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수건 없어~어"


워우워우워, 빨래 돌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 실내에서 빨래 건조하는 것이 갈수록 견딜 수가 없다. 특히 수건을 실내에서 말려 쓰는 기분은 (가족들이 뭐라든) 내가 용서가 안 된다. 맑은 날에 옥상에 말리는 것을 노려야 하고, 기본적으로 거실에 빨래를 널어야 하니 손님 오는 날 또한 피해서 빨래를 돌려야 한다. 그러다보니 빨래가 밀리고 세탁기 돌리는 날이 자꾸 뒤로 밀리곤 한다. 아무튼 오늘은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다. 오전에 일보러 나가는데 저쪽 하늘이 맑게 개이기 시작.  아, 빨래 돌려놓고 나올 걸. 날이 쨍 개이면 오후에 한나절 말려도 될텐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수건만 먼져 돌려 옥상에 널었다. 비 오고 난 후의 공기며 햇볕은 한층 더 말갛다. 저 선명한 빨래 그림자만 봐도 마음이 뽀송뽀송하다. 살 것 같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른쪽에 비까번쩍한 강변의 아파트를 끼고 달리는 강북강변 도로 위였다.)

"저런 집에 누가 살까? 여보,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집 걱정 한 번 안 해 본 사람과 내가 천국 가서 같은 대우 받고 같은 집에 산다는 건 좀 불공평한 것 같아. 2 년마다 오르는 전세금 걱정 한 번 안 해본 사람, 품위 유지를 위한 아파트 평수 늘리기가 아니라 거실에 해 들어오는 집에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 한 번 못 이룬 사람들 말이야. 집안에 있으면서 낮인지 밤인지, 지금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정도, 낮에도 불을 안 켜고 사는 집이 최대의 소망인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천국의 집에선 특별대우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감?"


첫 신혼집은 부모님이 세 놓으시는 오래된 집이었다. 한 10개월 살고는 남편 직장, 내 직장 핑계로 사당동의 작은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비로소 우리 둘만의 세상이 된 것 같았고 그 작은 집이 정말 좋았다. 문제는 바로 채윤이를 갖게 되고, 어마무시한 입덧에 돌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3, 4월이라 황사가 심했고 내 속은 더더욱 황사로 뿌연 나날이었다. 먹었다 하면 바로 먹은 걸 확인해 보여주는 나날. 이 속이 뻥 뚫리는 순간이 있을까? 저 황사가 걷히면? 하던 시절이었다. 창문을 딱 열면 옆집 벽이 떡허니 막고 있었다. 입덧이 아니라도 '나무'를 참 좋아하는데. 저녁이면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큰 나무 밑에 앉아 속을 달래고 들어오곤 했다. 그땐 입덧 탓만 했는데 지나고 나니 집 영향도 컸구나 싶다. 아기들 키우는 젊은 엄마가 볕 안 드는 집에 사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런 경우 대부분 우울감에 많이 시달리는데 그것조차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까지 지고 이중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아니야, 집에 햇볕이 안 들어서 그래.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달리는 강변북로에서 남편이 말했다.

"천국은 지금 여기와 비교할 수 없는 곳이라서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느껴질 거야. 굳이 그 차이를 다시 떠올지 않을 만큼의 좋음이 있을 거야"

마음이 조금 뜨거워졌고 민망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일학교 교사할 때 아이들과 부르며 참 좋아했던 찬양이 생각났다.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언젠가 그 맨 처음엔 공평했겠으나 이제는 맘몬으로 인해 불공평해진 일조권. 햇볕을 쬐고 누릴 권리조차 불평등한 부조리한 이곳과 다른 차원의 세상, 천국이라니. 그런 천국을 믿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쨌든 오늘 같은 하늘, 오늘 같은 가을볕을 누릴 권리를 마음껏 누려야 하리. 얼른 빨래를 돌려 빌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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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아침이다.

삼십 여명의 친척들이 모이고,

7남매 맏이신 수줍은 아버님께서 안 수줍은 척 더욱 무뚝뚝한 말투로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추석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신다.

가끔 헷갈리셔서 '묵도'가 '묵념'이 되기도 한다.

막내 아들이 작성한 기도와 설교를 줄줄줄 읽으시고,

찬송은 막내 아들 가족과 어머니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로 부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전날부터 준비한 추석음식이 차려지고 남자들이 식사를 하고,

그 상을 보완하여 어머니, 작은 어머니, 사촌 아가씨들, 며느리들이 식사한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한다.


추석 아침이다.

아버님도, 그 많던 친척들도 사라지고

어머니와 두 아들의 가족, 가끔은 딸이 함께 모인다.

막내 아들인 김 목사가 조카 아이에게 어색한 농담을 던지며 아이스를 브레이킹한다.

설교 같지 않은, 추석 설교 같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짧게 전해준다.

찬송은 어머니와 막내 며느리가 대표로 부르는 분위기이다.

어색한 예배가 끝난다.

며느리들이 준비해 온 음식과 어머니표 기본 메뉴로 상을 차린다.

먹는둥 마는둥 다함께 아침을 먹는다.

예전의 설거지에 비하면 라면 먹은 냄비 닦는 기분이라는 식으로

후다닥 마친다.


추석 아침이다.

계란과 빵, 사과 등으로 네 식구의 평소같은 아침이다.

김 목사인 아빠가 한결 여유있게 아재 개그를 던진다.

영화표를 예매한다. 영화시간까지 각자 보내기로 한다.

현승이는 추석 아침을 달리러 자전거를 끌고 강으로 나간다.

채윤이는 내일 레슨이라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김 목사인 남편은 나의 서재인 거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기꺼이 내어주고 식탁에 앉는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읽는다.


추석 아침의 풍경은 이렇게 달라진다.

명절을 두통과 함께 보내시던 어머니의 추석은 허브 마사지와 함께 하는 휴양.

내게는 매번 새롭게 복잡하고 어려웠던 추석이었다.

그 중 한 번은 치명적인 모멸감의 추억을 남겼기에 추석의 바람이 볼을 스치기만해도

잠시 고통이 밀려온다.

여느 날처럼 지내는 오늘같은 추석이라니. 격세지감이다. 

좋은 것도 힘든 것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설레발칠 일이 아니다.


열아홉에 시집 오셔서 수십 년 '장손 며느리 여자'로 살아오신 어머니.

서른 하나에 시집 와서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여자'로 살아온 나.

여자 사람으로 사느라 누르고 억압하고 외면했던 또 다른 나를 살려낼 일이다.

창조적, 능동적, 직관적인 야성을 찾고 살아낼 일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의 추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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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지 좋다. 매우 싫다. 이런 것들이 나, 보이지 않는 나를 드러낸다.  Carl Jung의 말대로라면 내 안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은 '투사 드라마'이다. 내가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아니 그녀에게 빠진 의외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의 어떤 것과 맞닿음. 즉 투사의 일종인 것이다. 내 마음의 결핍과 맞닿았을 때 나는 강하게 끌리는 것이다. 그림이 나를 매혹시킨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림에 관해서 '문외한'이라는 말도 과찬인 여자다. 헌데 어떤 음악이나 책에 빠져들 듯 오키프의 그림에 빠져있다. 그림이 이렇게 많은 말을 걸어오다니! 그런데 알고 보면 오키프에 빠진 이유는 다른 데 있을지도. Jung의 개성화에 대한 강의를 듣다 처음 오키프와 면을 텄는데, 이 천재적 여성 화가가 66세 되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는 얘기가 귀를 잡아당겼었다. 저 그림 <구름위 하늘>은 분명 비행기 안에서 본 장면의 확장이렷다.





