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셔츠를 다립니다.

새하얀 셔츠를 입으며 역할을 입을 그를 생각합니다.
타이를 목에 매며 매일 새롭게자신의 소명에 매이는 그를 생각합니다.

예배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과 악수하고 인사나누며 역할에 합당한 웃음을 웃지 않길,
이 옷을 입고 새벽강단에 설 때 자신의 소명에만 눈이 어두워 그럴 듯한 설교연기에 그치지 않길 기도합니다.

역할 너머 참존재로만 그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환대하고 이끄는 목자되길요.

다림질 하는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마음의 힘을 넣어 기도해봅니다





새로운 교회에 와서 남편이 물리적으로 매우 바빠졌다. 너무 자주 보아온 주변의 아빠들처럼 같이 저녁식사 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고 아주 늦게 들어왔다 아주 일찍 나가는 아빠가 되었다. 오늘 교회에서 남편의 얼굴을 봤는데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았을 정도.

먹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잠깐 옷 갈아 입으러 들어오면 '뭐 먹을 거 없어?' 하며 간식을 찾는다. 애들도 과자나 간식을 찾는 편이 아니어서 집에 주전부리를 비축할 일이 없었는데 새로운 국면이다.

잠깐 들어와 커피 한 잔과 먹을 것을 찾는 남편을 위해 있는대로 끌어모아 간식을 준비하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바빠서 얼굴도 잘 못보는 이 남편에게 간식 한 번, 커피 한 잔을 주더라도 내 사랑과 마음을 깊이 담아  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론 이래야지. 더더욱 이래야지. 나도 모르게 결심이 되면서 그랬다.




목회를 하기 전부터 그랬지만 목회자가 된 이후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했다.

'목회에는 성공했는데 가정생활은 실패했다'는 말을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남편이 아닌데 좋은 목회자다' 라는 말도 있을 수 없다.
누가 그런 사람이 있다더라 해도 믿겨지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성숙한 사람은 삶의 통합을 이루는 사람이기에 목회자 뿐 아니라 정말 좋은 아빠라면 부하직원에게도 좋은 상사일 것이고, 좋은 아들일 것이고, 좋은 시민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걸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목회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강단에서 말만 번지르르 하다면 그건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교회의 비극이다.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목회자가 된 남편에에 나는 늘 높은 수준을 요구했던 것 같다.
살아보니 꼭 '교회 일이냐, 가정일이냐' 이런 식으로 양자택일의 문제로 불거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체로 교회일이 급했고, 공적인 일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아빠를 교회 일이나 청년들에게 양보하고 셋이서 쓸쓸하게 보내던 시간이 그간에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만약 당신 앞에 '교회냐, 가정이냐'를 선택할 일이 있다면 '가정'이어야 한다. 라는 전제는 늘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참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
목회자가 바빠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바빠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본인이 그렇게, 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게 목회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사는 본을 보이는 분이다.
그 분을 지켜보면서, 그 분의 아내되시는 분의 말씀을 잠깐 들으면서 그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교회냐, 가정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가정이야!' 하는 유치한 신념을 나도 모르게 버리게 된 것 같다.
바쁜 남편을 기꺼이 응원하며 격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쓸쓸하게 보내야 하는 주말, 휴일이 있다 할찌라도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응원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젯 밤에도 늦게 들어온 아빠가 모과차  한 잔 하겠다고 거실에 앉았다.
어느 새 네 식구가 조르르 달려와 아빠 옆에 둘러 앉았다.
잠깐 앉아 싱거운 농담 따먹기를 할 망정,
바쁜 목회자 아빠는 여전히 좋은 아빠고 좋은 남편이구나 싶었다.







