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이미 왔다 가버린 성탄절, 그러니까 25일 저녁에 채윤이가 때늦은 짓을 했다.

산타 양말을 문고리에 걸으면서 '오늘이 크리스마스잖아'했다.

그러고 보니....채윤이에게 산타 얘기를 해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한 번쯤 곰돌이 인형을 사서 산타할아버지가 준 것 처럼 한 적이 있었고...

작년 재작년 부모님께는 거하게 크리스마스 선물 드렸지만 애들 선물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산타!


나도 어릴 적 산타를 믿고, 산타의 선물을 기대했었지만 엄마된 입장으로 채윤이에게 산타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산타를 핑계 삼아 착한 일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너무 낭만적이지 못한 엄마인가? 동심을 너무 몰라주는 각박한 엄마인가?


채윤이에게 산타 얘기를 신나게 해줄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먼저는 산타 자체가 그리 나쁘지 않다해도 채윤이에게 성탄절의 주인공이 산타가 아니라 예수님 이라는 것을 먼저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조차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성탄절의 메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탄절 칸타타, 내지는 성탄절 행사인 경우가 많다.

채윤이가 성탄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성탄 본연의 의미를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2.

그것보다 산타를 가르치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산타 할아버니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앤지...'이런 캐롤이 있다.

정말 누가 착한 아이일까? 진실로 착한 아이가 있을까? 착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엄마가 보는 채윤이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채윤이는 더 이기적이고, 고집스럽다. 그건 채윤이뿐 아니다. 착한 아이의 기준도 없을 뿐더러 객관적으로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아이들도 너무 잘 알 것이다. 자기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그럼에도 산타의 선물을 기대한다.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완전히 착한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는 그래도 누구보다는 착하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것 자체도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착한 아이도 아닌데, 그 사실은 아이 자신도 너무 잘 아는데 결국에는 선물을 받아 버리면 아이에게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속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 심한 생각을 나는 한다. 이것이 반복되는 것은 진정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문에 산타의 선물은 매우 매우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3.

채윤이가 산타로부터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신데렐라 집'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신델렐라 집을 줬으면 좋겠다는데....산타는 그 선물을 주기 어렵다. 왜냐면 신데렐라집은 너무 비싸다.ㅜㅜ

성탄절 다 지나고 산타 양말을 거는 채윤이를 보면서 마음이 짠하고 가슴이 아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의 고.상.한 교육철학으로 어린 가슴에 못 박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부분에서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주변에서 보는 정말 멋지게 성장한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적에 그런 장난감을 풍족히 누린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을 풍족하게 누린 듯 보이는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제공할 부모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독립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채윤이가 걸어놓은 산타 양말에 산타할아버지가 보낸 것 처럼 편지를 한 장 써서 넣어 놓았다. 채윤이가 신데렐라 집을 선물로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몰라서 미안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항상 착한 사람일 수는 없지만 늘 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적었다. 그리고 선물의 부분에 관해서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마트에 데리고 가서 예전부터 갖고 싶어했던 쿠션을 하나 사줬다. 그리고 신데렐라집은 채윤이가 여기 저기서 받는 용돈을 모아서 사기로 했다. 돈 개념이 아직 없으니 '파란 돈 다섯 개'를 모으면 살 수 있다고 설명해 주고 벌써 파란 돈 한 개를 모았다.


5.

신데렐라집 오만원 짜리. 다른 데 안 쓰고 사 줄 수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보냈다고 슬쩍 사다 놓을 수도 있다. 동심을 인정하고 순간 기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치뤄야할 교육적인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아 우리 부부는 그럴 수 없었다. 1년에 한 번 산타가 주는 선물로 기쁜 것보다 1년 내내 엄마빠가 주는 따뜻한 사랑으로 기쁘게 해주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아니 그것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서 행복한 것이 진짜로 행복한 동심이 되는 것임을 확신하기에 엄마빠로서도 하기 힘든 선택을 하며 성탄절을 보낸다. 가슴 저리도록 사랑하는 채윤이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이라 믿으며....

2005/12/30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채윤이 병설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지고는  잠시 이런 불신의 생각들을 했었다.

두 분 할머니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시고, 특히 외할머니는 철야에 금식기도 까지 하시고,

목장에서 목원들이 그렇게 마음을 모아서 기도해줬는데....

그 기도들 때문에라도 됐어야 하는 일 아닐까? '에잇~ 하나님 목자 체면좀 세워주시지. 목자 가정을 위해서 목원들이 함께 기도했는데 그런 건 딱딱 들어주셔야 각본이 맞는 것 아닌가?'


도곡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떨어지고 우연히 '월문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얘기를 듣게 되었다.

덕소에서 마석으로 가려면 산을 하나 넘는데 그 산 어딘가에 있는 아주 조그만 학교였다.

집에서 차로 10분. 한 학년에 한 반씩 있는 완전 시골학교.

여기에 있는 병설유치원은 매년 미달이 된다고 했다. 워낙 애들이 없으니 그렇단다.

어차피 어디를 다녀도 병설은 버스운행을 하지 않으니 아침에는 데려다줘야 하니까 한 번 알아나보자고 찾아갔다. 가서는 접수를 했고, 오늘 최종적으로 예비소집에 다녀왔다.


접수를 하러 가서 나는 심장이 뛰어 죽는줄 알았다. 이건 완전히 내가 예전부터 그리던 꿈의 유치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런 유치원에 채윤이를 보내고 싶었었다. 일단 유치원이 산에 있다. 유치원 교실 문을 열면 바로 흙마당이다. 운동장은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넓다. 보통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 교실을 빌어 쓰는데 이기는 특이하게 따로 건물이 되어 있다.운동장은 온통 흙마당, 바로 옆은 나무 울창한 숲. 운동장 한 켠에는 실외 수영장을 방불케하는 사이즈의 전용 수영장도 있다.

