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값이 어마어마하다. 얼마 전 남편 퇴근길에 파를 사 오라 부탁하고 영수증을 보니 육천 원이었던가? 이 남자 또, 또, 또! 계란을 사 오라 하면 유정란을 사 오고, 야채를 부탁하면 덥석 유기농 코너에서 들고 와서 내가 장보는 가격의 몇 배를 탕진하고 온다. 또, 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파 값이 정말 그런 것! 와, 후달린다. 그래서 파테크가 유행이란다. 집에서 파 길러 먹기. 어! 우리 엄마, 시어머니 두 분 다 원조 파테크er인데. 큰 화분에 파를 심어 놓고 그때그때 잘라서 쓰시던 모습 눈에 선하다. 익숙하긴 한데, 나는 못해.

 

대파와 마늘은 정말 많이 쓰는 양념이다. 안 살 수는 거라 상대적으로 싼 쪽파를 사봤다. 나름의 파테크다. 양이 많아서 여기저기 막 뿌리게 된다. 현승이 먹는 스테이크에 파를 듬뿍 올리고 소스 조금 뿌려 구웠다. 아, 이거 괜찮다! 맛있다고 엄지척 하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길래, 사정 얘길 해줬다. 딱 알아듣고 한 술 더 떴다.

 

아아, 그거 알지. 어떤 식재료가 저녁에 먹는 음식에도 듬뿍 들어가고, 아침에 먹는 전혀 다른 음식에 또 들어가고, 모양만 살짝 바꾸면서 계속 등장할 때가 있지. 아, 지금 엄마한테 물량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해. 당분간 쪽파가 많이 등장하겠네.

 

요리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고기에만 올인하는 것 같아서 민들레 나물 무친 거랑, 오이 몇 조각이라도 먹이려고 어렸을 적처럼 한 접시에 죄 담아주었다. 구운 마늘에 발사믹 크림을 뿌리는 척, 접시 중앙에 하트 그리려고 폼 딱 잡고 있는데, "엄마, 하지 마! 하트 그릴려고 하지?" 한다. 손에 힘이 풀려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남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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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 본 김에 콩나물밥 함. 달래, 냉이, 쑥... 이런 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산책하다 만나는 쑥이나 냉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게 그렇게 아깝다. 마트에서 만나면 일단은 카트에 담고 본다. 초록 잎이 있는 '달래'와 흰색 대가리만 있는 '은달래'가 나란히 있었다. 차이는 모르겠지만, 비싼 놈이 뭔가 낫겠지 싶어 천 원 더 비싼 은달래를 골랐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예감대로 은달래는 노지 달래라 향이 더 진하단다. 콩나물밥 해서 비벼 먹고, 도토리묵에 끼얹어 먹고, 찐 양배추 찍어 먹고 있다.

 

현승이가 맛있다고 자꾸 달랜다. 점심에도 콩나물밥 달래, 저녁에도 콩나물밥 달래. 자꾸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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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은 곧 나의 나다움의 산물, 또는 근거이며 동시에 외로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들과 이런 책을 얘기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과 저런 책을 공감할 수 있는데.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이 없다. 이건 '내 맘 같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어느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그대로 나의 인생 역정이다. 신앙 역정이기도 하고. 눈물 없이 떠올릴 수 없는 어느 시기 어떤 독서도 있다. 진짜로. 주변 사람 아무도 모르는 책을 금서인 양, 숨어 읽던 시절도 있었다. 누가 친절히 소개한 책이면, 길이면 그렇게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더듬어 만난 낯선 저자들이 내 영혼을 뒤흔드는데, 어디다 말할 곳이 있어야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그때의 나처럼 무엇인가 찾는 이들을 만나 함께 읽고 쓰는 오늘이다. 연구소의 상처 입은 입은 치유자 과정 2기의 필독서를 선정하며 심장이 벌렁거린다.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로어를, 아빌라의 테레사와 제랄드 메이를,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들이 있다니! 

(아래는 연구소 SNS에 올린 글이다.)

 


2기 상처 입은 치유자 과정이 곧 시작됩니다.

새 술만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 역시 새집에 모셔야겠습니다. 1기 때와 같은 커리큘럼이지만 담기는 것은 새로워질 예감입니다. 함께 하게 될 2기 수강자 대부분이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 또는 선교 현장에 계시면서 특유의 영성적 목마름을 갖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제도권 교회 내에서 내적 여정의 영성을 일구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2기 여정은 보다 깊은 기독교 영성에 천착해 볼 예정입니다. 1기 때 함께 읽었던 필독서가 딱 알맞았다는 자체 평가를 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2기의 필요는 새로운 교재를 고민하게 하였습니다. 2기 만의 필독서 네 권이 선정되었습니다.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으로 복음주의 신학 안에서 내적 변화에 대해 정리해 볼 것이고요. 내적 여정 세미나에서 자주 언급되는 아빌라의 테레사 <영혼의 성>을 통해 중세 신비주의 영성에 에니어그램을 비춰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영성가 제랄드 메이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두 분의 영성을 오늘의 언어로 안내해 줍니다. 남성 목사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남성과 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쓴 남성성과 영성에 관한 책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Wild Man to Wise Man)>입니다.

필독서를 미리 공개하는 것은 2기 수강자들께 이미 시작된 우리의 여정을 기대와 기도로 기다려 주십사 하는 것이고요. 한 자리 정도 비어 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현재 인원으로 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2기 만의 이러한 여정에 마음이 움직이시는 분을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 ‘상처 입은 치유자 :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

✔ 2020년 4월8일(목) ~ 11월25(목) 오후1시~4시
11월 25일(목) ~ 26일(금) 1박2일 마침 피정
✔ 인원 : 5 ~ 7명
✔ 장소 : 미사 나음터(5호선 미사역 5분, 주차 가능)
✔ 대상 : 내적 여정 1단계부터 영성과정까지 수강하신 분
(지도자 과정 중에 전 과정 재수강 필수)
✔ 문의, 접수 : 전화로만 받습니다. (010-7242-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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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두 개의 집단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둘 모두 취소되어...

룰루랄라!

원고 마감 주간이기도 한데,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시간 부자, 에너지 부자가 되었다.

 

 

쓰던 원고 잠시 덮고 탄천으로 나갔다. 

그새 봄이 와있었구나!

 

 

오고 가고, 가고 오는 계절의 어느 때인들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있더냐만은.

이 계절의 움트는 생명력은 독보적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깨우는 계절이다.

 

 

발길 닫는 어느 곳에서든 마주하는 연둣빛, 너 참 오랜만이다! 싶었더니.

작년 봄이 없다. 4월까지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 생각만 난다. 작년엔 봄이 없었다. 

이 동네엔 이질적인 여러 산책길이 공존한다.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탄천이 있고, 꽤나 잘 조성된 아파트 산책길도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가면 시골길 느낌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얕은 산을 탈 수도 있다. 중요한 것! 몇 번 다니며 익숙해지자 새들의 아고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숲 사이, 시골길 덤불 아래에 상시로 열리는 새들의 토론장이 있다. 그곳엔 늘 그 친구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휴대폰 들고 영상 촬영 해봐야 새 한 마리 제대로 담을 수 없지만. 아, 실은 이게 얘네들의 매력이다. 찰나의 만남만 허락하는 친구. 

