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란 것이 목숨 걸고 지켜야하는 것은 아니다.
취향에 맞는대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취향에 딱 맞는 것을 발견하거나, 그걸 갖거나, 누리는
예기치 않은 기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런 때는 그저 감사하며 120% 누려야 한다.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몇 차례 제주여행을 했는데,
아이들 없이 단둘이서 취향에 딱 맞는 여행은 처음이다.
그래서 자체로 안식었다. 



 



정장 입고 제주도는 처음이다.
강의가 있어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격의 여행이었다.

공항으로 나를 맞으러 나온 자동차의 주인은 차와 딱 어울리는 예쁜 자매였고,
내 책 세 권을 다 읽어준 독자이기도 했는데 따스하게 맞아주고, 태워주고, 들어주었다.
짧은 만남이 긴 여운을 남겼다.



 


연애 강의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인데,
할 때마다 긴장되고, 날이 갈수록 더 큰 부담을 안게 하게 되니,
강의를 마치고 나면 그에 비례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용두암 근처 카페거리에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건지, 천천히 가기를 원하는 건지,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건지.





여행 가서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취향,
한 끼 잘 먹으면 한 끼 굶는 것으로 위와 영혼의 부담을 이상한 방식으로 줄이는 취향,
밥값은 아끼면서도 커피는 꼭 마셔야 하는 취향.
우리 둘이 통하는 취향이다.

검색해서 찾아간 카페였는데, 좋았다.
(어딘진 안 알랴줌.  
다음에 제주 가면 여기 가서 잠도 잘 건다,
세상에 안 알려졌으면 좋겠는 곳이다)


 

 


여행의 질을 말할 수 없어 높여주는 것은 스마트폰과 자동차 스피커의 접속.
원하는 어떤 음악이라고 들을 수 있는 이것이다.
정엽의 과하지 않은 느끼함이 대화마다 적절하게 백뮤직으로 깔려줬다.
조관우 아저씨는 결국 우리를 '노무현 레퀴엠'으로 끌어 들였다.
아, 진짜.
'저 덜에 퍼러런 솔립펄 보라......'
그분 목소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와서 잠시 침묵.



길이 있고,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아침 신선한 공기에
삼나무 우거진 그늘을 걸을 수도 있지만
바닷가 한적한 길을 뙤약볕 아래서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그래도 걸을 수 있으면 어디든 좋다!는 취향.
너무 힘들면 다시 돌아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면서 쉬어도 된다는 취향.

 


 


남자 김종필.



여자 정신실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행복하게 사는 게 무얼까? 우린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우리의 선생님, 참 좋은 우리 선생님 예수님이 사신 방식으로 살면 행복하겠다.
우연히 전태일님, 노무현대통령님을 얘기하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취향이 잘 맞아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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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데이트 시절에 김밥 많이 먹었다.
하남시에 있는 '가야'라는 김밥 집에는 남들 1500원 할 때 1000원 하는 김밥이 있었다.
1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팔당대교 아래 강변을 걸으면서 데이트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도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둘 다 학생.
그나마 나는 과외로 돈 좀 버는 대학원생.
그러나 학비까지 벌어야 해서 많이 벌어도 버는 게 아닌 과외선생.

결혼 하고 살림살이가 많이 폈다.
4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떡볶이와 오뎅까지!

월요일 저녁, 프리미엄 김밥을 사가지고 저~어 높은 옥상으로 소풍이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서교동의 찰스 김밥.
오늘은 상암동의 김선생 김밥.
왠일인지 근처에 럭셔리한 김밥집들이 많다.
양복 아빠가 반바지 아빠가 되는 월요일 저녁에 2주 연속 옥상 소풍이다.

"내가 합정역에서 아빠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안 좋았거든. 큰 일은 아닌데.... 어떤 일로 내가 분노가 막 일어나고 있었어. 그런데 옥상에 와서 이러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북한군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중2도 기분이 좋다.
덕분에 모처럼 화기애애 했다.

 

 

배부르게 먹고 아빠 배를 베고 벌러덩 누워 뒹굴거리는 녀석들을 꼬셔서
'커피 준비해 줄 사람?'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내려보냈다.
저녁 바람이 살랑거리는 탓인지,
기분 좋게 둘이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갔다.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니 분위기 맞춰서 새도 날아다니고, 좋다.

 

 

커피 갈고 물 끓이고, 커피잔에 더운 물 부어 컵을 데우고,
드립 직전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올라오는 준바리스타들.
얘들아, 오늘만 같아라.