무엇보다 유치원이 그대로 자연 안에 있다는 것. 그런 유치원을 그려본 적이 있었으나 그런 유치원이 있을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거니와 있어도 아마 너무 비싸서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등하교 길이 문제였다. 접수하러 간 날 혹시 덕소 우리집 근처에서 오는 아이가 있는 지 물어봤다. 우리가 이사할 현대 아파트에 한 아이가 있단다. 슬쩍 입학원서를 보니 이름이 '이정현'이다. 그걸 보고 와서는 기도했다. 그 엄마랑 얘기가 잘 돼서 아침 저녁으로 카풀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내가 아침에는 데려다 줄 수 있으니 저녁에 그 엄마가 데려다 주면 좋겠다 싶었다.


오늘 예비소집일이라서 갔다. 한 반에 15명이란다. 모임을 마치고 정현이 엄마를 찾았다.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던 나이가 드신 인상 좋은 아주머니셨다. 우리 이사할 아파트 같은 동이다. 얘기를 했더니 '물론 좋다'고 한다. 이 유치원이 얼마나 좋은 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침이 마른다. 애들이 그네 타면 그 밑으로 다람쥐가 뛰어 다닌단다. 봄이 되면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린단다. 날씨가 좋으면 애들이 다 산으로 올라간단다. 그래도 작년 한 해 여기 보내면서 아침 저녁으로 태우고 다니는 일이 힘이 들어 도곡초등학교에 넣었다가 우리처럼 떨어졌단다.


교회를 다닌다기에 '제가 접수하러 와서 정현이 이름 보고 계속 기도했어요' 했더니....'하나님이 우리 기도 안 들어주고 그 집 기도 들어줬구만...'했다. 늦둥이를 본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슬쩍 내비치는 하나님 사랑도 만만치 않았다. 차가 고장 나서 버스타고 왔다는 그 아주머니 집에 태워 드리고 오면서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윤이가 아기였을 때 채윤이 유치원을 생각하며 기도드린 적이 있다. '정말 좋은 유치원 보내고 싶어요. 하나님!'했었는데...하나님은 그 기도도 잊지 않으시고 허락하셨다.


채윤이가 그네 타는 밑으로 다람쥐가 뛰어 노는 곳,

계절의 변화를 나무와 풀을 가까이서 보면서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

교사와 어린이의 비율이 1:15라는 환상적인 교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맘껏 뛰어 놀 채윤이!

생각만해도 감사하고 감동이다.


원더플 플랜!

바로 이런 하나님의 플랜이 있으셨다.

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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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에게


예쁜 이름을 가진 채윤아!

이 글을 읽게 된 채윤이는 몇 살 쯤 될까? 7살? 10살? 15살?... 궁금하네. ^^


아빠가 갑자기 채윤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단다. 그런 생각은 그동안 여러번 가졌었는데, 실천은 오늘 처음 하는 것 같다. 엄마는 벌써 몇번이나 네게 편지를 썼었지.


채윤이가 지금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는 아빠 인생의 최고의 전환기를 요즘 보내고 있단다. 아주 오래전, 아빠가 고등학생 때부터 꿈꾸던 일을 이제서야 하게 되었지. 그리고 이제 일주일 후면 시험을 치르게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아빠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게 돼. 그러면 아빠의 심정이 요즘 어떨지 이해할 수 있겠지?


아빠는 내년부터 3년정도 일주일에 4-5일 씩 먼 곳에 가 있어야 할거야. 공부하기 위해서란다. 이렇게 굳이 가족과 떨어질 필요가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아빠의 결정이 잘 한건지 확신이 안 서. 채윤이가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결혼한 후 지금껏 거의 외박을 해 본적이 없단다. 그럴 일이 있어도 가급적 집으로 와서 엄마와 너네들과 함께 했지. 아빠는 바깥일보단 가족과 함께 "있는" 걸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러기에, 내년부터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할 걸 생각하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로구나.


그래서 아빠는 이런 결심을 했어.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집에서 너네들 얼굴 보면서 공부하기로 말이야. 도서관에 가면 방해받는 것도 없고 훨씬 공부가 더 잘 되겠지만, 사랑하는 채윤이, 현승이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걸 생각하니, 하루라도 더 너네들과 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채윤이가 10살 될 때까지 떨어져 있는 건 아빠로서의 직무유기니까, 속죄하는 마음으로 집에 있기로 한 거야.


한 달 가까이 집에 있다보니 채윤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단다. 채윤이는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아빠가 오늘 집에서 공부하는지 도서관에 공부하는지 확인을 했지. 그런 채윤이를 생각하자만 마음이 저려와. 아빠로서는 맨날맨날 채윤이, 현승이와 함께 했으면 더 없이 좋겠거든. 게다가 아빠가 시험공부 한다고, 요샌 통 놀아주지도 못하고, 새로 산 인라인스케이트도 못태워주고...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아빠가 얼마나 미안해 하는지 채윤이가 이해할까?


어제 밤에도 채윤이가 확인을 했지? 오늘 집에 있을 거냐고.. 그러마 하고 약속해놓고선 오늘 약속을 못지켰구나. 아침에 채윤이가 우는 걸 보니, 평소 쥐어짜는 눈물이 아닌, 진짜 섭섭해서 우는 울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단다. "아빠는 왜 약속을 안 지켜요?" 채윤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처음으로 듣게 된 채윤이의 이 말이 아빠 마음을 두드렸단다. '아! 드디어 아빠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참 부끄러웠어.