 

 

봄의 간지럽힘을 견딜 수 없어서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엄마가 없는 두번 째 봄,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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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게, 한 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말이지. 한 나절 사이 마음은 수십 번 바뀌고 뒤집어진다. 이른 아침의 마음은 무거웠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이 단지 일인가? 일은 항상 사람이지!)이 잘 되려나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게가 줄어들고 걱정은 기도로 바뀌었다. 포스트잇에 몇 마디 끄적여 노트북에 붙이고 기도했다. 걱정이 기도로 바뀐 것이지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의 실행을 위해 단톡에서 말을 주고받다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에 맞장구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오, 마음의 날씨가 급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은 생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원고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대충 때워야지 싶었는데. 에너지가 충천하니 식욕 또한 상승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김치소 같은 걸 다져서 만든 김치전이 아니라 배추전처럼 통으로 깔아서 부치는 통김치전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지! 혼자라도, 혼자라서 더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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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 알겠다. 함께 먹고 자고, 몸으로 부대끼던 당신의 제자들 앞에서 무력하게 끌려가신 이유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유를 알겠다.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하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었다. 선생님의 죽음을 수치스럽게 통과한 베드로가 그 새벽 자기혐오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불을 피우고 아침을 준비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생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그 수치스러운 지점을 짚어내시더니 용서 너머 부탁을 하시는 선생님. 그리고 나서 떠나신 선생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부재 속에서 베드로는 비로소 가르침을 새록새록 알아듣고 그분의 못다한 삶을 대신 살 수 있게 되었다. 있다 없어진 몸, 그 물성이 사라진 공간은 얼마나 큰지! 있다 없어진 그 빈자리가 드러내는 존재는 얼마나 또렷한지. 그 가르침은 또한 얼마나 명료한지. 2021년 사순기간에 나는 몸과 영혼을 새롭게 알아듣는다. 

 

사라짐

 

바쁠 때는 한 달 정도는 엄마랑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한 달이 뭐야. 김포 현대프라임빌 1층 그 방 그 침대에 엄마가 여전히 누워 졸고, 가끔 일어나 기도하고, 다시 졸고 있을 거라면 1년 동안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지냈다. 전화가 좀 뜸하면 바로 태클 들어오는 시어머니는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는 늙어서 섭섭해 하지도 않는 엄마다. 괜히 허하고 마음 둘 곳 없어 전화하면 "얼라, 우리 딸이네. 바쁜디 전화를 혔네." 하는 순진이 무궁한 엄마. 연세가 드셔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이틀 사흘의 시간 개념이 모호해진 것도 무심한 딸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크게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엄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고,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었을까. 

 

존재함

 

엄마와 함께 한 하늘 아래 살던 52년인데. 그냥 공기처럼 존재하던, 아니 공기처럼은 아니다. 가끔 좋고, 자주 성가신 그런 존재니까 공기나 하늘 같은 존재는 아니다. 어쨌든 엄마는 52년 동안 있었던 엄마다. 없는 엄마와 1년을 보냈는데, 52년보다 더 많이 엄마 생각하며 지냈다. 없어진 엄마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없어져서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도 몰라. "있을 때 잘할 걸." 이런 말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엄마가 다시 살아와도 잘할 자신은 없다. 예수님이 딱 33년, 그것도 30년은 숨소리도 안 내고 계시다 3년 반짝하고 떠나셨다. 그래서 기독교가 잘 되는 거다. 몸을 너머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은 거다. 그분과 함께 했던 제자들이 알아들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분께 배운 걸 전했고, 그러다 그분처럼 조롱당하고 버려지고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다. 나도 엄마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끼며 몸 너머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무덤

 

엄마 무덤은 가난하다. 시립추모공원 안에 있고, 딱 한 줌으로 남은 몸을 담은 한 주먹의 땅을 차지한다. 엄마 떠난 지 1년이 된 날에 엄마 무덤에 갔다. 주말에 이미 추도예배를 드렸다. 2월부터 내내 동생과 통화하며 울고불고했던 터라 '당일'을 기념하는 것도 벌쭘하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3월 11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엄마 무덤에 다녀왔다. 혼.자. 라는 말에 왜 이리 에너지가 들끓는지. 남편이든 동생이든 함께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혼자 가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 같이 갈까?" 하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혼자 가야 했다. 실컷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하얀 꽃

 

엄마와 나 사이, 우리 둘만의 끈이 있다. 평생 엄마와 사이가 더 좋았던 건 동생이었고,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착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여기긴 했지만. 동생이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이 나보다 깊고, 내가 넘볼 수 없는 동생과 엄마 사이 끈끈함이 있지만... 나와 엄마 사이 그 무엇이 있다. 엄마의 초라한 무덤가에 가만 혼자 앉아 있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나와 엄마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내 몸과 영혼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엄마 떠난 이후로 이렇듯 삶이 텅 빈 느낌인 것은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라서, 내 삶이 엄마의 94년 삶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엄마의 삶 그 이상을 살지 못할 것 같다. 엄마 만큼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생, 아니 한때 치우고 싶지만 치울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끄러운 존재였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 45세 쯤 되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엄마에 대한 부끄러움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 엄마는 걸림돌이 아니라 내 인생 디딤돌이었다는 것. "엄마, 내가 엄마야.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잘 살게. 말끝마다 예수님을 달고 살았지? 말만 그렇게 하면서 삶은 그렇지 못하다고 내가 무시하고 조롱도 많이 했어. 엄마 정말 무시 당하기 딱 좋은, 푼수 같은 사람이야. 그래도 착한 마음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생을 감사하며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어. 엄마처럼 살래.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처럼 있는 그대로, 분수를 따라 살래. 엄마처럼." 

 

엄마 돌아가시고 익히 알던 '영혼'의 존재를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느낌을 믿기로 했다. 거부하지 않고 순간순간 감동하기로 했다. 몸과 말, 말과 행동, 행동과 생각 너머 사람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순간순간 빛나는지 더 적극적으로 발견하기로 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말씀처럼 "영혼이 지니고 있는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 위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건 엄마가 남긴 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작년 2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엄마를 걸어두고 "빛나는 영혼"이란 상태 메시지를 적어 두었었다. 아, 그때도 알고 있었다. 망가진 몸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돋보이는 엄마의 영혼을. 

 

작년 장례식날엔 그렇게 추웠는데. 비석을 하러 갔던 날도 차겁고 거센 바람에 머리가 쪼여 두통이 올 정도였다. 추모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쑥이며 냉이가 군데군데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날은 따뜻하고 메마른 잔디 사이 손톱만 한 초록이들은 보잘것 없이 예뻤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볼펜심 정도나 되는 하얀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었다. 냉이 비슷한데, 이름을 알 수 없다. 우리 엄마 무덤가의 하얀 꽃. 이름 없는 하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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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1.03.15 09:03 신고

    연구소 카페에서 아침마다 나누는 헨리 나우웬의 묵상에서 오늘 분량의 글이 이렇다. 헨리 신부님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남다른 아픔,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묵상 글이 마치 내 이 글에 답해주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연약함과 단점을 알고 계셨습니다. 깊은 기도로 사신 어머니의 긴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하심뿐 아니라 어머니의 연약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애로우심뿐 아니라 어머니의 두려움을, 하나님의 은혜뿐 아니라 어머니의 죄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그토록 괴로운 사건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일생에 걸친 어머니와 하나님의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믿음이 됩니다.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 주는 좁은 문입니다. "

 

 

