 보물이라고 자부한다. 고통과 상처는 나를 나답게 하는 존재의 무늬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나만의 무늬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상처와 함께 그것이 만들 존재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 역시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으로 뜨인 눈이다. 고통과 비극은 인간 실존의 기본설정-그 극한은 죽음이다-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고통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재난처럼 밀려든 아버지의 죽음이 삶을 뿌리째 흔들었고, 그때로부터 죽음은 늘 살아 있는 공포였다. 혐오하며 붙들고 있었고, 두려울수록 더욱 밀착되는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러했고, 죽음이 가져온 변화를 극복하며 나를 형성하고 자랐다. 쉰이 넘어 마주한 엄마의 죽음은 혐오 대신 생의 신비로 이끄는 문이 되고 있다. 엄마 떠나시고 쓰기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글이 이끄는 길을 따르다 합장의 날에 이르렀다. 내 인생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이제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이 말이 알아들어진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 앞에 섰다 돌아오신 후에 쓴 글이다.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때, 우리는 심오한 기쁨으로 충만해지며 두려움 없이 죽음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죽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찍 죽고,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 죽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명하고, 어떤 이들은 장수합니다. 어떤 이들은 병으로 죽고, 어떤 이들은 뜻밖의 사고로 갑자기 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죽으며, 똑같이 최후를 맞이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이 공통점을 놓고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죽는가 하는 숱한 차이점들은 우리를 더이상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점들은 친교의 느낌을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 인류 가족간의 친교, 다시 말해 서로 소속되어 있다는 깊은 느낌은 죽음이라는 가시를 뽑아버리고, 우리에게 역사적 삶의 한계 너머 저 먼 곳을 가리켜 줍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결합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 죽음과 애도 전문가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쓴 『인생 수업』이란 책이 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이 들려주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다. 그 책의 지혜를 빌자면 죽음은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거듭 말하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한다.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인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을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두려워 마주하지도 못하고 등 뒤에 지고 있던 죽음을 말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죽음으로 헤어진 엄마와 아버지는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다시 만날 수 있다. 천국에 갈 이유가 절절하게 또렷하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요,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언젠가 죽음이라는 신비의 문을 통과해 엄마 아버지 만날 때까지, 천국 가는 오늘을 천국의 시간으로 살리라.

 

탈상(脫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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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5일 

내적 여정 세미나 1단계를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요즘 SNS 흔한 게 온라인 강의 포스터지만,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 zoom 강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 9월 5일은 '역사적'이란 진부한 표현이라도 갖다 붙여야 할 날이다. 지난 5월부터 zoom 강의를 경험하긴 했다. 언택트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연구소도 발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내적 여정만큼은 아니지 싶었다. 설령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내적 여정 세미나는 멈추는 게 맞지, 어떻게 화면으로 보며 마음을 나누겠냐고, 혼자 생각했다. 결국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말았다.  

 

2020년 5월 

미주 코스타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는 소식과 강사로 초대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거푸 몇 번 거절했던 터라 죄송한 마음, 온라인이니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Kosta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더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강의는 미리 찍어 보내야 하고, 사전 홍보 책 소개 영상 숙제도 덤으로 받았다. 휴대폰으로 대충 찍으면 되려니 싶었는데 Kosta가 호락호락해야 말이지.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겠는 웹캠과 탁상 마이크 같은 걸 검색하고, 남편은 또 어디서 얻어오고.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도 부담 백배인데, 새로운 강의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5월 한 달을 보냈다.  알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모른다" "모르는 영역이다" 이 의식으로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휩싸이는지 알게 되었다. 

 

2020년 7월

Fear To Faith Now, 드디어 온라인 코스타가 열렸다. 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전향해야 하는 지금! 새벽 5시, 강의를 위해 ktx 타러 나가보긴 했지만 강의를 할 시간은 아니다. 고요한 거실, 노트북 앞에 홀로 앉아 코스타 세미나 강의라니.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을 새롭게』! 헨리 나우웬 신부님 책 제목 잘 지으셨네요.) 두 번의 강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새벽, 멍하니 새벽산을 바라보며 감동을 머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화상 강의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되겠나, 마음의 소통이 일어나겠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만 빨리 끝내고 다리 뻗고 자는 게 목표다, 이것 뿐이었다. 30분도 되지 않는 질의응답 시간, 말로 글로 전해져 오는 질문과 반응에 마음 깊은 곳이 떨렸다. 상실, 애도, 고독, 영성. 3월 엄마 돌아가신 이후 붙들고 있던 것을 말로 꺼내놓을 때 어떻게 들려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도 경험과 상황이 다른 해외 유학생들에게 말이다. 적어도 내 안에 일어난 파장은 랜선을 타고 갔다 부딪쳐 다시 돌아온 메아리였는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아픔과 갈망이 다르지 않다는 것.

 

온라인 Kosta 덕에 COVID-19가 가져온 변화에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낯선 상황, 모르는 것에 대한 내 두려움이 낳는 완고함과 방어 또한 부끄럽도록 생생하게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몸과 몸이 함께 하지 않는 만남'을 폄훼하며 과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주먹 불끈 쥐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노인네 같았다. 신비로운 인연이다. 최근 몇 년은 참석도 못했고, 예전 그 만남의 기억을 간직할 뿐 이제 멀어진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참석했던 그때처럼, Kosta는 나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한 발 내디뎌 강사로서 다른 자리에 서도록 한다. 

 

2020년 8월

올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8월에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zoom으로 자주 만났다. 예정된 워크숍을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취소한 아쉬움에 zoom에서 모였다. 재미나게 모였다. 케이크를 준비한 생일 축하도 하고. 글쓰기 모임에선 글을 낭독하고 들으며 눈물 찍어내는 일이 잦았다. 랜선이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손가락만 하게 보이는 얼굴을 보면서도 울고 웃으며 연결될 수 있구나. 랜선이 아니라, 우리들이 신비한 존재구나! 비록 몸으로 마주칠 수 없지만 영혼으로 이렇듯 연결되고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존재의 신비여!

