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탄핵정국 때 채윤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지요. 목소리! 하면 또 채윤이라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타낵꾸요! 민쥬수호!' 외쳐댔지요. 돌아오는 길, 시위하면서 은혜를 충만히 받았는지 길거리 찬양집회를 하더라지요. 아빠 어깨에 걸터앉아 종로길을 걸으면서 (역시 고래고래)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걸 싫어해서 웃는 소리도 크게 안 내는 아빠는 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를 목마에 태우고는 지옥의 맛이었겠지요. 채윤이와의 참 가슴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의 날입니다. (당시 쓰던 2G 폰 사진이라 화질이 저리 구리지만 제 눈엔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어요.)

 

싸이 미니홈피가 한창이던 때였는데 저 사진과 함께 다녀온 후기를 올렸더랍니다. 그때 댓글로 누군가 이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직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정치적 입장을 그대로 주입하는 건 쫌 아니지 않나?'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회에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 중립적인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저런 빨갱이 놈들 다 북한으로 보내버렷' 하는 부모 역시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아이에게 나름의 관점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절대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지요.

 

정치적인 문제든 신앙의 문제든 심지어 엄마 아빠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 한 내용이라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곤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또한, 피아노를 배우거나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등의 아이들에 관한 결정은 충분히 얘기하고 의논했습니다. 수영 같은 건 엄마가 먼저 제안했고, 채윤이 피아노나 현승이가 잠깐 했던 태권도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누가 제안했든 충분히 생각하고 의논한 후에 일정 기간을 쭉 하는 걸로 약속합니다. 중간에 재미없어졌다고 '끊어줘!' 이런 거 없기로 말이지요. 이 부분은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내게 좀 길러줬으면 좋았을 걸 하는 덕목이기도 해서 단호하게 지켜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저 자신의 삶에서, 또 제가 하는 연애 강의 등을 통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선택과 책임'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고요. 무슨 주제든 아이들과 대화하지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자신에 관련된 일에선 특히 충분히 얘기하고 최종 선택은 스스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글로 이렇게 써놓으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 교육철학이지만 철학이 엄마 머리에만 있다는 게 문제죠. 이 미덕을 가르치려면 실패가 뻔한 시도를 허용해야 하는데, 이느무 엄마가 그렇게 성숙하질 못해서요.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통제본능이 매우 강한 엄마로서의 저 자신을 (늘 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튼, 애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면에 관에서 성공경험이라면 채윤이의 예중 생활 3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겨운 3년을 보내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자기 결정'이었다는 의식이 채윤이를 지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연습을 체크하거나 성적 가지고 쪼거나 하지 않는(못하는) 불량 엄마 탓에 스스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는 예중 가는 선택을 '선생님의 설득으로 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몹시 싫어합니다. 선생님이 제안하셨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늘 힘주어 강조하지요. 그 과정은 엄마를 졸라 허락 받아내는 일도 포함입니다. 아무튼, 이런 채윤이를 지켜보며 '자기 결정'의 힘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고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채윤이도 동의했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동의라니요. 자기 결정입니다. 한참 전에 '중학교 마치고 1년 쉬는 방법도 있으니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엄마가 했고. '꽃친'이라는 게 있다,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예고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말은 채윤이가 했습니다. 일단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고 합격을 한 다음 멋지게 그만두자!는 말은 엄마의 꼼수였습니다. 합격을 한 후에는 엄마, 아빠, 모두 (아까워서) 흔들렸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펼쳐놓고 고민하고 대화했습니다.자연스레 '괜찮겠다. 예고 포기하는 게 맞네'라고 채윤이와 엄마 아빠는 물론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었던 친구들도 한결같이 동의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적인 자기 결정! 토요일 밤에 채윤이와 최종적인 대화를 마치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채윤아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과 결정을 다 했어. 내일 예배드리고 찬양하면서 기도하며 최종 결정해.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려. 그러면 이 결정은 하나님 손에 맡겨 드리게 되는 거야" 채윤이가 갑자기 살짝 울컥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데 나는 어른들이 하나님의 뜻... 이런 얘길 하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이런 말을 할 때 좀 이해가 안 돼.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는 것도 아닌데... 사실 예고를 안 간다고 하는 것도 내가 정한 건데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잖아." (표정은 수심 반 서러움 반)

 

"맞아. 채윤아! 니 말이 맞아. 엄마도 이 나이 되도록 살면서 많이 기도해왔지만 사실 하나님의 뜻이 이거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어. 그냥 기도하면서 그때그때 엄마가 좋은 걸 선택한 거지. 하나님과 함께 결정한다는 건 이런 거 같애. 너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는 걸 알지? 사랑하니까 니 일을 막 정해주고 그래? 글치. 엄마빠가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 알지?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니까 널 믿어주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려고해.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채윤이한테 뭘 바랄 것 같아? 그렇지. 잘 되는 거. 잘 돼서 어떻게 하라고? 맞아. 행복하라고. 엄마는 하나님이 채윤이한테 바라시는 건 채윤이 자신이 되어 행복한 거, 그걸 바라실 것 같아. 엄마가 널 사랑하니까 니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주잖아. 그렇다고 니 선택했으니 니가 알아서 해. 이렇게 해? 아니지. 엄마가 해야하는 것, 할 수 있는 걸로 다 도와주려고해. 그거야. 니가 가장 좋은 길, 또 선할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 같이 걸어가 주세요. 혼자서는 못 가요' 하고 가는 거야. 하나님 손잡으면 엄마랑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랑으로, 힘으로 너랑 함께 가주셔. 니가 최종 결정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것처럼 말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네 살 채윤이 목마에 태워 촛불집회에 데려갈 수 있었지만 열여섯 채윤이를 엄마 마음대로 아무 데나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네 살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열여섯은 그렇게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엄마로서 여전히 아이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내가 온전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은 열여섯인 채윤이 혼자 알아서 결정하도록 무책임하지도 않습니다. 열여섯 채윤이가 할 수 있는 분량을 믿어주고, 도와주고, 스스로 가장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무력하여 어마어마한 그 역설적인 사랑을 늘 많이 생각합니다.

 

꽃친 가족 인터뷰를 마치고 채윤이가 한 말입니다.

"엄마, 내가 아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그걸 못했어. 나는 꽃친을 해도 예고를 가도 어차피 아쉬울 거라는 걸 알아. 꽃친을 하다 예고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예고 갈 걸... 하겠지. 예고 가서 힘들 때는 에이, 꽃친 할 걸... 하겠고. 어차피 아쉽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아쉬운 건 그냥 아쉬워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걸 열심히 해야지."

채윤이의 '자기 결정'입니다.  

 

 

 

 

 

* 이 사진은 입학 실기시험 치러 들어간 채윤이를 기다리며 찍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때 읽고 있던 책이 <자기 결정>이었네요. ^^

 

 

 

 

 

 

 

 


 

 

 

 

육아, 라고 하기엔 아이들도 크고 저도 많이 늙었으니 '자녀교육'이라고 해야겠네요.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유별나다'는 주변의 평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보통과 다르다'는 의미라면 몰라도 특별히 애를 쓴다거나 '에너지를 쏟는다'는 뉘앙스일 때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신경함의 유별남'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사실 채윤이는 우리나라 공교육에는 좀 맞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채윤이가 서너 살일 때부터 엄마로서 촉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홈스쿨링을 고려하거나 대안교육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어서(귀찮아서?)였고, 채윤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차피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한데 한글 따위는 배우지도 않은 채윤이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주저 없이 학교에 보냈습니다.