 

 

 

뻥 뚫린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맛은,
음......
커피를 불리면서 사이사이에 공기를 더 많이 집어 넣는 느낌이랄까?
옥상에서 내린 커피에서는 바람의 맛이 느껴진다.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클래식, 팝, 가요, CCM 쟝르를 넘나들며 감상.
디제이는 영 아티스트 채윤.

 

 

어둠이 내려 앉는다.
저~어기, 메세나 폴리스에 불이 켜졌다.
내려가야 할 시간.
신데렐라 아빠 양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차게 잘 쉬고 잘 놀았다.
아빠, 채윤이, 현승이, 엄마.
빡빡하게 돌아가는 '화수목금토일'이라도 소풍처럼 살자.

 

 

 

 


퇴원한 엄마는 아무래도 병원에 있을 때보다 심심해지니 전화가 잦다.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기도제목 부탁할 것이 있어서, 우리 딸이 지혜로웅게 의논 헐라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전화가 잦다. 시어머님도 마음은 엄마랑 비슷하실텐데 딸이 아니라 며느리니까 애써 참으시는 것 같다. 전화 또는 '집에 좀 들러라' 하실 때마다 피치못 할 이유를 대시는 것이 느껴진다. 엄마나 시어머니나 하염없이 얘기를 들어드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그래서 노년은 쓸쓸하다. 알아도 잘 못해드리는 나는 죄책감과 무력감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친정과 시댁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엄마는 내 엄마라서 한 방 웃겨 드리는 것으로 엔돌피 주사 효과를 낼 수가 있다. 어머님은 여러 모로 어렵다. 무엇보다 초반에 내가 너무 열심히 한 탓이다. 며느리 기능에 상담 기능에 운전사 기능까지 하면서 한계를 모르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좋은 며느리라는 자의식도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내가 애쓰면 어머님의 몸과 마음의 병이 나아지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열정(일종의 사랑), 좌절, 다시 찌질한 열정을 오가면서 어머니를 섬기는 일이 내 마음에서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90대 엄마의 쓸쓸함 보다 60대  어머니의 쓸쓸함이 한결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 얘길 많이 들어드리면 좋겠는데 내게 여력이 없다.


몇 가지 경험으로 지적인 어르신들이 노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어머님은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으셨지만 읽고 쓰는 것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분이다. 눈이 안 좋으셔서 책을 많이 볼 수 없어 아쉽고, 신경을 많이 쓰시면 머리가 아파지기 때문에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께 자서전 쓰시길 제안했다. 캄캄했던 어린시절에 촛불 하나 켜서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게 되고, 나름대로 옳다고 믿으며 살아오신 생에 대한 변명도 마음껏 하실 수 있는 장을 마련해드리면 어떨까? 싶어서 살아오신 이야기 쓰실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강화물도 계획했다. 어머님이 쓰시면 즉각 워드작업을 해서 가져다 드리기. 대충 쓰시면 내가 손을 봐서 멋진 글로 만들어 드리기. 매주 쓰시면서 올라온 감정이 있으면 들어 드리기. 다 모아지면 책으로 묶기.


이런 계획을 말씀 드렸다. 심드렁한 반응이시다. "어머니 살아오신 인생이 보통 사람들과 견줄 수 없잖아요. 한 번 써보세요. 책 만들어서 제가 작은집이든 어디든 다 돌릴게요" 했더니 "내가 내 얘기를 쓰자면 책 한 권에 못 쓰지. 수십 권은 써야하지" 하시며 다시 심드렁.  "에미가 나 피정 보내줬었잖어. 거기서 별명을 지으라는데 처음엔 혹덩이라고 지었어. 나중에 내가 별명을 바꿨지. 복뎅이라고. 내가 처음에는 혹뎅이로 남의 집 살이 갔지만 하나님 은혜로 복뎅이로 살고 있는데 그런 뜻으로 해서 쓰면 되겠네" 하시며 또 심드렁. ㅎㅎㅎㅎ