 

2020년 9월

지도자과정 2학기도 온라인 강의가 되어야 했다. 정식 개강 전에 책 나눔으로, 가벼운 수다로 zoom모임을 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 '낯선 것에의 두려움' 뽀개기 시도였다. 어렵지 않게 2학기 개강 첫날 모임을 마쳤고. 6주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이게 웬일인가! 고집쟁이 장로님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했던 이유는 '몸'이었다. 몸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런데 zoom에 익숙해지다 보니 오프라인 모임보다 '몸'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비록 눈동자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지만(집단 여정에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습기, 긴장은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음의 거울이다.) 몸이 그것을 대신한다. 화면으로 보이는 몸이 말보다, 글보다 크게 말한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연결과 소통의 신비란!

 

2020년 9월 6일

9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첫 온라인 내적 여정 세미나를 진행했고. 9월 6일 주일 0시 30분. Kosta 간사 수양회 강의를 했다. 식구들 잠든 한밤중에 거실에 앉아 찬양 하고, 간증을 듣고, 강의를 했다. 주제는 '희망'. 이토록 희망 없는 시절에 희망을 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 아닌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 현실이 아프거나 막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희망은 말해져야 하고, 발굴되어야 한다. 없지만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요즘 내 영성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 선생님은 14세기 여성 신비가 노르위치의 줄리안인데,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를 살았던 영적 선배, 언니이다. 아침마다 아껴서 읽는 그의 저서로 영혼이 촉촉해진다. 14세기 살던 언니가 아침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All shall be well!" 잘 될 거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단단한 내 고집이 부서지는 한, 그래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한 잘 될 것이다.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 있고, 사람이 있지만 어제의 내가 깨지는 한 이 어려운 세계와 사람이 내게 흘러들 틈이 생길 것이다. All shall b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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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iami59 2020.09.15 21:25 신고

    좋은 언니를 두셨네요.^^

 

 

하루 세 끼 집에서 먹는 나날이지만 스트레스는 크게 없다. 남편과는 정말 오랜 시간, 다 큰 아이들과는 최근에 더욱 가족의 일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많이 얘기하고 싸우고 실행하고 있다.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데에 네 식구가 생각으로 행동으로 더욱 합의해가고 있다. 그래서 계속 집밥, 집밥, 집밥의 연속이지만 한결 여유가 생겼다.  

 

 

현승이가 갑자기 "나 오늘부터 4시 이후에 밥을 안 먹으려고. 살이 빠지면 볼살이 제일 먼저 빠진대. 볼살 빠지게 할 거야. 엄마, 나 4시부터 밥 안 먹어." 한다. 무슨 갑작스러운 다이어트 선언인지, 그리고 또 4시는 무슨 뜬금없는 시간인지, 뱃살도 아니고 볼살을 빼는 다이어트는 또 뭐라는 건지. "그래!" 하고 웃고 말았는데, 나름대로 진지하고 비장한 듯하다. "나 진짜야 엄마, 이따 안 먹어도 뭐라고 하지 마." 이런 말 하면 지키는 아인데, 진짜인가 보다.

 

 

정말 네가 다이어트를 한다면......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장을 보러 나가고 싶었다. 현승이가 진짜 좋아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해야겠다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혔다. "현승아, 저녁 메뉴는 차돌박이 된장찌개야. 식사 시간은 6시." 현승인 농담인 줄 알지만 나는 진짜였다. 현승이가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은데, 그냥 얘를 약 올릴 수 있다면, 아무리 귀찮아도 장을 보러 나갈 수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다! 정말 나는 그렇다. 너무 신난다.

 

 

집 앞 마트에 나가 싸구려 냉동 우삼겹을 사다 된장찌개 끓였다. 약 올리는 재미로 끓였다. 오직, 약 올리기 위해서. 마음을 꿰뚫는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 나를 유혹하려고 끓인 거 아니지? 그냥 정말 웃기려고 끓인 거지? 엄마 신났지? 진짜 7번! 진짜!" 물론 6시 넘어서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에 밥을 두 공기 먹은 현승이는 통통한 볼로 맛있다 히죽거렸고. 옆에 있던 덕분에 맛있는 된장찌개 횡재한 채윤이는 "어이구, 익살녀 익살녀! 익살녀 엄마!"

 

 

냉동 우삼겹이 한 줌 남아 있었다. 줌 강의 준비로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자기 방 교실'에서 수업하다 점심시간이라고 나왔다. 알아서 챙겨 먹는다며 냉동해둔 밥 꺼내고, 냉장고 문 열고 섰던 현승이가 "엄마, 삼빔면이라고 알아? 비빔면에다......" "아, 엄마가 맞혀볼게. 비빔면 위에 삼겹살 올려서 먹는 거 아냐?" "오, 맞아! PC방 인기 메뉸데 맛있어." "현승아, 지금 편의점 가서 비빔면 사와." 노트북 뚜껑 덮고 바로 일어났다. "엄마가 우빔면 해줄게. 어제 남은 우삼겹 있거든." 바로 현승이는 튀어 나갔다 사들고 온 비빔면을 끓이고, 나는 우삼겹에 허브 여러 종류를 뿌려서 구웠다. 뚝딱 신메뉴 출시.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재미로 하고 맛으로 먹는 오늘의 요리들

 

 



나의 몸, 나의 기억, 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온라인 우물가(Zoom)로 초대합니다.

발설의 치유력은 강합니다. 내가 쓴 글을 낭독할 때, 가장 먼저 내 귀가 듣습니다. 마주 앉은 여성들, 또 다른 ‘나’들이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들어줍니다. 발설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지만, 쓰고 읽고 나눠보면 알게 됩니다. 글로 흘러나온 은밀하고 사소한 나의 이야기가 의미가 됩니다. 나만의 의미가 되고 자유가 됩니다.