 

나름 아기 적부터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려 했던 부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했으며 부당하게 강압하지 않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면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리얼리? 이렇게 좋은 부모라니!!) 비록 우리는 이렇게 키우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그 모든 것을 막아줄 수도 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께 부당하게(아이 입장에서야 늘 부당하겠고, 가만 들어보면 정말 부당한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야단을 맞고 왔다 해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날 지언정. 아, 물론 아이가 구구단을 빨리 못 외운다고 수학책으로 머리를 때렸던 2학년 때 담임, 하남 천현 초등학교 *** 선생님은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까지 대동해 찾아갔습니다. 이 일 외에는 그저 채윤이든 현승이든 학교에서 받는 칭찬과 상처를 스스로 견디도록 했습니다. 다만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을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고 충분히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자 했습니다.(만 그저 생각일 뿐 상처받고 온 아이 더 상처 주는 일이 많았지요.ㅠㅠ) 알고보면 저, 꽤나 체제 순응적인 부모랍니다. 케케. 심지어 영양사가 짠 식단으로 점심 한 끼를 먹고 올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엄마의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열심히 학교 보내는 엄마입니다. 5대 영양소 골고루 챙겨 멕여주는 게 어디냐며. (강의와 원고가 몰릴 때는 며칠이고 우리 집 싱크대에서 쌀뜨물 흘러가는 일이 없다지요.)

 

결론부터 까놓고 시작한 글입니다.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지만 예고에 가진 않습니다. 예고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이 대단히 유별난, 비장하고 진지한 선택은 아니랍니다. 딱 사람을 낚기 좋은 선정적인 제목이라서 던져봤을 뿐이고요. 사실 이 연재의 핵심은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1년을 쉽니다'입니다. 그리고 1년을 쉰다는 선택도 딱히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 엄마의 삶의 여정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3년 전 예중 입시를 선택했던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청년 시절 <많은 물소리>라는 찬양집을 애용했습니다. 당시 청년부에 도는 안경 낀 철학 전공 남자애가 하나 들어왔는데 어쩌다 찬양인도를 맡더니 찬양집을 바꾸더군요. 그것이 <많은 물소리>였습니다. 아, 그 도는 안경의 이름은 김종필입니다. 그 찬양집을 만든 황병구 님을 김종필과 함께 오래도록 흠모했습니다. 그가 만든 찬양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그댄 솔잎이어라'는 한영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시절 목자들과 부른 18 번 곡이었지요. 물 흐르듯 흐르는 우리 일상의 시간 속에 황병구, 이수진 부부가 곁에 왔고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집 딸내미 은율이의 안식년 소식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지난 글에서처럼) 채윤이에겐 예중-예고 프로필이 중요했구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부부가 딸내미 안식년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눌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결정의 중요한 장면들을 제가 자꾸 목격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맥도날드 앞에서 눈물로 결심한 대로 채윤이는 열심히 피아노를 쳐댔고, 저는 열심히 레슨비며 돈을 댔습니다. 이것과 상관없이 '꽃다운 친구들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황&이 부부님은 열심히 새날을 준비하더군요. 9월이 되어 채윤이는 입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꽃친은 개봉박두, 설명회를 하기에 이릅니다. 잠시 짬을 내어 설명회에 다녀 온 채윤이는 카톡 상태 메시지를 '꽃친'이라고 바꿔 놓더군요. 그러나 정말 꽃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지금은 입시만 생각하겠다며, 입시 끝나고 얘기하자며. 그 와중에 꽃친에 어플라이 하기 위해 급조해서 자기소개서도 쓰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1월이 왔고 드디어 입시를 치렀지요.

 

시험을 마치고 발표까지 며칠. 당락에 상관없이 진로를 정하기로 했었기에 얘기를 좀 해보려 했더니 채윤이는 역시나 입도 뻥끗 못하게 합니다. 합격 발표 보고 얘기하자면서요. 합격하고 나니 마음이 무지 복잡해지더군요. 채윤이나 엄마나 심지어 차거운 머리를 가진 아빠까지도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걸 포기해? 미친 짓 아닐까? 대학입시 따위 개똥으로 취급하는 척, 쿨한 척 하던 것이 그저 '척'이었음을 알겠더군요. 짧고 굵은 갈등,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이런 저런 대화, 무엇보다 채윤이와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결론은 자명해졌습니다. 때마침 접한 이 기사 (입시전쟁 최고봉. 서울대? 아니 예술중!)는 아주 그냥 시의 적절합니다. 잠시 우리를 흔들었던 욕망, 그리고 자명한 결론과 필연의 선택을 다 담고 있네요.

 

꽃친이 아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 부족하여 '꽃친'이 채윤이만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씸다. 그저 채윤이와 채윤이를 키운 불량 엄마가 여기 있고, 3년 전 은율이의 선택이 있었고, 은율이를 그렇게 키운 은율이 엄마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라는 신비가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었지요. 우리 모두의 시간이 흐르는 강물과 같고, 어느 여울목에서 교차하여 만난 것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왜 예고를 안 가냐고? 여기서도 의문이 안 풀리셨다면 다음 편 예고 겸, 의문에 대한 힌트 겸 황병구 님의 노래 한 곡조 들려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없는 삶을 몰라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됨은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없는 바다처럼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예중에 입학한 채윤이는 예고의 교복이 그렇게나 예쁘다며 꼭 입고야 말겠다고 했습니다. 예고 교복 예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아름다움(물론 채윤이는 이런 표현을 알지 못합니다. ㅋㅋㅋ)이라며, 그 교복엔 백팩을 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숄더백(물론 이런 용어도 모르기 때문에 '엄마, 가방 중에 그런 거 있잖아. 줄이 두 갠데 좀 길고 그래서 어깨에 매고 그러는, 회사 다니는 언니들이 매는 그런 가방'이라며 기나긴 설명을 합니다만)을 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완전 대박! 등교가 아니라 회사 출근하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암튼, 예고 교복은 입고야 말겠다고!

 

# 채윤이 선언

 

2학년 어느 날 채윤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 예고 가지 말아야 할까봐. 우리 인성 시간에 장래희망 이런 거 써내고 얘기 했는데.... 피아노과 애들이 장래 희망이 다 똑같애. 뭐게? 피아니스트, 땡! 모두 다 교수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모두 다 서울대 교수야. 엄마 그게 말이 돼?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가 몇 명이나 된다고. 휴유, 나 예고 가지 말까봐."

 

이 말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같은 꿈을 가졌다는 것은 새롭지 않은 놀라움이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예고에 가지 않겠다니. 제가 아는 채윤이는 친구들이 모두 그러겠다면 '아, 그게 답인가보다! 그럼 나도 일단 서울대 교수!' 이럴 애 거든요. 얘가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거나 딱히 의식이 있는 중딩도 아닌데. 오히려 채윤인 그 누구보다 학교라는 체제에 순응하여 그 틀로 자기를 바라보며 주눅이 들다가도 사소한 성과 하나로 과도하게 교만해지는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말이 더 가관입니다. "엄마, 우리가 아직 중학생이고 아직 3학년도 아닌데 선생님들은 너네 예고 못 가면 대학 못 간다, 이러면서 자꾸 한 가지 얘기만 해. 대학교를 간다 못 간단 얘기만 하는데 너무 이상한 거 같애. " 뭔가 문제의식을 느꼈나봅니다.

