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명쾌하게 자기소개하는 게 어려운 인생이다. 작가, 소장, 강사, 대학원생...으로서 하는 일이 상충한다. (사실 가장 가까운 일상은 엄마, 아내, 그리고 약간 사모라 불리는 목회자 아내이다.) 그만큼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산다는 뜻이다. 페르소나에 맞는 일정표와 달력을 여러 개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소장으로서 '지도자 과정'을 동반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인가 보다. 이 달력이 제일 중요하니 말이다. 내일은(아니 정확히 오늘과 내일 일박이일) 지도자 과정 종강 피정이다. 일 년이 지도자과정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고, 일 년의 기쁨과 슬픔, 즉 존재의 의미가 여기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종강 피정 일박이일은 달력에 별표 열 개를 치는 날이다.

화요일은 유난히 분열적이다. 작가, 대학원생...으로 사는 일에 급급하다 밤 11시 다 되어 귀가하니 바로 내일이 되었다. 별표 열 개짜리 일정이 있는 내일이 되었다. 김치와 피클부터 핸드드립 세트까지. 정신없이 짐을 싸고 보니 나란히 함께 하기 어려운 두 개의 정서, 위안(consolation)과 황폐(desolation)가 이중창을 부른다.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는다. 몸도 함께...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낮에 '교회 성폭력 생존자 치유 글쓰기 모임'을 하며 교회고 뭐고, 인간이고 뭐고 모든 것에 절망했다. 마치고 학교 가서 수업을 듣는데,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 개신교와 가톨릭은 얼마나 먼가... (어느 순간 그리 가깝게, 전혀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때도 있건만...)

짧은 시간 안에 소개하기 어려운 복잡한(그 많은) 페르소나가 하나도 먹히지 않는 공간에 앉아 있자니, 신앙 사춘기 때부터 그렇게나 위로와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이냐시오 영신수련도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꾸 눈물이 났다. 위안(consolation)과 황폐(desolation)의 이중창이 제대로 진실의 노래였다. 아, 이건 이냐시오 성인 작사 작곡의 노래인데. 영신수련은 지금 내게 먼 것인가, 가까운 것인가... 쓰고 보니, 쓰다 보니 좌표가 찍어진다. 나의 좌표, 나의 현재는 여기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계인의 갈팡질팡이다. (루저, 외톨이, 센 척 하는 겁쟁이...는 아니지만)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 같다. 연구소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나의 구원사'를 쓰고 낭독했던 지도자 과정 모임 이야기이다. 그 시간을 떠올리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아, 다른 건 모르겠고 내 사랑의 좌표는 여기이다.영성이란 언제나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은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당신이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그때그때마다 당신의 과거는 ‘개정판’으로 다시 쓰이는 것입니다.❞ _우치다 타츠루


과거의 기억을 다시 새롭게 써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답습이 아니라 개정판 작업입니다. 최근 심리학 이론 중에 ‘현재주의’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에 발을 딛고 과거를 봅니다.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과거를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지도자과정 마지막을 달리는 시간에 나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어느 여정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입니다. 자랑과 성취가 아닌 부끄러움을 나누며 무르익어온 만남입니다. 이런 현재에 서서 다시 써보는 과거는 또 새롭습니다. 새로운 개정판입니다. 이 ‘현재’는 사랑입니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은 ‘사랑의 여정’입니다.

❝나에게 있어 에니어그램은 사랑 안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영성이란 언제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_리처드 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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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초입 어느 날. 팔당대교 아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있었다. 세 여인이 나란히 걷는데, 좌 엄마, 우 딸이다. 그러니까 내 위치는 모녀 사이이고, 나는 엄마와도 친구이고 딸과도 친구이다. 뭔가 몹시 자랑스러운 관계이다. 저 앞에는 두 남자가 걷고 있다. 한 사람은 JP, 또 한 분은 엄마 님의 남편이며 따님의 아버님. 풍경 사진을 찍던 엄마 님께서 앞의 두 남자 뒷모습을 앵글에 잡더니 말씀하셨다.

저기, 두 신부 같지 않아?(60대)
두 신부요?
그 영화 있잖아. 그거...
두 교황?
어, 그래. 두 교황.
푸하하하하... 두 신부...
느낌이 비슷하네요. 두 분 옷 색깔도 좀 그렇고. JP는 모르겠는데, 목짠님은 정말 그 라칭거 같아요. 그 배우 누구죠? 그 배우랑 느낌이 비슷한데....(50대)
아, 그 배우... 거 있잖아... 뭐지 이름이?(60대)
뭐였더라요? 생각이 안 나지?(30대)
알... 뭐 아냐? 알칸소....도 아니고, 알퐁스 도데도 아니고...(50대)
아, 거시기 있잖아.(60대)
안소니 홉킨스요!(30대, 검색해서 찾아냄)
맞아. 맞아. 앤서니 홉킨스!

이 에피소드 포스팅 하고 싶었었는데 바쁜 가을 지내느라 잊고 말았었다. 지난주 뉴질랜드에서 보내오는 사진을 보다 다시 떠올랐다. 두 신부 아니고 두 교황 아니고...

두 강사님으로 뉴질랜드 코스타에 함께 가셨다. 컨퍼런스 전에 한 교회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 행복한 사진이 막막 날아왔는데, 앤서니 홉킨스 강사님 인맥 덕이었다. 어쩌면 그날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입었던 옷과 같은 옷들을 입고 두 신부, 두 교황, 두 강사... 영화를 계속 찍고 계셨다.

채윤이는 두 사진을 보고 "오, 두 명의 아굴라! 그런데 엄마, 아굴라가 무슨 뜻이야? 옛날에 그렇게 불렀던 것 기억나는데..." (이 아이의 기억력을 사랑하고, 청순한 뇌를 사랑한다.) 20년 전 일이다. 가정교회 목짠님으로 만나서 참 행복한 교회를 경험했었는데... 거기서 분가라는 것을 하고, 또 분가라는 것을 하며 우리가 목짜가 되었을 때이다. 한 작명하시는, 서쉐석목짠님이라고도 (채윤에게) 불리셨던, 앤서니 홉킨스 목짜님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목장'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 줄여서 AP목장이라고 불렀고, 목장 시절도 내 인생 어떤 '교회'를 누렸던 때이다.

세월을 두고 만남을 이어가고, 나이를 너머 친구가 되어가는 것이 좋다. 신형철의 책 제목 『인생의 역사』처럼.
인생의 역사, 만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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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뉴질랜드 코스타 참석하느라 집을 비웠다. 현승이 수능 날에 출국하여 마지막 논술시험 마치는 날에 들어오는 일정으로. 일정도 어쩌면... "중요한 때 아빠가 액운을 싹 몰아가지고 바다 건너갔다가 끝나고 오는 거라고 쳐. 어쩌면 아빠 자신이 액운... ㅎㅎ"


월요일 아침 현승이와 둘이 밥을 먹다가 말했다.
월요일인데, 월요일엔 아빠랑 같이 보내는 안식일이거든. 걷고, 밥 먹고, 카페 가서 책 보고.... 그렇게 쉬는 날인데. 아빠가 없으니까 어쩐지 월요일이...
허전해?
아니. 휴가받은 느낌이야. 쫌 좋아. 월요일에 아빠랑 쉬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 그런데 오늘 여유 시간이 생긴 것 같고 막 뭔가 홀가분하고 그러네.
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구나. 엄마 아빠....
(015B 노래 '아주 오래된 연인들' 맞다. 현승이 태어나기도 전 노래지만, 이걸 말하는 거 맞다. 얘는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애라서 그렇다.)
일종의... 그런가 봐.