‘잠잠함’을 미덕으로 강요받은 교회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초월하는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나, 누구도 아닌 나를 쓰는 여정은 필연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분의 이야기에 닿을 것입니다.

✔ 일정과 신청 안내

+ 일시 : 9월 22일(화) ~ 10월 27일(화) 오전 9시30분 ~ 12시(6주간)
+ 인원 : 6명(선착순)
+ 수강료 : 15만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QSxUrc

✔ 강의와 나눔 내용 :

1강. 나는 쓰고 말하는 나다 :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
2강. 나는 나의 기억이다 : 기억으로 쓰기
3강. 나는 나의 감정이다 : 얼어붙은 감정 글로 흘려보내기
4강. 나는 나의 감정이 아니다 : 수치심 떠나 보내기
5강. 나는 나의 몸이다 : 여자의 몸, 글로 드러내기
6강.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 하나님 어머니 만나기

✔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습니다.
모임 시간마다 바로 쓰고 나누는 글 있습니다.
필독서와 독후감 과제 있습니다.
Zoom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 필독서 :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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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이렇듯 꾸물꾸물한 날엔 덩달아 같이 꾸물거리자.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은 대충 넘기며 꾸물거리자.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큰 냄비에 멸치를 이따만큼 때려 넣고 육수를 내자.

국물 떡볶이를 만들자.

앗, 꾸물거리지 말자. 온라인 수업 중인 아이의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떡, 소시지, 곤약, 어묵, 양배추, 당면.

냉장고에 있는 한 줌씩 남은 모든 걸 털어 넣어서 끓이자.

양이 많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대야에 담자.

대야 떡볶이를 먹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으면 세수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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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거 마늘 까는 게 재밌는데. 더 까면 안 돼?"

"남은 마늘 내가 나중에 깔게."

"오늘은 이 마늘 다 까야겠다."

 

온라인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나와 마늘을 까는 아이. 기시감이 든다 싶었더니, 8년 전 엄마 마음에 들고자 파를 까던 아이였다. 제가 깐 마늘의 반은 제 입으로 들어간다. 마늘을 좋아하는 아이. 고기 반, 마늘 반 구워서 마늘을 더 맛있게 먹는 아이.

 

(클릭) -> 2012/10/25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 엄마와 함께 파 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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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는 블로그 메인 화면에 음식 사진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루 건너 하루 음식 사진이 올라오는 것은 집안에 꼼짝없이 갇힌 나날이 이어지는 까닭이요, 쉬이 밥때가 오는 까닭이요, 내일도 모레도 집에 머물러야 하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요리빨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어머니, 나는 매 끼니마다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을 한 마디 씩 불러봅니다. 광장시장 육회와, 신촌의 즉석 떡볶이와, 평가옥의 평양냉면을 불러봅니다. 이것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천국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돼지 고기 목살에 빨간 양념을 합니다. 캔 대신 껍질까지 있는 골뱅이를 씻어 얹고, 양념장을 뿌리고 콩나물로 덮어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흔들리는 앞산의 나무들은 고립되어 심심한 나날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콩나물이 푹 꺼지고, 양념이 배인 목살과 골뱅이를 씹습니다. 목살 한 점에 추억과, 골뱅이 하나에 사랑과, 콩나물 한 입에 아삭함, 국물 한 숟가락에...... 사장님, 여기 사리 추가요! 라면 말고, 쫄면 말고, 스파게티면 추가요. 그리고 사장님, 그 위에 치즈 사리도 추가요. 어머님, 이 매콤하고 찐득하여 신박한 파스타 맛에 나는 함께 먹고 싶은 이름을 불러봅니다. 나는 무엇인지 아쉬워 바닥에 남은 국물을 다시 쫄입니다. 밥 한 공기의 사랑과, 한 줌 남은 신 양배추 김치에 설탕 한 숟갈과, 김가루와, 참기름, 참기름...... 볶음밥의 완성입니다.

 

거리두기 2.5가 지나고, 확진자 수가 100명 아래로 떨어지고, 고립의 시간이 지나가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새로운 희망의 나날이 무성할 거 외다. 잘 될 것 이외다, 잘 될 것 이외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 이외다.

 

All shall be well!

 

 

 

 

  1. mary 2020.09.03 11:25

    오랜만에 들렀다 한참 웃고 가옵니다.
    글빨 삶은요리빨 팔팔하게 살아계시오니 거리두기 2.5 너끈하게 이기실 듯 하옵니다.
    그나저나 껍질있는 골뱅이로 요리를 하시다니.. 프랑스요리까지 가시는건 아니올런지요.
    ㅋㅋㅋㅋ 올리신 글도 요리도 신박하여 간만에 짧게 재미나게 주절거려봤나이다. ㅎㅎ

    • BlogIcon larinari 2020.09.03 20:48 신고

      증말 증말 제가 블로그질을 이어가는 이유는...... 아직 나는 죽지 않은 것 아닐까, 확인하며 심폐소생을 위해 용을 쓰는 것인데...... 이 블로그의 알파와 오메가 되신 mary 언니께서 알아주시는 글빨, 삶은요리빨, 팔팔한 빨을 믿사오며!

      그나저나 다음 주에 이걸로 준비할깝쇼? ㅎㅎㅎ

  2. 인아 2020.09.04 12:08

    나도 오랫만에 들어와 읽고 보고 그리워하고 갑니다~

하동 일박 여행 중.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 대나무 숲 산책에 나섰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내 옆구리 쪽 어딘가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 발길을 붙들었다. 언제부턴가 노랑, 나비, 노랑나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냥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운 모든 존재들이다. 한참을 놀다 헤어졌다.


섬진강가에 서서 화장실 간 남편을 기다리는데 다시 나타났다. 작은 노랑나비가 "안녕, 여기 있었네" 하는 것처럼 다가와 팔락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비 따라 옮겨 다니며 한참을 놀았다. 


