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한 남편과 드디어 <윈터슬립>을 보았다. 3시간 16분의 런닝타임도 잘 견뎠다. 물도 커피도 마시지 않으니 인터미션이 필요하지 않았다. 끝나고 배가 무지하게 고팠고 식당을 찾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앗, 저기 들어갈 걸, 검색해봐, 뭐 없어, 저긴 비쌀 것 같아, 주차할 곳이 없잖아, 이러다 괜히 서로 감정이 틀어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식당을 정하고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테이블 옆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면서 남편이 무심하게 '정신실 뇌관 건드리기' 놀이를 시작했다.

 

- 이제 속셈을 말해 봐. 영화 주인공이 나랑 닮았어?

- 뭐라? 속셈? 속셈이라니!! 난 진짜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보자는 거였어. 당신 내가 그런 뜻으로 영화보자고 했는 줄 알아? 당신을 닮긴 뭘 당신을 닮아. 오히려 나를 닮았지.

- 나는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무슨 당신을 닮아? 어떤 점이 당신을 닮았어?

- 지역신문에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알량한 글 써놓고 자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 아냐,  당신보단 나랑 비슷하지. 책이나 글에 빠져서 합리적인 척하고. 집세를 받고 이러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 시키고 거리두고. 

- 내가 이 영화가 좋다고 한 건 바로 그것 때문이야. 누구라도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

- 하긴, 등장인물 셋이 다 그렇지 않아? 

- 그래. 영화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지? 그래서 현실 같지?

 

(벌컥!)

 

- 그런데 당신 내가 무슨 속셈이 있대. 내가 뭐 당신을 그렇게 통제하고 다루는 사람이야?

물론 지난 번 <Her>를 보고 당신과 닮았다과 많이 쪼았지. 인정해. 

그런데 진짜 이번엔 다른 뜻 없었어. 당신이 갑바도기아 갔다 왔고, 그 배경으로 찍은 좋은 영화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했다규! 속셈이라니.... 속셈이라니.....

 

- 그건 농담한 거야. 영화에서 니할이 계속 '속셈을 말해보라'해서 따라한 거야. 밥 먹어. 

 

(그렇게 일단락)

 

다음 날 저녁 남편의 카톡으로 '속셈'과 일대일 대응되는 사건 발생. 어이없음으로 시작하여 삐짐을 경유한 분노가 재점화되었다. 아, 내가 말했던가? 실은 내가 분노중독자라고.

 

 

 

 

뭐라? 걱정 마?

내가 무슨 걱정을 한다고라?

분명 오늘 아침에 당신 아들 현승에게 당신 입으로 니가 약속하셨잖아요?

당신이 강변을 나가거나 안 나가거나 내가 무슨 걱정이래요? 당신 나한테 왜 이래?

나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야. 내가 언제 당신 때렸나, 생각해 보고 있음. 어이 엄슴.

 

내 뇌관을 건드린 '속셈'과 '걱정 마'에 대단한 뜻이 담기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럴 것이다. 그야말로 속셈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괜시리 제 발 저린 내가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럴 땐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윈터슬립>에서 네즐라가 주인공 아이딘에게 쏘아붙인 명대사가 답이다. "오빠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내 뜻이 남편 뜻이 되기를, 남편 마음이 내 맘 같기를 바라며 은근히 통제하는 나. 남편 말과 행동 뒤의 동기를 다 아는 것처럼 단정 짓고 비난하는 나. 실은 내가 이러는 줄 알기에 남편이 이렇게 느낄가봐 두려워 늘 선제공격이다. (앗, 고백하고 말았어ㅜ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실제의 자기보다 자기가 더 괜찮은 인간'이라 믿고 싶어 자기 감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히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 남편도 속셈을 가지고 말한 게 아니 듯.

 

여기까지 생각이 미쳐서 회개와 근신의 마음이었는데, 때마침 읽은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의 다음 글귀가 확인사살 해주신다.

 

"만족의 현실주의(Realismus der Bescheidung)가 의미하는 것은 상대에게 쉼 없이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일, 또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일이다. 이러한 만족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가 주는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상대에게도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때만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아, 눼에! 신부님, 성령님, 예수님, 하나님. 잘 알아 들었습니다. 깊이 반성할테니 이런 깨달음 제게만 주시지 말고 부디 남편에게도 깊은 깨달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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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에서 몸땡이가 돌아온 지는 한참 됐지만

이제야 몸과 마음과 영혼의 여독이 제대로 풀려 일상 순례자의 자리로 돌아온 남편. 

모처럼 둘이 월요 피정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점심 맛있게 먹고 조수석에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온다.

'이제 일어나라. 바다도 보이는데'

강화도 뻘 바다에 도착.

 

 

 

 

더럽기로 소문난 동막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앉으니,

과연 바닷물은 진흙탕이었더라.

 

 

 

 

맨발로 갯벌에 들어간 저 연인은

나 잡아봐라, 해가며

화보 찍어가며.....

 

어허, 좋은 때다!

 

 

 

야, 햇살은 따겁다만 글드라도 바다에 풍덩할 날씨는 아닌데.

저 젊은이들 패기보소!

 

허허, 참 좋은 때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 하나, 뱃속에 꿈틀꿈틀 아기 하나.

그렇게 데리고 소풍다니던 때가 우리도 있었지.

언제 키우나, 언제 키우나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행복한 순간인 걸 저 젊은 부부는 알랑가 몰라.

 

참, 좋은 때다!

 

 

 

 

두 분 노시는 게 로맨틱하기로는  현재 해변에서 으뜸이십니다.

신발 벗고 갯벌 걸어다니는 거, 그거 사랑 아냐~

화보 촬영은 저 위 젊은이들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흡사 정사장님과 앙대요 여사님 분위기의 이분들이시네.

 

우야튼, 좋은 때이십니다! 

 

 

 

 

저~어 멀리부터 한 몸을 이루어 걸어오시기에,

'저기 봐. 좋은 때다 5 등장!' 하고 봤더니,

오메 죄송합니다. 쟤네들 아니고 저분들이셨음.

 

차~암, 좋은 때이십다!

 

 

 

 

당신 올해 몇이지?

어이구, 몇 년만 있으면 오십이네!