"엇! 어머니, 책 제목 정했어요. 제목은 혹댕이에서 복댕이로! 이거예요" 그렇게 던져만 놓았었다.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발성이 필요했기에. 어머님께 떡밥을 두고 온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지난 주에 갔더니 A4  용지도 마련해 놓으시고 연필도 여러 자루 깎아놓으셨다.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계셨다. 자발성 확보! 내일은 아버님 3주기 추도식이다. 그야말로 3년 탈상의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저렇게 준비한 파일을 가져다 드리려고 한다. 과연 지속적으로 쓰실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여러 모로 유익한 일이라 여겨진다. 일단 어머님이 오래 된 상처와 감정들 쏟아놓으실 장이 마련되었고, 나는 나대로 끝없이 말로 들어드리기보다 글로 오가며 한결 쉽게 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덩이에서 복덩이로'
글을 쓰시면서 어머님이 이 말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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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향
노래에 담긴 깊은 혼, 순수, 열정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홍순관의 음악이 취향에 잘 맞지 않는다. (존중입니다. 취향해 주세요) 노랫말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한 마디로 노래 좋고 노래를 부르는 이의 철핟고 좋은데...... 그냥 스타일이 안 맞는다. 내 충청도 양반 출신이라인지 감정의 과잉이 버겁다. 그나마 좋았었는데 언젠가 라이브를 접하고 더욱 마음이 멀어졌다.


* 콩깍지
그런 홍순관을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있던 적도 있다. 사실 홍순관의 노래를 접하게 된 건 20여 년 전인데, 몸담고 있던 교회 청년부에 홀연히 나타난 찬양 인도자 K 때문이었다. K가 찬양인도를 맡게 되면서 유난히 분위기가 무거워졌는데 북한가요인 '반갑숩네다'를 부르라고 하지 않나. <뜨인돌>인지 <많은 물소리>인지에  나오는 노래들과 홍순관의 노래를 많이 시켰다. K 스타일에 훅 가버린 탓으로 홍순관 노래가 좋아보였고, 그걸 홍순관 노래가 좋은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콩깍지다.


* 지겨움
그 시절 K와 20여 년이 지나서 주고받은 메시지 이다. 그때는 내 취향 아닌 것도 단지 그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껌뻑 죽곤 했었는데.... 와, 그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마음을 많은 두는 그것이 내게는 최고의 지겨움이라. 올해 교회 구역공부 교안을 맡고 있는 K. (지적인) 완벽주의자 K는 늘 교안만 생각하는 듯. 그리하여 여호수아만 마음에 품은 듯. 퇴근하고 잠시 커피라도 한 잔 할라치면 마주앉아 스마트폰의 스포츠 영상에 넋을 놓고 있다. "여보, 그런데 오는 채윤이가.... 현승이가.... 어머님과 통화했는데....." 웬만한 걸 던져도 영혼없는 '엉, 그래?" 의 리액션이다. 여기에 갑자기 "여보, 그런데 교안은 잘 돼?"라고 묻자마자 "어, 잘 안돼. 이번 주 본분이 몇 장인데 말야...... 여호수아가........ 블라블라..... 가나안  땅에......블라블라....." 눈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수다가 길어진다. 췟, 지겨워.


* 당신도 지겹겠지
"여보, 그런데 오늘 꿈집단에서~어....  며칠 전에 꿈을 나눴는데 대애~박! 어떻게 그런 투사가 되지? 와, 놀랬어. 놀랬어" 내가 제일 재밌는 얘기는 내적인 성찰에 관한 이야기, 꿈, 에니어그램, 이런 것들인데 남편에게 오죽 지겨운 얘기일까? 쯤은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얘기 내놓고 벌줌하고, 다시는 니한테 꿈 얘기 하나봐라. 이를 갈며 결심하기도 한다.


* 사랑일 뿐이야
한때는 내 취향 아니어도 그의 취향에 마냥 취하기도 했었는데, 그도 그랬었는데.....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의 취향이 지겹고 나의 취향이 그에겐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얘기다. 사랑이 식었나? 아님, 이건 정~말 신빙성 있는 추측인데. 질투일까? 내 남편의 마음을 앗아간 교안, 여호수아, 회의 /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원고, 에니어그램, 꿈을 서로 질투하는 것일까? 너무 사랑해서? 오메, 그런가 보다. (손해볼 것이 없다. 이걸로 가자) 맞어. 맞어. 맞어. 사랑일 뿐이야!