차밭 사이를 걷는데 또 그 노랑나비다. 이쯤 되니 예사 나비가 아니지 싶다. 자꾸 따라오는 걸 보니 나비 쪽에서도 영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모양. 이렇듯 나를 그리워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엄마? 엄마인가 보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가녀린 양쪽 날개는 하나는 그리움, 하나는 아쉬움. 내 마음에 있던 엄마가 나비 되어 함께 걷고 있다. 습기 가득한 산책 길이, 안개에 싸인 지리산 능선이 더욱 아련해졌다. 엄마가 보고 싶다. 많이 보고 싶다.


짧은 여행 동안 이상하리만큼 '초록 사이 노랑'이 눈에 띄었다. 초록 풀잎 사이 노랑나비는 물론이고, 섬진강변 가로수들은 초록 사이사이 노랗게 변한 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동네 텃밭에서는 참깨 꽃을 처음 봤는데 초록잎 사이 노란 꽃이었다. 내내 가는 곳마다 초록과 노랑만 눈에 보인다. 


초록은 (나와) '동색'이다. 에니어그램 유형을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초록이었다. 초록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초록 잔디를 보면 그저 눕고 싶었다. 초록을 보면 살 것 같았다. 특히 봄의 연둣빛을 보면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연두 안에 숨은 '노랑'이 아픔과 슬픔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길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좋던 한여름의 신록에도 전 같은 환호가 나오질 않았다. 그때가 언제냐 물으면 딱히 답할 수는 없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노랑을 곁들이 초록, 또는 초록 사이의 노랑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엽록소가 빠져나간 헐거워진 느낌의 초록이랄까.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흔들거리는 내 뱃살과 닮았다. 빛바랜 초록이 추레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노랑나비가 어른거리니 얼핏 구별이 안된다. 내 노안 탓일 수도 있고. 빛바랜 초록과 연약한 노랑의 조화가 마음 깊은 곳을 툭툭 건드린다.


하동을 출발해서 섬진강변 드라이브가 끝나고 산청에 이르렀는데 차창 밖으로 또 노랑나비! 여기까지 따라왔어? 동영상과 함께 이 얘기를 연구소 단톡에 올렸는데. 안동으로 여행 가신 선생님이 동영상을 보내셨다. "소장님 따라다니던 갸가 여기까지 왔어요." "갸가 아니고요, 저희 엄마예요. 정중하게 인사드리세요." 했다. "어이쿠, 결례를... 용서하세요." 하하. 내겐 엄마고, 선생님에겐 또 누군가이거나 무엇이겠지.  


초록은 나와 동색이다. 초록이 나이고 내가 초록인, 상징색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착물로서의 작은 화분들이 그러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휘를 그만두었던 때, 의식에선 모든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였던 그때 꾼 꿈이 아직 생생하다. 다른 사람 눈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내 딴에는 정성을 다해 키우던 화분을 누군가가 싹 치워버렸다. 꿈에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며칠 몸에 두드러기가 나며 앓고 난 후에 그 상실을 받아들였었다. '지휘' 역시 내가 지나치게 동일시하던 나와 동색인 무엇이었다. 


빛바랜 초록과 한 마리 나비가 쓸쓸하다. 텅 비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텅 빈 곳이 어쩐지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상징은 설명할 수 없다. 느끼고 간직할 뿐이다. 선물 같은 천년차밭길 산책 끝에 숙소 앞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마음을 뺏는 컵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연두와 초록이 어우러진 꽃 한 송이 핀 컵에 딱 꽂혔다. 너다! 빛바랜 초록을 만난 2020년 휴가는 너로 간직하겠다! 이런 경우 흔쾌히 지갑을 열어주는 남편이 고맙고. 채윤 현승 사다 주려고 보던 팔찌 옆에 머리끈이 또 바짓가랑이를 잡네. "여기도 노랑 초록 있습니다!" 그것까지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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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이유식으로 두유를 먹던 시절이었다. 밥은 물론 뭐든지 잘 먹는 아가였지만, 출근하는 엄마와 안녕하고는 할아버지 댁에 가면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푸빵'이라 불리는 인형용 유아차에 누워(물론 크기가 작으니 꼭 끼어 누워 유아차가 터질 지경)서 비디오로 '벅스 라이프'를 틀고 '쮸쮸'라 불리는 두유를 우유병에 넣어 빠는 것이었다. "쮸쮸 한 통을 코끼리 비스께트 먹는 순식간에 치워버려" 어머님 말씀이다. 꽉 끼는 코끼리처럼 유아차에 한 병 뚝뚝하고는 바로 잠이 들어 버리는 것이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새롭게 무너지는 장면이다. 아침마다 엄마랑 헤어지는 것 싫은데, 울어도 떼써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받아들이는... 아니 받아들이기는! 좌절하고 만 아기의 텅 빈 마음이다. 

 

마지막 남은 두유 얘기인데. 그렇듯 두유는 그저 이유식이 아니라 엄마를 대신하는 정서적 대용물이었다. 한 박스 씩 사다두고 먹었는데 다 먹고 한두 개 남으면 애가 불안해서 어쩌질 못한다고 부모님이 보고하셨다. "하부지, 쮸쮸 사러 노넙(농협) 가자죠. 하부지, 노넙 가요." 그리고 할아버지 손잡고 노넙에서 쮸쮸 한 박스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에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고 하셨다. 그 말씀 전해주시던 아버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돌아보면 너무나 귀엽고, 한편 가슴 어디가 새롭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때 채윤일 보면서 젊은 시절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마지막 남은 담배 한 대를 향한 지나친 집착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걸 두고 놀리고 장난도 치곤 했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 

 

찌개로 찜으로 볶음밥 재료로, 정말 소중한 묵은김치가 끝났다. 한 포기가 덜렁 남아 있었는데, 아끼고 아끼며 몇 잎씩 떼서 먹다가 마지막으로 털어서 오리고기 넣고 김치볶음을 했다. 김치볶음, 김치찜, 김치찌개에 열광하는 사람은 현승이다. 집밥을 가장 충실히 먹는 구성원이기도 하고. 며칠에 한 번씩은 김치 들어간 음식을 복용해 주어야 하는 몸이기도 하다. 닭으로 하는 김치찜을 개발하여 '닭치찜' 작명을 한 것도 현승이다. "현승아, 오늘 김치찌개?" "오오, 좋아! 그러잖아도 갑자기 김치찌개 생각이 났었어." 