당신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실없는 농담에 묻어 나온다.

마음이 갑자기 막막하고 아득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선 김동률이 노래를 불러준다. <감사>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며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 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우리도 참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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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고 선사받은 커피 드립계의 아이돌 '에어로프레스' 입니다.

오, 다시 한 번 커피의 신세계를 만납니다.

광고에 나와 있는대로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사이,

그 둘 사이의 화평한 조우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남자들의 커피 토이라네요.

아닌 게 아니라 에어를 프레스 해야 하는 토이이다 보니까 힘이 필요하네요.

살살 원두를 달래며 물을 따라주는 핸드드립과 달리 프레~~~에쓰 드립입니다.

잘 됐죠.

착한데다 가사에 대한 마음은 충천하지만 주방 관련 업무에 너무 소원해서,

미역국을 고추가루 풀어서 끓인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 남편 김종필 님인데요.

남자의 커피 토이를 집에 들였으니 이 기회에 커피를 빌미 삼아 주방으로 끌어들여야죠. 

저러고 커피도구를 놓고도 일단 생각부터 해야죠.

(물론 그전에 메뉴얼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필수) 

 

 

 

이렇게 모닝커피 내리는 것을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로망이 이루어지려나 봅니다.

아침햇살로 가득 찬 침실.

미인은 잠꾸러기니까 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여 내 잠을 깨울까 조용종용 움직이며 커피를 내린 그가 커피향으로 나를 깨웁니다.

뚜둡뚭뚜 뚜둡뚭뚜......

(물론 관건은 어떻게 그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게 만드냐는 건데....)

 

 

 

 

며칠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침 먹고

"여보, 커피 마시자" 이러면 커피가 나오더라구요. 오메.

 

 

 

 

 

며칠 호사를 누렸는데......

커피 내려주던 그 님은 먼 곳에.....

커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나라 터키에 커피순례....

아니 성지순례, 성지순례 가셨습니다.

 

(내가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요즘 왜 이리 맛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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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딸노릇을 연구하신 딸노릇의 달인 '장손 김채윤' 선생의 작품 되겠습니다.

중간고사 기간, 새벽 두 시까지 벼락치기 열공 투혼을 불사하셨던 딸입니다.

시험 마지막날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를 위해 손수 만드셨습니다.

케잌 망가질까봐 홍대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도보 투혼까지!

요즘 하여튼 이래저래 혼을 불사르고 있는 김채윤입니다.

 

 

 

 

 

여자 심장 쫄깃하게 하는 이벤트 같은 것엔소질이 없으신 '선수 김종필' 남편께서는

어쩐 일로 퇴근 길에 꽃다발을 준비하셨습니다.

계단에서 아빠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인터폰 카메라로 동태를 확인하던 '깐돌 김현승' 은

"아빠가 손에 뭘 한 가득 들고 온다. 뭔가 대단한 거 같은데'

쇼핑백에 든 것인 꽃다발인 것을 확인하고 급 표정이 심드렁해지셨습니다.

 

선수 김종필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엄마 앞에 와 무릎 꿇더니,

"여보,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자

딸 김채윤 양은

"어머, 어머 멋져. 나 눈물 날 것 같아" 감동하셨습니다.

아빠를 닮아 세상의 모든 오글거리는 것들을 거부하시는 '깐돌 김현승' 아들은

심히 민망해 하며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JP와 SS 사이를 갈라놓겠다는 질투심 발동으로

케잌 위 초콜렛 중 S 하나를 낼름 빼냈습니다.

아직 오이디프스 형님의 영향권 벗어나지 못하셨나봅니다.

 

 

JP&SS Forever!

조폭신실은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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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 : 아빠, 나 체육시간에 피구했는데 오늘의 히어로에 뽑혔어.

        체육 선생님이 그 시간에 제일 잘 한 사람 한 명씩 뽑아주시거든.

        나 피구 잘해. 공격은 잘 못하는데 수비는 잘 해.

 

아빠 : 아빠는 공격도 잘 하는데.

 

엄마 : 당신 피구할 때 상대방이 공 갖고 있으면 맨 앞에서 잡으려고 손 뻗치고 있고 그런 애지?

         어우, 나는 그런 애들이 제일 무서워. 아니 공을 피해야지 왜 잡을려고 해. 

         공 딱 잡고 둘러보고 있으면 더 무서워. 어디로 던질지 모르거든.

         여자 애들도 그렇게 잘하는 애들 있어.

 

아빠 : 핸드볼 했잖아. 따~악 잡아서 따~악 던지는 거지.

        

엄마 : 아, 그 공 맞으면 진짜 아프겠다. ㅎㄷㄷ

 

아빠 : 나는 다칠까봐 위로 안 던져. 꼭 다리로 던져.

 

현승 : 아!  맞어, 맞어. 그러면 바닥에 튀면서 두 명도 잡지?  나도 공격 잘하고 싶다. 

 

엄마 : 나도 오래 살아 남아. 무조건 덩치 큰 애들 뒤에서 숨어 있으면 되거든.

 

아빠 : 뒤에 숨어서 오도방정 떨지?

 

엄마 : ㅋㅋㅋㅋㅋㅋ 어, 당신 같은 애들이 공 잡아서 '돌려 돌려' 소리 지르면 무서워서 정신이 혼미해져.

         막 오도방정 떨다가 정신 차려보면 공 들고 있는 상대편 바로 앞에 서 있는 거야.

         던질 필요도 없이 공으로 터치! 하면 치면 죽는 거지.

 

채윤 : 그럴 필요 없는데. 그냥 공 피해다니지 말고 상대편 서 있는 줄 근처에 서 있어.

        그러면 자기 편인 줄 알고 안 죽여.

 

아빠 : ㅋㅋㅋㅋㅋㅋㅋ 김채윤 너는 하여간. 너는 공 맞고 밖에 나갔다가도 쓰윽 다시 들어올 애야.

 

채윤 : 어! 어떻게 알았어? 나 그러는데.

         아니면 맞았어도 그냥 모른 척하고 막 뛰면 애들이 잘 몰라.

 

현승 : 진짜! 누나는 그렇게 맨날 속인다고오~ 보드게임할 때도 맨날 속여서 짜증난다고.