 

# 엄마 당황(하지 않고 일단 무시하기)

 

엄친딸, 그러니까 제 친구의 딸인 은율이가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가기 전에 안식년으로 1년 쉬었단 얘길 듣고 그거 한 번 해보면 좋겠단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윤이 상황은 조금 특수했지요. 이왕 예중에 입학한 거, 프로필에 예중 예고 나란히 써주는 게 순리라는 입장 또한 분명했습니다. 예고를 안 갈까보다, 하는 채윤이 말은 그러다 말겠지 싶었고. 어린 것이 다시 입시를 치르고 예고 3년을 빡빡하게 보낼 생각하면 마음은 짠했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응응, 해주고 무시하기!

 

# 채윤이 생각

 

3학년이 되고 학교 분위기가 입시체제로 돌입하였습니다. '향상음악회'라고 친구들 앞에서 연주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곡을 들고 무대에 서는 것이 반복되자 가뜩이나 꾸깃꾸깃한 자존감이 반듯하게 펴질 날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구겨지고 다시 구겨지고....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급기야 레슨 선생님께선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채윤이가 없어졌다. 무엇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 통 못 알아듣는다" 하십니다. 다그칠수록 채윤이는 더욱 위축되어 음악이고 마음이고 꽉꽉 막혀있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자꾸 무너져 내렸습니다. 채윤인지, 내 자신인지, 선생님인지, 아니면 이 현실인지 무엇엔가 화가 났습니다. 피아노가 안 되는 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반짝이던 채윤이를 잃었고 어디 가서 찾아야할 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적보다, 성격보다, 그 무엇보다 가장 지켜주고 싶었던 채윤이다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은 아득해질 뿐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 앉아 채윤이와 기나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보니 절망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채윤이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채윤이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채윤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하시던 지점을 채윤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선생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거기를 포르테로 치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생각할 때 포르테가 아니라 피아노가 되어야 할 것 같다구. 선생님 생각과 내 생각이 너무 달라.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져. 그래서 나도 힘들어." 그럴 때 선생님께 채윤이 생각을 말씀 드려보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당연히 안 된답니다.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음악을 더 잘하시는데 말해도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당장 내일이 향상(음악회)인데 그런 얘길 해서 뭐하냐는 것이지요. 연습을 할수록 더 안 된답니다. 엄마는 자꾸 어렸을 적 내 얘기만 하는데 그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된다고. 내년에 안식년 할 생각도 있었으니까 입시는 포기하든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 엄마 깨달음

 

채윤이 얘길 들으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채윤이는 자기 음악을 찾는 중입니다. 채윤이는 자기 생각이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헤매고 있고, 그걸 죽이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의 잣대로 보면 무지무지 음악이 안 되는 학생이지만 뭔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후 엄마 마음에 왠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채윤아, 포기해도 돼. 그런데 입시 끝나고 포기하자. 너는 피아노, 선생님은 포르테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선생님과 토론하고 논쟁하고 그래서 배워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엄마가 알기로 우리 나라에서, 특히 너가 가는 길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엄마는 네 생각을 지지해. 음악에 답이 어딨어! 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거지. 엄마가 지금 채윤이 얘길 듣다가 확신이 생겼어. 너 학교에서 꼴찌해도 돼. 그리고 왠지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그것이 너무 너무 중요해. 그게 있어서 다행이고. 그러나 채윤아, 딱 일 년만 그렇게 그냥 이대로 지내보자. 네 생각 소중하게 간직해서 딱 1 년만 넣어둬. 아냐, 1년도 아니네. 이제 몇 개월이야. 그리고 입시를 마친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입시나 성적 자체가 중요하지 않지만 엄마는 네가 이런 학교와 환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누구에게? 세상에게!) 중학교 생활을 마쳤으면 좋겠어. 엄마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교수님 레슨도 받고 연습실도 구해줄게. 돈 많이 들어도 돼. 입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 봄바람

 

1년이야.

1년만 딱 그렇게 하고 우리 더 좋은 길을 찾자. 계속은 안 되겠지만 1년은 할 수 있겠지? 

 

맥도날드 야외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직 3월인데 이상하게 춥지가 않았습니다. '이느무 지지배 멍청해서 선생님 말씀도 못 알아듣고. 생각은 어디 가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피아노만 쳐댄다고 연습이 되나. 어쩌다 이렇게 멍청한 게 됐나. 이걸 그냥!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려버릴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대화였습니다. 그 춥고 딱딱하던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하면서 '학교. 예술전공, 우리 교육의 현실, 그 안에 있는 채윤이'의 상황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넘사벽 앞에 선, 자기답게 음악을 하고 살고 싶은 아이,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로 혼란스러워 하는 채윤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길이 보이는 것 같았고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안 같은 것이 생겼고, 무엇보다 채윤이를 진심으로 더 사랑하고 응원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 내가 이 아이 엄마지. 끝까지 너를 지켜줄게. 어디선가 이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의 말씀이, 삶의 답답함 가운데 빛이 되시는 주님이 말씀이 내겐 봄과 같아서 내게 생명을 주고 내게 신선한 바람 불어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네"

 

 

* 1편에서 예고해 드렸던 제목과 다릅니다.

이유는 1편의 반응을 보니 구독률이 좀 나오겠다 싶어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연재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로 자체 결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채윤이가 예고에 합격했다는데 별로들 안 놀라시네요.

이건 좀 깜짝 놀랄 일인뎁쇼.

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일궈낸 합격이라서 그렇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일단 예중 입학부터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초3, 4부터 한다는 예중 입시 준비거든요.

5학년 가을, 입시 1년을 앞두고 채윤이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나 예중 가고 싶어.

열심히 할게. 어려운 거 알아. 힘든 것도 알아. 그래도 나 예중 가고 싶어. 엄마.

어르고 달래고 엄포를 놓곤 하다가 어차피 1년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고 허락했습니다.

"14층 누나~아, 14층 누나 왜 요즘 우리랑 안 놀아?" 팬들의 성화에 아랑곳 하지 않고.

팬들이 아파트 복도를 뛰어 다니며 '경도-경찰과 도둑이라는 잡기놀이'를 할 때도

개의치 않고 피아노를 쳐댔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벽을 뚫고, 곡절 끝에 예중에 입학했습니다.

 

불과 1 년 준비해서 들어간 예중,

달랑달랑 꼬리 잡고 들어간 예중.

녹록치 않았습니다.

15개월부터 정확한 음정으로 '주는 나의 좋은 목자'를 부르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불렀제낄 땐 얘는 독보적인 능력을 타고났다고 확신했었드랬습니다.

예중에 가보니 그런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중요한 건 또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돈으로 쌓은 내공.

그것이 약한 채윤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 펼 날이 없었습니다.

예중생으로 좋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중 가기로 결정하고 야심차게 입시준비 시작할 무렵.

강동에서 낯선 마포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다음 날 딱 하루 피아노 연습했는데 다음 날 바로 아래층에서 올라왔습니다.