 

마지막 김치를 자르는데 옆에 있던 현승이가 "엄마, 정말 이게 끝이야? 어떡하지?" 제 딴에 반은 농담인데, 한 개 남은 두유를 확인하고 불안해 하는 아기 채윤이가 떠올랐다. "어, 이거 마지막 잎새야. 너의 행복한 김치찌개 식사는 끝이야. 낄낄." 놀리기 시작했더니 진짜 좀 불안해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더니 묘책이 나왔다. "엄마, 제천 갔다 와. 선 이모한테 가서 김치 좀 얻어 와. 선 이모 만나러 안 가?" (선 이모야, 제천 갈게,ㅎㅎ)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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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31 12:15

    ㅋㅋㅋ현승아~접수했다. 엄마를 보내거라~^^♡

    • BlogIcon larinari 2020.09.01 10:28 신고

      2.5 단계에서 하향 조정되면 달려갈게! 무조건 무조건이야!! ㅎㅎㅎ

 

 

벌써부터 1박2일 하동 여행 계획을 세워뒀다. 숙소도 물론 예약해 두었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 속에서 꿈을 꾸었다.  맑은 하늘 투명한 공기의 지리산 자락을 걸어야지, 걷다 지치면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물소리를 들어야지, 그러면 어느 여름 지리산 뱀사골에서 실족하여 떠난 고정희 시인과 연결될까. 막연한 계획이었다. 장마로 인해 섬진강이 범람하고 화개장터며 우리가 가려던 곳이 물에 잠겼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해복구 상황을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숙소 취소 기한이 될 때까지 고민하다 이런 때는 그냥 가서 밥이라도 한 끼 사먹는 것이 도와드리는 것이다 싶어 강행하기로 했다. 그저 취소하지 않는 것, 수해복구 현장이라도 보고 오는 것을 목표로 아무 계획 세우지 않았다.

 

 

 

수해에 더하여 코로나 상황이 더 긴박해져서 다시 한 번 취소를 고민해야 했다. 숙소에 콕 박혀 있다 오자, 긴 드라이브라고 생각하자, 하고 출발했다. 이틀 내내 비 예보니 정말 아무 기대할 것이 없었다. 체크인 하고나니 아직은 그저 흐린 하늘. 이 틈에 걸어보자. 쌍계사로 갔다. 덥고 습하고. 장마 때 집에서 상상했던 그런 장면은 없었다. 그나마 한 30분이나 걸었을까. 비가 오기 시작. 비오는데 뛰어봐야 앞쪽에 있는 비를 맞을 뿐! 쫄딱 젖어버렸다. 지나서 생각하면 추억이 되겠지. 저녁 때가 되어 검색해서 찾아간 식당에선 가격에도 맛에도 배신 당하고 찜찜한 기분. 멋진 여행을 기대하지 않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계획과 기대가 없어서 실망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밤은 위급한 상담 전화로 보냈다.

   

 

 

아침 먹고 언제 또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숙소 앞 개울가에나 빨리 다녀오자, 하고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길, 결론적으로 상상 그 이상의 산책이 되었다. "저 동네 안으로 들어가 볼까?" 아무 기대 없이 내디딘 발걸음은 검색하다 본 '천년 차밭 길'로 이어졌다. 저 이정표! 지리산에 안긴 동네, 그 동네 마당 앞에 텃밭 같은 작은 차밭은 어디서 본 듯 한, 하지만 상상도 못해본 풍경이었다. 낯선 동네 골목길 걷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텃밭이 차밭인 동네라니. (정말) 천년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차밭 사이를 걷는 아침이라니. 

 

 

 

석류와 호두나무, 감나무, 밤나무, 연근, 도라지꽃까지 만나는 길이었다. 조용한 지리산 아래 마을 길이 우리 여행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튀어나왔다. 천 년 동안 그저 거기 있었을 마을이었으니 '갑툭튀'라 할 수는 없는데. 계획 자체가 없었으니 무엇이 튀어나오든 예상 밖의 일, 갑툭튀였을 것이다.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하도록 충분히 걷고 누렸다. 그리고 다시 아무 계획 없이, 자동차 굴러가는대로 섬진강을 끼고 달리는 길. 내 남은 생이 지리산 자락 섬진강변 어느 동네와 인연이 닿는 때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과 따스함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풍경들로 왈랑왈랑 했다. "이런 동네에 살았으면......"  

 

 

 

고속도로 피하고 국도로. 최대한 지리산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위해서 무작정 산청 쪽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 어릴 적 어느 겨울, 함께 했던 여행지였다. 그래서 끌렸을 것이다. 검색해서 나오는 아무 집이나 가보자, 산청의 어느 식당에 갔다. 흑돼지 소라 찜. 오, 가격도 맛도 좋았다. 사리로 스파게티 면과 치즈를 넣게 되는 신박함까지! 새로운 길, 새로운 음식, 안해본 것 좋아하는 JP님은 대만족. "집에서 할 수 있겠네. 애들 한 번 해줘야겠다." 신메뉴를 득한 나는 더욱 만족. 