낮에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를 찾아보았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거야~이야

 

아닌데... 아직 두근거리는데. 설렘도 있는데... (빡침과 싫증이 없다고는 안 했음)

저녁에 현승이에게 다시 말했다.
현승아, 엄마빠 '아주 오래된 연인들' 그거 아니야. 가사 다시 찾아봤는데. 아니야. 엄만 아직 아빠한테 설레. 아침에 말한 느낌은 좀 다른 거야.
아, 그런 거구나! 나도 시험 때 아빠가 없으니까 뭔가 편한 게 있어. 아빠가 죽은 것도 아니고... 시험 끝날 때 올 거고. 아빠는 노력해서 한 마디 하는데, 내가 예민해 있을 테니까 또 짜증 낼 수도 있잖아. 그러면 또 아빠가 엄청 신경 쓰일 거고, 그런 아빠를 아니까 나는 더 신경 쓰이고... 그래서 뭔가 마음 편한 게 있어.
그치? 그치? 그 비슷한 걸 말하는 거야.

MBTI로 NT 아빠-NF 아들, 에니어그램으로 5번 아빠-4번 아들 사이 긴장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데, 가끔씩 도통 이해 못 하는 그런 지점이 있다. 그걸 말하는 거다. 아무튼, 그가 오늘 돌아온다! 현승이 논술 입시도 오늘이면 끝이다!

 

와이카토 대학 캠퍼스에 선 JP.

 

연구소 지도자과정 마치고 저녁에는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업 들어가기 직전 전화가 왔다. 동네 친구다. (실은 교회 집사님... 인데 나를 '사모'아닌 '나'로 대해주시기에 '친구'하기로. 동네 친구이며 교회 친구) 통화는 못하고 여차저차 용건은 겉절이를 전달하겠다는 거다. 얼씨구나! 수업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러 받아가겠다 메시지 보냈는데. 어느새 우리 집에 배달까지 해놓은 상태다. 동네 친구 덕에 의미 있는 야식 타임이었다.

아침에 채윤이가 "요즘 김장하는 때 같은데... 이럴 때 겉절이에 보쌈 해먹는 거 아니야?" 했다. "글치, 겉절이에 보쌈이지!" 그 말에 막막 식욕도 돋고, 어떤 식욕이 돋으면 자극받는 그리움... (왜 식욕은 자꾸 우리 엄마로 향하는 거야?!)에 조금 간절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겉절이 배달이라니! 늦은 하굣길 마트에 들러 보쌈용 고기 한 덩어리를 사서 막 달려와서 압력밥솥에 막막 고기를 앉혔다. 축구가 시작되는 시간에 딱 맞췄다.

축구 좋아하는 채윤이. 사람들 많이 모여서 얼싸덜싸 하면 에너지가 솟구치는 채윤이가 좀 안 됐다. 월드컵 첫 경기 하는 날, 그것도 카타르(지난 여름 미국 오가는 경유지로 질리도록 엉덩이 비비면 앉아 있던 카타르...)에서 말이다. 거실에 모여 앉아 야식 차려놓고 으쌰으쌰 하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엄마는 축구의 'ㅊ'도 몰라. 동생 놈은 방에서 혼자 본다고 해. 그나마 같이 봐줄 아빠도 없어. 게다가 내일 11월 25일은 채윤이 생일.

생일상 차려줄 여력은 없고. 생일상 대신 전야제로 보쌈을 차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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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세미나 중인 교회 젊은 부부들과 J 집사님 댁에 초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놀고, 긴 시간 훈제로 구운 삼겹살은 입에서 살살 녹고, 탁 트인 시야로 마음까지 트인 사람들은 여유롭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주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기 전에 기념촬영을 했는데, 집에 오니 단톡방에 몇 년 전 그 장소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와, 이렇게 작았었다고? 씬스틸러는 아기들이다. 보자마자 신이 나서 사진 오려 붙이고 화살표 그려서 단톡에 올리며 낄낄거리는데... 채윤이가 그랬다.

엄마, 제발... 체통을 지켜. 이러는 거 주접...
아! 그래? 어쩌지? 이미 올렸는데.... 괜찮아. 재밌으면 땡이야!


희망을 잃은지 오래다. 교회에 대해 낙관적 기대는 없고, 남편이 목회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교회를 떠났을 것 같다. 한창 교회가 싫을 나이, 신앙 사춘기 한가운데의 허세는 아니다. '허튼' 희망을 잃었다고 하자. '신앙 사춘기'의 독기가 완전히 빠지진 않았지만, 나름 치열하게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자매들과 치유 글쓰기를 하는 중이고, 목회자로 인해 신앙은 물론 삶까지 망가진 분들을 흔하게 만나고, 반면 얼치기 신앙 사춘기 교인들로 인해 정신과 영혼이 말라비틀어져가는 목회자들을 본다. 자주 생각한다. 교회엔 희망이 없어...

주일 오후에 <육아 세미나>로 만나는 시간에 교회를 느낀다. 육아노동 가사노동으로 인한 갈등, 어린이집 선택부터 사교육의 문제까지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의 긴장, 내 부모로 인한 상처가 아이에게 투사되어 또 다른 상처를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아니 그냥 아이들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고된 아침을 '죽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사는 이야기, 종일 아이 재울 생각만 하다 막상 잠든 아이를 보면 밀려오는 죄책감 같은 것....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교회를 느낀다. 엉뚱하게도 내게 교회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사람들 곁에 내가, 내 곁에 이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교회를 느낀다.

나는 교회의 딸이다. 이건 추상적 표현이 아니다. 태어나보니, 교회의 딸이었다. 어릴 적에 누군가를 따라 동네 우체국에 간 적이 있었다. 우체국에는 전화국도 함께 있어서 교환수 언니 한 명이 전화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으로 동네 전화를 다 연결했다. 나를 보자마자 "79번!(우리집 전화번호) 교회집 딸이네!' 처음 듣는 표현이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날 보고 "목사님 딸"이라고 하니까. 교회집 딸이라... 그러면 절집 딸도 있겠고... 여하튼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었고, 목사 딸로 불렸던 나를 부르는 다른 말은 '교회집 딸'이었다. 이렇게 정말 나는 교회의 딸이다. 자랑과 자부심이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때로 많이 부끄럽다. 좋은 교회 좀 소개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교회가 없다. (아는 좋은 교회가 없어요...)