일단 곰소항의 간장게장 얘기부터!
아무리 맛있어도 먹기 귀찮으면 맛 없는 걸로 치는 김종필씨가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간장게장 중에서 제일 맛있다" 라고 평을 한 간장게장입니다.
이것 먹으면서 '엄마가 간장게장 좋아하시는데.... 택배로 바로 부칠 수 있다는데 비싸겠지' 생각했습니다. 계산하기 직전에 슬쩍 햬기했더니 우리의 김서방이 "나도 그 생각했는데... 보내드려" 흔쾌히 말해줘서 서울로 몇 마리 바로 쏘기도 했습니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가 둘 다 먹을 거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먹거나, 너무 좋은 걸 먹으면 불편해지는 이상한 금욕주의 근성같은 걸 갖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선 '정말 맛있는 간장게장 먹어봤으니 나머지 수십 끼는 아무래도 괜찮다' 이런 심리가 작동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담양의 죽녹원에서는 그렇게 맛있다는 떡갈비가 있었는데 전 날 먹은 게장의 감흥이 채 잊혀지지 않아서인지 그리 끌리지 않았고 대통밥을 먹었습니다. 대통밥이란 그저 대나무통에 밥을 퍼주는 것 외에 아~무 메리트 없는 밥상이었구요.






순서는 상관없이 이번 포스팅은 무조건 게장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게장을 점심으로 먹고 담양에 도착한 저녁.
담양 시장에서 김밥과 컵라면 그리고 홍시를 사서 흙집 바닥에 펼쳐 놓고 먹으니 이거 좋습니다. 흙집 분위기 하며... 갑자기 거지가 된 느낌도 좋구요.






게장처럼 맛있진 않았지만 전 날 저녁 먹은 백합조개구이(사진 없음)도 먹었습니다. 그걸 먹은 덕에 다음 날은 나가사키 짬뽕과 짜장범벅으로 맛있게 떼워 봅니다. 집에 티브이가 없는 저 애들은 티브이 보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정줄을 놓은 지점이기 때문에 사실 뭘 먹어도 상관없는 상태구요.




 



2박을 했던 변산을 떠나면서 콘도 1층의 할리스에서 여행 중간 점검을 위한 조찬모임이 있었죠. 사실 여행이 좋은 건 이렇게 서로 눈을 바라보면 마음을 나눌 여유가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간간이 남매 끼리 엄마와 딸 끼리 신경전이 있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서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가족피정'의 '가족'에 방점을 찍을 수 있으니 참 좋았죠.
그래서 간장게장이 더 맛있었을 겁니다.



 



땅끝 마을로 향하는 긴 자동차 여행 길에 현승이는 차에서 쳐 자고,
채윤이랑 잠깐 나주시장에서 내려 구경을 합니다.  여기서 산 찹쌀도너츠(사진 없음)의 맛을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세게 잡아도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찹쌀도너츠가 어찌나 맛있던지.  (흠... 이 지점에선 간장게장을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 것인가)






남도 음식하면 홍어이고, 홍어하면 삼합인데....
땅끝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며 저렇레 감질나게 한 쪽이 나왔어요.
코를 찌르는 홍합, 나는 좋아하는데 귀찮아서 간장게장 별로인 김종필님은 삭힌 홍어는 냄새 꼬리리해서 별로라 하시죠.
홍어 나왔길래 표정 좀 보려고 얼른 먹어봐 얼른 먹어봐 하면서 카메라 동영상까지 들이댔는데 게장에 은혜받은 입맛이라 홍어 정도 무난히 소화해 주네요.






마지막 날 서울로 출발하는 아침의 알흠다운 식단입니다.
서울우유의 커피우유는 가끔 한 번 씩 생각날 정도로 맛이 있지요.
가볍게 아침을 먹어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올라가는 길에 김대중 대통령님의 제2의 고향 목포를 살짝 찍고 갈 것이고 거길 가면 그렇게 유명하다는 독천식당이라는 낙지집이 있다니까요.
게장에 감동했던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으로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닌 연포탕으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거예요.

