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저기 봐. 멋지지?
수묵화 같은 모노톤의 산이 좋다.
나는 약간 쓸쓸함이 있는 느낌이 좋아.

:

나는 쓸쓸한 산 안 좋아해.
특히 막 시작되는 쓸쓸함은 더더욱......
(몇 년의 내적작업으로 쓸쓸한 겨울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은 생겼지만,
슬픔 없이 바라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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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고 설악산을 오르던 남자,

네파족 산악인으로 거듭나 북한산에 섰습니다.
청바지 입고 설악산 정복했으니 이 정도 갖췄으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가야겠어요.
쩍벌남 자세로 허리 손, 아저씨라면 이런 사진 한 장 쯤은.



 

스키니진에 니트 가디건 입고 전전하던 저도
네파족은 아니지만 고어텍스류의 옷을 걸쳤습니다.
앞으로 엄홍길 대장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산에 오르도록 하겠습니다.
(협찬해주신 하남 네파 매장 VIP 고객이신 시누이님, 상품권을 나눠 준 내 동생님 감사!)


잠깐요!

more 누르지 마세요.
누르시면 후회합니다.
노,노,노...... 안 된다니까요.

 

 


 


 

맑은 물에 눈 헹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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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어가는 벼를 허수아비 가족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델 그냥 지나치는 건 몸을 사리지 않는 여배우로서 자세가 아니기에.....
바로 따라해 봤습니다.

그.런.데.



포즈를 취하기가 무섭게 '허수에미'라 불리게 되었고,
옆에는 허수에미의 아들 허수가
'저 엄마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허수에미 커밍아웃 했더니
바로 이어서 허수애비는 춤을 추며 들판을 누비고 다닙디다.
끌려다니는 허수는 어쩔.
이래저래 허수가 고충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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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짝이었던 친구가 있다.
고맙게도 내 책이 나온 걸 알고는 얼른 구매를 해줬고,
직장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잠시 만나 사인을 해주기도 하였다.
오늘 점심에 같이 만나 식사를 했는데....
얘기 하다보니,
이 친구와 남편 김종필씨의 함께 축구를 한 사이에다 인증샷까지 있었다. 
얼마 전 이 친구 직장 축구팀과 우리 교회 교역자팀이 A매치를 했던 것.


6학년 짝이었을 때 둘이 맨 앞 자리에 앉았었는데,
당시 남자 애들은 여자 애들을 때리는 게 일이었다.

때리고, 괴롭히고.... 그게 나름대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겠지.
그런데 이 친구는 도통 여자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고 착하고 순했다.
둘이 앉아서 조곤조곤 얘기하며 놀던 기억이 난다.


착하게,
조용히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며 남편이며 아빠인 친구가 참 보기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와 말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저 잠잠히 순명의 삶을 사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6학년 때 짝꿍이 내 영혼의 짝과 만나 축구를 하고 인증샷을 찍은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하며 시간의 향기를 느낀다.
먼 시간, 가까운 시간, 시간과 시간의 교차.
그리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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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소통에 대해 남편이 가끔 쓰는 예가 '열린 창문'입니다.
앞 베란다 뒷 베란다 창문이 함께 열렸을 때 바람이 통하는 시원한 느낌.
소통은 그렇게 양쪽의 창문이 함께 열려야 시원시원하게 마음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렇게 자신감 쩌는 책도 함께 내고 했으니까,
그까이꺼 시원한 소통이란 것이 늘 그렇게 기분좋게 유지되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만 두면 그 수준에 머무르기라도 해야 할텐데 이 놈의 '관계'라는 것은 가만두면 팍팍해져요.
꼭 그놈의 화분들 같아요
그렇게 곱게 정성 다해 길러줬으면 주인이 바쁠때는 목 말라도 좀 참고 버텨줄 일이지
금세 시들어버린단 말이죠.
그래서 다녀왔지요. 둘만의 일박 여행.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부부 일박 피정'

 

 

아이들 어릴 적에는 부모님께 맡기고 기도원 엄청 다녔구요.
(속초, 무주, 양평..... 또 어디 휴양림. 기도원은 전국 있습니다.ㅎㅎ)


속초 찍고 춘천을 경유해 '닭갈비'로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습니다.
결혼 15년, 우리 참 많이 자랐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런 분위기로 여행을 마칠 즈음이었죠. 
뙇!!!!
한 판 하고 말았네요.