모임을 모두 마치고 엄마빠와 아기를 태운 차가 하나 씩 골목을 내려간다. 안녕, 안녀~엉!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안녀~엉! 한 대씩 떠나보내는 중 남편이 "꼭 명절에 큰 형님 집에 온 동생들 보내는 분위기예요."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집사님 가족과 우리 부부, 또 다른 형제님 한 분이 골목 양편에서 서서 인사를 하는데 따뜻한 것이 꼭 가족모임 이후 같았다. 카시트에 폭 싸인 아기들 때문인지, 고기로 꽉 채운 위장이라서인지, 영혼이 따뜻한 무엇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교회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영성을 배우고 있으니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제도로서의 교회에는 무엇도 희망하지 않는다. 체험으로서의 교회를 배워가고 있다. 정해진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존재하는 교회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친밀감과 연민과 기쁨이 생겨나는 곳(또는 때)이다. 연구소 모임에서는 자주 체험으로서의 교회가 선다. 거부할 수 없는 친밀감이, 사랑이 사람들을 묶는다. 기쁨보다 슬픔, 간증 나눔보다 실패의 고백인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체험으로 예배는 그래서 더 성공이다. 체험으로서의 교회는 이제 내 일상에 흔하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교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다 깨달았다.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젊은 부부란 없었다. 몇 년 전 <신혼부부 세미나>를 진행할 정도가 되었고, 이번에 모여 사진을 찍고 보니 '이렇게 많았어?' 싶은 것이다. 조용히 이렇게 무엇이 자라고 있었구나. 게다가 최근 등록한 두 두 커플이 함께 초대되어 왔는데. 이들은 JP와 나의 젊을 날을 함께 했던, 교회에의 열정이 순수했던 그 어느 날에 함께 했던 이들이다. 사랑하고 실망하고 배신당했던 교회생활의 역사를 함께 했던 이들이 저 사진에 다 있다. 저 사진 속에 교회가 있다.

J집사님 부부가 참 귀하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낯선 사람을, 초대하고 베풀면 다시 초대해서 되갚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 키우며 살아내기에 바빠 내놓을 것이 없는 여유 없는 사람을, 한참 어린 사람을 초대해준 집사님이 교회를 열어주었다. 성령님께서 이날 이 순간 잠시 내 마음에 교회를 열어주셨다. 메마른 땅에서 잘 견뎠다고 토닥토닥해주시며, 교회는 여기 있으니 사랑을 포기하지 말고 자꾸 발견해가라고 하셨다.

논문과 써야 할 원고, 연구소 지도자 과정을 위해 "읽어야만 하는 책"이 늘 쌓여 있지만, "읽고 싶은 책" 없이 지내기는 어렵다. "읽어야만 하는 책" 역시 알고 보면 다 좋아서 읽는 것이긴 한데, 성격 상 '의무'의 흔적만 있어도 못 견디는 그런 취약함이 있다. 신형철의 시화詩話집 『인생의 역사』는 얼마나 꿀 같은지. 숨 쉴 틈으로 한 편씩 읽기 딱 좋은 시와 짧은 글로 적잖이 위로를 얻고 있다.

여기에 더해 2년 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눈풀꽃>이란 시로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던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 세 권을 한꺼번에 사기는 그렇고 『야생 붓꽃』을 먼저 주문했다. 주문하려고 보니 추천사를 신형철 선생이 썼네. 올 가을은 신형철인가 보다! 길고 길었던 화요일 늦은 밤, 아프고 텅 빈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야생 붓꽃』이 도착해 있을 테니까. 한가닥 위안의 빛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뭐가 묻었나? 설마... 한 귀퉁이가 훼손된 책이 왔다. 혹 종이 조각이 붙은 것일지도 몰라, 괜한 희망을 걸고 비닐포장을 뜯었으나 역시였다. 하루 종일 참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말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 고통을 본다. 고통을 유발한 악도 본다. 그 부조리함이 형언되지 않아서 말도 못 하고 울지도 못했다. 가해자는 오늘도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흔들며 권력의 춤을 추고 있다. 교회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학교에 간다. 

어쩌자고 저녁 학교 가는 길이, 학교 식당의 저녁 식사가, 스치는 사람들이, 자아도취에 빠진 작은 권력들이... 자꾸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 꾹 참고 집에 왔건만, 마지막 소소한 절망 하나가 남아 있었다. 냉정하고 무심하게 쪼인트를 날려 애써 버티던 다리를 꺾어버렸다. 파본 『야생 붓꽃』. 파손된 모양 자체가, 오늘 밤 펼쳐 읽을 수 없다는 이 소소한 절망 하나가 견딜 수 없게 서러웠다. 얼마 전, 가슴뼈가 빠개질 것 같은 꿈을 꾼 날이 있었다. 잠을 깨고 나서도 가슴 언저리가 아팠었다. 하고픈 말을 할 수 없는 서러움에 벽을 붙들고, 그러다 가슴을 쥐어짜며 울던(아니 울지도 못했던) 꿈이었다. 치유 글쓰기를 시작한 어간이었다. 그때 그 꿈속의 통증 비슷한 통증, 또는 서러움을 안고 잠에 들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하나님, 난 공평하신 하나님이 싫어요. 실수 없으신 하나님도요. 그냥 제 편 돼 주세요. 저를 좋아한다면 제 편이 되셔야죠. 편 들어준다고 저 버릇 나빠지고 그러지 않아요. 그냥 다짜고짜 편들어 주세요. 가진 것 없고 억울한 자매들 편 들어주세요. 불공평하고 치우친 하나님 말이에요..."라는 말이(어쩌면 기도가) 툭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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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갯불에 잡채를 해봤다. 집에 오는 길에 재빠르게 장을 봤다. 당근 하나, 시금치 한 단,  파프리카 하나를 샀다. 당면을 삶고 야채를 따로 볶는 과정 없이 막막 만들었다. (간편 잡채 만들기 영상을 여러 번 본 터라 그냥 막 만들어졌다.) 딱히 밥 생각 없었던 채윤이는 금요 기도회 반주하러 금방 나간다더니 '잡채'에 낚여서 미적거렸다. "오, 잘했는데! 딱 잡채 맛이야!" 하면서 산더미 같은 잡채를 먹어 치우고 나갔다. 그렇지! 잡채가 잡채 맛이면 된 거지! 스터디 카페에서 돌아온 현승이는 잡채밥 산더미를 해치웠다. 셋이서 각 '일인일산더미잡채' 했더니 JP 몫이 없네. 금요기도회 마치고 와서 잡채를 먹어봐야 배만 나오니까. 

 

괜히 갑자기 잡채를 한 게 아니다. 전날 반찬가게에 갔는데 예의 그 반찬가게 식 호객 행위가 있었다. "잡채 한 번 잡숴봐. 금방 해서 맛있어요." 시식 한 입 했는데 과연 맛있었다. 그런데 너무 비싸. 코딱지 만큼 놓고 오천 원이라니. "잡채는 안 하셔?" 하는 압력을 뿌리치고 나왔더니 결핍감이 남아 있긴 했던 것. 하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오전 일정이 천안에 있는 대안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작가의 삶, 글쓰기를 주제로 초대를 받았는데  큰 기대가 없었다. 전업 작가도 아니고, 청소년들에게 읽힐 책을 쓴 것도 아니고. 막상 가서 얘길 나누다 보니 준비되지 않은, 그러나 내 안에 있던 얘기가 나와서 신이 났다. 대안학교 친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훈련된 태도인 것 같은데, 질문을 잘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글감은 어디서 찾으세요?

주로 언제 글을 쓰세요?

책을 쓰면 돈은 얼마나 벌어요?

책 한 권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요?