고개를 여러 번 숙여 죄송하다, 조치를 취하겠다 했습니다.

교패(현관에 붙이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알리는 스티커)가 밉더군요.

그날로 그나마 아쉬운대로 사용하던 업라이트 피아노는 '제니오'라 불리는 기계를 떡 붙이고

'사일런스 피아노'가 되었답니다.

이걸로 연습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실기 꼴지를 하고 말겠다는 의지와도 같았지요

 

게다가 엄마(만 거명하는 건 뭔가 혼자 독박 쓰는 기분이니까) 아빠는 최악이었습니다.

수업료와 최소한의 레슨비에도 매달 입을 쩍쩍 벌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구요.

아이의 실력,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이 시대 성공신화의 3대 요소라는데.

실력과 재력은 둘째 치고, 엄마의 정보력은 꽝인데다가 정보를 모을 의지도 없었답니다.

정보를 얻다가 아이를 잡느니 정보원 엄마들과의 연을 끊겠다며 고상을 떨지 않나.

저명한 피아노과 교수님이 근거리에 있는데도 줄을 대볼 생각조차 못하는 찐따 엄마라니요.

등교부터 하교, 하교로부터 학원, 학원으로부터 레슨까지 따라 로드매니저 엄마도 있다던데

집에서 합정역까지 5분 태워주는 것을 가지고 아침마다 투덜대던 엄마였습니다.

한 일 년 전에는 깁스한 발로 지하철 타고 한 시간 거리 등하교를 하기도 했지요.

엄마라는 여자가 독하기도 하지요.

 

3학년 3월에는 최악의 위기가 찾아 왔지요.

버티고 버티던 채윤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우직하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또또 연습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아아 악악악악악아' 밤의 여왕을 부르던 음악 영재 두 살 채윤이는 어디로 가고

앞뒤가 꽉꽉 막힌 음악 둔재가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기 적에는 물론이고,

놀며 피아노 배우던 시절 소나티네를 쳐도 근육이 먼처 춤추던 아이였는데,

무대에만 서면 로봇이 된 머리부터 손가락 끝까지 통으로 움직이는 로봇 같았습니다.

고민하고 울고 불고 하던 채윤이는 포기하겠노라 했습니다.

독한 엄마는 말했습니다.

"포기해도 좋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남은 1년은 열심히 하고, 그 다음에 포기해.

채윤이 니가 예중을 선택했을 때는 3년을 선택한 거야.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올해는 열심히 하는 거야. 채윤아, 니가 잘 알듯 선택에 대해선 책임이 있는 거야. 올해까진 책임져야 해. 그리고 채윤아 너 혼자 애쓰도록 하지 않을게. 엄마가 연습실도 구해주고, 앞으로 교수님 레슨도 하자.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다 도와줄게. 채윤이도 최선을 다해 연습해."

모든 걸 떠나서 중학교 3년을 패배감에 절어 끝낼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년 2학기, 입시를 앞둔 실기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은 채윤이는 바로 담임샘께 갔답니다.

"선생님, 등수가 안 나왔어요."

"거기 형광펜 칠한 부분이 등수야. 채윤이 너 이번에 정말 잘했어"

"어.... 여기 앞에 한 자리수가 없는 거 같은데요......이게 그럼 정말 제 등수..... 흑흑흑"

레슨 선생님께서 이 모의고사를 '복면가왕'이라고 하셨습니다.

입시와 똑같은 환경을 위해 심사위원석과는  막을 쳤고, 

이제껏 실기시험 때마다 채점하던 분들이 아니라 외부 교수님들이 심사를 했답니다.

선입관 없는 심사에서 최저 비용으로 예중을 다닌 채윤이는 한 자리 수 등수를 받았습니다.

 

채윤이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열심히 하면 결국 실력이 나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교수님 레슨을 받는 것이 실력과 성적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채윤이는 예고에 합격했습니다. 

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 3월의 선택이며,

그 누구의 강요나 강압 없이 자신과의 싸움과 같은 연습시간을 견딘 것입니다.

채윤이는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말하자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3년 간의 영아티스트 분투기 입니다.

 

 

 

# '열여 섯 채윤이의 진로선택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글 예고. <채윤이는 예고에 가지 않습니다>

  다음 글  업데이트 시기는 댓글 달리는 거 봐서 결정하겠씀미다. 충성!

 

 

 

 

 

 

 


 

 

 

# 1

조수석에 앉아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입으로 오디오 지원하면서 작성하는 중.

'저는 가는 날에는 셔틀 타지 못하구요,

다음 날 엄마랑 같이.....같이..... 구개음화....'

뭐라고? 지금 뭐라는 거야?

으흐흐흐. 들었어? 아, 이번 국어 시험범위였는데 '같이'는 '구개음화'야.

엄마 시험공부한 게 자꾸 너무 많이 생각이 나.

내가 공부해보니까 말야 티브이 예능 자막에도 철자법 틀린 게 많이 나온다.

저번 주 런닝맨에서 말야...... 피동사에....ㅏㅏㅠㅂㅓㅜㅛ=#$.......이렇더라.

참, 사람들이 무식해.

 

#2

한강에서 자전거 타다 넘어진 상처가 빠르게 나아간다.

드레싱 밴드도 떼고 아물어가는 손바닥의 상처를 보고는 채윤이가 반색을 한다.

엄마 손 많이 나았네.

다행이다. 빨리 나아서..... 체세포 분열....

엄마 이렇게 상처가 낫는 건 엄마 몸에서 체세포 분열이 계속 일어나고 있긴 때문이야.

우힛, 과학 시험범위야.

아흐, 나 진짜 유식하지?

 

 

#3

엄마, 나 이번에 이차함수부터 진짜 수학이 좋아졌어.

풀면 딱 정답이 나오는 게 너무 시원하고 좋아.

심지어 시험 끝났는데도 수학 문제 풀면서 놀까? 이런 생각이 난다니까.

아, 나 수학 좋아!

 

 

==============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떼는 것은 이제 선행학습 축에도 못 드는 것 같지만.

'이제'가 아니라 채윤이가 초등학교 가던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꿋꿋하게 교육에 관한 순결을 지켜 '까막눈'인 채로 아이를 공교육에 보냈었다.

그땐 소신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잘한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글자를 배우는 것은 '준비가 되었을 때, 자발적인 동력에 의해' 시작되어야 한다는 소신이고.

최초의 공부가 글자공부일 텐데 첫 경험이 즐거워야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될 거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게 내 각본대로 되지 않았던 것.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받아쓰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가갸거겨 하던 채윤이가 '닮았습니다. 싫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이런 단어를 써야했다!!!! 

받아쓰기 봐주던 그 1년은 내 생애 통틀어 가장 고래고래, 열폭했던 나날이었다.

(채윤아, 미안해)

일부러 한글 가르칠 필요 없다. 다 때 되면 터득한다. 즐겁게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신감 넘치는 조언을 이제는 하지 못한다. ㅠㅠㅠㅠ

 

그러나 내 인생도 길고 채윤이 인생도 길어서 말이다.

초등학교 1년이 끝은 아니었다.

비록 까막눈으로 시작한 공교육인 데다

태생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인 데다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는 상태로 시작한 터라

(공부 머리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긴 고통의 나날은 있었지만 공교육에 한 8년 정도 찌들더니 의외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험공부를 힘들어하면서도 즐거워한다는 것.