         속일려면 게임을 왜 해?

 

채윤 : 야, 속이는 게 게임의 재미야. 얘는 뭘 몰라.

 

 

@ 가족의 캐릭터가 살아 나피구왕 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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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아님

 

나 오늘 당신 출근할 때 같이 나갈 거야. 나 좀 태워 줘.

왜? 어디가?

병워~언. 건강검진 받는다고 했잖아. 몇 번을 얘기 해.

아, 맞다. 미안 미안. 오후라며?

내가 언제?

어제 당신이 그랬잖아. 오후 네 시경에... 네... 내... 아~아, 네 시가 아니고 내시경 한다고? 아~ 미안 미안. 내시경 한다는 거였어. (수습 수습) 수면 내시경 한다고 했지?

 

(진정성 있고 일관성 있는 사오정 귀, 18년을 살아도 안 질리는 이유)

 

 

 

 

# 나름 개그

 

엄마 : 어, 현승아. 대나무다! 아까 전에 입구에서 가지고 놀았던 긴 나무.

         대나무가 여기 있네.

아빠 : 어, 소나무도 있네.

현승 : 아빠, 나 아까 아빠랑 누나 식당에서 기다릴 때 엄청 기다란 나무 봤다.

         그거 가지고 재밌게 놀았어.

아빠 : (진지하게) 그런데 현승아,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에.....

현승 : 응. 왜애? 대나무가 왜애?

아빠 : 저기 봐. 대나무랑 소나무랑 있는데 왜 대나무가 소나무보다 작아?

현승 : 어?.................. 아잇, 진짜 아빠 짜증 나.

엄마 : 푸헤헤헤헤헤헤...... JP 사랑해!

 

(내겐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JP식 개그, 아들은 매 번 빡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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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조용해서 궁금하셨을 텐데 전화 한 번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노래를 불러드렸을 텐데요.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고백받을 기회를 놓치셨습니다 들. 

 

 

 

 

하긴 전화 안 하시길 다행입니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습디다.

'이 조명'이 크리스마스 명성교회 앞 전깃줄 칭칭 감은 나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우리 싸람 나무에 전기 옷 입히는 거 싫어한다해.

 

 

 

 

다행인 것은 순천 들러 여수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몰랐는데 '순천은 도시'가 아니랍니다.

'정원'이랍니다. 순천시장님이 여기저기 써 붙여놓으셨던데요.

 

 

 

 

갈대에 취해서 마냥 걷다 보니 9km를 걸었습니다.

사춘기 시작과 끝에 서 있는 아이들이 웬일이니! 그냥 잘 따라다니네요.

얘네 짜증 내기 시작하면 어르고 달래야 하고,

어르고 달래려면 '참을 인'자를 새겨야 하고,

세 번 정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는데도 여전히 JR을 그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분노 폭발할 테고....

이러면 상황 참 복잡해지는데 말이죠.

 

 

 

 

힘들지만 즐겁게 걷고 걸어서 멋진 풍광 마음에 담았습니다.

 

 

 

 

오, 다리 무지하게 아픈 중에도 모두 밝은 표정.

 

 

 

 

실은 이번 여행, 채윤이 화보촬영 여행이었고요.

세 명의 조연들은 채윤이 스타일 몰아주기 배경 소품으로 참여했습니다. 

 

 

 

 

현승이에게 여행이란, 일단 본질은 조금 비켜가야하구요.

작대기, 돌멩이, 마음에 드는 흙 등을 발견하여 잠시 교감하는 것.

발견하고, 줍고, 파고, 캐내고, 들고 뛰어댕기고.... 여행의 목적입니다.

순천 자연생태공원 입구에 두고 온 엄청나게 긴 대나무는 잘 있을지.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죠.

 

 

 

 

오동도에서는 애들 소음을 잠시 꺼둘 수 있었습니다.

얘네들과 함께 있는 게 꼭 역겨웠던 것은 아닌데 둘이 걷는 걸음걸음에

동백꽃이 놓여있었습니다.

걷다 말고 뭐 하시나요? 

 

 

 

 

예, 예.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이 좋은 여행에 드립 친구들 안 데려갈 수 없었구요.

 

 

 

점핑샷 안 찍을 수 없었구요.

 

 

 

 

마지막은 국내 유일의 해양 케이블카 탑승 영상입니다.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아 바다 아아아 하아아아 하하아오오 하 아아아 허오오오 아아아아 허오오
뭐하고 있냐고 나는 접때 여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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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를 묻고 또 물어 자신 안에서 충만해지고, 그리하여 의미의 강이 흘러 넘칠 때 비로소 시동을 걸어 악세레이터를 밟는 남자. 일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에든 의미가 되고 싶어 시간을 많이 들이는 남자. 일 중독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남자였다. 그 남자가 의미를 곱씹을 새 없이 새벽부터 밤 10시, 11시까지 매일 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여보, 나 일중독인가봐' 하며 쉼 없이 4년 째 달리고 있다. 그 남자에게 꿀 같은 겨울 피정이 주어졌고, 예수원을 향해 홀로 태백행 고속버스를 탔고 떠났다. 휴대폰 등 세상과 닿는 모든 기기를 잠시 꺼두시고 맡겨두셔야 하는 곳인지라 '안녕'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연락 두절이다. 그 이후 갈비뼈 1번과 2번 사이 어딘가에 묵직한 것이 하나 들어 앉았다.

 

**

사랑하면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혼자 있고 싶어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욕구를 내비치는 건 분명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려니 싶어 견딜 수 없던 적이 있었다. 결혼 후 1년쯤 되었을 때 사람이 자기 생긴 꼴대로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었다. 모처럼 휴가를 낸 남편에게 '혼자 시간 보내고 와'라고 말했다. 그날을 기억한다. 일하고 신혼집에 돌아왔는데 나보다 늦게 나간 남편이 편지를 써 놓았다. 주저리주저리 어쩌구저쩌꾸 하다가 편지 끝에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켜시오, 오디오를 켜시오.' 이런 주문이 적혀 있었다. 오디오를 켰는데 뙇! 어떤 음악이 나왔고, 엄청 감동이었는데 그 음악이 뭐였더라 생각이 안 난다. 아무튼,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간임을 이해받았다는 것이 참 좋았던 모양이었다.