글쓰기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글감은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지금'이라고 말했다. 일상, 지금 이 순간이 글쓰기의 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당장 천안까지 오는 동안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곧 마감인 글에 쓸 좋은 소재를 얻었다고 했다. 매 순간이 글감이라고 했다. 마지막 질문을 하라고 했더니 "인생의 가치를 어디서 찾으세요?"란다. 오호, 이 친구들 내공 보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다. 인생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소중하게 누리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지금 친구들과 글쓰기 얘기하는 이것이 내 인생의 가치라고 했다.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고 또한 진실이다. 내 글쓰기는 순간순간, 즉 일상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에서 나온다. 특히 실패! 그리고 존재에 달라붙은 결핍과 상실의 감각들. 친구들의 질문이 글 쓰고 사는 나를 돌아보는 자리에 세웠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잡채:JOB을 갖고 세상의 필요를 우는'이었다. 프레드릭 뷰크너의 소명에 대한 정의에서 따왔지 싶다. 집에 오는 길에 재빠르게 장을 봐서 번갯불에 잡채를 만든 건 바로 이 'JOB채'에서 불러일으켜진 식욕 또는 창작욕이었다. 채윤이가 갑자기 잡채를 왜 하냐 묻는데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오전에 갔던 강의 제목이 잡채였어. 그래서 잡채를 만들었어...."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글감을 얻는 것도,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도 지금 이 순간이라는 뜻이 담긴 지금 이 순간의 잡채이다. 먹고 없어지면 다음 사람은 먹을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의 잡채이다. 

 

 

며칠 전 점심에 JP과 싸우느라 맛도 모르고 먹었던 음식이 '편백나무 찜'이다. 그 와중에 "나중에 집에서 해야지." 마음의 레시피로 담아 뒀었다. 편백나무로 된 찜기가 씬 스틸러였는데, 요리는 간단하다. 찜기 위에 숙주 깔고 우삼겹을 올려 10여 분 찌면 되는 것. 음식값의 반이 편백나무 찜기 값인지, 숙주와 고기는 얇게 펴놓은 정도였다. 찜기 값을 식재료로 몰아주는 방식으로 양에 승부를 걸어봤다.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온라인 수업에 돌입한 수험생, 그리고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백수생 둘이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둘 중 누가 "이거 술안주 아냐?"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유명한 짤, 이선균이 거품 반 맥주 반으로 따르는 그 장면에서 함께 먹는 게 이거랑 비슷했었다. 겨울이 오니 <나의 아저씨> 정주행 다시 가줘야 할 때가 되었는데... 고기 돌려담으면서 채윤이랑 '지폐 돌돌 말아서 만든 케이크 같다'는 얘길 했다. "부모님들이 그거 좋아하잖아. 엄마도 원해? 그런 케이크 좋아?" 안 좋겠냐? 돈인데! 모든 음식에는 수다가 있다. 오늘 먹은 편백나무 찜에는 편백나무가 없고, 저번에 싸우고 먹은 편백나무 찜엔 수다가 없었다. 뭐 하나 빠진 음식도 나름 먹을만 하고, 뭐 하나 빠진 시간과 경험도 두고두고 곱씹을 만하니, 괜찮은 일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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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그만하라고 했잖아.
가르치듯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기분 좋아?
설명하고 가르치는 거 싫어하잖아.
토요일은 설교준비 하니까 말 못 하고.
주일은 설교하고 힘드니까 말 못 하고.
월요일은 긴장 풀고 느슨해져야 하니까 말 못 하고. 언제 말해?
그냥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해도 되잖아.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였어.
그럼 그렇게 말하는데 잘 들어져?
도와주고 싶어서 하는 말이었다고.
상투성이 악이야. 한나 아렌트가 말했어.
악이라니! 그런 말을 함부로 해?
베드로한테 사탄이라고 하는 거랑 똑같애.
(침묵.......)
아우, 기분 나뻐.
나도 기분 나뻐.


월요일, 기분 좋게 걸어서 보정동 카페거리로 점심 먹으러 갔다가, 맛있는 편백나무 찜을 앞에 두고 설전을 벌이고 말았다. 누가 쏜 총알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피차에 쏘았다. 기분 좋게 식당에 들어갔다가, 말 한마디 없이 먹고 나왔다. 한 몸처럼 가깝고 친밀했던 사이가 1km로 멀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커피 마실 거야? 됐어. 집에 갈 거야. 스콘 사 가지고 집에 갈 거야. 나란히 걷지만 마음은 그새 2km 멀어져서 퉁퉁퉁퉁 걷는 길이었다. 탄천 길 버리고 산길을 선택했는데, 어머 산 입구 공원에 단풍이 왜 이리 예쁜 거야? 감동인데, 뚱한 얼굴에 감동을 담기는 그렇고... 카메라 들고 사진 찍어댔다. 예쁜 풍경 담다 보니 표정이 자꾸 풀리려고 해서 민망하다. 어, 새다! 박새로 추정되는 작은 새 두 마리가 폴짝폴짝 놀고 있는데 표정관리는 다 틀렸다. 헤벌쭉.... 그렇게 단풍 아래서 머물고 다시 걷는 길에 쓰윽 손을 잡아 버렸다. 새는 내게 하늘의 메신저인데, 이 순간 사랑에 깨어나라고 하시는 그분의 메시지인데 거부할 수가 없다.

손 꼭 잡고 집에 와 마음 상한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은 스콘과 함께 커피를 마셨다. 서쉐숵 목짠님께서 이태리 여행에서 사다주신 에스프레소용 원두로 모처럼 모카포트에 커피를 만들었다. 다시 마주 앉으니 조금 민망하고, 아까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스콘이 맛있고, 커피가 좋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었다.

위의 사진은 가을 초입의 어느 비 오는 월요일에 운치 있는 카페에서 달달했던 순간이다. 달달한 순간에 읽기 딱 좋은 책 제목이 <악>이었다. JP의 책이지만, '악'은 우리 둘 모두 관심 있는 주제이다. 악에 관한 많은 책 중 내겐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 만큼 깊이 있고 실용적인 책이 없다. 성경만큼 가까이 두고 있는 책이다. 해마다 연구소 지도자 과정에서 함께 읽는 책이기도 하고. 마침 이번 주 지도자 과정이 이 책 나눔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 상담했던 스캇 펙은 악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며 대부분은 그냥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더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악을 치유하려는 씨름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최대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하여 두 유형의 악인을 구분한다. 하나는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 또 하나는 본질적으로 악에 먹혀 추락한 자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늘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 앞에 선다고 생각한다. 미끄럽다. 그 길이. 여차하면 미끄러져 들어간다. 악에 대한 여러 정의 중 "악한 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생명과 성장을 거스르는 일에 자신을 헌신한다"는 말은 연구소 이름에 '성장'이라는 말을 넣은 이유이다.

사랑은 행복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두 사람이 성장하려면 투명한 소통이 있어야 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화해한 상태"에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단풍나무에서 노닐던 두 마리 작은 새는 내 입으로 뱉은 말들을 순간 떠오르게 했다. 말이 아니라 태도를 생각나게 했다고 하는 게 맞다. 늘 '화해한 상태'를 유지하고, 언제든 화해하려 하는 사람은 JP이다. 나는 어떻게든 싸우려 하고, 더 싸우려 하는, 화해할 수 있는 상태에서 더 강퍅해지는 그런 부류이다. 내 약점이다. 약함이 여차하면 악함이 된다. 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된다. 약함과 악함의 기로에서 어설픈 '성장'을 선택하는 것이 덜 악한 자로 사는 노하우이다. 내게는 그렇다.

