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돈을 보면 갈팡 질팡

난 ‘돈’이 좋다. 아니 돈을 경계한다. 아니 돈이 두렵다. 아니 돈 좋아하는 거 맞다. 아니 돈은 현대판 우상이다. 아니 돈돈돈, 돈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 그거 없다고 우울해 하지도 않고 그거 많다고 우쭐해 하고 싶지도 않다. 플러스니 마이너스니 통장의 잔고액수에 따라 울거나 웃고 싶지 않고,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자족할 줄 아는 그런 신념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가급적 가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노동에 따른 최소의 생계비가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명절 때 돈 때문에 걱정할 정도로 지갑이 가벼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사교육비 문제로 아내를 일터로 떠미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아낀다고 책도 못 사보는 그런 불행한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
아니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돈에 지배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난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서 좋은 삶이 있는 줄 알기에 돈을 손에 쥐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좋은 거다. 돈 부족한 생활, 솔직히 그런 날이 내 가정에 들이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참 한심하다. 아직 돈에 대한 내 태도가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신혼부부들이 ‘내 집 마련’에 올인하는 꼴을 경멸에 찬 눈으로 보면서도 정작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촌락을 보면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나한테 줄 아파트 한 채 없나?’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니, 내 꼴이야 말로 꼴불견이다. 비전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 되겠다고 다짐다짐 했건만, 가계에 혼자 다 책임지지 못하는 내 처지로 인해 우울해 하는 내 꼴이야 말로 정말 꼴불견이다. 평소 돈을 경계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내 믿음이야 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마치 ‘성’을 대하듯 ‘돈’을 위선적으로 대해 온 이유는 뭘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충분히 타당하고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나는 돈을 쓸 때 늘 죄의식을 느낀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밥 사먹는데도 마음 한 편이 켕긴다. 노동의 대가를 받아도 ‘돈’을 쥐는 내 마음은 위태위태하다. 조금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조금 비싼 음식점에 들어가는 날에는 몇 날 며칠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악에 편승한 기분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다. 당연히 검소한 결혼문화에 일조하기 위해 매사 ‘검소! 검소!’ 하며 티를 냈다. 혼수품을 준비하며 아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모두 하향 조정되었다. 시계 생략, 다이아 생략, 장롱 한자 줄임, 텔레비전 생략, 생략... 줄임... 생략... 줄임... 신혼여행 역시 검소하게. 해외로 나가는 건 사치요, 1급 호텔은 향략이요, 4박5일은 범죄!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누나를 통해 예약된 숙소가 가보니 완전 3류 여관이었던 것. 부랴부랴 숙소를 옮기고 수습을 했지만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운 아내를 위로하고 설득할 논리가 내겐들 있었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은 나의 ‘인색한, 빈핍한, 쩨쩨한’(물론 내 편에서는 ‘검소한, 절제하는, 규모 있는’ 이란 말이 맞지만) 재정철학과 아내의 ‘절제 없는, 충동적인, 개념 없는’(물론 아내 편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누릴 줄 아는, 윤택한, 멋을 아는’ 이란 말이 맞지만.) 돈 관념, 돈 사용, 돈 관리로 인해 갈등의 연속이었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SS 돈과 시간을 바꾸다

난 요즘 가계부를 정말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충천해있다. 결혼 5년 만이다. 그간 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혼 초 한동안 남편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계부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지출의 항목을 이렇게 묶었다 저렇게 묶었다,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붙였다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고 며칠 안 가 그걸 다시 수정 보완하여 또 다른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그런 자신의 노력에 부응하여 열심히 꼼꼼히 가계부를 쓰지 않는 나를 ‘헐랭이 주부’라며 원망하고 타박하면서.
나로서는 가계부를 쓸 이유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최소한의 수입을 가지고 사는데 가계부를 쓴다고 뭔 뾰족한 수가 나나? 낭비할래야 낭비할 돈도 없는데 뭐 힘들게 가계부를 쓴단 말야? 수입 안에서 펑크만 안 내고 써도 검소한 살림의 표본이 될텐데 뭐! 가계부 쓸 시간이 있으면 카드 사용법, 은행업무나 좀 배우시지. 은행가서 엉뚱한 일이나 저지르지 말고 말야.’
도대체 신용카드 얘기만 나오면 무슨 불경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었다. 나로서는 열 번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는 철학책을 재밌다고 읽어대는 머리로 그 단순한 은행업무, 신용카드 이쪽으로만 가면 완전히 일자무식이 따로 없다. 은행 가기 전 그렇게 여러 번의 설명과 연습문제를 내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가서는 통장에 버젓이 잔액을 두고도 현금서비스 받아오는 위인이라니!
결혼 5년 만에 나는 남편에게 카드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을 가르치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남편은 내게 가계부 쓰기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발적으로 쓰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내가 요즘에 가계부를 충실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최근 남편은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이에 맞춰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하게 된 일이 출판, 그것도 기독교 출판이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으로는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 부족분을 내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가 있어지겠지만 약간의 고민 끝에 우리는 ‘돈’과 ‘시간’-아이들과 가족과 함께하고 이웃을 돌 볼 수 있는 시간-을 바꾸기로 합의하였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되 우리 가족의 최소 생활비의 부족분을 벌 만큼만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돈과 바꾼 시간으로 아이들과 좀더 질적인 시간을 갖고 사람들(특히 가정교회의 지체들)을 만나거나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요즘 나는 남편의 닦달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몇 백 원, 몇 십 원 쓴 것까지 꼼꼼히 적는다(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JP 절제와 누림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에서

아내와 논의 끝에 재정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운 적이 있다. ‘3만원 이상 구매 시 반드시 상호 동의 하에 구입한다.’, ‘카드는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선교, 구제비를 쉬지 않도록 한다.’,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엔 내 집 마련하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기 전엔 꼭 함께 기도하고 낸다.’ 등등. 사실 이런 원칙들은 내겐 별로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걸 굳이 원칙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잘 되는 것들이니까. 문제는 내 입장에서 보기에 충동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아내의 씀씀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건데, 어렵사리 이런 원칙들을 도출해 낸 것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가계부도 창작해서 새로 만들었으니 모든 수입 지출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내의 씀씀이를 남편 자신의 기대치로 끌어내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성취한 남편들 있으면 곧장 연락해 주길 바란다.(왜 그리 여자들은 필요한 옷, 필요한 그릇들이 많은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 하는 ‘나 이거 필요했었는데,.. 사려구 했었는데’ 이러면서 충동구매를 해대니 말이다) 나의 원칙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 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간혹 아내가 전화를 걸어 ‘35,000원인데 사도 돼?’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애써 우쭐해지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지’ 하고 대답한다. ‘성공이다! 이 여자의 소비를 내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성공 느낌도 잠시. 어느 날부터 아내가 사 오는 29,900원 짜리 옷과 생활용품들. 대체 이걸 가지구 안티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뿐이 아니다. 경품만 받고 쓰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 아내는 신용카드 수집을 취미로 하는 것인가? 나는 이제 결혼 5년 만에 조심스럽게 신용카드 하나 만들었는데, 아내는 이미 서랍에 하나, 오디오 위에 하나, 지갑에 두 개, 사물함에 두 개... 집안에 굴러다니는 카드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물론 거의 다 아내 공약대로 경품만 받고 쓰지 않긴 하지만). 언젠가는 빨래를 널던 아내가 ‘어머 선글라스가 주머니에 있던 것 모르고 그냥 돌렸네. 이제 진짜 못 쓰겠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선글라스는 여러 번 다리가 부러지거나 밟아서 수리를 받았던 것이고 그 때마다 새로 사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던지라 ‘혹시 새로 사고 싶어서 일부러 세탁기에 돌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새로 선글라스를 사면서 짓던 아내의 미소가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하다.

그렇게 그렇게 원칙이 훼손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서둘러 밝혀 두어야 하겠다. 부부가 닮아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서서히 아내의 씀씀이와 나의 씀씀이 방식이 뒤섞여가는 사이, 딱딱한 원칙은 부드러운 충고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서로서로가 누리는 돈에 대한 유익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데 안 닮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아내는 충동구매를 억누르고 뒤돌아선 후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나는 나와 가족을 위해, 관계의 풍성함과 부부간의 우정을 위해, 아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돈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SS 돈 걱정 없는 가정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만 원짜리 청바지 하나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얻어먹은 구박이라니! 그 때 산 청바지를 평생 간직하면서 그 날의 모욕을 두고두고 되새실까 생각 중이다. 계획에 없는 것을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정직, 검소, 절제’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남편 덕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했다. 남편 앞에서는 섭섭한 척, 서러운 척 했지만 그러는 남편이 싫지 않았다. ‘정직, 검소, 절제’가 어디 기윤실만의 구호이고 남편만의 구호이겠는가? 나 역시 날이 갈수록 더 잘 절제하고 더 검소해져야 하는데 남편의 간섭은 내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한창 남편이 가계부 만들기에 열을 올릴 때 우리의 지출에 대해 정리한 것이 하나 있다. 지출의 항목을 크게 서 너 가지로 묶는 과정에서 ‘하늘에 쌓는 돈’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여기에는 흔히 교회에 내는 헌금 외에 선교비, 구제비 등을 포함시켰고 부모님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포함시켰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과 선물비, 여러 경조사비,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밖에서 식사하면서 쓰는 돈, 책을 사 주거나 생일을 비롯한 선물을 위해서 쓴 돈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이것을 통해서 적어도 내게는 돈을 쓰는 것에 있어서 큰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하늘에 쌓는 돈’ 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옷은 얻어 입히고 시장에서 사 입히며 시중에 나오는 가장 싼 분유로 먹일지언정 다른 아기에게 선물을 할 때는 백화점에 가서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마음의 여유. 내가 쓰는 화장품이나 내가 입는 옷은 언제든 가장 싼 걸로만 고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는 ‘저건 너무 비싸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꺼이 살 때 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때의 기쁨은 뭐랄까?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 아닌 것 같다. 봄,가을에 결혼식 부조금이 많이 나가서 힘겨울 때도 ‘기쁨으로 하고, 하나하나의 부조금을 축복함으로 하자. 하늘에 쌓는 것이다’ 생각하면 쪼들리는 생활비도 기꺼이 감수하고 많은 염려를 내려놓게 된다. 그 때, ‘나는 부자다’라고 느낀다. 아이 유치원 교육비를 몰아서 내는 달이 오거나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목돈이 필요할 때, 내년에 분가를 할 때 전세금을 어찌 마련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염려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든 기꺼이 나눠줄 마음이 있는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JP&SS의 가계 재정 원칙
1.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돈을 주시고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인하고 기도한다.
2. 삼만원 이상 지출 시에는 서로에게 사전 보고한다.
3. 집 장만에 목숨 걸지 않는다.
4. 대접하고, 돕고, 위로하고, 축하하는 모든 돈은 ‘하늘에 쌓는 재물’이다.
5.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선물을 할 때는 우리가 먹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한다.
6. 구매 광고에 귀가 번쩍 뜨일 때는 의식적으로 ‘칫! 뻥치고 있네’ 하고 무시한다.
7. 부부의 우정과 성장을 위한 비용을 따로 비축한다. (돼지저금통 동전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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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얼마 전 당신이 내게 화난 표정으로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고 한 말을 곱씹어 생각해 봤어. 사실 페미니즘이란 용어와 주장에 별 매력을 느끼지 않는 나인데, 언제는 내게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한 페미니스트라고 칭찬하더니, 주일아침 식사준비와 정리에 소홀했다고 며칠도 안가 다시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고 비난하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내가 설거지를 안 하고 팽개쳐 둔 건 사실이지만, 당신의 말처럼 귀찮아서 그랬다거나 몰지각하게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 그런 건 아니었거든. 가급적 텔레비전을 안 보려고 했지만, 토론의 이슈와 인물이 내 시선을 뺏어 간걸 어떻게 해. 내용이야 어쨌든 TV 앞에 오래 앉은 나머지 당신을 돕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실망과 포기의 메시지로 읽혀질 만한 그런 표정과 말투로 ‘당신은 무늬만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한 건 처벌치고는 너무 과한 거 같아. 칭찬 받고 우쭐해져 있다가 금방 다시 꾸지람 들은 베드로의 기분이 조금 이해되네.(^^)

나는 전통적인 가(부)장의 이미지가 내 의식과 습관 속에 어른거지지 않나 꽤나 자주 살피는 편이지. 내 기질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단 걸 당신도 잘 알거야. 그렇지만 한국 남성의 유전인자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학습되고 고착된 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게으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종종 꼴불견 같은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다는 거 인정해. 하지만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라는 기준으로 내가 평가받는 건 좀 그래.