연구소 지도자 과정을 1박 2일 마침 피정과 함께 마쳤다. 작년 11월 말의 계획이 방역 상황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모두 하루 이틀 전에 무증상자 검사를 받고 코로나 바이러스 음성 확인을 받고 모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번거로움과 불편함조차 기도라 여기며 실행했다. 딱 일주일 전 주말의 일이다. 그러고는 무기력하게 한 주를 보냈다. 안 자던 낮잠까지 자면서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이었다. 약간의 우울감까지 있어서 몸과 마음이 바닥에 딱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연구소 단톡에 마음을 나누다 보니 괜한 무기력과 우울이 아니었다. 지도자 과정 1년을 위해서 전력질주 했던 것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고 나서는 운동장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못 하는 시간 같은 것이었다. 집중하여 다 쏟아붓고 숨을 고르는 시간. 오늘 아침에야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도자 과정 1년을 1박 2일 여정에 담아 나름대로 진한 시간을 보냈다. 본질을 생각하는 의미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재미와 즐거움 역시 포기하지 않으려 돈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것, 지금 하는 행위 그것 외에 목적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맞다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연구소 2년은 공동체, 성장하는 공동체, 여성 공동체 가능성의 실험이다. 연구원 다섯 명은 5벤저스다, 어벤저스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제의 생각이 헌 것이 되는 게 내 장점이자 병인데. 그 새로운 생각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이 네 명의 연구원이다. 연구소와 연결된 사람들을 물질이든 영적으로든 꼭 필요한 방법으로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디어가 샘솟고, 아이디어는 금세 프로그램이 되고 작품이 된다. 1박 2일 피정은 그 결정체였다. 그래서 누린 순간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풀어낼 수 없다. 그 순간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충분히 누린 것으로 족하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앤 윌슨 섀프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이름 붙이기를 '중독 사회'라 하였다. 개별 알코올 중독자나 여타 중독 행위자가 드러내는 과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다는 뜻이다. 지금 이 시스템 속에서 권력이나 영향력이 주로 (백인)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 '백인 남성 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배워왔고, 동참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규칙과 답을 정하는 더 높은 힘과 권력이 있다.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것은 가능하며 백인 남성 시스템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신화가 전제된다. 모든 중독이 동반 의존자라는 가동력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백인 남성 시스템도 '반동 여성 시스템'과 함께 간다. 앤의 제시하는 대안은 백인 남성 - 반동 여성이 아닌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라는 제3의 길이다. 답이 있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자가 있으며, 통제가 가능한 개인과 사회가 아닌 '과정'을 사는 개인과 사회이다.

 

처음 책으로 읽으면서 아하, 참 좋구나! 했지만, 구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소와 지도자 과정 여정 속에서 가능성을 보게된 것이다. 백인 남성 시스템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을 '신생 여성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저 '전혀 새로운 접근'이라고 읽는다. 주류가 되지 못한 여성적인 것, 여성적인 방식 말이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정통과 이단, 나와 너를 가르고, 잘하고 못함을 서열화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니 얼마나 생소한가. 생소하여 설명 또한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경험한 것만은 분명하다.

 

역설적이게도 가능성 만큼이나 불가능성도 체감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만 믿기 위해서도 최소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마주한다. 답을 정하는 사람이 있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통제 가능한 방식은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아니 그냥 백인 남성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기 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나님 형상을 담은 나, 이미 수용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지도자 과정은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성 과정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자기 치유와 성장 여정을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시작했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즉 여정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갈수록 새롭게 체험한다. 메이크업 끝낸 얼굴이 아니라 시작도 하기 전의 맨 얼굴을, 짝짝이 눈썹이 조화로와지는 것과 생기 없던 피부가 물광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과정' 말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 위에 또 새로운 상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시작할 사람이 누구랴.  

 

 

 

같은 재료로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내 마음에 심은 단 하나의 씨앗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고, 맞고, 선하고, 아름답다. 여섯 사람이 여섯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 여섯이 여섯 개의 길을 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위에 있었다. 과정의 순간순간은 다른 것을 목적하지 않았다. 그러니 행복했다. 여섯 개의 마음에 심긴 씨앗은 전혀 다른 여섯 개의 나무나 꽃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나도, 이분들과의 연결로 또 하나의 씨앗을 심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생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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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으로 먹는 고구마나 현미 떡 대신 심심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먹었다. 갑자기 울음이 복받쳤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와 국물 마시는 후루룩 소리로도 숨길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울음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울었다. 

 

1년을 뛰어 넘은 작년 생일의 여운인가. 작년 생일, 응급실에 있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면회가 안 되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생일 점심을 먹고, 선물을 사면서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 슬픔으로 마음이 펴지질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김포 갈까? 면회가 안 되면 어머니 병원 앞이라도 갔다 오자." 하고 갔다가, 병원장 면회를 하며 울고불고 한 끝에 엄마를 보고 왔다. 호흡기와 콧줄을 끼고, 팔은 묶인 엄마 귀에 대고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 하면서 또 울었다. "어머니, 채윤아 엄마 잘 키워줘서 감사해요. 제가 잘할게요.” 김서방이 말했다. 엄마도 울었다. 입도 코도 막힌 엄마는 눈물로 말했다. 

생일 아침 미역국에 터진 눈물은 2월 내내 고여있던 것이었다. 2월이 되고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동생과 통화하는데 "내일이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진 날이야." 했다. 2월 첫째 토요일,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갔다. 그날의 기억이 쓸데없이 생생하다. 병원 가는 길 동생 집 엄마 방에 갔다. 동생이 엄마 방 청소 좀 해달라고, 응급실 가느라 경황없이 나왔다고, 조카들끼리 있는데 무서워한다고... 엄마 침대 밑으로 피가 고여 말라붙어 있었다. 아득한 정신으로 그걸 닦아냈다. 2월이 됐는데 그날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내 생일이 다가와서인지, 2월의 그날 때문인지 2월은 그렇게 남모르는 슬픔과 우울로 지냈다.

 

생일이 다가오니 더욱 엄마 몸이 그리워졌다. 엄마의 포궁 안에 있었을 나, 45세 엄마의 늙은 포궁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란 내 처음 몸은 어땠을까? 엄마의 몸이 미치도록 만지고 싶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끓인 채윤이가 내 몸 속에서 자라다 나왔듯이, 나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되었듯이 나 역시 엄마 몸을 찢고 나와 더 큰 존재로 자랐다. 채윤이 출산하고 6주 만에 풀타임 음악치료사 자리가 생겨 어플라이 하고 입사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 채윤이를 봐줬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채윤일 업고 골목 어귀에 나와 서있는 날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면 뚱한 채윤이보다 더 신이 나서 "하이고, 껍데기 왔네. 우리 채윤이 껍데기 왔다!" 했다.

 

채윤이가 제 껍데기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생일 미역국을 먹는 나는 껍데기를 잃었다. 내 껍데기, 엄마의 몸이 그립고 그립다. 놀란 토끼 같은 엄마의 눈, 함지박만 한 입, 광대뼈,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 어디에도 없는 엄마의 몸이  또렷하게 살아온다.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엄마 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생일인 수요일 밤에 교회 행사로 강의가 있었다. 북유럽 바로크 미술을 전공하신 교회 집사님이 렘브란트 그림을 읽어주시는 강의이다. 전에 한 번 교회에서 문화 강좌로  17세기 네델란드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 참 좋았었다. "탕자와 시므온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고백"이란 제목의 강의라 연구소 벗들에게도 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생일 선물 같았다. 익히 알던 렘브란트의 생애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새롭게 들렸다. 어쩐지 렘브란트가 그린 노인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탕자의 귀향>의 아버지, <시므온의 노래>, <야고보>, <기도하는 노인> 등. 강의는 손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아니, 렘브란트가 그렇게 그렸다. 나이 들어 눈이 흐릿해진 아버지는 손, 손으로 그 아들을 맞는다. 시므온 역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는다. 기도하는 노인의 손엔 대놓고 조명이 비친다. 강의 그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늙은 엄마의 손이 겹쳐져서다. 주책스럽고 부끄럽지만 이제 나는 나의 눈물을 탓하지 않는다. 화면을 끄고 그냥 울었다. 

 

 

 

엄마의 그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볼 수 있다면. 천국에서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알겠는데, 엄마의 몸이 아닌 엄마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기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엄마와의 스킨십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엄마 돌아가신 이후 갈수록 나는 몸에 집착하게 된다. 생일을 지내며 내가 이 땅에 처음 왔던 때가 어땠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 처음 집, 엄마의 포궁, 엄마 몸이 절절해진다.