늦은 휴가, 또는 우리 끼리 말하기는 '아주 늦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조지아 오키프와 그녀 그림에 관한 얇은 책 한 권을 끼고. 돌아오는 날 새벽하늘을 비행기에서 보고 아하! 했다. 이번 여행이 왜 굳이 오키프였는지, 내 마음의 무엇과 닿아있는지를 알았다. 저 그림처럼 수평선 같은 하늘 끝을 보면서 '아, 이렇게 또 하나의 결핍이 결핍 아닌 것으로 흘러가는구나' 생각했다. 몇 년 전 처음 코스타에 가면서 나이 40이 훨씬 넘도록 나라 국제선 비행기 못 타봤다고 엄청 징징거리고 떠들어 댔었다. 올해는 채윤이를 대동하고 가 며칠 자유여행까지 하는 쾌거(쾌거 맞다!)를 이루었다. 떠날 때마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출국장을 나섰는데 '언제나 우리 함께 떠나보나' 싶었다. 사실 해외여행 콤플렉스는 신혼여행에서 비롯한 것. '정직 검소 절제'의 정신을 결혼에 담겠다고 작정했으며 '당신이 가진 두 벌의 외투 중 하나는 지금 거리에서 떨고 있는 그 사람의 것이다'에 붙잡힌 젊은 시절이었다. IMF로 형편이 어려우시단 부모님 사정을 알아서 헤아려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해외로 신혼여행 가는 것이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이 보통만 되었어도 좋았을 걸. 둘 다 어리바리 했으니! 여행 첫날 숙소에 도착하여 기겁으로 시작, 빗속의 수습, 밤새 눈물로 지새우는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트라우마에 붙들려 주위를 둘어보니 비교할 것 투성이. 몇 년 앞서 결혼한 형과 비교하고 친구들과 비교하고. 흔한 바보놀이를 상당시간 했었다. 





친구들이 발리, 세부, 푸켓 신혼여행 얘기할 때 '그건 먹는 건가? 쩝쩝' 하고 살다보니 이제 동유럽, 이태리, 크로와티아..... 이러는 날도 왔다. 더 이상 발리, 세부, 푸켓 얘기들은 안 해서 좋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생애 따라갈 수 없는 진도가 되었기에 다시 '크로와티아는 먹는 건가? 쩝쩝'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왔다. 여름마다 바쁘지만 이번 여름 남편의 바쁨이 유독 짠하게 다가왔다. 수련회 느헤미야 강해를 마치고, 일주일 후 주일예배 설교를 했는데 참 무거운 자리였다. 설교 마치고 바로 여름 피정주간이었다. 난생 처음 둘이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이 별 논의없이 추진되었다. 남편 딴에는 결혼 17년 만에 신혼여행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터. 나로서는 짧게는 이번 여름의 노고, 이 교회 와서 '새벽별 보기 운동, 천 삽 뜨기 운동'식으로 일한 5년, 길게는 신대원 입학 후 한 번도 제대로 쉬지 않고 10년을 달려온 남편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당신이 가진 두 벌의 외투' 신드롬에 사로잡힌 터라 좋은 걸 누리는 것에 과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남편과 마누라 아닌가. 그것마저도 내려놓고 짧은 시간 결정하고 별 준비도 없이 그냥 막막 다녀왔다.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 '얘들아, 드디어 나도!' 공개하던 날이었다. 어머, 어머 어떤 남자야? 그 남자 어디가 좋아? '음.... 가난하게 사는 게 생의 목표래. (아득한 눈빛... 아, 나의 김종필! )' 난 정말 멋진 소개라고 생각했는데 친구 한 두 명이 빵터지고 뒤집어졌다. 물론 그 다음엔 '신실아, 결혼은 현실이야'로 시작하는 설교와 간증시간. 친구들의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니를 걱정하며 살진 않았지만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았다. 또래 사람들과 다르거나 또는 뒤떨어지는 삶이라는 자의식. 그에 대한 아쉬움? 부끄러움? 위축감?에 의연하기도 쉽지 않았다. '불쌍한 정신실' 가끔 남편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이다. '정신실이 누구누구랑 결혼했으면 뭣도 하고, 뭣도 하고, 박사과정도 하고 그랬을텐데.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냐.' 남편이 이렇게 말할 땐 아주 불쌍한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눈물을 툭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봐줘야 한다. 분위기상 그래주는 게 맞고, 이런 기조를 유지하며 득템의 기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게.... 참, 내가 나를 생각해도 참.... 아, 여보 강의할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데. 봐둔 원피스가 하나 있어. 살까?' (이거 일급 영업기밀이지만 공개하기로 한다. 남편이 보면 속았다! 하겠지만 그는 금방 또 까먹을 거야.)




실은 오키프 여사까지 대동하여 결핍 운운한 것이 아주 큰 이슈는 아니었다. 우리 부부 사끼리는 신혼여행 원죄라 부르는 그 일조차도 결핍감이 아닌 건 아니지만 내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가 채워준 마음의 구멍,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으로 밑빠진 독같은 마음의 구멍을 생각하면 작은 구멍이다. 실은 내가 선택한 것도 크다. 풀타임으로 3년 일하고, 그때부턴 정말 가만히 하던 일을 하고 있으면 연차와 함께 월급만 착착 오를 시점. 아줌마들 다니기 딱 좋은 직장이라 10년, 20년 근속이 허다한 직장을 그만둔 것은 내 선택이었다. 프리랜서로서 감각이 딱 익혀지고 최소 시간에 최대 수익을 내는 방식을 알게 된 시점, 내적여정 공부와 강의, 글쓰기 같은 것들로 스르르 방향을 선회한 것도 나. 남편은 넉넉하지 못함의 죄를 혼자 다 뒤집어 쓰고 스스로 죄인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원죄의 목줄을 매놓고는 원망과 불평으로 끌고 다니곤 했다. 그걸 묵묵히 받아내는 남편 때문에 더 큰 결핍의 웅덩이를 볼 있게 되었고, 조금씩 자라게 되었다. 이 여행 한 번만으로 족하고 또 족하며 행복하다.


이번 여행, 얼마나 즐겁고 풍성하게 보냈는지 모른다. 빗속에서 수영하고 한밤중에도 수영했다. 밥 먹는 것도 마다하고 바닷속 탐험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 중에 제일 재밌게 노는 거 같지 않아?' '아니, 당신이 지금 이 해변에서 제일 잘 놀아.' 히히, 정말 그랬다. 처음엔 둘 다 아이들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에고, 채윤이 현승이한테 미안하네. 채윤이가 좋아하겠네, 현승이가 여기 오면 얼마나 잘 놀까' 에잇, 신혼여행에 애들 걱정이 웬말! 미안함과 죄책감까지 다 떨쳐내고 그 바다, 그 풍경 안에 있었다. 17년 기다린 신혼여행인데 말이다 


(인생샷 무지 많이 건졌으나 부러움 끝에 미움이 되실까 하여 B급으로 몇 장만 공개하기로. 이 멋진 사진들 자랑할 곳이 없어 큰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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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교구수련회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살인적인 더위가 어제부터 다리 힘이 풀린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 조금 견딜만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아무튼 아내가 2주간 집을 비워도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서 준비한 '하늘가족 7교구'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아내로서는 돕지만 '사모'라는 이름으로는 유령처럼 지내기로 한 불문의 약속같은 게 있는데요. '당신 수련회 와서 핸드드립 해라' 하는 말에 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조용히 드립만 하면 되니까. 하고 낚였습니다. 덥석 낚싯밥을 무는 게 아닌데!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어, 공동체 훈련 진행할 사람이 없어. 징징징. 징징징. 결국 카페는 날아가고 찬양인도와 짧은 아이스브레이킹 순서를 맡아 따라갔습니다. 