SS
홧김에 한 말을 가지고 너무 심각해지는 거 아냐? 누가 들으면 나는 맨날 남편 설거지나 시키고 손빨래 하다가 순교할 결심까지 하게 하는 악처로 알겠네. 맞아! 당신 말대로 '페미니스트' 라는 잣대로 당신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 언젠가 당신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야?'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그 때 당신은 '페미니스트? 나 결혼하고는 그런 생각 해 보질 못했는데... 결혼 전에야 그 쪽 책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런 저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에이~ 뭐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했었지.
당신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지만, 내가 만난 남자 중에서 페미니즘을 가장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얘길 했었지. 흔히 아내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봐 주는 정도의 통제도 당신은 애써서 하지 않는 듯 보이니까. 어떤 남편들은 자기 아내의 머리 스타일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생머리, 절대적으로 긴머리... 등을 고집하기도 한다지만, 당신은 '하고 싶은 스타일을 해봐' 하고 말하곤 하잖아. 그래서 '이 남자는 딱히 좋아하는 스타일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더구만. 암튼, 단지 아내한테 잘 한다기보다는(사실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니지 않어? ^^) 여성, 아내에 대해서 가부장적 사회가 주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질 않지. 가장 내지는 남편으로서의 권.위.의.식,이 없다는 것, 그 점이 훌륭하다는 것이었어.

이런 점을 당신의 장점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성숙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듯이 '가장' 이라는 용어 역시 왠지 당신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지 같아. 결혼 하고 얼마 동안 나는 ‘가장이라는 신화’ 에 당신을 꿰맞추느라 혼자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 민주적인 것도 좋고, 아내를 향해서 권위적이지 않은 것도 좋다, 그러나 ‘여보!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 줄께!’ 하면서 나를 끌고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이 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심을 했었지. 그러면서 매우 불안했던 것 같아. 도대체 '가장' 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당신을 향해서 '가장' 이 되길, '영적가장' 이 되길 요구하고 압력을 넣고 그랬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대체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어떻게 해 주길 바랬는지 나 스스로도 모르면서 말야.

JP
가장? 그러고 보니 가장이란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버릴 지 말지를 놓고 고민한 게 꽤 되네. 신혼 초였지 아마도. 내 생각과 내 주장들이 자주 당신한테서 튕겨져 나온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은 일이었지. 으레 남자인 남편이 진지하게 사건과 상황을 해석해서 설명해주면 여자인 아내는 응당 ‘아 그렇구나. 맞아요, 당신 생각이 옳아요’ 하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 건데, ‘너만 아냐?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만 좀 해’ 하는 식으로 내 얘기 듣는 게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당신을 보며 ‘이거 봐라~ 내가 명색이 가장인데. 에잇! 가장은 무슨 가장? 말이 씨도 안 먹히는 가장? 당신이 가장해!’ 이렇게 선언해 버렸던 게 생각나네. 그랬지. 그땐 당신이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더 많이 했고, 나이도 나보다 더 많으니 당신이 가장하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당신을 설득하고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그저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할 만한 게 내겐 없다고 믿었던 거야. 글쎄 내가 돈 좀 많이 벌거나 직업이라도 좀 안정됐으면 좀 달랐을까? 암튼 ‘가장 포기선언’ 이 홧김에 한 거라 별 모양도 안 좋았고, 그저 부부간의 상호 불간섭이랄까 그냥 적당하게 거리유지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겠다는 생각에 따른 거였기에 썩 좋은 결정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당시 우리의 경제적, 환경적 조건들이 ‘가장’ 이란 상징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해서 부부파트너십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

내가 가장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가정의 남편이요 아빠로서 책임과 역할까지 다 집어던지겠다는 게 아니란 걸 당신 잘 알지? 요샌 대놓고 가장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젊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만 보면 남편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책임과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집안에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지. 그렇지만 그건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잖아? 남편은 남편대로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하니 불편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가장의 권위와 본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불편하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주요한 일에 최종 결정권을 남편이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많다고 봐. 남성이 여성보다 더 머리가 똑똑하거나 더 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여자보다 남자를 더 우수하게 지으신 것도 아닌데, 도대체 신체적 조건 말고 남성 여성을 가를만한 근거가 있기나 한 건가?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닌 그냥 한 개인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서로 인정해 주고 끌어주고 세워주고 채워주고 그래서 서로 가장이 되고 서로 주부가 되면 될 텐데, 굳이 가장이란 책임을 혼자 지(우)려고 하는 이유는 뭐냔 말이야? (좀 흥분했나? ^^;;) 그러고 보면 ‘남편이 가정의 머리’ 라는 바울의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 같아. 당신이 교회 유치부 지도교사로 봉사할 때 내가 유아실에서 애기엄마들과 같이 기저귀 갈고 우유타고 수다 떨며 보낼 수 있었던 건, 가장의식과 체면을 기꺼이 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란 걸 당신은 인정해 줄 수 있지?

내가 가장의 권력과 의무를 포기하거나 나누려고 하고, 당신도 가장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나눠가지려고 한 건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만 권력을 당신과 나눠가진 내가, 그렇다면 주부의 의무와 역할도 어느 정도 나눠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제대로 못나가니까 ‘무늬만 페미니스트’ 란 말을 들었겠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용두사미가 된 느낌이네.)

SS
며칠 전 강원도 다녀오던 길에 이런 생각을 했었어. 당신이 속이 거북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운전하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구. ‘여보! 내가 운전할까?’ 하고는 얼른 자리를 바꿔 앉아 조수석에 길게 누워 잠시 눈을 붙인 당신을 보며 속으로 말했었어. ‘여보! 이거야! 사회통념이 주는 틀에 사로잡혀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언제든 쉼이 필요하면 내게 핸들을 넘겨줘. 나는 당신이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먼 길을 혼자 졸음을 이기면서 운전하는 것 원하지 않아. 물론 내가 조수석에 앉아서 졸음을 쫓을 재밌는 얘기와 피로를 가시게 하는 노래를 들려줄 수도 있지만 때론 근본적으로 당신에게 쉼을 줄 수도 있거든. 어차피 우리가 가는 곳은 서울이고 어느 길로 갈지도 미리 얘기 했잖아. 물론 내 운전이 당신보다 서툰 것이 분명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당신이 쉬고 있는 동안에 목적지를 향한 거리를 좁혀 놓기에는 충분해.’

결혼 초 당신의 ‘가장의식’ 을 의심할 때는 당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 주길’ 바라고 그것이 가장의 의무이며 생활인의 자세라고 생각했었어. 이제 다시 새로운 진로 결정을 해야 하는 당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알아? 단지 ‘가장으로서의 의무’ 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바람에도 충실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물론 개체로서의 김종필이 아니라 정신실과 하나됨에 충실한 김종필의 선택이 되겠지. 당신 뿐 아니라 교회와 직장에서 만나는 ‘가장들’, 가장의 짐을 지고 이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 또한 그렇게 짐을 나눠지려 했으면 좋겠어.


JP
운전대 잡는 일에 그렇게 깊은 뜻이?^^ ‘무늬만 페미니즘’ 이란 당신의 말,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 입으로는 이미 양성평등을 다 실현한 사람처럼 하면서, 막상 내 의식과 습관 속에는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으니 말이야. ‘남자인 내가 운전한다...’, 그래, 그 생각 유지하는 게 참 힘든 일이었지. 피곤하고 졸려도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고 남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이라고만 생각했었거든. 당신이 충분히 운전할 수 있는 데도 말이야. 그러고 보니 명색이 내가 교육학을 공부했는데 매 주 날아오는 채윤이 유치원 교육안 한 번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런 건 다 엄마가 하는 거니까’ 하는 생각에 밀쳐뒀던 것도 전형적인 가(부)장의 행태지? 간혹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갔다가 아줌마들하고 마주치면 부끄러워하면서 '이런 건 여자들이 해야 되는 거 아냐?‘ 하면서 불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

암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당신이 컴퓨터 조작 기술에 맹한 걸 보고 내가 뭐라고 한 적이 있었던 거 기억나? 그 때 당신이 그랬지. 요리에 전혀 취미가 없는 나와 맛의 배합에 뛰어난 감각이 있는 당신과의 차이점과 같은 이치라고 항변했었지. 그래 맞아. 컴퓨터를 다루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선생이 되고 당신은 배우거나 조력자가 되지. 반대로 요리의 주방장은 당신이고 나는 짬보가 되서 조력해야 맛있고 행복한 식탁이 만들어지지. 분위기 띄우는 건 당신이 잘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가라앉히는 건 내가 잘하고(?). 세세한 정리정돈은 내가 잘하고 전체적인 조화로움과 미적 판단은 당신이 잘하고. 아이들 양육에서도 마찬가진 거 같아. 당신은 흐트러진 아이들 잡아 세우는 데 능하고, 나는 경직된 아이들 풀어주는 데 좀 낫고.

그간 집안에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나무’를 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당신이 결정해야 할 땐 당신이 가장이 되고, ‘숲’을 보는 데 그래도 쫌 나은 내가 나서야 할 땐 내가 가장이 되었지. 특히나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도 그랬고. 구체적인 기도와 응답에 민감한 당신이 얻는 통찰과 좀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비전을 유지하는 데 민감한 내가 얻은 통찰이 배합될 때 우리 참 행복해 했었잖아.
나에게 가장이란 역할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본연의 내 모습대로 드러내고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도와준 당신, 새삼 고맙네.

SS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남자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페미니스트’ 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남자들은 잘 보지 못했어. 교인들의 가정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가정을 돌볼 틈 없어서 정작 자신의 가족들을 외로움에 버려두는 목회자들처럼 세상의 모든 여성을 위해 논쟁을 할 수 있을지언정 아내를 향해서는 아주 작은 선택의 자유도 부여하지 않는 페미니스트 남편은 사양이야.
그런 면에서 ‘가장의 권위’ 대신 ‘부부 파트너십’ 을, 집 밖에서 말로만 외치는 ‘구호로서의 페미니즘’ 대신 치열한(?) 손빨래와 걸레질의 일상을 몸소 실천하는 당신에게 이 시대 최고의 ‘페미니스트 남편상’ 을 수여하는 바야. 부상(副賞)으로는 당신이 그리도 목숨 걸고 의미를 부여하는 손빨래를 평생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어! (^^) 이만하면 ‘무늬만 페미니스트’ 라는 평으로 구겨진 자존심 다시 세우고도 남음이 있지?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는 당신의 사고방식, 경직되지 않은 자세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당신의 성품으로 인해서 아내인 내가 누리는 복이 커. 고마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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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되고, 외로운 미혼자는 외로운 기혼자가 된다’ 결혼 전에 읽었던 <크리스천의 연애와 결혼>에서 읽은 한 문장이다. 이 한 문장으로 나는 비혼 내지는 미혼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한 길을 발견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왜 아직 나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식의 소모적인 고민보다는 비혼 자체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가끔씩 ‘결혼을 위해서 뭔가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자 기도는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들이 고개를 들 때는 결혼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빌 하이빌스의 말이 옳았다. ‘행복한 미혼자는 행복한 기혼자가, 공부하는 미혼자는 공부하는 기혼자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 부부 공동 관심사를 놓고 책을 읽고 나누고 공부하는 쏠쏠한 재미를 본 우리는 ‘부부공부’의 전도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주변에 있는 부부들과 함께 한 ‘부부가 함께 하는 독서모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유익한 열매를 선물로 남겼다.

작은 시작 - 또래 부부들과 작은 결혼 세미나를 시작.

결혼 초 우리는 ‘아! 수련회 가고 싶다’ ‘성경공부 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소그룹 모임’에 대한 금단현상이라고나 할까? 교회 청년회의 소그룹에서 나누고 성경공부하고 함께 기도하던 삶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공동체를 떠나고 덜렁 둘이만 남겨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자라왔던 우리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에 결혼하고 1년은 군대도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특별한 휴가를 얻은 셈 치고 맘껏 누리기로 하였다. ‘막 결혼한 사람들에겐 둘 만의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랑의 기초를 견고하게 다질 수 있어야하고, 감정의 파동이 가라앉기 전에 서로를 깊이 아는 일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고로, 신혼부부 때는 서로를 아는 일에 올-인해야 할 때다’ 하는 생각으로 다소 우리 스스로에게 특별휴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이 깨 쏟아지는 신혼이라 해도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다. 웬만한 일에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JP는 적극적으로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담을 공부하시고 교회 내 부부세미나를 인도하시기도 했던 담임목사님을 졸라서 바쁜 주일 오후 시간을 확보해 내고 막 결혼한 커플들을 모아서 ‘신혼부부 세미나’를 하게 된 것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목사님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는 방식의 세미나였지만 우리를 비롯해 함께 했던 부부들은 큰 유익을 얻었다. 다른 부부들이 몇 년을 싸우면서 배워야 할 법칙과 기술들을 결혼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다 배워버린 것이다. 물론, 여전히 실천은 숙제로 남아있지만 일단은 밑그림이 아주 잘 그려진 셈이었다.