 

***

살다 보니 뭐든 '함께, 함께, 같이, 같이' 하던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존재였다. 아이들 어릴 때, 육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서 분노의 증기가 콧구멍으로 귓구멍으로 눈빛 레이저로 쏟아져 나올라치며 남편이 그랬다. '여보, 내가 애들 볼게. 방에 혼자 들어가서 기도를 하든, 말씀을 보든, 뭐든 해.' 자주는 아니고 몇 번 있었던 일인데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고맙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직도 서로 좋아하고 약간 설레고 그런 사이이다. 내 패이스대로 무엇이든 같이!를 고집하며 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진실과 헌신'이 관계 맺음의 모토였는데, 이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따로 또 같이-적절한 거리 두기'의 적절함의 질과 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고, 홀로 있을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었지만, 입에 써서 몸에는 참 좋은 약이 되었다. 

 

****

그런데 갈수록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뭐더라? 사랑이. 그를 사랑하나? 내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나? 잘 모르겠다. 느끼는 것도,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느낌으로 강렬할 때는 차라리 '연민'이다. 가엾게 느껴질 때, 너무너무 가엾게 느껴질 때,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을 때 감정이 최고치를 찍는 것 같다. 그럴 땐 일찍 잠든 남편의 가슴에 손을 대고 소리 없는 기도를 한다. 그럴 때는 가슴 부분에 실제 통증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도 종종 하는 일이고, 종종 느끼는 감정이다) 아,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가 보다. 말치레라고는 모르는 기름기 없는 남편이(말치레라고 해봐야 너~어무 말치레스러워 화를 돋울 뿐이다.) 보기보다 헐랭이이며 허당인 내게 '으이그, 불쌍한 정신실' 할 때, 괜히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럴 때 사랑이라고 느끼나 보다. 우리 사랑, 너무 올드한 건가?

 

*****

그의 블로그 이름이 'The wounded healer'에서 '아픈 바람'으로 바뀐 지 몇 달이 됐다. 나는 가끔 남편이 우리 시대 목회자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교인들은 뚜렷한 것을 원하고, 강력한 정답을 원한다. 설교 한 방, 설교의 결론으로 낸 적용 한 방이면 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장담을 해줘야 능력 있는 지도자로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청년들은 밟아주고 무시해주는 사역자를 유능한 목회자로 본단다. 나 역시 간간이 청년들을 만나며 피부로 느끼는 점이다. 되든 안되는 확신 있게 말해주고, 으스대는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미더워해주는 것 같다. 작년 겨울 피정 때 남편에게 농담으로 '시대와 불화하는 목회자가 되라'고 했었다. 사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 시대와 뭔가 늘 서먹하고 어색한 사람이다.   

 

******

남편의 고독한 발걸음이 하루 종일 아픈 바람으로 내 마음을 뒤흔든다. 위에 걸어놓은 나무 사진을 찾으려고 남편 아이패드의 사진첩을 뒤지며 한참 사진 구경을 했다. 그 사람다운 것이 뭔지도 이젠 잘 모르겠지만, 그답지 않은 사진들과 가끔 그다운 사진들을 보며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하던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자꾸 가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오늘 좀 사랑이 샘솟는 모양이다. 올드한 사랑 말이다.  

 

그리고 아픈 바람, 그의 목소리.

 

http://nouwenjp.tistory.com/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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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전에서 강의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인사할 틈도 없이 기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 밤 11시.

새벽기도 설교 맡은 전날이라 부담이 있는 남편은 '택시 타고 들어와'라고 했다.

바부팅이.

내가 태우러 나갈게. 이러면,

아닙니다. 서방님. 설교준비 하셔야죠. 소녀 택시를 이용하겠사옵나이다. 이러고,

미리 준비하고 나가면 돼. 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타는 거 위험해. 이러면,

아니라니까. 걱정말고 설교 준비하고 있어.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러고,

아.... 진짜. 이 사람 내가 나간다니까. 할 수 없군. 허허허.

이럴 수도 있지않나?

 

암튼, 택시로 들어오려 했다.

올라오는 기차 안, 남편이 그제야 역으로 나오겠다고 마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와서 왜?)

뒤늦은 훈훈한 대화가 오간다.

여보, 11시 도착이지? 내가 나갈게. 도착하면 연락해. 이따 봐.

아니야, 당신 설교 준비해. 나오지 마. 택시 타고 들어갈게.

 

이유는.

'아드님이 택시가 너무 위험하다고 걱정이 심하셔'

(라며 아래의 스티커 추가. 울면 겨자 먹으며 운전하는 아빠의 심정을 잘 담아낸 스티커)

흥4

아빠랑 정말 비슷한데 감정을 느끼고 읽어내는 이 지점에서 살짝 다른 아들.

이런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 식사 준비한 것이 없어서 들어오는 길 씨리얼 한 통 사가지고 왔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고 꿈만 꾸며 뒹굴고 있었는데,

꿈결에 남편은 새벽기도 갔다 오고, 

채윤이 일어나 씻고,

엄마,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채윤이 내가 태워줄게. 그냥 자.

현승이 일어나서, 엄마 언제 일어나? 아침 뭐 먹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먹을게.

나 먹고 준비하고 갈게. 일어나지 마.

남편도 어쩌구 저쩌구하고 사라졌다.

 

평소 그닥 충실한 엄마나 아내도 못 되면서

아침에 식구들 나가는데 얼굴 보지 않으면 짠하고 미안하다.

아침 식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늦게 일어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빈 우유팩과 씨리얼 부스러기를 한참 쳐다봤다.

미안하기보단 고맙다.

꼼수 모르는 바부팅이 남편이 울며 겨자 먹으며 결국 태우러 나와준 것이 고맙고,

아침에 혼자 챙겨 나간 아이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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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님 자서전이 인쇄되어 나왔습니다.