 

 

내 생애 첫 사진이다. 태어난 지 5주. 이젠 기억에서도 흐릿해진 아버지는 이렇듯 나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 자신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사진 뒤에 메모를 남긴 아버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어쩐지 본 듯이 생생하다. 엄마는 내게 남긴 것이 없다. 휴대폰에는 엄마가 담긴 영상이 많지만 엄마가 남긴 건 아니다. 엄마의 모든 것은 엄마의 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 엄마의 몸이 남긴 것은 나다. 그래서 내 생일이 이렇듯 서럽고 슬픈 것이다. 나는, 사라져 버린 엄마가 남긴 흔적이다. 내가.  

 

여러 차례의 여성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생일 다음 날은 또 한 번의 모임이 끝나는 날이었다. 참가자 한 분의 글 한 문장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굼해 지고 그리워지는 날이거든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에게 쓴 편지이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이 문장을 보고 휘청,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의 많은 글에서 나를 본다. 아니 모든 글에서 나를 본다. 그래서 힘겹고, 그래서 좋은 글쓰기 여정이다. 이 문장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를 흔들었다. 예언같이 느껴졌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나는 내 생일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평생 아버지 부재를 끌어안고 살았지만, 내 생일에 아버지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글 쓰신 분에게 비춰본다면 더더욱.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관념으로 느끼고 그리워했다. 아버지의 글씨체를, 지성을 선망하며 그리워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승화시켜 숭배하며 그리워했다.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내 껍데기, 내 몸이다. 나다. 

 

아직 생일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떠난 지 일주일이 모자란 일 년이다. 

 

 

영동 지방 폭설로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됐단다.

3월2일, 학교 다녀본 이에게 새해처럼 다가오는 날을 앞두고 말이다.

바로 딸려나오는 기억이 있다.

2010년 3월1일, 3월2일로 이어지는 밤이었다.

이제 처음 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는 현승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날이었다.

남편이 맡고 있던 한영교회 TNT 청년부 목자(리더들) 수련회가 강릉에서 있었다.

2월 28일 - 3월 1일, 1박2일 일정이었다.

1박2일의 일정 내내 빵빵 터지는 즐거움이었지만, 

올라오는 길, 바로 어제처럼 폭설이 내려 꽉막힌 고속도로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우리 차에 탄 애들은 보기 드물게 나랑 개그코트가 맞는 애들이라, 숨을 쉴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고통 속 즐거움이었다.

우리 생애 저런 시원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화장실 앞에서 찍은 '시원함' 컨셉의 사진이다.

아마 당시 폴더폰 사용 시절이고, 그걸로 찍었던 것 같다.
아침 뉴스를 보다 떠오른 기억, 그래서 뒤져본 기록.

이랬구나... 이렇게 재미난 세월이었구나.

함께 했던 목자들 진심 사랑했고, 너나 없이 뒹굴며 행복했었다.
그것이 교회였는데, 공동체였는데.

아이러니한 건,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 분열을 어떻게 살았지? 진짜 행복했고,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조하문이 부릅니다. '눈 오는 밤'


그 시절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우리들의 얘길 할까
누구를 만나든지 자랑하고 싶은
우리들의 친구 이야기들

 

 

 

 

노라조서 곰합따

삼일절 끼고 1박2일 목자 엠튀를 갔따왔따. 나는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망아지 두 마리와 함께 따라 붙었따. 버버벅 특강 후에 대박 솔직한 나눔의 밤을 보냈따. 밤사이 눈 섞인 비가 내렸따. 그래

larina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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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쭈꿈 2021.03.18 01:26

    어머낫!! 넘 반가운 얼굴들이네용😍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2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설 원작의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이다. 노(老) 소설가 이적요의 독백이다. 그리 감명 깊게 본 영화도 아닌데, 저 대사만큼은 어쩐지 잊히질 않는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매료되어 출간을 기다리며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읽어댄 여러 소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다. 이 역시 읽을 당시 그다지 큰 감동은 없었다. 선생의 소설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은 따로 있다. 그런데 유독 기억나는 인물과 대사는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 죄 모여 있다. 노인들이 주인공이고 노년의 쓸쓸한 나날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나도 모르게 노년의 몸, 노년의 삶에 끌린다. 그런가 하면 실제 삶에선 이상하리만치 노인 대하는 것이 어려워 가까이 다가가질 못한다. 음악심리치료를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 학기마다 치료 실습이 있었다. 장애 비장애 아동부터 정신과 환자와 노인 질환자, 일반인까지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경험하는 것이 실습의 목표였다. 그러다 자연스레 적성에 맞는 대상을 찾아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대학원 내내 노인 대상 치료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그럴듯한 핑계는 늘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피해 다닌 게 맞다. 졸업 후에는 학생들 실습 지도 일을 했었는데, 그때도 역시 노인기관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것 같다. 이상하리만치 노인, 특히 노인의 몸에 대해 끌림과 거부 사이를 오갔다.

 

노인에 대한 양가감정

기억 저편의 소설 『은교』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떠오른 것은 최 선생님 때문인 듯하다. 벌써 선생님을 여러 번 뵈었다. 일로 만나는 사이지만, 일 얘기는 헤어지기 전 몇 마디면 족하다. 책 작업과 관련 없는 수다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나곤 한다. 주로 내 고민을 끝없이 털어놓는 격이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듣고만 계시는 건 아니다. 한 번씩 가볍게 질문 던지기도 하시는데, 그 때문에 내 얘기가 끝나질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줄줄 쏟아내게 하시니, 과연 평생 상담으로 살아오신 전문가답다. 이 만남이 참 좋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뵈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노인의 몸, 80을 넘긴 노구의 몸을 가진 선생님께 끌리면서 동시에 밀어내는 내 마음을 본다. 알 수 없는 내 마음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끝없는 얘길 나누노라면 오후의 햇살이 거실 안쪽까지 깊게 훑고 지나가곤 한다. 빠져나가던 빛이 어쩌다 선생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볼 한쪽에 조각 햇살이 남아 그 부분만 환하게 도드라졌다. 그때 선생님의 피부가 유난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눈길을 거두었다. 실은 마주하고 긴긴 얘기를 나누면서도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바라보는 것 같은 모양새는 했지만, 게슴츠레한 눈으로 흐릿하게 보려 애썼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깊은 주름과 검버섯이 어우러진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쩐지 죄송하고 민망하다. 선생님의 인격에 한없이 끌리지만, 그래서 자꾸 가까이 가고 싶지만, 한편 뒷걸음질 치게 되는 순간이다. 알 것도 같고 영 모르겠다 싶기도 한 노인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고백컨대, 처음 선생님과 가까이 마주 앉아 얘기 나누던 카페에서부터 작은 불편함이 있었다. 깊은 주름, 검버섯과 겉도는 밝은색 립스틱이 무척 버거웠다. 선생님은 좋지만, 선생님의 얼굴은 싫었다. 그런 마음을 들킬까, 도둑 제 발 저리는 심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떴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에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선생, 내 얼굴이 좀 우습죠?” 나는 분명 재빠르게 거둬들였는데, 그새 내 눈길을 잡아채신 것인가. “네? 무... 무슨 말씀요. 서... 선생님 얼굴이... 왜요, 좋으신데요.” 당황해서 말이 잘 수습되지 않았다. “아, 글쎄 우리 아들 며느리가 저네들 다니는 병원에 데리고 가더니 얼굴에 주사를 놨지 뭡니까. 뭘 넣는다고 펴질 주름도 아닌데, 늘 이렇게 더 우습게 만들어놔요. 그래서 자꾸 쳐다보는 거죠? 우습죠?” 휴우, 안심이 되고 다른 한편 더욱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심정이 되었다. 어서 화제 전환을 해야지 싶은데, 웬걸. 직진을 하셨다.