20여 년 만의 찬양인도. 20여 년 만의 공동체 게임 인도. 젊은 날 한때 찬양인도와 레크레이션 인도는 교회봉사의 주종목이었는데요. 유령처럼 지내던 여기서 찬양인도를 하게 될 줄이야. 특히 이 교회와서는 불신 남편으로 혼자 신앙생활 하는 여자 모양새로 지내던 5년 만에 처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사모님' 이란 호칭을 가장 많이 들은 이틀이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에서도 '사모'라는 주제로 글이 하나 있고 블로그에도 몇 번 썼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비공식 문건인 것 같은데 저자에 관한 기록 중에 '정신실 사모님은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메시지가 있는가 봅니다. ^^ 제가 딱히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는데 출판사 뿐 아니라 강의나 원고로 만나는 분들 중에도 저에 대한 배려로 호칭에 신경 써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글 (사모라는 이름) 때문인가 싶기도 하구요.


몇 년 전에 한참 트위터 하는 재미에 빠졌을 때, 밖에서 청년들을 만났는데 큰 소리로 사모님 사모님 하기에 으슥한 데 끌고 가서  '브께스는 은니르그 블르라' 했다는 얘길 웃자고 썼는데 그것 때문인가요? 호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부르느냐, 어떤 마음으로 부르느냐죠. 여기서는 '사모님' 대신 '집사님'으로 불리고 있는데 사모나 집사나 언어 안에 사람을 꾸겨 넣으려는 것은 한 가지로 나쁜 것이고요. 사모든 집사든 형제님이든 자매님이든 마음의 손을 잡고 부르는 말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올 여름 저는 유난히 청년부보다 장년부 수련회 강의를 많이 하였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교인 수련회들이었는데요. 지나가는 아가의 이름을 모두 다 알고, 장로님 권사님 건강 상태를 알고, 오래 쌓여온 사랑과 갈등의 결이 있는 공동체. 누구야, 밥 먹었니? 너 엄마가 저쪽에서 찾던데. 집사님, 혼자 오셔서 외로우시겠어요. 장로님, 커피 타다 드릴까요? 이런 지나가는 말들이 참 따뜻하게 들렸습니다. 


대형교회 한계라 어쩔 수 없는데 교구 수련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구역 몇 명 외에는 서로들 초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련회, 하면 공동체의 끈끈함이 프로그램 사이사이의 추억을 짓는 것인데 그 점 참 아쉽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이란 그냥 맞잡는 그 순간 이미 따스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마주앉아 식사하며 얘기 나누면 금세 마음이 이어집니다. 혼자 육아하며 우울을 겪었던 이야기, 빵빵 터지는 남편 시리즈, 오래 섬기다 떠나온 교회에 대한 아픔과 회한. 짧은 시간에도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오는 뭉클함입니다.  


남편 밖에 모르는데 얼마나 뻘쭘할까 하고 갔지만 가자마자 처음으로 알아봐주신 권사님께선 책도 이미 읽으셨다며 손잡아 주셨고요.(권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 오랜만에 느낀 교회의 따스함이었습니다. '사모'이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에 감사하고 두려웠습니다. 사모라서 더 예쁘게 보시고, 사모라서 처음 보는 젊은 사람에게 금세 무장해제 하고 마음을 열어보이십니다. 목회자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자리가 얼마나 엄중한 자리인지, 얼마나 손쉽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리인지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새로움으로 실감합니다. 착한 교우님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너무 쉽게 목회자에게 투사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목회자의 자리는 너무도 위험합니다. 권력와 특권의식이라는 유혹자가 문지방에 엎드려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패키지로 따라다니는 사모도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손과 손을 맞잡고 마음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사람다운 만남 그 이상을 지어내지 말아야할 일입니다. 


20년 만의 찬양인도였는데 컨셉은 '7080'이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주제는 '집으로, 아버지 집으로' 였습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그리고 수련회 주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한 마디 한 마디 제 가슴에 콕콕 박혔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햬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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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주문 안 해?

아, 그러게. 날도 덥고 자꾸 까먹네.


월요일, 나는 우리 교회 고등부 수련회 강의로 아침 일찍부터 집을 비웠다.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고, 수련회 준비를 하며 남편 혼자 낮시간을 보냈다.

'놀월'을 각자 보내고 늦은 오후에 집에서 합류.

저녁을 먹고 정리하며 커피를 묻기에 아, 커피가 떨어졌구나 했다.


아침에 나서며 차에서 마실 커피를 내렸다.

원두가 얼마 남지 않았었으니 혼자 집에 있으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겠구나, 어쩌면 모자랐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안팎으로 보일러 빵빵하게 돌린 날씨로 시작한다.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청소기 한 번 돌리니 아이스커피 생각만 간절하다.

세수하고 커피 한 잔 타서 앉으면 딱인데....

커피가 없지. 흠. 커피가 없어. 쩝쩝. 허전하다. 허전하다. 허전하다.


아련한 마음으로 커피장을 바라보는데 밀폐용기에 커피알이 보인다.

헛것이 다 보이네! 아니다. 헛것이 아니다.

아이스 한 잔 내릴 원두가 남아있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커피 주문 안 해?' 라 했을 때 다 떨어졌단 얘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물을 때는 분명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단 얘기였을 텐데.

낮에 다 털어 마시고 없어서 아쉽단 말인 줄 알았는데. 커피가 있다!


그 어느 시점보다 아침 커피의 결핍감이 가장 크다.

내가 혼자 마신다면 저녁 커피를 굶고 다음 날 아침 커피를 살린다.

어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아니 함께 있던 저녁에도 간절했을 커피.

앞뒤 재지 않고 다 털어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내일 나는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마실 수 있지만 정신실이 집에 있는 날이네.

라는 자각도 없이 그저 그 커피를 남겨두었을 것이다.

뭔가에 이끌려 커피 본능을 참았을 JP.


아침 커피를 지켜준 남편의 마음은 찜통 더위 따위 초월하는 따스함이다.

생색 낼 줄도 모르는 이 사람은 새벽 KTX를 타고 장례예배 인도하러 가버리고 없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지켜낸 커피를 경건하게 갈아 내린다.

얼음 꽉꽉 채워서 내린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가 시원한데 따스하다.

남편을 위해 착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푹푹 찌는 따스한 아침이다.









5월1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올해로 20주년 마이너스 2년이다. 주일 출근하는 남편 홍삼이라도 챙겨주려고 일어나 흐느적거리는 정신줄로 거실에 나갔는데 '이게 뭐야!' 눈이 번쩍. JP♥SS, 하트 풍선과 커플 사진 덕지덕지. 오호, 이게 딸내미 키우는 맛이지! 일 년 백수 채윤이가 가장 바쁜 날이 토,일 주말이다. 토요일 오전에는 고둥부 책모임, 오후부터 밤까지 찬양팀 연습, 마치고는 늘 '쫌만 놀고 갈게' 일정이 빡빡하다. 그리고 들어와 다음 날 주일 아침에는 일주일 중 가장 빠른 기상. 6시 30분에 일어나서 곱게 화장하고 7시 반이면 고등부 찬양팀으로 출근. 이런 연예인 스케쥴 중에 준비해준 서프라이즈라 더 기특하다. 역시 아들놈은 쓸 데가 없군. 그렇게 자상하던 그이가..... 가 아니고 그 아들놈이 입을 싹 씻는다. 아, 무심한 사춘기 아들이 된 덕에 처음으로 아이들만 두고 1박 여행을 다녀왔으니 꼭 안 좋은 것도 아니다. 현승이가 부쩍 '엄마 아빠 데이트 하고 와. 엄마 아빠 어디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와' 하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이 자꾸 '귀찮아, 꺼져'로 들린다는. 한때 현승인 이런 아들(클릭) 이었었었었었는데..... 93세 되신 엄마가 입을 열면 하시는 말씀의 93%가 옛날 얘기이다. 엄마를 타박하며 나도 자꾸 옛날 얘길 한다. 낼 모레면 얘기의 50%가 옛날 얘기 될 예정.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부부가 닮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고독한 인간 남녀는 늘 동질성을 가진 타자를 찾는단다.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에 빠질 때 동시에 빠지는 착각이 '어머, 우린 너무 비슷해' 이다. 기질이나 취향에서 동질성을 찾기 어려우면 하다못해 '어머 어머, 세상에 그 남자가 그 음악을 알더라. 그 음악 좋아한다는 남자 처음이야' 이렇게라도 갖다 붙이게 되는 것. 20 년 전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머어머, 어떻게 이현주 목사님과 손봉호 박사님을 동시에 존경할 수 있어? 똑같애, 나랑 똑같애. 어머머, 시인과 촌장을 좋아한다니! 김현승 시인을 좋아한다니! 내가 미쳐. 이건 운명이야. 그렇게 시작한 운명적인 사랑은...... 개뿔, 한 달 만에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 당시 처음으로 같이해 본 MBTI 검사에선 넷 중 세 개의 지표가 같았었다. 비슷한 게 아니라 비슷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나와 비슷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받아줄 것이라는 착각이다.