이것이 세미나더냐 스터디더냐

목사님과의 세미나를 마치고는 ‘결혼’과 관련된 책을 읽고 나누는 방식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모인 부부들은 성향도 다르고, 부부나 가정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고 심지에 왜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최소한의 대화의 룰과 조건이 주어지자 부부들은 마치 ‘아침마당’에 출연이나 한 듯이 그동안 부부끼리만 숨겨두었던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주일 내내 밥통 위치를 식탁 위에 둘 것인가 바닥에 둘 것인가를 가지고 싸운 부부가 모임에 까지 와서 연장전을 하는가하면, 왜 내 배우자는 낮에 그렇게도 전화를 안 하는 것일까 반면 왜 쓸데없이 전화를 해 대는 것일까 하는 문제로 편을 갈라 침 튀기며 항변하기도 하고... 때론 비장하게 때론 격렬하게, 그리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터놓는 얘기들 속에 서서히 진심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서로서로 거울이 되어주고 상담가가 되어주는 부부공동체가 되어 갔고, 남의 집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한층 자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다.
맨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부부세미나’ 내지는 ‘북스터디’ 라는 말에 걸맞게 모임의 분위기는 참으로 우아하였다. 이제 갓 결혼한 사람들이니 만큼 나름대로 커플룩으로 멋을 낸 부부, 손을 꼭 잡고 앉아서 강의를 듣는 부부, 조용하고 우아하고 진지한 것이, ‘세미나’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맞춰 새로 교회에 나온 부부들이 가세하면서 모임의 수가 배나 늘어 난데다가, 하나 둘 씩 아기들이 출현하면서 이제는 ‘세미나’나 ‘스터디’ 이런 용어가 부적절한 분위기가 되어갔다. 비록 일주일 간 읽어 온 책을 가지고 발제를 하고 얘기를 나누긴 하지만 한 쪽에서는 똥기저귀 갈고 있는 아빠, 또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일어나 흔들면서 자기 순서에 얘기하고 있는 엄마, 그러는 사이에 또 애 안고 구석으로 젖 먹이러 가는 엄마, 또 저 쪽에서는 장난감 하나 놓고 싸우다가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녀석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부부공부’는 꿋꿋하게 지속되어 갔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신없는 북스터디(?)를 하고 일어나면 그 바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뒹굴고 다니는 기저귀 뭉치는 쓰레기봉투 하나 찰 정도이고, 과자 부스러기, 섞일 대로 섞인 장난감. 휴~우. 이런 난장판은 사실 거기 모인 우리 모두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일상이 그러하기에 그런 일상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살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다. 주일마다 만나서 ‘너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야’ ‘이게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야’ 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만남이었다. 사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누는 내용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앉아서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른들 10명에 애들은 16명.(당시 우리는 애들을 ‘폭탄’ 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이들은 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면 시끄럽고, 터졌다하면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그래도 스터디는 계속된다!!! 이제는 아예 여성과 남성이 나눠서 각각의 책으로 모임을 한다. 모임 시간에 아이는 한 곳으로 몰아준다. 최소한 한 팀이라도 제대로 나누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육아에 지친 아내들에게 남편들이 휴가를 주기도 하였다. 오후 내내 아빠들이 아이들을 맡아주고 여성들은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들 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성들끼리 나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고. 또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엄마들이 아기를 보고 있는 사이 아빠들은 함께 운동을 하고. 아이가 생겨나면서부터 예배 한 번 제대로 못 드리게 된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행복한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암흑을 헤쳐 나가는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 부부공동체는 함께 해 나간 것이었다.

영혼의 친구, 부부

그 즈음 <영혼의 친구, 부부> 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결혼 초부터 우리는 지나치리 만큼 부부공부에 집착하고 그야말로 ‘하나되게 하심’에 충실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영혼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이 그간의 우리 부부의 노력을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랜만에 둘이 함께 읽어보자는데 합의를 했다.
그 즈음에 우리 교회는 가정교회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우린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부공동체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소속된 가정교회는 결혼 16년차에서 막내인 우리 부부까지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예배하고 나누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모임이었다. 막상 가정교회가 시작하고 보니 모임 초기에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일주일 간의 삶을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 누군가가 그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결국 끝은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곤 했던 것이다. 깔대기 중심 속으로 모여든 그 주제란, 바로 부부문제! 배우자와 더 많이 사소한 얘기까지 나누고 싶다는 바램, 전화를 좀 더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전화 문제는 어디가나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제발 일할 때 전화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등등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공감하는 사람끼리 두 편으로 갈라져서 답이 없는 논쟁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리하여 탄생한 모임이 <영혼의 친구, 부부>란 책을 가지고 시작한 <영친부>였다. 이번엔 결혼 10년을 넘은 선배부부들과 부부세미나를 하게 된 것. 우리보다 연배가 높은 부부들이라 그런지 역시 책을 읽고 적용하는 것이 달랐다. 갈등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소개됐고, 부부가 이루는 멋진 하모니도 자주 연출되었다. 역시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보니 기쁨과 아픔을 다루는 선배들의 솜씨는 우리 부부와 비할 수 없었다.
바쁜 일상에서 부부관계를 위해 시간을 떼놓고 공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친부 모임을 통해 그만큼의 시간 투자는 더 많은 수확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부부되기 위해 공부든 대화든 기도든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면 그만큼 부부는 영적 친밀성을 더할 것이고, 부부관계에 덜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그만큼의 거리감이 생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 이 상식이 바로 우리 가정에 주는 의미는 아주 컸던 것이다. 부부가 영혼의 친구가 되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다.

영친부를 꿈꾸는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꿈은 결국 현실이 되어주는 것인가? 부부공부는 더없이 좋긴 했지만 한편 아쉬움도 있었다. 처음 교회 또래들과 공부할 때 ‘대체 이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가는 길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럴 때 우리부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고 만남과 나눔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드디어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한 쌍의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맨 처음 SS의 직장 동료로 만났다가 이젠 양쪽의 부부 넷이 아주 오래 된 친구처럼, 그야말로 넷이서 함께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길 꿈꾸는 동역자로 만난 것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누구 남편이 더 좋은 남편인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었는지 모르겠다. 남편들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도 나누기 전 아내들을 통해서 서로의 얘기를 들은 남편들은 서로서로 은근히 ‘내가 지존이다’ 하는 맘으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쪽 남편이 어느 날 욕실에서 와이셔츠 손빨래를 하다가 말고 갑자기 아내에게, ‘여보! 여보! 김종필도 빨래한대?’ 하고 소리쳤다고 하더라. 이런 선한 경쟁심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만남을 가지면서 아이를 데리고 만나 식사하고 함께 공원에 가서 노는 그 이상의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모두에게 생겼다. 선한 욕심이 생기면 실행하면 되는 것!
구의역에 있는 민들레영토 세미나실. 우리는 여기서 <영혼의 친구, 부부> 되기 꿈꾸는 또 하나의 우리를 만난다. 넷이서 만나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만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어디든 맡기고 함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고 한다. 만나면 읽고 온 책은 단지 텍스트일 뿐, 곧장 얘기의 주제는 텍스트를 넘어 각자 부부의 깊은 이야기로 향하고, 그래서 때로는 상대부부를 관객으로 앉혀 놓고 공개적으로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여전히 부부간에 하나됨을 방해하는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그대로 치유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돌아서면 서로의 부부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헤어져 있을 때도 언제든 부부관계를 챙기고 들어주고 기꺼이 개입해 주는 일에 마음을 써 준다.
우리 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러니까 대화로도 공부로도 잘 해결이 안 될 때, 이들 부부는 만남 자체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준다. 왜일까? ‘영혼의 친구 부부’되길 꿈꾸는 동역자로서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부부를 친구로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은혜다.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살면 되는 것이지 참 유난을 떤다. 우리는 그런 거 안 하고도 잘만 사네~’ 가끔 그런 얘기를 듣는다. 물론 그렇게 사는 부부들을 전혀 못 본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앞으로 우리 삶의 행,불행을 결정할 가정의 기초를 잘 다지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다. 이 기초가 하나 둘 놓여져 갈 때, 둘이 하나 되어 이웃을 더 잘 돌아볼 수 있고, 또 이 땅의 시민으로서도 더 잘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결혼하는 순간 이미 하나가 된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하나라고 말하기엔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사랑해서 결혼했다 하여 저절로 부부가 하나 되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평행을 달리며 10년이고 20년이고 사는 부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부부만의 매력적인 색감을 갖기 위해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공부의 방법은 부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다만, 가정을 세우는 신혼 초에(구체적으로 말해서 결혼하고 1년 안에) 부부공부에 올-인 해 보는 것, 해마다 부부공부를 갱신해 나가는 것, 영혼의 친구 부부되기를 꿈꾸는 것, 그렇게 해서 부부됨의 뜻을 알고 그만큼 더 남을 섬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냉정’이 말하기를


화해의 제스처? 그거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첫 말을 꺼내기 위해 수십 리도 더 되게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을 극복해야만 겨우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미안해’이다. 그뿐인가? ‘미안해’라는 말의 효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는 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야 한다. 고상한 편지쓰기 방식부터 선물 공세, 하다하다 안되면 쌩쑈를 벌여서라도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화해의 싸인을 보내놓고 돌아오지 않는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수많은 가설과 싸우며 대략 세 가지 반응을 선택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아내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저 기다리는 일이다. 당황스럽고 답답하지만 아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내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길 기다리는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맞불작전이다. ‘미안하다고 했는데 말을 안 해? 기다리는 것도 한도가 있지, 좋아 나도 말 안한다. 누가 먼저 말하나 보자!’ 대강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부부가 침묵으로 지낸 최악의 기록은 신혼 초에 약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듣기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한다.) 세 번째 반응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 붓거나 보복성 발언을 하는 것이다. ‘어 그래?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이나 잘 해.’ 날 향한 아내의 무언의 압력을 비난으로 여길 때 나는 이 방식을 취한다.

기다리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나를 이해해주기는 커녕, 자신의 기질, 자신의 경험, 자신의 부모, 자신의 습관 등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아내에 대한 분노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누르고 있기란 참으로 한심하고 불행한 일이다. 때론 결혼이 후회스럽다는 생각도 스치곤 한다. 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밖에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생길 땐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그 능력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다! 내 행위의 정당성을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지쳐버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속좁음을 비난하다가 후회하고, 화해의 언어가 얼어붙고, 전략이 바닥날 때, 그 때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도대체 내 어떤 모습이 어떻게 굳어진 내 습관이 어떻게 타고난 내 성질이 그토록 아내를 힘겹게 하는 걸까? 하는 물음을 통해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단순 갈등봉합이 아니라 근본적인 갈등의 싹을, 내 편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내재적 조건을 개선하기로 다짐하는 아픈 성찰의 시간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혼은 치유’라고 했는가 보다. 어느새, 알게 모르게 굳어진 내 모습, 삐뚤어지고 상처나 있는 내 내면이 그리스도안에서 다 치유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상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온 죄를 등짝에 달고 있는 반쪽이에 불과한 나는,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아내란 거울 앞에서 비로소 직면하고 치유하고 그리고 온전해지기 위한 씨름의 샅바를 잡고 있는 것이다.

‘열정’이 말하기를


표현되는 언어가 없다고 그것을 단지 침묵이라 할 수는 없다. 드러나는 양상은 침묵이지만 내 안에서는 무수한 언어들이 올라왔다가 ‘안돼. 그렇게 말하면 저 쪽에서도 할 말이 있어. 아니, 그것도 안돼. 그건 비열한 표현이야. 그렇게 얘기하면 너무 자존심 상하게 하는 거잖아...’하는 불가판정으로 내 안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침묵이 남편을 고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남자가 나의 침묵을 못 견뎌하는 것이다. 매우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남자를 괴롭히는 최고의 살상 무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택했던 침묵시위가 시간이 지나면서는 갈등 상황을 유발한 남편을 어느 정도 응징하기 위한 도구로 적절히 활용되었다.(이건 아직도 쓸만한 무긴데 이렇게 상대편에 공개해 버리기는 좀 아까운데....)
그게 도를 좀 지나쳤나보다. 어느 날, 예의 그 침묵 속에서 몇 가지 노력을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방바닥에 있는 뭔가를 집어 들어 던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뭘 집어 던지는 이 행동이 전혀 폭력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순간적으로 ‘저건 극심한 좌절의 표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이 남자의 좌절의 끝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분명히 나는 무능한 사람이야. 나는 무능한 남편이야’ 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을거야. 하는 생각에 미치니 말이다. (이럴 때는 남편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것도 병!) 아무리 갈등이 심해지더라도 나로 인해서 남편이 ‘총체적 무능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회심을 한 것 같다. 내 기질을 뛰어 넘자. 나는 감정이 다 정리 돼야만 말이 나오는 사람이야. 이렇게 고집하지 말고 100% 내 잘못 아니라 여겨져도 ‘여보! 미안해’ 라고 말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껏 남편이 해 왔던 ‘미안해’는 ‘여보 이제 무장해제 하고 당신과 대화의 장으로 나가고 싶어’ 라는 표현이었다는 사실과 그러기까지 남편도 남편 자신의 이기심을 뛰어넘는 노력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가 싸운다. 선생님한테 또는 엄마한테 일단 혼나고 나서 ‘사과해’하는 어른들의 말에 한 녀석이 ‘미안해’하고 손을 내밀면 ‘나두 미안해’ 하고 악수하면 끝. 아이들의 싸움은 정말 이렇게 끝이다. 아이들처럼 이런 식으로 진정 싸움은 끝나고 밝은 태양빛 비치는 미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부가 정말 하나 되기 위한 진정한 자신과의 싸움이 바로 이 순간부터인 것 같다. 귀 기울여 상대방의 소리를 듣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대한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것. 이 과정에서 감정이 복받칠 때는 나는 여전히 말이 안 나오기도 하고 가슴이 떨리고 때로는 민망하게 입술이 바르르 떨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용기를 내면서 마음을 다잡아먹는다.
그러면 그렇게 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던가? 불행히도 아니다. 말을 할수록 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말을 들을수록 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싸움을 싸우던 어느 날, 남편이 손을 덥석 잡더니 ‘여보! 기도하자’하면서 다짜고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 역시 함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각각 하나님 앞으로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나가는 일만 남았었는지도 모른다. 이 지점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능력을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냉정과 열정이 함께 정리하기를


언제 싸우든 잠자리에 들기 전 해결하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먼저 ‘미안해’라고 사과하기. 받아 칠 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아내(남편)의 말을 들어주기. 아내(남편)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 지와 내게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설명하기. 아내(남편)의 눈으로 본 나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기. 기질을 뛰어 넘는 사랑은 바로 싸움의 한복판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5년간 싸우며 세운 JP와 SS의 싸움의 법칙들이다.