 

"지리산 근처 어디든 걸을까?" 이 계획 뿐이었고, 다가오는 일들이 그 이상의 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게 하더니. 결국 좋은 여행이 되었다. 나도 읽고 남편도 읽으며 각각 깊은 통찰을 얻은 리처드 로어 신부님의 책에 그런 말이 나오지. "(진실은 역설적이고 그 진실을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얼마 동안이라도 확고한 결심 없이 살기로 마음 먹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고한 결심과 계획을 위해 너무 애쓰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계획에 어긋나는 위로와 실망이 얼마나 많았던가. 위로의 공간이라 기대하던 곳에서 상처를 받고, 찌르려고 달려오는 사람인 줄 알고 방어하던 사람의 품에서 위안을 얻고, 메마른 곳이라 여겼던 곳에 샘물을 발견하고...... 계획의 쓸모란, 그저 한 발 내딛게 하고 떠나게 하는 것.  

 

 


설교와 온라인 말씀 묵상, 심방도 하고

온라인 수업도 하며, 숙제도 하고, 독서도 하고

피아노 연습에 수강신청 하며 2학기 계획도 세우고

원고 쓰고, 강의안 다듬고, 공부도 하고

 

뭔가 열심히 하는데도 백수 느낌이 난다.

나돌아 다녀야, 얼굴이 안 보여야 안심이 되는 건 아닐까.

내 눈에 안 보일 때 어딘가에서 열심히 뭔가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백수 넷이 뒹굴다 백숙을 해서 먹었다.

 

휴가를 맞은 남편은 4박5일 올레길을 걷고 왔다.

더위에 무리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건만,

하루 3만 보, 2만 보를 걸어서 뻘건 타조알 종아리를 하고 돌아왔다.

냉동실에 모셔두었던 전복까지 넣어 끓인 백숙의 힘이었나.

 

다시 백수 넷의 하루.

한 공간씩 차지하고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들리는,

집안이 꽉 찬 또 하루가 시작했다. 

오늘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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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성경 읽기 진도가 역대상이다. 사람 이름으로 한 장 다 채우는 건 마태복음 1장이 갑인 줄 알았는데, 역대상이 갑 오브 갑이었다. 이름으로 본문 채우기가 9장까지 이어진다. 어릴 때는 눈으로 휙 훑고 지나쳤었다. 하나님의 나와 상관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감사의 글'에 따로 모은 이름들처럼 말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본문'이지 저자의 인간관계가 아니다.

어쩐지 이번엔 한 사람, 한 이름을 꼼꼼히 읽게 된다. 기나긴 인생이었을 것이다. 신앙과 불신앙, 사랑과 두려움을 오가며 40년, 60년, 80년을 이 땅에 머물렀을 것이다. 강한 용사이거나, 제사장이거나, 문지기로서 역할을 살며 자기를 구축했을 것이다. 고유한 인격을 지녔을 것이다. 그 인격의 맥락 안에서 선택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선택이 모여 인생 이야기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더 큰 이야기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다. 내 마음에 울리는 끝없는 번뇌는 한 사람과 맞닿는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도, 삶을 향한 열정을 앗아가는 것도 한 사람의 얼굴이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한 사람의 얼굴이 되고 있다.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누군가의 지금 여기를 한 사람, 한 얼굴로 채워 생기를 앗아가거나, 삶의 기쁨을 불어 넣는다는 것. 한 얼굴, 한 이름이 가진 위력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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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박광혜 권사님 떠나신 지 벌써 일 년이다. 1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헤아려 보면 권사님과의 만남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구나! 그러나 어쩐지 권사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다. 운을 떼어 놓고 보니 일 년 내내 그랬던 것 같다. 3년 여의 시간, 함께 한 시간이 권사님의 70년 넘는 이 땅의 시간의 마지막 시간이었다니.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처음 뵈었을 때는 이렇게 빨리 이별이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사님은 떠나셨지만, 그래서 생긴 텅 빈 자리로부터 새로운 권사님을 만난다. 엄마 애도일기를 쓰고 마무리하며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배웠다. 누군가에 대해 쓰는 것은 그분의 아니라 나를, 그분의 삶에 비친 나를 해석하는 것이다. 떠난 이가 남긴 존재의 빈 자리를 응시하며 보이는 것은 그분이 내게 남긴 사랑이며 가르침이다. 그것을 알기에 쓰려고 한다. 무엇이든 쓰려고 한다. 쓰고 싶다. 써서 알아내고 싶다. 내게 남기신 권사님의 흔적을.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이라는 부제를 단 김영봉 목사님의 책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제목과 같다.

 

추도예배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던 중, 권사님 며느님께서 "어머님이 사모님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했다. 남편이 거들면서 "맞습니다. 권사님이 저보다 제 아내를 더 좋아하셨어요."라고 했다. 나도 안다. 아니 돌아보니 확실히 알겠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다. 내 커피를 좋아하셨고, 내가 꾸며놓은 거실을 '북카페 같다'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시며 칭찬하셨다. 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 가정이 있구나! 실제로 이렇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라고 하셨다. 교회에 처음 오던 날,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까지 어깨가 움츠러들어 내내 긴장이었다. 그날이 한참 지나고 권사님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니, 잘 모르는 학생인데 내가 뒤따라 들어가는 걸 알고는 교회 출입문을 한참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착한가 봤더니 현승이였어. 마음 씀씀이가 보통이 아니에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말씀하셨다. 현승이는 이 말씀을 듣고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 "엄마, 봤지? 나 그런 사람이야." 추운 날의 따뜻한 기억이다. 

 

채윤이에게 특별히 마음을 쓰셨다. 한창 대입 실기 시험 중이었다. 1차 발표가 속속 나고 있었고. 시험을 잘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했다. 한두 번 실수한 것으로 크게 낙심하고 있는데, 기대했던 학교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망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채윤이 모르게 남편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권사님께서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셨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권사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사모님. 우리 채윤이 꼭 합격할 거예요. 하나님이 꼭 붙여 주실 거예요!" 정말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다. 교회 처음 부임했을 때, 권사님이 사랑하는 손녀딸이 한창 입시 중이었다. 권사님이 어렸을 적부터 혼신을 다해 뒷바라지하신 손녀이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손녀딸을 위해 기도하시던 절절함과 비슷하며 다른 절절함 같았다. 결국 채윤이는 원하던 학교에 합격을 했고, 그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그러셨다. "사모님, 내가 된다고 했죠? 하나님이 채윤이 같은 아이를 안 붙여주시면 누구를 붙여주시겠어요?" 눈물이 왈칵났다. 그리고 손녀딸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 색깔이라며 화장품을 사서 선물로 주셨다. 곱고 고운 필체로 정성스레 쓰신 카드와 함께.