사줘

* 덧
맨 아래 뜬금포 애교 뿌잉뿌잉은 쓰고 원고 탓임. 애교에 관한 얘기를 쓰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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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같이 하는 걸 좋아하고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내 기질이 우리 부부를 서로에게 깊이 침투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늘 독립적이기를 원하는 남편의 성향은 적당히 거리를 두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우리 부부가 비교적 잘 지내는 비결 중에 하나는 둘이 하나되는 것에 거침없이 투신하고 각각 홀로 가는 것을 두려움 없이 응원할 수 있었던 덕이라 믿는다고 거창하게 깔대기 들이대보지만, 실은 남편 덕이 크다. 나는 결혼 전 살던 방식대로 살았고, 남편은 결혼 전 살던 방식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이를 선택한 셈이니까. 결혼과 동시에 '별걸 다 얘기하는 남자'로 변신하겠노라 결단하고 퇴근하자마자 '오늘 사무실에서....'로 시작하는 (그의 편에서는) 의미없는 '그냥 있었던 일'을 자발적으로 말하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당시엔 남편 김종필씨에게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애를 많이 써서 된 일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살면서 그를 더 알게 될수록 처절한 결단과 노력이었다는 걸 실감한다) 때문에 내가 남편을 먼저 사랑함이 아니요, 그가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치 않아서 나를 사~아랑 하시니..... 그는 나보다 말할 수 없이 큰 자이다. (김종필씨, 보고 있나?)


한 달 쯤 전에 남편을 향한 나의 마음이 급속도로 얼어붙어서 '이거 해동이 되기는 할까?'하며 지내던 시간이 있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깜짝 선물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두어 달 남편이 정신력을 다 쏟아 준비하던 소임을 마치고 난 후이기도 했다. 남편 쪽에서 보면 '이 여자 또 왜 이래? 약 먹을 때가 됐나?' 정도였을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정말 깊은 빡침과 좌절의 시간이었다. 기도하고 나면 남편과 화해하게 될까봐 일부러 며칠 기도도 미루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당신의 감정을 돌아 봐.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 않지 않아' 였다. 남편은 '감정을 돌아봤다. 화가 났다. 그런데 내가 삭힐 수 있는 정도다. 그러면 삭히면 되는 것 아닌가. 갈등을 일이키면서 감정을 다 표현해야 하나?' 이거였다. 이 지점에서 그다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았고, 왠지 나의 빡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융(Carl Jung)이 그려준 마음의 지도가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 다음으로 좋다. 어릴 때 이해도 못하고 읽었던 내용들이 중년의 고개를 넘으면서는 글자 한 한 한 자 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어 목디스크가 올 지경이다. 어찌 어찌 알게 된 저자에 꽂혀서 이 분이 지은 모든 책을 찾아 읽다 <우울한 남자의 아니마, 화내는 여자의 아니무스>를 만나게 되었다. 융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에 걸쳐 남성과 여성에 대해 고정관념을 형성해 온 사회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성별에 따른 역할을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여성성을 억압하고 여자들은 자신 안의 남성성을 억압하게 된다. 물론 인간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것은(융의 표현대로라면 '개성화') 남성은 자신 안의 여성성을, 여성은 자신 안의 남성성을 통합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아니마,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포함해서 무의식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인격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의에 참고하려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아니마 아니무스 어제 오늘 들었던 얘기도 하니고.... 그런데 이게 왠 일! 우울한 남자 김종필의 내면, 화내는 여자 정신실의 내면이 깨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 안의 아니마를 만나지 않으려는 남자는 부정적 아니마 에 사로잡혀 우울한 감정 속으로 끌려 들어가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남자다운 대범함은 사라지고 소심하고 방어적이 되어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오히려 마치 토라진 여자처럼 성마르고 야박한 태도로 비아냥 거리거나 딴청을 피운다. 내면의 아니무스를 무시하는 여성 역시 마찬가진다. 자신 안의 남성성을 지속적으로 무시해왔던 여성은 아니무스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외면화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섣부를 단정을 내리거나 상투적인 구호를 외치며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울한 남자, 화내는 여자 탄생! 우울한 남자는 토라진 여자처럼 행동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띠는 화내는 여자의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아, 부끄러워. 단적으로 이것이 한 달여 간의 우리 모습이었다. 융 할아버지의 처방은 단순하다. 자신 안의 여성성, 남성성을 제대로 봐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성은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폄하하지 말고 애써 통합시켜야 한다. 그저 자신 안에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 그리고 표현하면 된다고 본다. 여성도 마찬가지. 파괴적인 아니무스를 물리치기 위해 여자는 자신의 영혼을 더 강한 정신으로 채우고 진정한 사랑에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우울한 김종필은 자신의 감정(특히 부정적인 감정)속으로 삼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적절히 표현을 (쫌) 하고, 화내는 정신실은 (제발 쫌) 남편 들어올 시간만 바라보며 의존하기를 멈추고 강한 정신으로 내면을 채워야 한다는 말씀.