채윤아! 아빠도 채윤이처럼 항상 채윤이 곁에 있고 싶어. 하루라도 안보면 채윤이, 현승이 생각에 다른 일들을 잘 할수 없을 정도지. 마음이 허전한 게 너무 이상하거든. 그래서 채윤이 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아빠도 아빠 일을 해야된단다. 하나님께서 아빠한테 준 꿈도 있고, 아빠로서는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열정도 있어. 신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채윤이한테 보여주고 싶구나.


채윤이가 아빠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 아빠가 잘 알아. 아빠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없으면 보고 싶어하는 거 잘 알고 있단다. 아빠도 채윤이처럼 똑같이 같은 마음이란 거 채윤이가 이해했음 좋겠다.


예쁜 채윤아!

아빠가 아빠한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아빠가 행복해질 수 있고, 아빠가 행복해져야 채윤이도 아빠의 행복을 나눠 가질 수 있단다. 지금은 아빠가 자주 늦게 들어오고, 그리고 내년부터는 일주일에 반 이상 아빠 얼굴 못보더라도, 이 모든 게 우리 가족의 행복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채윤아! 하늘만큼, 땅만큼, 바다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

2005/12/07

이 일에 대해서 오늘 오후 정리한 생각들이야. 나 자신을 위해서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답글로 남겨. 결국 당신 얘기와 내 얘기가 같은 얘기인것 같구. *^^*


나는 잠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먹먹했었는데...다행히 차분히 오후 치료를 할 수 있었어.목원들에게 문자를 보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하나님께서 채윤이 유치원껀은 거절하시네요

 

라고 날렸지.


그리고 나서 '거절하신 기도'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 거절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 어렵겠지. 채윤이랑 나의 관계를 생각해봤어. 채윤이가 뭔가를 요구할 때, '안 된다'고 말하면 억울해서 엉엉 우는 경우가 있어. '원래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건데 엄마는 왜 그래?' 즉,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해야하는데 왜 엄마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막냐는 거지....

2005/11/28

컴퓨터를 하고 싶다거나, 밤 늦게 쵸코렛을 먹겠다고 하는 것 등에 대해서는 채윤이 자신도 알아. 그걸 하면 좋지 않은 이유들에 대해서. 그런데 그냥 괜히 한 번 더 게겨 보는 거지.


예를들면, 옷 선택에 관한 문제는 좀 다른 것 같아. 분홍만을, 그리고 항상 치마만을 고집하는 채윤이와 싸울 때가 있어. 가끔은 양보하지 않고 바지를 입히고 분홍이 아닌 옷을 입힐 때가 있지. 그러면 채윤이는 억울해서 죽어. 그런 사안은 아무리 설명해도 채윤이의 인지력으로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니 눈에는 분홍색만 이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세련된 색이 아니다. 정말 멋진 것은 남들과 다르게 내 스타일을 찾아서, 내게 어울리는 나만의 스탈을 만드는 것이다. 라고 아무리 말해야 채윤이가 알아 듣지를 못하지.


채윤이의 색감과 채윤이의 이해력은 어쩔 수 없는 한계지. 그건 채윤이가 자라서 이해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분명히 말씀하셨지. '너희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고....


우리의 이해력과 인지력으로는 뛰어 넘을 수 없는 '뜻'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어. 그렇게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우리에겐 유치원 교육비를 줄이는 것이 절실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추첨에 떨어진 그 이유. 언젠가는 알게 될 수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지만....기도의 응답으로 온 탈락임이 분명할진대....우리에게 가장 좋은 결과일거야.


나도, 당신도, 채윤이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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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 유치원비가 월 이십몇만원 한다. 거기에 이러저런 교육비까지 합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째 채윤이는 유치원에 다녔다. 유치원 교육이 최상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가장 나은 교육이라는 부모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채윤이가 내년에 7살이 된다. 이사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 지원하게 되었다. 좋은 시설, 좋은 교사, 국가 지원, 저렴한 교육비... 지난주에 접수하고 오늘 추첨하는 날이었다. 35명 뽑는데, 140여명이 신청을 했다. 근 4대1이다.


여기저기 기도부탁 하고, 내심 하나님께서 '복' 주시리라 믿었다.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 믿었다.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 천대까지 그 은혜를 주시마 약속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양 할머니 권사님들도 금식하며 기도하시고, 목원들도 기도하겠다고 했다. 우리 부모 편에선 완벽했다. 되야할 논리적, 환경적 근거들은 잘 구비된 듯 싶었고, 또 그리 되리라 굳게 믿었다.


나는 통속에 손을 넣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 안 됐다 ...


집까지 걸어 들어오는 길에 무척 허무하고 속상했다. 이렇게 낙담이 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나님께 믿음의 테스트를 받는 거야 큰 문제 아니다. 다만, 부모 때문에 자녀가 손해를 보는 건, 도무지 마음을 쓸어내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깟 일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하며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확율상 발생한 일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선한, 원더풀 플랜이 따로 있는 것일까?


내 감정이야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속상할 뿐이다. 허나 내 이성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논리적인 원인 추적은 무의미하다. 내가 갖춘 조건에 따라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겠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따로 준비해 놓은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허망한 마음은 있는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런 일로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오해말자.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지 말자. 이런 일로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자. 7살 채윤이가 가야 할 유치원은 부모된 우리가 또 기도하며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할아버지와 채윤이가 TV를 보고 있다. "어떻게 됐냐", "안 됐어요. 4대1이었어요". 채윤 왈 "4대1이 뭐야?"...생고구마를 연신 아작거리며 먹고 있는 채윤이... 사랑스러운 내 딸...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당신의 형상을 닮은 자녀... 잘 기르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아이로 양육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5.11.28.