저의 2014년은 이렇게 마무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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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실 것을 권했었다. 물론 내가 많은 것을 감당하겠다는 전제였다. 이런 저런에 해당하는 것 중 가장 큰 흑심, 아니고 백심은 '자기성찰'의 기회였다. 차분히 생을 돌아보시며 탈고하셨을 땐 치유가 일어나는 (아름다운) 각본이었다. 다 쓰셨고 이제 인쇄를 코 앞에 두고 있지만 각본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허망하고 화가 났었다. 성찰 대신 방어와 변호로 많은 페이지를 채우셨다. 그런 어머니 글을 매만지면서 후회를 거듭했다. 괜한 짓으로 시간만 허비하는구나.

 

사진과 편집을 도와주시던 언니가 '자기가 글을 하나 써야겠다' 하셔서 결국 어머니의 자기변호를 변호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변호를 변호하는 서문을 쓰면서 마음의 길이 조금 트이는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자기 외에 그 누구가 자기를 변호해 줄 것인가. 어머님은 변호할 권리가 있다'  실은 나도 내 삶과 생각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 포장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좀 나아보일지 몰라도 내 블로그 글도 어머님의 글과 다르지 않다. 결국 나의 옳음을 알아달라는 끊임없는 외침이다. 

 

어머님은 어머님 편, 나는 내 편.

우린 모두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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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덩이에서 복덩이로> 책을 내면서.........

 

 

내 얘길 다 하려면 책을 열 권을 써도 모자란다.” 황혼의 어르신들께 자주 듣는 말입니다. 어느 인생인들 책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없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인생의 이야기 분량이 쌓여간다는 뜻일 겁니다.

 

저의 어머니도 당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열 권, 스무 권으로 다 담아내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몇 날 몇 일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어머님 70 평생의 이야기를 이 작은 책 하나에 담았습니다. 어머님이 쓰셨습니다.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0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결국 이렇게 인생을 써내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고백처럼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아프게 품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결국 이렇게 써내신 어머니께 박수를 드립니다. 어머님이기에 가능하신 일이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붙들고 아파하던 것을 어디에든 쏟아내기만 해도 견딜만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이 작은 책은 어머님의 털어놓음입니다. 어린 시절을 혹덩이로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마음의 병을 앓아오셨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부디 이 털어놓음으로 인해 남은 인생에 더 밝은 이야기들이 쌓여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일을 함께 경험하신 분들은 어머님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저장하는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지어져가는 것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면아이 치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의 치유는 다름 아닌 기억의 치유라고 합니다. 각자 기억이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 또한 세상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의 내면아이 치유, 기억의 치유를 위한 아픈 고백임을 기억해주시고, 따스하게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표지사진을 찍던 날 어머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발그레 상기된 볼하며, 20여 년 가까이 어머님을 곁에서 뵈며 그렇게 예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스스로 혹덩이라 여기며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님이, 오직 당신만을 사랑스럽게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눈길을 얼마나 얼마나 바라셨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한 세월을 약하디 약한 몸으로 견뎌 오신 것은 분명 어머니 마음속엔 사랑의 눈길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믿음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로 혹덩이 어머님이 복덩이가 되셨습니다.

 

어머님 남은 생애, 그 따스한 주님의 눈길을 더 많이 느끼고 발견해가시며 행복한 황혼을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더욱 주님을 붙드시는 믿음의 길은 사랑의 길임을 믿습니다. 혹덩이 어머님, 복덩이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막내 며느리, 정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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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월요일,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로 되어 있는 아침이었다.

아침 식탁에 앉으며 차려놓은 식사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아, 행복하다. 현승아, 아빠는 정말 행복해.'

마음에 없는 괜한 말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 말했다면 이 아침 남편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남편이 그러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하다.

남편이 쉬는 날이라 좋고, 하루 남편과 데이트할 일이 기대되고, 

그저 오늘이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하다' 말하는 남편의 말 뒤에

찬바람이 휭 하고 불어 낙엽이 우르르 쓸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행복이 온전한 행복이 아님을 알기에 내 마음이 쓸쓸하다.

순도 100%의 행복이 아니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채윤이 먹은 그릇을 닦고 있는데 마주앉은

남편과 현승이의 대화가 무르익다 전도서에 멈췄다.

아빠가 아이폰으로 성경 앱을 열어 보여주면 전도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현승아, 전도서를 쓴 사람이 다 누려보고 고민도 해보니까 헛되다고 느껴진대.

결론은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는 거야. 아빠는 엄마랑 더욱 행복하게 살 거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곧 하나님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사랑하는 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조금 전 행복하다는 남편의 말끝에 뒹굴던 낙엽은 바로 이 허무감이었다.

전도서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다시 말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 없음을 못 견디는 남편, 공허감을 몹시 싫어하는 남편이 '행복'과 타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을 넘어서 견디고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다.

그 선상에서 나온 전도서의 말씀을 빌려서 나온 남편의 속내.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찌어다'

이 모든 헛된 날에 그의 아내와 나의 남편은 월요일마다 희희낙락하며 지내고 있다. 

화수목금토일, 대체로 희희낙락 버티고 있다.

 

 

전주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뭐야? 꼭 해보고 싶거나 이뤄보고 싶은 일?"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 질문을 나 스스로 해보고 남편에게 답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만 아니라면 그다지 아쉬운 게 없는 듯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해."

남편이 아마도 세월호 여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런 것도 같다.

나는(우리는) 4월 16일 이전처럼 살거나 신앙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멈춰 서서 조금만 생각에 잠겨도

금세 '아이고 의미 없다' 소리가 튀어나오는 요즘이지만 즐겁게 살려고 한다.

행복하게 살되,

이웃과 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엄마나 아내로서의 나와 그냥 나,

이 모든 것을 분리시키지 않고 살려고 한다.

에고머니, 분리시키지 않으려 하니 다시 '헛되고 헛되어, 아이고 의미없다'로 환원하네.

그래, 이 헛된 날을 헛된 줄 알고 즐겁게 살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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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 식구 마주앉아 초를 켜고 마음을 나누고 기도를 했다. 세상을 향한 채윤이 눈빛이 씨니컬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가지지 못한 시간이었다. 진정한 대화,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로서의) 기도, 사귐,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으로서의) 예배 등은 강요하지 말자는 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새 채윤이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어른스러워지고 있다. 가끔 대화하면서 '이 정도였어? 이렇게 큰 거야?' 하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어제 패밀리 데이는 다시 한 번 김채윤의 놀람 교향곡이었다.  요즘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기도제목으로 내놓는데 정직하고 진실하여 감동이 되었다. 아빠에 대해 묻어두었던 감정을 표현하면서 눈물까지 보여서 엄마까지 따라 울게 만들었다. '우리 채윤이 다 컸구나'라고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랑 단둘이선 별 얘기를 다 하면서도 네 식구 모인 자리에서 진지해지면 (강풀 작가처럼) 갑자기 똥이 마려워지고 엉덩이가 간지러워지는 현승이조차도 누나의 눈물에 말려 어른같이 마음을 나누었다.