 


 

오래만의 (놀월) 안식일 일기이다. 사실 여느 부부가 누리지 못하는 친밀한 관계, 질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는다. 월요일이면 걷기 좋은 길, 좋은 카페를 찾아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책을 보기도 하며 연인들 데이트 코스를 누빈다. 어제 월요일에 '당신은 월요일 이렇게 보내는 게 좋아? 나한테 맞춰서 애쓰는 거지?' 하니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했다. 이 간 큰 남자! 그그렇지만 괜찮다. 나는 이대로 쭉 갈 거니까. 이 남자가 되도록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힘 쓸 것이다. 열심히 내달리지만 순간순간 멈춰서도록 발을 걸어 넘어뜨릴 것이고, 꿍꿍 속으로 참고 있지 못하도록 찌르고 또 찌를 것이다. 나? 나도 역시 내 안의 힘을 믿고 더욱 씩씩해질 것이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밖을 바라보는 자, 꿈을 꾸고 
안을 돌아보는 자, 깨어난다"

융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피차에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각 성장할 것이다. 굳이 아니마, 아니무스를 운운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잘 성장해갈 때 둘의 하나됨 역시 더욱 온전해질 것이다. 목적 없는, 방향 없는 성장이 아니라 각자 안에서 살아 계시는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다. 신혼 초, 갈등이 있을 때마다 어떤 경우에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갈등의 끝을 만지기로 결심하고 살아온 시간이 (적어도)나에겐 커다란 인격적 변화를 맛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으로 이제껏 비교적 잘 사랑하며, 각자의 의식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잘 살아온 것 같다. 지금은 또 다른 전환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부부의 사랑이 더욱 온전해지기 위해서 각자 안의 그림자를 더 정직하게 들여다돠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빡침은 깊은 성찰로의 초대장이라 받아들이려 한다. 밖을 바라보면서 허황된 꿈을 꾸는 중년이 아니라 안을 돌아보며 더욱 깊이 깨어나는 오늘을 살아야, 우리의 노년이 더욱 로맨틱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우아한 말로, 좋게 얘기할 때 우리 서방님이 잘 알아들으셨으면 한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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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쇠는 남편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또 겹쳤다. 결혼 15주년, 그리고 남편의 생일. 그간 한 푼 두 푼 모은 원고료를 털어서 기타를 선물했다. 무슨 날, 무슨 날 챙기지 못한다고 타박만 했지 정작 무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큰 맘 먹고 한참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은 남편이 기윤실을 그만두고 퇴직금의 반을 털어(기타가 얼마나 비쌌길래? 퇴직금이 얼마나 적었길래?) 기타를 장만했었다. 내가 음악치료를 프리로 전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기타를 들고 다니게 됐었는데...... 그런데...... 치료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기타가 갈수록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에잇, 기타소리가 왜 이래?' 할 때마다 미안해서 오그라들고 했다. 그래! 결혼 15 주년, 내가 좋은 기타 쏜다.



눈 감고 전방 위 25도 정도로 고개를 들고, '내 주의 은혜 강가로' 기타 반주를 하는 모습. 아, 미간에 힘이 들어가 약간 찌푸린 표정은 필수 옵션이다. 이것이 김종필이란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장면이다. 청년 시절 김종필을 생각하면 기타를 빼놓고 떠올려지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법의 보자기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기타 메고 다니던 김종필은 매우 내향적이고, 시니컬하고, 우수에 젖어 있는 듯 하고, 칙칙하고, 생의 의미와 신앙의 깊은 고뇌로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는 범접하기 어려운 청년이었다.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기타 반주를 하고.