즐겁게 하는 공부 중에 침잠하는 것들이 있어서 조금씩 유식해진다는 것.

이렇게 한 8년 지내면 완전 공부 잘하는 애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 

 

 

 

 

 

 

전날 실기시험을 치루느라 기진녹진(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된 상태)한 채윤이.

다행히 실기시험 기간이라 하루 쉬게 되었습니다.

아침 먹고 두 남자들 나간 후에 설거지 마치고 조용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만든 한 평짜리 방에 채윤이가 앉아 있습니다.

뭘 하나? 봤더니 화분들 아래 놓인 실바니안 패밀리를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한때, 채윤이가 놀짱이었던 그 시절의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토끼 패밀리입니다.

엄마가 주시하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 "노는 거 아냐. 정리하는 거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새 한 뼘 햇살로 만든 방도 사라지고

채윤이도 사라졌습니다.

실기시험 전날에 채윤이는 학교 수업 마치고 오후 3시에 연습실에 들어갔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태우러 갔더니 조수석에 쓰러지듯 몸을 던지며 "배고프다" 합니다.

저녁 안 먹었냐 물으니 시간이 없어서 못 먹었답니다.

3시부터 10시까지 무려 7시간 밥도 안 먹고 연습했다는 얘깁니다.

아, 채윤이 아빠 딸이었군요.

7시간 동안 밥을 잊고 뭔가에 열중하는 것? 글쎄요. 엄마로서는 상상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 싶던 신학공부 하던 시절, 채윤이 아빠는

8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도서관에서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드랬었드랬지요.

채윤이에게도 아빠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연습을 했으면 실기시험을 엄청 잘 봐서 피아노를 들었다 놨다 했어야 할텐데

베토벤을 칠 때 왼손을 여러 번 틀렸다며 속상해 합니다.

성적도 그닥 잘 나오진 않을 것입니다.

실바니안 패밀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다양하고, 당차고, 끝간 데 없는 상상력으로 다채롭던 표정을요.

자기들을 쥐락펴락 하던 시절 채윤이의 표정을요.

그때 그 채윤이,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강의 후 포럼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연호 대표 바로 옆에 패널로 앉아 있었다는 걸 자랑하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아, 저 진짜 채윤이 진로 때문에 심각하다구요.

잃어버린 채윤이 표정을 찾아야 합니다!

네네, 물론 보시다시피 자리배치 끝내줬습니다.

무대 전면이 궁금하시다면 뭐 보여드리죠.

 

 

 

 

청중으로 와 있던 남편에게 사진 좀 제대로 찍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엉망으로 찍어놨더군요.다행히 또 다른 지인이 사심없이 찍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인 덴마크를 1년 6개월 취재했던 오연호 대표는 여러 번 말했습니다.

'사진 보세요. 애들이 표정이 좋아요'

'표정이 좋아요'

좋은 표정이 보이는 이유가 있더군요.

쾌활 명랑 엉뚱 당당하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없어지고,

하는 말이라고는 '아무거나요'로 변하는 것을 아프게 지켜봤던 거지요.

그분 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채윤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처럼 빛나던 우리 아이들의 표정이 어쩌다 그렇게 썩었을까요?

잃어버린 그 표정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찾을 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

뭔가 꿈틀거려야겠다는 뜻은 분명해졌습니다.

채윤이 표정이 이대로 계속 썩어가도록 두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뭐든 해야겠지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거 사진 자랑 아닙니다.

저 대한민국 청소년의 엄마로서 완전 진지합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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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다음에 학교 가방 살 때는 영어 많이 써있는 어떤 가방 사 줘.

뭔지 알아? 가방에 마~악 영어가 써 있는데. MGM, MGM, MGM...... 이렇게.

 

(풉, 또 시작이다. 우리 중딩의 반지성주의 운동) MCM 아냐?

 

그른가?

암튼 그렇게 막 써 있는 거. 우리 학교 애들 그 가방 디게 많이 갖고 다녀.

예뻐. 나도 다음번엔 그거 사 줘.

 

뤼얼리? 중딩들이 그걸 매고 다녀?

그거 비싼데. 엄청 비쌀 텐데....

 

그럼 못 사 줘?

 

아니.

 

(오예)사 줘?

 

아니.

 

못 안 사 줘.

 

아~ 알겠어!

 

 

(중학교에 흔한 가방이 저 수준이라니. 이느무 학교를 때려쳐야 하나?)

(채윤이가 잘못 본 게 아니라 MCM을 갖고 싶었지만 아쉬운대로 MGM이라도 매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던 걸까? 그 친구 만나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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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서 기억나는 꿈을 기록하고, 고요한 시간에 꿈의 영상을 리플레이 해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는 것. 꿈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이 참 좋다. '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하찮은 것을 귀하게 바라보는 눈,  스쳐지날 것을 응시하는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던지는 볼멘소리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강변 마른 풀들 사이 삐져나온 손톱보다 작은 들풀에서 그 나라의 생명을 보는 것에 견줄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와 '엄마, 나 꿈꿨어. 무슨 뜻일까?' 자주 묻는다. 엄마가 꿈해몽 점쟁이냐? 무슨 뜻인지 알게? 아이들의 꿈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악몽을 꾸더라도 꿈일 뿐이니 다행이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이 좋으니까 좋고!  

 

굳이 꿈분석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꿈을 가지고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치유, 어느새 자기 성찰, 어느새 소망의 의자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엊그제 주일 아침에 그랬다. 채윤이가 꿈을 꿨다면서 내 침대로 와 턱 걸터 앉아 쫑알거렸다.  

 

* 채윤이의 꿈

 

친구들이 나를 버리고 갔어. 학교 친구들인데. 한영교회 동산에 날 버리고  간 거야.
나는 동산에 혼자 남아 있어. 혼자 남아서 '어, 이건 뭐지?' 하고 있는 거야. 끝.

이 꿈은 내 꿈이 아니라 채윤이 꿈이다. 그러나 내가 그 꿈을 꾼 것처럼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묻는다. 친구들이 왜 버리고 갔어? 따돌림당한 거야?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를 혼자 두고 간 거야. 동산에 혼자 있는 느낌이 어땠어? - 슬프거나 그렇진 않고 그냥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러고 있었어. 채윤이게 있어 학교 친구들은  어떤 친구일까? 채윤이에게 한영교회 동산은 어떤 곳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여 한참 얘기를 나눴는데..... 들어보시라. 결론은 꿈보다 해몽!이다.

* 학교 친구들

 

채윤이가 얘기하는 학교 친구들이란 이렇다. 예술 중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너무 서로들 경쟁적인 관계라서 친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단다. 실기 성적으로 줄을 세워서 그 잣대로만 친구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다. 학교 다니면서 자주 채윤이가 말했었다. '엄마, 학교 친구들은 친구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아.' 얼마 전에는 그런 말을 했었다.  '엄마 나 정말 예고 정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얘기 해주면 엄마도 놀랄걸.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써냈는데 피아노과 친구들 장래희망이 다 똑같애. 완전 대박이야. 나 빼고 모두 똑같애. 뭔 줄 알아?  모두 교수야. 그것도 서울대 교수. 대박이지?' 그 사이에서 채윤이가 항상 고립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다. 여러 환경이 채윤이와 다를 뿐 아니라 음악, 학업을 하는 방식도 다르다. 게다가 채윤이는 학교의 잣대로 보면 늘 자신을 부족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채윤이에게 성적과 상관없이 채윤이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줄 세우는 방식이 얼마나 악마적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가정교육이라면 가정교육이었다.