목장에서 부모님들을 위한 기도제목을 나눌 때나,

우리 부모님들 황혼기의 모습을 뵈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이 들어서 자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부부가 둘이 잘 지내는 것'이라고.

젊은 시절부터 부부가 잘 대화하고 서로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연습이 잘 되어 있을 때,

나이가 들어서 가장 같이 있고 싶고 편안한 사람이 배우자가 될테고, 그것만큼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 있겠는가?

부모님들이 두 분 끼리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말이다.


부부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부부일수록 자녀로부터 보상 받기 원하고, 자녀에게 인정받기 원하고, 주말에는 꼭 자녀들(결혼하여 가정을 만든 자녀라 할지라도)과 함께 놀기 원하고...결국 이런 것이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님을 기쁘게 섬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년기 뿐 아니다.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어쩌면 언제 어느 때든 같다. 부모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 유익이 자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부모의 일상이 힘들고 짜증스러우면 그 또한 자녀에게 고스란히 불편함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실 좋은 부모 되기 위해서 대화법을 연습한다든지, 아동의 발달을 공부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는 것은 '매일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길' 그것이 왕도인 것 같다.


김장을 도우러 채윤이 고모가 오셨다. 채윤이 현승이가 고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김장 준비를 하는데 두 녀석 다 고모 옆에 붙어서 파 썰기, 새우젓 다지기 등을 흉내내고 조잘조잘 떠들어 댄다. 옆에서 일을 하면서 소외감도 느껴지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김장을 하거나 힘에 부치는 집안 일을 할 때는 으례 애들한테 더 퉁명스러워지기 일쑤고, 대답 한 번 따뜻하게 못 해주는 엄마다. 아이들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저리 가라고 구박하며 밀어내고 말이다.

고모랑 조잘조잘 거리면서 즐겁게 어른들의 일에 참여하는 것처럼 엄마가 매일 그래주면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을까? 알짱거리다가 할머니한테 한 소리 들을까봐 지레 내가 먼저 '김채윤 저리 가!' 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일상이니.....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을 그래서 어쩌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주 안의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주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행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해진다. 피곤에 절은 몸으로 소금에 절인 배추를 주물러 김장을 할 때라도 마음엔 기쁨이 넘칠 수 있는데......그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을 잃고 사는 날이 허다하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주님 말씀 안에서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사는 일 뿐이다. 그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을 자녀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2005/11/27

채윤아!

끝내 어정쩡하게 굳은 얼굴로 널 유치원 현관으로 밀어 넣고 들어왔다.

널 들여보내고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엄마 자신의 표정을 생각해 보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엄마의 표정을 들여다 보았단다.

무뚝뚝해 보이고, 경직돼 있고,긴장돼 있고.... 이게 너를 대하는 엄마의 요즘 표정이더구나.


'엄마 다림질 하는 동안 스타킹 신고 있어'하는 말에 여전히 빈둥대면서,

'엄마! 어디가 앞이예여? 한 줄 있는데가 앞이예여? 두 줄 있는데여?' 하는 너한테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어. 아침 내내 엄마는 경직돼서 농담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고 너는 언제나 처럼 까불고 능청 떨고, 깐죽거리고...


생각해보면 니 말을 여유있게 농담으로 받아치면서 유치원 갈 준비를 하면 너도 엄마도 행복해질텐데...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발단은 경직된 엄마의 태도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실은, 할머니 보시는 아침 드라마에 빠져서 밥을 못 먹는 널 보면서 이미 엄마는 마음이 단단해졌어. 너를 탓할 일이 아니지. 누구라도 싸우는 소리가 나는 텔레비젼에서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루의 시작을  어른들 싸우는 소리, 너로서는 이해도 할 수 없는 갈등관계를 가지고 울고 불고 소리 지르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하게 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단다.

그러면 여지 없이 엄마는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에 불평을 하게 되고, 또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를 가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 한탄을 하게 된단다. 엄마로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말이다.


오늘 아침 그 스트레스가 결국 여느 때처럼 채윤이 한테 터져버린 것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엄마가 스스로 감정 조절을 못하고 게다가 그 감정을 채윤이한테 폭발해 버리다니...


유치원 가는 길에 마음을 풀고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지만 잘 안됐단다. 그래서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즐겁게 지내' 한 마디 하고 돌아섰다. 텔레비젼을 틀지 않는 게 방법이지 틀어 놓고 보지 말라고 하는 게 방법이 아닌 것처럼, 이미 황폐해진 엄마 마음인데 사랑 어린 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


빨리 분가하도록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언제 될 지 모르는 분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데...오늘 엄마의 숙제란다. 오늘 아침과 같은 상황을 잘 극복해낼 방법을 모르겠어. 예전에 잘 될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방법을 잊어버렸어.


채윤이에게 편지라도 한 장 남기고 출근하고 싶은데....

(이럴 때는 채윤이가 빨리 글을 읽을 수 있게되면 좋겠다 싶구나)

암튼, 채윤이를 위해서도 엄마가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겠구나 싶다. 이렇게 메마를 마음으로야 어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니. 하루 종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살께. 메마른 마음에 풍성한 사랑이 은혜로 부어지기를...저녁 때 만날 때는 아주 여유있고 넉넉하고 밝은 표정으로 채윤이를 안아 주도록 할께.


미안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엄마가...