 





라며 목포의 독천식당 찾아 갔는데~
갔는데~
식당은 코딱지만 하고 방금 전 관광버스 한 대에서 우르르 맛집 기행 손님들 내려 들어가셨고요. 신경이 날카로워질 정도로 배를 곯으며 기다렸지요.
그 기다림의 시간 또한 지나 결국 낙지비빔밥과 연포탕을 마주하였습니다.







솔까 그렇게 맛있진 않았습니다.
정말 죽도록 맛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죽도록 배고파서 반찬을 몇 번 리필하며 음식을 마구 입으로 쓸어 담았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정말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었던 여행이니까요.



                                                                                                           - The End -



6년을 쉬임없이 초인적인 힘으로 공부하며 사역하며 달려온 김종필씨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대충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한계를 여러 번 뛰어넘으며 지나온 시간이었음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지난 몇 달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같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 발을 내디디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딱 한 걸음씩만 내디뎌야 했습니다.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지자마자 첫날부터 몸이 고장나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회복하는데 다시 일주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저는 이 사람에게 두 개의 형용사를 기꺼이 붙여줍니다.
온유하다.  객관적이다.
많은 경우 장점이지만 온유하고 객관적인 이 사람은 많은 경우 침묵으로  감정을 정리해 버립니다.
공룡의 날카로운 이빨 앞에서도 호들갑 떨지 않고 상황의 객관성을 따지는 사람이죠.




억울한 이유로 인생의 고문을 당한다해도 자신의 위해서 구구절절한 항변을 늘어놓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저 지가 지 주리를 들고 틀어버릴 지언정요.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 예민하고, 엄살도 심한 저는 '당신 아파. 당신 힘든거야' 하며
말로 설레발을 쳐봐도 그저 이 사람 먼 곳을 바라봅니다. 먼 곳을 응시하며 뭔가를 침묵 속에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아파도 된다는 결재를 비로소 머리가 내렸나봅니다.
결재가 떨어지기 무섭게 몸이 무너져내렸고 하염없이 무너지는 몸에
'여보, 하나님이 내게 진노하셨나봐' 하면서 또 다른 죄책감까지 짊어지고는 2주를 끙끙 앓았지요.




이 사람은 목회자이기 전에 철학자입니다.
일상의 철학자이지요.
철학 없이 사유 없이 의미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의미를 크게 묻지 않고 주어진 일상을 몸으로 뛰는 삶을 잘도 살아냈습니다.
더욱 의미를 묻고 물은 후에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림을 배우는 것이 어떤 이에게 성장이고 성숙이라면,
이 사람에게는 주어진 것에 몸이 달려나가 반응하는 것이 성장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느라 너무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결혼할 때부터 진지남이라고 불렸던 남자.
이번 여행 끝에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자망(스스로 망가지기) 사진이 제일 많은 겁니다.
거의 익살녀 수준의 열연을 한 것입니다. 것두 스스로(즐기면서 했는지 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본태적 '진지남'에게서 '진지남' 딱지를 떼버릴까 생각중입니다.
가족이 함께 긴 시간 지내면서 사춘기에 돌입한 딸과 성질 더러운 엄마가 충돌할 때마다 자신의 망가짐으로
양쪽에 웃음을 선사하며 윤활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어찌 진지남이라 하겠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 독립적이고, 뻗뻗하고, 진지하고, 늘 자신 안으로 안으로 도망치기 좋아했던 이 남자.
십여 년 세월을 지내고 보니 그 안에 감추었던 말랑말랑함이 드러납니다.
희한한 건 말랑함이 드러나니 진짜 힘이 느껴지는 겁니다.
이제 이 남자 세상과도 공룡과도 맞짱 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게 세상과의 맞짱이란 그런 걸 겁니다.
그가 좋아하는 헨리나우웬님 처럼, 예수님처럼 약하고 말랑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것.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것으로 이 공룡같은 세상을 마주하고 끝내 잘 이겨낼 겁니다.