 

돌아보면 이렇게 따뜻한 기억이다. 실은 돌아보니 비로소 이렇듯 따뜻한 것이다. 권사님은 사실 '칼같음, 철저함' 같은 형용사가 어울리는 분이다. 완벽하고 빈틈이 없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진(갖춘) 분 같았고, 특유의 자부심도 충만하셨다. 아나운서 같은 낭랑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우아한 말투셨다. 그런 말투로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로 꽂으셨다. 실은 그래서 권사님이 조금 무서웠다. 부임한 첫 해,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길게 진행했는데 쉽지 않은 동반이었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내적 여정 참여자들은 자발성 100%에 목마름 200% 정도를 장착하고 온다. 톡 건들면 그저 마음을 활짝 여는 분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적 여정은 자발성보다는 관성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면을 깊이 돌아보는 것이 여정의 목표인데, 웬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마음의 여정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동반하고 이끄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권사님은 교회 에니어그램 포함, 내가 이끈 내적 여정 집단을 통틀어 최고령 수강자이시다. 정말 열심히 듣고 필기하셨고, 매주 철저하게 복습하셨다. 그리고 매 시간 "너무 어렵다."라고 하셨다. 가장 열심히 하시면서 가장 어려워하시는 모범생이었다. 상담이나 마음의 여정에서 "모르겠다"는 반응은 "마주하기 힘들다"로 받아들이곤 한다. 내적인 부침이 있다는 뜻이다. '저항'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상담자 또는 여정 동반자로서 분별이 필요하고, 버티는 힘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질문이 많으시고, 그만큼 어려워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정직하게 내면을 마주하는 작업인데. 아무튼 권사님 뿐 아니라 전통 교회 신앙생활에 익숙한 분들과의 여정은 내게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시간 소감문을 써 제출하시도록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권사님스럽게, 활자 같은 필체의 소감문을 반듯하게 접어 깨끗한 봉투에 담아 스티커로 밀봉해 건네주셨다. 역시나 권사님스러운 정직한 소감문이었다. 여정에 참여하며 겪으신 내적 갈등을 그대로 고백하셨다. 그럼에도 여정이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히 알고 계셨다. 마지막 문장 '쿵쿵 울림'이란 두 단어는 내 마음에 남아 아직도 쿵쿵, 울리고 있다. 그 연세에 살아오신 세월을 돌아보며 '잘못 살았구나' 하신다. 권사님 정말 오롯이 에고의 그림자를 마주하셨었구나! 누구보다 내적 여정을 진실하게 걸으셨구나! 이제와 다시 보인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삶과 신앙을 '고민하고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으로 마주하며 성찰하셨던 시간은 어떠했을까. 더 헤아려드릴 걸, 아쉽고 아쉽다. 쓰다 보니 더욱 아쉽고 텅 빈 마음에 아픈 바람이 스친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을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워낙 나의 뇌세포는 더 이상 지식이나 감정이 들어갈 틈이 없이 평생 쓸데없는 것까지 차곡차곡 싸여 있었기에. 슬프고도 부끄러운 1강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중에 어떤 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뭔지 모를 충만함에 2강이 듣고 싶어서 '기도하며, 고민하며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에...... 여기 저기 다 있는 나. 아직도 정확한 내 유형을 못 찾고 있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됨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여전히 난 잘못 살았구나 하는 자책감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십자가, 예수님의 와전한 사랑이 나를 회복시키심을 믿는다. 있는 그대로. 모든 학습에서 낙제였지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정말 그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 기울이고 싶다. 

시간 시간 마음으로 쿵쿵 울림이 있었던 내 평생 처음 경험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권사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멀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멀다고 생각했기에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는데 바싹 다가가 "권사님, 내면 마주하는 일이 참 힘드시죠? 권사님, 여기까지 정말 잘 살아오셨어요."라고 말씀 드릴 용기가 없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사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얘기를 가끔 들려주셨다. 아들들 시험기간에는 열심히 하던 에어로빅도 쉬셨다고 했다. 엄마가 몸을 흔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아이 정신 산란할까 봐 그랬다며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이런 면에서 나는 권사님의 반대쪽 끝에 있는 엄마가 아닌가. 내 또래 엄마가 같은 말을 했다면 단칼에 정죄하고 말았을 텐데. 권사님께는 조심스러웠다. 내 소신이 권사님을 아프게 할까, 회한 가득한 권사님의 눈동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곳에 처음 이사오고 며칠 안 지나서였다. 며칠이 지나도 집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오래된 집의 좁은 주방은 많지도 않은 그릇을 다 받아내질 못했고, 대충 지어지고 무성의하게 증축되어 생긴 방과 구조에는 아귀가 맞게 들어가는 가구가 없었다. 쓰던 가스오븐레인지는 들어올 수 없었고, 휴대용 버너로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지냈다. 춥기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바닥에 앉아 배달음식 먹으며 두 아이 중 누군가가 말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아. 아빠가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아."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아직 가스 연결이 안 됐다는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뭘 해도 완벽하게 하시는 분이다. 손수 만드신 듣도 보도 못한 맛있는 음식을 네 식구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술을 전공하신 권사님의 동양자수 작품이 갤러리처럼 걸려 있는 거실과 칼같이 정리된 주방 서랍까지. 머나먼 세계 같았다. 맛있게 먹고 돌아와 우리의 새집에 앉아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누구나 자기 세계, 자기 우주를 산다. 사람 사람 지문이 다르듯, 살아온, 살아가는, 살아갈 세계가 다르다. 두 세계를 각각의 고유함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려면 갈등이 불가피하다. 갈등을 피하기 좋은 방법은 마주하는 세계를 없는 것처럼 지우는 것이다. 마주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먹고 사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차피 내가 알 수 없으니 환상으로 치부하면 불편할 것이 없다. 나는 조금 그렇게 차단했다. 그래서 권사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돌아보면 권사님은 그 세계의 경계를 넘어 내 세계로 들어오셨다. 채윤이 대입 즈음에 보여주셨던 확신은 내 가슴에 와닿은 진정성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운 권사님의 손녀딸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키워진 채윤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은 우리 집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그 와중에 북카페처럼 꾸며놓은 거실을 그렇게나 좋아하셨다. "어떻게든 살겠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마음을 쓰며 나의 세계에 침투하셨다.