2005/10/19

채윤이가 지금 현승이 나이쯤 됐을 때(30개월) 처음으로 집을 떠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었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 독차지 하던 사랑을 빼앗긴 채윤이. 엄마로서도 그런 채윤이를 어디에 보내는 것이 새롭게 적응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 때쯤, 다른 클럽에 썼던 글이지요. 요즘도 채윤이와 현승이는 엄마를 놓고 서로 자기 엄마라고 싸우는데... 채윤이로서는 현승이의 등장은 참 당혹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 자기중심적인 30여 개월 짜리 아기가 타의에 의해서 양보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 때는 그런 채윤이가 너무 가엾어서 안타까운 마음 말할 수 없었죠. 스트레스 받고 상처 받아 우는 채윤일 보면 더더욱 마음이 찢어지고요...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채윤이는 나름대로 독립된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겠다는 결벽증도 사실 엄마가 먼저 치유 받아야 할 병이죠.


=================================================================================


처음으로 채윤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면서 적잖이 마음의 동요가 있었습니다.울며 불며 안 간다는 아이를 봉고에 태우고 매정하게 문을 닫고는 '안녕!'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섰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그런 실랑이 끝에 마음이 정말 오락가락 했는데...이걸 계속 보내? 말어? 하지만 또 집에 놔두면 어쩔 것인가? 할아버지 한테 현승이 괴롭힌다고 구박 받는 건 뻔한 일인데...


이래 저래 어떤 선택이든 채윤이의 하루하루는 먹구름 뿐인 것 같았습니다.어린이집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채윤이는 예전의 그 '완전한 사랑'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승이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채윤이는 좋든 싫든 채윤이는 영아기를 벗어나 유아가 되고 있구요. 채윤이가 서러워 우는 시간이 많고 원치 않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러다가 좋은 채윤이 성격 다 버리는 거 아닌가? 하면서요.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결국 채윤이는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9시부터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한 시간 동안 '소화차(어린이집 차) 언제와요? 몇 시에 와요?' 하고 있죠.엄마 아빠가 현승이 목욕을 시키거나 옹알옹알 하는 현승이가 너무 이뻐 정신없이 빠져있는 동안에도 저기 한 구석탱이에 앉아서 혼자 블럭놀이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가슴이 싸~해 지면서 채윤이가 한없이 가엾죠. '에이그 자식, 현승이 없으면 아직도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 엄마 아빠 사랑 독점하고 있을텐에...'


채윤이에게 부모로서 더 이상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분명 채윤이가 원치 않는 상황에 자꾸만 던져지고 스트레스 받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채윤이의 몫이 분명히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마음에 아주 작으나마 쓴뿌리가 생긴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부모 되려 하여도 최선의 환경을 줄 뿐이지 천국 같은 환경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나머지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몫이겠죠.그렇게 생각하니 최선을 다하되 너무 결벽증을 가지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한결 마음이 편해져요. 좋은 부모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 이상은 그 분의 손에 의탁하는 것.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되뇌 봅니다.


200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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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백이란 멋진 디자인이 있어야 그 의미가 사는 법! 그런 면에서 정신실 씨의 교육법은

정말 탁월하다! (여보, 나중에 당신 글 모아서 책 한번 내봐. 정말이야!!!) 놀이와 교육을

적절하게 잘 디자인해주고 슬쩍 빠져서 아이들이 결국 상상력으로 놀이를 마무리하도록 하는

당신의 능력은 볼 때마다 감탄이라니까...


2   

자녀 교육도 부부가 좀 죽이 맞아야 될 텐데, 생각보다 나는 너무 무개념, 무원칙, 불성실,

수동적인 것 같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이들의 놀이와 능력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걱정하곤 한다. 게다가 아내가 저러다가 아이들 교육 시기를 놓쳐버리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 섞인 생각도 하곤 한다.


3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강요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공부하고,

대화하고, 기도해야 겠다.

200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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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었다. 유아교육과니까 당연히 유치원으로 나갔다. 교생실습 막바지에 가면 교생 혼자서 일일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을 하는 일이 있다. 물론 이 때 채점이 되고 교생실습의 학점을 좌지우지 하게된다.

암튼, 내가 그 all day 수업을 하는 날에 담당 교수님께서 지도 방문을 오셨다. 그 시간은 실내 활동을 모두 마치고 바깥놀이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엄마를 만나듯 반가운 맘으로 교수님을 뵙고는 '이제 수업 다 끝났어요. 바깥놀이만 하면 하교예요' 했더니...'수업이 끝나다니? 바깥놀이는 수업이 아닌가?' 하셨었다.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뭔가를 해 줄 때만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내 원시적인 교육관이 깨달아진 날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때의 경험인지....요즘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나는 음악이 없는 순간, 그 순간의 소중한 치료적 의미를 깨달아간다. 열심히 북을 두드리고 나서 오는 조용한 침묵의 시간을 채우는 아이들의 행동 하나. 연주하는 시간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다.


아이들에게 여백을 주기.


채윤이 유치원 친구들은 이미 거의 초등학교 수준의 과외들을 하는 것 같다. 한글, 영어, 발레, 수학, 미술, 피아노, 영어 뮤지컬 놀이......뺀뺀이 놀면서 글자 한 자 제대로 못 쓰는 애는 채윤이 밖에 없는 것 같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도 좀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친구네 집에가서 미술 전공한 친구 엄마랑 미술놀이 하는 것, 것두 미술은 한 30분 하고 네 시간 이상을 친구랑 놀다 오는 것이 채윤이 과외의 전부다. 최근 조금은 불안했었다. 소신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 못시키는 것 아닐까?하는 마음이 스스로 들 정도였다.