 

* 한영교회 동산  

 

한영교회 동산은 채윤이가 5학년 때까지 다녔던 한영교회, 즉 한영고등학교 안에 있는 동산이다. 한영 동산은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란다. 어렸을 때 재밌게 놀던 곳, 눈치 안 보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놀던 곳. 너무너무 재밌었던 곳, 도심 속에 어울리지 않는 동산. 참 좋은 곳.
그리고 한영교회는 채윤이에게 이런 곳이다. 늘 그리운 곳,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 주고 예뻐해 주던 곳. 이곳 교회에 와서 1년이 넘도록 '왜 아빠는 교회를 옮긴 거야? 이 교회에는 친구가 없고 아는 사람이 없어. 그리고 재미도 없어. 나 엄마랑 어른 예배드리면 안돼?' 하며 긴 적응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 꿈이 건넨 이야기

 

3학년이 되어 입시준비며 부담이 많은 채윤이의 의식세계를 '학교 친구들' 이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친구들이 있는 학교로부터 떨어져나오고 싶은 바램도 간절하고  친구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두렵고, 그러다 왕따가 될까 봐 늘 노심초사이다. 무리에 섞이고 싶고 홀로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꿈이 아닐까.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채윤이가 이런 지점에서 많이 힘든가 보다.

 

그 친구들이 버려놓고 갔다고 하는 동산. 그 동상은 놀짱 채윤이가 자기답게 자유롭게 놀던 곳이다.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까지 끌고 다니면서 극 놀이를 하고 신났던 곳. 이기고 지고, 줄을 세우는 경쟁구도가 없는 곳이 채윤이 마음 속 한영동산이다. 다시 가서 뛰놀고 싶은 동산. 그것을 채윤이는 '도심 속의 동산'이라고 표현했다. 동산은 채윤이가 그리워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한영동산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채윤이에게 찬송가 한 장을 불러주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채윤아, 이슬이 맺혀 있는 장미가 있는 곳이 어디게? 그래, 동산! 동산은 채윤이가 말한 진짜 신나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곳이고, 어릴 적에 너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에게 사랑받던 그런 곳이야. 엄마에게 동산은 저 찬송 가사처럼 아주 조용히 예수님 만나는 곳이다. 채윤이에게 자유, 즐거움, 사랑받음으로 기억되는 동산이 엄마가 조용히 기도하면 예수님 만날 때의 느낌과 같아.
꿈은 채윤이가 입시를 앞둔 학교생활에서 잘 못 섞이는 것 같아 힘들고, 떨어져 나오고 싶은 마음도 보여주고, 떨어져 나와서 가고 싶은 곳도 보여주네. 그런데 그건 지금 명일동에 있는 한영교회 동산만은 아닐 거야. 이미 채윤이 마음속에 있는 동산이야. 채윤이가 그때 받은 사랑과 그때 신나가 놀았던 기억이 채윤이 마음에 그대로 있거든. 그게 채윤이 마음의 동산이지. 그러니까 지금 언제든지 그 기억을 꺼내보고 기억 속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는 거야.

 

아까 불러준 찬송 중에 엄마는 4절을 디게 좋아한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채윤이 주일날 중등부 가서 반주하고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거 참 좋잖아. 일주일이 늘 그랬으면 좋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학교로 가고 집으로 가래. 동산에서 얻은 쉼과 자유를 가지고 가래. 가서 채윤이 할 일이 있대. 할 일은, 학교에서도 기죽지 않고 채윤이 답게 즐겁게 자유롭게 지내는 일일 거야. 그런데 채윤이 혼자 가라는 게 아니라 이미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예수님이 사시는걸.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라잖아. 참 좋은 꿈이다. 채윤이 마음의 동산에 살고 계신 예수님의 편지 같다.

주거니 받거니 나눈 긴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어느 대목에선 채윤이 눈에 눈물이 비치고 나 역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일어나자마자 잠옷 입고 침대 누워서 다정하게 편지 한 장을 함께 읽은 느낌이었다. 채윤이 편지에 내게 보내신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이제 난 채윤이 마음 말고 내 마음의 동산으로 그분 만나러 간다.  

 

* 그림은 고혜경 저 <나의 꿈 사용법> 안에 있는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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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밤 10 시까지 연습하고 집에 오면 픽 쓰러져 자고, 아침 6시 30분이면 일어나서 세월아 네월아 머리 단장을 하고 등교. 다시 밤 10시 귀가. 이런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실기시험 하루 전 날입니다. 음악 시키는 어떤 엄마들은 등교는 물론이고 레슨실, 연습실까지 다 따라다니면서 로드 매니저 한다는데. 채윤인 '엄마, 미안한데 오늘 혹시 데리러 올 수 있어?' '고마워, 엄마 올 때까지 정말 집중해서 연습할게' 이렇게 비굴모드로 매니저를 부리고 있습니다. 따까리 정신 부족한 고자세 엄마를 만난 탓입니다. 오늘은 아빠 김기사가 뫼시러 갔다가 스튜디오까지 올라가 기다리며 연습하는 걸 찍어왔습니다. 문득, 4학년 말에 지금 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있었던 '스튜어디스-스튜디오'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때 만난 선생님과 참 좋은 인연이 되어 피아노 전공을 결심했었습니다. 훌쩍 자란 중학생 채윤이가 그때 그 스튜어디스 아니 스튜디오에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추억은 방울방울, 다시 보는 그 이야기입니다.

 

 

*********************

 

채윤 : 아빠, 아빠. 우리 피아노 선생님 스튜어 갖고 있대.
아빠 : 뭐?
채윤 : 우리 피아노 선생님 말이야...
스튜어디스 갖고 있대.
아빠 : 뭐래애?
채윤 : 아, 진짜. 새로 바뀐 피아노 선생님 말야.
스.튜.어.디.스.를 갖고 있다고...오.

 

아빠 : (엄마한테) 뭐래는 거야?
엄마 : 나도 한참 헤맸어. 어, 니네 선생님 피아노 전공 하셨는데 무슨 소리야.  예전에

         스튜어디스 하셨다고? 했더니 아니래. 예전이 아니고 지금 이래는 거야. 얘가

         뭐라는 거야? 지금 스튜어디스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했더니, 하이튼 그건 잘

         모르겠는데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근처 에 있대. 거기서 레슨 하신대. 

         뭔 말인지 알겠지?
아빠 : BBa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빠 : (서로 복화술로) 스.튜.디.오.
엄마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습 안 되고 계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왜 웃어. 둘이... 그만 웃어.
현승 : 어? 그게 무슨 말인데... 나도 가르쳐 줘. 스튜어디스가 뭔데?
엄마, 아빠 : (진정 안되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승 : 누나, 무슨 말이야. 스튜어디스가 뭐야?
(엄마빠, 배경음으로 계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무식해서 완전 짜증난다는듯) 승무원.
엄마, 아빠 : BBang!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승 : 그런데 선생님이 승무원을 왜 갖고 있어? 누나.
(엄마빠, 배경음 계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윤 : 아, 나도 몰라.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왜 나한테 그래애!
엄마, 아빠 : (언어를 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태 진정 후에.