‘열정’이 받아치기를

‘여보! 미안해’ 으~ 오늘도 또 듣는 ‘여보 미안해’. ‘대체 그렇게 쉽게 미안한 게 깨달아지는 실수를 왜 반복해?’. ‘미안하다구?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긴 하는 거야? 내가 어린앤 줄 알아? 미안하다는 말에 내가 마음 풀고 얼음 땡! 해줄 줄 알고? 치! 흥!’. ‘뭐야? 당신은 그렇게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야? 둘이 생각이 달라서 생긴 문젠데 왜 먼저 사과하고 그래? 잘난 척 하는 거야?’.

나는 천성적으로 싸움을 못한다. 일단은 분노에 차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무식하게 싸우는 싸움은 고사하고 정말 싸움이 필요할 때조차도 잘 싸우는 걸 하지 못한다. 물론 싸움을 못한다고 착한 사람일리 없다. 싸움을 못하는 대신 뒤에서 호박씨 까는 것으로 쌓인 감정들을 해소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결혼 전까지는 싸움을 못하는 성격, 또 싸울 일도 대충 회피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는 그 만큼만으로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예를 들어 가족들과 갈등이 생겨도 감정이 정리될 때까지 말 안하고 눈 마주치지 않고 지내다가 어영부영 또 말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와는 갈등이 생길 일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역시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누려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남편은 문제나 갈등은 반드시 대.화.로 풀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일 뿐 아니라 나 역시도 ‘싸움’이라는 긴장된 순간 이후에 해결을 잘 해 내지 않아서 그것이 쌓이고 쌓여 고착된다면 부부가 하나 되는 일이 점점 요원해 질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친정 엄마나 친구들과 갈등을 해결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딱 그 수준의 가정을 만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잘 싸우는 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는데....

평소 기분이 좋을 때는 남편보다 몇 배의 말을 쏟아내고 표현을 하는 내가 긴장 상태가 되면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리도 어렵다. 그러면서 내게 있어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는 훈련이 얼마나 황무지였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깨달으면 뭘 하나? 최소한의 쌓인 내공이 있어야 대처를 하는데 그 훈련이 나는 이제야 시작이니 말이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 숨 한 번 몰아쉬고는 차부~운한 목소리로 ‘여보! 미안해’로 시작해서 줄줄줄줄 사태를 설명하고, 그 순간 자기의 느낌을 설명하고, 조목조목 따져서 사과하는 남편이 어찌나 고맙지는 않고 얄미울 뿐인지.... ‘그래 너 잘났다. 너는 감정도 없냐? 감정조절이 그렇게 잘 돼? 너 인격 한 번 훌륭하다. A~C! 나는 왜 이리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안 나오는 말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먼저 나오니 나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밖에.

Jung의 심리유형 식으로 말한다면 사고형의 남편과 감정형의 내가 갈등을 해결 하는 데는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즉 타이밍의 문제였다. 갈등이 발생하는 즉시 남편은 ‘여보! 미안해’ 이러면서 해결의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나로서는 갈등으로 생긴 감정을 추스르고 다스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로 사랑하는 남편과 가슴으로 사고하는 나 사이에 시간은 물론 정서상의 거리가 얼마나 컸는지...내 안에서 이런 감정의 폭풍이 불고 있는데 드러나는 양상은 늘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말하자면 삐져 있는 듯 보일 뿐이고 거기다 대고 남편은 계속 화해를 요청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이 일어난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이제 나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대화도 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인간인 것 같고 저 사람은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어서 내 이 삐짐과 심통 속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화해의 제스춰를 보내니 말이다.

‘냉정’이 시작하기를

대통령 탄핵 안이 기각되었다. 그간 쓸데없는 일로 가슴 졸인 것이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제의 한 원인이 본인들에게 있을진대 그건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조건 사과’를 요구하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상식적인 힘’을 행사하고, 시시비비가 가려졌는데도 ‘치사하게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자니, 정말 미성숙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헌재가 판결을 내리자마자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소추위원은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해야지’ 라는 대답을 했다는데, 참 그렇게 미운말만 골라서 하는 것도 재주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사과하고 용서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미 천국이 왔어도 수십 번은 더 왔을 것이다. 전쟁 할 이유도 없고 부부간에 이혼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싸우고 등 돌리고 보복하고 화해하려고 하는 저들의 미숙한 행태를 보고 있자니, 신혼 때 우리 부부의 갈등패턴이 생각난다. 아마도 이 싸움의 패턴은 계속 순환할 거다. 그러나 패턴을 객관화해서 보고, 그 순환의 고리를 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계의 성숙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사랑이란 오~래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말해준다. 내가 아내의 응답을 기다리며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견뎌내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근데 그것도 자꾸 반복되고 패턴이 되다보니 기다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 패턴이라 함은 이런 악순환을 얘기한다.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한다.(나는 모르고, 아내는 안다.) 그것이 반복되면 아내는 참다 참다(그걸 좋게 말 하지. 왜 그리 참느냐 말이다) 침묵으로 시위한다. 대충 실수와 잘못을 감 잡은 나는 사과한다. 아내는 그 정도의 사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로부터 ‘인내’를 학습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내는 단호한 결심을 한 듯, 그간의 내 문제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고 승부수를 띄운다. 나는 더 이상의 악화를 막기 위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혹 아내가 짐 싸들고 도망 갈까봐?) 무조건 잘못을 시인한다. 어느 정도 화해의 분위기가 되면, 정서적 하나됨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남자인 나는 서둘러 육체의 하나됨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고 다 해결된 듯 안심한다. 그러나 아내는 다 해결되었을까? (남자는 그렇게 생각한 듯, 여자는 그렇지 않은 듯 -.-)
아슬아슬 신혼을 즐기다가 나의 실수는 반복되고 아내는 어느 날 또다시 침묵의 세계에 빠지고, 나는 또 사과하고... 말하자면 대충 이런 패턴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인내의 한계 끝에 여럿 의문이 고개를 든다. ‘와이프에게 너무 잘해 주지 마라. 버릇든다’ 는 한 선배의 말이 혹시 맞는 말 아니야?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 거야! 이거 원, 내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뿐이잖아. 나는 뭐 속 터지는 일이 없는 줄 알아? 누군 뭐 으다다다 할 줄 몰라서 그런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만 참으면 되는 건가?

나는 ‘미안해’라는 말을 꽤 잘 쓰는 편이다. 원래 타고난 ‘평화주의자’여서 그런지, 갈등이 생기면 내 편에서의 원인제공에 대해 즉각적으로 살피는 버릇이 있고, 인정된다 싶으면 지체 없이 미안하다고 말한다. 물론 장단점이 다 있다.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화시키지 않고 조기 진화 성공률이 높다는 데에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외면적 평화를 진짜 평화로 착각할 때도 적잖이 있으니 그것은 좀 문제다. 그나저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미안해’ 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화해와 평화의 미학을 모를 일이 없을진대, 어째서 아내는 이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일까? 그뿐 아니다. 내가 하는 이 말의 진정성을 어찌 그리 쉽게 의심한단 말인가? 해결의 실마리로서, 꼬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말로써, ‘미안해’만큼 좋은 말이 없는데, 어째서 아내는 완전한 화해의 뜻으로서만 이 단어를 고집하는 것! 일까?


이 땅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을 것인가? 하루에도 직장을 그만둬? 말어?를 몇 번을 되뇌이고. ‘엄마 가지마’를 외치는 아이를 뒤로 하고 나오는 출근길의 무거움. 나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비교적 우아하게 직장과 양육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직장생활 하는 엄마들의 맘고생 몸고생의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내 수준에서는 고통 속에 적응해 가야 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내 천성에 부합하는 나만의 모성을 찾아가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였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엄마노릇, 그것도 직장과 병행하며 엄마노릇에의 적응하기 노력은 나로서는 끝까지 생각하기와 기록하기였다. 육아와 관련된 사안 사안마다 끝까지 생각해서 내 나름의 원칙을 정하기. 그리고 아이와 관련된 일들을 기록하기. 생각하며, 기록하며 엄마노릇하기 40개월의 중간 보고서쯤으로 이름을 붙여볼까?

큰 아이 채윤이가 7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 하는 여성들이 제일 선망하는 조건에서 누리고 있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셨으며 그것도 아침 저녁으로 아이를 맡기고 찾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출퇴근해 주셨다. 게다가 직장과 집은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었고, 칼퇴근(!)을 100% 보장하는 훌륭한 직장이었다.
채윤이가 7개월 되었을 때, 연로하신 몸으로 산후조리와 양육을 감당하시던 친정엄마가 쓰러지셨다. 갑작스레 아이를 직장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곳에 있는 시댁에 맡기게 되었다. 이렇게 된 며칠 동안을 내내 울면서 살았다. 시부모님은 ‘직장이 멀고 하니 주말에나 와서 아이 봐라’ 하시는데도 저녁마다 그 먼 길 아이를 보러 갔고,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출근하는 시간 내내 차에서 눈물바람이었다. 울다울다 갑자기 ‘내가 왜 이리 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야 저녁이면 다시 만날 터이고, 친정엄마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때문인가? 딱히 그것만도 아니었다.
눈물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 그 눈물 바닥을 파헤쳐 보았다. 눈물을 다 퍼내고 난 저 깊은 바닥에는 ‘모성을 빙자한 자기연민’이 있었다. 그 눈물은 내가 불쌍해서 나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본능적인 자기애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울음은 아무리 울어도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영양가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고, 너무 무겁지 않은 그러면서도 해피한 나만의 모성을 찾기 시작하였다. 100점짜리 엄마는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때 이후로 웬만해서는 이런 식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과 양육을 병행하면서 이 때와 비슷한 정서가 찾아들 때는(예를 들어 아이가 아픈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 등)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여 슬퍼하지 않기를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다. 씩씩해 졌달까?


끼어드는 글 #1. 채윤이 에게
채윤아! 오늘 아침 엄마 아빠 출근하는데 유난히 힘들어하더구나.
채윤이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해서 마음 한 쪽이 아프구나.
채윤이가 원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가 늘 채윤이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엄마는 '내가 엄마가 되면 최고의 엄마가 되리라. 100점 엄마가 되리라' 마음 먹었었단다.
그런데, 이제 엄마는 100점 엄마의 욕심을 버리려고 해. 100점 엄마는 애초부터 할 수 없는 것이었어. 현승이가 생긴 순간부터 엄마는 채윤이 만의 엄마일 수는 없고,
현승이가 없다해도 100점으로 채윤이를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 같구나.
설령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고 채윤이 옆에 있어준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야.
무슨 말인가 하면, 그렇다 해도 채윤이는 슬픈 일이 있을 거라는 얘기야.
사실 채윤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엄마를 떠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아.
(이것을 엄마 자신이 먼저 깨달아야 했었어)
채윤아! 채윤이에게 100%의 행복을 주고, 어떤 슬픔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사랑할 분은 하나님 한 분 이란다. 엄마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채윤이의 마음 아프게 할 일이 많겠지만, 하나님 그 분은 어떤 일에도 채윤일 실망시키지 않으실테니....엄마가 채윤이에게 ‘최고의 엄마이신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 하나님 그 분이 엄마에게 하셨듯, 채윤이를 사랑하고 보호하실 것을 믿고 감사한다.
채윤아! 다만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채윤이를 사랑한다. 엄마가 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늘 기도할게. 채윤이가 걸음마를 혼자 했던 것처럼 혼자 걸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다다르도록 그렇게 기도할게. 그게 젤 중요한 것 같아.
울음이 길지 않고,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빨리 포기할 줄 아는 채윤이가 아침의 슬픈 감정들 빨리 털어 버리고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오후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즐겁게 지내길 기도할게.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최선을 그 사랑을 닮으려고 노력할 거란다. 화 내는 대신 더 많이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엄마 될게. 귀여운 채윤아! 안녕!

부부가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양육환경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누구에게 아이를 맡기든 밤에는 반드시 우리가 데리고 잔다. 돈벌이를 위해서 아이를 돌보는 전문 베이비씨터(?)에게는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된다면 어떤 것이든 감수하기로 하고, 그래도 방법이 없다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당분간 일을 그만두기로 하였다. 결국 최선의 선택은 시댁 근처로 이사하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서 져야하는 어떤 부담이든 감수하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낮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을 적극적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퇴근해서 함께 있는 시간에는 있는 힘을 다해 놀아주기. 남편과 합의 하에 가급적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하였다. 사실은 놀.아.주.는. 시간이 아니라 노.는 시간이었다. 놀이가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런 것들 때문이 부모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기 보다는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거였다. 아직 ‘엄마’ 소리도 못하는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블록을 쌓고, 춤을 추고 신나게 놀았다. 한 개의 블록 위에 또 하나의 블록을 제대로 올려 놓지도 못하던 아이가 이제 블록으로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상상놀이를 할 정도로 자랐다. 그렇게 놀이가 발전하는 40개월 동안 내가 그 안에서 누린 기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것이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는. 내 인생에 딱 한 번 있을 즐거움이리라.