최근에 읽고 있는 <잃어버린 교육, 용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여백을 줘야한다. 쉽게 말해서 아이들 스스로 시간을 채우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열심히 놀 수 있는 여백의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유치원 교사를 할 때부터 내게 변하지 않는 소신 하나는 '잘 노는 아이가 잘 큰다' 이것이다. 잘 놀려면 잘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공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 채윤이랑 현승이가 둘이서 미친듯이 놀아대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최대한 아이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방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충분히 상상하고, 충분히 환경을 조정하고, 충분히 에너지를 쏟아내라고. 그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여섯 살, 세 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정신실이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가서 정만 신기하다는 듯이 아이들이 널어 놓은 난장판을 보면서 '와~아, 이게 뭐야?' 하고 경이를 표해주는 정도. 그 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채윤이가 어리고 혼자였을 때는 사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놀아줬었지만 지금은 두 녀석 노는 것에 마당만 잘 깔아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 시간을 통해서 현승이는 말을 배우고, 의사소통의 방식들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 채윤이도 마찬가지겠지.


두 녀석이 싸우는 일이 갈수록 많아진다. 한 놈이 다른 놈을 때리지 않은 이상, 나는 싸움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싸움에 여백을 주기 위해서다. 그 여백을 통해서 싸움을 싸우고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현승이 같은 경우 죽자 사자 울면서 엄마의 도움을 구해도 '니가 누나한테 한 번 말해봐. 가서 친절하게 말해봐'하는 정도로 멘트를 해주고는 일부러 딴청을 해본다. 물론 빨리 참견을 해서 상황을 정리하고픈 충동이 없는 것 아니다. 그런 때는 나와의 싸움이다. 최대한 개입하고 간섭하지 않기. 참자.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하면서 최대한의 싸울 시간을 준다.


아이들이 넘어졌거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할아버지와 싸워서(?) 울 때도 내가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으면서 여백을 확보해 보려한다. 역시 매 번 잘 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특히나 S와 F 성향이 강해서 개입하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아이들 문제가 아니더라도 훈련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훈련이 거듭될수록 아이들이 커지는 만큼 나도 함께 자라갈 것이라는 기대와 기쁨이 있다.

2005.9.5.

내가 과연 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제일은 운동이다.

도대체 유전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내 동생은 운동을 전공하려고 할 만큼 운동을 잘하고 좋아한다.

지금도 30대에 노익장을 과시하면 젊은 애들과 몇 시간 씩 농구를 하곤 한다는데...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을 못해도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

100M 21초. 체력장때 카운트 하는 선생님이 출발하기 전에 초시계를 먼저 눌러줘서 18초. 이게 신기록이다.


아~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을 생각하면.....

열등감의 매트에서 뒹굴고, 열등감의 공을 던지고 놓치고, 열등감의 철봉에 1초 매달렸다 떨어지고...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예전에 청년부에서 탁구장 같은델 가면 우와~ 다들 놀랜다. 탁구를 치는 것이냐? 테니스를 치는 것이냐?

라켓에 공이 도저히 맞지를 않는다. 마음같이 안 되는 내 몸이 밉고 부끄러웠다. 운동이라 이름 붙은 건 뭘해도 그러했다.


결혼하고 남편하고 베드민턴을 간간이 치는데 예전처럼 그렇게 삣나가진 않는 것이 신기하여 열심히 쳐봤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보다 못하는 사람과 스포츠를 해 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우후후후후....


어머니가 다니시던 수영장이 한 달에 36,000원으로 싸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4월부터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 역시 시도해 보지 않았던 운동은 아니다. 결혼 전에 몇 번 시도를 했어도 남들 다 진도 평영 접영하고 있는데

끝끝내 자유영 호흡이 안 돼서 쪽팔려서 그만두곤 했었다.

채윤이 임신하고 임산부 수영교실을 다니면서 그나마 어설프게 자유영 호흡을 배웠다. 부력 때문에 임산부는 물에 더 잘 뜬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잇점이 있어서 그 넘기 어려운 자유영 호흡의 산을 넘었다.


역시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지만 이번 수영을 하면서는 내 마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처음에 수영을 하러 갔는데 역시나 뭐든 배우는 대로 뒤쳐지는 내가 보였다.

쪽팔렸다. 어느 날 뭐가 그렇게 쪽팔린가 생각을 했더니 '저 사람들이 내 우스운 폼을 보고 얼마나 비웃을까?'

하는 생각에 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내가 이상한 폼으로 수영하는 사람들 보고 '폼 참 이상하네' 라고 생각은 할지언정,

그것으로 사람을 비웃고 그러지는 않았다.

아! 자꾸만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비교' 때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날이 내 운동의 역사에 획을 긋게 되었다.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지 않기. 코치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자꾸 생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해보기.


아~ 이것이 역사를 만들어냈다.

수영을 잘 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더 잘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예전의 나보다는 더 잘 하게 되었다.

비결은 꾸준히 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연습하는데 있었다.

가끔 이상한 폼을 고치라고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 도움이 된다. 그걸 생각하며 연습하면 고쳐지는 것이다.


마음도 그러리라.

예수님 닮지 않아서 힘든 이 마음. 뭐가 옳은 것인지 알면서 도저히 나로서는 안 되는 그런 마음의 경지가 있다.

몸을 단련하듯 자꾸 생각하며 자꾸 연습하면 마음도 자라겠구나. 몸이 단련되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옆을 자꾸 보면서 '내가 좀 낫다고, 나는 너무 못하다고' 비교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안된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순간이

쌓이면 마음도 단련되겠구나.


올 한 해는 수영을 배우면서 몸이 많이 건강해지고,

배우는 즐거움도 알게 되고,
40년(으악! 40년!!!) 이 가깝게 나를 따라다니던 큰 열등감 덩어리도 하나 떼어낸 것 같다.


감사, 감사, 감사다.

200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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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피스를 없애 버렸다.