악처(또는 구원자)를 만난 탓(덕)에 이전의 고뇌하던 인생에서 일상을 몸으로 살아내는 생활인이 되어야 했다. 책과 기타 대신 손에는 아이 우유병 닦는 솔을 들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짧다할 수 없는 결혼 15년. 불을 켜서 비로소 등경 위에 두는 자리로 옮겨온 남편의 여정이 아니었나싶다. 등불을 밝혀 자꾸만 그릇으로 덮어두려 했던 남편, 아니 기름도 심지도 다 준비되었는데 불을 켜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결혼 6년 차에 신대원에 들어간 이후로 남편은 정말 자기의 빛을 밝히고 태우고 등경 위에 두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감사하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어느덧 중년이다. 이 교회로 옮겨온 지 3년 째인데, 정말 열심히 배우고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문득 그의 20대를 떠올리게 하고 싶어졌다. 아직 어떤 역할의 옷도 입지 않았던 그때, 그때의 자신을 가끔씩 돌이켜보면 어떨까 싶어서인 것 같다. 나와 정식으로 교제한 이후로 그는 단 한 곡의 노래도 짓지 못했다. 시평론 하시는 김동원 선생님은 시가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평하신다. 시인은 배가 고프고 사랑이 고파야하는데 JP는 배가 불렀단 말씀. ㅎㅎㅎㅎ 100%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그 시절 감성을 가끔씩 꺼내보며 할 수 있다면 다시 노래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사, 팀장, 이런 역할에 충실하되 언제든 그 역할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거금을 투자해서 뽀대나는 기타를 선물로 안긴 것에 대한 변이다. 서프라이즈로 선사하고 싶었고, 또 도움을 받을 분이 딱 옆에 계셨었는데..... 전문가께서 기타는 칠 사람이 직접 잡아봐야한다 하셨다. 친절한 전문가께서 좋은 기타샵 소개 해주시고 미리 가 몇 개를 봐두시고,  내가 남편을 뫼시고 샵에 갔다. 네 대의 기타를 놓고 신중하게 고르는데.... 제일 마음에 든다며 고른 기타 소리를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기타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김종필스러운지..... 무겁고, 담백하고, 징징거리지 않는 진중함. ㅎㅎㅎ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다른 기타를 선택했다. 화려하고 찰랑거리는 소리의 기타였다. 처음엔 그래서 싫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선택하겠단다. 이제껏 좋아하던 소리 대신 새로운 소리에 마음을 열겠다는 뜻이었다. 이 말이 참 반갑게 느껴진다. 저녁에 남편이 기타치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남편 옆에 나도 기타를 들고 앉아 배우기도 하고 어설픈 실력으로 함께 연주하고 노래도 한다. 우리의 나머지 나날들이 따로 또 같이 착한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할, 명성, 힘, 지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등에 마음을 빼앗겨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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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결혼 15주년 기념일이다.
오늘처럼 햇살이 맑고 투명한 날이었다.
기온은 오늘보다 낮았었을 것이다.
결혼식과 짧은 피로연을 마치고 양평 힐하우스로 가던 그 드라이브길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한 장면 탑 파이브 안에 드는 장면이다.

기념일, 생일 같은 것들을 피차에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다.
대체로 둘 다 덤덤하게 몇 년 지내다가, 
한 번씩  내게서 여성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해에는 괜한 트집과 삐짐으로 남편 목을 조른다. 남편은 단지 男편된 죄로 엄청 미안해 하면서
꽃다발에 화장품 같은 선물을 뒤늦게 안기기도 했었다.


두어 달 [육아]책 원고를 정리해서 5월 1일에 넘겼다.
막바지에는 세월호와 함께 하는 작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고 좀 보다 뉴스보다 한바탕 울고, 흐릿해진 눈으로 다시 원고 보고......
현승이를 낳고 채윤이가 사춘기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엮는데,
이 녀석들 이렇게 귀여웠구나! 싶어 미소 짓다가,
진도항에서 피눈물 흘리는 엄마들도 다들 이렇게 키웠을텐데,
그렇게 키우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울고 웃는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을텐데,
생각의 끝이 자꾸 여기로 가서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세월호 여파인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과 진지함인지,
결혼 기념일이 차분한 특별함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남편 생일까지 겹쳐서 오래 준비한 야심찬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마음은 무섭도록 덤덤하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웃음기 없는 15주년 기념일이 지나갈 뻔 했는데,
티슈남 현승이가 재롱둥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어제 학교 가면서 돈통(용돈을 깨알같이 모으는 통인데, 집안에서 현금보유율 가장 높은 부자다) 을 뒤적거리며 돈을 챙겨나가는 것 같았다.
저녁에 만났는데 방에서 뭘 하나 숨겨서 나오는데 저처럼 작고 귀여운 케잌이었다.
제과점에 갔는데 돈이 부족한 것 같아서 보다가 집에 다시 와서 돈을 가져갔단다.
다시 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어떻에 알아채고 '너 돈 부족해서 다시 갔다왔니?' 웃으면서 피자빵을 챙겨줬는데 피자빵이 진짜 맛있다고 했다.
덕분에 웃었고, 덕분에 잠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10여 년, 육아기를 정리해서 책이 나올 예정이다.
책을 한 권 내는 것의 무게를 이제야 깨달아가는 중이다.
어떤 책이든 내놓은 것은, 책임감이고 부끄러움이고, 무엇보다 위험함이라는 것을.