결혼하고 보니 우린 모든 게 달랐다. (모든 게 닮았다더니! 모든 게 다르다고?) 작심하고 MBTI 공부를 함께 했는데 트루 타입을 찾아보니 네 지표 모두 다름, 정반대 유형이었다. <복음과 상황>에 'JP&SS의 사랑과 책'을 연재하던 시절엔 모든 게 달랐다는 것을 깨알같이 확인하는 나날이었다. 다름을 전제하고 글로 싸운 싸움에 독자들이 편을 나누어 공감하며 '우리 편 이겨라' 응원도 해주었다. 진지남과 익살녀 캐릭터도 그 즈음 확고해졌다. 이 캐릭터로 장사가 잘 되었다. 무엇보다 '다름'을 전제하니 둘 사이에 수월해지는 것이 많았다. '같음'을 전제하고 교제하다 한 달 만에 헤어졌는데 '다름'을 전제하고 살아보니 18년, 20년이 풍요롭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철학상담에서 주워들은 것으로 풀어보자. 타자에게서 자기성을 찾고자 하면 공연한 기대만 높아지고 병리적인 집착이 생길 뿐이다. 의지적으로 지향할 것은 자기의 타자성이다. 즉, 나와 달라서 불편한 '그'가 아니라 '그'와 버성기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갈등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라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내 모습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과정은 늘 고통이었지만 고통보다 큰 열매가 있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며 사랑의 깊이와 신비를 배워왔다.




짧은 여행 중에 각자의 폰카메라에 남은 사진이 재미있다. 밤 산책을 하며 남편이 찍은 건물 사진과 아침을 먹으며 식당 테이블을 찍은 나의 사진이다. 그림자와 함께 하는 실물 풍경이다. MBTI가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너는 외향, 나는 내향. 꽝꽝꽝! 흔히 이렇게 이름 붙이는 MBTI와 달리 Jung의 이론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즉, 외향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내향적 성향이 가라앉아 있고, 마찬가지로 감각형 사람의 무의식에는 직관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안에 다 있는데 어느 하나를 선호하여 사용하느냐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 Jung 슨상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향할 것은 둘 사이의 통합이다. 통합을 위해 쥐어짜낼 필요는 없다. 즉, 외향형 사람이 내향형 계발을 위해 힘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외향적 성향을 좋아하고 자유롭고 풍성하게 쓰면서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힘들을 믿으면 된다. 그렇게 생의 전반부를 살다보면 중년 이후에 자연스레 내향적 성향이 무의식에서 떠올라온다는 것이다.


반대유형인 남편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내게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성품들을 잘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처음엔 내게 없다고 느껴져 열등감으로 다가왔으나 어느 새 내가 남편을 배우고 있었다. Jung 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없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좋은 모습이 더 좋게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반대유형의 짝을 만나 살게 된 것이 큰 유익이다. 두 장의 사진처럼 그림자의 존재를 잘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편과 내가 어떤 점이 비슷하다, 다르다 언표하는 것에 큰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장사 밑천이 떨어진 것 같다. 같은 지점을 찌르고 동시에 찔리는 갈등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굳이 MBTI 식으로 말하자면 논리적 맥락 자체가 중요한 사고형 vs 관계가 중요한 감정형의 대립이거나, 외향 내향 에너지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서로에 대한 신뢰보다 크지 않으니 찌르고 찔려도 이렇다 할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결혼 18주년 선물 치고는 꽤 큰 선물이다.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이 길구나, 했는데 얼굴로 먹은 나이가 고스란히 그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다. 5월의 그 싱그러운 신랑 신부는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가! 그런데 이상하다. 나이값 제대로 하는 저 사진의 얼굴이 싫은데 싫지가 않으니.


'김서방, 고마워. 아이구 고마워. 내가 우리 김서방 얼매나 이쁜지 몰라. 우리 까드락시런(까다로운 ㅜㅜ) 신실이랑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 녹음기에 오토리버스로 돌아가는 트랙이다. 워낙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말씀이라 반론이 불가하다. 까드락시런 김서방 맞추는 고충에 대해서 할 말이 백 개지만 참는다. 결혼 18 주년의 감사와 행복은 다 모세 할아버지 버금가게 온유한 JP 덕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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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채윤이는 꽃다운 친구함께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소중한 추억의 구슬을 하나를 만들어온 듯하다. 꽃친들 먹거리를 실어 나르는 것을 핑계 삼아 월요일 저녁을 함께 보내고 왔다. 꽃친들은 아침 일찍 itx 타고 출발하여 남이섬으로, 레일바이크 체험으로 신나게 하루를 놀고. 우리 부부는 느긋하게 출발하여 숙소인 '강원도 숲체험장'에  먼저 도착했다.


숲체험장은 또 뭔가 싶었는데. 신혼 초에 우리가 많이도 다녔던 국립 휴양림 같은 곳었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 채윤이 태교를 거의 휴양림에서 했었다. 기타 하나 들고 휴양림에 가서 자고 피톤치트 많이 나온다는 오전에는 숲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그랬다. (우왕, 태교 잘했다.) 무슨 데쟈뷰처럼 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 하나가 손잡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언제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다. 

   






'어이구, 좋다!' 숙소 거실에 대자로 누운 남편을 두고 '쑥 캐러 걸 거야' 하고 나왔다. 양지 음지를 오가며 아직 어린 쑥을 캐는데 아, 기분 최고! 봄볕 아래 이 고요한 기쁨을, 향긋한 생명력을 채취하는 풍성함을 뭐라 표현할까? 빽빽한 일상의 숲속 빈터에 비치는 햇살 한줌 같은 시간이다. 남편이 나와 합류했다. 서울(가까운 하남) 촌놈이라 쑥과 냉이 생김새 향, 쓰임새를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데 역시 학구열 높은 착한 학생이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하다. 조금 건드려보다 자리 옮기고 금세 또 다른 곳을 찾아 일어나는 나와는 달리 성실하다. 한곳에 딱 앉으면 그 주변을 쑥을 다 접수하여 쑥대밭 만들어놓고야 자리를 뜬다.


길다란 몸을 구부정하게 접어 쑥을 캐는 남편을 바라보노라니 뜬금없이 '사랑받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허용하고 게다가 함.께. 해주는 것'이 내가 가진 '사랑받음'에 대한 정의 중 하나. 그래서 신혼 때 남편이 놀리곤 했다. '같이? 같이 할까? 빨래 같이 갤까? 장보러 같이 갈까? 같이 먹을까?' ('같이 가치'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전 나는 이미 살았었다고) 문제는 김종필에게는 '혼자, 조용히'가 중요한 가치였다는 것. 몸은 물론 정신적 영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걷고, 책 보고, 글쓰는 시간이 필요한 남자.