담양의 죽녹원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노무현대통령님 걸었던 길이라며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생각지 못한 만남이 앞으로의 인생 길에 또 보석처럼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이제껏 그래왔듯 나의 말랑한 남자 김종필씨는 자신의 주어진 길을 정직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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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안녕하십니까?
쥔장 얼굴 오랫만에 보여드리는 것 같아 배꼽인사 한 번 드립니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앞둔 가족이 5박6일 가족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여러 이유로 기대하던 네팔행이 무산되면서 잠시 좌절했지만 세세한 계획없이 남도로 향한 여행은
생각보다 참 좋았습니다.
언제까지 어떻게 정리될 지 모르는 가족피정 이야기를 시리즈물로 올려보려 합니다.
오늘은 시작에 앞서 가족셀카를 통해 '피정 미리보기' 한  판 해보겠습니다.




첫날은 천안의 김성수 목사님 댁, 혹은 고려신학대학원 입니다.
가는 길에 들른, 우리 여행 첫 번째 목적지 독립기념관입니다.
우리의 희망찬 발걸음을 축복하듯.....
첫 경유지 독립기념관은 정기휴일이었습니다. 첫 판부터 이렇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셀카 찍어대고 좋댄다)




둘째 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사비성(부여)을 들러갑니다.
우리 역사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채윤이와 늘 덩달아 살아가고 있는 현승이를 위한 체험학습입죠.
엄마는 교과서에 나오는 걸 보여주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이러다 사회 백점 맞는 거 아냐? 이러면서요...

 




등장인물은 똑같지만 나름 배경은 몇 십 킬로미터를 달려서 바꿔찍은 것이니 지루하다 말고 계속 봐주십셔.
(굽신굽신)



셋째 날은 변산반도 입니다.
무지무지한 바람에 맞서 아침산책으로 채석강을 마주했습니다.
어디 갔어? 엄마 얼굴,  어디 갔어?
(개콘, 위대한 유산, 황현희 버젼임돠...라고 친절하게 쓰면 웃음포인트는 날아가는 것이쥐.ㅠㅠ)




넷째 날.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을 걸었죠.
아오, 아버님 얼굴에 아이크림 놔드려야 겠습니다.




체험학습 2탄 입니다.
담양 가는 길에 고창의 고인돌박물관 경유합니다.
저 뒤에 대충 서 있는 채윤이도 나름 사진 포즈구요.
저 뒤에 대충 서 있는 바위덩어리도 나름 다 고인돌입니다.




셀카 찍을 때마다 키 120 갓 넘은 현승이 하한선 때문에 어렵습니다.
하이튼 짤릴 얼굴 짤리고 고인돌 앞에서 다시 셀카.




다섯째 날.
담양의 흙집에서 일박을 하고 나오기 전 입니다.
하루 웰빙 흙집에서 잤다고 엄마 피부 뽀샤시 합니다.




여기는 죽녹원. 죽녹원 인증샷입니다.
여행 후반에 접어들면서 김채윤이 카메라를 들고 앞장 서서 대두의 십자가를 짊어집니다.
사실 표정보면 뒤에 세 명은 진심 배경이고 자기 스타일만 살린 이기적인 셀카예요.
(자꾸보니까 챈이 표정 조금 가식적이고,
이기적이라 생각하고 보니 가증스럽기도 하네요)





우리 피정의 끝은 땅끝 입니다.
달리고 달려 땅끝마을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서도 현승인 짤립니다.



가슴벅찬 가족셀카 입니다.
여섯 째 날에 서울로 출발하기 전 다시 그 조국의 땅끝에 서서 마지막 셀카를 남깁니다.

미리 본 '생애 전환기 맞이 가족 피정 이야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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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을 따라 100주년 기념교회로 부름받아 나선 남편.
대망의 첫 번째 사역을 시작하시니 기록에 남기지 않을 수 없고나.


저는 근본 태어날 때부터 점잖은 진지남의 본체시나,

사람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기를 비워 동물의 형체를 가져 오리와 같이 되셨으니....