닭갈비를 시키면서 '내장'을 추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지고.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것은 15년 전 제주도 신혼여행의 '해삼 사건'과 영락없는 데쟈뷰.
그 때도 그랬죠. 해삼을 "먹자! 말자!'로 시작한 삐짐과 꼬임.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 15년을!
15년 동안 자라기는 뭘 자라고, 성숙해지기는 뭘 성숙해져!)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기도가 뼈저리게 와 닿습니다.
우리의 사랑 또한 '일용할' 사랑에 불과하니
어찌 이 사랑을 위해 물 주고 보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요.
피정 가서 피정의 필요를 진하게 깨닫기 위해 유치한 한 판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하늘이 엄청나게 예뻤습니다.
붉은색, 노란색이 함께 어우러져 눈을 뗄 수가 없었지요.
에휴, 가만 두어도 예술작품이 되는 하늘을 닮아야지요.
하늘 사랑을 흉내 내지 않고 어찌 한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으리요.
네네, 일용할 사랑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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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에 1박은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휴가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지요.

올해는 1박은 못하고 어머님댁 근처 계곡에 가서 밥 먹고 발 담그는 것으로
조금 약한 십일조 드렸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실 이후 가장 밝은 표정의 어머님이 사진에 담겼습니다.

'카카오탁? 뭐? 그거, 카탁?'으로 사진을 보내드렸더니만 저 사진을 직접 인화해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탁의 말씀.
"니네 그 사진 걸어놓는 데다 꼭 붙여놔."
꼭 붙였습니다. 눼에~눼.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인 이 사진은 어떤가요?


어머니,
어머니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 사시길요.

부디.

 

(시어머님과 닮았다는 논평은 삼가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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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많은 시간은
'함께함' 보다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결혼 전 대학원 시절 JP는 학교 앞에 와서 오래오래 날 기다려주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
직장 다닐 때도 직장 근처 카페에서,
같이 퇴근하기 위해 지하철 역에서,
간혹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기시키고 김기사의 자세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만날 때면 늘 5분 일찍 도착하는 남편이
5분 늦게 가면서도 당당한 나를 기다렸지요.

그 모든 시간에 복수하고 보상을 받듯
기다림의 갑과 을이 대대적으로 바뀐 적도 있습니다.
신대원 3년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나는 내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두 녀석의 목 매는 그리움까지 내 몫으로 떠안고 보면 처절한 시간이었지요.

요즘은 주구장창 남편의 퇴근 시간을 기다립니다.
남편이, 아빠가 퇴근한다고 별 세상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오늘은 '기다림' 자체를 목적삼아 집을 나섰습니다.
포천에 심방이 있는 남편이 '같이 가자' 제안을 했고,
아이들이 기꺼이 결재를 해줬습니다.(점심에 삼양라면을 먹게 해주는 조건으로 ㅎㅎ)
한 시간 정도 드라이브 하는 느낌으로 달려 와서 목싼님은 심방 들어가시고,
혼자 이렇게 좋은 시간을 누립니다.

원고도 좀 쓰고 싶고,
독서도 하고 싶은데
제일 하고 싶은 건 '나 된장질 한다' 자랑하기.

시인의 말처럼 기다림이 만남을 목적하지 않아도 좋군요.
늦게 나와라. 늦게 나와라. 주문을 걸고 싶네요.


 


 

 


수요예배 설교를 앞둔 월요일이니까
가까이 있는 마포 강변으로 나가기로 합니다.
강변에는 푸른 생명이 출렁거립니다.