같이 가치 vs 혼자 가치

교차점 없을 듯한 가치의 대결이 상생의 가치가 된 것은 그가 자기 경계를 먼저 허물었기 때문이다. '같이 있기' 위해서 혼자의 가치를 기꺼이,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해주었다. 한쪽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면 마주 선 이도 자연스레 무장해제 하게 된다. 관계, 사랑하는 관계의 신비이다. 그가 '같이 가치'를 기꺼이 수용해주고 수 년이 지나자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혼자 가치'를 보는 눈이 생겼고, 누릴 힘이 생겼다. 아니었음 여전히 삐지고 수십 미터 장벽을 쌓았다 허물었다 하고 있을 터.






아이들과 샘들, 함께했던 부모님들이 속속 도착하자 시끌벅적해졌다. 푼수 부부 컨셉으로 시끌벅적에 아재 개그, 막던져 개그를 보태며 둘이 좋아라 킥킥거린다. 어머, 아이들 사이 우리 채윤이가 집에서 보는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게 웬일! 친구들 쌤들 성대모사를 하고 흥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일곱 살 채윤이가 돌아오는 것 같다. 한참 고기를 굽고 있는 아빠에게 와서 채윤이가 살짝 그랬단다. '아빠, 오늘 함께 와줘서 너무 고마워' 채윤이가 얼마나 좋았을지 짐작이 된다. 엄마 닮아 '함께 같이'가 좋은 아이가 아닌가. 다녀와서는 '엄마, 나 아빠가 너무 좋았어. 황당 퀴즈 ***가 퀴즈를 내면 맞히는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아빠가 딱 맞히고 게다가 더 황당한 얘기로 ***를 당황시켰어. 하하하하. 아빠가 고기 구으면서 ***이랑 오래 얘기하는 게 참 좋았어'


언젠가 깊은 기도와 성찰 끝에 남편이 했던 얘기다. '나는 성경 말씀 중 오 리를 가자하는데 십 리를 같이 가 주라는 말씀이 제일 어려워. 오 리가 다 뭐야. 나는 조금 같이 가면서 가는 방법 알려주고 혼자 가라고 하고 싶은데.' 이런 자기인식의 힘이 컸다.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편이 아내와의 하릴 없는 수다에 기꺼이 시간을 허비해주기로 작정한 것을 안다.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쉴 새 없이 심방하고 일하고 들어오는 화수목금토일을 사는 남편이 월요일마저도 아내와 같이 놀기, 채윤이 노는 곳에 따라가 주는 것이다. 십 리를 함께 가주는 마음임을 안다.


그러니

이 아빠, 이 남편 찬양 받기 합당하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종필은 짱, 종필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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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 간이(간에) 무슨 얘기가 그르케 재밌댜. 아주 그냥 잠도 안 자고 사바사바 뭔 얘기를 그르케 혔사. 내가 가만히 눠서(누워서) 들어봉게 우숴 죽겄네. 그르케 둘이 헐 얘기가 많여?" 전에 우리 엄마 귀가 아직 훤히 밝을 때 며칠 우리 집에서 지내시며 하신 말씀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둘이 사바사바 할 얘기가 많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수가 틀리면 같이 서너 시간 붙어 있더라도 말 한 마디 오가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그럴 경우 먼저 입을 닫는 쪽은 늘 우리 엄마의 딸이고, 먼저 말을 시키는 쪽은 엄마의 사위 김서방이다. 


월요일 데이트 이런 저런 계획이 무산되고 드라이브나 가자고 나선 길, 살짝 살얼음이었다. 어디갈까? 정신실 좋아하는 심학산 갈까? 그러든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음.... 꽃이 예쁘게 핀 데가 어딜까? 아무 데나 가! 아이스를 브레이킹하려고 김서방이 애를 쓴다. 김서방 한 마디에 대답도 한 마디, 살얼음은 잘 깨지지 않는다. 김서방 한 마디에 그의 처가 열 마디 쯤 받아쳐야 사바사바가 되는데 말이다.  뚝뚝 끊기던 말이 따그닥따그닥 달리기 시작한 건 어쩌다 나온 이 한 마디, 아이들 얘기다.


- 그나저나 신앙이든 뭐든 현승이가 더 힘들 수도 있어. 채윤이는 오히려 수월했지.


맞아, 맞아. 내가 얘기 안 했지? 어제 현승이 중등부 예배 안 드리고 나랑 드렸어. 중등부 가기 싫다고.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딱 집어 설명할 이유는 없대. 그냥 중등부가 싫대.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니까 왜 교회가 학교 같이 하냐고. 이름도 교회 학교가 뭐냐고. 교회는 뭔가 학교랑 달라야지. 틀이 딱 있어서 학교같이 돌아가는 게 싫대. 일단 같이 예배 드렸어. 어른 예배는 좀 낫냐고 했더니, 더 나아서 드리는 게 아니고 이것도 안 하면 엄마가 중등부 안 가는 걸 허락하겠녜. 중등부 예배도, 어른들 예배도 좋은 건 아니라고 해서 하나님도 안 좋냐고 했더니 짜증을 확 내더라. 걱정이야.


- 채윤이는 교회를 좋아하잖아. 두 녀석이 참 달라.


그럼. 이 나이 아이들은 일단 재미로 교회 다니는 거잖아. 우리도 그랬잖아. 친구가 좋고, 가서 뭔가 재밌고, 그러다 신앙이든 교회 문화든 스르르 젖어드는 거잖아. 채윤이는 딱 그런 거지. 찬양팀 하면서 뭐가 뭔지 아무튼 감정에 젖어보고, 작년에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찬양으로 나름 체험했잖아. 현승이는 그런 게 없어. 시선이 밖으로 가 있어서 외부 영향을 쫙쫙 받는 외향형 채윤이, 자기 안에서 오케이가 떨어져야 움직이는 내향형 현승이. 어쩌면 그렇지? 딱 영화 <늑대아이>의 유키와 아메지? 그 남매와 우리 채윤이 현승이가 똑같애. 현승이는 안 믿어지는 건 안 믿어. 모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건데, 우리는 하나님 믿으니까 하나님을 진짜 신으로 생각한다는 거야. 죽음을 엄청 두려워하는데 하나님, 천국 이런 것들은 전혀 실재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나봐. 정말 걱정이야.


- 좋은 거야. 스스로 끝까지 사유해서 하나님이 없다, 까지 다다르면 거기서 새로운 생각이 싹 터.


그렇지? 대부분 철학자들이 그랬더라. 어렸을 적부터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랬더라고.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도 그렇고. 현승이한테 그 얘기도 해줬어. 하긴 나도 청년들이 질문을 던지지도, 스스로 사유하지도 않으면서 믿는다고 착각하는 게 답답해. 흔들리고 방황하더라도 자기 하나님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지. 그거 안 하면 나처럼 나이 들어서 한 판 뒤집어지는 거야. 아, 그래도 현승이가 저렇게 사춘기 지내다 정말 신앙에서 떠나거나 그러진 않겠지? 요즘 현승이 정말 비기비기 꼴비기야.


- 괜찮아. 현승이가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는 게 있잖아. 우리를 보고, 집안에 구석구석 상징들이 있잖아.


하긴. 아이들이 말로 하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젖어드는 것을 습득하지. 탕자의 그림도 있고.... 아, 영성심리 공부할 때 그랬어. 영성형성에서 아주 중요한 축이 전통이라고. 헨니 나우웬 신부님 글에도 이콘 묵상이 많이 나오잖아. 절기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도와 간단한 의식들이 어디로 가진 않을 거야. 그치? 결국은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아. 아이들이 클수록 말로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두렵고, 의미없다고 느껴져. 