 

      내 얼굴을 보는 게 참 낯설어요. 내 사진을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죠. 나인가 싶지 않은 거지. 그렇다고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있습디다. 내담자나, 젊은 선생들과 얼굴 맞대고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분들 참 고역이겠구나. 마른 대추같이 쭈글쭈글한 얼굴 들여다보는 게 좋겠어요?

 

     아, 아니에요. 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에이, 뭐, 그, 그런 말씀을...

 

    정 선생은 유난히 사람을 뚫어져라 보잖아요. 하하. 정 선생 눈빛이 강렬하다고 아주. 가끔 쭈그렁 망탱이 노인네 민망해요. 하하. 우리 아들이 제 엄마 늙는 것에 아주 질색팔색을 해요. 먹을 것도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매일 운동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죄다 별 소용없는 일인 줄 알지만 못 이기는 척 따라 하고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밖에 해줄 게 없으니. 가끔 이렇게 얼굴에 뭘 넣어 주름이 펴지면 그렇게 좋은가봐요. 나도 마지못해 따라가는 건, 조금 팽팽한 얼굴이 젊은 내담자들에게 덜 부담스러우려나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그러니 주책스러워 보이겠지만 그러려니 해줘요.

 

    아, 선생님 저는 정말 전혀 몰랐는데요. 평소와 다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아? 아닌가? 이건... 어, 그러니까 선생님 자연스럽다는 말씀인데...

 

끌리는데 멀어지고 싶은 마음

나는 사실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봐 드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민망했다. 이미 충분히 노회한 얼굴에 사로잡혀 시술과 관리로 달라진 변화가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노인인 선생님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는 당신 얼굴 얘길 하실 때,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아졌다. 나는 왜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선생님의 늙음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닌데, 난 왜 똑바로 보지 못할까. 똑바로 보지 않으려 애썼는데 어째서 선생님은 그 반대로 느끼신 걸까. 난 정말 선생님의 정신과 말씀은 모두 좋지만, 시술로도 어떻게 안 되는 노화로 가득 찬 선생님의 얼굴과 몸은 버겁기만 하다. 처음으로 닮고 싶은 어르신을 만났다. 나도 저렇게 나이 먹었으면 싶은 바로 그 노인을 만났다. 선생님께선 ‘우정’이란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세대의 간극을 넘어 우정이 두터워지는 것이 느껴져 황송하고 행복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몸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웠다. 그래서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이 설레면서 동시에 무거웠다. 노인의 몸에 끌리면서 동시에 거부감이 드는 딱 그 지점이다. 피할 수 없다. 한 번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설명해주실 것 같고, 무엇보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으면 진실하게 대화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참 희한한 것이요. 저의 친정엄마가 90이 넘으셨거든요. 그렇죠. 선생님보다 한참 위이시죠.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거의 뭐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 차이죠. 어릴 적에야 제 부모님밖에 경험하지 못하니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노인들이 아이를 키우신 거예요. 그래서 그럴까요. 저는 노인들, 특히 노인들의 몸에 본능적으로 끌려요. 그런데 끌리는 만큼 밀어내는 힘도 강렬해요. 너무 마음이 쓰이는데 그럴수록 멀어지고 싶달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시겠죠? 저도 제가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 나는 알 것 같은데. (웃음) 그래서요? 궁금하다. 정 선생 노인네인 나한테 끌려서 이렇게 친해진 거잖아요. 끌리는데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뭘까? 우리 집에 그만 오겠다는 말은 아니죠? 하하.

 

     헤헤, 당연히요! 선생님 조금 전에 선생님 얼굴이 낯설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이를 완전히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제 또래 모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세대를 뛰어넘어 이렇듯 편안하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가끔 믿어지질 않아요. 그래서 그런가. 뭐랄까, 아, 뭐랄까. 그게 너무나 감사하고 좋죠. 그러니까 선생님의 정신은 젊으신데, 연세 드신 몸이 좀 순간순간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잘 표현이 안 되네요.

 

      허허, 거참 기분 야릇하네. 칭찬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늙은 얼굴이 부담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그.... 그게요. 선생님, 부담이 아니라.... 그....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믿길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도 그래요. 내 생각은 아직 한참 젊은데 몸만 늙은 것 같아요. 팔십 넘은 얼굴이 이래야지 어떠해야겠어요. 80년 넘게 쓴 몸이 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나도 내 몸이 낯설어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정 선생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은 뭐 50 넘은 당신 몸이 적응이 되우? 몸이 가는 시간은 정직한데 마음이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요. 그런데 정 선생은 그 말이 왜 그리 어려울까? 내가 어려워서 그러는 것 같진 않은데.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해봐요.

 

왜 그리 죽음에 끌려요?

몇 마디 말씀에 안심이 되었다. 영화 『은교』의 대사부터 시작해서 끙끙거리던 내적 갈등을 털어놓았다. 말을 할수록 금세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희한하게 선생님의 주름진 얼굴, 아니 의술의 힘으로 일부 팽팽해져 더욱 어색한 선생님 얼굴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내 얘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알 듯 모를 듯 웃음을 지으셨다.

 

      정 선생은 왜 그리 죽음에 끌려요?

 

      네? 죽음에 끌린다고요? 제가요?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는데...

 

      나는 내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봐요. 아까 내 얼굴이 낯설다고 했는데, 이렇게 늙은 낯선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일부러 죽음을 생각해요. 노인의 몸으로 사는 것이 어떤지 물었죠? 죽음이 반쯤 덮친 몸이구나, 나는 이렇게 느껴요. 아기의 얼굴을 떠올려봐요. 다가가 어루만지고 싶고 입이라도 맞추고 싶죠. 누구랄 것 없이 아기의 몸에 끌려요. 노인에겐 어디 그런가요? 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봐요. 아기에게선 생명의 기운이, 노인에게선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탓이지. 정 선생의 말, 노인에게 유난히 끌리기도 하고 달아나고 싶기도 하단 말이 죽음에 대해 그러하다고 들려요. 정 선생, 가까이에서 경험한 죽음이 있어요?

 

      네? 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어릴 적이라 뭐가 뭔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엔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태산 같은 일이라, 깊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죽음 자체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강렬했고, 그러는 한편 죽음은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공포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거울에 비친 모습에 죽음을 떠올리신다는 말씀이 놀랍네요. 아, 놀랍다는 게 신선하달까 그런 느낌이라 좀 야릇해요.

 

      정 선생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 좋은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죠? 갱년기 증상을 겪으면서, 고치고 운동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당혹스럽다고 했던가?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려 태도를 봤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갱년기 증상은 죽음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라고 생각해요. 정 선생이 자기도 모르게 그 신호를 알아채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때도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정 선생 나이 때 그런 깨달음이 없었거든. 힘쓰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마음먹은 것을 결국 대부분 이뤄내고 말았고요. 갱년기니 뭐니 하는 것도 나약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면 강단에서 가르쳤던 것, 내담자 앞에 두고 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았죠. 좋은 노년은 없다고 했던 말 기억해요? 좋은 노년은 좋은 중년의 결과예요. 내가 생각하기엔 그래요. 내 뼈아픈 경험에서 얻은 생각이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좋은 노년을 사시고 계시잖아요. 말씀대로라면 그 이전의 삶의 결과 아닌가요?