<봉사자 위로의 밤>에
동물로 변신하여 재롱부리심으로 거룩한 첫 사역을 시작하시니라.

남편의 망가짐에 기뻐뛰며 좋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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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역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역자를 뽑는 과정에 담임 목사님이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고.

부부가 함께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다섯 분 목사님이 던지는 질문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자소서와 이력서를 꼼꼼히 읽고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선하고 놀랐던 건 저를 부르시는 호칭이었습니다.
'채윤이 어머님'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네? 저, 저요? 채윤이 어머님이요? 

또 '정선생님' 이라 부르며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목회자 청빙을 위한 인터뷰 석상인데

'사모님'이라는 손쉬운 호칭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사모의 사자는 죽을 사자란다' 하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피하고만 싶었던 늦깎이 목회자 사모가 된 지 어언 6년.

'당신은 목회자 사모가 아니라 내 아내다.

목회자 사모로 살지 말고 내 아내로 살면서 남편이 나를 사랑하면 된다'

남편이 일관되게 말하지만 '사모'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사모님, 사모님' 하면서 불러주고 다가올 때면
'아, 호칭 자체가 문제가 아니구나. 사모님이란 말이 참 따스하구나'
싶기도 해서 호칭 자체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아, '사모님'보다는 '사모'라고 해봅시다.

'님' 떼고 '정신실 사모'라 하면 한결 느낌이 살아납니다.

한국교회 안의 독특하고도 비상식적인 메타포를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편한 지점도요.

같은 사모님들 끼리 '정신실사모' 이렇게 부르면 불편하고 의아했습니다.
부하직원은 '김부장님'이라고 부를 것을 상사는 '김부장'하고 부릅니다.

사모님의 '님'은 그때의 '님'과는 다른 '님'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차마 목사님 욕을 할 수는 없고(주의 종을 욕하다 벌 받을까봐)

목사님의 여자는 상대적으로 흠잡고 비난하기 딱 좋은 존재일 것 같아요.

그런 용도로 사모가 사용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 20년을 교회에서 언니 동생으로 지내던 후배가 '정신실 사모' 하면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보고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시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먹은 밥이 몇 끼이고, 함께 한 수련회가 몇 번이고,

연애의 격랑에서 밤늦도록 통화하며 울고 웃었던 나날이 얼만데.

소개팅 후 배우자 확신을 위해서 나눈 얘기며 기도가 얼만데

그 모든 일상을 지우는 한 마디.

'정신실 사모'가 현기증 날 정도로 혐오스러웠습니다.

근 20여 년 교회 동생으로 종필아 종필아 했던 남편에겐 더 없이 깍듯해지고,

심지어 과하게 존중하는 태도였으니까요.

살아 있는 풍성한 관계를 지우는 호칭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러나 저라나 한국교회 '사모님'이란 용어는

너무 많은 비상식적과 비합리적 기대와 뒤틀린 신앙의 편견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사모님'에서 '사'를 빼고 만든 이름 '모님'이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아그들이 '모님'이라는 보통/고유명사로 불러줄 때 크게 위로가 되었었지요.

새로 가는 교회에서는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아예 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얼룩진 호칭으로 괜한 굴레를 씌우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이 한 사람의 신앙인이 아니라

오직 '목회자'의 정체성만으로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면

얼른 목회의 자리를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교회를 함께 망치는 일입ㄴ다.
저 역시 '사모'의 정체성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불쌍한 자로구나' 하면서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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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인생의 하프타임을 정리하고 시작하는 가족 피정을 준비하며.

2007년 9월 15일에 키우기 시작한 돼지 잡는 날. 열흘 꼬박 아팠던 아빠의 혼신을 다 한 연기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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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 : 아빠, 컴퓨터에 DVD가 안나와. 어제 라푼첼을 못봤어. 아, 라푼첼 보고 싶다.

아빠 : 안돼! 라뿐 책은 안 돼. 좋은 책을 봐.