 

이거 뭐 신혼여행 때도 안 입었던 커플티를 입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닙니다. 될 것도 같습니다.
월요일 오전 강변에선 우리가 제일 젊습니다.
우리 이대로 푼수 떨게 해주세요.

 



"여보, 왜 하나님께선 이 땅 위의 악을 그대로 두실까?"
핑크색 커플티 입고 셀카 찍던 분위기에서 나올 질문은 아닌 것 같으나.
뭐, 익숙합니다.
 
초록빛 생명의 출렁임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악에 대해, 죽음에 대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끝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각각 읽은 소설 이야기를 합니다.
스캇 펙의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윌리엄 폴 영의 <갈림길> 

생명과 죽음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전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랑,
오직 그 사랑만을 사랑으로 여겨 강압하지 않고 오래오래 기다리시는 사랑.

죽음과 생명과 사랑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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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거기 어느 골목에 즉석 떡볶이집 생각나냐?
알지. 부산 떡볶이.
오스카 상가에 있는 오락실은?
패밀리 기억 나? 별나라 예식장 1층에 있는 햄버거 집 말야.
야, 벌써 30여 년 전이다.
30년?
그렇지. 30년이 다 됐지.
그냥 생각하면 아직 젊은 것 같은데 30년이라고 하니까 세월 진짜 많이 갔다.
그럼, 우리 이제 중년이야.
중년? 중년이라도 나는 꽃 중년이야.
야, 꽃이든 호박이든 어쨌든 중년은 중년이야.


젊은 날에 함께 하모니를 맞춰 노래도 하고, 
북한산에 가서 수박도 깨 먹고, 
고난도의 네 박자 게임도 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사진의 한 친구는 40년 지기 친구이다.
아마도 걸음마 할 때 부터 함께 놀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 한 친구는 고3 때 만났다.


인도요리 집에서 커리에 난을 찍어 먹으며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오래 전의 추억을 더듬어 세월을 넘나드는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한 친구는 오래 된 꿈을 굽기 위해 다음 달에 르완다로 떠난다.
빵을 굽지만 빵만 굽는 것이 아니라 꿈을 반죽하고 빚던 친구에게 생각지 못한 문이 열렸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발효시킨 꿈인 것을 알기에,
친구의 새로운 길이 내게 다가온 일처럼 설렌다.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막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지금의 시간이 좋다.
꽃이든 호박이든 중년의 지금이 좋다.


친구들 만나고 있는 사이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집이야?
아니, 나 오늘 00랑 00 만난다고 했잖아.
아, 그랬나? 그래 알았어. 좋은 시간 보내. 알았어. 내가 채윤이 태우러 나갈께.


꽃이든 호박이든 나의 중년이 복되고 풍성한 이유는 남편 김종필의 깊고 신뢰로운 사랑이다.



두 친구의 꽃중년 역시 빛나고 복되기를.


(써놓고 보니 남편  찬양하기 깔대기 같기도 하고....)



 

심학산을 가자니까 '난지도 공원, 난지도 공원' 하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정말 멋진 길이 있다며 며칠 전부터 노래를 하더니.
과연! 멋진 길이었다.
남이섬 저리 가라, 담양도 저리 가라.
메타세쿼이어가 늘어선 길, 그 길이었던 것이다.

 

 

실은 이 남자가 '가면 있겠거니' 하는 안일한 태도로 가이드를 시작한 것이다.
주차하고 걷기 시작하는데 이거 뭐, 멋대가리 없는 시멘트 길이 펼쳐졌었다.
'한 소리 듣겠구나'
싶었는지 실없는 말 개그 몸 개그로 주의를 흐트러뜨리려는 노력이 눈물겨웠다.
 

 

 

이 사람아, 바로 이게 당신 전공 내 전공이라고!
당신과 손잡고 인생길 함께 걷기 시작하여 그저 좋아라 칠렐레 팔렐레 했지.
분명 끝내주는 길이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손잡고 가는 길마다 상상 그 이상이었던 거지.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나무 그늘을 룰루랄라 걸을 줄 알았더니
끝이라곤 없는 것 같은 뙤약볕 아래를 걷는 느낌이었을 때가 있었다고.
덕분에 태양을 피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는 했지만서도.