무화과를 왜 사?

 

채윤이랑 장을 보는데 무화과를 사자고 한다. 무화과를 왜 사? 처음 클릭된 내 마음이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고, 채윤이가 사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냥 먹고 싶다는 것이다. 먹고 싶다는 것보다 정직한 이유가 있으랴. 그래, 사!라는 반응에 "어, 진짜?" 하는 게 조금 슬프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아이들이 뭘 사고 싶다거나 욕구를 드러내면 나는 일단 빨간불을 켜 들었다. "왜애? 그게 지금 필요해?" 엄마가 내게 그러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다. 그걸 인식한 순간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으나 아이에게 가 닿는 건 몸의 언어이다. 표정과 세포로 말하는 것을 먼저 들었다. 그 행동이 맞고 틀려서가 아니라 엄마가 전적인 지지를 하지 않으니 아이는 불안한 것이다. 내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렇게 심긴 무의식적 메시지가 "네가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아!"라서 그 메시지를 지우는데 긴 시간이 걸렸는데 내 아이에게 그러고 있었다. 그러지 않겠노라 결심한 세월이 짧지 않지만, 내 몸에 새겨진 것이 아이 몸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래, 사.

 

어? 정말? 엄마 무화과 사준 적 한 번도 없잖아. 정말 사도 돼? 그렇게 무화과 한 박스를 사왔다. 아이의 몸에 새겨진 "안 돼! 필요 없는 것을 왜 사? 네 선택은 옳지 않다!" 트라우마는 이런 작은 경험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그렇게 무화과 한 박스를 사 와서 이렇게 저렇게 먹는 동안 무화과에 얽힌 나의 이야기가 하나 씩 둘 씩 풀어져 나왔다. 무화과에 얽힌 사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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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화분 위에 감 하나를 내놓았다. 분명 연시라고 샀는데, 다른 애들 다 익어서 후루룩 먹어버린지 한참인데, 도통 물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감이다. 연시가 아니라 단감인가? 연시인가 단감인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새들 먹이로 베란다에 내놓자는 신박한 제안을 JP이 했다. 이걸 기억하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해놓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을 유혹할 수 있을까, 잘게 발라 널어둘까, 견과류와 함께 내놓을까, 일단 나도 생각 중이었다. (정말 '생각'을 좋아한다. 생각을 많이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나란 사람.)

 

토요일 오후, 황금빛 시간 골든타임을 꼭 붙들어 산책을 나갔다. 역시나 기우는 빛이 만드는 향연이란, 쌓이고 뒹구는 낙엽 위의 황금빛을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동네 아파트 큰 나무 밑을 지나, 산길 같은 공원을 지나, 민영환 선생 묘지를 지나, 남의 동네 아파트를 가로질러 탄천에 닿았다. 삐리 삐리 삐리... 지나가는 아줌마를 휘파람으로 유혹하는 새 한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있다. (그래서 산책할 때는 이어폰을 끼지 말아야 한다. 유혹을 당하고 싶으면 말이다.) 목이 빠져라 올려다보는데, 배 부분이 노란 것이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녀석이다.

 

아무리 줌으로 당겨도 노란 색은 커녕 모양도 잡히지 않지만, 여하튼 배가 노란 작은 새다. 4선 악보 맨 윗 줄에 까맣게 뭐 묻은 것 같은 그것이 곤줄박이로 추정되는 애다. 한참을 그렇게 아줌마 목을 빼놓더니 휘리릭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사라졌는데, 그 녀석 찾으러 탄천길 버리고 고물상이 있는 옆길로 살금살금 뛰어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다시 너를 보여줄 리 없지! 넌 늘 이런 식이야! 멀쩡히 제 길 가고 있는 아줌마 마음을 빼앗아 불을 지피고 사라지곤 하지. 

 

어쩐지 이번엔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유혹에 나선다. 감을 자르네 마네, 고민 집어 치우고 통째로 내놓아 보았다. 걸려라, 걸려라, 한 번은 걸려라. 곤줄박이든, 박새든, 어떤 녀석이든 걸려라.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누구든 낚일 것이다.  

 

 

 

어느 새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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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아든 어느 새

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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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

대추 말리던 바구니가 텅 빈 지 오래다. 한 바구니 가득했던 대추를 새 친구들이 죄 먹어 치웠다. 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빈 바구니는 어쩐지 치우고 싶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다. 곡물을 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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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기쁨

해 지기 직전의 빛을 받으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시간 딱딱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일이 있을 때야 어쩔 수 없지만 집에 있는데도 그렇다. 박차고 일어나 나가면 되는 것을 이것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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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두어 주 앞두고 있다. 애들 말대로 '어디 간다고 태워주고, 늦었다고 태우러 나가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부모라 큰 기대도 없다는데. 이제 와 좀 미안하기도 하고, 수능이 얼마 남지도 않아 마음의 위안이라도 줄까 싶어 때를 얻는 대로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있다. 조금 더 자겠다고 학교 셔틀 보내고, 버스 타고 가겠다고 하는 걸 운전해서 등교시키고 왔다. 2,30분 차 안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가 꿀 같다.

현승 : 엄마, 내가 윤리와 사상에서 계속 철학자들을 공부하잖아. 그게 갑자기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어.
엄마 : (잘 외우고 있다는 뜻인가? 뭐라고 반응해야 하지?) 오... 그래?
현승 : (뚱한 얼굴로) 엄마가 굳이 티맵을 또 보잖아. 가는 길이 늘 똑같다고 하는데도 굳이 티맵을 보잖아. 그럴 때 답답한데... 그건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하지 말란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고치는 수밖에 없어.
엄마 :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미열이 나지만) 스토아학파 말하는 거야? 불편심?
현승 : 아니. 부동심. 아파테이아(apatheia). 정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파테이아가 딱 떠올라. 엄마가 티맵을 다시 보든 안 보든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난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괜찮아져.
엄마 : (뭔가 자존심 상하고, 대견하고) 오... 생활 속 철학인데!
현승 : 철학자들의 말이 진짜 다 우리가 조금씩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게 많아.
엄마 : 맞아, 철학은 제대로 살고 싶은 모든 사람이 다 각자 가진 생각이기도 해.
현승 : 그래서 철학사를 배우는 게 참 좋아. 크게 이해하게 되거든.
엄마 : 오, 엄마도 그런 생각 하는데... 조각조각 영성 공부를 했잖아. 영성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더라고. 한 줄로 꿴다는 게... 엄마도 요즘 영성사 공부가 너무 재밌는데...
현승 : (뚱하게)그래. (철학, 아파테이아 얘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출발할 때 굳이 티맵 한 번 더 보느라고 시간 보내지 말자고, 진짜 짜증 난다고 하고 싶은 거였는데... 그 말은 귓등으로 듣고 철학 얘기만 하는 게 더 짜증 난 모양. 도통 얼굴이 펴지지 않고, 아파테이아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양)
엄마 : 현승아, 너 정말 멋있어. 이게 공부의 여러 차원이 있거든. 스토아니 에피쿠로스니 이런 걸 달달 외우는 머리가 있고, 그 의미를 알아 들으면서 외우는 게 있고, 그 의미를 알아들으면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지식 너머 지혜야. 상황을 읽는 지성과 자기 성찰 능력이 있어야 지혜가 되는데... 우리 현승이는 그걸 다 갖춘 것 같애. 아흐, 우리 현승이 정말 멋있어! 나는 청년들 중에도 이렇게 생각 있는 청년은 거의 못 만나봤어.
현승 : 그건... 아, 아니야.
엄마 : 왜? 그건 니가 엄마 아들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현승 : (계속 뭔가 못마땅)응.