현승 : 엄마, 나 김치찌개 먹을래. 햄 들어있어? 햄 들어있냐구? 엄마~아.
...
엄마 : 들어있다구~우.

아빠 : 이따구루 할래? 진짜!

현승 : 아빠 나 메론 나중에 줘. 아직 이거 다 안 먹었다구. 메론 이따가 주라니까.

아빠 : 메롱

*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빠가 한 세 마디 말. 사역 금단현상 심각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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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말씀 묵상을 하려다 책상 위에 놓인 청년부 주보를 봤고, 주보에 실린 남편의 칼럼을 읽었다. 그리고 신명기를 읽고 기도하게 되었는데 신명기 말씀과 칼럼 말씀을 오가며 렉티오 디비나 하게 되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8년 함께 한 공동체를 떠나며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들로 어지러운데 남편의 정직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나를 잠잠하게 한다.

제목 : 작별인사

아직 두어 주가 더 남았지만, 서둘러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제가 마지막으로 설교하는 날인 까닭에, 굳이 다른 이야기하기가 어색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설교라 생각하니, 목이 멥니다.

사임을 결정하기에 앞서 병든 사람처럼 고뇌는 깊고, 마음은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떠남의 명령이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처럼 반복해서 제 귓가에 맴도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 진정 하나님 뜻인지 많은 날 씨름하듯 기도한 끝에, 고향과 다름없는 15년간 섬겼던 사랑하는 한영공동체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목자들에게 그 결정 이야기하던 날은 제 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풍이 절정에 다다르고, 이어 낙엽이 쓸쓸이 지는 계절이 시작될 때면, 더 이상 여러분들은 강단 위에 서 있는 저를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특권의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교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기가 막힌 계획을 믿기에, 저는 저를 보내시는 그분의 뜻을 신뢰합니다. 남는 여러분들을 통해 계속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확고히 믿습니다.

막상 과거를 회고해 보니 아쉽고 후회 막심한 일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더 사랑하지 못함이, 더 기도하지 못함이, 더 다가가지 못함이, 더 믿음의 견고한 터 위에서, 예수께서 부르신 상을 좇아 함께 힘차게 교회건설을 이루지 못함이, 많이 아쉽습니다. 그건 모두 제 부족 탓입니다. 그러나 약한 저를 택해 여러분들과 함께 지난 3년여간 TNT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신 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성수 목사님이 뿌리고, 조상우 목사님이 물을 주고, 김용태 목사님이 거름주고, 김승준 목사님이 가꾸었던, 아름다운 빛소금공동체에 저 역시 작은 흔적 남깁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되게 하며, 아름다운 주님의 숲으로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바라며, 예수님만 좇으며, 성령님 안에서 하나되어 빛과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예수님 성품 닮아 내면으로부터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젊은이들 되시길 쉬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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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바람이 차거워지면 꽃가게의 소국들이 그러~어케 눈에 들어온다.
작은꽃에 대한 심리적 동일시가 있는건가?

이 즈음의 소국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아무런 이유없이 내게 소국 한 다발을 요란한 장식없이 포장해 줬으면 하며 다닌다.

말하지 않는 내 맘을 뉘라서 알겠는가? 가을마다 소국 이쁘다 소국 이쁘다 해도 잘 못알아듣던 남편이 결혼 11년 만에 사오정 귀청소 하시고! 퇴근길에 소국을 사왔다. 아, 종필 짱!!
며칠 전 남편이 "천국이 다 좋은데 안 좋은 게 하나 있어. 아내도 없고 남편도 없는 건 싫다" 했는데....
... 정말! 천국가면 남편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똑같은 존재라니.. 남편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하게 된다니... 생각만해도 슬퍼서 견딜 수 없어. 엉엉엉...