 

      정 선생이 좋게 봐줘서 그래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깨달은 것은 나이 60이나 되어 호된 고난을 겪은 덕분이지요. 덕분이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네. 말 그대로 죽음에 욱여쌈을 당한 시절이었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죽음에 욱여쌈을 당했던 그 시절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셨다. 60대 초반, 선생님의 남편께서 암 선고를 받으셨다. 예고 없이 찾아든 청천벽력이라고 표현하셨다. 공교롭게도 하나밖에 없는 아드님 부부가 어렵사리 아이를 가져 기쁨과 설렘으로 지내던 나날이었다고 한다. 항암치료로 야윌 대로 야윈 남편분께서 갓 태어난 손주를 안고 눈물지으시던 장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이라고 하셨다. 설상가상으로 연로하신 선생님의 어머님 또한 노환으로 입·퇴원을 반복하셨으니, 그야말로 생로병사가 눈앞에서 교차하고 있었다고.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안에 남편과 어머님을 천국에 보내셨다. 무엇 하나 부족하다 느끼지 않았던 삶은 텅 비어버렸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인생 신념이 무너졌다고 한다. 몇 년 캄캄한 시절을 보냈고, 뒤늦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고. 죽음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으로 슬픔에 맞섰고, 미국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의 소설이 In Heaven as on Earth: A Vision of the Afterlife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포이에마)이었다. 빨려들 듯 읽으셨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렴풋하게나마 의문에 희망을 찾았다고 하셨다. 평생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 온 선생님이시다. 이즈음의 경험과 독서로 영적 세계에 눈이 떠졌고 자연스레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셨다고 한다. 그전까지 선생님의 신앙은 불교에 가까웠다. 죽음의 욱여쌈이 도리어 죽음을 넘어서는 소망이 되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되었다니! 그러니 당신은 죽음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창밖 멀리 시선을 보내셨다. 거실 깊숙이 들어와 앉았던 해의 꼬리가 물러난 지 한참이다.

 

      , 선생님, 이런 간증을 듣다니요! 죽음과 삶의 연결이 신비롭게 느껴져요.

 

     주름진 얼굴, 노화가 불편한 것은 죽음을 부정하고 본능일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것이죠. 사회가 젊음, 젊은 몸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죽음에 대한 거부 아니겠어요? 중년을 넘긴 우리 아들이 유난히 젊음에 집착을 해요. 늙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제 몸뿐 아니라 죽을 날이 가까운 지 에미까지 관리하느라 공을 들이죠. 저기 저 운동기구며 안마의자도 다 아들이 사다 놓은 거예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을 알아요. 제 아버지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거든요. 왜 아니겠어요. 첫 아이를 낳고 아버지 되는 기쁨과 제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동시에 겪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혼자 남은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거예요. 제 몸 제가 지켜야 한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서 자기 관리가 철저해요. 그 집착이 나는 안타까워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만큼 건강한 몸에 집착하거든요. 그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깝죠. 이제라도 아들이 깨우쳤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제 삶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때 신앙이 들어갈 여백이 생길 텐데. 정 선생 보면서 우리 아들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나이 먹어 늙고 죽게 되는 인생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제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자리가 주님 만날 자리인데, 아직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 생각나거든 우리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스름한 한강 변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하는 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노인의 얼굴에 다가가고 싶고 멀어지고 싶은 알 수 없는 마음을 ‘죽음’에의 태도로 해석해주신 것은 선생님만의 따스한 지혜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또렷하게 선생님의 목소리로 다시 들린다. 좋은 노인으로 사는 것은 결국 죽음과 친해지는 일인 것이다. 죽음과 친해지는 것은 노년의 일 아니라 지금 여기의 과제이다. 선생님을 따라서 해봐야겠다. 거울을 볼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드리워졌나 찬찬히 꼽아 봐야지. 눈가의 주름과 쳐지는 피부로 내 죽음을 마주할 때, 어쩐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브레넌 매닝이 『아바의 자녀』에서 말했다. “나는 삶이 가장 두려울 때 죽음도 가장 두렵다.” 앞으로 더욱 거세게 밀려들 노화의 파도를 순순히 기쁘게 맞도록 해야겠다. 삶의 끝은 죽음이 자명하니 그것을 부정하지 않으리. 죽음 이전에 삶, 오늘의 삶이 있으니 이 순간을 두려움 없이 누리는 것 또한 포기하지 않으리.

 

<시니어 매일성경> 2021 3-4월호

남편 겨울 피정 주간에 짧게 목포에 다녀왔다. 이 즈음의 짧은 여행은 가족의 루틴이다. 목포다. 목포로 만장일치를 봤지만 목포를 향하는 목표는 넷의 마음에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저 '낙지 육회 탕탕이'였다. 육회 좋아하고, 낙지 탕탕이 좋아하는데 각각 제대로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둘이 한 접시에 담기다니 설레고 설렜다. 아, 그 식감은 어떨까? 식당도 검색도 끝냈다. 목포를 향한 내 목표는 오직 하나다. 목표를 향한 목포에 도착. 첫 식사를 하러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낙지 육회 탕탕이요!" 외쳤다. 주문을 받고 주방에 다녀오신 분이 "육회가 떨어져서 낙지 탕탕이" 밖에 안 되는데요. 네에???? 낙지 탕탕이를 먹었다. 눈물을 머금고 먹었다. 촵촵촵 낙지를 씹으며 채윤이가 말했다. "이런 집은 백종원 아저씨한테 혼나야 해." 그 한 마디에 아이들 말로 현타가 왔다. "맞아, 내가 이거 먹자고 서울서 몇 킬로를 달려왔는데 아무렇지 않게 낙지 탕탕이 밖에 없다니... " 그래도 그냥 먹고 나왔다. 

 

시작이 이러하더니. 이번 여행은 먹을 것과는 영 통하질 않았다. 이튿날 점심으로 정한 횟집은 역시나 설렘 그 자체였다. 아침도 대충 먹고, 추위에 달달 떨며 해변을 걸으면서도 '그 점심'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뛰는 가슴 안고 찾아간 그 식당은 '화요일 휴일'이었다. 아아아아... 어떻게 어떻게 찾은 해변의 동네 횟집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결핍의 구멍은 커져만 갔다. 날은 춥고, 옷은 얇고, 어디 걸을 수도 없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배달을 시키느니 숙소 주변에서 사 오자! 채윤이와 남편이 나가서 제대로 '사 왔다!' 특히 근처 세발낙지 맛집에서 바로 그 '낙지 육회 탕탕이'를 공수해왔다. 소원풀이가 되었다. 결핍의 구멍이 깨끗이 메워졌다. 숙소의 옹색한 테이블에 뻗쳐 놓고 먹는 것이 아슬아슬했지만, 마음만은 왕의 식탁 같았다. 

 

 

세 군데 식당을 점찍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세 번째 식당의 복은 맞았다. 줄을 서서 먹는 집이라는데 텅 비어 있었고, 음식은 정말 하나 같이 맛있었다. 반찬 하나하나가 제대로였다. 김치는 또 얼마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 메뉴를 고를 것도 없이 정해진 걸 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생선구이 정식이 제대로 정식이었다. 다만 자의식 과잉의 주인아저씨께 서비스를 많이 해 드려야 해서 먹는 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 홍어 껍질을 내주면서 "이거, 이거!!! 이거 청담동 아줌마들이 없어서 못 먹어. 이거 먹고 주름이 싹 퍼져부러. 이 김치! 우리 마누라 호가 신기여. 신의 기술! 손이 신의 손이여! 이 시금치! 이거 비싸. 섬이서 막 들어온 거요......" SNS 맛을 보신 탓인 것 같기도 하고. 맛집 댓글에 쓸 말을 쥐어 주시느라 애쓰시는 것 같은데. 나를 제외한 세 식구가 전라도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통에 자꾸 나만 보고 말씀하셔서 밥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서비스가 지금 주인에게서 손님으로 가는 건지, 방향이 반대가 된 건지. 