끼어드는 글 #2. 바닥에서 밥 먹으면 어떻게 되나?

혼자 뭐라 뭐하 하면서 상상놀이에 빠져 있는 김채윤.
이 때 누가 '채윤아!' 누가 이러면,
'응, 나 지금 채윤이 아니거든. 나 의사선생님 이거든....' 이런다.
오늘은,
'나 채윤이 아니거든. 엄마거든. 정신실이 채윤이야~' 하면서.
'자~ 채윤아! 수제비 먹자. 같이 만들자~'
가짜 채윤이(정신실)는 드라마에 침 질질 흘리면서 빠져 있는 중.
가짜 엄마(김채윤): 자, 수제비가 다 됐구나. 이제 수제비 먹자. 일루 와.
가짜 채윤(정신실): (‘백만송이 장미’를 봐야하기 때문에) 엄마! 나 여기서 먹을래요.
가짜엄마: 뭐? 엄마 얘기 들어봐. 여기가 어디야? 부엌이야? 아니지?
식탁이야? 아니지? 밥은 어디서 먹어야 되지?
(완전히 정신실이 김채윤 설득할 때 하는 말투다!!)
가짜 채윤 : 그래도 여기서 먹을래요.
가짜 엄마 : (제법 단호하게)안돼. 식탁에서 먹는 거야. 바닥에서 먹으면 안돼.
가짜 채윤 : (김채윤을 말 시켜 놓고 그 사이에 ‘백만송이 장미’ 볼려는 흑심으로)왜요? 엄마!
가짜 엄마 : 응....여기는 어디야? 바닥이지? 음...바닥이니깐...여기서 먹으면......음......
(막 버벅거리다가) ........음....... 죽.어!!
가짜 채윤 :(오잉!) 죽어요?
가짜 엄마 :(훌륭한 답을 얻었다는 듯, 자신있게) 그래. 죽고 또 그 담에는 이빨이 다 썩어.
가짜 채윤 : 아~ 그렇구나. 엄마 거기서 먹을게요.


걱정과 염려,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해줄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면서 양육은 보다 신바람나는, 삶에 즐거움을 더 해 주는 일이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라나는 아이는 우리에게 다양한 의외의 웃음을 선물로 주고 있었다. 이렇게 말이다.

끼어드는 글 #3 아.어려운 우.리딸 성.교육 이야기

채윤이가 한 30개월 되었을 때. 아무데서나 옷 벗고 돌아다니길 예사로해서 나름대로 성교육을 시킨다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책에 나오는 대로 이런 걸 가르쳤다.
'아가야! 잠지 좀 보자~' 누가 이러면....채윤이는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내면서.
'안돼요! 내꺼예요! 소중한 거예요!'라고 소리치도록 했다.
뜻을 아는지 모르는 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정답이 딱딱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부 예배 끝나고 어느 선생님 하시는 말씀.
'대체 채윤이 성교육을 한 거예요? 이게 성교육인지 유혹인지 뭔지....원
얘기인 즉슨, (대체 누가 묻지도 않는데)
'내 잠지 보면 안돼요. 내 꺼예요. 소중한 거예요' 이러면서 소리지르고 다니더란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씨익 웃으면서 '아빠 나한테 아가 잠지 좀 보자' 이거 해봐.(늘 이런데 걸려드는 건 아빠다)
딸보다 더 천진난만한 아빠(진지하게) '아가야~ 어디 잠지 좀 보자"
채윤이 (아주 빠르게 의례적으로) '안돼요내꺼예요소중한거예요~~~'한 다음.
씨익 웃으면서....'네~ 여기요~'
아빠는 꽈당!


둘째를 낳으면서 이런 저런 상황으로 아예 시댁과 합가를 하게 되었다. 아이 하나를 두고 양육자가 둘(우리부부, 부모님부부)인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때로는 근본적인 세계관에 관련된 사안들 까지 생각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먹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부터, 옷을 입히는 취향,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바닥에 ‘때찌’ 시키기, 유치원 가서 무조건 애들 이기고 오라고 가르치시는 것.....처음에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와지기 내지는 엄마로서의 권리를 일정정도 이양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양육의 권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면 늘 속상한 일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양육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힘을 빌리는 이상 모든 양육권의 50%는 부모님께 있다고 의식화하기 시작하였다. 둘째를 낳은 이후로 큰 아이가 어찌나 할아버지께 찬밥이 되었는지....내리사랑 이라니 아직 어린 아기가 더 예쁘시기도 하고 게다가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는 아버님께 아들 손주는 더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엄마 아빠의 의식과 상관없이 차별 아닌 차별을 받아야 하는 큰 아이를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땅 꺼지는 걱정 속에서도 딸은 엄마처럼 기죽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동등하게, 당당하게 맞서고 있으니 위로가 될 밖에...


끼어드는 글 #4 우리 시어머니한테 화장실 청소시키는 무써운 사람 있다.

어머니께서 머리가 젖어 가지고 뒤집어지며 나오신다. 웃으시느라 말씀을 잇지 못하신다.
'나 참 쟤 때매.......내가.....아후.....' 내용인 즉슨,
할머니 머리 감고 화장실 청소하고 계시는데 채윤이 다가가서
채윤 : 할머니 뭐하세요?
할머니 : 화장실 청소하지.
채윤이 : 그러면 할머니 화장실 청소 다 하고 우리 화장실도 청소 하세요~
할머니 : (기가 막혀서) 뭐? 니네 화장실은 니 엄마가 해야지 왜 내가 해?
채윤이 : 할머니가 우리 화장실에서 똥 싸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해야죠
(우리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 돼 있어서 할머니가 우리 화장실을 이용하심)
세상에 무서운 것 없는 나의 지존 시어머니한테 화장실 시키는 킬러 있었으니. 바로 내 딸!

끼어드는 글 #5. 뚜~우~ 0. 3. 1. 5. 7. 6. 2. 2. 5. 2.

여부세요. 채윤인데요, 누구 바꿔드릴까요? 안녕하세요?(여기까지 의무적으로 매우 빨리)
엄마! 팀장님한테 말하고 빨리 채윤이한테 여기루 와.
그럼, 아빠가 교수님한테 말하고 채윤이한테 오라구해.
지난 번에 교수님한테 말하니까 아빠 일찍 낮에 집에 왔잖아.
그 때, 교수님이 아빠 집에 가라고 해서 교수님 진짜 대단하지? 또 그렇게 하라구래.
빨리 와!
엄마 언니들 치료 다 해줬어? 노래했어? 채윤이도 노래해줘. 키보드 키고 채윤이 방에서 춤춰.
현승이 바꿔주께. 현승이 불러 봐~현승아! 엄마야. 엄.마. 해봐.
엄마 이따가 배띠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사 와.
나 할아버지 말씀 쪼금 안 들었어. 할아버지는 나쁜놈 이야. 비디오 안 틀어줘서.
엄마! 안녕! 뚜우 뚜우 뚜우 뚜우....


원칙을 세운다고 해서, 아이의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다고 해서 엄마노릇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아이를 떼놓고 나오는 그 마음의 부담 또한 사라져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주는 원칙과 내 미성숙한 본성에 따라 엄마 노릇하기는 더 많은 마음에 분열과 죄책감만 낳을 뿐임을 알기에 나름대로 해 보는 몸부림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날을 나는 엄마로 살아야 하는데 ‘100점 엄마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명심하며 그 좋은 엄마를 따라 배우며 엄마 노릇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신실 : 5월호 <복상> 연재글은 시간과 여러 기타 사정으로 혼자 쓰게 되었습니다. 혼자 쓰는 매리트를 살려 '모성'내지는 '양육'에 관한 글을 혼자 썼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신 채윤이 관련 에피소드도 집어 넣었구요. (04.16 16:54)
전미순 : 글이 너무 길어서 나중에 읽어볼께요! (04.16 22:29)
정신실 : 푸하하하핫...그러셔~ 그런 거까지 그렇게 솔직하게 다 말 안해도 되는데... (04.17 11:06)
남은정 : 난 지금 다 읽었쥐~! 오늘에야 이 글이 뜨네.. 내 컴이 이상한가부다.. 휴... 새글이 재때 뜨지도 않다니.. 엉엉.. (사실 몸이무거워지니까 별게 다 서러울려구하네.. ㅋㅋㅋ) (04.18 1
SS 피곤하고 무기력한 아침 이예요. 무기력은 어젯밤 해결되지 않은 정서의 연장인 것 같아요. 어제 저녁에도 여전히 목욕탕 세면대에는 물에 적셔진 현승이의 내복과 손수건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손.빨.래... 이제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 세면대에 널부러져 있는 손빨래 꺼리를 보면, 보는 그 순간 기운이 쪽 빠지고 마음이 상해버려요.
'애들 옷은 그 날 그 날 손빨래 해라. 물도 덜 들고 빨리 빨아 말려서 또 입혀야 한다. 현승이는 침을 많이 흘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 입혀야 해' 몇 번 말씀 하셨는데 말을 안 들었죠. 내 생각에 모았다가 세탁기 한 번 돌리는 것이 물도 절약되고, 퇴근해 돌아와서 매일 손빨래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어요. 결국 어머님이 특단의 조처를 하신 것이죠. 아예 빨래들을 세면대에 모아 놓기. 이쯤 되면 손빨래 관철을 위해서는 막 가시겠다는 거죠. 여기다 대고 계속 세탁기 빨래를 하게 되면 나 역시 막 가자고 대드는 게 되겠죠.
당신 알죠? 나 손목 약해서 걸핏하면 물리치료 받으러 다니는 거. 밤에 애들 재우고 손빨래 하노라면 '시집살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어머니 들으시면 콧방귀 뀌실 소리지만....이럴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이런 생각을 하죠. '딸이라면 이렇게 하실까? 하루종일 일 하고 들어 온 딸에게 굳이 손빨래하도록 강요 하실까?' 이렇게요...

JP 당신 편지를 받고 오래 망설였어요. 내가 나서서 도와주기에 가장 어렵고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당신도 알죠? 그렇지만 당신이 지고 있는 짐, 가능한 한 전부 다 내가 대신 지고 싶어 한다는 말에요. 그리고 또,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머니께 당신의 고충을 대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지도 잘 알리라 생각하구요. 그러니 우선,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애기 빨래들, 우리 같이 나눠서 해 봅시다. 내 빨래도 아니고 애기 빨래를 부모님 앞에서 하는 거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세수 하러 들어갈 때 어머니 눈치 못 채게 내 얼른 할게요.
얼마 전 전화요금 문제로 우리가 옥신각신 하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死卽生! '어차피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으니, 우리 것과 부모님의 것을 나누려고 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완전히 포기하자' 라는 생각이었죠. 부모님과 우리 사이에 합리적인 분배를 도모하는 건 비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우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따로 독립해서 사는 거라면 다르겠지만, 애들 양육 때문에 어차피 한 지붕 아래서 살기로 했다면, 한 푼의 미련 없이 다 드리자.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드리고, 공휴일에 시간 내라고 하면 기꺼이 쉼을 포기하고, 관리비 내라 하면 전화요금도 내자, 라구요... 애들 양육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거니까, 우리가 하는 희생, 사실 희생 축에도 못 낄 거에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 혹 당신에겐 무리한 요구가 될까요?
그리고 며느리가 딸같이 대접받길 원하는 마음 내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번 일로 '만약 딸이였다면..'하고 생각하는 건, 당신의 상상력이 너무 앞서 나간 듯 싶군요. 여보! 당신은 이미 시집간 딸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당신의 속내를, 그 아픈 과거와 부끄러운 일들을 선뜻 며느리에게 얘기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당신은 어머니의 유일한 신앙 상담가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SS '사즉생(死卽生)이라! 역시 원칙의 왕자답게 당신께서 또 한 말씀 주셨구만요. 死! 양육이라는 큰 짐을 우리와 나눠지고 계시는 부모님께 우리가 뭔들 못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머니와 나 사이에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나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요? 한결 같이 그런 마음이면 좋으련만 내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별 거 아닌 것에 다 걸려 넘어지고 불평하고 그렇게 되죠. 언제나 하는 얘기지만 내가 원칙을 몰라서 투덜거리는 건 아니죠. 하긴 당신이 덩달아서 내 감정에 공감해 준다면 훨씬 더 내가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 거예요. 그래요. 원칙으로 가죠.
예전에 어머님이 채윤이 앞머리 맘대로 짤라 놓으셨을 때 생각나요. 그리 예쁘지도 않은 얼굴에 짤뚱하니 올라간 앞머리가 간난이 같아서 처음 보는 순간 많이 속상했었죠. 그 때 머리도 그렇고, 이번 손빨래 건도 그렇고, 현승이 이유식에 조미료 넣으시는 것도 그렇고....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 아니지만 문제는 섣불리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가 없다는 것 이예요. 웬만한 관계는 잘 대화하면 어느 정도 해결을 볼 수 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설피 대화하면 상처만 남길 수 있다는 것이죠. 당신 말대로 부모님을 아이들의 양육자로 인정하고 맡기는 이상 어찌 됐든 1/2의 권리는 부모님이 가지고 계신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포기도 쉽고 불평도 덜해지는 것 같아요. 또 어찌 보면 나 같은 성격은 그런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기도 해요. 내 손으로 어떻게 다 해보려고 하는 욕구가 강한 거 말이 예요. 아이들 양육하는데 있어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환경을 100% 다 통제할 수 없는데, 설령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해도 마찬가지구요. 그렇죠? 이런 생각을 하다니...나 정말 훌륭하죠? ^^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많네요. 써 놓고 보니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딸이라면 아마 그렇게 안 시키시겠죠. 그리고 나는 딸이 아니라 며느리니까 그렇게 시키시는 거구요. 그러고 보니 많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나 역시 예외는 아니였구요. 뭐 궁극적으로 좋은 관계를 표현하고자 그렇게 표현하는 때가 더 많다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그 환상으로 인해서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나는 며느리다. 나는 딸이 될 수 없다.’라고 관계 설정을 하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을까요?
‘난 널 딸같이 생각하는데......’ 이런 표현을 하시며 섭섭해하시는 시어머니, 또 그렇게 표현하시며 정작 딸하고 다르게 대접받는 것 때문에 상처받는 며느리 많이 본 것 같아요. 여보! 나는 이제부터 딸 운운하지 않아야 겠어요. ‘딸 같은 며느리’는 피차에 결국 이루지 못할 목표를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좌절하게 만드는 명제 같이 느껴져요. 나는 그저 좋은 고부간이 되는 꿈을 가져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예전에 하신 말씀 생각나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엄마’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엄마라고 부른다고 시어머니가 친정엄마 되는 것 아니다. 뭐라고 부르든 잘 지내면 되는 거다’ 이러셨거든요. 아! 난 어머니의 이런 합리적인 면이 마음에 든다니까. 너무 차갑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잘 보면 그 차가움이 합리적인 것의 또 다른 얼굴이라니까요.