 

 

 

 

월요일이었고 전 주에는 노회가 있어 데이트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전 주에 놀지 못한 것까지 놀아야 해서 멀리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가서 밥 먹고, 슬슬 걸어다니면서 주전부리나 하고 온 것이 전부이다. 젊은 커플들이 대부분이더만. 걔네들처럼 살랑거리는 설렘이 있는 것도 아닌 아줌마 아저씨는 줄서서 만두 사고, 문꼬치 사서 길에 선 채로 가방에 소스 묻혀가면서 추접스럽게 먹어대다 왔다.  전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비오는 고속도로를 7 시간 정도 달리던 자동차 안이었다. 음악 들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요 얘기, 조 얘기까지 하다가 지난 주일 설교 본문에서 나온 '분향단'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얘기 끝에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기도의 불을 밝혀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진 시간이었다. 

 

채윤이가 보여준 모습은 아마도 한 2주 전에 있었던 '짜증나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번 아빠가 신사적으로 경고에도 했음에도 아빠 면전에서 '짜증나'를 외친 것이다. 이 일로 현승이의 기네스북, '엄마 나는 태어나서 아빠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의 기록이 깨진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 둘이 한참을 얘기하고 나왔다. 평소 채윤이가 아무리 까칠하게 굴어도 잘 받아주던 아빠가 속내를 드러냈던 모양인데 이 일로 충격도 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 것 같다. 채윤이가 3학년 때 했던 표현대로 '작은 일을 크게 몰고 가고, 작은 일에 깊게 화를 내는' 엄마와 달리 연료통이 커서 몇 년치 화를 장전했다가 한 번에 쏴준 아빠 덕이다. 물론 그간 쌓은 착하고 친절하고 넉넉하게 받아주기 공덕이 아니었음 몇 년 쌓은 화를 폭발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그야말로 모두 다치기 딱 좋은 폭발이 몇 년 묵힌 분노의 활화산이겄제. 엄마인 나는 아빠의 역할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김채윤, 긴장 좀 타겠지)

 

 

 

 

남편은 요즘 서태지의 신보 '크리스말로우'에 꽂혀서 '긴장해 다들, 긴장해 다들' 입에 붙이고 다닌다. 아이들과 내가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놀려도 헤헤거리면서 '긴장해 다들....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부르게 돼' 한다. 궁서체로 물었다. '서태지 컴백이 좋아? 당신 서태지 좋아했었어?' 자기가 서태지와 동갑이란다. 조용필이 가왕이라면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인데 바로 그 서태지가 자기 동갑이란다. 평소 자신의 성품대로 요란하지 않지만 깊이 있게 중년맞이 성장통을 앓는 남편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나 보다. 느낌을 알겠고 또 모르겠다. 어쨌든 남편의 이 요란스럽지 않은, 절제된 삶의 태도를 사랑한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도 좋다. 서태지 컴백, 긴장해 다들...... 나도 좋다. 전주 갔다 오는 길에는 서태지 노래를 들었다. 가사를 곱씹으며서 들었다. 남편이 신대원에 가던 때 긴 글을 써서 당시 운영하던 싸이 클럽에 올렸었다. 정혜신 박사가 박찬욱 감독에게 썼던 표현 'low self-estee의 미덕'이란 표현을 빌어다 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으스대지 않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점, 존경하고 신뢰한다.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자아상이랄까, 이런 게 있다. 난 체구가 작고 체구처럼 마음도 좁기 때문에 누군가를 품을 넉넉한 품이 없다. 말하자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재롱 부리고고 익살이나 떨어 주목 받고픈 어린 아이인 것이다. 엄마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거룩한 모성을 가진,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누이는 희생적인 어머니, 쓴 것 먹고 단 것 토해 먹이는 엄마로 인식해 본 적이 없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따까리 하는 것에 자주 뿔따구가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이다. 엄마로서 이러하니 아내로서는 더 말 할 것이 없다. 최근에야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기댈 언덕과 안길 품이 되고 싶다는 진정한 마음이 든다. '나 좀 봐 줘, 나 좀 돌봐 줘'가 아니라 진심 돌보는 존재가 되어 주고 싶다. 이제껏 피나게 열심히 해왔던 돌보는 사람 코스프레 말고. 이것 역시 다  남편이 쌓은 공덕의 효능이다. 으르렁 모녀, 투닥투닥 남매, 애증의 모자 포함한 네 식구가 한껏 마음 열어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한 데 손을 포갤 수 있는 것도 으스대지 않는 조용한 리더십의 가장 덕분이다. 그러니 이 가장이 요즘 '긴장해 다들, 긴장해 대들' 노래하는 소리를 예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서태지를 응원하고 서태지 동갑내기 우리 가장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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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월요일,
심학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 파주로 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물었다.
여보, 내가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성경 전문가가 되겠다며? 하루 성경 12 장씩 읽고 있다며?
그것 말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때는 이 때다, 하면서 (늘 언제나 다다다다 쏟아낼 만전의 준비가 되어 있는) 남편 성격의 취약점에 관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도착하여 밥을 먹고 걸으면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뾰족한 결론이 나는 얘기도 아니고, 일면 얘기할수록 더 답답해지는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내 약점을 말해줘'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아, '우리가 서로'는 아니다. 약점에 대한 지적(질)을 잘 듣는 사람은 애초부터 남편이었고 나는 이 지점에서 상당히 취약했다. 그리고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전에 교회에서 설교할 일이 많았을 때, 수요예배 설교를 마치고는 늘 그렇게 말했다. '설교에 대해서 논평을 하되 먼저 잘한 점 세 가지 얘기하고 그 다음에 잘못한 거 한 가지 얘기해' 약점에 관해 듣는 것은 언제나 아픈 일이기 때문에 방어할 수 있는 만큼의 바운더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러한데 나는 열 개를 칭찬하고 한 개를 지적(비슷하게만) 받아도 마음이 상해서 입을 닫곤 했었(한)다.