 

그래서, 괜찮다고.
당신 전공은 생각지 못했던 길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이고,
그 길 따라 걸으면서 투덜거리고 질질 짜고 하다가도 도를 깨우쳤다며 다시 칠렐레 팔렐레 하는 것이 내 전공이니까.


 

멋대가리 없는 시멘트 길을 걷다 돌아 나가니 꽃이 핀 흙길이 나왔다.
사진 찍으며 노래하며,
애초 기대했던 '죽여주는 길'에 대해선 아예 잊고 있을 즈음에 바로 그 죽여주는 길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의 여정과 이렇게도 닮았을까?
꿈에 대한 꿈을 놓았을 때,
그래서 아주 편안해졌을 때 그 꿈이 눈 앞에 나타나곤 한다.

 

 


어딘가 있다는 죽여주는 길, 
그 길을 걸을 방법은 지금 이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이다.
내 작은 손 덥석 잡아 이끌면 함께 걷는 이 있으니 걸을만하지 아니한가. 
그 죽여주는 길, 설령 닿지 못하면 어떠하리.
어제의 '그 꿈'이 내 곁에 나란히 걷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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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구름 뒤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있을 것 같아.
엄마 있잖아, 그게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면 없는데도 정말 있는 것 같은 느낌 알아?
구름만 있는데 구름 뒤에 진짜 라퓨타가 있을 것 같은 거.

(재량 휴업일이라 학교 휴업인 현승이와 한강에 나가 탱자탱자 놀다 왔다.)




남편과의 애정사에서 굵직굵직한 일은 모두 한강 변에서 일어났다.
15, 6 년 전 어느 날
천호대교와 광진교 사이 한강 변에서 두근두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었다.
팔당대교 아래 한강변에서 데이트하며 '가난하게 사는 장래희망'을 나누고,
그가 지은 시와 노래를 읊으며 하염없이 앉아있기도 했었다.
둘 사이에 한강보다 더 큰 강이 흘러 도저히 건널 수 없다는 좌절에 헤어지기로 한 날도 11월 이른 추위가 들이닥친 한강 변이었다.
결혼 8주년 기념일이었나? 구리 한강변에서 감회를 나눴었다.
그리고 결혼 14주년인 오늘엔 생각지도 않은 성산대교 아래에서 아빠 미니미 현승이와 놀았다.




들꽃을 사랑하는 아빠의 아들답게,
현승이는 자연에 나가면 자연과 하나 되어 뒹굴고 논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자세가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한강의 오리 배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꼭 살아있는 오리들이 줄 지어 헤엄쳐 가는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승이가 또 한마디 거든다.
오리 배가 아니라 오리 같애.




한참을 네 잎 클로버 찾기, 개미 관찰하기,또 (엄마 눈엔) 의미 없이 땅 파기 등을 하며 놀았다.
그닥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데 같이 점심 먹자는 아빠의 제안도 거절했다.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벌레나 개미들이 먹을 수 있게 떡 조각 남은 걸 비닐만 버리고 나무 밑에 놓아두잖다.




건너편의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조금 이른 듯한 분수의 물줄기가 한산하고 햇살을 따사로운 한강 변에 여유로움을 더한다.
원고와 원고 사이, 모처럼 내 마음도 여유로운데다가 메이데이 덕에 일도 하루 쉰다.
결혼 14년,
아빠를 많이 닮았지만, 아빠보다 진화한 아들 현승이랑 하는 한강 데이트도 좋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녀석을 정말 나긋나긋한 남자 사람으로 잘 키워서 어느 예쁜 아가씨를 복되게 해야겠다.
좋구나! 5월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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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가는 것이 아까운 나날이었다.
붙들어두고 싶은 시간들이지만 붙든다고 붙들어지는 시간이 아님을 알기에
안타까움에 동동거리진 않았다.