치키치키 챠카챠카... 치킨치킨 치킨치킨... 닭이 되어 날아가는 소리. 으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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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중심은 '부모을 떠나 한 몸을 이루 부부'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하나여야먄 부모님도 자녀도 행복합니다.
가족의 중심이 자녀, 부모님.... 으로 이동하는 순간 행복의 균열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가족의 중심인 부부에게 잠시 맡겨진 보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가족의 종심인 부모를 끊임없이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배웁니다.
'아, 인생이란 저런 거구나. 사랑이란 저런 것이고, 하나님은 저런 분이구나'

이것은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알아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땅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라는 창조주의 명을 받잡고,
아이들 안에 숨겨진 빛을 가장 찬란하게 비추도록 돕는 것이 부부의 소명임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내 소유가 아니라 잠시 맡겨진 귀한 보석임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도 부모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압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되 부모의 방식만을 강요하지 않으며.

부모인 우리 약점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흠도 많은데다 조금 유별난 부모를 만난 채윤이와 현승이가 고생이 많습니다. 

텔레비젼이 없거나, 컴퓨터 게임을 아예 시켜주지 않는 것, 그 이상일 때도 있으니까요.
교회 사임을 결정하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 얘기하는 자체보다 이후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걱정이 많이 됩니다.

휴가가서 좋은 기분에, 광안리의 멋진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채윤이는 채윤이처럼 똑부러지는 논리와 말로 따집니다.

엄마 아빠의 일방적인 결정에 왜 자신이 교회를 떠나고 전학해야 하는가!

를 항변하다 펑펑 울어버립니다.
현승이는 현승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삼키려 여러 번 천장을 올려다 보면서 말합니다.
"나는.... 학교를 전학할 거면 다른 학교로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홈스쿨링 할거야. 그

리고 한영교회를 안다니면 다른 교회도 안가고 그냥 집에서 큐티하고 말씀 보고 그럴거야"합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인지 알기에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하고 함께 울었습니다.

 


목회자의 타락은 목회자 아내가 하는 '아이들 학원비 걱정'에서 온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목회가 단지 밥 벌어먹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목회가 그저 직업이어서는 안되는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닌데 목회가 그것의 수단이 될 때는 위험한 것임을 압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아이들 키우는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목회를 그만둘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지는 목회자는 진리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픔과 가난을 감수시키는 것은 또 정당한 일일까요?

목회자 아빠와 엄마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아이를 행복하게 자라도록 돕는 부모로의 부르심과 

목회자로 부르신 아빠의 소명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건가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원치 않는 이별을 안겨줘야 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무겁지만
그 무게를 지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다 내게로 와서 맡겨라 하신 그 분이 계시니가요.
길지 않은 인생길에 엄마 아빠는 경험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풀릴 것 같지 않은 삶의 실타래가 자연스레 풀리고마는 것을요... 


엉킨 실타래 같은 현실 속에서 반드시 풀릴 어느 날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랍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하늘로 한껏 뛰어올라 봅니다.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온유하고, 친절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어떤 낯선 땅을 밟는다해도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가족이 함께 있는 한은
그 낯선 땅이 다시 사랑의 땅이 될 때 까지 메마른 시간을 함께 잘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아빠는 왕따일 수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아빠의 선택을 지지하고, 기쁘게 지지할 수 있도로 기도할 것입니다.
아빠의 선택 속에서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부르심의 소명이 끝내 조화로울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 아빠가 먼저 준비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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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런 구도로 식탁에 앉으면 나는 그저 커피 한 잔 놓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러나 당신은 저렇게 각자 취향대로 자신의 책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한다고...
당신의 바램은 헛되다고... 평균 10분에 한 번 내가 '여보, 여보 이거 들어봐. 대박이지' 이러면서 내가 언더라인한 부분을 읽어준다고...
그러니 그냥 차라리 책을 덮고 얘기를 하자고...