연습 때 악보를 나눠주면 일단 연습을 하고 집으로 악보를 가져가서는 일주일 동안 가사를 외워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일 예배 때는 악보를 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가사를 못 외운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서 그 주에 성가대에 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보통 위험부담이 큰 모험이 아니다.

왜냐면 최악의 경우 한 명도 안 외워올 수도 있는 거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찬양을 하다보니 애들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사를 잘 이해하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애들 말로 잘 풀어서 설명도 하곤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가사고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예 그냥 가사를 외우게 시키자'였다.

'집에 가서 묵상해 와라' 이것처럼 애들한테 막연한 숙제가 있겠나 싶어서 '외워와라' 했었다.


처음에 그런 의도로 시작을 했지만.

이것은 애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시험이었다.

믿거라 하는 녀석들이 가사 안 외워 와가지고 저~쪽 회중석에 앉아서 성가대 쪽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때..

'아~ 저 녀석 빠지면 소리 낼 애가 없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오금이 저리고,

'저 녀석만 구제할까?'하는 갈등도 잠시 하게 되고 말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철저한 훈련의 기회가 되었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찬양'을 연습하기.


최악의 경우에 두 명인가 외워왔던 적이 있다.

애들은 내심 '이 정도 됐으면 선생님이 우리를 다 구제하겠다. 연습하면서 외우라고 하겠지'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두 명만 데리고 주일 찬양을 드렸다.

정말 그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떨리고,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란...

그러나, 그런 기회는 모든 성가대 아이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남기게 되었다.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찬양할 수 없다.

단지 노래를 잘 하거나, 연습할 때 빨리 외울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해도 최소한의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는 찬양하는 것이

옳지 않다.


물론, 그거 안 외우고 찬양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그 찬양 안 받으신다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또 지금 샬롬 찬양대 지휘를 하면서 '연습 안 하신 분들 서지 마세요' 이러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휘자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연습 빠졌어요. 제가 이렇게 서도 되는지 원...' 하시면

'예~ 물론이죠' 한다.


생각해보면, 애들이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했던 좀 고약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 훈련이 내게 오히려 약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샬롬찬양대에서 음악적으로는 물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시는 집사님 한 분이 중국으로 가셔서 빈 자리가 생겼다.

또, 솔리스트 이시면서 지휘자의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시는 집사님 부부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하셔서 또 자리가 비었다.

마음적으로 많이 의지가 되는 분들이라서 한 두 주 연습시간에 힘이 들고 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어린이 성가대에서 두 명 데리고 지휘하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다. 성가대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것이다.

몇 분의 결원으로
연습시간이 더 힘겨워지고, 어느 파트의 소리가 더 거칠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찬양 그 자체를 어찌하지 못한다.


찬양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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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방학에 남편이 수요예배 찬양인도를 할 때 옆에 서서 싱어로 도왔었다.

여느 때 처럼 나는 찬양만 시작하면 목이 메여오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어떤 때는 연습 때부터 눈물이 나와서 주체하시 못하곤 했었다.


그 때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찬양 인도를 할 때는 가사를 끝까지 묵상하면 안 돼. 가사에 완전히 몰입하면 눈물이 나와서 찬양이 안 돼'


항상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만 마음을 다잡아 먹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주일 아침예배 시간에도 마찬가지고 목자 큰 모임이나 이런 때 잠깐 참양을 할 때도 그렇다.

이런 경우의 눈물은 민망스럽기는 하지만 대충 옆 사람 눈치 안 채게 수습하면 된다.


문제는 찬양인도를 할 때나 지휘를 할 때가 문제다.

지휘를 하면서 나에게 있어서 제일 힘든 건 눈물을 틀어 막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눈물을 보여도 찬양대 여집사님들에게 파급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일단 너무 쪽팔린다.^^;;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찬양을 시하는데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하는 부분을 부르다보면 일주일 동안 또 다시 더러워진 나의 일상과 영혼으로

눈물이 쏟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찬양을 하다가 기도송 지휘를 하러 눈이 뻘개져 가지고 나가면....

아~ 정말....죽갔다.


찬양 인도자 중에서, 그리고 가끔은 설교자 중에서 내가 젤 견딜 수 없는 스탈이

감동받기를, 은혜 받기를 강요하는 분들이다.

분위기를 조장해서 분위기로 결국 사람을 울게 만들고 결국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것 말이다.

아마도 내가 찬양인도를 할 때 눈물로 인해서 가지는 큰 부담 중에 하나는 그거일 지도 모르겠다.

인도자의 눈물이 회중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쳐서 '가사를 묵상해서 스스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따라서 우는 눈물이 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찬양  그 자체 아닌 다른 것으로 분위기만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찬양받으실 하나님과 찬양 드리는 사람 사이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그렇다고 찬양하는 시간에 내 눈에 눈물이 마르는 걸 원하진 않는다.

쪽팔리긴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한다.


다만, 찬양인도와 지휘를 해야하는 그 자리에서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200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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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강의에서 들은 얘기를 나에게 다시 전해 준 말이다.


'정말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나쁜 의도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 알고 보면 젤 나쁘고 조심해야 할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선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 선한 행동의 동기가 나쁘다면, 아니 불순하다면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면서,

관계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아무래도 제일 두려운 일은 이것이다.


불순한 동기로 선한행동을 하는 것.


어려운 점은 '불순한 동기'라는 것이 온전히 불순한 경우는 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목적으로 이런 저런 착한 일을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겠노라고 열심히 찬양 연습을 하여 주일 예배 때마다 찬양을 드린다.

그런데,

불순한 동기는 항상 그와 같은 고상한 동기 뒤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조차도 속는 것. 나조차도 내가 표방하는 고상한 동기에 속아 넘어 간다는 것!