다만 결혼 15주년,

신혼의 알콩달콩함도 지나고,
육아를 위한 전쟁같은 시간도 지나고,
소명을 찾기 위해서 터널과 오솔길과 징검다리 없는 개울을 건너는 시간도 지나면서
인생의 한 챕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책을 내는 저자로서 지극히 이기적인 의미부여라 민망한 마음 없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그랬다.
우리 인생에 훅 들어왔다 하나 씩 훅 빠져 나가는 아이들을 더욱 떠나보낼 준비,
더욱 신뢰하여 고마움 가득 안고 살아갈 머지 않은 미래, 노년을 살아갈 준비,
그런 준비를 해야할 때가 오는구나.
이렇게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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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단지 명석함이나
해박한 상식이나
능란한 처세술이 아닌
지혜를 원합니다


지혜

당신으로부터 오는 지혜
첫 자리에 놓아야 할 것을 첫 자리에 놓는
참으로 지닐 만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나날이 겪어야 하는 사소한 일들에 매이지 않고
저 너머를 응시하는
분별있는 정신과 솔직한 마음


제 정신의 범위와

제 마음의 끝없는 지평선이 닿는 것이 어디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저를 지으셨기에

은연 중에
제가 찾고 있는 분은 당신
저를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이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빛으로

제 정신과 마음을 밝혀주십시오
바르게 보고
현명하게 판단하며
분별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오만함과

완고한 마음을 지니지 않게 해 주시고
감추어진 위험으로부터
음모를 꾸미는 적으로부터
저 자신의 미망으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진리에 눈뜨게 해 주시십시오
충고를 쾌히 받아들이며
잘못을 고쳐나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주십시오


저 자신의 열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아첨이나 거짓에 놀아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바로 여기

지금 이 시간에
당신의 무한한 지혜가 저를 휘감아
지혜와 굳셈을 지닌 자 되게 해 주십시오


제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제가 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몇 년째 사순절 기간마다 남다른 마음의 여정을 걷게 되는,  
다시 신비의 사순절을 사는 남편 김종필을 응원하며 지은 시가 아니고  베낀 시.
이 몇 년째 사순절 여정의 끝에선
죽음 너머의 생명,
어두움 너머의 빛을 가슴으로 만났습니다.
당신이 그러했고, 그런 당신을 지켜보며 나 역시 그러햇습니다.


당신 자신의 열정의 노예가 아니라
당신 안에 이미 빛과 지혜로 살아계신 그분 앞에 무력해짐으로 얻는 참된 지혜
그 지혜를 발견해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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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뫄,
짖꾸져.
김팀장님.


"여보,
나 부활주일까지 집에 없다고 생각해.
나 천안 신대원에 있다고 생각해.
알았지?"


주말부부의 삶을 방불케 하는 중년부부의 애정 확인법.
이런 고품격 초딩 문자놀이면 난 남편의 애정이 온몸으로 와닿더만....
어머, 로맨틱해! 김팀장님, 매력 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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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어머님 생신이 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앞당겨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고 축하해드렸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어머니 생신날에 낮에 가서 점심 사드리고 함께 시간 보내고 올까 봐.
했더니,
채윤, 현승 둘이 입을 모아서 저녁에 다 같이 가서 케이크를 다시 한 번 하잖다.
생신날에 혼자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시겠느냐면서 다같이 가야 한단다.
아빠가 시간도 안 되고, 평일이라 학교 갔다 오면 늦는다고 했더니
그래도 갈 수 있다며 이러쿵저러쿵 같이 가야 할 이유를 댔다.
아빠가 바쁘면 아빠 빼놓고 셋이서만 가자면서 결정적으로 현승이가.


엄마, 한 번 생각을 해봐.
엄마가 이다음에 늙은 다음을 생각해 보라구.
자, 엄마가 늙었어. 그리고 아빠는 죽고 엄마가 혼자 있어.
그리고 생일날이 됐어.
혼자 쓸쓸하게 있어야 돼.
그런데 내 색시가 애들을 데리고 축하하러 왔어.
좋겠어, 안 좋겠어.