채윤 : (시크하게, 이 사태에 관해서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엄마, 좋아 죽겠지? 블로그에 포스팅 할 거 생겼지?
엄마 : (깜놀, 머릿 속으로 포스팅 긱본 짜면서 헤죽헤죽 하고 있었뜸)


 http://larinari.tistory.com/1330

 

(원글은 ↑ 여긴데, 밑에 달린 댓글이 정말 추억은 방울방울이네.

센스쟁이 챙이랑 챈이 어록으로 주고받은 댓글 하며,

세상 좁다! 확인하며 어머어머 했던 일.

그렇게 만난 선생님과 이렇게 좋은 인연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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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오늘 급식시간에 또 완전 짜증났어.

아, 또 부정적인 얘기라서 미안한데, 들어줘. 진짜 짜증나서 그래.

**가 또 그러는 거야.

오늘 해물이 나왔거든.

'어우, 징그러. 이게 뭐야. 이걸 어떻게 먹어' 하면서 치우는 거야.

그리고 내가 먹으니까 완전 이러고, 이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봐.

그러면서 큰 소리로 어우, 야~ 그걸 어떻게 먹어? 우웩. 막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주변에 있던 애들이 다 나를 이상한 애 보듯 쳐다봐.

매일 이런 식이야.

나 진짜 오늘은 너무 열받아서 먹다가 그냥 딱 내려놨어.

솔직히 나랑 같이 다니는 애들이 못 먹는 게 많아서 내가 좋긴 좋거든.

급식 시간에 거의 다 내가 먹어줘야 해.

나는 좋지.(살짝 입가에 미소 스침.ㅋㅋ)

그런데 내가 먹으면 무슨 짐승 보듯 나를 보면서 그래.

 

진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아직까지 열이 식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먹다가 딱 내려놓았던, 그리하여 남기고 온 해물들이 눈에 어른거려서일 것이다. 아마도)

 

쫌 심하다. 그냥 개무시하고 맛있게 먹어.

채윤이 니 매력이잖아. 신경 쓰지 마.

'야, 이거 맛있어. 그리고 나는 10 개월에 풋고추를 먹은 애야.

그리고 다섯 살부터 산낙지를 먹었어. 난 그런 애야' 하고 더 맛있게 먹어버려.

 

엄마, 내가 산낙지 먹었다고 하니까 애들이 막 소리 질렀어.

나는 먹는 걸 싫어하는 애들이 정말 이해가 안 돼.

그런데 엄마, 우리 곱창 한 번만 먹으면 안 돼?

나 소금구이 곱창 너무너무 먹고싶어.

접때 내가 전단지 가져온 거 어딨어?

(하교길에 곱창집 전단지를 주워서 들고 왔었음. ㅋㅋㅋㅋ)

거기서 한 번만 시켜줘.

 

(그리하여 곱창구이를 앞에 놓고 행복해서 시키는 표정 다하는 여중생 채윤이.

아흐, 간만에 귀여워. 아주 그냥 매덩!)

 

변진섭이 부릅니다. '희망사항'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웃을 때 목젖이 보이는 여자,

곱창구이를 좋아하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 그림은 미술숙제로 그린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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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오늘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자러 가기 직전의 현승이가

엄마, 발 들어봐 하더니,

발밑에 무릎담요를 깔아준다.

그리고 말을 만지작 만지작하면서

발마사지야.

 

이 말에 내일 수행평가를 위해 독후감을 쓰던 채윤이가

버러러러러러럭!

 

야!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즉흥 랩을 막 하기에,

와! 우리 영 아티스트, 빡침을 예술로 승화시키는구나, 했더니

이런 노래가 원래 있단다.

 

"난 정말 쟤 저러는 게 너무 얄미워. 괜히 쟤 때문에 내가 더 이상한 애가 돼.

아흐..... 증말. 김현승. 너 자꾸 엄마 앞에서 끼 부리지 마라!"

 

인정.

동생이 이래서 멀쩡한 누나 무심하고 인정머리 없는 애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승이는 여전히 만지작만지작 하면서

"내가 좋은 걸 해주는 거야. 나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바닥에 그냥 발 대면 싫어.

너무 차거워서. 그래서 담요 대준 거고.

엄마가 나 재워줄 때 발 만져주면 정말 기분 좋아.

그래서 엄마 발 만져주는 거야. 어휴, 왜 이렇게 굳은살이 많아?"

 

다시 한 번 빡친 누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끼 좀 부리지 마. 너 땜에 난 매일매일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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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귀여워서 돌아버리겠어.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고 빨고 쪽쪽쪽쪽)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 충만한 느낌.

 

엄마 되기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채윤 현승 어렸을 때 빠져들곤 했던 감정이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날 행복하게 한 것으로 너는 내게 최고의 선물을 줬다.

네가 먼훗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사춘기가 되어

내 앞에서 눈알을 굴리며 흰자위를 번득거린다해도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서 '재수없어' 외친다해도

오늘 이 충만감을 떠올리며 이미 네게 받은 선물로 인해 감사하리라.

 

라고 다짐도 했었다.

 

예를들면, 이런 순간.

아침에 옹알거리는 소리는 눈을 뜬다.

동쪽으로 난 창이 있는 침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차 있다.

옆에 아기 침대. 돌이 안 된 채윤이가 난간을 붙들고 서 있다.

보송보송, 부숭부숭한 얼굴로 우리 침대 쪽을 바라보면서 

엄므.... 엄므....... 아르르르르........

엄마, 나 일어났어요. 엄마도 일어나세요.

영락없는 그 소리였다.

알람이 필요없었다. 

내 평생 그렇게 행복한 아침이 없었다.

 

 

그리고 1년 쯤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

새로 이사한 집에선 도통 해가 들지 않아서 아침도 아침같지 않다.

토요일 늦잠을 자고 있으면 먼저 일어난 채윤이가 노래를 하고,

엄마 콧구멍을 쑤시다가 배를 타고 넘어 아빠 콧구멍을 쑤시러 가고,

뒹굴뒹굴 놀고 또 논다.

혼자 놀기 한계에 다다랐을 때 엄마를 흔들어 깨우면서,

엄마, 배보카. 쮸쮸 주에요.

아흐, 배보카!!! 이건 배고픈 것보다 천 배 만 배가 귀여운 배고픔이다.

 

 

그리고 13,4년이 지난 토요일 아침.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 중인 채윤이가 금요일 저녁에 생각보다 일찍 자려고 한다.

내일 어차피 늦잠 잘건데 공부를 좀 더 하고 자지 그래?

아냐, 나 시험기간이라서 내일은 늦잠 안 잘 거야.

하더니 토요일 아침 식구들 식사를 다 마친 시간,

평소 토요일과 다름없는 시간에 뻔뻔하게 일어나서 '배고파'한다.

그리고  엄마보다 더 큰 손으로 식빵에 쨈 발라서 처묵처묵.

 

 

냐하하하하하하........

그래, 엄마가 이날을 위해서 13,4 년 전에 해놓은 다짐이 있어.