- 예전(禮典)이란 게 중요한 거야. 형식만 남는 것이 문제지 적절한 의식이 필요해.

현승이 걱정하지 마. 녀석, 씨니컬하다가도 안아주고 부드럽게 대해주면 금방 녹잖아.

그저 사랑해주면 돼.


하긴 그래. 나 요즘 현승이한테 너무 딱딱하게 굴었다. 얄밉기도 하고 이젠 떠나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어서 거리두기 했거든. 중학교 가서는 마주하는 시간도 짧아졌고. 까칠하게 나오면 내가 상처받을까봐 먼저 방어한 것도 같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드럽게 대하서 수용해줘야겠다. 맞아, 맞아. 보다 큰 긍정이 필요한데 말이지. 일깨워줘서 고마워. #^#$&@#!#^$%&ㅑㅑㅚㅐㅓㅔㅔㅔㅕㅑㅓㅐㅛㅢㅛㅔㅓ.....@#&........



# 사바사바 회복.

그가 한 문장 던지면 내가 5분 얘기하고, 또 한 마디 하면 백 마디 하고.

이런 게 우리의 사바사바였다.

주제로는 아이들 얘기가 최고다. 끝이 없다.

사진은 채윤이랑 양화대교를 걷다 강변을 내려다보며 얻은 한 컷이다.

"엄마, 저기 할머니 할아버지 봐. 너무 감동이야. 난 저런 장면이 왜 이리 뭉클하지? 나중에 엄마 아빠가 늙어서 저런 모습일 걸 상상하면 더 뭉클하고"

채윤이 엄마 아빠 늙어서 저런 모습일 때, 사바사바 채윤이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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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데이트, 우린 서로 다른 곳을 꿈꾸었다.

SS : 되도록 멀리 멀리 가고 싶어. 서울에서 가장 먼 곳. (3시간 이상 걸리는 곳만 검색)

JP : 가까운데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다.

SS : 되도록 멀리 가고 싶다니까.

JP : 영화 보자. 광화문 가서 영화 보고 동대문 구경 가자. 시내 들어가자.

SS : (특새도 있고 운전하기 힘들겄제) 광화문 콜! 영화 콜!




룰루랄라 버스 정류장 가는 길, 집 옆에 국수집 앞을 지나치는 찰나, 우린 배고팠다.

SS : 우와, 멸치국물 냄새 끝내주네. 맛있겠다.

JP : 여기서 먹고 갈까?

SS : 그럴까? 아!!!!!! 망원동에 이북식 만두집. 거기 가자. 가보고 싶었는데.

JP : 그래, 걸어가자.





만두전골을 먹고 나와 영화관을 광화문에서 상암동으로 바꾸자는 찰나,
우린 맛있는 커피가 땡겼다.
킵해뒀던 정보를 꺼내서 망원동 커피 맛있다는 집 위치를 보니 되돌아 가는 길이다.
JP : 나 따라와. 이쪽으로 가면 카페가 있을 거야.
SS, 따라간다. 있겠지. 맛있는 커피집.
서교동인지 망원동인지 성산동인지 골목을 걷고 걷던 찰나,
JP : 엇, 저기가  성미산긴가보다. 오, 이 건물은 공동주택인가봐. 동네 느낌 좋네.
SS : 성미산 가자, 성미산! 
한 번 가자, 한 번 가자, 하던 성미산을 이렇게 해서 와보네.
하는 찰나, 노란색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거의 마친 개나리가 눈에 들어온다.
목련도 마찬가지 일발장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다.
겨울이 가고 꽃 피는 봄이다. 다시 봄이 오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춥고 마음 시린 나날이 끝도 없을 것 같지만, 봄은 온다. 온다구.




짧은 산책 끝에 전망대에 올라 지도를 보는 찰나, JP는 연남동을 선택했다.  

연남동 가자,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자.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 서교동, 연남동. 좋네!

총선을 앞두고 마포구 땅밟기 기도하는 셈 치자고.

정청래 의원 얘기를 하며 손 꼭 잡고 걷는다.

그 찰나, 눈앞에 나타난 벽화는 연남동스럽지 아니한가.




연남동 동진시장 도착.

카페 리브로는 물론 커피 상점 이심도 문을 닫았다.

는 것을 확인한 찰나, JP는 이심 앞에 철퍼덕 앉아 검색질을 했다.

그리고 찾은 모카포트 전문 카페 '사이'

편한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니 졸음이 솔솔.....

오는 찰나, 

JP : 갈 때는 홍대 쪽으로 가자. 홍대 앞에 가서 정신실 뭐 하나 사줄게. 

글치, 젊은이들이 투표 많이 해야 하니 홍대 앞도 좀 밟아줘야지. 가자 가자.

홍대 앞 길거리 마켓을 지난다.

뭘 사지? 뭘 살까? SS 눈 돌아가며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하는 찰나,

JP 휴대폰이 울린다. 구역성경공부에 관해 질문 있으신 집사님.

통화가 안 끝난다. 맘에 드는 옷도 있고 모자도 같이 보고 싶은데 안 끝난다.

쇼핑 의욕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다 1% 남은 찰나, 통화가 끝난다.

그냥 걸어. 걷자. 계속 걷자고.  


 



다리는 물론 신발에 자꾸 닿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찰나,

합정역에 새로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 앞에 도착.

참새 둘이 신장개업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한 바퀴 돌고 마음에 드는 책 하나 씩 골라 계산하려는 찰나,

지난 주 월요일 일산 알라딘에 책 팔러 갔던 생각난다. 그때 번 돈으로 계산.

기분 좋게 서점을 나서는 찰나, '목사님!' 하는 소리.

이름만 알던 자매님 한 분을 만나 시인 정지용 님 앞에 서서 수다수다.

그리고 메세나폴리스 찍고 컴백홈.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고

찰나가 이끄는 하루 데이트를 마치고 정산 해보니.

오늘 찰나의 총합은 17,576 걸음, 12.34 km.

긴 도보여정,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다.

인생이 이런 거지. 하하.






현승이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찍고 보니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채윤이 졸업식 사진을 꺼내보지 않을 수 없네요.






채윤이도 중학교 졸업을 했는데

3년 전, 입학식 때 같은 장소에서 세 살 젊었던 아빠와 찍은 사진 오버랩.

감상 포인트는 채윤이 표정 변화.




'그땐 그랬지' 놀이 시작한 김에 현승이 초등학교 입학 사진을 찾아보니.....

그 즈음 컴퓨터 하드를 한 번 날리면서 기록도 깨끗하게 날려버렸었죠.

초등학교 입학하고 며칠 안 되어

남한산성에서 털보 아저씨가 찍어주신 사진이 있네요.




지난 주 겨울 피정으로 거제도에 다녀왔습니다.

9년 전 여름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설정샷을 찍어 봤습니다.




9년 전 거제 여행 때, 저렇게 말랑말랑했던 현승이.

뺀질뺀질, 삐딱삐딱, 반항반항 사춘기 다크포스로 거제도를 흑암에 가두고 왔습니다.

달리 격세지감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생일상 받은 여자, 자랑 좀 하겠습니다.

결혼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니 눈 딱 감고 한 번 들어주십쇼.


남편 김종필 님, 곱게 자란 남자라 요리라곤 못합니다.

몇 년 전 제가 코스타 가느라 한 열흘 집을 비웠는데 밥이란 걸 처음 해봤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주방에 몰아넣고 부려먹는 마초는 아닙니다.

밥이나 먹을 것에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굳이 주방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종종 섭섭했지만 저는 생일 이벤트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가 아닌지라

(중요하게 여기는 척마저 안 하진 않습니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든 말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일선물 빙자하여 봐뒀던 옷이나 하나 크게 챙기면 땡큐지요.