 

책의 제목 만큼이나 혁명적인 책이다.

이 책을 마음을 열어 읽기만 한다면 말이다.


왜 사람들이 믿음을 말하면서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향해서 비수를 꽂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지?

(사람들이 아니라 '왜 내가'라고 고치는 것이 정확하겠다)


또 왜 그렇게 자주 사람들을 향해 비난과 원망의 마음을 품게 되는 지,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유추가 필요했다.


최근에 나는 믿고 있던, 나름대로 어떤 부분 존경하기도 한다는 분의 몇 마디 말에 소위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잠깐 동안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실은 그러면서 이 책을 다시 들춰 보게 된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할 때 나는 이미 죄를 짓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 준 줄도 모르는데 나는 그 사람을 원망했다가 미워했다가 억울해서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것이다.

정작 죄를 짓고 있는 건 나다.

그리고,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얘기한 사안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맞다. 나는 상처받았다고 질퍽거리고 있는 사이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는 것보다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의식 저 안 쪽에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혁명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다.

이런 식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충격받는 마음의 혁명을 매일매일이라고 일어나야 한다.


그것 없이 내 인생은 맨날 상처받았다는 어리석은 말로 내 죄성을 덮으며 덮으며 사는 바보 같은 나날들일 것이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애타는 기도로 마음의 단일성,

내 마음의 순결함을 구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셨던 주님처럼, 그렇게 순결한 마음 갖기를.....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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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현승이를 갖고 입덧을 심하게 할 때였다.

채윤이 때는 파트타이머였어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집에서 쉴 수가 있었는데,

현승이 때는 하남시에서 신대방동 까지 아침 저녁 출퇴근을 해야 했었다.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 남편이 아침에 차로 태워다 주면 저녁에는 내가 운전해서 퇴근하곤 했었다.

먹지 못하고,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 지를 알 수 없는 때였다.

어느 날 저녁.

혼자 막히는 88 위에서 '이 놈의 막히는 길'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한 채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찬송이 있었다. 도대체 이 찬송을 불러본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그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이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울고...차 안에서 혼자 부흥회를 했었다.

입덧을 시작하면서 새 생명에 대한 소망과 기쁨은 커녕 어느 새 우울과 허무에 빠져 헤매던,

주님을 찾지도 않았던 몇 주를 회개하면서 마음이 회복된 경험이 있다.


2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가 오는 날 치료하러 나가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다.

불과 2년 전, 풀타임 그만두고 집에서 느긋하게 오전을 보내고 출근하던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데...그 때 그 기쁨과 행복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빗 속에 무거운 키보드를 옮기고 악기를 옮길 생각을 하면 머리 끝까지 신경질과 우울로 뒤범벅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음악치료? 하기도 싫고 재미도 없어. 수영장에서 만나는 아줌마들처럼 수영 마치면 같이 몰려 다니며 수다떨고 커피 마시고 그러고 싶어. 아~ 인생에 낙이 없어'


3

알지도 못하는 대학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포천에 있는 어느 대학 유아교육과 교순데...다음 학기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얘기다. 것두 한 번 가서는 세 클래스 강의를 하게 되니 내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제안이다.

흔쾌히 승낙하니 다음 날 저녁까지 교재를 좀 정해서 알려달란다. 얼른 다음 학기 스케쥴 조정부터 했다. 그러잖아도 그만두고 싶었던 기관에 전화해서 목에 힘 주고 '다음 학기부터 강의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하고...

다음 날, 교보에 가서 교재로 쓸 책, 부교재로 쓸 책을 부푼 마음으로 사가지고 와서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하는 말 '미안하게 됐네. 우리 학교 다른 교수가 그 과목을 하겠다네. 그러면 어쩔 수 없거든...내가 다음에 강의 기회가 있으면 제일 먼저 연락할께. 미안해요'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이 나이에 이러구 다니며 일을 해야하나 싶은데...기름을 붓는 일이었다. 에이~씨, 공부를 더 해야하나? 40대가 돼서도 이러고 다닐 순 없는데...

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4

7월 내내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정신실의 영혼은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점점 피폐해가고, 그러면서 마음의 독은 쌓이고 쌓여...

7월 말 쯤 되었을 때는.

독이 오를대로 오른 한 마리 짐승이 되어 '누구든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확 물어 버린다'

하는 수준이 되었었다.

회복해보고자 말씀도 보고 기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역부족임을 알았다. 기도하는 제스춰를 취했을 뿐 주님께 나아가지 않았으니까...가끔 말씀이 마음을 울리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5.

지난 주 아이들과 기도제목을 얘기하면서 '엄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게' 해달라고 기도제목을 말했다. 그렇다. 마음이 다시 기경되는 수 밖에 없었다. 단지 환경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어느 새 굳을대로 굳어 있는데.... 아이들도 남편도 '엄마 무서워' 하면서 눈치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은 '얘들아! 엄마 무섭지? 나도 니네 엄마 무서워'했다.


6.

남편이 수요찬양 인도를 하는데 싱어를 해달라고 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수요찬양에 선 본다. 첫 찬양이 다름아닌 '여러 해 동안 주 떠나.....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였다.

이 찬양이 일순간 마음을 깨뜨렸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결국, 이어지는 찬양으로 마음이 만져졌고,

이어지는 기도회 시간에는 오랫만에 주님의 이름을 깊은 영혼의 울림으로 부르며 죄를 고백할 수 있었다.


채윤이에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했다.

"채윤아! 하나님이 우리 기도 들어주셨어. 엄마 마음이 드디어 말랑말랑해졌어. 채윤이가 기도해주니까 금방 응답이 되네...."


이렇게 탕녀는 다시 한 번 주께 돌아왔다.


200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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