배고프지? 어서 무라. 많이 무라.

그래야 또 배불러서 시험공부 하다가 졸립고, 졸음 깨려고 나와서 돌아댕기지.

배보카, 배보카, 귀여웠던 채윤아!!!

엄만 이미 네게 받은 선물의 기억이 있으니까.

냐하하하하하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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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채윤이 어제는 머리에 염색을 하고, 오늘은 교회 언니와 홍대 노래방에 갔다가 빙수를 먹고 온다며 신이 났더랍니다. 살짝 오렌지빛이 날락 말락 하는 염색 머리가 너무 사랑스러워 매직기로 정성스레 쓰다듬고, 엄마가 미국에서 사다 준 수트를 입고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찬양팀 준비하러 나갔습니다. 나가서 10분 만에 전화. "엄마, 그런데 나 돈이 하나도 없어. 놀아야 하는데" 아빠 만나서 용돈 받으라고 했더니 그러겠노라고. 잠시 후 남편에게서 메시지 "채윤이가 용돈 달라고 문자 왔어. 얼마 줄까? 했더니, 만원 달래" 에고 개념없고 가엾은 녀석. 기껏 부르는 게 만 원이냐? 그걸로 노래방 가고 빙수 먹고 홍대 앞에서 머리끈이랑 귀걸이 살 수 있겄어?


중학교 가서 벌써 여섯 번째 시험을 치렀습니다. 시험 성적은 거기서 거기라도 시험을 대하는채윤이의 자세는 제법 자기주도적이고 성실해졌습니다. 피아노 전공을 하면서 평소에 공부도 꾸준히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디다. 한 시간 거리 학교를 지하철로 오갑니다. 레슨이 있는 날에는 잠실을 찍고 다시 집에 오는 긴 여정이구요. 친구들은 그러고도 밤에 과외공부하고 12시, 1시까지 공부하고 연습을 하고 잔다는데.... 채윤이는 참 건강한 청소년이라 학교 갔다 오면 연습 깔짝거리고 밥 먹고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실기나 향상연주회 시즌이 되면 선생님 스튜디오와 교회 빈 공간을 메뚜기처럼 찾아다니며 열심히 합니다. 기특합니다. 실기가 마치고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름대로 계획을 짜고 공부합니다.


기말고사 전에 엄마가 미국에 가 있었더니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 수학공부를 하고, 영어는 인강을 열심히 듣고, 국어는 삼촌한테 가서 한 번 배우고 알아서 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암기과목은 시험기간 당일치기고 몰아서 외우고 시험 보자마자 다 까먹는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했고요. 이 모든 것을 점점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해나가니 눈물나게 고맙고 대견합니다. 아, 물론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적이라면 채윤이 정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상위권에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헌데 애들을 인간이 아닌 성적제조기로 만들어서 학원으로 과외로 잠을 줄이는 공부로 쥐어 짜다보니 영어, 수학 점수 평균이 88점 이상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피아노 실기도 마찬가지. 채윤의 정도의 음악성에 열심히 레슨받고 연습하면 실기 상위권에 있어야 할 텐데요. 아이들이 교수님 레슨에, 연습기계가 되어가니 보통의 가정경제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자고 쉴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채윤이는 어떻게 따라잡을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실기나 필기나 직선 위에 줄을 세워놓는 평가라서 그 줄에서 뒤쪽에 있는 채윤이를 보면서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더 닦달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지금보다 더 많이 놀게 하고 싶습니다. 헌데 대한민국 중딩이 어디 제대로 놀 데가 있어야지요. 주일에 중등부 예배 마치고 찬양팀 언니 오빠들과 떡볶이 먹고 한강 가서 사진 찍고 놀았다는 말이 반갑습니다. 되든 안 되든 중등부 예배 반주를 하면서 즐기고 누리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구요.


시험이 놀짱 채윤이가 어디 가질 않아서 시험공부를 여전히 놀이하듯 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채윤이에게 공부는 공부가 아닌 듯. 그야말로 시험공부를 통해서 교양을 쌓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문자에 관련된 능력이 취약해서 책도 잘 안 읽고, 보유하고 있는 단어 수도 협소한 채윤이에게 시험공부가 얼마나 유익한지요. '모골이 송연하다' '귀추가 주목되다' '된서리를 맞다' 등등 지성에 있어서 소영이 등급인 채윤이가 어디서 이런 고급진 말을 배우겠냐는 거지요. "아~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면서 국어시험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뿌듯한지요. 그러고 보니, 지난 시험 등에서는 도덕시험을 봐주면서 '자아상' 이런 주제를 설명하며 깊을 얘기를 나눴네요. 가정과목에서는 '사춘기의 변화' 부분을 봐주면서 신체적 정서적인 변화 등에 채윤이 자신의 어려움을 대입해가며 딥토킹했구요. (시험 필요하네요!ㅋㅋ 내가 보는 거 아니니까)


채윤이가 시험공부 하고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메모장 여백에 아빠가 설교 구상한 것을 적어놓은 모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채윤이가 빵터져서는 "엄마, 아빠 너무 귀여워. 내가 시험공부 한 거에 설교준비 했어. 나 이거 지하철에서 외워야 하는데 갖고 가도 돼?" 합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가 이걸 빌려 달래서 줬더니 "야, 밑에 있는 거 뭐야? 이것도 외워야 해?" 했다는. 시험보는 내내 거실에 뻗치고 앉아서 온 집안을 시험기간 모드로 만드는 바람에 날도 더운데 불쾌지수를 더욱 상승시켰던 채윤이. 열심히 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점수는 못 받고 한 학기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잘했다. 우리 소영이, 아니 아니 채윤이! 엄마가 돈 열심히 모아서 꼭 쌍수 해줄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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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중 2학년이 된 채윤이.
그다지 쉽지 않은 청소년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주회 했는데,
드디어 언니들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되어 의미가 크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연주회 컨셉은 '연주보다 드레스!'
키가 갑자기 크고,
덩달아 마음도 주체할 수 없이 자라면서
음악적인 키와 마음이 따라오질 못하는 것 같아요.
어릴 적 몸과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어 나오는 그런 느낌은 없지만,
차차 자기의 음악을 찾아갈 거라 믿습니다.
그다지 완성도 있는 연주는 아니지만서도 열심히 하고 있는 채윤이 연주 공개합니다.


먼저, 쇼팽 흑건 에뛰드.


 




이번엔 베토벤 소나타 한 곡입니다.


 




쇼팽 녹턴을 제일 잘 쳤는데.....
아까비! 용량이 커서 안 올라가네요.
쥔짜 잘 쳤는데 보여드릴 방쁩이 없네. ㅎㅎㅎ
대신 아빠랑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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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오래된 농담. 또는 진담.

아빠는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
엄마가 일등이야.
너희는 이등이야.
엄마도 그래.
엄마도 아빠를 제일로 사랑한대.
엄마한테도 아빠가 일등이야.
(누가 그래? 여보. ㅋㅋㅋ)
너흰 이등이야.

불쑥, 청소년 채윤이가 던지다.

그런데, 사랑에 등수를 매길 수 있어?
사랑은 모두 사랑이지.

오~~~~~~ 김채윤.

10여 년 전에 이랬던 ↓  채윤이가.

 

http://larinari.tistory.com/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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