지지난 주였던가. 남한산성 드라이브를 하면서 나눈 얘기다.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노부부들은 서로에게 깊은 빡침을 품고 일생을 살아오는 것 같다는 얘길 했다.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빡침이 노년의 부부생활을 어둡게 하고 그것이 자녀들의 짐이 된다. 그런데 노년의 부부 뿐이랴. 우리 또래의 부부들도 마음 깊은 곳에는 다들 한두 가지 씩 배우자에 대한 깊은 빡침을 품고 있을 것이란 얘길 했다. 남편이 내게 당신도 있냐고 물었고, 나는 빡침이 깊어지기 전에 이미 다 입으로 몸으로 해버리기 때문에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난 얼마나 남편을 들들 볶는 여자인지. 남편에게서 풍기는 신학적, 철학적 풍모는 다 크산티페 같은 내 덕이다. 믿어지지 않을테지만 사실이다. 어쨌든 그러느라 깊어질 빡침이 없는 것 같다고. 그 다음에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의 어떤 면에 대해서 가슴 속에 묻어두고 포기하고픈 힘든 점이 있냐고. 그 순간 밖의 경치를 보라는 둥, 말을 돌렸다. 있는 거다! 분명히 있는 거다! 평소 남편을 못살게 구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당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마라. 화가 났으면서 왜 아니라고 하느냐. 화가 나면 화를 내라'이다. (진짜 화내면 그걸로 며칠 갈 거면서) 그런데 그게 남편의 미덕인 것을 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남편이 나를 못 믿는 것이다.  내 말에 말려 '어, 실은 깊은 빡침이 있는데 뭐냐면....' 털어놓으면 여파가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굳이 여기까지 상상하진 않았더라도 어쨌든 남편은 지적하는 말을 삼킬 줄 안다. 나 역시 더 묻지 않았다. 있긴 있구나! 만을 캐치했다.


몇 주 전에 함께 유해룡 교수님 강의를 듣고 '나는 내 그림자, 인정하기 싫은 모습을 누구에게 투사하는 것 같애?'라고 남편이 물었었다. 좋은 목회자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용기가 필요한 질문이다. 가장 아픈 얘기를 듣겠다는 태도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픈 얘기는 나의 약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걸 듣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가 죽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이것이 가능한 공동체인 것 같다. 최근 죠이출판사에서 나온 책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이란 책에 추천사를 썼다. 갑자기 짧은 글을 써내려면 힘이 빡 들어가서 잘 되지 않는다. 때문에 촌스러운 글이 되어 조금 부끄럽긴 하다. 


"애타게 갈망했고, 피눈물 흘리며 몸으로 살았고, 몸서리 치도록 실망했고, 실패감에 주저앉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도망쳐 나와 해방감을 맛보노라면 어느새 목말라 내 발로 걸어 들어가 상처받기를 자처하는 곳이 공동체다. 그렇게 살아왔건만 여전히 공동체는 낯선 땅이다. 실패라 이름했고, 미성숙함이라 이름했던 내 지난날 공동체에 대한 갈망과 투신의 경험에 위로도 되고 이정표도 되어 준 책이다."


뭘 이렇게 공동체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추천사에 쓴 것처럼 내놓을 만한 성공적인 경험을 한 것도 아니면서. 다행히 남편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이라고 느껴지는 월요일 데이트였다. 어디에 발설하기 어려운 연약함을 입에 올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남편과 나의 공동체는 잘 가고 있다는 뜻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신혼 때나 아니 몇 년 전을 생각해도 내 약점이 드러나고, 드러나면 비난받지 않을까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치고, 한 발 앞서 삐지곤 했었는데 이젠 조금 무장해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공동체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틴 폴 교수님 말씀처럼 감사, 약속, 진실함, 손대접이라는 덕목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아니 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삶으로 살아지면 좋겠다. 가끔 희망적이라고 느낄 뿐, 막상 닥치면 이내 포기하고 싶은 아프고 힘든 일이겠지만서도.

 



 

 


남편이 풀타임 목회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와 사귀게 되었다. 청년부 예배 전에 예배당 입구에서 작은 카페를 시작했고, 핸드드립에 입문했고, 결국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홈로스팅을 하기까지.  그러다 정말 카페를 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며 '카페 나우웬'이란 이름을 지어 놓았다. 바리스타 꿈나무는 월요일마다 남편 손을 잡고 카페 탐방을 다녔다. 'Sabbath diary' 라는 근사한 이름의 시리즈물은 카페 탐방기에서 시작하였다. 어쨌거나 월요일은 나도 남편도 하던 모든 일을 손에서 딱 놓고, 시간을 뚝 끊어내어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내어주는 날이다. 등산을 하거나 느리게 걷거나, 그저 숲에 가서 앉아 있거나 뭘하든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결국 커피 한 잔으로 월요일 데이트에 마침표를 찍곤 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월요일에는 남산 드라이브를 했다.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여기서 동네란 명일동, 고덕동, 하남시 창우동, 흑석동 할 때의 동네가 아니다. 동네에서 밥을 먹었다는 건 우리 동네, 즉 홍대에서 밥을 먹었단 얘기. 캬캬) 무작정 남산으로 갔다. 드라이브 코스를 잘 몰라서 발길 아니고 자동차 바퀴길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조수석에 앉아서 차창 밖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구잡이 사진찍는 놀이가 재미 있었다. 운전자는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이었지만 아주 그냥 재밌어서 한참을 놀았다. 비에 젖은 남산길을 목적도 없이 돌아댕기는 것이 참 좋았다. 벅스에 접속해서 '비'를 소재로 한 온갖 노래를 다 찾아 들었다. 비처럼 음악처처럼, 겨울비,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빗속의 여인...... 결국 렛잇비까지.