JP 요새 당신이 어머니와 작은 갈등을 느끼고 있는 걸 보니, 새삼스럽게 신혼 초가 생각나는군요. 칭찬을 주고 받는데 익숙한 환경에서 살아온 당신에게 칭찬이라고는 쑥스러워서 눈꼽만치도 못하는 우리 가족이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졌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요. 내가 어머니께 전화해서 며느리 칭찬 좀 하시라고 큰 소리로 항변(?)했던 거 기억나요? 나로서는 거의 불효자식 소릴 들을만한 엄청난 발언이었죠. 그렇지만 다신 어머니께 그런 얘기 안해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편 합니다. 간혹 어머니께서 툭 던지는 말씀이 사실 마음에 걸리거든요. 당신도 들어서 알다시피 우리 어머니 종종 그러잖아요. '기껏 키워 놨더니 지 새끼하고 지 처 밖에 모르는 놈' 이라구요.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아니지만, '그거 다 아버지한테 배운 거에요.' 라고 발뺌하는 것도 이젠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간혹 당신이 어머니로부터 상처받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대체로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사실 당신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허물을 듣게 되는 건 아들로서 정말 괴로운 일이에요. 설령 당신 말이 옳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렇다고 당신보고 혼자서 알아서 다 해결해라! 말도 꺼내지 마라! 그런 뜻은 아니란 걸 알죠?
결혼하고 보니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힘든 짐을 알게 모르게 부과해 왔는지 보게 되는군요. 게다가 그런 구조적 모순을 거부하겠다고 종종 다짐하곤 하면서도 몸에 배어있는 가부장적 습관과 사고가 생각보다 커서 당신을 더 힘겨운 구석으로 몰아가도록 한 몫 거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나는 처가에 가면 늘 최고 손님으로 대접받으면서 당신이 시댁에서 부엌때기처럼 일하는 걸 보면서도 역지사지를 잘 못해요. 이런 나 자신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땅의 남자들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답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식'과 '남편'이라는 두 역할 사이에서 책임있게 부모를 공경하고 아내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당신은 어머니가 차가운 면이 있다고 했죠? 그걸 알았을 때 사실 나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어머니의 그런 면을 알긴 알았지만 나는 그게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아마도 어머니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나랑 무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 편에 서서 사람들을 볼지언정 다른 사람들 편에 서서 어머니를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무튼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보고 그런 모습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은 마치 금기를 범한 것 같은 죄의식이라고나 할까요? 뭐 그런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내인 당신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약점을 듣게 되는 건 늘 '불경스러움과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죠. 자식 된 도리로서 어머니의 약점을 수용하는 일, 이 땅의 남자들에겐 정말 종교적인 배교 쯤 되지 않을까 싶군요.
오늘은 이쯤 쓰지요. 내가 내 자식 생각하면 한없이 사랑스러운데, 그 애들이 나중에 커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나로부터 독립한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가 혼동스러워져요. 부모의 역할이란 뭐고, 또 자녀의 역할이란 뭔지.. 또 그런 역할 정립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우리 부모님들을 섬기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로운 일인지, 정말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SS 사실 어머니의 ‘차가운 면’은 어머니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제일로 어려웠던 부분이었지만 이젠 많이 달라졌다는 거 당신 아직 모르나 봐요?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요? 어머니의 ‘차가운 면’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죠. 일단 칭찬에 매우 인색하시다는 것. 기억나요? 작년 당신 생일 때 내가 휴가 내고 당신 생일상 차렸잖아요. 그것도 아침 식사로 말예요. 내 나름대로 퇴근하며 장 봐가지고 밤늦게 까지 또 새벽에 일어나서 온갖 솜씨를 다 동원해서 부모님 입맛 당신 입맛 고려해서 한 상 차렸건만..... 식사하시기 전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딱 한 마디였죠. “이걸 언제 다 차렸니? 먹자.” 끄~~~~~ㅌ!!
언젠가 어머니와 오랜 시간 앉아서 어머님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하면서 어머니가 칭찬할 마음이 없으셔서가 아니란 걸 알았어요. 칭찬하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는 거죠. 표현이 안 되지만 마음까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차가운 면’은 자식들을 독립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친정 엄마처럼 이 땅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처럼 자식 일이라면 뭣이든 아낌없이 주는 분이 아니시죠. 그런데 그건 며느리로서 반대급부가 있긴 해요. 지나치게 주시지도 않지만 지나치게 간섭하지도 않으시잖아요.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러고 보면 어머니들 역시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엄마는 자식일이라면 뭐든 양보하고 포기하시지만 그 만큼 말하자면 간섭도 많으시잖아요. 반면 어머님은 웬만한 일에는 우리 뜻대로 하도록 두시죠.
많은 남성들이 결혼하고 부모로부터 ‘떠나기’를 잘 못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그런 면에서 잘 떠난 사람이라면 그 배후에는 어머님의 ‘차가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나도 어머님의 '차가운 면' 을 감사하고 있다니까요.

JP 결혼과정과 그 이후를 돌이켜 보면 나는 부모로부터 독립이 생각보다 순탄했던 것 같아요. 나는 줄곧 '남자가 부모를 떠나' 라는 말씀을 지키려고 했던 내 노력의 열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근데 당신 편지를 받고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군요. 우리 부모님께서도 자식을 당신들의 품에서 떠나보내려고 꽤나 애쓰셨을거란 생각이 드니 새삼 감사한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에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여전히 그 간섭에 익숙해진 나의 미숙한 습성 사이에서 당신이 얼마나 현명하게 모자 관계를 끊을 땐 끊어버리고 이을 땐 이어줬는지 내가 모르는 바 아니에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다 지났기 때문에 하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당신과 백년가약을 맺은 이후 나와 우리 부모님이 참 많이 밝아지신 것 같아요. 우리 가족 안에 우리도 어찌 할 수 없는 음울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싫었는데, 어느 새 부턴가 그런게 없어진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을 맺어주신 그분의 뜻 중에 우리 가족의 치유도 거기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네요.

SS 서방님!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소녀 부끄럽사옵니다~ 호호호... 고마워요. 여보~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그건 사실 내가 노력한 일이라기보다는 제 천성이 엔터테이너인 걸요.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있어요. 당신 내 옆에서 지켜봐 아다시피 저는 시부모님께 계산하지 않고 섬기고 순종하려 했어요. 가끔 이런 조언을 들어요. ‘시부모님한테 처음부터 너무 잘 하지 마라. 잘 하는 며느리한테는 기대가 갈수록 높아져서 나중에 잘해도 잘하는 줄 모르신다.’ 어떤 때는 정말 이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물론 친정엄마께 하듯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섬김과 공경이 늘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것 같아요. 앞에서 말한 통념을 받아들이고 시부모님을 두고 계산을 하면서 섬기다 보면 모든 관계에서 그런 것처럼 결국 나 스스로 외로워지고 공허해지죠.
결혼하고 처음에 말예요~ 부모님께 나 진짜 잘했잖아요. 그렇죠? 그 때는 어머님의 약점을 많이 알기 전이기도 했고 또 사랑하는 당신의 부모님이라는 생각 때문에 정말 힘든 줄 모르고 잘 할 수 있었거든요. 처음에 그렇게 해 드린 것이 부모님께 신뢰를 심어드린 것 같아요. 말하자면 좋은 선입관이 생기신 거죠. 그래서 혹 며느리에게 좀 섭섭한 일이 있으셔도 당신들을 향한 제 마음은 늘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또 혼자 오버하고 있다구요? 암튼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상처 받는 일이 있지만 어머니와 나 사이에 의심할 수 없는 신뢰가 있다는 건 분명하거든요.
함께 주고받은 긴 편지 마무리할께요. 당신과 결혼하여 가장 좋은 영혼의 친구 되기 위하여 에너지를 쏟았죠. 교회와 직장에서 내 삶의 여기저기서 만나는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구요.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려 하고 설령 다른 점으로 인해서 불편해도 가급적 비난하지 않으려 하고 말이죠. 그렇게 부단히 연습하는 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기위해서 노력하겠어요. ‘시(媤)’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뭔가 뒤틀린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媤’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통념에 마음 뺏기지 않겠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시어머님을 예외로 두지 않겠어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단호한 명령에도 마찬가지이구요.
부모님으로부터 을 잘 떠나서 우리 가정의 남편과 아빠로 서 있는 당신께 이 글을 통해서 새삼 감사드려요. 그런 당신이 있기에 내가 감히 고부간의 ‘갈등’ 아닌 고부간의 ‘화합’과 ‘사랑’이라 말할 수 있고 ‘롯과 나오미’를 꿈꿀 수 있습니다. 오늘도 어머니 몰래 손빨래 해 줘서 고마워요. 여보~



우리는 신혼 초에 서로를 아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리 만큼 집착했다. 결혼해서 살다보면 자연스레 알아가는 것이지, 유난스럽게 군다는 직접적인 핀잔과 간접적인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확신한다. 배우자에 대해서 더 잘 알수록 행복한 결혼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더 잘 아는 것은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길이라고.
암튼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한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혼수를 준비할 때 TV를 사지 않았고, 최소한 1년간은 아기를 가지지 않기로 하는 등의 물리적인 노력을 하였다. 이런 원칙과 더불어 Karl Jung의 심리학과 그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성격유형검사 MBTI 와의 만남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성격유형검사에 의하면 JP와 SS는 정반대의 유형이다. 비슷한 점이 많은 줄 알고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랐고, 그나마 같은 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동의, 건강한 가정에 대한 꿈 등 그야말로 몇 가지의 근본적인 원칙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다른 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이해하려고 애쓰고 이해시키려 애쓰는 과정은 둘이 하나 되는 과정에 가속도를 붙게 해주었다.
이러한 내용을 힘주어 말하고 싶은데, JP는 명시적인 분명한 설명을, SS는 개개의 일화와 갈등해결 과정을 재밌게 나열하는 것으로 독자들이 알아가도록 하는 글쓰기를 원했다. 이와 더불어 두 사람의 매우 다른 일처리 방식으로 인해서 이번 글은 마감이 다 되도록 시작도 못 하고 싸우고 삐지고 말 안하는 둥 하다가, 최후의 순간에서야 겨우 합의를 이뤄 부랴부랴 써야할 상황이 되었다. 글이 퓨전 스타일의 형태를 띠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서로 다른 성격과 의사소통 방식이 부딪히고 합의하는 과정은 이번 글의 주제에 딱 들어맞는다. 비록 서로서로의 생각과 문체와 내용이 조화롭게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삶과 글이 헛돌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다는 데에 위안을 삼는다. 그럼 SS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외향적인 SS와 내향적인 JP

SS 신혼여행을 갔다 와서 시댁에서 처음으로 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아직은 피차에 익숙하지 않은 관계들이니 만큼 긴장된 상태에서 식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 조용히 식사하던 남편이 그야말로 조용히 쌍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기가 시기인지라 나는 너무도 민망하고 우습기도 하고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신혼여행 가서 뭘 그렇게 무리를 하셨다고 쌍코피가 터져~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부모님 앞에서 이게 뭔 일이람?’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고 있는데 더 당혹스러운 건 시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아버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시고, 어머님 역시 뭐 그리 다르시지 않은 표정으로 ‘코피 난다. 휴지 갖다 닦어라’ 하시며 이내 조용히 식사 진행. 그리고 그 날 오후, 시어머님은 조용히 혼자 나가셔서 남편의 보약을 지어 오셨다.
같은 상황이 우리 친정집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식사 시간이 그리 조용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신혼여행 갔다 온 신랑이 밥 먹다가 쌍코피가 터졌다! 이건 밥상이 뒤집어질 일이다. ‘신혼여행 가서 뭔 일 있었냐? 살살 하지 그랬냐? 보약 좀 먹어야겠다...’ 등등 온갖 놀림과 낄낄거림으로 난리가 났을 일이다.
내향형의 남편과 주로 내향형인 시댁 식구들, 그리고 언제나 시끌벅적한 외향형의 우리 가족과 그 사이에서 자라온 나. 나로서는 시댁의 그 조용함과 정적이 쉽게 적응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 시댁은 가족관계가 영 서로들 안 좋은가보다. 우리 집 만큼 화목하지가 않다’ 하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 남편과 함께 결혼식 축가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그 때 마다 우린 갈등이었다. 내게는 그런 일이 그냥 하면 되는 일이다.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헌데 남편은 그 때마다 ‘안 하면 안 되나?’ ‘내가 기타 쳐 주고 당신 혼자만 부르면 안 되나?’ 하면서 함께 있는 사람까지 자신을 잃을 정도로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예전에 안 해 본 일도 아닌데, 뭐 이렇게 할 때 마다 이러나?’ 이 일로 인해서 피차에 쌓아둔 스트레스로 인해서 결혼식 축가 한 번 부르고 12시가 넘도록 싸운 적이 있다.