이후 스토아, 에피쿠로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흄... 짧은 철학 토크를 했으나 '굳이 티맵을 보는' 엄마에 대한 짜증은 해결하지 못하고 하차하신 듯하다. 아파테이아에 이르지 못했다. 철학, 아무리 배우고 깨달아도 삶으로 도달하는 건 녹록치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수능 철학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꼬마 철학자는 이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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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가슴뼈가 빠개지는 통증을 느끼며 깼다. 울었는데 울 수 없었다. 울 수 없는 울음을 울다보니 가슴뼈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잠을 깼는데도 가슴팍이 얼얼하다. 오전 내내 꿈에 머물다 보니… 할 말 많지만 말하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하위 자아들이 가엾어졌다. 목소리를 갖지 못한 모든 자아들이. 내 안의, 네 안의, 우리 안의.

밤 늦게까지 일정이 있어서 늦게 출근하겠노라는 남편과 채윤이와 나를 위해서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어서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었다. 뭐라도 먹어서, 먹여서 힘을 내게 해야지! 올리브유에 구운 가지는 언제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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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2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2017>을 보았다. 80대의 제인 폰더(Jane Fonda)와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주인공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먼저 빠져든 것은 노인이 된 두 거장의 얼굴과 몸이었다.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명배우도 늙는구나! 도발적인 대사에 귀가 커졌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애디 무어 역을 맡은 제인 폰더가 루이스 워터스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하는 말이다. 영화 속에선 오래 알고 지내던 동네 할아버지에게 동네 할머니가 불쑥 찾아가 하는 제안이고. “섹스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란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혼자 사는 두 노인이 외로운 밤을 견디기 위해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침대를 공유하면서, 불면이 숙면이 되고 요란하지 않은 우정 또는 애정이 무르익는다. 우리 문화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볼수록 묘하게 공감이 갔다. , 나이 들어 혼자 산다는 것은 저렇듯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겠구나. 긴 밤을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은.

 

최 선생님 댁에 처음 방문하던 때, 저녁까지 먹고 더 놀다 가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부담스러워하던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당신이 부담을 주는 줄도 모르고 제안을 거절하고 가는 이들에게 서운해하는 것이 최 선생님답지 않아서 의아했었지. 혼자 지내야 하는 밤, 그 외로움이 실감 나게 다가온다. 최 선생님도 최 선생님이지만, 누구보다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밤이 더 힘들어.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잠이 오면 무슨 걱정이 있겠니. 잠이 들어야 말이지. 밤에는 시간이 더 안 간다.”라고 하시는 어머니는 잠을 위해, 아니 밤을 위해 약을 드셔야 한다. 노년은 이렇듯 쓸쓸하기만 한 것인가? 인생의 마지막은 밤을 견디는 시간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내가 지금 만나려는 노인의 밤은 정말 어떨까? 60대 초반에 혼자 되어 80대 중반이 된 이 노인의 밤은.

 

노인의 밤은 정말 어떨까

 

선생님, 영화 보고 왔어요. <밤에 우리 영혼은>. 보고 왔으니까 말씀해주세요.

     무슨 말씀?

, 왜 그 영화 보시고 내 마음이 저랬구나싶어지셨다면서요. 언젠가 혼자 살 때가 온다고 하시면서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부부관계 너머에 뭐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그랬어? 뭐가 있다고 했을까?

, 진짜 선생님. 낚으신 거예요. 뭐예요?

     하하, 낚았다고 하는 거구나. 그래, 영화 한 편 낚았수다.

아니, 선생님. 영화가 아니라 제가 낚였다니까요. 아무튼, 영화 잘 봤어요.

     그래, 어떻습디까? 공감이 돼?

. 공감이라 해봐야 진정 공감이긴 할까 싶지만요. 아니, 공감이라기보단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까?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초반에 제인 폰더가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할 때, 무슨 소리야?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그 대사가 마음에 남아 있어요. 뭔가, , 그렇겠구나. 하는 느낌이요.

     뭐가 그렇겠구나~, 싶다는 거야?

.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됐어요. (실은 영화 보는 내내 최 선생님 생각도 많이 했는데 그걸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거든요. 가족이 함께 어머니 뵙고 올 때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혼자 서서 인사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늘 아파요. 매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의 느낌이 있어요.

     흠. 그렇지. .

선생님은 그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해요.

     그 댁 시어머니나 나나 다를 바 없네. 날 보고 가는 우리 아들네도 정 선생 같은 마음이겠지 싶고. 영화가 이런 혼자 사는 노인네 마음을 잘 읽어줘. 내게도 저런 마음이 있겠구나 싶어. 영화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아주더라니까.

 

생각해보면 이제 선생님과 대화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 술술 말이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실까, 헤아릴 필요 없고 포장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듣게 된다. 전에 제주 공항에서의 대화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불편한 감정도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 있고, 거의 받아주신다. 이 연세에 어떻게 이렇게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유연하실까 싶다. 무엇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시는 태도는 참으로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순간엔 좀 어쩔 줄 모르겠다. 민망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쓸쓸한, 외로운. 같은 형용사로는 부족한, 뭐랄까 노년의 실존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솔직히 영화가 읽어냈다는 선생님의 마음, 쓸쓸한 노인의 마음을 듣고 싶지가 않다.

 

아아. ,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던 제 마음을 영화가 알려주고 소설이나 드라마가 보여줄 때가 있어요. , 그러셨구나.

     이 사람 왜 그래? 뭘 그러셨구나, . 정신이 어디 다른 데에 가 있는데. 허허.

(어휴, 정말 귀신 같은 최 선생님!) 헤헤, 선생님. 다른 데 가긴요. 선생님도 모르는 마음이 있으세요? 왠지 선생님은 세상 모든 사람 마음 다 아실 것 같은데요. ! 다른 사람 마음은 다 알아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그렇지. 물론! 나는 젊어서부터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었어요. 공부도 일도 혼자 하는 게 편했고. 남편 먼저 천국에 가긴 했지만, 실은 이전의 결혼생활 중에도 상당히 독립적이었어요. 나는 내 할 일로 늘 바빴고, 남편도 남편의 일이 있었으니까. 언젠가 말했었죠?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비슷한 시기에 천국에 보내고, 삶이 무너지고, 그때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후 자연스레 혼자 지내면서도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

아아, 그러시군요! , 그러고 보니 그래 보이세요. 뭐랄까 어쩐지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감정적인 사람들이 외로움도 더 많이 느끼겠지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소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내가 외롭지 않았던 게 아니라, 안 그런 척 나조차도 속이고 살았던 거야. 외롭지 않으려고 얼마나 일을 만들게요. 내가 이 나이에도 집에 상담실을 차려놓고 상담을 하고 있잖아. 외롭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야. 자존심 때문에 내 외로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어머나, 선생님. 너무 솔직하신 거 아녜요?