 

1, 2학기에 걸쳐 내적 여정을 마친 늦가을. 권사님께서 몇 번 입지 않았다면 빨간색 트렌치 코트를 주셨다. 이름만 들어본 다른 세계의 브랜드였다. 내 몸에 꼭 맞게 수선을 해야 한다시며 수선비용까지 내셨다. 다시 새로운 세계였다. 수선비가 내가 몇 년째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 가격보다 훨씬 더 비쌌다. 장롱 안에 그 코트가 있다. 권사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입고 나갔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지 못했다. 그 코트의 가격이 대충 어떻다는 것을 알고는 입어지지가 않는다. '나 이거 입는 사람이야' 보여주기 위해 명품을 입는 마음이나 그것을 입지 못하는 나나 옷을 돈으로 보며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기는 매 한 가지다. 암튼, 그 코트를 입고 권사님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단풍 끝자락의 남한산성에 모시고 가서 내 최애 점심과 커피로 함께 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셨다. 참 좋아하셨다. 봄에 한 번 또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스치듯 하셨던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다. "미안해요. 목사님과 사모님께 참 미안해요.” 개인적 관계에서 미안함은 아니었다.  그 순간엔 몰랐는데, 복기할수록 그 한 마디가 내 깊은 어떤 것을 건드렸다. 그때 당시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어쩌면 하나님께 꼭 듣고 싶은 말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한 마디 들으면 훨씬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바로 그 말이었다. 바로 그 말을 권사님이 해주셨다.

 

권사님 장례식을 마친 자리에서 하신 아드님의 부탁이 있었다. 1년 후 추도예배를 꼭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남편에게 하셨다고 한다. 권사님 사셨던, 흐드러지는 벚꽃이 뵈는 창이 있는 집을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그 거실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1년을 기다린 것이다. 추도예배를 드리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권사님께 하고픈 말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많은 것이 감사했다. '우리 사모님'의 커피를 특별하게 여겨주셨던 것, 나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와 주셨던 것. 무엇보다 권사님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3년을 함께 하게 해 주신 것. 인생 마지막 인사, 장례예배 집례를 남편 김종필 목사가 해드릴 수 있었다는 것. 완벽한 자기 관리로 일궈내신 삶과 신앙이 생애 마지막 10여 년, '교회 사태'라는 이름의 풍랑을 겪으시며 어떻게 흔들렸는지 잘 알고 있다. 울며 울며 걸으셨다는 탄천 길을 내가 함께 걸었던 느낌으로 생생하게 여러 번 들었다. 교회와 목회자로 인해 겪은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치지 않으셨다는 것에 깊이 안도하며 감사한다. 권사님 투병 중에 '목사'라는 사람과 쉬지 않고 소통하며 두려움을 내비치시고 거침없이 기도 부탁을 하실 수 있으셔서 감사하다. 권사님은 당신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데다, 청빙위원에 소속되어 있었던 책임감으로 김종필 목사를 안타깝게 바라보셨다. 열정을 뿜어내며 선동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흠결 많아 마음 놓이지 않은 김종필 목사가 투병 기간 내내, 임종 직전까지 권사님의 손을 잡아드릴 수 있어서 나는 감사했다.

 

남편이 목사인 것이 나는 늘 부끄럽다. 목사가 쓸모 없는 시대에 목사로 사는 것이 안쓰럽다. '목사의 쓸모없음'을 전제로 세워진 교회에서 목사 노릇하는 것이 안타깝고 민망하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늘 의문하고, 기준도 높은 사람이라 더욱 그렇다. 박광혜 권사님의 투병기간과 장례식, 그 이후 일 년을 지내고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이 목사여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목사의 아름다운 권위로, 거기에 권사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 그 시간을 함께 해드리는 것이 좋았다. 목사들에게 받은 치명적인 상처로 아직 분노와 슬픔이 가시지 않은 권사님 곁에 그저 조용히 손잡아 드리는 목사로 함께 해드릴 수 있어서. 카리스마는 없지만 대신 속 깊은 진심을 가진 사람인 걸 권사님도 아시겠지. 추도예배를 마치고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에서 아드님들과 대화하는 남편이 참 보기 좋았다. 처음으로 목사의 쓸모를 생각했다. 쓸모없음으로 깊이 좌절하고 자주 흔들리는 남편이(내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것, 이 역시 권사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뭔가 쓰고 싶은 마음으로 일 년을 보냈다. 권사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쓰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기나긴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쓰다보니 죄송함과 감사함, 그리움과 슬픔으로 마음이 쿵쿵 울린다.

 

사랑하는 권사님, 세계와 세계의 마주침에서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한 것 죄송해요. 감사해요, 권사님. 정말 다른 세계에 계셔서 제가 사는 삶은 알지도 못하고 안중에도 없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주시고,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늦게 권사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죄송해요. 권사님이 주신 빨간 트렌치코트, 평생 간직하면서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새길게요. 구분하고 나누고 벽을 세우는 것 없는 나라, 두려움 없이 만나고 거침 없이 연결될 좋은 나라에서 곧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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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21 17:56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8.24 08:55 신고

      정말 그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살아오신 삶이, 그 곁에서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으신 그분의 사랑이 안내한 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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