정기적으론 아니지만 가끔씩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 훌쩍 떠나야 하는 JP, 말을 고르고 골라서 하는 사람처럼 한 번 말을 하려면 ‘어......그.......’ 하면서 발동을 걸어야 하는 JP(그래서 내가 준 별명이 ‘7초’이다. 말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내가 열 마디를 쏟아내면 한 마디 정도 말하는 JP.
이 모든 것이 남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첫 단계에서 풀어야 할 숙제였다. 알고 보니 남편과 나는 에너지의 흐름이 다른 거였다. 나는 에너지가 밖으로 흐르고 분출되고 하는 반면 남편은 에너지가 자신의 내면으로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면서 에너지가 얻어지는 반면 남편은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더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그렇게 따로 떼어 자신 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어휴~ 말이 쉽지. 같은 집에 살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편에게 말.안.걸.기. 가 내게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SS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결혼하고 나서 본 이 남자는 여기 아닌, 저기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내 보기에 현실감각이 부족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개념이다. 대체 은행업무나 카드 사용에 대해서 완전히 까막눈. 신혼 초 두 세 개 정도의 은행 일을 한 번에 남편 혼.자. 처리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아주 단순한 두세 가지 일이었다. 은행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돌아왔는데 내 참! 기가 막혀서... 정작 가장 중요했던 25만원 입금하는 일을 빼먹었을 뿐 아니라 돈을 잃어버리고 온 것이다. 그 단순한 은행업무가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으면 창구까지 분명히 가져간 돈을 언제인지도 모르게 잃어버리나? 이 뿐인가? 카드사용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설명했건만 카드로 돈을 찾는 것과 현금서비스 받는 것도 잘 구분이 안되며 카드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하기기 일쑤다.
이런 점들이 생활이란 걸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설명해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것일까? ‘난 이거 완전히 결혼 잘못한 거 같애. 책밖에 모르는 양반의 후손을 만나서 삯바느질 하면서 가정을 꾸려가게 생겼어!’
문제는 그거였다. 나는 모든 정보를 시각, 청각...등의 감각을 동원해서 사실을 받아들이는 반면 남편은 사실에 대한 의미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일에는 아주 단순한 일이라도 쉽게 자신의 정보로 소화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답이 간단하다. 남편에게 꼭 이해했으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분히 ‘의미’를 설명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의미부여만 되면 아무리 복잡한 내용이라도 독학으로 알아내는 것이었으니.
가정의 영적 가장이 꼭 남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신앙 좋은 아내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을 보았다. 신앙 없는 남편이 가정의 영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지 않아서 닦달하게 되고 갈등이 커 지게 되고.... 우린 가정의 영적인 가장은 두 사람이 함께 하기, 또는 어떤 부분에서는 더 재능 있는 것에 리더쉽을 발휘하기에 합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의 영적인 가장은 남편이 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남편은 나무(구체적 사실) 보다는 숲(의미, 비전)을 보는데 탁월하니, 남편이 비전을 제시하면 내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로 그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참모역할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다음은 똘똘이 스머프 JP의 말씀이다.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열심히 재밌는 일화들 짜내고, 내 자신 망가지면서 분위기 띄워 놓으면 도덕선생님처럼 저렇게 장황하고 진지~이 하게 설명하시며 주변을 썰렁하게 해 놓는다. 때로 남편과 대화 하다보면 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하나씩 질문하면서 나만 말하게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결론을 찾게 하려는 산파법이라는 거 말이다. 거기에 넘어갈 나인가? 의도를 간파하고 딴 짓에 열중해도 선생님의 설명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여러분도 맛을 좀 봐야 할 것이다. 혹 불면증 있으신 분들은 JP가 쓴 다음 부분은 아껴뒀다 잠자리에서 읽으셔도 좋을 듯. (아니 혹 어떤 독자들께서는 오히려 JP의 글이 진짜 알맹이 있는 글이라 말씀하시며 SS의 글은 가볍고 말장난뿐이라 하실지 모르겠다)

둘이 하나 되어

JP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루 종일, 일년내내, 한평생을 함께 살 것을 서약한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거룩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장엄하게,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서약문을 낭독한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진실과 존귀함으로 서로 사랑하겠습니다.” 결혼식이 거행되기 전까지 ‘결혼식’ 준비는 힘들었지만 이제 곧 펼쳐질 환상같은 ‘결혼’을 꿈꾸며 신랑 신부는 사랑의 띠를 곱게 수놓고 굵게 땋아간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순간, 주례자의 입은 마치 하나님의 음성인 듯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선 두 사람의 하나됨을 선포한다. “이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쿵!! 쿵!!!(신랑의 심장이 놀래 뛰는 소리) ‘아니 이게 뭔 말이여?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죽을 때까지 이 여자와 떨어질 수 없다고???’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족쇄가 쑤욱 떨어지더니만 내 몸을 콱 조여오는 듯 갑갑한 느낌이 든다. ‘아휴~ 조금만 더 늦게 할 걸, 내가 왜 이리 결혼을 서둘렀던고...’
그 때의 그 느낌은 사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 그 느낌의 실체를 완벽하게 복원해 내지는 못했지만, 이제와 추측해 보건대 ‘나의 자아’가 ‘다른 자아’와 만나 새로운 ‘공동의 자아’를 만들어 낼 것을 요구하는 결혼의 특성 때문이리라. 내 행동 양식은 공동의 양식으로 바뀌어야 하고, 내 자아인식과 세계관도 두 사람이 공유하는 자아인식과 세계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녀는 내 안에 들어오고, 나 역시 그녀 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그 과정이 원활하게 되기 위해 내 습관과 행동,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 나만의 삶의 스타일, 어쩌면 내 전부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과거의 나를 고집스럽게 유지하길 원한다면 나는 결코 결혼을 행복하게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즉, 결혼은 새로운 사람으로의 거듭남을 요구하는 셈인데, 만약 그걸 거부한다면 결혼은 그 궁극적 목적인 ‘영혼의 하나됨’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의 하나됨’도 어림없다. 최악의 경우는 ‘육체의 하나됨’도 쉽지 않으리라! 확연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이런 원리를 결혼의 제도 속에 제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과 직면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성혼 선포의 엄중한 요구를 들으며 나를 개방할 것이냐 아니면 나를 고수할 것이냐를 놓고 짧은 순간이나마 괴로워했던 것이다. 즉, 새로운 자아를 거부하면서 과거의 나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나를 개방하여 아내와 함께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인가! 의 문제이니, 아! 결혼의 요구 앞에 나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이것이 문제로구나!

내가 보.기.에. 아내는 오버를 잘 한다. 아마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느낌이 팍팍 가도록 표현하고 싶은 (선천적?) 의도에서 자신의 대화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아채고 점차 반복적으로 그것과 부딪히자, 불경스럽게도 나는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정직하지 못하구나.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 과장되게 포장해서 전달하는구나! 오! 이를 어쩔꼬!’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이 사람에 대한 것으로 나타날 때, 나는 서서히 참아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들이다. “당신은 내가 말하면 한.번.도. 제대로 들어주는 적이 없어.”(한번도?)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때 너.무.너.무. 싫어”(지난번엔 좋다고 해 놓고.) “나는 절.대. 아니야. 진.짜.야.” “당신이나 맨.날.맨.날. 그렇게나 하지 마셔~.”(맨날맨날이라니!) “나는 당신이 이렇게 해 주면 너~무 좋아!”(절대 아니면 너무?) 아내의 이런 패턴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내 대화의 패턴들과 서서히 대립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내가 그렇게 말하게 된 배경이나 나의 원인제공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더 자주 아내의 발언과 의도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은 했지만 방향은 잘못 잡곤 했다. 대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둘 중 하나다. ‘그냥 참아 버려?, 아니면 지적해 줄까?’ 그렇지만 내가 아내의 문제들을 조목조목 얘기하면 아내는 자동적으로 거부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내 문제로 돌려버린다. 그러면 아니한만 못하게 상황만 더 나빠진다. 반대로 아내의 문제를 침묵으로 일관하면 또 그건 그것대로 무시한다고 불평한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이래도 화 낼 것이고 저래도 화 낼 것이니.
부부 사이에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때, 혹은 보는 관점이 다르거나 대화 스타일이 달라서 갈등이 생길 때 자기에게도 일정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 말이야 참 쉽지 않은가? 그렇지만 실제 결혼 현실에서는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한다. 난해한 시를 해석해 낸 것처럼 복잡한 아내의 태도들이 읽혀지기 시작한다. 청소를 몰아서 하는 이유, 하루에 수도 없이 전화하는 이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이유, 앞에서 거절 못하고 뒤에서 열받아 하는 이유 등등. 드디어 아내의 행간이 읽혀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잠이 많은 나,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나, 칭찬을 잘 못하는 나, 백화점을 싫어하는 나 등등 내 숨은 의도를 아내는 귀신처럼 알아 맞춘다. 더 이상 위장해 봐야 서로에겐 우습기만 할 뿐 우리의 속마음에는 어느새 서로의 분신들이 들어와 앉아 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내 모습을 통해 아내가 느껴지고 아내의 말 속에서 나를 느끼게 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결혼식장에서 채워진 족쇄가 풀린 것 같이 결혼이 가볍고 자유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아내와 나의 거리는 그때보다 더욱 가까워졌다. “나는 결혼한 것이 너무너무 좋다. 아내는 한 번도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려고 한 적이 없다. 내가 지금 하는 말, 진짜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아내와 살다보니 나도 오버하는 맛을 진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신비가 맨날 맨날 계속 되도록 나는 정~말로 노력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지고한 명령을 건강하게 통합한 사람의 진정성은 ‘결혼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사랑을 외치는 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면 울리는 꽹과리 소리가 되기 쉽고, 이웃 사랑에 몸 바치는 자가 자기 남편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어딘가 공허한 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리라. 왜냐하면 한 개인의 첫 번째 타인(이웃)이 곧 배우자이기에 그렇고, 그리고 그 타인은 결혼으로 인해 바로 자기 자신과 질적으로 동등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배우자와의 사랑과 일치는 공동체의 기초를 이룬다. 각자의 고유하고 독특한 인격이 상호 존중받고 사랑스럽게 수용될 때 공동체는 시작되고, 진짜 교회가 형성되며, 제대로 된 자녀양육도 가능해 진다.


SS 주일날 예배와 모든 순서가 조금 일찍 끝났다고 생각되는 때, 나는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흑석동(친정) 갈까?’하고 공짜로 생긴 시간을 쪼개서 한 껀 해 보려고 제안을 한다. 그럴 때 남편의 반응 ‘그래?, 그러고 싶어?’ 이러는데, 이건 ‘싫다’ 이런 뜻이다. 난 그래서 남편이 처갓집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어떤 땐 남편 시간이 여유 있겠다 싶어서 전화를 해서 간단한 일을 부탁할라 치면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것 역시 남편이 날 돕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친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헌데 남편은 계획된 시간 사용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가급적 계획된 대로 일이 진행되어야 편안해 하고 갑자기 돌발적으로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힘겨워 한다. 반면 나는 계획이 달라지는 것을 오히려 즐기고 늘 비슷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불편하다. 학교 다닐 때 모든 레포트를 거의 제출 전 날에 밤새우는 것으로 해결했고, 시간을 다투는 마지막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일을 처리하며 짜릿함을 느낀다. 우와~ 남편의 레포트 쓰는 방식을 보면서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2주 전부터 자료를 모으고 일주일 전부터는 말도 현격하게 없어지면서,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거의 도사님 수준으로 몰입을 한다. 그리고 하루 전, 나 같으면 숙제를 시작할 시간쯤에 이미 레포트는 완성이 되어 프린트 되고 있다. 말이 그렇지 그 2주간 거의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일로 빠져 들어가는데 이런 일은 반복해서 당해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즉,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일하는 방식이 - 내가 일을 몰아서 할 때 느끼는 자연스러움처럼 - 남편에게는 편안한 방식이란 걸 머리로 안다 해도 마음으로 공감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건 나를 보는 남편의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은 어려움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뿐 아니라 아직 우리에게는 서로의 성품 때문에 참아내야 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들이 무수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자주 실패하기도 한다. 이 남은 숙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가는 과정은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최소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때마다 또다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때, 결국 이 글을 포기하지 않고 쓰게 된 것처럼, 보다 풍성한 결혼의 열매를 누리리라고 기대한다.