갑자기 딴 얘긴데, 매주 수요일에 꿈 공부를 하러 간다. 공부라고 하지만 꿈을 수단으로 하는 집단상담에 가깝다. 융의 분석심리에 기초해서 꿈을 나누고 대놓고 투사하는 '꿈 작업'이란 것을 한다. 내 연배의 어떤 여자분이 꿈을 내놓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너무 예쁜 프랑스풍의 소품들로 꾸며진 카페 앞에서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구경만 하더란다. 이렇게 예쁜 카페를 텅 비워놓고 왜 사람들이 들어가질 않지? 하며 들어가려는데  같이 있던 사람이 다음에 오자고 했단다. 몹시 아쉬웠단다. 여차 여차 자기 집에 갔는데 자기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고 공사 중인 집이었다.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돌다가 나무로 된 허술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남편을 만나 짐을 모두 맡기고 혼자 어딜 갔다는 얘기다.  꿈이 나오면 꿈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희생적이란다. 게다가 직업이 의사여서 당연 재력이 있다. 어떻게 희생적인가 하면 본인은 골프를 좋아해도 잘 누리지 않고, 아내나 아이들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하도록 한단다. (대박!) 나랑 비슷한 연밴데 이미 막내까지 대학에 보냈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길 좋아한다. 이건 정말 40대 아니 40대 뿐이랴? 모든 여자들의 로망 아닌가. 뙇! 내가 결혼을 통해서 이루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건데 말이다. 결혼으로 계급상승의 꿈을 이뤘어야 하는데. 인생 한 방인데! (여보, 보고 있어? 히히) 게다가 이분은 당일 꿈모임 마치고 바로 크로아티아, '꽃보다 누나'에서 나온 그 코스 그대로 여행을 간단다. 완벽하다!


그런데 꿈 얘길 듣다 웃음이 픽 나왔다. 전전 날에 남산 드라이브 생각이 나서이다.  남산에 근사한 카페가 많다니 커피 한 잔으로 드라이브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창이 넓은 카페에 가서 비구경 하며 커피 마시면 딱 좋은 날이었으니까.  검색으로 둘이 함께 끌리는 카페를 찾았다. 네비를 찍고 가는 동안 블로거들의 카페 탐방 후기를 읽고 있는데 오메, 커피값이 만 원. 놀라서 고개를 드니 카페 앞에 도착. 일말의 미련없이 '여보,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커피 마시자' 차를 돌렸다. 이 생각이 딱 났다. 그리고 얘기했다. '저는 꿈 아니고 실제상황인데요, 그저께 카페 앞에서 바라보다 왔어요' 하고 그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투사를 했다 '내 꿈이라면 카페는 잘 꾸며져 있고,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사는 곳은 아니니까 바라보다 돌아와도 괜찮다. 그래봐야 카페고, 정작 사는 곳은 집이니까. 그저께의 제 경험과 더불어 선생님의 꿈이 제게 말하네요' 아, 정말 그렇다.


집단상담의 좋은 점은 괜히 좋거나, 괜히 싫은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고 내 안의 무엇이 투사되어 괜한 감정이 드는지를 보면서 알게 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꿈 얘길 듣다보니 꽃보다 언니가 좀 얄미워졌다.  너무 부러우니까. 모든 걸 다 갖추고 누리는 여자가 마음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그리고 크로아티아에 간다니. 부러워서 괜히 싫었던 내 마음이 보여서 속으로 웃음이 났다. 누구에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어떤 사람은 바라만보고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는 곳이 고급 레스토랑이고 비싼 카페이다.  꿈에서 집은 보통 '자아'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녀의 꿈에서 집이 아파트 옥상에 있는 공사중이었다. 외적으로 무엇을 누리든지 자아의 모습은 그렇다는 얘기다. 내 꿈에서 집이 나와도 늘 허술하고 누추하고 그렇다. 우리의 내면은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조금씩 누추하고 여전히 지어져가야 하고....  실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때는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포장해 보여주려는 것이 보이고, 잠시 바라볼 때는 그 앞에 선 나만 누추한 것 같다. 문제는 카페는 잠시 머물러 커피 한 잔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집을 카페처럼 꾸밀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카페처럼 늘 환상적일 수 없다. 예외없이 일상이란누추하고 공사중이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다.


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이 옆에 없다. 새벽기도에 간 것이고 마치고 바로 회의가 있기 때문에 이미 출근한 것이 된다. 그리고 또 밤 11시가 다 돼야 얼굴을 보게 된다. 화요일 아침이 내겐 월요일 같다. 남편 없이 아이들 각각 학교 보내는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이렇게 또 일주일을 살아야 하는구나, 싶으면 더욱 그렇다. 월요일에 함께 누린 시간 때문이기도 하고, 진짜 살아내야 할 나날은 주로 화수목금토일이기 때문이다. 머리 쥐어 뜯으며 원고를 쓰고, 채윤이랑 싸우고, 시어머니로 고민하고, 이런 저런 걱정에 휩싸여 두려워 하고..... 산다는 건 이런 것이다. 카페는 사는 곳이 아니다. 지지고 볶고 사는 곳은 집이다. 하루 이틀 청소기 돌리지 않으면 바닥이 버석거리고, 세탁기 돌리는 게 좀 늦으면 샤워하고난 현승이가 수건 없다고 엄마를 고래고래 부르는 그런 곳. 조금만 정줄 놓으면 집구석이 난리가 난다. 카페처럼 그렇게 늘 예쁠 수가 없다.  남의 꿈으로 내게 온 통찰이 크다. 고귀한 시간낭비인 예배, 일부러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는 월요일 안식 데이트, 피정 같은 것들은 내 집 아닌 카페를 누림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너나 나나 조금씩 여유롭게 보이지만 각자 책임져야 할 일, 풀어야 할 갈등,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 수 없는 자기의 몫이 있어서 더 무거운 짐이다. 그걸 묵묵히 잘 지고 가며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삶이고, 마음의 여정이고 신앙의 성숙이다.


남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숙대 근처를 지나며 두 마리 참새는 '카페 마다가스카르'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했다. 잠시 들어가서 커피 한 잔 하며 지친 날개를 쉬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커피값이 5000원 이하인 카페는 고민없이 드나드는 편이다. 된장질도 한다면 하는 편이지. 글치. 부러워서 얄미웠던 크로아티아 아줌마에 대한 투사는 거둬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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