     내가 정 선생 앞에서 솔직해야지 누구 앞에서 솔직하겠어. 아들 며느리 앞에서 나 외롭다, 할 수 있겠소?

아들 며느리 앞에서는 하시면 안 되나요? 저의 어머니는 외롭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어서 밥을 못 먹으니 건강이 안 좋아진다, 하시는데요.

     자존심이라니까! 나 자존심 강한 할머니야. 정 선생한테만 무장해제 한 거라고.

헤헤. 정말 선생님.

 

몸의 외로움

 

     그런 면에서 그 영화가 참 좋더라고. 미국 사회라고 쉽게 받아들여질 설정은 아니야. 혼자 사는 노인네들이 밤이 외롭다고 함께 밤을 보내면서 우정을 쌓는다는 게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이지. 하지만 그 설정을 가능하게 하는 외로움만은 진실이야. 밤이면 더 외롭고, 그 외로움은 몸의 외로움이지.

몸의 외로움이요?

     그래. 몸의 외로움! 지난번에 정 선생이랑 성에 관한 얘기를 신나게 하고 났더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혼자 사는 외로움은 혼자 자는 외로움이구나. 그래서 그 영화 생각이 났어. 몸이 그저 몸이 아니잖아요. 인격, 내가 걸어온 역사, 감정과 욕구, 생각을 담고 있는 게 내 몸이니 몸은 그냥 살덩이가 아니야. 지난번에 정 선생이 그런 말을 했지. 인간이 몸으로 나누는 최고의 친밀감 표현이 섹스라고. 접촉의 욕구, 스킨십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 하나잖아요. 친밀감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라고!

!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몸의 외로움이요. 맞아요. 그렇다면 모든 외로움은 몸의 외로움이에요.

     알아들었지? 그 왜 애착 이론 중에서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의 실험 알지요?

알죠. 모형 어미 원숭이 실험 말씀하시는 거죠? 두 마리의 어미 원숭이 모형을 아기 원숭이들이 있는 공간에 두었는데요. 한쪽은 철사로 만든 어미 원숭이이며 젖을 먹을 수 있게 해두었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털로 만든 모형이고요. 헌데 아기 원숭이들이 젖을 먹어야 할 때는 철사로 만든 어미에게 가지만 그 외 대부분 시간엔 부드러운 털을 가진 쪽에 가서 놀더라는 거요.

     그래, 스킨십이 필요한 거예요. 몸으로 부비고 부대끼며 친밀감을 확인하는 것이 몸을 가진 존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야. 우리는 몸이라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지 않아요?

, 선생님. 저 따끈한 경험이 있어요. 코로나에 걸렸었는데요. 제가 가족 중에 제일 먼저 걸렸어요. 재택 격리가 막 시작되던 때여서 화장실 있는 안방에 딱 격리되어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 널따란 침대가 너무 넓게 느껴지는 거예요. 평소 남편에게 좀 떨어지라고 엄청 구박하거든요. 제발 넓은 침대를 넓게 편하게 써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소원성취했지 뭐예요. 넓디넓은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데 식구들이 식탁에서 식사하는 소리가 들려요, 시답지 않은 농담에 웃는 소리,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기만 하고,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데 영 다다를 수 없는 가족들의 몸이 그렇게 그리운 거예요. 침대 이렇게 넓은데 저쪽으로 좀 가서 떨어져 누우라며 남편을 구박했던 것에 회개가 되더라니까요.

     내 말이 그 말이야. 평생 강의하고 상담하면서 정서적 유대, 애착, 스킨십에 대해 얼마나 많은 말을 해댔겠소, 내가. 지금이야 심리학 이론도 워낙 발전하고 섬세해졌지만, 내가 공부하던 초기에는 할로우 실험을 정말 많이 언급했거든. 말로는 그렇게 가르쳤지만, 정작 그 의미를 나는 몰랐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몸의 언어뿐이니 많이 안아주라, 어쩌라 부모교육도 하고 그랬지만. 정작 내 아들에겐 그러지 못했고. 남편과도 마음이야 정이 있었나 모르겠지만, 몸으로 살가운 기억은 없어요. 우리 세대 부부가 다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말로만 떠들어댄 알맹이 없는 가르침이었지. 나는 살지도 못하는 걸 가르치며 그걸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

, 선생님. 정말 너무나. 선생님은 정말.

     무슨 말이야. 왜 그래요? 말을 하다 말고 하고 잘라 먹고, 잘라 먹고 그래.

아니요. 그런 걸 인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잘 못 봐서요. 어르신들께서 잘못을 솔직하게 말씀하시고 인정하시는 것 잘 못 봐서요.

     에이, 부끄러운 얘기지. 내가 얼마나 머리로만 살았고 교만했는지 많이 생각해요. 신앙 깊은 친구 하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그야말로 신앙이 깊은 친구이거든. 강직하고 무엇보다 의지가 강해요. 젊은 날에 일찍 일에서 물러난 남편 대신 집안을 일으키고 자녀들 잘 키워내고, 그걸 다 신앙의 힘으로 했거든. 남편 사별 후 그렇게 강직했던 친구가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거예요. 제발 출근하는 남편과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집에 혼자 좀 있어 봤으면 싶다고, 온종일 남편과 붙어 있는 게 지긋지긋하단 얘길 평생 했거든. 그랬던 사람이 혼자 지내면서 외로움에 못 이겨 밤마다 술을 한두 잔씩 마셨나 봐요. 그 술이 과해져서 중독 수준이 되었다고 친구 아들이 도움을 청해왔어요. 신앙의 힘으로 삶을 버티던 친군데, 팬데믹으로 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에도 못 가는 상황도 작용했을 거예요. 친구 얘길 들어보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 남편 코 고는 소리는 물론 숨 쉬는 소리도 듣기 싫어서 사별 전에 이미 각방 쓴지는 오래였대. 혼자 살다 보니 사람 몸의 온기가 이렇게 필요한 거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고, 자식들에게 알려져 부끄럽기까지 하다며.

아아.

     그런데 나는 차라리 이 친구가 정직하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 몸이 정직하달까. 그 와중에 <밤에 우리 영혼은>을 봤고, 마침 지난번 정 선생 강의하고 우리 집 왔을 때 나눴던 성에 관한 대화 이후에 내가 참 나를 속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 머리로만 살아온 거예요. 몸처럼 정직한 것이 없는데. 애정과 친밀감은 몸으로도 내보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왜요, 선생님. 이제라도 얼마든지 표현하실 수 있잖아요. 아드님 가족이 선생님께 극진하시고 특히 손녀딸들과 허물없이 지내시잖아요.