채윤아! 저녁에 뭐 먹고싶어?" 하면 여덟 살 여자 아이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답을 기대하면 안된다.

"음....낙지 수제비" 이런 식이니까.


며칠 전부터 낙지 수제비를 먹고 싶다하여 알뜰시장에 갔는데 낙지랑 비슷한 작은 문어가 나와있네.

그래서 만든 문어 한 마리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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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은 멸치 통째로 갈은 것 완전 많이 넣고,

또 표고버섯 갈은 것 완전 많이 넣고....

감자, 호박, 등등 나중에 넣었음.


수제비는 지난 번 슈렉전에서 필 받아가지구 시금치 한 단을 데쳐서 밀가루에 반죽해서 얼려 놓은 게 있었는데..

이렇게 멸치, 시금치, 버섯, 감자, 호박....야채를 애들 눈속임해서 먹였다는 사실이 너무 꼬소한...ㅎㅎㅎ


약간 아쉬워서 헛헛한 입맛은 수제비에 넣고 남은 호박으로 전 몇 개 부쳐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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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애들하고 슈렉3를 보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슈렉 1, 2, 3,를 다 봤네.


영화보러 가기 전 날 아무래도 '투'를 보고 가야 더 재밌을 거 같아서 함께 인터넷으로 보고,

갔다 와서는 애들이 맨 처음 슈렉과 피오나 공주 만난 얘기 궁금하다고 해서 '원'을 보고...


암튼, 일주일 내내 슈렉을 보고 났더니 이런 요리가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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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이 푼 콧물과 늪의 물, 개구리 알 등을 섞어서 반죽!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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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가 호박 깻잎 영양부추 등을 넣고 전을 부침. 일명, 슈렉전!ㅎㅎㅎ


아니고....

시금치를 삶아 갈아서 밀가루 반죽 같이하고,

초록 야채들을 썰어 넣어서 부친 시금치전 이라고나 할까?

이것 역시 초장모임에서 배운 건데...

거 전이 쫄깃쫄깃하고 새파란 것이 수월찮이 맛있어서 '주여! 감별의 영을 주시옵소서' 했더니

시금치 간 것이 열쇠였다.

목장모임의 이쁜 아기들 이유식으로 멕이고 조금씩이라고 싸주는데는 영양만점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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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식탁 섬김의 대모로 느껴지는 권사님이 한 분 계시다.

아무리 많은 손님도,

아무리 잦은 식탁 섬김도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 풍성히 접대하시는 분이다.

매우 풍성하고 우아한 식탁을 대접 받지만 그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자랑이 아니라,

귀하게 대접하기 위해서 온갖 마음을 다 쏟는 정성이란 걸 느낄 수 있다.

때문에 가끔은 식탁에 촛불이 켜지고 흔히 우리 같은 사람에겐 접할 수도 없는 재료와 요리라 할지라도

크게 부담스럽지가 않다.


두어 달에 한 번 이 댁에 가서 식탁을 나누는 일은 요리도 배우고 섬김도 배우는 귀한 시간이다.


보쌈을 저렇게 영양부추 양념한 것과 싸 먹기도 하고,

부추 대신 무채를 가운데 함께 내기도 하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


고기를 참 잘 삶아졌다.

돼지고기 냄새 잡게 생긴 건 모조리 다 쓸어 넣어서 삶았다.

생강, 마늘, 맛술, 통후추, 심지어 녹차 잎까지...

그랬더니 냄새도 없고 부들부들 잘 삶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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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한 것을 얻어왔습니다.
이런 건 요즘 어디서 살 수도 없습니다.
쑥개떡을 정말 좋아하는데 쑥개떡 반죽 한 것 한 덩이를 귀한 분이 주셨습니다.^^
나가서 쑥을 뜯어야죠, 쌀 빻아야죠, 무엇보다 저거 반죽할려면 손목이 얼마나 시큰거리는데요..
암튼, 덕분에 아이들과 쑥개떡 만들기를 합니다.
아마 현승이가 커서 청소년만 돼도 저런 반죽하는데 큰 힘이 될겁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이런 반죽은 남자 손으로 해야한다'고 하시거든요.
힘이 그만큼 많이 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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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학교에서 오기 전에 시작을 하고 있었는데,

"누나! 우리 쑥떡 만들거야" 하니까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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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뜨케 얼추 모양은 비슷하게 내서 찜통 위에 얹었습니다.

첨으로 해보는 거라 엄마도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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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쪄야 하더라?

예전에 어머니께서 '20분'이라고 하신 말씀이 살짝 기억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좀 얇게 만든 것 같아서 15분 정도 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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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맞게 쑥개떡이 되어 있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감동 감동....셋이서 또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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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을 한 두 방울 떨어뜨린 물에 한 번 건져내고,

꿀을 살짝 발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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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이도...


 

 

채윤이도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엄마는 서서 손으로 정신 못차리고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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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접시가 비워졌어요.

또 한 냄비 쪄서 다시 마파람에 개 눈 감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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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없는데 우리만 맛있는 거 먹으니 쫌 찔려요.

이렇게 맛있는 거 누군가와 나눠 먹어야 제 맛이잖아요.

채윤이가 먼저 "엄마! 맛있는 거 했는데 경비 아저씨 좀 갖다 드려야 하는 거 아냐?" 합니다.

늘 쓸쓸하게 경비실을 지키시는 아저씨께 한 접시!



정말 행복하고 맛있는 오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쑥을 뜯고, 반죽을 하신 그 손에 사랑을 가득 담아 되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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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식성은 부모의 영향이 정말 큰 것 같다.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 음식이지만 엄마가 안 좋아해서 요리하지 않고 먹이지 않으면 맛을 일 턱이 없으니.

주로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은 부모님의 취향 영향권 아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우리 부모님이 돼지고기를 안드시는 이유로 돼지고기 관련해서는 별로 엄마한테 얻어 먹어본 맛있는 것이 없다.


돼지고기로 하는 요리들은 시부모님과 살면서 많이 갈고 닦게 된 것 같다.

돼지고기 뿐 아니라 우리 엄마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치지도 않는 오리고기도 아~주 좋아하게 됐으니..


내가 감자탕을 끓이다니...

감자탕을 먹을줄 알게 된 것도 얼마되지 않는데 말이다.


갑자기 요리신이 내려가지구는 목장모임에 김치 감자탕을 시도했다.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 등뼈가 생각보다 많이 쌌다. 1키로에 2000원.

그저 먹어본 기억을 떠올리며 인터넷으로 레시피 검색도 안하고 만 기냥 만들었다.


돼지 등뼈 사다가 핏물 뺄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물 붓고 우르르 한 번 끓여서 물을 따라 버렸다.

(이러면 돼지냄새 빨리 웬만큼 제거 된다고 본다)


그리고 뼈 끓이다가 김치 대가리만 짤라서 길쭉하게 우거지 분위기 나게 넣고,

들깨가루 듬뿍 넣어서 만든 양념장을 풀고 감자도 통으로 넣고, 나중에 마트에서 파는 감자수제비도 넣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불 끄기 전에는 파랑 깻잎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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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다보니 뼈가 너무 많아서 그릇이 넘쳐 몇 개 건져냈는데,

이걸로는 맵지 않게 들깨가루 많이 넣어서 양념해 푹 끓였다.

목장의 수현이가 이걸 보더니 대뜸 '아~ 이건 지리!' 했다.

맞다. 위에 꺼는 감자 매운탕, 밑에 꺼는 감자 지리..^^

정인이, 이제 막 돌이 지난 병준이까지 이걸 잘 먹어줘서 완전 보람 보람!

지호는 아래꺼 보다는 위에 걸 선택하는 매운맛을 보여주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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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신실 대단하다. 와~ 감자탕을 다 끓이냐? 맛있었어. 밥이 막 날아가게 생겨서 좀 그랬지만'
해주셨으니 처음 시도한 감자탕을 일단 성공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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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뻘뻘 흘리면서 감자탕 먹고,
얼음 동동 띄운 냉커피.
낮에 날이 더워서 혹시나 하고 얼음을 얼려놨는데...
양푼에 탄 냉커피가 웬지 감자탕과 어울리는 느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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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목녀 열심히 하고, 손님들 즐겁게 맞이하니까 하니님께서 복 주신게야. ^^ (07.04.22 19:44) 댓글삭제
정신실 요리신이 내린 복?ㅎㅎ
손님들 즐겁게 맞이하는 건 몰라도,
목녀 열심히 한다는 말은 쩜...찔리고...
정연이, 수현이, 은정이 들어와서 지켜보고 있따~아. (07.04.22 20:29) 댓글수정삭제
박영수 먼저 사진만 죽 보면서 마지막 사진이 뭔가 한참 생각했지.
꼭 모로코에 있는 가죽염색탕(그건 무지 큰건데)이랑 비슷한테 그거일리는 없고..
얼음 동동뜬 냉커피일줄이야..
복은 음식솜씨 좋고 요리 좋아하는 아내를 둔 도사님이 받으신거지요 ^^. (07.04.23 14:44) 댓글삭제
조기옥 이것도 배워야겠당~ ㅎㅎ
무대뽀 정신이 아니라 무한한^^ 실험정신이겠지요. 사람 입맛을 즐겁게 하는... 정말 복받으신 거예요... 두 분 다...ㅎㅎ 부럽~^^ (07.04.23 20:01) 댓글삭제
정신실 이것도 하시면 '술안주다' 하시며 좋아하실 거예요.
저는 또 목장에서 고문했어요.
안주 해놓고 밥만 주기!ㅋ (07.04.23 22:05) 댓글수정삭제
김종필 마자요. 완전 제 복이죠. ^^ 근데, 제가 제 발로 복을 걷어 찰 때도 많아요. ㅜㅜ (07.04.24 14:36) 댓글삭제
조혜연 도사님...요즘 축구에 목마르신가보네요...걷어차실 시간 나심 축구부로 가심이~~ㅎㅎㅎ (07.04.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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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데 애들도 참여시켜 봐. 애들하고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요리를 해보는 게 어때?'

하고 남편이 제안을 했다.

책에서 하란다고 하고,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건 참 별로다.

엄마 아빠가 창의적이어야 애들도 창의적인 삶을 보고 배우지.

남편이 간만에 이런 좋은 제안을 했는데 기꺼이 순종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요리는 유아교육에서 아주 쓸모있는 활동이긴하다.

물질의 변화등을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으며,

언어발달을 돕고....기타 등등.

헌데 그런 거 다 집어 치고 일단 애들이 재밌어 한다는 거.


유아교육과 다닐 때는 요리활동 중에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지에 대해서도 테스트를 받고 그랬던 것 같다.

뻔한 대답이 나오지 않게, 함께하는 아이들의 생각이 보다 확산적이 되게, 재밌게(난 이게 젤 중요하다) 질문을 쥐어 짜내면서

아이들과 요리를 한다.


쉬운 것 부터 조금씩 조금씩.


이번에는 미니 핫도그.

인터넷 어디선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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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케잌 가루에 계란 풀어 채윤이가 하듯 손이 안 보일정도로 휘저어 섞어야 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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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하고 입하고 코하고 싸이즈가 다 똑같은 저 아그를 보소.

이쑤시개에 쏘세지 하나 꽂는데 저리도 진지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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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세 개 꽂을 동안 한 개 꽂았는데 그나마 저렇게 삐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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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쑤시개에 꽂은 쏘세지에 핫도그 옷 입히는 거 엄마가 해봐도 재밌드만요.

핫도그 아줌마가 된 것 같고요.

이 시점에서 예전에 예진이한테 배워서 채윤이 현뜽이 함께 한참 불러댔든 '핫도그 아줌마' 노래가 생각나네요.


핫도그 아줌마 핫도그 주세요

이왕이면 큰 걸로 주세요

케챱도 뿌려주세요. 칙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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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워야 했을것을...

핫도그는 원래 다 튀기는 건줄 알고 기름 달궈 집어 넣었더니 바~로 새까맣게 탔어요.

첫 작품 실패하고 다시 시도했어도 사실 약간씩 탔네요.

근데 실수하는게 더 재밌어요. 덕분에 첨부터 다시 하는 거이 김채윤은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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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탄 듯한 미니 핫도그.

그래두 있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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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뜽! 그렇다고 굳이 입 안에 있는 것까지 보여줄 필요는....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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