 

2월 중순, 늦은 강추위에 눈까지 내려 올라오는 길 걱정에 일찍 출발해버렸다. 훤한 오후에 집에 도착하니 저녁을 또 먹어야 하네.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것이 매콤 새콤 칼칼한 것. 밥은 아니고. 뭔가 씹을 것도 있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 모든 욕구를 다 취합하여 골뱅이 국수로 정했다. 신이 내린 요리의 손을 발휘해 만들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지만 입을 다물었다. 고객님들이 오직 식사에 집중하도록. 너희 세 사람의 모든 욕구를 다 만족시킬 이 메뉴를 정한 나의 센스, 몸소 장을 보고 온 노고, 동태채를 골뱅이 캔 국물에 재워서 넣어본 창의성... 떠들어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맛이 있냐? 맛이 어떠냐? (칭찬과 찬사를 강요하는) 습관이 된 질문도 안 하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왕의 식탁으로 대접하고 싶었다. 준비하는 내가 아니라 먹는 사람 편에 서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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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닮아 그림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채윤이. 그림 그리며 개인 상담 받고, 그림으로 마음을 만나는 집단 상담을 몇 회기 하더니 풍덩 빠져버렸다. 게임도 안 하고, 유투브도 안 보고 그림만 그린다. 내 글쓰기 강의 곁눈질로 듣고 열심히 쓰더니 요즘은 그림만 그린다. 심지어 일기도 그림일기다.

휴가 중이다. 숙소의 밤, 할 것 없어 심심한 중에 그림에 빠진 채윤에게 속담 퀴즈를 냈다. 신서유기 송민호 저리 가라! 우리 채윤이가 더 천재다! 천재적 오답을 깨알 필기했다.


호랑이도?
죽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토끼 보고 안심한다.

빈 수레가?
은수레다.

오뉴월 감기는?
오랜 간다.

수염이 석 자라도?
묶어야 예쁘다.

빚 좋은?
때깔.

바늘 도둑이?
소 된다.

못된 송아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말 한 마디로?
상처 받는다.

닭 잡아먹고?
알 깨먹고.

같은 값이면?
안 산다.

가지 많은 나무에?
열매 맺힌다.

가는 날이?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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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도 단 한 번의 인생 밖에 살지 못한다. 그런데 마치 다른 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산다.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거야, 같은 희망이든. 언젠가 로또 같은 한 방이 터질 걸 기대하는 환상이든. 심지어 '이생망이야!' 하는 말조차 애초 다른 좋은 삶이 있었는데 뭔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 같다. 희망이든, 환상이든, 지레 뒤집어쓰는 절망이든 변하지 않는 진리는 나는 단 하나의 생 밖에 살지 못한다.

 

자기 앞의 생.

 

1일 1영화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있다. 영화 제목과 정보, 목록만 훑어보다 영화 한 편 볼 시간 다 버린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에 있단다. '증후군'에 지기 싫은 마음에 빠르게 선택하려고 한다. 대략 장르 정하고 직관적으로 탁 찍어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 웬만하면 좋다. <자기 앞의 생> 제목에 끌려서 보았다. 그렇고 말고. 자기 앞의 생!이다.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뿐이다. 타인 앞에 놓은 생을 살게 되진 않는다. 영화가 그런 건지,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1일 1영화 하면서 1일 1눈물까지 패키지다. 요즘 보는 영화마다 그렇다. 

 

 

 

 

 

"내 머릿속에서 그 일을 지워달라고, 그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제발 그 사건을 기억 속에서 지워주세요." 한참 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들었던 말이다. 고통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절절하지만 그럴수록 그 기억이 또렷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난 날 겪은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야 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마담 로사도, 아버지에 의해 살해된 엄마를 그리는 난민 소년 모모도. 지나간 고통이 크고 또렷하여 오늘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생망은 아니다. 그 뻔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희망이 자기 앞의 생을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된다. 고유하게 아픈 어떤 인생들이 교차하고, 거기서 살아야 할 어떤 이유가 발견될 때 생은 다른 길로 접어든다.

 

 

 

 

 

아침에 눈을 떠 그대로 누운 채로 남편에게 말했다. "마음이 괴로워. 이유 없이 마음이 괴로운지 모르겠어." 어젯밤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이런 상태였던 것 같기도. 결국 아침 먹은 걸 체하고 말았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 말고 먹은 것도 없어 텅 빈 구역질을 했다. 오후에도 맥을 놓고 누워 있다 "선생님, 글을 써서 올리고 밤새 체한 것처럼 아파서 잠을 못 잤어요." 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어젯밤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콱 막혔었다. 그의 이야기인데, 아니 그가 치료하는 아이 이야기인데,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오래전에 다 정리된 '나의 이야기'라 여겼는데 무슨 일이지? 이유 없이 괴로운 게 아니었다. 요 며칠 뭔가 죽도록 욕을 먹은 느낌도 있었다. 뒤가 아니라 앞에 놓인 생에 관한 것이다. 내 앞의 생을 살아가기 위한 몸살이다. 갑자기 일어나 책꽂이로 가서 브레넌 매닝의 <신뢰>를 꺼냈다. 필요한 책, 약이 되는 책이 꼭 이렇게 갑작스런 처방전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영화도 그렇다. 오늘 본 <자기 앞의 생>이 그렇다. 고통이든 행복이든 비교가 불가한 자기 앞의 인생들이 있음을, 인생과 인생의 교차점에서 생기는 화학반응 같은 삶의 의미와 희망 같은 것들을 영화가 일깨워주었다. 약이 된 영화였다. 지난 날을 끌어안고, 다가오는 생을 마주하며, 오늘 내 인생과 겹쳐진 벗들을 위한 기도로 이 밤을 마무리하면 이 체기가 온전히 가실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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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작 주의자로서 마음에 든 작가의 책은 절판도서를 웃돈 주고 사서라도 읽는다. 스캇 펙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자이다. 전작이 다 뭔가, 전작을 기본 두세 번씩 어떤 책은 옆에 끼고 있다시피 한다. 그러나 실은 '전작'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스캇 펙이 쓴 소설 두 권은 10년이 되었어도 읽지를 못했다. 받아들이기 싫었다. 나의 펙 박사님이라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나 《거짓의 사람들》의 스캇 펙이다. 스스로 '과학자'라 말하는 심리학자이다. '과학'의 배를 타고 합리적 추론의 노를 저어 영성의 섬에 닿는 기가 막힌 저서이다. 그러면 됐지. 과학자가 무슨 소설이란 말인가. 과학자를 표방하여 쓴 저서에서 그렇듯 투명하게 자신의 드러냈으면 됐지, 뭐가 부족하여 소설이란 말인가. 

 

 

소울 

 

영화 <소울>을 보았다. 어쩐 일인지 영화 중간에 졸고 말았다. 졸고 났더니 맥락을 다 놓쳐서 관람했다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미리 접하고 간 영화에 대한 극찬이 무성했는데, 무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함께 본 남편이 참 좋았다는데 뭐가 기억에 남았어야 말이지. 안 되겠다, 식구 중 유일한 미 관람자인 현승이와 함께 재관람하기로 했다. 식사 중에 픽사 애니메이션 얘기로 수다가 길어졌다. "엄마, 코코를 안 봤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 영화를 안 봤을 수가 있지?" 하며 저녁 식사와 대화가 끝났다. 아이들 설거지하는 사이 바로 <코코>를 사러 네이버에 영화로 달려갔다. 영화가 끝나니 식구들은 모두 방으로 흩어지고 어두운 거실에 혼자다. 'Remember Me'를 들으며, 마마 코코가 "파파?" 하고 따라 부르는 'Remember Me'를 들으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다. 소울. 영혼. '영혼'에 대한 심상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엄마다. 세상을 떠난 영혼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바로 그리움으로 달려간다. 영화 <소울>을 보며 졸기 시작한 지점이 딱 생각난다. 몸을 입기 전 영혼은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직 내가 아는 영혼들, 나와 연결되었던, 연결된 영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코코>의 해골바가지 영혼들이 참으로 정겨웠다.