다름 아닌 저 빛깔들 말이다.
검도록 진한 가지의 색, 보드라워 찢어질 듯 엷은 색의 이파리들.
온갖 자연을 통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다.
1년에 딱 한 번,
잠깐 내 곁을 스쳐지나 듯 사라지는....


멈춰 서지 못하여 제대로 눈 맞추지 못했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걸 카메라에 담아 무엇하랴 싶어 사진도 한 장 찍지 않았다.
이러다 그냥 보내겠다, 싶어 안타까웠지만 담담하기로 했다.


집 가까이 선유도 공원이 있었고
내리던 비가 멈추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잡고 함께 걸어주는 그가 있고
주일에 한 번 허락되는 안식의 시간이 와 있었다.


맘껏 눈도 맞추고 충분히 눈을 맞췄다.
고개를 들어 오래 바라보았고, 그 아래 오래 서 있었고, 거기서 길게 호흡했다.
이제 사진 한 장 박아두는 것 민망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이다.

잎의 줄기 사이사이로 엽록소가 꽉 찬 듯 보이는 한여름의 청록이 아니라,
이제 막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초록으로 성글어서 투명한 연두.


열 개의 세포에 열 개의 엽록소로 꽉 채워진 듯한 완고함에 지쳤다.
연하고 성글어,
얇고 투명하여 찢어질 듯 상처받기 쉬운 4월의 새순을 그냥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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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닝커피와 함께 '짧고 굵은 수다 떨기'가 좋다. 오래 같이 살아서인지 짧은 시간에도 깊은 대화로 들어가서 잠시 머물다 바로 털고 일어나는 일이 가능해졌다. 남편이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전보다 자유로워진 덕인지도 모른다. 채윤이 시험기간이라 덩달아 피폐해져 있는 내게 오늘 아침의 짧은 수다는 오랜만에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나가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그가 또 한 방울의 'goodness'를 떨어뜨리고 갔구나 싶다.


#2

어제 구역장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남편이 했다는 얘기다. 주제가 '용서'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타인을 향한 '용서'인데 많은 크리스쳔들이 심지어 목사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제가요. 절대 용서 안 할 겁니다.'라고 거침없이 고백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인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인가? 어느 노인분이 옆에 있는 목사님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남편이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 용서를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본인이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말씀하시는 거로구나.' 결국, 그 힘든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이라며. 그 말에 나도 맞장구 치며 공감을 했다.


#3

연애, 결혼 강의를 가서 마지막 부분에 이 질문을 꼭 던진다. '사람이 변하냐, 안 변하나?' 대부분 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지겹게 안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가 달라지는 것은 '사랑받을 때'이다. 그것도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났을 때 사랑받아 본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100% 리얼, 나의 경험으로 입증된 고백이다. 신혼 초 어느 날, 잘 숨기고 있던 내 내면의 지저분한 것들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드러나서 공황상태가 된 순간이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모든 것을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나서  물었다. '왜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냐?' 그랬더니 남편이 '당신의 약점은 당신이 가장 잘 알잖아.'란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 예수님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고 회심도 다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부터 비로소 견고한 자기 방어의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4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그 이면의 '욕구'를 봐줄 줄 아는 남편의 눈이 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실은 그 눈으로 나를 바라봐 준 덕에 내가 이만큼 사람이 된 것이다. 고백컨대, 자잘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감정에 관한 한 나는 남편을 하등동물 취급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 14년 동안 '내가 하는 말과 토로하는 아픔에 일일이 맞장구 쳐주고 공감해달라'는 한결같은 요구로 그를 볶아댔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공감'은 됐고, 내 안에 있는 '선한 것을 발견해주는 눈'이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랑이었다. 키가 20cm 이상 차이가 나니 늘 올려다봐야 하는 그이다. 결혼 14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떠올려보는 그 사람은 아이 같은 내게 참으로 큰 사람, 어른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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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오늘 심방 가서 어땠는 줄 알아?
도착해서 내릴려고 보니까 가방이 없는 거야.
가방을 안 갖고 몸만 간 거지.
어떡하긴? 그냥 들어 가야지.
가서 '성경 좀 하나 빌려주세요.' 그랬어."