     그게 아니야. 90년이 다 되어 가는 몸이 굳어버려서 쉽지 않아. 이제는 노인네 냄새날까, 가까이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기도 하고 말이야. 가만 생각해보니 손녀들이 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스킨십 하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 이번에 깨달았어요. 그게 다 내가 살아오고 관계 맺어온 결과야. 내 몸에 스킨십의 습관이 없어. 친밀감을 표현하는 몸의 언어로 치면 나는 장애의 수준이라니까. 그러니 외로움이 있다 한들 그것이 외로움인 잘 감각도 못한다니까. 그래서 차라리 내 친구가 정직하다는 거예요. 다 늙어 뒤늦게 깨달아졌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하하. 나 자존심 강하다니까. 불쌍한 노인네 취급 사양이오!

불쌍이라뇨! 아니에요. 불쌍은요. 실은 선생님, 그 영화 보면서 저의 어머님 생각, 그리고 선생님 생각도 많이 났어요. 로버트 레드포드가 혼자 식사하고 설거지하는 장면, 티브이 뉴스 켜놓고 신문 보는 장면. 실감 나게 다가오는 면이 있더라고요. 어머니는 지금 어떡하고 계실까? 선생님은 뭘 하실까?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특히 저의 어머니께서 밤에 시간이 너무 안 간다, 혼자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다, 하는 말씀들이 깊이 이해가 됐어요.

 

몸으로 함께 있는 '때'를 누리기

 

     아하. 그래서?

그래서요? 그래서. , 그런 생각까지 해봤네요. 저의 어머니가 언어 비언어적으로 외롭다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가족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턱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마음이야 그러시지만, 막상 같이 살면 분명 불편한 부분이 있을 거고, 저도 감당할 자신이 없고요. 결국, 서로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요 며칠 모실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어요. 친정엄마와 비교도 되고요. 엄마는 90이 넘으셨는데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거든요. 동생네 가족과 사시는데 늦게 본 손주들의 왁자지껄 속에 계세요. 엄마의 건강이 거기서 오는 것 아닐까 싶어요. 선생님 친구분이 말씀하셨다는 그 사람의 온기 말이에요.

     반대!

?

     나는 반대라고. 어머니 몫으로 두어요. 같이 산다고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 어설프게 착한 며느리 하다가 괜히 정 나지 말고. 친정어머니와 단순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 그렇죠? 제가 너무 앞서갔죠? 단호하게 말씀해주시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그 영화 보고 공감이 될수록 죄책감이 함께 들었거든요.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라고 영화 낚시질을 한 게 아니에요. 영화 낚시질이라고 했던가? 뭐라고 했지? 낚았다고 했나? 아무튼, 남의 외로움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외로움이나 잘 간수해요. 하하.

, 선생님 저는 외롭지 않아요. , 그렇진 않구요. 외롭죠. 외롭긴 하지만, 그거야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있는 외로움 정도죠. 갑자기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하하하. 그 정도는 외로워요.

     내 말이! 제 몫의 외로움이 있는 거예요. 노인은 노인의 몫이 있는 거고. 어머니가 당신네 가족과 함께 살면 그 외로움이 가실까? 그렇지 않을걸. 평생 만들어온 외로움의 방식이야. 특히 몸으로 만들어온 방식이니까. 내가 그런 것처럼 말야. 자식이고 누구고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영화에서도 노인네 둘이 서로 보듬잖소. 그마저도 오래 갈 수 없고. 지금의 외로움은 살아온 날의 결과야.

아하, 좋은 노년은 없다, 좋은 중년의 결과라고 하셨던 말씀 생각나네요.

     그걸 기억하라는 거야. 그 영화 보고, 나나 당신 시어머니 보면서 늙어 외로울 걱정 미리 가져다 하라는 것 아니야. 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누려. 나처럼 어리석게 몸뚱아리 다 늙어 깨닫지 말고요. 가까이 있는 사람 보듬고, 손잡고, 안아주고 하면서 누려요. 늙어 외롭게 지내는 거? 너무 걱정하지 마. 살만해. 내가 지난번에 정 선생과 성에 관한 얘기 나누고 크게 깨달았어요. 이런 가정은 해볼 필요도 없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남편 죽기 전에, 몸으로 함께 있을 때 그 순간을 누리겠다 싶어요.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몸으로 더 많이 부벼주고 말야. 어쩌면 그 아쉬움 때문에 더 외로워. 내 친구 말이에요. 그렇게 싫었던 남편 없어졌는데 더 외로워진 것 봐요. 아쉬움과 후회가 우울이 된 거지 뭐야. 그러니 인생의 밤이 오기 전에 남편과 몸으로 나누는 사랑을 충분히 누리라고. 의무방어전이든, 꼴 보기 싫은 남편이든 지금을 누리는 것 외에는 우리 외로움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어. 이미 잘 하는 것 같지만! 영화는 이 얘기해주고 싶어서 낚은 거라우.

 

김난도 교수의 책에 나오는 인생 시계라는 계산이 있다. 80세를 수명으로 하여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한 것인데, 80을 훌쩍 넘기신 선생님은 계산대로라면 인생의 시계 밖에 계신 거네! 깊디깊은 밤의 시간을 살고 계신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나는 오후 412분이다. 밤의 어둠이 오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한다.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본다. 선생님과 얘기 나누고 보니 밤에 우리 몸은이라 읽어도 의미가 통하지 싶다. 굳어버린 몸처럼, 세월로 고착된 관계나 삶의 방식을 노년이 되어 고칠 수는 없다. 최 선생님조차도 그럴 수 없음에 회한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서 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인생의 깊은 밤 시간은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에 가깝기에 가장 캄캄한 시간일지 모르겠다. 생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 몸과 영혼은 처절한 외로움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이 숙명일지도. 인생의 깊은 밤에 든 지혜로운 노인의 말, 마주하기 민망한 쓸쓸함을 가진 노인의 말을 무겁게 마음에 심어본다. 몸의 장막이 무너지기 전에, 오늘, 여기, 몸으로 부대끼는 사람들을 몸으로 사랑하겠다.

 

<시니어 매일성경> 2022년 11, 12월호 기고글

2022년 10월 25일.
아침 운동 갔다 돌아오는 길, 고개를 푹 떨구고 걸는 중이었다. 짹짹짹짹, 귀를 잡아 이끌어 위로 향하게 하는 소리이다. 새 한 마리가 혼자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울음을 내뱉고 있다. 왜, 왜애, 무슨 일인데? 왜 혼자 그러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가만 서서 들어보니, 울음 섞인 성토 같기도 하다. 무엇이 됐든 '혼자' 저러고 있는 게 마음이 쓰인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바로 옆 나무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둘이 대화 중이었구나! 둘이 주거니 받거니, 어는 순간엔 함께 짹짹짹짹 꽥꽥꽥꽥한다. 하나는 제자리에, 또 하나는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대화 중에 움직이는 게 예의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있으려 했는데, 둘의 대화가 끝나지 않아서 내가 먼저 털고 나왔다. 한참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탓에 뒷목이 뻐근하기도 하고...

교회 성폭력 생존자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다. 벌써 내려앉는 마음, 벌써 치밀어 오르는 뜨겁고 차거운 분노, 벌써 띵한 통증이다. 하늘의 전령이며 우리들의 선생님인 새가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라고. 함께 쓰고, 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기억하고 떠올려 보라고. '혼자'가 아닌 게 얼마나 큰 힘이냐고. 발치에 떨어진 낙엽 하나를 주워와서 책갈피에 꽂았다.

2022년 가을과 함께 깊어질 또 하나의 W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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