 

 

소설

 

1월 말에 스캇 펙의 소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창가의 침대》를 연이어 읽었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벌써 여러 번 읽은 남편이 새해 다시 또 꺼내 읽고 책꽂이에 꽂으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이걸 한 번씩 읽을 거야." 괜히 질투가 나서 무작정 펼쳐 들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심리적 영적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남편이 이 책을 읽고 조금 달라졌었다. 하도 신기하여 나도 좀 읽어볼까 펼쳤었는데 영 마음이 펼쳐지질 않았었다. 결국 읽지 못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고 단지 질투심에 펼쳐 든 책에 쏙 빠져버렸다.  《창가의 침대》 역시 출간 되자마다 보관함에 담아 두었었는데 영 마음이 향하질 않았다. 때가 되었는지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을 단숨에 읽고 바《창가의 침대》를 집어서 달렸다. 

 

 

소울

 

글을 얼마나 썼다고, 상상력도 빈약한 주제에 요즘 언감생심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려면 허구의 장치가 필요하겠구나 싶다. 자칭 과학자인 스캇 펙이 소설을 쓰고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스캇 펙은 '영혼'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에서는 몸을 떠난 사후 세계의 영혼을, 《창가의 침대》에서는 이 땅을 사는 영혼을 그린다. 과학자로서 치료자로서,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의 역작은 《거짓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성장과 변화에 천착한 스캇 펙은 결국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악'에 가까운 존재로 지목한다. 두 소설은 그 이야기의 변주이고. 에고로 가득 찬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변화시키길 거부하고)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 (오히려)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 데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악이라고 정의한다. 치료 장면에서 그런 존재들을 만났고, 결국 '악' 또는 '거짓의 사람'이라 이름 붙이게 된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아프게 자기의 진실을 마주하며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끝내 변화하기를 거부하며 오히려 희생양을 찾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 지점에서 스캇 펙은 '영혼'을 떠올린 것 아닐까.

 

 

소설 

 

소설 같은 이야기를 살았다. 재작년에 내적 여정에 오신 S 선생님은 조용히 여정의 전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연말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좋은 직장이었는데 내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작년 1년을 쉬면서 치유 글쓰기에 참여했는데, 어찌나 지난하게 글로 자신을 만나가는지! 같은 주제로 한 번 더 글을 쓰시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안했는데 기꺼이 재수강을 하셨다. 어떤 주제의 글을 써도 S샘의 글엔 '아버지'가 어른거렸고, 재수강에선 더욱 아버지가 새롭게, 또렷이 드러났다. S샘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로 쓰는 일을 거침없이 해나갔다. 몇 바닥 씩 글을 쓰고 또 썼다. 올해 복직을 앞두고는 꿈 모임에 신청하여 참여했다. 몇 주 전 순서가 되어 자신의 꿈을 나눴는데, 또 아버지이다. 투명한 사람에겐 꿈도 투명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 투명한 말은 듣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꿈 모임 마치고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했다. (이 땅에서의 온전한 화해가 가능할까, 특히 부모와.) 나 또한 S샘 생각으로 먹먹해져 지내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을 선물로 보냈다. 그 책을 읽고 꿈의 메시지를 복기하면서 마음이 잘 정리되었다고 한다. 꿈 나눔 후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월요일 밤, 글을 한 편 쓰고는 "내일은 병원에 계신 아빠 면회를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겠다" 하고 잠이 들었단다. 다음 날 화요일 새벽에 아버님 임종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아버님을 저 하늘로 보내드렸다. 조문을 가서 만난 S샘의 얼굴이 평안해 보였다. 장례식 마치고 꿈 모임 방에 올린 글로 보는 S샘의 마음의 여정은 그야말로 소설이다. 이 아름다운 마음의 여정으로 소설 한 편을 쓰고 싶을 정도이다.

 

소설, 소울

 

스캇 펙 같은 통찰력이 있는 것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하는 일을 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높은 도덕적 행동과 착한 모습 너머의 추하고 완고한 모습을 볼 때 혐오스럽고 동시에 몹시 두렵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인다'는 것은 내 것이라는 뜻이고 혐오스러움이 동시에 두려움이 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또는 스스로 의식하는 자아는 부족하고 선하지 않다며 스스로 작게 여기는 사람들 안에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땐 경외감이 든다. 어떤 아름다움 같은 걸 본다. 《창가의 침대》에서 평생 침대에 누워 살아야 했던 중증 장애인 스티븐의 빛나는 영혼, 그 빛을 알아본 상처 투성이 간호사 헤더의 빛은 나도 얼핏 접해본 것들이다.'그 20여 년 치료 장면에서 만난 아이들, 엄마들, 그리고 내적 여정이나 강의에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 아니 일상을 둘러 싼 사람들.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만나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설명이 불가한 지점이다. 스캇 펙이 그려낸 인물 중 '스티븐'을 태어나서 한 번도 침대를 떠나본 적 없는 중증 장애의 몸을 가진 존재로, '그로초브스키 부인'을 마비된 몸을 가진 존재로 그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볼 힘은 1도 없고, 온전히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몸과 대비된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지 상상함으로 보게 한다. 매캐덤스라는 흐트러짐 없는 외향(태도, 능력)을 갖춘 이가 논리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길을 고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전신 마비의 스티브, 삶은 무질서하고 상처투성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간호사 헤더, 매력 없는 외모와 일 못하는 원장 시터먼 같은 사람과 대비되는 매캐덤스의 멀끔한 외향은 그 자신의 영혼과는 또 어떻게 대비되는지. 

 

남편은 앞으로 새해가 시작 될 때마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을 다시 읽겠다고 한다. 그가 그 책을 뽑아 들 때마다 나도 덩달아 그 옆에 있는 《창가의 침대》를 뽑아들까 한다. 융은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성장하여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했다. 만약 이 땅에서 온전히 성장하지 못하며 죽어서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 스캇 펙은 그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다.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그렇다면 오늘 이 순간의 성장을 회피할 이유가 무엇인가, 소용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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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2.13 15:36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14 23:03 신고

      그렇게 하셨으면,
      그렇게 내적 여정을 걸어가셨으면.

      제 나름대로 그런 기대가 있는데요. 선생님 꼭 그렇게 가고 계시네요. 정말 감사해요. 다르지만 또 크게 다르지도 않을 각자의 여정 걷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해요 :)

 

 

 

엄마 충청도와 전라도,

고모 평안도,

시어머니 경기도.

 

 

내 몸에 흐르는 음식의 피가 이런 지역색을 띠고 있는데, 세 여인들에게서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배추 전'이 나는 그렇게 좋더라. 배추 전은 강원도 음식이라는 것 같은데. 노란 배추로만 가능한 줄 알았더니 봄동 배추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봄동을 사서 겉잎은 전으로 속잎은 겉절이로 해서 몇 번을 먹었다. 봄동은 어쩐지 그냥 마음이 끌리는 식재료이다. 장을 보러 가서 봄동이 눈에 띄면 일단 사고 본다. 이름에 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파로 추운 날에 '입춘'이라는 절기가 끼어들어 있다. 더위로 지글거리는 날에 만나는 '입추’가 있다. 그런 느낌 같다. 아직 추운데, 체감하는 계절은 겨울인데 봄동이라니! 그러자면 어릴 적에 본 것 같기도 한 봄동이다. 시골에 살았지만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니어서 통 아는 것은 없지만 눈에 익은 풍경들이 있다. 겨울 언 밭에서 누런 잎을 달고 바닥에 딱 붙어 있던 봄동을 봤던 것 같다. 또렷하지 않은 그 이미지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봄도 그립고, 어린 시절 그 밭이 그립고, 어릴 적 봄이 오는 날의 차갑고도 따스한 공기도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엄마,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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