심방 간 목사가,

것두 진짜 점잖고 차분한 이미지의 목사가,
사실 완벽주의 기질도 다분한 목사가,
덜렁덜렁 몸만 가서 '저.... 혹시..... 성경 있으면 하나 빌려주실래요?' 했다는 얘기다.


킥킥거리며 그 고해성사를 하더니 목사님은 주일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드셨다.
모두 재우고 혼자 남은 나는 거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나도 이제 자야지'하고 불을 끄고 들어가려던 중이었다.


뙇!
하하현관 미닫이 문에 책가방 챙겨놓은 목사님의 마음을 발견!
심방 갈 때 놀란 마음 주일 예배 갈 때 확 쫄아서 가방 살포시 챙겨 내놓고
고이 잠이 드셨으니..... 아, 이 목사님 보기와 달리 헐랭이! 게다가 쫌 귀엽긔.

 



 


 

어제 저녁부터 몸이 안 좋아서 겨우 일어나 아이들 등교를 시켰다.
남편은 남편대로 특새가 있어서 다녀오신 후 몸이 노골노골해져 가누질 못하시니
우리들의  안식일 아침 분위기가 영 생기가 없다.
예정된 코스는 일찍 집을 나서 심학산을 걷고,
iami님 블로그에서 보고 찍어 놓은 송도의 '어다리 횟집'에 가서 점심특선을 즐기는 것이었다.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이도 저도 못하겠다 싶었는데
커피 한 잔을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대화가 에너지를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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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 일단 송도로 향했다.

가격대비 풍성한 점심특선에 양도 적은 부부가 엄청 먹어댔다.
새로운 길 가보는 걸 좋아하는 JP는 엄청나게 긴 다리를 보고 열광을 하며 진입했고
바다 위를 달리며 보는 풍경에 '와, 이 쪽 봐. 저 쪽 봐'를 연발했다.
아무리 이 쪽을 보고 저 쪽을 봐도 도대췌 뭐에 저리 감탄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반응이 심드렁하니 '멋지지 않아?' 하는데 '안 보여' 했다.
남편의 눈높이랑 달라서 내가 앉은 자리에선 다리 밖에 안 보인다. 왜!
이 사람은 키가 커서 늘 내가 못 보는 세상을 본다.
그리고 믿음으로 소망하는 사람이라 멀리 내다보며 꿈을 믿는 사람이다.
신혼 초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꿈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이 들렸었다.
이젠 그 자신보다 오히려 내가 그의 꿈을 믿는다.
그의 꿈이 그의 꿈(his dream)이 아니라 그 분의 꿈(His dream)일 수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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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드라이브 길에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꿈이 있는 자유'의 '나무아래 그 길' 그 노래 중에서도 이 부분이 좋단다.

나의 꿈과 오늘의 나 사이 그 넓은 거리
늘 보기 원하는 일들에 멈춰 선 내 비좁은 시선

우리의 꿈과 오늘의 사이가 한 없이 넓은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 어제의 꿈을 살고 있다.

아침 커피를 마실 때부터 우리는 '왜 
사람이 변하지 않을까? 그 고귀한 복음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성품이 말이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이야기했다.
그 질문의 끝에 '그래서 끊임없이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가 십자가 아래'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의 꿈은 아침부터 시작된 그 질문의 어느 부분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은 지금의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꿈을 살고 있다.
그 꿈이 우리의 꿈이 아니라 하늘의 꿈일 때
그 꿈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돈과 명예와 능력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같은 것에 매이지 않는,
하늘의 꿈(His dream)과 접속되어 사는 오늘은 '꿈이 있는 자유'라 부를 수 있으리라.
그와 함께 '꿈이 있는 자유'를 이야기 하고 나눈 안식의 날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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