(음..... 좋겠어. 좋겠네. 뭐)


이런 아이들에게 고맙다.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게 부모 마음이고,
나는 옆걸음질 쳐도 너는 앞을 향해 걸으라는 엄마 게의 마음도 같은 것이다.
고부관계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상처 많은 세월을 살아오신 탓에 잘 섬기고 들어드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어머님을,
내게는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진심을 전하기가 어려운 어머님을,
아이들이 이렇게 천진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고맙다.
나는 바담풍 하는데 바람풍 해주는 느낌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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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강의가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휴일이라며 운전해주고 함께 가주기로 며칠 전에 섣부를 약속을 남발했었지요.
누구긴요, 남편이지요.
올해부터 20대 청년부를 맡은 남편은 일 중독 수준이 되어갑니다.
어제 11시가 넘어서 퇴근을 했으니 섣부른 약속은 역시나 섣불렀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깨우지도 않고 강의 다녀왔습니다.

화장품 사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 좋은 시누이가 인심을 많이 얻어서 덩달아 덕을 보는데요.
좋은 화장품 샘플을 수시로 얻어다 줍니다.
결혼할 때 아주 조그만 화장대를 샀었는데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놀 자리가 변변치 않아서 치워버렸습니다.
화장대도 없이 장롱 문 열어젖히고 거기 붙은 거울에 샘플만으로 화장하는 아내.
불쌍 코스프레 쩔죠.

제가 원래 꼼꼼하게, 그때그때, 정리하는 기능도 안 되는 데다
코딱지만 한 샘플병들이 대부분이니까 화장품들이 제대로 서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굴러다니고,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고.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왔더니 컴퓨터 책상 한구석에 어지럽게 굴러다니던 화장품들이
착착착착 줄을 맞춰 서 있는 것입니다.
쇼핑백에, 비닐에 들어있던 놈들도 싹 나와서 상자에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구요.
샘플병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굵직한 손가락에 떡두꺼비 같은 손등을 가진 이의 손재주였습니다.

같이 가기로 해놓고 눈도 못 뜬 죄를 사죄하는 마음이었는지,
화장대 없이 화장하는 걸 안타까워하던 마음이었는지.
여기에 덤으로 욕실을 또 어찌나 깔끔하게 손을 봤는지요.
세면대 분리하여 머리카락 제거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며칠 전 공대 나온 남편의 손재주를 엄청 부러워라 하면서
철학 전공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공부나 하고 싶어하는,
남산골 선비 같은 이 남편을 막 씹어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철학과 남편이 갑입니다.
손들과 회개합니다.
컴퓨터 문제 따위 공대 나온 지인이나, 만물박사 동료 목사님께 삐대서 해결하면 됩니다.
김종필 만쉐이!


굿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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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이랬던 그림이.

 


 

불과 5,6년 만에 이렇게 되었다.

 

 

 

이랬던 아가들은

 

 

 

이렇게 되었다.
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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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저기 봐. 멋지지?
수묵화 같은 모노톤의 산이 좋다.
나는 약간 쓸쓸함이 있는 느낌이 좋아.

:

나는 쓸쓸한 산 안 좋아해.
특히 막 시작되는 쓸쓸함은 더더욱......
(몇 년의 내적작업으로 쓸쓸한 겨울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은 생겼지만,
슬픔 없이 바라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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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고 설악산을 오르던 남자,

네파족 산악인으로 거듭나 북한산에 섰습니다.
청바지 입고 설악산 정복했으니 이 정도 갖췄으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가야겠어요.
쩍벌남 자세로 허리 손, 아저씨라면 이런 사진 한 장 쯤은.



 

스키니진에 니트 가디건 입고 전전하던 저도
네파족은 아니지만 고어텍스류의 옷을 걸쳤습니다.
앞으로 엄홍길 대장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산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협찬해주신 하남 네파 매장 VIP 고객이신 시누이님, 상품권을 나눠 준 내 동생님 감사!)


잠깐요!

more 누르지 마세요.
누르시면 후회합니다.
노,노,노...... 안 된다니까요.

 

 


 


 

맑은 물에 눈 헹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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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어가는 벼를 허수아비 가족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델 그냥 지나치는 건 몸을 사리지 않는 여배우로서 자세가 아니기에.....
바로 따라해 봤습니다.

그.런.데.



포즈를 취하기가 무섭게 '허수에미'라 불리게 되었고,
옆에는 허수에미의 아들 허수가
'저 엄마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허수에미 커밍아웃 했더니
바로 이어서 허수애비는 춤을 추며 들판을 누비고 다닙디다.
끌려다니는 허수는 어쩔.
이래저래 허수가 고충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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