겨울 피정 중에 생일이었습니다.

피정 중에 생일이네.... 여행 중에 생축해야겠네.

분명히 이렇게 말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자입니다.

여행 마지막 밤 변산에서 가볍게 저녁 때우기로 하고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갔습니다.

엎드려 절받기로 즉석 미역국, 인스턴트 떡볶이 등을 사서 안겼습니다.

나는 쉬고 있을 테니 생일상을 차리라, 엄히 명했습니다.

메뉴얼 읽어가며 공부하듯 즉석 미역국과 즉석 떡볶이를 준비하는데.....

와, 그 좋은 머리로 저렇게 어렵게 일을 하다니.

바라보는데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한두 번을 제외하고 생일에 미역국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요.

어쨌든 남편이 준비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18년 걸렸습니다.


생일 이틀 지나고 오늘.

서프라이즈는 덤!

안성에서 강의를 마치고 퇴근 시간에 걸려 네 시간 운전하고 너덜너덜해져 돌아왔더니

이런 깜찍한 준비를 했더라는.....


생일에 미역국도 얻어 먹고 서프라이즈 케잌 세러모니도 당한 여자, 자랑 좀 했습니다.














사춘기를 빠져나온 1번,
사춘기를 시작하는 2번,
오춘기를 빠져나온 엄마 아빠는 가족 피정 중입니다.

경증 사춘기 아들은 성장 호르몬 탓에
시시각각 삐딱선을 탔다, 정상궤도로 왔다, 오락가락입니다.
세 식구를 왕따시키며 스스로 왕따가 되어
자처한 외로움에 파묻혀 있다,
어느 새 엄마 품에 볼을 부비기도 합니다.

꽃친 딸은 엄마 곁에 슬쩍 와서는....
엄마, 이번 여행은 순간순간이 좋고 아쉬워.
뭔가 엄마 아빠가 더 젊었을 때 여행갔던 게 그립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니까.....
(먼산)

내비도!
사춘기 부모의 필살기 신공 발휘, 여행은 그럭저럭 무난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춘기 끝자락 엄마 아빠는 그런 대화를 했죠.
아이들 귀여웠던 시절과 함께 우리 젊음도 이렇게 가네.
채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왔던 이곳 거제도 해변에 다시 서니
9년의 세월이 한 번에 지나간 느낌이네요.

숙소에서 잠시 찾아온 평화.
채윤이는 일기 쓰겠다고 엎드렸고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현승이는 기타 치며 노래합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선곡 끝장이네!
엄마가 찬송가 풍으로 3절까지 따라불러줬습니다.





 

 

 

새로 장년 교구를 맡은 남편이 첫 행사인 구역장 수련회 준비로 분주했다. "이번엔 왠지 그러고 싶다"면서 수련회의 모든 것을 혼자 준비했다. 몇 분 구역장 권찰들께 부탁하면 기꺼이 도와주시겠지만 왠.지. 이번엔 혼자 준비하고 싶다는 말에 '초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 이 사람이 새로 만난 구역장 권찰님들을 초대하고 싶은 거로구나! 수련회 프로그램, 말씀, 찬양, 핸드북 제작은 물론 간식까지 그야말로 주님의 손과 발과 입과 머리되어 올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구들이 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시간, 갑자기 평소 내는 소리보다 두 배는 되는 데시벨로 '나느은, 7교구다!!!' 외쳤다. 아이들과 내가 깜놀하고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 왜 저래?" "놔둬.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는 거야."

 

커피도구 가지고 다니면서 출장 드립하는 것 좋아하지만,  원칙이 있다. '하고 싶을 때, 주고 싶은 사람'에게 이다. (아, 커피 관련 문장의 주어는 항상 남편 아니고 나) 남편의 진정성 있는 동분서주가 예쁘게 느껴져서 간식은 내가 맡아주겠다 했다. 게다가 커피 출드까지 하겠노라 했다. 이런 일은 시켜도, 부탁해도 해주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에 말도 못 꺼냈을 텐데 자발적으로 해주겠다 하니 7교구 목사님,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분들을 '초대'하고픈 남편 마음의 주파수에 맞춰 비록 과자 사탕이지만 고심하고 고민하여 장을 봤다. 당일엔 내 시간 계산법으론 정말 이르고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미리 간식 세팅 다 하고 커피 드립 시간을 구역장님들이 도착하실 시간에 딱 맞추려는 야심 찬 작전. 계단을 내려오시면서부터 커피 향으로 환대해야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패다! 혼자 모든 걸 준비하는 남편과 진짜 일찍 오신 몇 분과 일단 테이블 놓고 자리 세팅하는 것에 투입.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간은 다 됐고, 정수기 물은 떨어졌고, 마침 내가 가져간 무선 커피포터는 물이 자꾸 새서 덥석 쓸 수가 없고.... 무슨 정신으로 모닝커피를 내렸는지 모르겠다.(에프터눈 커피는 실패하지 안케따!!)  애초 슬픈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닌데.... 정신없이 티타임 마치고 찬양 시작하여 의자에 앉았더니 앞에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한다. 내 마음에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노래가 울린다. 프로그램 시작하면 나는 빠져나오기로 했는데 찬양이라도 따라부르며 나간 정신을 붙들어 와야지 싶어 앉아 있었다.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본문이 로마서 16장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너희는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헤로디온, 나깃수의 가족,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의 어머니, 아순그리도블레곤허메바드로바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 빌롤로고율리아와 또 네레오그의 자매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너희가 거룩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아는 이름이라곤 브리스가와 아굴라 뿐이네! 설교의 키워드는 '일일이 이름 부르며 인사하는 바울'이었다. 로마서는 신학논문이라며, 깊이 연구하게 되는 성경이라고 했다. (논문이라니, 논쟁꺼리가 많다니 이 얼마나 7교구 목사님 JP님의 스타일인가!) 그런 의미로 이 16장은 자주 지나쳤단다. 논문과 논문 사이 끼어있는 나열된 이름들, 그들에게 그냥 문안 인사를 전하라니. 연구나 묵상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헌데 이번에 16장이 마음에 들어왔다며, 한 사람 한 사람 들여다보며 묵상해보니 구역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며 설교 설교 설교.... 하였다.

 

'왠지 이번엔 혼자 다 준비하고 싶다.' '나는 7교구다!' 했던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 같다. 대형교회 부목사로 목회한다는 것. 650여 명의 이름은 알지언정 사람과 사람으로의 스킨십은 없는 관계로 목회한다는 것. '정서적, 영적 스킨십 없는 목회'라는 것이 과연 성립할 수는 있는 말일까? 누군가의 신앙적, 영적 안내자가 되고 싶어 목사가 되었는데, 누군가의 '우리 목사님'이고 싶을 텐데.... 구조라는 넘사벽이 있다. 그 쓸쓸한 딜레마를 뛰어넘겠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비록 얼굴을 마주할 순 없지만, 이름으로만 나열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보고 묵상하듯 그저 이름만으로 대하진 않겠다는 결심으로 들렸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 목사님'이 아니라 '7교구 목사님'일 뿐인 자신을 로마서 16장에 나열된 이름에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는, 이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알아주든 말든 혼자 준비하는 수련회에 '초대'의 마음을 담았겠구나 싶었다. 그런 속내가 읽히니 울컥했다. 