... 아니, 생각해보니 진짜 대박은 당신이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와준 거라고.
당신의 성에서 문을 쳐닫고 혼.자. 조.용.히. 독서하셔야 하는 당신이 성 밖으로 나와 저자거리 같은 거실에 앉아주신게 감지덕지라고....
고맙다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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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중요한 결정들을 앞두고 또는 뒤로 하고 떠난 2011휴가는 무거운 출발이었습니다.
행선지 부산.
올라오는 길에 봉하마을.
두 가지만 정해놓은 상태였지만
출발하는 아침에 휴가 자체를 취소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둘 다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예민해져 있구나를 깨달을 순간 차분해졌고,
일단 떠나자. 내려가면서 봉하에 먼저 들르자로 정하고 출발합니다.
그 분이 봉하로 내려가시고부터 '한 번 가자 한 번 가자' 벼르기만 하고 이제야 발을 디뎌본 
봉하마을. 






사진으로 그렇게나 많이 봐서인지,
마음으로 수십 번 왔다 갔던 곳이기 때문인지 동네가 낯설지가 않습니다.
부엉이바위, 사자바위가 동네를 안고 있는 듯, 사저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욕심없이 그저 이 조용한 곳에서 자연의 품에 안겨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사진마다 네 식구 얼굴에 아직 가시지 않은 슬픔이 가득합니다.






감동의 경선 때부터 대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던 탄핵,
그리고 벼랑끝 선택에 이르기까지 채윤이는 이 분과 더불어 역사의식을 배웠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그의 눈물을 여러 번 보았고,
대선개표 방송을 수민이 집에서 보고는 그 추운 길을 춤을 추며 걷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탄핵정국 때는 다섯 살 채윤이 양갈래 머리를 하고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촛불을 들고
'타낵꾸요. 민주수오'를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인가, 채윤이가 노무현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다릅니다.






어디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휘리릭 보고는 '엄마, 이제 가자'이러는 채윤인데,
여기선 누구보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찬찬히 보고 또 바라보는 모습이네요.

 






우리 인생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일도, 감정도, 앎도....
우리 부부에겐 그 분의 떠남이 미완의 감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감정은 시간과 함께 정리되어 가는데 이 분의 죽음은 여전히 그 5월의 충격 그대로 남아 있나봅니다. 
사진을 정리하는데 봉하에서 찍은 사진들이 다 표정이 그저 무겁기만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의 표정이 저러한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이 싯구가 마음 속에 올라오는 여러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욕되게는 살 수 없어서 벼랑 끝에 생애를 던지 한 영혼.
그의 삶과 죽음을 다시 맞닥뜨리며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안일함을 위해 자기기만의 삶을 살지는 말아야지.





우리 생애,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새벽은 사실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오랜 기도는 응답되지 않고, 선한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당하고,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삶은 여전히 그러할지도 모릅니다.
참된 지도자는 그 팍팍한 현실을 포장하여 아름답다 하지도 않고,
비관하여 두 손 놓고 물러나 앉지도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그 현실로 인해서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목자, 참된 지도자입니다.
그럴 수 있으려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겁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다가올 새벽에 대한 확신으로 길을 보여주고 독려해 함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질 수 밖에 없는 선거에 나가고 또 나가며 실패의 쓴잔을 마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높고 편한 자리를 포기하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길로 용기있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선택에서 앞문을 연 후에 뒷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아직 앞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용기있게 뒷문을 닫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벼랑 끝에 선 느낌이지만,
믿음이 그걸 이끌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요. 늘 그랬듯 믿음의 사람인 김종필 아빠는 그의 믿음대로 앞문을 열게 될 거예요.
앞문과 뒷문 사이에 끼어있어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떠난 휴가지만 이 또한 좋은 시간이 될거예요.


이렇게....
휴가 첫 날, 우리 마음 속 대통령을 만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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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은 말한다. '가족은 부부중심이어 한다. 건강하고 거룩한 부부의 사랑을 비빌 언덕 삼아 아이들이 자라는 것임. 아이들이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 더 좋은 중심으로 자라기 위해 엄마 아빠의 삶을 벤치마킹 하는 거' 라고.... (사진이 맘에 들어 몇 마디 쥐어 짜내서 적어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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