 

 성경에 관한한 전문가가 되겠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자주 지적탐구에서 확인하려는 남편이 손발을 움직이는 것에 그저 시간을 들이는 것, 로마서의 그 많은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줘'에 마음을 꽂은 것은! 정신실이 웃기는 걸 포기하고 지루한 것에 올인하겠다는 것과 같은 엄청난 방향의 선회이다. 본인은 자신의 이 변화를 알까?  목회자라서가 아니라, 목사라서가 아니라, 남다른 기준을 가진 특별한 교회의 전임 목사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려는 한 사람으로서, 나답게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무르익어가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나의 영적여정에 힘이 된다. 7교구, 7교구, 세븐, 세븐, 세븐...... 헤븐? 하다가 '하늘가족 7교구'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흔하디흔하여 식상한 말 '하늘가족'엔 하잘것없는, 이름으로만 아는, 때론 이름도 모르는 어느 목사의 가슴 뛰는 묵상이 담겨 있다. 한 송이 이름없는 들꽃같은 어느 대형교회 전임목사를 응원한다. 

 

 

 

 

 

 

 

 

 

JP&SS는 우리 부부를 이르는 조금은 공적인 호칭이다. 오래 전 [복음과 상황] 편집장이시, 당시 우리 부부의 목자(? 그런게 있다)이기도 하셨던 (채윤이 발음으로) 쉐석 목짠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싸이클럽에서 댓글 농담 따먹기 놀이하다 지어진 이름인데 필명이 되었다. 그 필명으로 쓰던 글이 신혼일기였고 알콩달콩을 빙자한 좌충우돌이었으나 결국 이름에 남은 이미지는 달달함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JP와 SS라고 불러주었을 때, 우린 그에게로 가서 사이좋은 부부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단지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일, 한몸 이루라는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지켜내자' 약속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 약속 지키려 애쓰던 시간은 고맙게도 좋은 부부관계 이전에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보편 사랑을 배우는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충분히 성장했고 충분히 큰 사랑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친구와 부부관계에 대해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다. '우씨, 가만히 두면 그대로 유지나 하고 있지. 가만히 두면 꼭 퇴보하고 문제가 생겨' 부부가 아니라도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손을 놓으면 어느 새 누런 잎이 생기고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 는 없다. 중년으로 접어들며 둘 다 배둘레햄이 두꺼워지고 마음의 내장지방도 꽤 쌓여서 덤덤하며 동시에 느긋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밧뜨, 결혼 20년을 바라보는 중견부부가 되었다고 햇빛과 물과 공기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생애 전환기를 맞아 다시금 보듬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줘야 하는 시절인지 모르겠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기로 한 지리산 산행을 준비하는 것 때문이었던가. 아니 그 전에 자전거 타다 넘어져 다쳐 손가락이 아픈데 따뜻한 걱정을 안 해줘셔였던가. 흠, 분명 뭔가 더 심각한 일이 많았다! 늘 그렇듯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흔들어 놓는다. 그렇다. 그는 나무, 나는 바람. (내가 먼저 시비를 걸고 흔들었다. 뭐) 둘이 합하면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생각보다 불편한 시간이 길었다. 또 늘 그렇듯 '흥, 결코 대화하지 않겠어! 일단 기도를 하지 말아야지. 기도하면 남편을 용서하게 되니까 최대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해' 마음의 길은 '삐뚤 길'로 달려간다. 각본상 그리 되면 애써 시도하는 대화는 늘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결렬되고 만다. '당신 꼭 ㅇㅇㅇ 같아' 치명적인 무기도 썼다. 피를 철철 흘리던 남편의 반격도 이어졌다. '꼭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하기가 ㅇㅇㅇ 같아' 헉! 중상. 위생병, 위생벼어~엉!!!! 여름 휴가며, 간만의 부부 피정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 번호의 애칭을 바꿨다. 애칭에서 이름으로 바꿨다. 그래, 당신은 이제부터 '그냥 김종필이다. 흥, 칫, 피!' 그런데 이게 답이었다. 사랑의 빛을 잃은 깜깜한 동굴 속에 비친 한 줄 가이드 라인이었다. 김종필을 그냥 김종필로 보고 나는 정신실이 되는 것. 기도하지 않겠다 결심해도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가 이기기도 한다. 기도 속에서, 성경말씀 속에서, 슬픔에 지쳐 잠든 꿈 속에서 '김종필을 김종필 되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린다. 더불어 그를 두고 세속적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버린 내 마음도 조금씩 보인다. 한몸 이룬 우리는 늘 또 분리되어 독립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이며 둘인 그 긴장을 살아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둘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랑의 묘미이다.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몸을 배우기란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차거운 분노로 냉랭했던 서너 주가 지나갔다. 둘이 대화했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았고, 기다렸고, 아파했다. 그러고 보니 무엇보다 그 사이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오랜 알아온 부부, 처음으로 만나는 부부,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 부부, 생각과 마음이 딱딱 맞는 부부. 각각의 만남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고 함께함으로 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마음으로 흘러 들었다. 휴대폰의 남편 이름을 새로 저장했다. 오글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다.  휴가 마지막 날 남편은 혼자 천안의 신대원에 다녀왔다. 3년 동안 행복하게 공부했던 도서관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그리고 구입한 책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책 제목으로 추정해본, 부부가 세트로 앓은 홍역에 대한 남편의 처방은 이것이다. '내 가장 중요한 소명이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며 그것은 좋은 아버지로 사는 일상 속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다.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플하게 지금 여기를 살겠다. 자, 이제 그런 의미로 2학기 구역성경 공부 본문인 요한계시록 연구에 매진!'

 

 

 

 

결혼학교 강의 준비로 다시 꺼내 읽는 래리크랩의 <결혼 건축가> 일부분이다. 주례사를 듣는 느낌으로 옮겨 적으며 고해성사를 마친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한사람의 다른 인격을 톡특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 즉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고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더욱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하나님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엄마, 나 요즘 들어 아빠가 너무 좋아져. 그런 거 같지 않아?

요즘 아빠한테 짜증도 안 내잖아. 아빠가 말장난해도 짜증 안 내지?

 

그러네.

 

오늘도 아빠랑 영화 봐야~아지.

 

안 돼.

 

왜애? 오늘은 헝거 게임 투 볼 거야.

 

안 돼.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놀 거야. 요즘 아빠 퇴근하면 계속 너랑 놀았잖아.

 

두 번밖에 안 놀았다고~오. 캐치볼 한 번 하고, 영화 한 번 보고.

 

당연하지. 아빠가 요즘 일찍 퇴근한 게 딱 두 번인데.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매일 매일 같이 놀잖아.

 

뭐가 매일 놀아?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엄마 요즘 아빠랑 얘기도 못 했어. 오늘은 엄마가 아빠랑 놀 거야.

 

치사해! 진짜 치사해! 엄마랑 아빠는 평생 같이 놀 거잖아.

나는 조금밖에 못 놀고. 치사해!

 

넌 누나랑 놀아. 아, 누나가 못 놀지.

 

누나는 나랑 놀 시간도 없고. 시간이 있어도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췟!

 

너는 하루 종일 한강에서 놀고 자전거 타고 월드컵 공원 가서 또 놀고 그랬잖아.

 

그래도 아빠랑은 안 놀았잖아. 진짜 치사해. 어른이라고 마음대로 하고.

 

(풉) 우헤헤헤헤..... 놀아라, 놀아. 남자끼리 놀아라. 임뫄!

 

 

 

# 어쩌다 JP 인기가 이렇게 좋아졌지? 우리 집 인기투표 등수 4위였는데.... 뭐지?

  암튼 사진의 느낌을 봐라 임뫄. 아빠가 니꺼냐 내꺼냐?

  나 이거 참. 한 때 딸내미 하고 아빠를 두고 경쟁한 적은 있으나,

  그건 뭐 심리학계에서 인정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치자.

  내가 이제 와서 사춘기 앞 둔 너하고 아빠 쟁탈전을 해야 한다 말이냐?

  그것도 임뫄, 진짜 자존심 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한 때 엄마 중독자였었잖아!!!!!!!!!! ㅜ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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